天地以生成為德 。 有生所甚重者 , 身也 。 身以安樂為本 。 安樂可致者 , 以保養為本 。 世之人必求其本 , 則本必固 。 本既固 , 疾病何由而生 ? 夭橫何由而至 ? 此攝生之道無逮於此 。 夫草木無知 , 猶假灌溉 , 矧人為萬物之靈 , 豈不足資以保養 ? 然保養之義 , 其理萬計 。 約而言之 , 其術有三 : 一養神 , 二惜氣 , 三堤疾 。 忘情去智 , 恬澹虛無 , 離事全真 , 內外無寄 。 如是則神不內耗 , 境不外惑 , 真一不雜 , 則神自寧矣 。 此養神也 。 抱一元之本根 , 固歸精之真氣 , 三焦定位 , 六賊忘形 , 識界既空 , 大同斯契 , 則氣自定矣 。 此惜氣也 。 飲食適時 , 溫涼合度 , 出處無犯於八邪 , 寤寐不可以勉強 , 則身自安矣 。 此堤疾也 。 三者甚易行 , 人自謂難行而不肯行 , 如此雖有長生之法 , 人罕專向 , 遂至永謝 。 是以疾病交攻 , 太和頓失 , 聖人憫之 , 故假以保救之術 , 輔以蠲疴之藥 , 俾有識無識 , 咸臻壽域哉 。
천지는 만물을 낳고 이루는 것을 덕으로 삼는다. 생명 있는 존재가 매우 중히 여기는 것은 몸이다. 몸은 편안하고 즐거움을 근본으로 삼으며, 편안하고 즐거움에 이를 수 있는 것은 보양을 근본으로 삼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이 반드시 그 근본을 구하면 근본이 반드시 굳어진다. 근본이 이미 굳어졌다면 질병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요절과 뜻밖의 죽음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이르겠는가? 섭생의 도는 이만한 것이 없다. 초목은 지각이 없지만 그래도 물을 주는 데 의지한다. 하물며 사람은 만물 중 가장 영묘한 존재인데, 어찌 보양에 의지할 필요가 없겠는가? 그러나 보양의 뜻에는 수많은 이치가 있다. 요약하면 그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정신을 기르는 것[養神], 둘째는 기를 아끼는 것[惜氣], 셋째는 질병을 막는 것[堤疾]이다. 정을 잊고 분별하는 지혜를 버리며, 담담하고 고요하여 비우고, 일에서 벗어나 참됨을 온전히 하며, 안팎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않는다. 이와 같으면 정신이 안에서 소모되지 않고 외부 경계에 미혹되지 않으며, 참된 하나가 뒤섞이지 않으므로 정신이 저절로 편안해진다. 이것이 양신이다. 일원(一元)의 뿌리를 품고 정(精)으로 돌아가는 진기(真氣)를 굳게 하며, 삼초가 제자리를 잡고 육적(六賊)이 형상을 잊으며, 인식의 경계가 이미 비워져 대동(大同)에 부합하면 기가 저절로 안정된다. 이것이 석기이다. 때에 맞추어 먹고 마시며, 따뜻하고 서늘함을 알맞게 하고, 나가거나 머무를 때 팔사(八邪)를 범하지 않으며, 깨어 있고 잠드는 일을 억지로 하지 않으면 몸이 저절로 편안해진다. 이것이 질병을 막는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매우 행하기 쉽지만 사람들은 스스로 행하기 어렵다고 하며 기꺼이 행하려 하지 않는다. 이와 같으니 장생하는 법이 있어도 오로지 그것에 뜻을 두는 사람이 드물어 마침내 영영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 때문에 질병이 번갈아 침범하고 크게 조화로운 상태를 갑자기 잃는다. 성인은 이를 가엾게 여겨 보전하고 구제하는 방법을 빌려 주고 병을 없애는 약으로 도와, 아는 이나 모르는 이나 모두 오래 사는 경지에 이르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