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地以生成為德 。 有生所甚重者 , 身也 。 身以安樂為本 。 安樂可致者 , 以保養為本 。 世之人必求其本 , 則本必固 。 本既固 , 疾病何由而生 ? 夭橫何由而至 ? 此攝生之道無逮於此 。 夫草木無知 , 猶假灌溉 , 矧人為萬物之靈 , 豈不足資以保養 ? 然保養之義 , 其理萬計 。 約而言之 , 其術有三 : 一養神 , 二惜氣 , 三堤疾 。 忘情去智 , 恬澹虛無 , 離事全真 , 內外無寄 。 如是則神不內耗 , 境不外惑 , 真一不雜 , 則神自寧矣 。 此養神也 。 抱一元之本根 , 固歸精之真氣 , 三焦定位 , 六賊忘形 , 識界既空 , 大同斯契 , 則氣自定矣 。 此惜氣也 。 飲食適時 , 溫涼合度 , 出處無犯於八邪 , 寤寐不可以勉強 , 則身自安矣 。 此堤疾也 。 三者甚易行 , 人自謂難行而不肯行 , 如此雖有長生之法 , 人罕專向 , 遂至永謝 。 是以疾病交攻 , 太和頓失 , 聖人憫之 , 故假以保救之術 , 輔以蠲疴之藥 , 俾有識無識 , 咸臻壽域哉 。
천지는 만물을 낳고 이루는 것을 덕으로 삼는다. 생명 있는 존재가 매우 중히 여기는 것은 몸이다. 몸은 편안하고 즐거움을 근본으로 삼으며, 편안하고 즐거움에 이를 수 있는 것은 보양을 근본으로 삼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이 반드시 그 근본을 구하면 근본이 반드시 굳어진다. 근본이 이미 굳어졌다면 질병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요절과 뜻밖의 죽음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이르겠는가? 섭생의 도는 이만한 것이 없다. 초목은 지각이 없지만 그래도 물을 주는 데 의지한다. 하물며 사람은 만물 중 가장 영묘한 존재인데, 어찌 보양에 의지할 필요가 없겠는가? 그러나 보양의 뜻에는 수많은 이치가 있다. 요약하면 그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정신을 기르는 것[養神], 둘째는 기를 아끼는 것[惜氣], 셋째는 질병을 막는 것[堤疾]이다. 정을 잊고 분별하는 지혜를 버리며, 담담하고 고요하여 비우고, 일에서 벗어나 참됨을 온전히 하며, 안팎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않는다. 이와 같으면 정신이 안에서 소모되지 않고 외부 경계에 미혹되지 않으며, 참된 하나가 뒤섞이지 않으므로 정신이 저절로 편안해진다. 이것이 양신이다. 일원(一元)의 뿌리를 품고 정(精)으로 돌아가는 진기(真氣)를 굳게 하며, 삼초가 제자리를 잡고 육적(六賊)이 형상을 잊으며, 인식의 경계가 이미 비워져 대동(大同)에 부합하면 기가 저절로 안정된다. 이것이 석기이다. 때에 맞추어 먹고 마시며, 따뜻하고 서늘함을 알맞게 하고, 나가거나 머무를 때 팔사(八邪)를 범하지 않으며, 깨어 있고 잠드는 일을 억지로 하지 않으면 몸이 저절로 편안해진다. 이것이 질병을 막는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매우 행하기 쉽지만 사람들은 스스로 행하기 어렵다고 하며 기꺼이 행하려 하지 않는다. 이와 같으니 장생하는 법이 있어도 오로지 그것에 뜻을 두는 사람이 드물어 마침내 영영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 때문에 질병이 번갈아 침범하고 크게 조화로운 상태를 갑자기 잃는다. 성인은 이를 가엾게 여겨 보전하고 구제하는 방법을 빌려 주고 병을 없애는 약으로 도와, 아는 이나 모르는 이나 모두 오래 사는 경지에 이르게 하였다.
天地既判生萬物者 , 惟五氣爾 。 五氣定位則五味生 , 五味生則千變萬化不可窮已 。 故曰 : 生物者 , 氣也 ; 成之者 , 味也 。 以奇生則成而偶 , 以偶生則成而奇 。 寒氣堅 , 故其味可用以火 ; 熱氣軟 , 故其味可用以堅 ; 風氣散 , 故其味可用以收 ; 燥氣收 , 故其味可用以散 。 土者 , 沖氣之所生 , 則無所不和 , 故其味可用以緩 。 氣堅則壯 , 故苦可以養氣 ; 脈軟則和 , 故咸可以養脈 ; 骨收則強 , 故酸可以養骨 ; 筋收則不攣 , 故辛可以養筋 ; 肉緩則不壅 , 故甘可以養肉 。 堅之而後可以軟 , 收之而後可以散 。 欲緩則用甘 , 不欲則不用 。 用之不可太過 , 太過則病矣 。 古之養生治疾者 , 必先通乎此 。 不通乎此而能已人之疾者 , 蓋寡矣 。
천지가 이미 나뉜 뒤 만물을 낳는 것은 오직 오기(五氣)이다. 오기가 제자리를 잡으면 오미(五味)가 생기고, 오미가 생기면 천변만화하여 다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만물을 낳는 것은 기이고, 그것을 이루는 것은 맛이다”라고 하였다. 홀수[奇]로 생겨나면 이루어져 짝수[偶]가 되고, 짝수로 생겨나면 이루어져 홀수가 된다. 찬 기운은 단단하게 하므로 그 맛을 써서 ‘화(火)’하게 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火의 뜻은 미확정], 뜨거운 기운은 부드럽게 하므로 그 맛을 써서 단단하게 할 수 있다. 바람의 기운은 흩어지게 하므로 그 맛을 써서 거둘 수 있고, 건조한 기운은 거두므로 그 맛을 써서 흩어지게 할 수 있다. 토(土)는 조화로운 기운[沖氣]에서 생겨나므로 조화시키지 못하는 것이 없어서 그 맛을 써서 느슨하게 할 수 있다. 기는 단단해지면 씩씩해지므로 쓴맛으로 기를 기를 수 있고, 맥은 부드러워지면 조화로워지므로 짠맛으로 맥을 기를 수 있다. 뼈는 거두어지면 강해지므로 신맛으로 뼈를 기를 수 있고, 근은 거두어지면 오그라들지 않으므로 매운맛으로 근을 기를 수 있다. 살은 느슨해지면 막히지 않으므로 단맛으로 살을 기를 수 있다. 단단하게 한 뒤에야 부드럽게 할 수 있고, 거둔 뒤에야 흩어지게 할 수 있다. 느슨하게 하려면 단맛을 쓰고, 그렇지 않으면 쓰지 않는다. 쓰되 지나쳐서는 안 되니 지나치면 병이 된다. 옛날 양생하고 질병을 치료하던 사람은 반드시 먼저 이 이치에 통달하였다. 이 이치에 통달하지 않고도 남의 질병을 낫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夫安樂之道 , 在能保養者得之 。 況招徠和氣之藥少 , 攻決之藥多 , 不可不察也 。 是知人之生須假保養 , 無犯和氣 , 以資生命 。 才失將護 , 便致病生 。 苟或處治乖方 , 旋至顛越 。 防患須在閒日 。 故曰 : 安不忘危 , 存不忘亡 。 此聖人之預戒也 。
편안하고 즐거워지는 도는 보양할 수 있는 사람이 얻는다. 더구나 조화로운 기운을 불러들이는 약은 적고 공격하여 뚫어내는 약은 많으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이로써 사람의 삶은 보양에 의지하고 조화로운 기운을 해치지 않음으로써 생명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돌보고 보호하는 일을 조금만 그르쳐도 곧 병이 생긴다. 만일 치료가 올바른 방법에서 어긋나면 곧 위태롭게 무너지는 지경에 이른다. 환난을 막는 일은 평온한 날에 해야 한다. 그러므로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살아 있을 때 멸망을 잊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이는 성인이 미리 경계한 말이다.
攝養之道莫若守中 , 則無過不及之患 。 經曰 : 春夏秋冬 , 四時陰陽生 , 病起於過用 。 蓋不失其性 , 而強云為強 , 逐處即病生 。 五臟受氣蓋有常分 , 用之過耗 , 是以病生 。 善養生者 , 即無過耗之弊 , 又能保守真元 , 何患乎外邪所中也 ? 故善服藥不若善保養 , 不善保養不若善服藥 。 世有不善保養 , 又不善服藥 , 倉卒病生 , 而歸咎於神天 。 噫 ! 是亦未嘗思也 , 可不慎與 。
섭양의 도에는 중도를 지키는 것만 한 것이 없으니, 그러면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걱정이 없다. 경(經)에 “봄·여름·가을·겨울 사시의 음양에서 병이 생기는 것은 지나치게 쓰는 데서 비롯된다”라고 하였다. 본성을 잃지 않아야 하는데 억지로 강하다고 하며 강한 체하면 곳곳에서 곧 병이 생긴다. 오장이 기를 받는 데에는 정해진 분량이 있는데, 그것을 지나치게 써서 소모시키므로 병이 생긴다. 양생을 잘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소모하는 폐단이 없고 또 진원(真元)을 보전하여 지킬 수 있으니, 어찌 외사에 맞을 것을 걱정하겠는가? 그러므로 약을 잘 먹는 것은 보양을 잘하는 것만 못하고, 보양을 잘하지 못하는 것은 약을 잘 먹는 것만 못하다. 세상에는 보양도 잘하지 못하고 약도 잘 먹지 못하다가 갑자기 병이 생기면 신과 하늘을 탓하는 사람이 있다. 아! 이 또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夫未聞道者 , 放逸其心 , 逆於生樂 。 以精神徇智巧 , 以憂畏徇得失 , 以勞苦徇禮節 , 以身世徇財利 , 四徇不置 , 心為之疾矣 。 極力勞形 , 躁暴氣逆 , 當風縱酒 , 食嗜辛酸 , 肝為之病矣 。 飲食生冷 , 溫涼失度 , 久坐久臥 , 太飽太飢 , 脾為之病矣 。 呼叫過常 , 辯爭陪答 , 冒犯寒暄 , 恣食鹹苦 , 肺為之病矣 。 久坐濕地 , 強力入水 , 縱欲勞形 , 三田漏溢 , 腎為之病矣 。 五病既作 , 故未老而羸 , 未羸而病 , 病至則重 , 重則必斃 。 嗚呼 ! 是皆弗思而自取之也 。 衛生之士 , 謹此五者 , 可致終身無苦 。 經曰 : 不治已病治未病 。 正此謂也 。
도를 듣지 못한 사람은 마음을 제멋대로 풀어 놓아 삶의 즐거움에 거스른다. 정신을 써서 재치와 기교를 좇고, 근심과 두려움으로 득실을 좇으며, 수고로 예절을 좇고, 자신의 몸과 세상살이로 재물을 좇는다. 이 네 가지 좇는 일을 그치지 않으면 심(心)이 그 때문에 병든다. 힘을 다해 몸을 수고롭게 하고, 조급하고 사나워 기가 거슬러 오르며, 바람을 맞으며 마음껏 술을 마시고, 맵고 신 음식을 즐기면 간이 그 때문에 병든다. 날것과 찬 것을 먹고 마시며, 따뜻하고 서늘함의 절도를 잃고, 오래 앉거나 오래 누우며, 너무 배부르거나 너무 굶으면 비가 그 때문에 병든다. 지나치게 소리쳐 부르고, 논쟁하며 응대하고, 추위와 더위에 무모하게 노출되며, 짜고 쓴 것을 거리낌 없이 먹으면 폐가 그 때문에 병든다. 습한 땅에 오래 앉고, 억지로 힘을 써 물에 들어가며, 성욕을 마음껏 풀어 몸을 수고롭게 하고, 삼전(三田)이 새어 넘치면 신이 그 때문에 병든다. 이 다섯 병이 이미 생기면 늙기도 전에 여위고, 여위기도 전에 병들며, 병이 이르면 위중해지고, 위중해지면 반드시 죽는다. 아! 이것은 모두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 생명을 지키려는 사람은 이 다섯 가지를 삼가면 평생 고통 없이 지낼 수 있다. 경에 “이미 생긴 병을 치료하지 않고 아직 생기지 않은 병을 치료한다”라고 하였으니 바로 이를 말한 것이다.
夫善養生者養內 , 不善養生者養外 。 養外實外 , 以充快悅澤貪欲恣情為務 , 殊不知外實則內虛也 。 善養內者實內 , 使臟腑安和 , 三焦各守其內 , 飲食常適其宜 。 故莊周曰 : 人之可畏者 , 衽席飲食之間而不知為之戒者 , 過也 。 若能常如是畏謹 , 疾病何緣而起 ? 壽命焉得不長 ? 賢者造形而悟 , 愚者臨病不知 。 誠可畏也哉 。
양생을 잘하는 사람은 안을 기르고, 양생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겉을 기른다. 겉을 기르고 겉을 충실하게 하는 사람은 즐거움과 윤택함을 채우고 탐욕과 감정을 마음껏 누리는 데 힘쓰며, 겉이 충실해지면 안이 허해진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 안을 잘 기르는 사람은 안을 충실하게 하여 장부를 편안하고 조화롭게 하고, 삼초가 각각 그 안을 지키게 하며, 음식을 늘 적절하게 먹는다. 그러므로 장주(莊周)는 “사람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잠자리와 음식에 있다. 그런데 이를 경계할 줄 모르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하였다. 늘 이처럼 두려워하고 삼갈 수 있다면 질병이 무슨 까닭으로 일어나며 수명이 어찌 길어지지 않겠는가? 현명한 사람은 몸에 드러나는 데 이르면 깨닫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병에 이르러도 알지 못한다. 참으로 두려워할 만하다.
夫柔情難綰而不斷 , 不可不以智慧剛勇決也 。 故幃箔不可不遠 。 斯言至近易 , 其事至難行 。 蓋人之至慧淺陋 , 剛勇粗猛 , 不能勝其貪欲也 。 故 《 佛書 》 曰 : 諸苦所因貪欲為本 , 若滅貪欲 , 何所依止 ? 是知貪欲不滅 , 苦亦不滅 , 貪欲滅 , 苦亦滅 。 聖人言近而指遠 , 不可不思 , 不可不懼 。 善攝生者 , 不勞神 , 不苦形 , 神形既安 , 禍何由而致也 ?
부드러운 정은 얽어매기 어렵고 끊어지지도 않으니, 지혜와 굳센 용기로 결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휘장 친 잠자리를 멀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말은 지극히 평이하고 쉽지만 실천하기는 매우 어렵다. 사람의 뛰어나다는 지혜가 얕고 부족하며, 굳센 용기는 거칠고 사나워서 탐욕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서(佛書)』에 “모든 고통의 원인은 탐욕을 근본으로 삼으니, 탐욕을 없애면 [고통이] 무엇에 의지하여 머물겠는가?”라고 하였다. 이로써 탐욕이 사라지지 않으면 고통도 사라지지 않고, 탐욕이 사라지면 고통도 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인의 말은 가까우나 가리키는 뜻은 머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섭생을 잘하는 사람은 정신을 수고롭게 하지 않고 몸을 괴롭히지 않는다. 정신과 몸이 이미 편안하다면 재앙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이르겠는가?
夫人之生 , 以氣血為本 。 人之病 , 未有不先傷其氣血者 。 世有童男室女 , 積想在心 , 思慮過當 , 多致勞損 。 男則神色先散 , 女則月水先閉 。 何以致然 ? 蓋憂愁思慮則傷心 , 心傷則血逆竭 , 血逆竭故神色先散而月水先閉也 。 火既受病 , 不能榮養其子 , 故不嗜食 。 脾既虛 , 則金氣虧 , 故發嗽 。 嗽既作 , 水氣絕 , 故四肢干 。 木氣不充 , 故多怒 , 鬚髮焦 , 筋痿 。 俟五臟傳遍 , 故卒不能起 , 然終死矣 。 此一種於諸勞者 , 最為難治 。 蓋病起於五臟之中 , 無有已期 , 藥力不可及也 。 若或自能改易心志 , 用藥扶接 , 如此則可得九死一生 。 舉此為例 , 其餘諸勞 , 可按脈與證而治之也 。
사람의 삶은 기혈을 근본으로 삼는다. 사람의 병은 먼저 기혈을 손상하지 않고 생기는 것이 없다. 세상에는 혼인하지 않은 젊은 남녀가 생각을 마음속에 쌓아 두고 지나치게 생각하여 흔히 허로로 손상되는 경우가 있다. 남자는 먼저 정신과 안색이 흩어지고, 여자는 먼저 월경이 막힌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는가? 근심하고 생각하면 심을 손상시키고, 심이 손상되면 혈이 거슬러 흐르며 고갈되기 때문이다. 혈이 거슬러 흐르며 고갈되므로 정신과 안색이 먼저 흩어지고 월경이 먼저 막힌다. 화(火)가 이미 병들면 그 자식에 해당하는 것을 영양할 수 없으므로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가 이미 허해지면 금기(金氣)가 부족해지므로 기침이 난다. 기침이 이미 생기면 수기(水氣)가 끊어지므로 팔다리가 마른다. 목기(木氣)가 충실하지 못하므로 성을 자주 내고 수염과 머리카락이 마르며 근이 위축된다. 오장에 두루 전해지기에 이르면 마침내 일어나지 못하고 끝내 죽는다. 이 한 종류는 여러 허로 가운데 가장 치료하기 어렵다. 병이 오장 속에서 시작되어 그칠 기약이 없고 약의 힘이 미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스스로 마음과 뜻을 바꾸고 약으로 도와 이어 준다면, 이처럼 하면 구사일생으로 살아날 수 있다. 이것을 예로 든 것이며, 나머지 여러 허로는 맥과 증후를 살펴 치료할 수 있다.
人生 , 實陰陽之氣所聚 。 若不能調和陰陽之氣 , 則害其生 。 故 《 保命全形篇 》 論曰 : 人以天地之氣生 。 又曰 : 天地合氣 , 命之曰人 。 是以陽化氣 , 陰成形也 。 夫遊魂為變者 , 陽化氣也 。 精氣為物者 , 陰成形也 。 陰陽氣合 , 神在其中矣 。 故 《 陰陽應象大論 》 曰 : 天地之動靜 , 神明為之綱紀 。 即知神明不可以陰陽攝也 。《 易 》 所以言陰陽不測之謂神 , 蓋謂此矣 。 故曰 : 神不可大用 , 大用即竭 ; 形不可太勞 , 太勞則斃 。 是知精 、 氣 、 神 , 人之大本也 , 不可不謹 。 惟智者養其神 , 惜其氣 , 以固其本 。 世有不謹衛生之經者 , 動皆觸犯 。 既以犯養生之禁 , 須假以外術保救 , 不可坐以待斃 。 本草之經於是興焉 。 既知保救之理 , 不可不窮究保救之事 。 衍義於是存焉 。 二者其名雖異 , 其理僅同 。 欲使有知無知咸臻壽域 , 率至安樂之鄉 , 適是意者 , 求其意而可矣 。 養心之道 , 未可忽也 。 六慾七情 , 千變萬化 , 出沒不定 , 其言至簡 , 其義無窮 。 而以一心對無窮之事 , 不亦勞乎心 ? 苟不明 , 不為物所病者 , 未之有也 。 故明達之士 , 遂至忘心 , 心既忘矣 , 則六慾七情無能為也 。 六慾七情既無能為 , 故內事不生 。 內事不生 , 故外患不能入 。 外患不能入 , 則本草之用實世之芻狗耳 。 若未能達其意而至是地 , 則未有不緣六慾七情而起憂患者 。 憂患既作 , 則此書一日不可闕也 。 愚何人哉 , 必欲以斯文絕人之憂患乎 ?
사람의 삶은 참으로 음양의 기가 모인 것이다. 음양의 기를 조화시키지 못하면 그 생명을 해친다. 그러므로 「보명전형편(保命全形篇)」의 논의에서 “사람은 천지의 기로 살아간다”라고 하였으며, 또 “천지가 기를 합한 것을 사람이라 이름한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양은 기를 변화시키고 음은 형체를 이룬다. 떠도는 혼이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양이 기를 변화시키는 것이고, 정기가 사물이 되는 것은 음이 형체를 이루는 것이다. 음양의 기가 합하면 신(神)이 그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음양응상대론(陰陽應象大論)」에 “천지의 움직임과 고요함은 신명(神明)이 기강이 된다”라고 하였다. 이로써 신명을 음양으로 포괄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역(易)』에서 “음양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신이라 한다”라고 한 것도 이를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신을 크게 써서는 안 되니 크게 쓰면 고갈되고, 몸을 지나치게 수고롭게 해서는 안 되니 지나치게 수고롭게 하면 죽는다”라고 하였다. 이로써 정·기·신은 사람의 큰 근본이므로 삼가지 않을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오직 지혜로운 사람은 신을 기르고 기를 아껴 그 근본을 굳게 한다. 세상에는 생명을 지키는 법도를 삼가지 않아 움직일 때마다 모두 어기는 사람이 있다. 양생의 금기를 이미 어겼다면 외부의 방법을 빌려 보전하고 구제해야지, 앉아서 죽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본초의 경전은 이 때문에 생겨났다. 보전하고 구제하는 이치를 이미 알았다면 보전하고 구제하는 일을 끝까지 연구하지 않을 수 없다. 『연의(衍義)』는 이 때문에 있게 되었다. 이 두 가지는 이름이 다르지만 그 이치는 거의 같다. 아는 이나 모르는 이나 모두 오래 사는 경지에 이르고 한결같이 편안하고 즐거운 곳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니, 이 뜻에 맞는 사람은 그 뜻을 구하면 된다. 마음을 기르는 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육욕과 칠정은 천변만화하여 나타나고 사라짐이 일정하지 않다. 그 말은 지극히 간단하지만 뜻은 끝이 없다. 하나의 마음으로 끝없는 일에 대응하니 또한 마음을 수고롭게 하지 않는가? 이를 밝게 알지 못하면서 외물 때문에 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므로 밝게 통달한 선비는 마침내 마음을 잊는 데 이른다. 마음을 이미 잊으면 육욕과 칠정이 작용할 수 없고, 육욕과 칠정이 작용할 수 없으므로 내부의 일이 생기지 않는다. 내부의 일이 생기지 않으므로 외부의 우환이 들어오지 못한다. 외부의 우환이 들어오지 못하면 본초의 쓰임은 참으로 세상의 추구(芻狗)와 같을 뿐이다. 만일 그 뜻에 통달하여 이러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면 육욕과 칠정으로 인해 근심과 환난을 일으키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근심과 환난이 이미 생겼다면 이 책은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어리석은 내가 어떤 사람이기에 반드시 이 글로 사람들의 근심과 환난을 끊어 주려 하는가?
又曰貴豪之家 , 形樂志苦者也 。 衣食足則形樂 , 心慮多則志苦 。 岐伯曰 : 病生於脈 , 形樂則外實 , 志苦則內虛 , 故病生於脈 。 所養既與貧下異 , 憂樂思慮不同 , 當各遂其人而治之 。
또 말하기를, 부귀하고 권세 있는 집안은 몸은 편안하지만 뜻은 괴롭다. 의식이 넉넉하면 몸은 편안하고, 마음속 걱정이 많으면 뜻은 괴롭다. 기백(岐伯)은 “병은 맥에서 생긴다. 몸이 편안하면 겉이 충실하고 뜻이 괴로우면 안이 허해지므로 병이 맥에서 생긴다”라고 하였다. 보양하는 방식이 이미 가난하고 낮은 처지의 사람들과 다르고 근심·즐거움·생각도 다르므로, 마땅히 각 사람에게 맞추어 치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