夫天道盈缺人事多屯居處屯危不能自慎而能克濟者天下無之故養性之士不知自慎之方未足與論養生之道也故以自慎為首焉夫聖人安不忘危恆以憂畏為本營無所畏忌則庶事□壞經曰人不畏威則大威至矣故以治身者不以憂畏朋友遠之治家者不以憂畏奴僕侮之治國者不以憂畏磷境侵之治天下者不以憂畏道德去之故憂威者生死之門禮教之主存亡之由禍福之本吉凶之元也是故士無憂畏則身名不立農無憂畏則稼穡不滋工無憂畏則規矩不設商無憂畏則貨殖不廣子無憂畏則孝敬不篤父無憂畏則慈愛不著臣無憂畏則動庸不建君無憂畏則社稷不安養性者失其憂畏則心亂而不治形躁而不寧神散而氣越志蕩而意昏應生者死應死者亡應成者敗應吉者凶其憂畏者甚猶水火不可暫忘也人無憂長子弟為勁敵妻妾為寇仇是以太上畏道其次畏物其次畏人其次憂身故憂於身者不拘於人畏於己者不制於彼慎於小者不懼於大戒於近者不侮於遠能知此者水行蛟能不得害陸行虎兕不能傷處世謗讟不能加善知此者萬事畢矣夫萬病橫生年命橫天多由飲食之患飲食之患過於聲色聲色可絕之踰年飲食不可廢於一日為益既廣為患亦深且滋味百品或氣勢相伐觸其禁忌更成沉毒緩者積年而成病急者災患而卒至也
하늘의 도에는 차고 기우는 일이 있고, 사람의 일에는 어려움이 많다. 어려움과 위태로움 속에 살면서 스스로 삼가지 않고도 능히 이겨 내는 사람은 천하에 없다. 그러므로 본성을 기르는 선비가 스스로 삼가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면, 함께 양생의 도를 논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이에 스스로 삼가는 것을 맨 앞에 둔다. 성인은 편안할 때에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늘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근본으로 삼는다. 두려워하거나 꺼리는 것이 없으면 온갖 일이 □ 무너진다. 경전에 “사람이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큰 위엄이 닥친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몸을 다스리는 사람이 염려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벗들이 멀리하고, 집안을 다스리는 사람이 염려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노복들이 업신여기며,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염려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이웃 나라가 침범하고,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이 염려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도덕이 떠나간다. 그러므로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생사의 문이요, 예교의 주체이며, 존망의 연유요, 화복의 근본이며, 길흉의 근원이다. 따라서 선비가 염려하고 두려워함이 없으면 몸과 이름을 세우지 못하고, 농부가 그러하면 곡식이 자라지 못하며, 장인이 그러하면 법도와 기준이 서지 않고, 상인이 그러하면 재산이 늘지 않는다. 자식이 그러하면 효성과 공경이 두텁지 않고, 아버지가 그러하면 자애가 드러나지 않으며, 신하가 그러하면 공적을 세우지 못하고, 임금이 그러하면 사직이 편안하지 않다. 본성을 기르는 사람이 염려하고 두려워함을 잃으면 마음이 어지러워 다스려지지 않고, 몸이 조급하여 편안하지 않으며, 정신은 흩어지고 기는 벗어나고, 뜻은 흔들리고 생각은 어두워진다. 살아야 할 사람이 죽고, 죽어야 할 사람이 망하며, 이루어질 것이 실패하고, 길할 것이 흉해진다.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일은 물과 불처럼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염려하지 않으면[원문: 人無憂長] 자제는 강적이 되고 처첩은 원수가 된다. 그러므로 가장 높은 이는 도를 두려워하고, 그다음은 사물을 두려워하며, 그다음은 사람을 두려워하고, 그다음은 자기 몸을 염려한다. 자기 몸을 염려하는 사람은 남에게 구속되지 않고, 자신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다른 이에게 제압되지 않으며, 작은 것을 삼가는 사람은 큰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까운 것을 경계하는 사람은 먼 것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이를 아는 사람은 물로 다녀도 교룡이 해치지 못하고, 육지로 다녀도 호랑이와 외뿔소가 상하게 하지 못하며, 세상에 처하여도 비방이 더해지지 못한다. 이를 잘 알면 만사가 갖추어진다. 온갖 병이 뜻밖에 생기고 수명이 뜻밖에 꺾이는 것은 대개 음식의 해로움 때문이다. 음식의 해로움은 음악과 여색보다 크다. 음악과 여색은 해가 넘도록 끊을 수 있지만 음식은 하루도 폐할 수 없다. 이로움이 넓은 만큼 해로움도 깊다. 더구나 온갖 음식의 맛은 기운과 성질이 서로 공격하기도 하여, 그 금기를 범하면 도리어 깊은 독을 이룬다. 느린 것은 여러 해 쌓여 병이 되고, 급한 것은 재앙과 병환이 갑자기 닥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