嗚呼, 先君子惠庵公, 所著方藥書甚富, 皆不留姓氏, 但令施治者, 捷於奇中, 公人而 忘己者, 蓋如此也. 中有活套一書, 書簡施博, 條理明暢, 人一見之, 皆可按證而治, 雖素所未攻者, 無不欲蓄一本, 病於印發不給. 於是, 坊人謀鋟兼本, 來告于公, 公曰, 書固可傳, 用之在人, 不必騖廣, 且人不讀本草, 徒法何足以盡活套哉. 此余之志切 救世, 而亦猶恐疑似之致誤也. 坊人之請益勤, 而酬世之志, 終不可遏也.
公年已七十有七, 不可以自抄, 命子傳書. 書例倣汪忍庵《本草備要》ㆍ《醫方集解》 合編之法, 先之以損益本草, 復益之以用藥綱領, 及救急禁忌等十數種, 命之曰, 《方 藥合編》. 役未及半, 公偶感疾曰, "吾病其不起矣, 藥不可以延生, 良醫十全, 在乎識 其死生已." 竟不服藥, 以是年八月十七日下世.
嗚呼慟哉. 嗣子繼世, 尙不忍讀父之書, 况敢抄父之所傳乎. 然坊人入梓中掇, 亦不 可不念, 旣葬後二月, 拭涕卒業而歸之, 金根之誤在, 所難免. 並無款識, 蓋追先志之 不欲以醫名世也. 略述顚末, 以寓感慕. 嗚呼覽者, 想公婆心.
龍集二十一年甲申十二月上澣.
公之子不肖孤泣血謹書.
新增證脈方藥合編 酉齋
방약합편 원인 嗚呼, 先君子惠庵公, 所著方藥書甚富, 皆不留姓氏, 但令施治者, 捷於奇中, 公人而 忘己者, 蓋如此也. 中有活套一書, 書簡施博, 條理明暢, 人一見之, 皆可按證而治, 雖素所未攻者, 無不欲蓄一本, 病於印發不給. 於是, 坊人謀鋟兼本, 來告于公, 公曰, 書固可傳, 用之在人, 不必騖廣, 且人不讀本草, 徒法何足以盡活套哉. 此余之志切 救世, 而亦猶恐疑似之致誤也. 坊人之請益勤, 而酬世之志, 終不可遏也.
아! 선친 혜암 공께서 지으신 방약서가 매우 많으나 모두 이름을 남기지 않으 시고 다만 치료하는 자들이 병증에 기발하게 적중하게 할 수 있도록 하셨으니, 남들에게 숨김없이 드러내고 자기는 잊게 하신 것이 대개 이와 같았다. 그 가 운데 《의방활투》(1869)라는 책은 글이 간결하여 치료에 널리 쓰였으며 논리가 밝고 시원시원하여 사람들이 한 번 살펴보면 모두 증상에 따라 치료할 수 있었 으니, 평소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자들도 한 부를 소장하고자 하지 않은 자가 없었으나 충분히 인쇄해내지 못하는 것이 병통이었다. 이에 출판업자가 복본
〔兼本〕을 새길 것을 꾀하여 혜암 공에게 가서 고하니 공께서 "책은 진실로 전 할 수 있지만 쓰임은 사람들에게 달려있으니 너무 널리 퍼뜨리려 할 필요는 없 네." 하시고, 또 "사람들이 본초서는 읽지 않고서 한갓 치법만 가지고 어찌 온 전히 활용할 수 있겠는가? 지금 나의 뜻은 세상을 구제하고자 하는 것에 간절 하지만 비슷하게 해서 일을 그르치는 꼴이 될까 두렵기도 하네." 하셨지만, 출 판업자가 더욱 정성스레 청하니 세상이 바라는 뜻에 응하셔서 끝내 막을 수는 없으셨다.
방약합편 원인 方藥合編源因 公年已七十有七, 不可以自抄, 命子傳書. 書例倣汪忍庵《本草備要》ㆍ《醫方集解》 合編之法, 先之以損益本草, 復益之以用藥綱領, 及救急禁忌等十數種, 命之曰, 《方 藥合編》. 役未及半, 公偶感疾曰, "吾病其不起矣, 藥不可以延生, 良醫十全, 在乎識 其死生已." 竟不服藥, 以是年八月十七日下世.
혜암 공의 연세가 이미 77세인지라 스스로 초(抄)를 잡을 수 없어서 아들에게 명하여 책을 전하도록 하셨다. 책의 형식은 왕인암(汪忍庵)의 《본초비요(本草 備要)》(1694)와 《의방집해(醫方集解)》(1682)를 합편하였던 것을 모방하되, 《의종손익》(1867)의 본초를 앞에 두고 〈용약강령(用藥綱領)〉ㆍ〈구급(救急)〉 ㆍ〈금기(禁忌)〉 등 십 수 종을 덧붙여 《방약합편(方藥合編)》이라 이르도록 하 셨다. 일이 절반도 이루어지기 전에 혜암 공께서 병에 걸리셔서 "내 병은 아마 도 치료할 수 없을 것이니, 약으로도 목숨을 연장하지 못할 것이다. 좋은 의사 가 10명 중 10명을 온전히 낫게 하는 것은 죽을지 살지를 알아차리는 것에 달 려 있을 뿐이다." 하시고는 끝내 약을 드시지 않으시더니 이 해(1884년) 8월 17 일에 세상을 하직하셨다.
嗚呼慟哉. 嗣子繼世, 尙不忍讀父之書, 况敢抄父之所傳乎. 然坊人入梓中掇, 亦不 可不念, 旣葬後二月, 拭涕卒業而歸之, 金根之誤在, 所難免. 並無款識, 蓋追先志之 不欲以醫名世也. 略述顚末, 以寓感慕. 嗚呼覽者, 想公婆心.
아! 애통하다. 자식이 선친의 세업을 이어서는 선친의 책을 읽는 것도 차마 하 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감히 선친이 전하신 바를 초(抄)한단 말인가? 하지만 출 판업자가 출간을 시작했다가 중단되는 일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장례를 마 치고 2달 만에 눈물을 훔치며 일을 완성하여 글을 돌려보내었으나 잘못 옮긴 오류가 있을 것은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낙관을 전혀 찍지 않은 것은 의업(醫 業)으로 세상에 이름이 나는 것을 원치 않으신 선친의 뜻을 따른 것이다. 일의 전말을 대략 서술하여 마음에 느끼어 사모하는 마음을 여기에 붙여둔다. 아!
이 책을 보는 사람들은 혜암 공께서 염려하셨던 마음을 떠올리기 바란다.
龍集二十一年甲申十二月上澣.
방약합편 원인 方藥合編源因 고종 21년 갑신(甲申) 12월 상순(上旬).
公之子不肖孤泣血謹書.
혜암 공의 아들(황필수, 黃泌秀) 불초고(不肖孤)가 피눈물을 흘리며 삼가 쓰 다.
. 본 원인(源因)은 중정본과 신정본에만 있는데 초간본에 임의로 추가해 두었 다. ↩ 방약합편 원인 方藥合編源因 新增證脈方藥合編 酉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