嘉慶乙亥元和時疫論

將欲施藥施醫施棺於郡邑之中 , 則必先解囊後勸善 , 勞心勞力 , 日費經營 , 乃可以有為也 , 然而求活人甚眾之舉不易得焉 。 備其藥得醫省其棺 , 昔之所難者 , 今於是乎見之 , 元和實推為善之鄉 。 當年賑濟尚有餘貲 , 仍思設法以公諸貧民 , 有紳士焉憂上天之疫癘 , 有富貴者焉患生人之夭札 。 時維初夏 , 正暑濕熱三氣將蒸 , 又值乙運之歲金不及 , 亥年之風木偏淫 。 不惟木寡於畏 , 反侮其金 , 而且凶年穢亂之氣亦被其扇動於中 , 人在氣交 , 無隙可避 , 是一人中其氣則為濕溫 、 一方染其氣即為時疫之候也 。 周邑尊既理荒政之餘 , 望其氣而異之 , 集醫問乃病 , 答曰 : 乙為從革 , 炎火盛行 , 亥屬厥陰 , 風淫所勝 , 風火相煽 , 則吳又可瘟疫論之見證 , 不一邪之盤踞於膜原者 , 勢必從九竅傳而出 , 即外起之因內兼之證 , 以末治之亦不能出此範圍也 。 況吳又可論瘟疫及張石頑論時行疫氣 、 周禹載論濕熱暑疫 , 均值大撓甲子以來第七十三甲子 , 厥陰司天 , 少陽在泉 , 風火用事之時 。 後先闡發精義入神 , 會元之司天如斯 , 值之司天亦未必不如斯 。 於是邑廟為局 , 病者接踵而至 , 門庭若市 , 內外分科 , 大小異位 。 余時切一脈浮不沉而數 , 望一舌白苔滿布 , 問其所苦 , 則凜寒發熱 , 昏昏不爽 , 余曰 : 達原病 。 旁一後生曰 : 如用此法治之 , 苔必轉黃 , 而邪達矣 。 服之果然 。 及問後生為誰 , 曰徐淡安先生之高弟徐鐵峰也 。 伊父雪峰本屬老醫 , 家學淵源從於局中 , 可謂好學不倦者矣 ! 可謂與人為善者矣 ! 當如同善者如管佛容吳雲門先生 , 冀百數十人分手而治 , 論表裡分界者有人 , 大劑清涼者有人 , 下而再下者有人 。 或濕多而仿濕熱混淆之治 , 或氣異而採芳香逐穢之品 , 或敗毒 , 或消毒 , 或解毒 , 粲乎隱隱 , 各得其所 , 疇不仰體 , 痌環在抱之心 , 共相逐疫 , 效技於堂廡之中哉 ! 外之往視 , 諸徒一如局中論治 , 死生若判霍然而愈者 , 實不勝枚舉已 。 乃設席延醫 , 繼以觀劇 , 成贊且賀曰 : 見公之作 , 知公之志 。 愛民如子 , 豈不欲救民於衽席 ? 紳之積善餘慶 , 豈不欲周急而扶危 ? 富之好義施財 , 豈不欲博施而濟眾 ? 醫之婆心一片 , 豈不欲起死而回心夫 ? 然設是局也 , 豈博樂善好施之名歟 ? 將使繼公之理者 , 見其實惠知其真心也 。
고을 안에서 약과 의료와 관을 베풀려면 반드시 먼저 주머니를 털고 뒤에 선행을 권하며, 마음과 힘을 들여 날마다 경영해야 비로소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약을 갖추고 의원을 얻어 관을 덜 쓰게 하는 것은 예전에 어렵게 여겼던 것인데 이제 여기서 보았으니, 원화는 실로 선행의 고을로 꼽힌다. 그해 구휼하고도 남은 재물이 있어 여전히 방법을 마련하여 가난한 백성에게 함께 쓰고자 하였다. 하늘이 내리는 역려를 걱정하는 신사들이 있었고 사람들의 요절을 걱정하는 부귀한 이들이 있었다. 때는 초여름으로 서·습·열의 세 기운이 막 찌려는 시기였으며, 또 을운의 해라 금이 불급하고 해년의 풍목이 치우쳐 지나쳤다. 목이 두려워하는 바가 적어 도리어 금을 업신여길 뿐 아니라, 흉년의 더럽고 어지러운 기운도 그로 인해 안에서 부채질되었다. 사람은 기가 교차하는 데 있어 피할 틈이 없으니, 한 사람이 그 기에 맞으면 습온이고 한 지방이 그 기에 물들면 시역이 되는 시기였다. 주 읍존은 황정을 다스리는 여가에 그 기운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의원들을 모아 병을 물었다. 대답하기를 ‘을은 종혁이며 염화가 성행하고, 해는 궐음에 속하여 풍이 지나쳐 우세합니다. 풍과 화가 서로 부추기면 오우가의 『온역론』에 보이는 증상과 같습니다. 여러 사기가 막원에 웅거하면 반드시 구규를 따라 전해져 나오므로, 밖에서 일어난 원인과 안에 겸한 증상을 말단에서 치료하더라도 이 범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오우가가 온역을 논한 것, 장석완이 시행역기를 논한 것, 주우재가 습열서역을 논한 것은 모두 대요가 갑자를 만든 이래 일흔세 번째 갑자에 해당하여, 궐음이 사천하고 소양이 재천하여 풍과 화가 일을 주관하던 때입니다. 앞뒤로 밝혀낸 정밀한 뜻이 신묘한 경지에 이르렀으니, 회원의 사천이 이와 같다면 당해의 사천도 반드시 이와 같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고을의 사당을 진료소로 삼자 환자가 발길을 이어 찾아와 문과 뜰이 시장 같았으며, 내과와 외과를 나누고 어른과 아이의 자리를 달리하였다. 내가 그때 한 사람의 맥을 짚으니 부하고 침하지 않으며 삭하였고, 혀를 보니 흰 설태가 가득 깔려 있었다. 괴로운 곳을 물으니 오싹하게 춥고 열이 나며 정신이 흐려 상쾌하지 않다고 하므로, 나는 ‘달원법을 쓸 병이다’라고 하였다. 곁에 있던 젊은이가 ‘이 방법으로 치료하면 설태가 반드시 누렇게 바뀌고 사기가 통달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는데, 복용한 뒤 과연 그러하였다. 그 젊은이가 누구인지 물으니 서담안 선생의 뛰어난 제자 서철봉이라고 하였다. 그의 아버지 설봉은 본래 노련한 의원이었고, 가학의 깊은 연원을 이어 진료소에서 함께 일하였으니, 배우기를 좋아하여 게으르지 않은 사람이며 다른 이와 함께 선을 행하는 사람이라 할 만하다! 함께 선행한 관불용·오운문 선생 같은 이들은 백수십 명을 나누어 치료하기를 바랐고, 표리의 경계를 논하는 이도 있었으며 큰 용량의 청량제를 쓰는 이도 있었고 사하하고 다시 사하하는 이도 있었다. 어떤 이는 습이 많아 습열이 뒤섞인 치료법을 본떴고, 어떤 이는 기가 달라 방향성으로 더러움을 몰아내는 약품을 취했으며, 혹은 패독하고 혹은 소독하고 혹은 해독하였다. 드러나고 은미한 여러 방법이 각기 알맞은 곳을 얻었으니, 누가 아픔을 품어 함께 걱정하는 마음을 받들어 함께 역병을 몰아내고 대청과 행랑에서 의술을 펼치지 않았겠는가! 밖으로 왕진한 제자들도 모두 진료소에서처럼 치료를 논하여, 생사가 갈릴 듯하다가 갑자기 나은 사례가 이루 셀 수 없었다. 이에 잔치를 마련하여 의원들을 초청하고 이어 연극을 관람하였으며, 모두 칭찬하고 축하하여 말하였다. ‘공의 일을 보고 공의 뜻을 알았습니다.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니 백성을 편안한 자리에서 구하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사가 선을 쌓아 남는 경사가 있으니 급한 이를 돕고 위태로운 이를 붙들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부자가 의를 좋아하여 재물을 베푸니 널리 베풀어 많은 이를 구하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의원의 자상한 한마음은 죽을 이를 일으키고 마음을 돌이키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 진료소를 세운 것이 어찌 선행과 베풀기를 좋아한다는 명성을 얻으려는 것이겠습니까? 장차 공을 이어 다스릴 사람이 그 실질적인 혜택을 보고 그 진심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