味甘 、 微苦 , 微溫 。 氣味頗厚 , 陽中微陰 。 氣虛 、 血虛俱能補 。 陽氣虛竭者 , 此能回之於無何有之鄉 ; 陰血崩潰者 , 此能障之於已決裂之後 。 惟其氣壯而不辛 , 所以能固氣 ; 惟其味甘而純正 , 所以能補血 ; 故凡虛而發熱 , 虛而自汗 , 虛而眩運 , 虛而困倦 , 虛而驚懼 , 虛而短氣 , 虛而遺泄 , 虛而瀉利 , 虛而頭疼 , 虛而腹痛 , 虛而飲食不運 , 虛而痰涎壅滯 , 虛而嗽血 , 吐血 , 虛而淋瀝 、 便閉 , 虛而嘔逆 、 躁煩 , 虛而下血 、 失氣等證 , 是皆必不可缺者 。 第欲以氣血相較 , 則人參氣味頗輕而屬陽者多 , 所以得氣分者六 , 得血分者四 , 總之不失為氣分之藥 。 而血分之所不可缺者 , 為未有氣不至而血能自至者也 。 故扁鵲曰 :「 損其肺者 , 益其氣 , 須用人參以益之 。 肺氣既王 , 餘臟之氣皆王矣 。」 所以人參之性多主於氣 , 而凡臟腑之有氣者 , 皆能補之 。 然其性溫 , 故積溫亦能成熱 , 若云人參不熱則可 , 云人參之性涼恐未必然 。 雖東垣云人參 、 黃耆為退火之聖藥 , 丹溪云虛火可補 , 參朮之類是也 , 此亦皆言虛火也 。 而虛火二字最有關係 , 若內真寒而外假熱者 , 是為真正虛火 , 非放膽用之必不可也 ; 然有一等元陰虧乏而邪火爍於表裡 , 神魂躁動 , 內外枯熱 , 真正陰虛一證 , 誰謂其非虛火 ? 若過用人參 , 果能助熱 , 若王節齋云 :「 陽旺則陰愈消 」, 及 《 節要 》 云 :「 陰虛火動者 , 勿用 」, 又曰 :「 肺熱還傷肺 」 等說 , 固有此理 , 亦不可謂其盡非 ; 而近之明哲 , 如李月池輩皆極不然之 , 恐亦未必然也 。 夫虛火二字最當分其實中有虛 、 虛中有實 , 陽中有陰 、 陰中有陽 , 惟勿以成心而執己見斯可矣 。 如必欲彼此是非 , 是所謂面東方不見西牆 , 皆未得其中也 。 予請剖之曰 : 如龍雷之火 , 原屬虛火 , 得水則燔 , 得日則散 , 是即假熱之火 , 故補陽即消矣 ; 至若亢旱塵飛 , 赤地千里 , 得非陽亢陰虛而亦可以補陽生陰乎 ? 或必曰此正實火也 , 得寒則已 。 予曰不然 , 夫炎暑酷烈 , 熱令大行 , 此為實火 , 非寒莫解 ; 而乾枯燥旱 , 泉源斷流 , 是謂陰虛 , 非水莫濟 。 此實火之與陰虛亦自判然可別 , 是以陰虛而火不盛者 , 自當用參為君 ; 若陰虛而火稍盛者 , 但可用參為佐 ; 若陰虛而火大盛者 , 則誠有暫忌人參而惟用純甘壯水之劑庶可收功一證 , 不可不知也 ! 予非不善用人參者 , 亦非畏用而不知人參之能補陰者 , 蓋以天下之理原有對待 , 謂之曰陰虛必當忌參固不可 , 謂之曰陰虛必當用參亦不可 , 要亦得其中和 , 用其當而已矣 。 觀者詳之 。
맛은 달고 조금 쓰며 성질은 조금 따뜻하다. 기미가 제법 두터우니 양 가운데 음이 조금 있다. 기허와 혈허를 모두 보할 수 있다. 양기가 허하여 다한 사람은 이를 써서 아무것도 없는 지경에서 되돌릴 수 있고, 음혈이 무너져 흩어지는 사람은 이미 터져 갈라진 뒤라도 이를 써서 막을 수 있다. 기가 강하면서 맵지 않기 때문에 기를 견고하게 할 수 있고, 맛이 달고 순정하기 때문에 혈을 보할 수 있다. 그러므로 허하여 발열하거나 자한·현운·곤권·경구·단기·유설·설리·두통·복통이 있거나, 음식이 운화되지 않고 담연이 막히며, 기침하여 피가 나오거나 토혈하고, 소변이 방울방울 나오거나 대변이 막히며, 구역·조번·하혈·실기가 생기는 등의 증에는 모두 반드시 없어서는 안 된다. 다만 기와 혈을 비교하면 인삼의 기미는 제법 가볍고 양에 속하는 부분이 많으므로 기분에 이르는 것이 여섯이고 혈분에 이르는 것이 넷이다. 전체적으로는 기분의 약임을 잃지 않는다. 혈분에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은 기가 이르지 않는데 혈이 저절로 이르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편작은 “폐를 손상하면 그 기를 더해야 하니 반드시 인삼으로 더해 주어야 한다. 폐기가 왕성해지면 나머지 장의 기도 모두 왕성해진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인삼의 성질은 주로 기를 위주로 하며, 무릇 장부에 기가 있는 곳은 모두 보할 수 있다. 그러나 성질이 따뜻하므로 따뜻함이 쌓이면 열이 될 수도 있다. 인삼이 뜨겁지 않다고는 할 수 있지만 성질이 서늘하다고 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동원이 인삼·황기를 화를 물리치는 성약이라 하였고 단계가 허화는 보할 수 있으니 인삼·백출 같은 것이 그것이라 하였지만, 이는 모두 허화를 말한 것이다. 그런데 허화라는 두 글자는 가장 긴요하다. 속은 참으로 차고 겉은 거짓으로 뜨거운 것이 진정한 허화이니, 대담하게 쓰지 않고는 반드시 안 된다. 그러나 원음이 부족하고 사화가 표리를 태우며 정신과 혼이 조급하게 움직이고 안팎이 마르고 뜨거운, 참으로 음이 허한 한 가지 증이 있으니 누가 이것을 허화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인삼을 지나치게 쓰면 과연 열을 도울 수 있다. 왕절재가 “양이 왕성하면 음은 더욱 소모된다.”라고 한 말과 《절요》에서 “음허로 화가 동하면 쓰지 말라.”라고 하고 또 “폐열이면 도리어 폐를 손상한다.”라고 한 말 등에는 본래 이런 이치가 있으므로 모두 틀렸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근래의 총명한 이들인 이월지 같은 사람들이 이를 극력 부정하는 것 역시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을 듯하다. 허화라는 두 글자에서는 실 가운데 허가 있고 허 가운데 실이 있으며, 양 가운데 음이 있고 음 가운데 양이 있음을 가장 잘 구분해야 한다. 선입견으로 자기 견해를 고집하지 않으면 될 뿐이다. 반드시 서로 옳고 그름을 가리려 한다면 이른바 동쪽을 향하여 서쪽 벽을 보지 못하는 것이니, 모두 그 중도를 얻지 못한 것이다. 내가 이를 나누어 말하겠다. 용뢰의 화는 본래 허화에 속하여 물을 만나면 타오르고 햇빛을 만나면 흩어지니, 곧 가열의 화이다. 따라서 양을 보하면 곧 사라진다. 그러나 심한 가뭄에 먼지가 날리고 천 리가 붉게 메마른 것은 양이 지나치고 음이 허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도 양을 보하여 음을 생기게 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 반드시 이것이 바로 실화이니 찬 것을 만나면 멎는다고 한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하겠다. 무더위가 혹독하고 열의 명령이 크게 행해지는 것은 실화이므로 찬 것이 아니면 풀리지 않는다. 반면 메마르고 가물어 샘의 근원이 끊기는 것은 음허라고 하니 물이 아니면 구제하지 못한다. 이처럼 실화와 음허는 본래 뚜렷하게 구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음허이면서 화가 성하지 않으면 당연히 인삼을 군약으로 써야 하고, 음허이면서 화가 조금 성하면 인삼을 좌약으로만 쓸 수 있다. 음허이면서 화가 크게 성하면 참으로 잠시 인삼을 피하고 오직 순전히 달면서 수를 튼튼하게 하는 약제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한 가지 증이 있으니, 알지 못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인삼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도 아니고, 쓰기를 두려워하여 인삼이 음을 보할 수 있음을 모르는 사람도 아니다. 천하의 이치에는 본래 서로 상대되는 면이 있으므로 음허에는 반드시 인삼을 피해야 한다고 해도 안 되고, 음허에는 반드시 인삼을 써야 한다고 해도 안 된다. 요컨대 그 중화를 얻어 마땅한 데 쓸 뿐이다. 읽는 이는 자세히 살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