熟地黃 : 味甘 、 微苦 。 味厚氣薄 , 沉也 , 陰中有陽 。 本草言其入手足厥 、 少陰經 。 大補血衰 , 滋培腎水 , 填骨髓 , 益真陰 , 專補腎中元氣 , 兼療藏血之經 , 此雖泛得其概 , 亦豈足以盡是之妙 。 夫地黃產於中州沃土之鄉 , 得土氣之最厚者也 。 其色黃 , 土之色也 ; 其味甘 , 土之味也 。 得土之氣而曰非太陰 、 陽明之藥 , 吾弗信也 。 惟是生者性涼 , 脾胃喜暖 , 故脾陽不足者所當慎用 ; 至若熟則性平 , 稟至陰之德 , 氣味純靜 , 故能補五藏之真陰 , 而又於多血之藏為最要 , 得非脾胃經藥耶 ? 且夫人之所以有生者 , 氣與血耳 , 氣主陽而動 , 血主陰而靜 。 補氣以人參為主 , 而耆朮但可為之佐 ; 補血以熟地為主 , 而芎歸但可為之佐 。 然在耆 、 朮 、 芎 、 歸則又有所當避 , 而人參 、 熟地則氣血之必不可無 。 故凡諸經之陽氣虛者 , 非人參不可 ; 諸經之陰血虛者 , 非熟地不可 。 人參有健運之功 , 熟地稟靜順之德 , 此熟地之與人參 , 一陰一陽 , 相為表裡 ; 一形一氣 , 互主生成 , 性味中正 , 無逾於此 , 誠有不可假借而更代者矣 。 凡諸真陰虧損者 , 有為發熱 、 為頭疼 、 為焦渴 、 為喉痹 、 為嗽痰 、 為喘氣 , 或脾腎寒逆為嘔吐 , 或虛火載血於口鼻 , 或水泛於皮膚 , 或陰虛而泄利 , 或陰浮而狂躁 , 或陰脫而仆地 。 陰虛而神散者 , 非熟地之守不足以聚之 ; 陰虛而火升者 , 非熟地之重不足以降之 ; 陰虛而躁動者 , 非熟地之靜不足以鎮之 ; 陰虛而剛急者 , 非熟地之甘不足以緩之 ; 陰虛而水邪氾濫者 , 舍熟地何以自制 ; 陰虛而真氣散失者 , 舍熟地何以歸源 ; 陰虛而精血俱損 、 脂膏殘薄者 , 舍熟地何以厚腸胃 。 且猶有最玄最妙者 : 則熟地兼散劑 , 方能發汗 , 何也 ? 以汗化於血 , 而無陰不作汗也 ; 熟地兼溫劑 , 始能回陽 , 何也 ? 以陽生於下 , 而無復不成乾也 。 然而 , 陽性速 , 故人參少用亦可成功 , 陰性緩 , 熟地非多難以奏效 , 而今人有畏其滯膩者 , 則崔氏何以用腎氣丸而治痰浮 ? 有畏其滑澤者 , 則仲景何以用八味丸而醫腎泄 ? 有謂陽能生陰 、 陰不能生陽者 , 則陰陽之理 , 原自互根 , 彼此相須 , 缺一不可 , 無陽則陰無以生 , 無陰則陽無以化 , 故 《 內經 》 曰 :「 精化為氣 」, 得非陰亦生陽乎 , 孰謂陽之能生 , 而陰之不能長也 。 又若制用之法 , 有用薑汁拌炒者 , 則必有中寒兼嘔而後可 , 有用砂仁制者 , 則必有脹滿不行而後可 , 有用酒拌炒者 , 則必有經絡壅滯而後可 , 使無此數者 , 而必欲強用製法 , 是不知用熟地者 , 正欲用其靜重之妙 , 而反為散動 , 以亂其性 , 何異畫蛇而添足 。 今之人即欲用之補陰而必兼以滲利 , 則焉知補陰不利水 , 利水不補陰 , 而補陰之法不宜滲 ; 即有用之補血而復疑其滯膩 , 則焉知血虛如燥土 , 旱極望雲霓 , 而枯竭之腸極喜滋 , 設不明此 , 則少用之 , 尚欲兼之以利 , 又孰敢單用之而任之以多 ? 單用而多且不敢 , 又孰敢再助以甘而盡其所長 ? 是又何異因噎而廢食也 。 嗟嗟 ! 熟地之功其不申於時用者久矣 , 其有不可以筆楮盡者尚多也 , 予今特表而出之 , 尚祈明者之自悟焉 。
숙지황: 맛은 달고 조금 쓰다. 맛이 두텁고 기가 엷으며 가라앉고 음 가운데 양이 있다. 본초에서는 수족궐음·소음경으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쇠한 혈을 크게 보하고 신수를 자양하여 기르며 골수를 채우고 진음을 더하고 신 가운데 원기를 전적으로 보하며 혈을 저장하는 경도 함께 치료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대강의 윤곽을 얻었을 뿐 어찌 그 오묘함을 다 말하기에 충분하겠는가. 지황은 중주의 비옥한 땅에서 나니 토의 기를 가장 두텁게 얻은 것이다. 그 누런색은 토의 색이고 단맛은 토의 맛이다. 토의 기를 얻었는데 태음·양명의 약이 아니라고 하면 나는 믿지 못한다. 다만 생것은 성질이 서늘하고 비위는 따뜻함을 좋아하므로 비양이 부족한 사람은 신중히 써야 한다. 익히면 성질이 평하고 지극한 음의 덕을 받아 기미가 순수하고 고요하므로 오장의 진음을 보할 수 있으며, 특히 혈이 많은 장에 가장 긴요하니 비위경의 약이 아니겠는가?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은 기와 혈일 뿐이다. 기는 양을 주관하여 움직이고 혈은 음을 주관하여 고요하다. 보기에는 인삼을 위주로 하고 황기·백출은 보좌할 수 있을 뿐이며, 보혈에는 숙지황을 위주로 하고 천궁·당귀는 보좌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황기·백출·천궁·당귀에는 피해야 할 경우가 있는 반면, 인삼·숙지황은 기혈에 반드시 없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여러 경의 양기가 허하면 인삼이 아니면 안 되고, 여러 경의 음혈이 허하면 숙지황이 아니면 안 된다. 인삼은 건운하는 효능이 있고 숙지황은 고요하고 순한 덕을 받았으니, 숙지황과 인삼은 하나는 음이고 하나는 양으로 서로 표리가 되며, 하나는 형이고 하나는 기로 서로 생성을 주관한다. 성미의 중정함이 이를 넘는 것이 없으니 참으로 다른 것으로 빌려 바꿀 수 없다. 진음이 부족한 경우에는 발열·두통·몹시 심한 갈증·후비·담수·숨참이 생기거나, 비신의 한역으로 구토하거나, 허화가 혈을 입과 코로 실어 올리거나, 수가 피부로 넘치거나, 음허로 설리하거나, 음이 떠서 광조하거나, 음이 탈하여 땅에 쓰러지기도 한다. 음허로 신이 흩어지면 숙지황의 지키는 힘이 아니고는 모으기에 부족하고, 음허로 화가 오르면 숙지황의 무거움이 아니고는 내리기에 부족하다. 음허로 조급하게 움직이면 숙지황의 고요함이 아니고는 진정시키기에 부족하고, 음허로 강하고 급하면 숙지황의 단맛이 아니고는 완화하기에 부족하다. 음허로 수사가 범람할 때 숙지황을 버리고 무엇으로 제어하겠으며, 음허로 진기가 흩어져 없어질 때 숙지황을 버리고 무엇으로 근원에 돌아가게 하겠는가? 음허로 정혈이 모두 손상되고 지고가 줄어 얇아졌을 때 숙지황을 버리고 무엇으로 장위를 두텁게 하겠는가? 더욱 현묘한 것이 있으니, 숙지황을 발산약과 겸해야 비로소 발한할 수 있는 것은 어째서인가? 땀은 혈에서 변화하므로 음이 없으면 땀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숙지황을 온제와 겸해야 비로소 회양할 수 있는 것은 어째서인가? 양은 아래에서 생기므로 복괘가 없으면 건괘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의 성질은 빠르므로 인삼은 적게 써도 효과를 이룰 수 있지만, 음의 성질은 완만하므로 숙지황은 많이 쓰지 않으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지금 사람들은 정체하고 끈끈함을 두려워하지만, 그렇다면 최씨는 어찌 신기환으로 담이 뜨는 것을 치료했는가? 미끄럽고 윤택함을 두려워한다면 중경은 어찌 팔미환으로 신설을 치료했는가? 양은 음을 생하지만 음은 양을 생하지 못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음양의 이치는 본래 서로 뿌리가 되고 서로 필요로 하므로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양이 없으면 음이 생길 수 없고 음이 없으면 양이 변화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내경》에서 “정이 변화하여 기가 된다.”라고 하였으니, 음도 양을 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누가 양은 생겨나게 할 수 있으나 음은 자라게 하지 못한다고 하겠는가? 또한 법제하여 쓰는 방법에서 생강즙에 버무려 볶는 것은 반드시 중초의 한에 구토가 겸해야 가능하고, 사인으로 법제하는 것은 반드시 창만으로 통하지 않을 때라야 가능하며, 술에 버무려 볶는 것은 반드시 경락의 막힘이 있을 때라야 가능하다. 이런 몇 가지가 없는데도 반드시 억지로 법제하려 한다면, 숙지황을 쓰는 것이 바로 고요하고 무거운 오묘함을 쓰려는 것임을 모르고 도리어 흩고 움직이게 하여 성질을 어지럽히는 것이니, 뱀을 그리고 발을 더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지금 사람들은 숙지황으로 보음하려 하면서 반드시 삼리약을 겸하는데, 보음은 이수하지 않고 이수는 보음하지 않으며 보음법에는 삼리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음을 어찌 알겠는가? 보혈에 쓰면서도 정체하고 끈끈함을 의심하는데, 혈허는 마른 땅과 같아 가뭄이 극심하면 비구름을 바라며 메마른 장은 자윤을 매우 좋아함을 어찌 알겠는가? 이를 밝히 알지 못하면 적게 쓰면서도 통리하는 약을 겸하려 하니, 누가 감히 단독으로 많이 쓰겠는가? 단독으로 많이 쓰는 것조차 감히 하지 못하는데 누가 다시 단맛으로 도와 장점을 다하게 하겠는가? 이 또한 목이 멘다고 음식을 끊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아아! 숙지황의 효능이 당시의 쓰임에서 펼쳐지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글로 다 말할 수 없는 것이 아직 많으므로 내가 이제 특별히 드러내어 밝히니, 밝은 이가 스스로 깨닫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