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 本草本經 , 出自神農 , 其理自屬不易 ; 然考論中所載 , 藥性多有安五臟 、 定神志 , 並延年益壽 、 身輕黑髮 , 及桑白皮 、 紫草補中益氣等說 , 按此語多膚廓 , 不無可疑 ; 且考神農嘗草 , 流傳至今 , 是時文字未開 , 當有識識相因 , 不爾何由得聞 ; 所詳藥出郡縣多有後漢地名 , 故寇宗奭 、 陶通明 、 掌禹錫皆謂是書攷之於漢 , 已有不能斷自何代所作 ; 淮南子雖言神農嘗百草以和藥 , 亦無本草之名 , 至稱桐雷本此載在簡編 , 應與素問同類 , 何以後人多為更飾 , 故有疑為他氏所著 ; 厥後代為損益 , 其真愈失 , 而其論愈訛 , 無怪李氏瀕湖纂集本草 , 僅以本經主治冠列諸首 , 而不力為著解 ; 且有疑其經論未確 , 留此以為存羊之意 ; 非故厚今薄古 , 實以語多膚廓 , 故不敢以疑信相參之書 , 等於素問 , 同作千古俎豆觀也 ; 惟有長洲張璐極力尊崇 , 而其中多有強為組合之心 , 仍非尊崇本意 。 故余尚論藥性 , 每從實處追求 , 既不泥古以薄今 , 復不厚今以廢古 , 惟求理與病符 , 藥與病對 , 俾炎帝救世之真心 , 默與余論相合 , 而不失其尊崇之意 , 是亦余心之素望也矣 。
첫째, 『본초본경(本草本經)』은 신농에게서 나왔으므로 그 이치는 본래 바뀔 수 없는 것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그 논설에 실린 내용을 살펴보면, 약성에 관하여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신지를 안정시키며, 수명을 늘리고 몸을 가볍게 하며 머리카락을 검게 한다는 말이 많고, 상백피와 자초가 보중익기한다는 등의 설도 있다. 내가 살펴보기에 이러한 말은 피상적이고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의심할 점이 없지 않다. 또 신농이 풀을 맛보았다는 일이 지금까지 전해졌음을 생각하면, 그때에는 문자가 아직 열리지 않았으므로 기억을 이어 전하는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원문 ‘識識相因’의 정확한 해석은 유보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 일을 전해 들을 수 있었겠는가. 약물이 나는 군현으로 자세히 적은 것에는 후한의 지명이 많다. 그러므로 구종석·도통명·장우석은 모두 이 책을 한대까지 거슬러 고찰해 보아도 어느 시대에 지어졌는지 단정할 수 없다고 하였다〔원문 ‘攷之於漢,已有不能斷自何代所作’에서 ‘已有’의 기준 시점은 확정하지 않았다〕.
『회남자(淮南子)』에서 비록 신농이 온갖 풀을 맛보아 약을 조제하였다고 말하였지만, 거기에도 본초라는 이름은 없다. ‘桐雷’가 이를 바탕으로 책에 기록하였다는 말에 이르면, 『소문(素問)』과 같은 부류여야 할 터인데 어째서 뒷사람들이 많이 고치고 꾸몄는가. 이 때문에 다른 사람이 지었다고 의심하는 이도 있다. 그 뒤로 대대로 덜고 보태어 참됨은 더욱 사라지고 논설은 더욱 그릇되었다. 빈호 이씨(李氏瀕湖)가 본초서를 편찬하면서 『본경』의 주치만 각 항목의 첫머리에 실었을 뿐, 힘써 해설하지 않은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또한 그 경론이 확실하지 않다고 의심하면서도, 양을 남겨둔다는 존양(存羊)의 뜻으로 이를 보존한 면이 있다. 일부러 지금을 높이고 옛것을 낮춘 것이 아니라, 실제로 피상적이고 지나치게 포괄적인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심스러운 내용과 믿을 만한 내용이 섞인 책을 감히 『소문』과 동등하게 놓고, 함께 천고의 제향을 받을 대상으로 여길 수 없었던 것이다. 오직 장주(長洲)의 장로(張璐)만 극력 존숭하였으나, 그 안에는 억지로 짜 맞추려는 뜻이 많으니 역시 존숭하는 본뜻은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약성을 논할 때 늘 실제에 근거하여 추구하였다. 옛것에 얽매여 지금을 낮추지도 않고, 지금을 높여 옛것을 버리지도 않았다. 오직 이치가 병과 부합하고 약이 병에 맞기를 구하여, 염제께서 세상을 구제하려 하신 참된 마음이 내 논설과 은연중에 합치고 존숭하는 뜻도 잃지 않게 하고자 하였다. 이것이 또한 내가 평소 품어 온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