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以五氣五色五聲視人生死蓋即誠中形外之義亦可見疾雖伏而未發其臟腑已先受傷故必現於形聲動作譬室有火患初不及覺馴至煙焰滿中則勃發而不可御矣然為曲突徙薪之計者近醫亦罕說部載宋神宗精醫理有內侍病腫太醫言不治帝為診之曰陰雖蓑陽未竭術可療也令貪蒜煮團魚而愈熙寧初京尹呂溱上殿進割郎中周約隨趨帝問呂體中無恙否呂以無對頃之復問且問周見呂如何周對如呂既退呂引鏡自照顧周曰面有晦色否周曰龍圖無自疑容彩安靜未幾溱果病遂不起噫如神宗者可云望而知之矣切脈辨症立方為醫家三要而脈尤重差脈既切明自能辨症而投藥不難也今醫者苦於脈理難憑乃竟盡棄不究惟學寫醫案作門面語論症則以活脫為能用藥惟以和平為貴自謂勝於偏執好奇孟浪皂喜者不知用藥如用兵量乎神速若遲疑不進使邪勢蔓延必致救援不及致危殆而後已夫偏執好奇誠為醫家所忌然或因其立法乖異在病家尚不輕信若和平之劑人即知其未必效亦取其無害而就之豈知因循兩字誤人不淺在尋常之症弗藥亦愈若生死關頭豈可須臾躭待乎
옛사람은 오기·오색·오성으로 사람의 생사를 살폈으니, 속의 진실이 밖으로 드러난다는 뜻이다. 병이 잠복하여 아직 발하지 않았더라도 장부는 이미 먼저 손상되므로 반드시 형체와 소리, 움직임에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집에 불이 났을 때 처음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다가 점차 연기와 불꽃이 안에 가득 차면 거세게 일어나 막을 수 없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굴뚝을 굽히고 땔나무를 옮겨 미리 대비하는 의사는 근래에도 드물다.
소설류의 기록에 따르면 송 신종은 의리에 밝았다. 어떤 내시가 부종을 앓아 태의가 치료할 수 없다고 하였으나 황제가 진찰하고 ‘음은 비록 쇠하였으나 양이 아직 다하지 않았으니 의술로 치료할 수 있다’고 하였다. 마늘을 넣어 끓인 자라를 먹게 하여 나았다. 희녕 초에 경윤 여진이 전각에 올라가 아뢰었고 낭중 주약이 뒤따랐다. 황제가 여진에게 몸에 탈이 없느냐고 물으니 없다고 대답하였다. 잠시 뒤 다시 묻고 주약에게도 여진이 어떠해 보이느냐고 물었다. 주약도 여진처럼 대답하였다. 물러난 뒤 여진이 거울을 들고 자신을 비추며 주약을 돌아보고 ‘얼굴에 어두운 빛이 있는가?’라고 하였다. 주약은 ‘용도께서는 스스로 의심하지 마십시오. 얼굴빛이 편안합니다’라고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진은 과연 병들어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아, 신종 같은 이는 바라보고 아는 사람이라 할 만하다.
맥을 짚고 증을 분별하며 처방을 세우는 것이 의가의 세 요체이고 맥은 더욱 중요하다. 맥을 이미 명확히 짚었다면 스스로 증을 분별할 수 있어 약을 투여하기 어렵지 않다. 지금 의사들은 맥리를 믿기 어렵다고 괴로워하여 아예 모두 버리고 연구하지 않으며, 의안을 쓰는 법과 겉치레 말만 배운다. 증을 논할 때에는 막힘없이 빠져나가는 것을 능력으로 삼고, 약을 쓸 때에는 오직 온건함을 귀하게 여겨 편집하고 기이함을 좋아하며 경솔하게 서두르는 것보다 낫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약 쓰기는 군대 쓰기와 같아 신속함을 헤아려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않아 사기의 기세가 번지면 반드시 구원이 미치지 못하여 위태롭게 되고서야 그친다. 편집하고 기이함을 좋아하는 것이 참으로 의가의 금기이기는 하나, 법을 세운 것이 괴이하면 환자 집안에서도 쉽게 믿지 않는다. 반면 온건한 약제는 반드시 효과가 있지는 않음을 알더라도 해가 없다고 여겨 따른다. 어찌 인순이라는 두 글자가 사람을 그르치는 것이 얕지 않음을 알겠는가? 평범한 증은 약을 쓰지 않아도 낫지만 생사의 관문에서 어찌 잠깐이라도 지체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