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以五氣五色五聲視人生死蓋即誠中形外之義亦可見疾雖伏而未發其臟腑已先受傷故必現於形聲動作譬室有火患初不及覺馴至煙焰滿中則勃發而不可御矣然為曲突徙薪之計者近醫亦罕說部載宋神宗精醫理有內侍病腫太醫言不治帝為診之曰陰雖蓑陽未竭術可療也令貪蒜煮團魚而愈熙寧初京尹呂溱上殿進割郎中周約隨趨帝問呂體中無恙否呂以無對頃之復問且問周見呂如何周對如呂既退呂引鏡自照顧周曰面有晦色否周曰龍圖無自疑容彩安靜未幾溱果病遂不起噫如神宗者可云望而知之矣切脈辨症立方為醫家三要而脈尤重差脈既切明自能辨症而投藥不難也今醫者苦於脈理難憑乃竟盡棄不究惟學寫醫案作門面語論症則以活脫為能用藥惟以和平為貴自謂勝於偏執好奇孟浪皂喜者不知用藥如用兵量乎神速若遲疑不進使邪勢蔓延必致救援不及致危殆而後已夫偏執好奇誠為醫家所忌然或因其立法乖異在病家尚不輕信若和平之劑人即知其未必效亦取其無害而就之豈知因循兩字誤人不淺在尋常之症弗藥亦愈若生死關頭豈可須臾躭待乎
옛사람은 오기·오색·오성으로 사람의 생사를 살폈으니, 속의 진실이 밖으로 드러난다는 뜻이다. 병이 잠복하여 아직 발하지 않았더라도 장부는 이미 먼저 손상되므로 반드시 형체와 소리, 움직임에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집에 불이 났을 때 처음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다가 점차 연기와 불꽃이 안에 가득 차면 거세게 일어나 막을 수 없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굴뚝을 굽히고 땔나무를 옮겨 미리 대비하는 의사는 근래에도 드물다. 소설류의 기록에 따르면 송 신종은 의리에 밝았다. 어떤 내시가 부종을 앓아 태의가 치료할 수 없다고 하였으나 황제가 진찰하고 ‘음은 비록 쇠하였으나 양이 아직 다하지 않았으니 의술로 치료할 수 있다’고 하였다. 마늘을 넣어 끓인 자라를 먹게 하여 나았다. 희녕 초에 경윤 여진이 전각에 올라가 아뢰었고 낭중 주약이 뒤따랐다. 황제가 여진에게 몸에 탈이 없느냐고 물으니 없다고 대답하였다. 잠시 뒤 다시 묻고 주약에게도 여진이 어떠해 보이느냐고 물었다. 주약도 여진처럼 대답하였다. 물러난 뒤 여진이 거울을 들고 자신을 비추며 주약을 돌아보고 ‘얼굴에 어두운 빛이 있는가?’라고 하였다. 주약은 ‘용도께서는 스스로 의심하지 마십시오. 얼굴빛이 편안합니다’라고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진은 과연 병들어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아, 신종 같은 이는 바라보고 아는 사람이라 할 만하다. 맥을 짚고 증을 분별하며 처방을 세우는 것이 의가의 세 요체이고 맥은 더욱 중요하다. 맥을 이미 명확히 짚었다면 스스로 증을 분별할 수 있어 약을 투여하기 어렵지 않다. 지금 의사들은 맥리를 믿기 어렵다고 괴로워하여 아예 모두 버리고 연구하지 않으며, 의안을 쓰는 법과 겉치레 말만 배운다. 증을 논할 때에는 막힘없이 빠져나가는 것을 능력으로 삼고, 약을 쓸 때에는 오직 온건함을 귀하게 여겨 편집하고 기이함을 좋아하며 경솔하게 서두르는 것보다 낫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약 쓰기는 군대 쓰기와 같아 신속함을 헤아려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않아 사기의 기세가 번지면 반드시 구원이 미치지 못하여 위태롭게 되고서야 그친다. 편집하고 기이함을 좋아하는 것이 참으로 의가의 금기이기는 하나, 법을 세운 것이 괴이하면 환자 집안에서도 쉽게 믿지 않는다. 반면 온건한 약제는 반드시 효과가 있지는 않음을 알더라도 해가 없다고 여겨 따른다. 어찌 인순이라는 두 글자가 사람을 그르치는 것이 얕지 않음을 알겠는가? 평범한 증은 약을 쓰지 않아도 낫지만 생사의 관문에서 어찌 잠깐이라도 지체할 수 있겠는가?
余初讀靈素諸書覺其經義淵深脈理錯雜每若望洋意沮繼復並心壹志遍覽前賢註釋有所疑則鎮日默坐苦思而力索之乃漸通五運六氣陰陽應象之理每調氣度脈浪決人生死亦時或有驗憶昔避兵鄉里對巷有吳某晨起方灑掃忽仆地不語移時始醒延余診視仍能起坐接談及按脈則勢急而銳真有發如奪索者蓋腎氣敗也危期常不越宿遽辭以出人感不之信詎日未昃而氣絕矣又布商周某偶感微疾就余診視余曰今所患勿藥可愈惟按心脈獨堅濕痰阻氣氣有餘即是火火鬱不散常發癰毒時周腦後生細瘡累累若貫珠余曰君以此無所苦一旦勃發為害非淺亟宜慎之彼終不為意及明春果以腦後毒發而死據此則憑脈決症似乎如響斯應矣豈知脈理微茫又有不可臆斷者余有戚某過余齊形色困憊詢知患咳經月行動氣喘故來求治診其脈至而不定加火薪然竊訝其心精已奪草枯常死戚固寒士余以不便明言特贈二金惟令安養時已秋半及霜寒木落往探之而病已痊細思其故得毋來診時日已西沉行急而咳亦甚因之氣塞脈亂乃有此象與然惟於此而愈不敢自信矣
내가 처음 《영추》와 《소문》 등의 책을 읽었을 때에는 경의 뜻이 깊고 맥리가 복잡하여, 늘 큰 바다를 바라보듯 마음이 꺾였다. 뒤에 다시 마음과 뜻을 하나로 모아 앞선 현인들의 주석을 두루 보고 의문이 있으면 온종일 말없이 앉아 고심하며 힘써 탐구하자, 점차 오운육기와 음양응상의 이치에 통하게 되었다. 매번 기를 조절하고 맥을 헤아려 함부로 사람의 생사를 판단하였지만 때때로 맞는 경우도 있었다. 옛날 고향에서 난리를 피할 때 맞은편 골목의 오씨가 아침에 일어나 마당을 쓸다가 갑자기 쓰러져 말하지 못하였고, 한참 뒤에야 깨어났다. 나를 불러 진찰하게 하였는데 여전히 일어나 앉고 대화할 수 있었다. 맥을 짚으니 기세가 급하고 날카로워 참으로 노끈을 낚아채듯 발하였으니 신기가 무너진 것이다. 위태로운 때가 대개 하룻밤을 넘지 않으므로 급히 사양하고 나왔다. 사람들은 믿지 않았으나 해가 기울기도 전에 기가 끊어졌다. 또 포목상 주씨가 우연히 작은 병을 얻어 나에게 진찰받았다. 나는 ‘지금 앓는 것은 약 없이도 나을 수 있습니다. 다만 심맥만 홀로 단단하니 습담이 기를 막은 것입니다. 기가 남는 것이 곧 화이고 화가 울체되어 흩어지지 않으면 흔히 옹독을 일으킵니다’라고 하였다. 당시 주씨의 뒤통수에는 작은 헌데들이 구슬을 꿴 듯 잇달아 있었다. 나는 ‘지금은 이 때문에 괴롭지 않더라도 하루아침에 거세게 발하면 해가 얕지 않으니 급히 조심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는 끝내 개의치 않았고 다음 봄에 과연 뒤통수의 독이 발하여 죽었다. 이에 따르면 맥에 근거해 증을 판단하는 일이 메아리처럼 응하는 듯하다. 그러나 맥리가 미묘하여 억측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음을 어찌 알았겠는가? 어떤 친척이 내 서재를 찾아왔는데 형색이 몹시 지쳐 있었다. 물으니 기침을 한 달째 앓고 움직이면 숨이 차서 치료를 구하러 왔다고 하였다. 맥이 이르되 일정하지 않아 불에 타는 땔나무 같았으므로, 속으로 심정이 이미 빼앗겼으니 풀이 마를 때 대개 죽으리라 여겨 놀랐다. 친척은 본래 가난한 선비였기에 명백히 말하기 어려워 특별히 돈 두 금을 주고 편히 요양하게만 하였다. 그때는 이미 가을 중반이었다. 서리가 차고 나뭇잎이 떨어질 때 찾아가 보니 병이 이미 나았다. 까닭을 자세히 생각하니, 진찰받으러 왔을 때 해가 이미 서쪽으로 지고 있었고 급히 걸어 기침도 심하였으므로 기가 막히고 맥이 흐트러져 이런 형상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 일로 더욱 감히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게 되었다.
脈理淵微固未易絲分縷析而世之醫家病家感以脈為首務豈知脈居四診之末上士欲求其備原難捨脈以言病而亦不能離病以就脈也蓋凡臨症必先詢其病之所在與受之所由察虛實觀氣色俟胸有成見而後按脈以決其疑若脈不合症必更求病之所以然與脈所以異准此立方或可無出入之慮本不專以三部九候為憑也矧今世粗工略知脈理便強作解事謂病之原木按脈能知在病家亦信其造詣甚深指下自能洞見孰知古之宗工亦無此本領乎余為是言非輕視夫脈也正以理甚淵微未容偽託耳
맥리는 깊고 미묘하여 쉽게 실오라기처럼 나누어 분석할 수 없는데, 세상의 의가와 환자 집안은 모두 맥을 으뜸가는 일로 삼는다. 어찌 맥이 사진의 마지막에 있음을 알겠는가? 뛰어난 의사가 완전함을 구하려면 본래 맥을 버리고 병을 말하기 어렵지만, 병을 떠나 맥에만 맞출 수도 없다. 증에 임하면 반드시 먼저 병이 있는 곳과 병을 받은 까닭을 묻고, 허실을 살피고 기색을 보아 마음속에 판단이 선 뒤 맥을 짚어 의문을 결정해야 한다. 맥이 증과 맞지 않으면 병이 그렇게 된 까닭과 맥이 다른 까닭을 다시 구해야 한다. 이에 준하여 처방을 세우면 어긋날 걱정이 없을 수 있으니, 본래 삼부구후만을 근거로 삼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지금의 서투른 의사는 맥리를 조금 알기만 해도 억지로 일을 아는 체하며 병의 근원을 맥만 짚어 알 수 있다고 한다. 환자 집안도 그 조예가 매우 깊어 손끝에서 저절로 꿰뚫어 볼 수 있다고 믿는다. 옛날의 대가에게도 이런 능력은 없었음을 누가 알겠는가?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맥을 가볍게 보아서가 아니라, 그 이치가 매우 깊고 미묘하여 거짓으로 의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胎產非患惟稽古雜誌有異胎五則稱不救而方書恰未之戴五者何一曰東胞帶緊束不解也一曰沖臨產時沖逆不下也一曰挺者橫截腹中手足不露一曰捧心子捧母心心隨胎落一曰卷腸腸斷始脫遇此五者母子得存共一幸矣至懷胎之遲速亦甚不同有三四年而後生者此胎氣使然靜待固無所害若見腹膨既久誤認為病以藥攻之必至胎損而墮悔何及哉更有七月五月而生者考孕生五月古名賅胎以父母稟氣之旺陽生而陰即長故先期而產此如向陽花木得氣在先十月即華不待三春始發耳俗子不明此理妄有誹訕至產母忿不欲生良可痛恨昔余家有墳丁趙德隆者發鄰女未六月而產一男戚黨咸竊笑幸超知妻素端方無疑問子後漸長聲音笑貌酷類德隆於是群疑始釋又有孕終不產者元人說部所載南邑下砂四灶鹽丁顧壽五妻王氏始笄笄顧子女已生其五而於至大辛亥復有孕及期臨蓐七日不娩後仍如故每囑家人死必焚我勿待盡須檢視腹中物以明何疾繼於至正庚寅十月腹驟動痛極而死越二日家人遵遺言以火化之取物視則胸帶纏束甚緊剖之乃一男胎其脅骨堅如鐵石計懷胎四十年其婦以甲戌生死年七十有七矣胎產常事有怪異若此者其故固不可解也
임신과 출산은 병이 아니다. 다만 《계고잡지》에는 기이한 태 다섯 가지가 있어 구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방서에는 마침 실려 있지 않다. 다섯 가지는 무엇인가? 첫째는 동으로 포대가 단단히 묶여 풀리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충으로 해산할 때 거슬러 치밀어 내려오지 않는 것이다. 셋째는 정으로 배 안을 가로막고 손발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넷째는 봉심으로 아이가 어머니의 심을 받들어 심이 태를 따라 떨어지는 것이다. 다섯째는 권장으로 장이 끊어진 뒤에야 빠져나오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를 만나 모자 중 하나라도 살아남으면 다행이다. 임신 기간의 느리고 빠름도 매우 달라 서너 해가 지난 뒤 낳는 경우도 있다. 이는 태기가 그렇게 만든 것이므로 조용히 기다리면 본래 해로울 것이 없다. 배가 오래 부풀어 있는 것을 보고 병으로 잘못 알아 약으로 공격하면 반드시 태가 손상되어 떨어지니 후회한들 어찌 미치겠는가? 또 일곱 달이나 다섯 달에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 살펴보면 임신 다섯 달에 낳는 것을 옛날에는 해태라고 하였다. 부모에게서 받은 기가 왕성하여 양이 생기면 음이 곧 자라므로 먼저 낳는 것이다. 이는 양지의 꽃나무가 기를 먼저 얻어 시월에 꽃피고 봄 석 달을 기다리지 않는 것과 같다. 속인들은 이 이치를 몰라 함부로 헐뜯어 산모가 분하여 살고 싶지 않게 만드니 참으로 가슴 아프고 한스럽다. 옛날 우리 집의 묘지기 조덕륭이 이웃 여자를 아내로 맞았는데 여섯 달이 되지 않아 아들을 낳았다. 친척들은 모두 속으로 비웃었으나 다행히 조씨는 아내가 본래 단정하고 방정함을 알아 의심하지 않았다. 아이가 점차 자라 목소리와 웃는 모습이 덕륭과 매우 닮자 여러 의심이 비로소 풀렸다. 임신하고 끝내 낳지 못한 경우도 있다. 원나라 사람의 소설류 기록에 실린 남읍 하사 사조의 염정 고수오의 아내 왕씨는 비녀를 꽂을 나이가 되자 고씨에게 시집가 이미 자녀 다섯을 낳았다. 지대 신해년에 다시 임신하여 만삭에 산자리에 든 지 이레가 지나도 해산하지 못하고 뒤에는 여전히 전과 같았다. 늘 집안사람에게 ‘내가 죽으면 반드시 화장하되 다 타기를 기다리지 말고 배 속의 물건을 살펴 무슨 병인지 밝혀라’고 당부하였다. 뒤에 지정 경인년 시월에 배가 갑자기 움직이고 몹시 아파 죽었다. 이틀 뒤 집안사람이 유언에 따라 화장하고 물건을 꺼내 보니 가슴의 띠가 매우 단단히 감겨 있었다. 갈라 보니 남자 태아 하나였으며 갈비뼈가 쇠나 돌처럼 단단하였다. 임신한 지 40년으로 계산되었고, 그 부인은 갑술년에 태어나 죽을 때 일흔일곱 살이었다. 임신과 출산은 일상적인 일인데 이처럼 기괴한 경우가 있으니 그 까닭은 참으로 풀 수 없다.
古云讀書不明其義不如不讀言恐反為書惑也而在醫為尤甚蓋古人方論惟言一症不能隨其傳變故可意會而不可拘執即如虛損一症丹溪謂陽常有餘陰常不足主治在心腎以心主血腎主精精竭血燥火盛金衰而成勞怯故治以四物六味補益真陰俾火自降而肺金清肅在東垣剛又以脾胃為本言士厚則金旺而腎水亦足故以補中益氣為主後肚咸宗李而以朱為誤謂造化生機惟藉此春溫之氣若專用沉陰清化之品則生生大氣索然是蓋未知上損從陽下損從陰之義矣按金匱云脈大為勞極虛亦為勞脈大指損及心脾營血虧而氣分泄越宜歸脾建中益氣養營為要極虛則言精血內奪肝腎陰不能自立宜以四物八味壯水化源乃知前賢立方本各有見後人不分陰陽不察脈埋但言治損而茫不知其損之所在也嗟乎藥能治病即能致病昔人有言不遇良醫不如不藥蓋治病猶易治藥為難耳有友僻居鄉曲每言其處苦無醫士無藥肆余謂果爾亦未必非一鄉之福也
옛말에 책을 읽고 그 뜻을 밝히지 못하면 읽지 않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으니, 도리어 책에 미혹될까 두려워서 한 말이며 의술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옛사람의 처방 논의는 한 증만을 말할 뿐 그 전변을 모두 따라갈 수 없으므로, 뜻으로 이해해야지 구애되어 고집해서는 안 된다. 허손증을 예로 들면 단계는 양이 늘 남고 음은 늘 부족하다고 하여 심신을 주로 치료하였다. 심은 혈을 주관하고 신은 정을 주관하므로, 정이 고갈되고 혈이 마르며 화가 성하고 금이 쇠하면 노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물과 육미로 진음을 보익하여 화가 스스로 내려가고 폐금이 맑고 숙연해지게 하였다. 동원은 또 비위를 근본으로 삼아 토가 두터우면 금이 왕성하고 신수도 충족해진다고 하였으므로 보중익기를 위주로 하였다. 후세는 모두 이씨를 종주로 삼고 주씨가 그르다고 하며, 조화의 생기는 오직 봄의 따뜻한 기에 의지하므로 침음하고 맑히는 약만 쓰면 생생하는 대기가 쇠잔해진다고 한다. 이는 위의 손상은 양을 따르고 아래의 손상은 음을 따른다는 뜻을 알지 못한 것이다. 살펴보면 《금궤》에서 ‘맥이 큰 것은 노이며 극도로 허한 것도 노이다’라고 하였다. 맥이 크다는 것은 심비까지 손상되어 영혈이 부족하고 기분이 밖으로 새는 것을 가리키니, 귀비와 건중으로 기를 더하고 영을 기르는 것이 요체이다. 극도로 허하다는 것은 정혈이 안에서 빼앗겨 간신의 음이 스스로 서지 못한다는 말이니, 사물과 팔미로 수를 왕성하게 하고 변화의 근원을 도와야 한다. 이로써 선현이 처방을 세운 데에는 본래 각각 견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후세는 음양을 나누지 않고 맥리를 살피지 않은 채 손상을 치료한다고만 말하며 손상된 곳은 아득히 알지 못한다. 아, 약은 병을 치료할 수 있으니 병을 일으킬 수도 있다. 옛사람이 좋은 의사를 만나지 못하면 약을 쓰지 않는 것이 낫다고 하였으니, 병을 치료하기는 오히려 쉬워도 약으로 생긴 병을 치료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한 친구가 외딴 시골에 살면서 그곳에는 의사도 약방도 없어 괴롭다고 늘 말하였다. 나는 참으로 그렇다면 한 고을의 복이 아닐 것도 없다고 하였다.
凡治病必察虛實無盛盛無虛虛疏其血氣令其調達而致利平此素問審治之義也今之醫士每遇年老之人輒投溫補而輔之一字又為人所樂聞不知老人脾氣既衰飲食入胃輸化不清蒸變為痰氣機阻遏氣有餘即是火故治老人略同幼稚當以清通為主是即經旨六腑傳化不藏以遍為用也徐靈胎日千年之木往往自焚監陰盡火炎物理然也余謂積歲溝渠必多擁塞人能除此老人之病非純以溫補為法矣昔金壇王肯堂年逾八旬患脾泄經年不愈醫投溫補而轉劇延我邑李士材診之用巴豆霜下痰涎數升而愈此非李之明於辨病不能用非王之知醫亦不敢服耳張子和曰良工先治實後治虛轟工或治實或治虛謬工即實實虛虛惟庸工能補其虛不敢治其實也
병을 치료할 때에는 반드시 허실을 살펴 성한 것을 더 성하게 하지 말고 허한 것을 더 허하게 하지 않으며, 혈기를 소통시켜 고르게 통하고 이롭고 평안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소문》에서 자세히 살펴 치료한다는 뜻이다. 지금 의사는 늙은 사람을 만나면 곧 온보약을 투여하며, 보한다는 한 글자도 사람들이 듣기 좋아한다. 그러나 노인은 비기가 이미 쇠하여 음식이 위에 들어가도 수송하고 변화시키는 일이 맑지 못하고, 쪄서 담으로 변하여 기기가 막히며 기가 남는 것이 곧 화가 됨을 모른다. 그러므로 노인 치료는 어린아이와 대략 같아 맑히고 통하게 하는 것을 위주로 해야 한다. 이는 곧 육부는 전하여 변화시키되 저장하지 않고 통함을 작용으로 삼는다는 경의 뜻이다. 서령태가 ‘천 년 된 나무는 종종 스스로 타는데, 음이 다하고 화가 타오르는 것은 만물의 이치가 그러하다’고 하였다. 나는 여러 해 된 도랑에는 반드시 막힌 곳이 많으니 이것을 없애 줄 수 있다면, 노인의 병은 순전히 온보만으로 치료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옛날 금단의 왕긍당은 나이가 여든을 넘어 비사를 앓은 지 일 년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 의사가 온보약을 투여하자 도리어 심해져 우리 고을 이사재를 불러 진찰하게 하였고, 파두상으로 담연 몇 되를 내려 나았다. 이는 이씨가 병을 분별하는 데 밝지 않았다면 쓸 수 없었고, 왕씨가 의술을 알지 못했다면 감히 복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장자화가 말하였다. ‘좋은 의사는 먼저 실을 치료하고 뒤에 허를 치료한다. 굉공은 혹 실을 치료하거나 허를 치료한다. 그릇된 의사는 실을 더 실하게 하고 허를 더 허하게 한다. 오직 평범한 의사는 허를 보할 수 있을 뿐 감히 실을 치료하지 못한다.’
昔有人乘舟遇風而患心疾醫者取多年船柁於手汗所積處剖末飲之而愈醫以意用初視兒戲往往巧發奇中有未易致詰者盧陵嘗舉此語坡公坡公笑曰然則以才人之筆燒灰飲學者當療昏惰推之飲伯夷之盟水即可救貪食比干之飯余即可己佞舐獎噲之質亦可治怯臭西子之珥亦可愈惡疾乎廬陵亦大笑余謂是固不可太泥古人用藥每取形質相類性氣相從以達病所亦有純以意連如弩牙速產杵糠下噎月季調經扇能止汗蛇性上竄而引藥蟬膜外脫而退翳所謂醫者意也殆即此類本不當以常理格亦未可以必愈期如或執而不通適為坡老所笑耳
옛날 어떤 사람이 배를 타다 바람을 만나 심병을 앓자, 의사가 오래된 배의 키에서 손땀이 쌓인 곳을 깎아 가루 내어 마시게 하니 나았다. 의술은 뜻을 취하여 쓰므로 처음에는 장난처럼 보이지만 종종 절묘하게 적중하여 쉽게 따져 물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노릉이 일찍이 이 이야기를 소동파에게 하자 동파가 웃으며 말하였다. ‘그렇다면 재주 있는 사람의 붓을 태운 재를 학자가 마시면 멍청함과 게으름을 치료하겠구려. 이를 미루면 백이가 맹세한 물을 마시면 탐욕을 구할 수 있고, 비간이 먹고 남은 밥을 먹으면 아첨을 그칠 수 있으며, 장쾌의 질을 핥으면 겁을 치료하고 서시의 귀고리 냄새를 맡으면 나쁜 병도 나을 수 있겠는가?’ 여릉도 크게 웃었다. 나는 이것을 너무 고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옛사람은 약을 쓸 때 흔히 형질이 비슷하고 성기가 따르는 점을 취하여 병소에 이르게 하였으며, 순전히 뜻으로 이어 쓰는 경우도 있었다. 쇠뇌의 아로 출산을 빠르게 하고, 절굿공이의 겨로 열격을 내리며, 월계로 월경을 조절하고, 부채로 땀을 멎게 하는 것과 같다. 뱀은 위로 달리는 성질로 약을 이끌고 매미는 겉의 껍질을 벗으므로 눈의 예막을 물리친다. 이른바 의술은 뜻이라는 말이 아마 이런 부류일 것이다. 본래 일반 이치로 막을 것도 아니지만 반드시 낫기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 고집하여 변통하지 못한다면 마침내 동파 노인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今醫士每見身熱脈數輒投柴葛以為邪散則安不知六淫感症固非一端見症雖略相同治法則自有別蓋溫邪忌表濕家忌汗前腎固有明訓王晉三古方選注集傷寒百十三方攻補溫涼無所不備豈僅以解表為事哉即足經論治表散亦不宜太過蓋病中大汗最能暗耗元陽致病後每多損怯嘗閱說部所載範云仕粱為治議時武帝有九錫之命期在旦夕而云適病疫乃召全文伯診之欲求速愈文伯曰此甚易但恐二年後不復能治云曰朝聞道夕死何妨況二年乎文伯乃以火煆地布桃柏葉於上令云臥之汗大泄翌日遂愈後二年云果暴卒宣解之不宜過甚如此
지금 의사는 몸에 열이 나고 맥이 삭한 것을 보면 곧 시호와 갈근을 투여하여 사기가 흩어지면 편안해진다고 여긴다. 그러나 육음을 감수한 증은 한 가지가 아니며 나타난 증상이 대략 같아도 치료법에는 본래 구별이 있음을 모른다. 온사는 발표를 꺼리고 습병 환자는 발한을 꺼린다는 명백한 가르침이 선현에게 이미 있었다. 왕진삼의 《고방선주》에는 상한의 113처방을 모아 공·보·온·량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는데 어찌 해표만을 일삼겠는가? 족경의 치료를 논하더라도 표를 발산하는 것이 지나쳐서는 안 된다. 병중의 큰 땀은 원양을 모르는 사이에 가장 잘 소모하므로, 병후에 손겁이 많은 까닭이 된다. 일찍이 소설류 기록에서 보니 범운이 양나라에서 치의로 벼슬할 때 무제가 구석의 명을 받을 날이 임박하였는데, 마침 범운이 역병을 앓았다. 전문백을 불러 진찰하게 하고 빨리 낫기를 구하자 문백은 ‘매우 쉽지만 다만 이 년 뒤에는 다시 치료할 수 없을까 염려됩니다’라고 하였다. 범운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는데 하물며 이 년 뒤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문백이 불로 땅을 달군 뒤 복숭아와 잣나무 잎을 깔고 범운을 눕히자 땀이 크게 나와 다음 날 나았다. 이 년 뒤 범운은 과연 갑자기 죽었다. 펴고 푸는 것이 지나쳐서는 안 됨이 이와 같다.
治病不難用藥而難於辨症辨症既明則中有所主而用藥自無疑畏如明永樂中東宮妃張氏經阻閱十月疑有孕上命大慶盛啟東診之盛謂非孕進方多破血品東宮怒曰早晚望誕育豈宜服此即屏退閱月病益劇復召診仍疏前方東宮禁盛於別室而後服其方盛家惶怖無地事恐不免而盛洋洋若不經意閱三日家人忽聞門外呼殿聲甚暄出視則盛已紅棍前引獲厚賞歸矣詢之知妃服藥後下血數斗疾漸平復可見識病既真下藥終無疑畏如盛者於醫無愧為良矣
병을 치료할 때 어려운 것은 약을 쓰는 일이 아니라 증을 분별하는 일이다. 증을 명확히 분별하면 마음속에 주장이 서서 약을 쓰는 데 저절로 의심과 두려움이 없다. 명 영락 연간에 동궁의 비 장씨는 월경이 막힌 지 열 달이 지나 임신으로 의심되었다. 황제가 태경 성계동에게 진찰하도록 명하였는데, 성씨는 임신이 아니라고 하며 파혈약이 많은 처방을 올렸다. 동궁이 성내어 ‘아침저녁으로 출산을 바라는데 어찌 이런 약을 복용하겠는가?’라고 하고 물러나게 하였다. 한 달이 지나 병이 더욱 심해져 다시 불러 진찰하게 하였으나 여전히 앞 처방을 써 올렸다. 동궁은 성씨를 별실에 가둔 뒤 그 처방을 복용하게 하였다. 성씨 집안은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라 화를 면하지 못할까 걱정하였지만, 성씨는 태연하여 개의치 않는 듯하였다. 사흘 뒤 집안사람이 갑자기 문밖에서 길을 비키라는 소리가 요란한 것을 듣고 나가 보니, 성씨가 붉은 곤봉을 든 인도자를 앞세우고 후한 상을 받아 돌아온 것이었다. 물어보니 비가 약을 복용한 뒤 피 몇 말을 내보내고 병이 점차 회복되었다고 하였다. 이로써 병을 참되게 알면 약을 쓰는 데 끝내 의심과 두려움이 없음을 알 수 있으니, 성씨는 의술에서 양의라 하기에 부끄럽지 않다.
太素之脈析五運之微窮造化之理能決人富貴利達貧賤壽夭此無他至於理而止耳蓋人稟天地之氣以生故五行之氣隱於五臟通於六腑呼吸之間陰陽開合造化玄微靡不畢見嘗考太素諸書首重心脈心主也一身之動定係為凡人貴賤惟在輕清重濁其詞曰心脈分明緊秀洪自然祿位至三公清調三按俱無絕福壽縣綿紫誥隆蓋脈清則神清脈濁剛氣俗得先天氣厚放神旺氣充脈必明秀而無雜亂至貴也大抵男子以肝木巽位為主女子以肺金兌位為先清如玉之溫潤應指分明不沈不濡調調不絕濁則粗躁無神息數混雜按之不顯如撒乾砂此貴賤之所由分也然一脈分六部變應萬端其問陰陽聚散生克無窮義奧同於易理非真有宿慧者豈能參其機要哉
태소맥은 오운의 미묘함을 분석하고 조화의 이치를 궁구하여 사람의 부귀·이달·빈천·수요를 판단할 수 있다.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치의 극치에 이르는 것일 뿐이다. 사람은 천지의 기를 받아 태어나므로 오행의 기가 오장에 숨어 육부에 통하며, 호흡 사이 음양의 열고 닫힘과 조화의 현미함이 모두 드러난다. 일찍이 태소의 여러 책을 살펴보니 맨 먼저 심맥을 중시하였다. 심은 주재자여서 한 몸의 움직임과 고요함이 달려 있으며, 사람의 귀천은 오직 가볍고 맑음과 무겁고 탁함에 있다. 그 노래는 이러하다. ‘심맥이 분명하고 긴하며 빼어나고 홍하면 녹위가 자연히 삼공에 이른다. 맑고 조화로워 세 번 눌러도 끊어지지 않으면 복수는 길게 이어지고 자고가 높다.’ 맥이 맑으면 신이 맑고 맥이 탁하면 기가 속되다. 선천의 기를 두텁게 얻으면 신이 왕성하고 기가 충실하여 맥이 반드시 밝고 빼어나며 뒤섞이지 않으니 지극히 귀하다. 대체로 남자는 간목의 손위를 위주로 하고 여자는 폐금의 태위를 먼저 삼는다. 맑은 것은 옥처럼 온윤하여 손가락에 분명히 응하고 침하지도 유하지도 않으며 고르게 이어져 끊어지지 않는다. 탁한 것은 거칠고 조급하며 신이 없고 호흡의 수가 뒤섞이며, 눌러도 뚜렷하지 않아 마른 모래를 흩은 듯하다. 귀천이 이로 말미암아 나뉜다. 그러나 한 맥이 여섯 부위로 나뉘어 변화가 만 가지에 응하고, 그 사이 음양의 모이고 흩어짐과 생극이 끝없으며 뜻이 《역》의 이치처럼 깊으니, 참으로 타고난 지혜가 있는 이가 아니라면 어찌 그 요체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藜藿之軀不數服藥之故易於見功膏粱之體未病先藥既病而藥難取效常見富人染病一日數醫醫者爭奇冀得偶中方藥亂投致多誤事有挽顯者詩曰堂深入不知何病身貴醫爭試一方大紙富人病多誤於亂藥貧人病多誤於在循
거친 나물로 살아가는 몸은 약을 자주 복용하지 않으므로 효과를 보기 쉽다. 기름진 음식으로 살아가는 몸은 병들기 전부터 약을 쓰므로 막상 병들면 약이 효과를 내기 어렵다. 부자가 병들면 하루에 여러 의사를 부르고, 의사들은 기이함을 다투며 우연히 적중하기를 바라 처방과 약을 어지럽게 투여하여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음을 흔히 본다. 현달한 사람을 애도한 시에 ‘깊은 집안에 드니 무슨 병인지 알 수 없고, 귀한 몸이라 의사마다 한 처방을 시험하려 다툰다’고 하였다. 대체로 부자의 병은 어지러운 약 때문에 그르치고 가난한 사람의 병은 지체하고 답습하다가 그르친다.
昔人言病有六不治驕恣不論於理輕身重財衣食不適惡言形羸不肯服藥信巫不信醫六者有一則為難治余友沈子涵孝廉丁未春來滬嘗顧余齊見其神色哀奪間之曰去冬患咳至今未復耳按其脈左緊細傳指右關微澀余曰此屬陰分有虧木失水涵冬令失藏升降太過夏三月防有失血之患子涵曰尚能食飯兩碗固無懼余曰雖然還當安閒靜卷服藥調之曰藥補不如食補我有肥雞爛肉河川藥余遂不復言未幾航海入都果咳甚嘔血未及一年卒於京嗟乎是時尚可治因不信醫藥以致不救惜哉
옛사람은 병에 여섯 가지 치료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고 하였다. 교만하고 제멋대로여서 이치를 논하지 않는 것, 몸을 가볍게 여기고 재물을 중히 여기는 것, 의복과 음식이 적절하지 않은 것, 몸이 여윈다고 말하기를 싫어하는 것, 약을 복용하려 하지 않는 것, 무당을 믿고 의사를 믿지 않는 것이다. 이 여섯 가운데 하나라도 있으면 치료하기 어렵다. 내 친구 효렴 심자함이 정미년 봄 상해에 와서 내 서재를 찾았다. 신색이 쇠하고 빼앗긴 듯하여 물으니 ‘지난겨울 기침을 앓은 뒤 아직 회복되지 않았을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맥을 짚으니 왼쪽은 긴세하게 손가락에 전해지고 오른쪽 관맥은 조금 삽하였다. 나는 ‘이는 음분이 부족하고 목이 수의 함양을 잃은 것입니다. 겨울에 저장하지 못하여 승강이 지나쳤으니 여름 석 달에는 실혈을 조심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자함은 ‘아직 밥 두 사발을 먹을 수 있으니 본래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그래도 한가하고 고요하게 섭양하며 약으로 조절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는 ‘약보보다 식보가 낫습니다. 내게 살찐 닭과 푹 익힌 고기가 있으니 약을 무엇에 쓰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로 바다를 건너 서울에 갔는데, 과연 기침이 심해져 피를 토하고 일 년도 되지 않아 서울에서 죽었다. 아, 그때는 아직 치료할 수 있었는데 의약을 믿지 않아 구하지 못하였으니 애석하다.
眼科一症前人雖有五輪八廓七十二症之義然以余言之其要不過辨其陰陽虛實急則治標緩則治本耳東坡當曰輿歐陽叔弼晁無咎張文潛同在戒壇時坡公病目嘗以熱水洗之文潛曰目忌點洗目有病當存之齒有病當勞之不可同也魯直有言眼惡剔決齒便漱潔治目當如曹參之治民治齒當如商鞅之治軍期為得之餘謂此特以養目言也若火熱壅結赤腫腐爛翳膜遮蔽譬之鏡受汙垢必常磨洗非存養所能愈余少時常患目赤初不甚苦仍於燈下觀書以致腫極而生翳膜割剔數次始退然稍不避風其患立至目光因之大損後有友人傳一方於立冬日多竟野菊曬乾作枕自後得無目疾矣藏器曰勿使一日失穀氣蓋五穀得天地中和之氣能益人脾胃故以食為主也然有非餐霞服氣數十年不穀食而安然無恙者是亦奇矣余戚家一婦絕粒三十餘年日不過食菜疏半碟或果餌數枚其起居動作無異平時今年逾六旬猶能調羹縫紉此或胃氣使然故不治亦無害也吹影編云仲弟芝庭年十四得奇疾不食五穀聞氣則嘔家人陰進米汁乃氣逆欲絕時或長嘯以舒氣其聲如雷鳴日惟吃羊豕肉品食畢即飲冷茶三四甌暑月則飲水亦無腹滿作瀉之患有時連旬不食肉只食瓜果數枚而已飲酒勝常人體更肥胖精神倍於昔時娶妻生二子一女家人以為常亦不強其食也如是者十五六年一日忽思食麵食之頗安後遂能食而漸羸瘦不逾年而歿時蘇城吳正功我邑王協中皆得醫名吳診視莫名其症王則曰食掛然亦未詳其義余謂是或痰之為愚耳痰留胃院故不食不飢痰阻氣道故欲揚聲以舒之氣有餘即是火久之火盛風生痰亦為之消爍而體瘦能食前十餘年強力支持皆氣火為之用耳痰火雖消而氣極亦絕矣臆度如是未識然否存之以技君子
안과의 증에는 선인이 말한 오륜·팔곽·72증의 뜻이 있으나, 내 생각에 요체는 음양과 허실을 분별하여 급하면 표를 치료하고 완만하면 본을 치료하는 데 있을 뿐이다. 동파는 일찍이 구양숙필·조무구·장문잠과 계단에 함께 있을 때 눈병을 앓아 뜨거운 물로 씻곤 하였다. 문잠은 ‘눈은 약을 넣고 씻는 것을 꺼립니다. 눈에 병이 있으면 보존하여 쉬게 하고, 이에 병이 있으면 부지런히 써야 하니 같게 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노직은 ‘눈은 후벼 파는 것을 싫어하고 이는 양치하여 깨끗이 하는 것을 좋아한다. 눈 치료는 조참이 백성을 다스리듯 하고 이 치료는 상앙이 군대를 다스리듯 해야 한다’고 하였으니 뜻을 얻은 말이다. 나는 이는 다만 눈을 기르는 일에 관해 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화열이 막혀 맺히고 붉게 부어 헐며 예막이 가린 경우에는 거울이 때를 받으면 늘 닦아야 하듯이, 보존하여 기르기만 해서 나을 수 없다. 나는 젊을 때 눈이 자주 붉어졌다. 처음에는 별로 괴롭지 않아 여전히 등불 아래서 책을 보았더니 몹시 붓고 예막이 생겨 몇 차례 잘라 내고 벗긴 뒤에야 물러났다. 그러나 바람을 조금만 피하지 않아도 곧 병이 생겨 시력이 크게 손상되었다. 뒤에 친구가 한 처방을 전해 주어 입동날 들국화를 많이 거두어 볕에 말리고 베개를 만들었더니, 그 뒤 눈병이 없게 되었다. 장기가 ‘하루라도 곡기를 잃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오곡은 천지의 중화한 기를 얻어 사람의 비위에 도움이 되므로 음식을 위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을을 먹고 기를 마시는 것도 아닌데 수십 년 동안 곡식을 먹지 않고도 편안히 병 없이 사는 사람이 있으니 이것도 기이하다. 내 친척 집의 한 부인은 곡식을 끊은 지 30여 년으로, 하루에 채소 반 접시나 과일 몇 개를 먹을 뿐이나 기거와 동작이 평상시와 다르지 않다. 올해 예순이 넘었어도 여전히 국을 끓이고 바느질하니, 혹 위기가 그렇게 만든 것이므로 치료하지 않아도 해가 없는 것이다. 《취영편》에서 말하였다. ‘둘째 아우 지정은 열네 살에 기이한 병을 얻어 오곡을 먹지 못하고 냄새만 맡아도 토하였다. 집안사람이 몰래 쌀즙을 먹이자 기가 거슬러 끊어지려 하였다. 때때로 길게 외쳐 기를 폈는데 소리가 우레 같았다. 날마다 양고기와 돼지고기만 먹고 식후에는 곧 찬 차 서너 사발을 마셨으며, 여름에는 물을 마셔도 배가 그득하거나 설사하지 않았다. 때로 열흘씩 고기를 먹지 않고 과일 몇 개만 먹기도 하였다. 술은 보통 사람보다 잘 마시고 몸은 더 살찌며 정신도 전보다 배가 좋았다. 아내를 맞아 두 아들과 한 딸을 낳았고, 집안사람도 보통 일로 여겨 억지로 먹이지 않았다. 이처럼 15~16년 지내다가 하루는 갑자기 밀가루 음식을 생각하여 먹었는데 꽤 편안하였다. 그 뒤 음식을 먹게 되자 점차 여위어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죽었다. 그때 소성의 오정공과 우리 고을 왕협중은 모두 의술로 이름났는데, 오씨는 진찰하고도 증의 이름을 알지 못하였고 왕씨는 식괘라고만 하여 뜻을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나는 혹 담이 탈을 일으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담이 위완에 머물러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고, 담이 기도를 막으므로 소리를 높여 펴려 하였다. 기가 남는 것이 곧 화이니 오래되어 화가 성하고 풍이 생기면 담도 녹아 없어져 몸이 여위면서 먹을 수 있게 된다. 앞의 십여 년을 힘써 지탱한 것은 모두 기와 화가 작용하였을 뿐이며, 담과 화가 없어져도 기가 극에 이르면 역시 끊어진다. 억측은 이와 같으나 옳은지 모르므로 남겨 두어 군자에게 질정하고자 한다.
醫以意取非可言傅每有病情相似而藥有驗不驗者此常深究其理也嘗閱南唐書載烈祖食飴喉中噎國醫莫能愈吳廷紹請進楮實湯一服而安群醫他日取用皆不效扣廷紹但言噎因甘起故以此治之李時珍曰楮實久服使入骨軟故能治骨哽此亦軟堅之義也余調飴味過甘而能動火生痰食飴致噎差為痰火所阻楮實性寒而利故得開其壅滯此吳深求勉勝之理故作取驗豈一味楮實而可通治噎患哉群醫之味亦可概見矣
의술은 뜻으로 취하는 것이어서 말로 전하기 어렵다. 병정이 비슷한데 약이 효험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가 있으니, 그 이치를 깊이 탐구해야 한다. 일찍이 《남당서》를 보니 열조가 엿을 먹고 목이 막혔으나 국의들이 낫게 하지 못하였다. 오정소가 저실탕을 올리게 해 달라고 하여 한 번 복용하자 편안해졌다. 여러 의사가 나중에 가져다 썼으나 모두 효과가 없었다. 정소에게 물으니 ‘목이 막힌 것이 단맛에서 일어났으므로 이것으로 치료하였다’고만 하였다. 이시진은 ‘저실을 오래 복용하면 사람의 뼈가 연해지므로 뼈가 목에 걸린 것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이것도 단단한 것을 부드럽게 하는 뜻이다. 나는 엿맛이 지나치게 달아 화를 움직이고 담을 생기게 하므로, 엿을 먹어 목이 막힌 것은 담화가 막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실의 성질은 차고 잘 통하게 하므로 그 막힌 적체를 열 수 있었다. 이는 오씨가 서로 이기는 이치를 깊이 구하여 효험을 얻은 것이니, 어찌 저실 한 가지가 모든 열격을 두루 치료하겠는가? 여러 의사의 어두움도 대강 엿볼 수 있다.
南方卑濕民苦濕熱每當春令必陰雨連綿入夏叨暑熱聚降地氣上蒸人感之人秋不病濕溫即患瘧痢蓋初感雖微而濕久則成熱熱久又能化濕昔人言濕熱交互如面入酥乃言最難分理也余於夏秋每患濕病入冬始愈故會有淹倒微軀夏復秋病因暑濕最淹流方書屢檢翻滋感藥性多偏未易投之句亦言其淹纏難治耳蕪湖徐紹裘傳一方秋半清曉於殘荷葉上收清露以鮮佩蘭葉浸二日去葉取露磁瓶貯之動固明年人夏晨起服一二茶匙常食薏苡粥可除此患試之果驗
남방은 낮고 습하여 백성이 습열로 고생한다. 봄이면 반드시 흐리고 비가 이어지며, 여름에 들어 서열이 모여 내려오고 지기가 위로 찌므로 사람이 이를 감수하면 가을에 습온이 아니면 학질과 이질을 앓는다. 처음 감수한 것이 비록 미약해도 습이 오래되면 열이 되고, 열이 오래되면 다시 습으로 변할 수 있다. 옛사람이 습열이 서로 섞이는 것은 밀가루가 연유에 들어간 것과 같다고 하였으니, 나누어 다스리기가 가장 어렵다는 말이다. 나는 여름과 가을마다 습병을 앓아 겨울에 들어서야 나았으므로, 일찍이 ‘작은 몸을 여름부터 가을까지 눕히니, 병은 서습 때문에 가장 오래 머문다. 방서를 거듭 들춰 볼수록 오히려 감회가 더하니, 약성은 치우침이 많아 쉽게 투여하기 어렵다’는 구절을 지었다. 역시 오래 얽혀 치료하기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무호의 서소구가 한 처방을 전하였다. 가을 중반의 맑은 새벽에 시든 연잎 위의 맑은 이슬을 거두어 생패란 잎을 이틀 담근 뒤 잎을 버리고, 이슬을 자기병에 담아 단단히 막는다. 이듬해 여름에 아침마다 한두 찻숟가락씩 복용하고 늘 의이인죽을 먹으면 이 병을 없앨 수 있다고 하였다. 시험하니 과연 효험이 있었다.
古方有藥只一味者名曰單方蓋取其力專而效速也用之往往有奇驗金陵買入莫麓春避岳來滬就居城南與余居在有子七齡好食瓜果因患腹痛日夜號哭肌肉盡削一日有行腳僧過其門見之曰此孩腹有蟲今尚可再延一月即不救居士肯舍香金五百常為療之莫即首肯僧於囊中出藥草一束令煎服是晚瀉出白蟲升許腹痛遂止莫乃以所餘草一莖袖來問余視之粗如筆管折之則不斷葉疏而色紅余曰得非本草所謂赤藤者乎綱目謂其能殺蟲而狀亦相似並引夷堅志所載趙子山寸白蟲病醫令戒酒趙不能禁一日醉歸夜已牛口渴甚見廡下甕水頗清即連飲數酌而寢迨曉見蟲出盈席心腹頓寬異之視所飲水乃僕浸赤藤以織草履者他以古證今其說皆合特吳中素無此草未嘗見其苗葉亦不敢言其必然也
옛 처방 가운데 약이 한 가지뿐인 것을 단방이라고 하니, 힘이 집중되어 효과가 빠름을 취한 것이다. 쓰면 종종 기이한 효험이 있다. 금릉의 상인 막록춘이 재난을 피해 상해에 와 성남에 머물러 나와 가까이 살았다. 일곱 살 아들이 과일을 즐겨 먹다가 복통을 앓아 밤낮으로 울부짖고 살이 모두 빠졌다. 하루는 떠돌이 승려가 문을 지나다 보고 ‘이 아이 배 속에는 벌레가 있습니다. 지금은 아직 괜찮지만 한 달 더 지체하면 구할 수 없습니다. 거사께서 향금 500을 내놓으시겠다면 치료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막씨가 곧 승낙하자 승려가 주머니에서 약초 한 묶음을 꺼내 달여 복용하게 하였다. 그날 저녁 흰 벌레 한 되쯤을 설사로 내보내고 복통이 멎었다. 막씨가 남은 약초 한 줄기를 소매에 넣어 와 나에게 물었다. 보니 굵기가 붓대 같고 꺾어도 끊어지지 않았으며 잎이 성기고 빛이 붉었다. 나는 ‘본초에서 말한 적등이 아닐까요? 《강목》에 벌레를 죽일 수 있다고 하였고 모양도 비슷합니다’라고 하였다. 아울러 《이견지》에 실린 조자산의 촌백충 이야기를 들었다. 의사가 술을 끊게 하였으나 조씨는 참지 못하였다. 하루는 취해 돌아오니 밤이 이미 한밤중이었고 몹시 목말랐다. 처마 아래 항아리의 물이 꽤 맑아 몇 잔 연이어 마시고 잤는데, 새벽에 벌레가 나와 자리 가득한 것을 보고 가슴과 배가 갑자기 시원해졌다. 이상히 여겨 마신 물을 살피니 하인이 짚신을 삼으려고 적등을 담가 둔 물이었다. 옛일로 지금을 증명하면 이야기가 모두 맞지만, 오중에는 평소 이 풀이 없어 그 싹과 잎을 본 적이 없으므로 반드시 그렇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다.
病非習見自古醫書所不載往往於雜說中得之時或有驗邑有剃髮丁孫某於肉汁中誤吞短髮初不為意年餘覺胸次隱痛甚則肢體厥冷孫嚐出入余家求余診治按脈兩手俱平靜自言二便飲食如常繃視患處皮色無少異餘日汝非營衛間病因詢其平日好食何物曰無所好又問會食異常之物否曰無之惟於二年前會誤吞短髮余曰病在是矣因令飲菜油連進四五杯乃大吐遂出短黑蟲無數似發略粗人水能動浸二日仍化為發病遂愈或問油能殺蟲乎曰惟取以探吐且無骨之蟲見油即伏故得隨吐而出然非無本談藪所載失明帝官人患腰痛牽心發即氣絕群醫以為肉症全文伯曰此發瘕也以油灌之吐物如發稍稍引之長三尺頭已成蛇懸柱上水滴盡仍一發也偶憶是說因以試之不意果驗
병이 흔히 보던 것이 아니고 옛 의서에도 실려 있지 않으면 종종 잡설 가운데서 방법을 얻어 때로 효험을 보기도 한다. 고을의 이발사 손씨가 고깃국 속의 짧은 머리카락을 잘못 삼켰으나 처음에는 개의치 않았다. 일 년 남짓 뒤 가슴이 은근히 아프고 심하면 팔다리가 싸늘해졌다. 손씨는 평소 우리 집에 드나들었으므로 나에게 진찰과 치료를 청하였다. 맥을 짚으니 양손이 모두 평정하였고, 대소변과 음식은 평상시와 같다고 하였다. 옷을 벌려 환부를 보아도 피부빛에 조금도 이상이 없었다. 나는 ‘이는 영위 사이의 병이 아닙니다’라고 하고 평소 무엇을 즐겨 먹는지 물었으나 좋아하는 것은 없다고 하였다. 비상한 물건을 먹은 적이 있느냐고 다시 묻자 ‘없습니다. 다만 이 년 전에 짧은 머리카락을 잘못 삼킨 적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병은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하고 채유를 마시게 하였다. 연이어 네다섯 잔을 마시자 크게 토하여 짧고 검은 벌레가 무수히 나왔다. 머리카락과 비슷하나 조금 굵고 물에 넣으면 움직였으며, 이틀 담가 두니 다시 머리카락이 되었고 병이 나았다. 어떤 이가 기름이 벌레를 죽일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오직 토하게 하는 데 썼으며, 뼈 없는 벌레는 기름을 만나면 엎드리므로 토하는 대로 나올 수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담수》에 실린 이야기에, 명제의 궁인이 요통이 심까지 당기고 발하면 곧 기가 끊어지므로 여러 의사가 육증으로 여겼다. 전문백이 ‘이는 발가입니다’라고 하고 기름을 부어 먹이자 머리카락 같은 물건을 토하였다. 조금씩 당기니 길이가 3척이고 머리는 이미 뱀이 되었는데, 기둥에 걸어 물이 다 떨어지자 다시 머리카락 하나였다. 우연히 이 이야기를 기억하여 시험하였더니 뜻밖에도 과연 효험이 있었다.
人常年衰齒牙搖動欲脫或在壯歲為風火所侵因而作痛者最難禁受余中年多齒患偶閱玉壺清話有固齒鳥髭藥歌試之果驗特錄於此歌曰豬牙皂角及生薑西國升麻蜀地黃本律旱蓮塊角子細辛荷葉要相當青鹽等分同燒煆研細將來使最良揩齒牢牙髭鬢黑誰知世上有仙方並云方得諸西嶽蓮花峰頂張師正年五十時齒已疏搖不便咀嚼既得此方匡臠大胾利如刀截而搖者復固矣此方授僧文瑩時僧齒亦卮如懸蒂試之輒復固遂傳於世云古之醫士能破脅取症割肢療毒盤斷能續骨斷能接今世雖罕見然能遍其技者宇內猶有其人不過得傳者少而遇之難耳昔武林舍範氏之藏松閣主人有子才六齡墮樓折脛編召醫人咸為束手有新安鄭某自言能治令取牛筋劈細揉熟如絲以續斷骨出藥未少許散骨上以雞皮封之兩月能起立經年平復余嘗詢且技之所授云有祖傳抄本書數十頁皆傷科秘然燃其藥草非肆中所有人山採取往往終歲不得倘得此藥便可接骨惟損及臟腑則不能抬矣嘗閱翼駉稗編載蔣紫真精於醫武進周某其母劚筍傾跌竹鋒入腹腸已國求治於蔣曰創雖可治十年後當有異疾遂出藥敷腸以線縫紉納腹中研藥一丸令服夜半而蘇一月創合後八年乃已死或問十年後如何曰續處必生肉簟飲食溶滓卻從此出耳觀此雖臟腑之捐亦可治也
사람이 늙어 이가 흔들려 빠지려 하거나, 젊어서 풍화가 침범하여 아픈 경우에는 참기 가장 어렵다. 나는 중년에 치아병이 많았는데 우연히 《옥호청화》에서 이를 굳히고 수염을 검게 하는 약가를 보고 시험하니 과연 효험이 있어 특별히 여기에 적는다. 노래는 이러하다. ‘저아조각과 생강, 서국의 승마와 촉의 지황, 본율·한련·괴각자, 세신과 연잎을 서로 같게 하라. 청염도 같은 분량으로 함께 태우고 달구어 곱게 갈아 쓰면 가장 좋다. 이를 문질러 치아를 튼튼하게 하고 수염과 귀밑머리를 검게 하니, 세상에 신선의 처방이 있음을 누가 알겠는가?’ 또 이 처방을 서악 연화봉 꼭대기의 장사정에게서 얻었다고 하였다. 그가 쉰 살에 이가 이미 성기고 흔들려 씹기 불편하였으나, 이 처방을 얻은 뒤 큰 고깃덩이를 씹어도 칼로 자르듯 잘 끊어지고 흔들리던 이가 다시 굳어졌다. 승려 문영에게 이 처방을 전할 때 문영의 이도 꼭지에 매달린 듯 위태로웠으나 시험하자 곧 다시 굳어져 세상에 전해졌다고 한다. 옛 의사는 옆구리를 갈라 적을 꺼내고 팔다리를 잘라 독을 치료하며, 끊어진 근과 뼈를 이을 수 있었다. 지금은 드물게 보이지만 그 기술을 통달한 사람이 세상에 아직 있으며, 전수받는 사람이 적고 만나기 어려울 뿐이다. 옛날 무림의 범씨 장송각 주인에게 겨우 여섯 살 된 아들이 있었는데 누각에서 떨어져 정강이가 부러졌다. 의사들을 두루 불렀으나 모두 손을 놓았다. 신안의 정씨가 치료할 수 있다고 하며 소의 힘줄을 가늘게 쪼개 실처럼 부드럽게 비벼 끊어진 뼈를 잇고, 약가루를 조금 뼈 위에 뿌린 뒤 닭 껍질로 봉하였다. 두 달 뒤 일어나 설 수 있었고 일 년 지나 회복되었다. 내가 기술을 어디서 배웠는지 물으니 조상에게서 전해 온 수십 쪽의 필사본이 모두 상과 비방이라고 하였다. 다만 그 약초는 약방에 없어서 산에 들어가 채취해야 하며 종종 일 년 내내 얻지 못하기도 한다. 약을 얻기만 하면 접골할 수 있지만 장부까지 손상되었으면 치료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일찍이 《익경패편》을 보니 장자진은 의술에 정통하였다. 무진 주씨의 어머니가 죽순을 캐다 넘어져 뾰족한 대나무가 배에 들어가 장이 이미 나왔으므로 장씨에게 치료를 구하였다. 장씨는 ‘상처는 치료할 수 있으나 십 년 뒤에는 기이한 병이 생길 것입니다’라고 하고 약을 내어 장에 바르고 실로 꿰맨 뒤 배 안에 넣었다. 약 한 환을 갈아 복용시키자 한밤중에 깨어났고 한 달 만에 상처가 아물었다. 여덟 해 뒤에는 이미 죽었다. 어떤 이가 십 년 뒤에 어떻게 되는지 물으니, ‘이은 곳에 반드시 육점이 생겨 음식의 녹은 찌꺼기가 도리어 여기로 나올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를 보면 장부의 손상도 치료할 수 있다.
失血之症弱年易犯而治之頗難繆仲淳言兒要有三一宜行不宜止行則血循經絡不止自止止則血凝發熱病日痼矣二宜養肝不宜伐肝蓋血藏於肝吐則肝失其職故惟養上使氣平而血有所婦伐則虛不能藏血愈不止也三宜埋氣不宜降火氣有餘即是火氣順則火降血隨氣行自不溢出若欲降火必用寒涼致傷脾胃脾氣既傷尚能統血而安絡乎期論甚明學者大可於此取則昔人言凡治血症服寒涼藥十無一生服童便百無一死因能降火滋陰消瘀甚速也余謂欽童便不如飲自便為佳既可隨便飲使不失真氣目得因之食淡而遠辛鹹夫淡食亦生新之一助也醫者意也能知變而後能使草木每見同是一方成分兩有差或少加一引有驗不驗之異者蓋藥之輕重必諒其病之淺深使適達患所過不及則不驗若天一引之加似無關係然如千里行軍不可無鄉導也宋徽宗夏月食冰遂病脾泄國醫進藥未效召楊介診之介用大理中丸帝曰服之屢矣介曰病因食冰臣以冰煎猶是治受病之原也服之果愈此正經言必伏其所主而先其所因其始則同其終則異矣
실혈증은 젊은 나이에 걸리기 쉽고 치료가 꽤 어렵다. 무중순은 요체가 셋이라고 하였다. 첫째, 운행시켜야 하고 멎게 해서는 안 된다. 운행하면 혈이 경락을 따라 멎게 하지 않아도 스스로 멎지만, 억지로 멎게 하면 혈이 엉겨 열이 나고 병이 날로 고질화된다. 둘째, 간을 길러야 하고 간을 공벌해서는 안 된다. 혈은 간에 저장되며 토혈은 간이 직분을 잃은 것이므로, 길러 주어 기를 평정시키고 혈이 돌아갈 곳이 있게 해야 한다. 공벌하면 허하여 저장하지 못하므로 혈이 더욱 멎지 않는다. 셋째, 기를 다스려야 하고 화를 내려서는 안 된다. 기가 남는 것이 곧 화이므로 기가 순조로우면 화가 내려가고 혈도 기를 따라 운행하여 넘쳐나지 않는다. 화를 내리려 하면 반드시 한량약을 써 비위를 손상시키니, 비기가 이미 손상되면 어찌 혈을 통솔하고 낙맥을 안정시키겠는가? 논의가 매우 분명하여 배우는 이가 크게 본받을 만하다. 옛사람은 혈증을 치료할 때 한량약을 복용하면 열에 하나도 살지 못하고 동변을 복용하면 백에 하나도 죽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화를 내리고 음을 자양하며 어혈을 없애는 것이 매우 빠르기 때문이다. 나는 동변보다 자기 소변을 마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언제든 마실 수 있어 진기를 잃지 않을 뿐 아니라 이 때문에 음식을 담백하게 먹고 맵고 짠 것을 멀리할 수 있다. 담백한 음식 역시 새것을 생기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의술은 뜻이다. 변화를 알아야 초목을 부릴 수 있다. 같은 처방이라도 분량이 다르거나 약인을 조금 더하면 효험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을 자주 본다. 약의 경중은 반드시 병의 깊고 얕음을 헤아려 환부에 알맞게 이르게 해야 하니,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면 효험이 없다. 약인 하나를 더하는 것은 관계없어 보이지만 천 리를 행군하는 군대에 길잡이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송 휘종이 여름에 얼음을 먹고 비사를 앓아 국의가 약을 올려도 효과가 없으므로 양개를 불러 진찰하게 하였다. 양개가 대이중환을 쓰자 황제는 이미 여러 번 복용했다고 하였다. 양개는 ‘병이 얼음을 먹어서 생겼으므로 신은 얼음으로 달였습니다. 역시 병을 받은 근원을 치료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복용하니 과연 나았다. 이는 경에서 반드시 주관하는 것을 억제하고 그 원인을 먼저 하라고 한 것이니, 시작은 같아도 끝은 달랐다.
用藥惟憑氣味以扶偏制勝乃今藥肆所售竟有形似而實非者黴爛而氣味全失者倘非常品必親嘗而後用之蓋投藥如遣將若未知其人之性情賢否而任之鮮不僨事憶昔在鄉近鎮有王某病火腑秘結便肌有五十餘日余用更衣丸以未效而疑之幸病家細心服時留取數粒以示余嘗之味甚甘駭曰是丸僅用蘆薈硃砂二味取其苦滑重鎮今味反甘乃偽耳因書方令自合一服即通知鄉間藥肆其不可靠有如此者昔人言川藥有三忌謂從未經驗臭穢猛毒氣味異常也知此三者庶可驅使草木耳
약을 쓰는 것은 오직 기미에 의지하여 치우침을 돕고 제어하여 이기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약방에서 파는 것에는 모양만 비슷하고 실제로는 다른 것이 있고, 곰팡이가 피고 썩어 기미를 완전히 잃은 것이 있다. 보통 약재가 아니라면 반드시 직접 맛본 뒤에 써야 한다. 약을 투여하는 것은 장수를 보내는 것과 같아, 그 사람의 성정과 어질고 어질지 못함을 모른 채 맡기면 일을 망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옛날 고향에 있을 때 가까운 마을의 왕씨가 화로 장부가 막히는 병을 앓아 50여 일 동안 변이 막혔다. 내가 경의환을 썼으나 효과가 없어 의심하였는데, 다행히 환자 집안이 세심하여 복용할 때 몇 알을 남겨 나에게 보였다. 맛을 보니 매우 달아서 놀라 말하였다. ‘이 환은 노회와 주사 두 약만으로 그 쓰고 미끄러우며 무겁게 진정시키는 성질을 취한 것인데, 지금 도리어 달다면 가짜입니다.’ 이에 처방을 써 주어 직접 합하게 하니 한 번 복용하고 곧 통하였다. 시골 약방을 믿을 수 없음이 이와 같음을 알 수 있다. 옛사람이 약을 쓰는 데 세 금기가 있다고 하였으니,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것, 냄새가 더럽고 독성이 맹렬한 것, 기미가 비상한 것이다. 이 셋을 알아야 초목을 부릴 수 있을 것이다.
無為程生夏月露坐夜既深覺小腹重滯而微痛久則如有物攻群醫莫名其症近村有老儒能醫而不名程延以診視乃令市諸藥料以次熏腹至雄黃而腹嗚如雷曰此蛇臌也是必坐處有蛇窟夜深將出觸其所吐之氣致成此疾經歲腹膨如鼓至臍中出水則不可救矣遂以雄黃和酒令飲閱三日頓瀉綠水斗余而愈按本草載雷丸之治應聲蟲與此相類蓋物必有制因其畏而投之故能取效法雖異理自一也
무위의 정생이 여름에 한데 앉아 있다가 밤이 깊자 아랫배가 무겁고 막히며 조금 아픈 것을 느꼈다. 오래되니 어떤 물건이 공격하는 듯하였으나 여러 의사는 증의 이름을 알지 못하였다. 가까운 마을에 의술을 알지만 이름나지 않은 늙은 유생이 있어 정생이 불러 진찰하게 하였다. 그는 여러 약재를 사서 차례로 배를 훈증하게 하였는데 웅황에 이르자 배에서 우레 같은 소리가 났다. ‘이는 사고입니다. 반드시 앉았던 곳에 뱀굴이 있어 밤이 깊어 뱀이 나오려 할 때 내뿜는 기에 닿아 이 병이 된 것입니다. 해가 지나 배가 북처럼 부풀고 배꼽에서 물이 나오면 구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어 웅황을 술에 섞어 마시게 하자 사흘 뒤 갑자기 녹색 물 한 말 남짓을 설사하고 나았다. 살펴보면 본초에 실린 뇌환으로 응성충을 치료하는 것이 이와 비슷하다. 만물에는 반드시 제어하는 것이 있으므로 그 두려워하는 것을 투여하여 효과를 얻는 것이다. 법은 달라도 이치는 본래 하나이다.
世俗有云若要小兒安須帶三分飢與寒蓋言衣絮弗使過暖飲食弗令過飽庶無蘊熱停滯之患是亦保嬰之一法也凡襁褓之兒內症多痰火外感多風熱每患口舌腫毒投以辛涼化毒自安近有推驚婆子指為螳螂子言過一周即不治每用利刀剔兒兩頤以出血塊是惟江浙有之而吳中為甚他處未聞有此患也然孩提之子肌膚嬌薄即欲稍泄風熱以針略剌猶可切勿用割裂以傷血絡致不能乳食可不慎歟也言以醋泥塗火燒瘡取驗最速其言恰非無本蓋北夢瑣言中載孫光憲家人方作煎餅一婢抱兒旁玩失手落兒火上遽以酷泥塗之至晚即愈並無瘢痕可見當時已有此說故能應手取效然則世俗相傳固不厭多聞也
세속에 ‘어린아이를 편안하게 하려면 세 푼쯤 배고프고 차게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솜옷을 지나치게 따뜻하게 하지 않고 음식을 지나치게 배불리 먹이지 않아야 열이 쌓이고 음식이 정체되는 걱정이 없다는 뜻이니, 이것도 아이를 보호하는 한 방법이다. 포대기에 싸인 아이의 내증에는 담화가 많고 외감에는 풍열이 많다. 입과 혀에 종독이 생기는 경우에는 맵고 서늘한 약으로 독을 풀면 저절로 편안해진다. 근래에는 경풍을 밀어 다스린다는 노파가 이를 당랑자라고 지목하여 한 돌을 지나면 치료할 수 없다고 하며, 날카로운 칼로 아이의 양쪽 볼을 도려내 핏덩이를 꺼내곤 한다. 이는 강소와 절강에만 있고 오중이 특히 심하며, 다른 곳에서는 이런 병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피부는 여리고 얇으니, 풍열을 조금 내보내려 해도 침으로 가볍게 찌르는 정도라야 괜찮을 수 있다. 절대로 칼로 베고 갈라 혈락을 손상하여 젖과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되니 어찌 조심하지 않겠는가? 또 식초로 갠 진흙을 화상에 바르면 효험이 가장 빠르다고 하니, 그 말에도 근거가 없지 않다. 《북몽쇄언》에 실린 이야기에 따르면 손광헌의 집안사람들이 전병을 만들 때 한 계집종이 아이를 안고 곁에서 놀다가 손을 놓쳐 아이를 불 위에 떨어뜨렸다. 급히 식초 진흙을 바르자 저녁에 곧 나았고 흉터도 없었다. 당시에도 이미 이 말이 있었으므로 손을 대자마자 효과를 얻을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세속에 전하는 말도 많이 듣는 것을 싫어해서는 안 된다.
桐城俞澹香言其族子昔患水脹腹膨如鼓漸至手足面目皆腫危殆已甚自問無生理一日閒鄰家蔥煎豆腐甚香思食之因自煮一碟食頗快口而小便覺爽遂連食數日溺更大通腫漸消腹亦慚小不半月而病愈俞謂水蠱重症而以蔥腐獲痊殊不可解余曰凡人感疾皆由氣味相觸內阻流行之機感時雖微久能致病惟遇氣味相投之物一動其機雖痼疾亦可或瘦如內經三言臨病人間所例即是此理非臆說也
동성의 유담향이 말하였다. 그 일가의 아들이 옛날 수창을 앓아 배가 북처럼 부풀고 점차 손발과 얼굴, 눈까지 모두 부어 매우 위태로웠다. 스스로 살 이치가 없다고 여겼는데, 하루는 이웃집에서 파로 두부를 지지는 냄새가 몹시 향긋하여 먹고 싶어졌다. 스스로 한 접시를 익혀 먹으니 입에 매우 맞고 소변이 시원해졌다. 며칠 연이어 먹자 소변이 더욱 잘 통하고 부종이 점차 사라지며 배도 작아져 보름이 되지 않아 나았다. 유씨는 수고라는 중증이 파와 두부로 나은 것은 매우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나는 ‘사람이 병을 얻는 것은 모두 기미가 서로 부딪혀 안에서 운행의 기전을 막기 때문입니다. 감수할 때에는 비록 미약하더라도 오래되면 병이 될 수 있습니다. 기미가 서로 맞는 물건을 만나 그 기전을 한 번 움직이면 고질병도 혹 나을 수 있습니다. 《내경》에서 환자에게 임하여 좋아하는 것을 물으라고 한 것도 이 이치이니 억측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吐衄諸血症今人每宗仲景瀉心法不知其所謂瀉心者實瀉手厥陰足厥陰太陰陽明四經之邪火有餘也大黃峻利之品用得其宜取效固捷若施之體弱之人禍可立待梁武帝時姚僧坦以醫擅名值帝病熱欲服大黃姚言至尊年高不可輕用快藥帝不從幾殆其後元帝得心疾群醫擬進補心之品姚言脈洪而實蓋有宿妨非大黃不瘥劑進立愈觀此知大黃之用必有把握未可混施
토혈과 코피 등 여러 혈증에 요즘 사람은 중경의 사심법을 종주로 삼곤 한다. 그러나 이른바 사심은 실제로 수궐음·족궐음·태음·양명 네 경에서 남아도는 사화를 사하는 것임을 모른다. 대황은 준하게 소통시키는 약이므로 알맞게 쓰면 효과가 빠르지만, 몸이 약한 사람에게 쓰면 재앙이 곧 닥칠 수 있다. 양 무제 때 요승탄이 의술로 이름났는데, 황제가 열병을 앓아 대황을 복용하려 하자 ‘지존께서는 연세가 높으니 빠르게 내리는 약을 가볍게 써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황제가 따르지 않아 거의 위태로워졌다. 뒤에 원제가 심병을 얻자 여러 의사는 보심약을 올리려 하였으나, 요씨는 ‘맥이 홍실하니 오래된 장애가 있어 대황이 아니면 낫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약제를 올리자 곧 나았다. 이를 보면 대황을 쓸 때에는 반드시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 하며 함부로 뒤섞어 써서는 안 됨을 알 수 있다.
華亭費秋谷母驟腹痛頻危者再聞天馬山有道人能醫乃親往延治途遇一老翁同憩於亭間何適費以延醫對翁於囊中出一方曰此孫思邈所得龍宮方也服之當有效費於匆迫問不辨何藥即市歸進母一服而愈後以方示人蓋即千金方溫脾湯也是方寒熱並用補瀉兼施信非凡手所能定按唐假成式酉陽雜俎邈嘗隱居終南時逢大旱有西域僧奏請於昆明池結壇祈雨凡七日池水驟縮忽有老人夜詣思邈室曰弟子昆明池龍也今胡僧利弟子腦詭言祈雨實欲殺我望先生憐而救之孫曰余知昆明龍宮有仙方三十首爾授我將救汝老人曰此方上帝不許妄傳今事急何敢吝孫得方遂則撰三十卷每捲入方致世莫辦老翁所授蓋即真方也
화정의 비추곡 어머니가 갑자기 복통으로 두 번이나 위태로워졌다. 천마산에 의술을 아는 도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 비씨가 직접 모시러 갔다. 길에서 한 노인을 만나 정자에서 함께 쉬었는데, 노인이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 의사를 모시러 간다고 대답하였다. 노인이 주머니에서 처방 하나를 꺼내며 ‘이것은 손사막이 용궁에서 얻은 처방이니 복용하면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비씨는 급박한 중이라 무슨 약인지 분별하지 못한 채 사서 돌아가 어머니에게 올렸고, 한 번 복용하여 나았다. 뒤에 처방을 남에게 보이니 곧 《천금방》의 온비탕이었다. 이 처방은 한열을 함께 쓰고 보사를 겸하여 시행하니 참으로 보통 솜씨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 단성식의 《유양잡조》를 살펴보면, 사막이 종남산에 은거할 때 큰 가뭄이 들자 서역의 승려가 곤명지에 단을 쌓고 비를 빌겠다고 아뢰었다. 이레가 지나 못물이 갑자기 줄었는데, 어떤 노인이 밤에 사막의 방을 찾아와 말하였다. ‘저는 곤명지의 용입니다. 지금 호승이 제 뇌를 탐하여 비를 빈다고 속이고 실은 저를 죽이려 합니다. 선생께서 불쌍히 여기고 구해 주십시오.’ 손씨는 ‘곤명 용궁에 신선의 처방 30수가 있다고 아는데, 내게 전해 주면 구해 주겠다’고 하였다. 노인은 ‘이 처방은 상제가 함부로 전하지 못하게 하셨으나 지금 일이 급하니 어찌 아끼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손씨는 처방을 얻고 곧 30권을 편찬하면서 각 권에 처방을 넣어 세상에서 분별하지 못하게 하였다. 노인이 전해 준 것이 바로 진짜 처방이었던 것이다.
醫學十三科惟針科效最速然非精其技者不可輕試經云形氣不足陰陽俱虛刺剛重傷其陰陽老者絕滅壯者不復矣柬垣曰脈浮數而發熱咽乾舌赤時作渴者熱在外也灸則災害立至據此知虛寒忌針實熱忌灸未明虛實者針與灸豈可妄施哉唐狄梁公性嫺醫藥尤精針術顯慶中應制入關路出華州闠闤之北稠人廣眾聚觀如堵梁公引轡遙望有巨牌大書能療此疾酬絹干疋就觀之有兒年可十四五臥牌下鼻端生贅大如拳石根蒂綴鼻才如食筋或觸之痠痛刻骨雙目為贅所繩目睛翻白痛極欲絕公惻然久之乃吾能為也其父曰汝親屬叩顙祈請公令扶病者起即於腦後下針寸許乃詢針氣已達痛所乎病人頷之公遽出針疣贅應手而落病頓矢其家人且泣且拜遂奉縑物公笑曰吾哀爾命之危非鬻技也不顧而去然行針之法必達乎陰陽分別穴道倘失亳釐則差以千里如公者始可行其技矣
의학의 13과 가운데 침과의 효험이 가장 빠르지만, 기술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면 가볍게 시험해서는 안 된다. 경에서 ‘형기가 부족하고 음양이 모두 허한데 침을 놓으면 음양을 거듭 손상하므로 늙은 사람은 끊어져 없어지고 젊은 사람도 회복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동원이 ‘맥이 부삭하고 열이 나며 목이 마르고 혀가 붉고 때때로 갈증이 생기는 것은 열이 밖에 있는 것이니, 뜸을 뜨면 재해가 곧 닥친다’고 하였다. 이에 근거하면 허한에는 침을 꺼리고 실열에는 뜸을 꺼림을 알 수 있으니, 허실을 밝히지 못한 사람이 침과 뜸을 어찌 함부로 시행하겠는가? 당의 적량공은 본래 의약에 익숙하고 특히 침술에 정통하였다. 현경 연간에 부름을 받아 관중으로 들어가다가 화주의 시장 북쪽을 지나는데, 많은 사람이 담장처럼 모여 구경하였다. 양공이 고삐를 당겨 멀리 보니 큰 팻말에 ‘이 병을 치료하면 비단 천 필로 사례한다’고 쓰여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열네다섯 살쯤 된 아이가 팻말 아래 누워 있었고, 코끝에 주먹만 한 돌처럼 큰 혹이 생겼으며 코에 붙은 뿌리는 젓가락만 하였다. 건드리면 뼈에 사무치도록 시큰하고 아프며, 양쪽 눈이 혹에 끌려 흰자위를 드러내고 통증이 극심해 숨이 끊어지려 하였다. 공이 한참 측은히 여기다가 ‘내가 치료할 수 있다’고 하니, 아버지와 친척들이 이마를 조아리며 간청하였다. 공은 환자를 일으켜 부축하게 하고 뒤통수에 한 촌쯤 침을 놓은 뒤 침기가 아픈 곳에 이르렀느냐고 물었다. 환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공이 갑자기 침을 빼니 혹이 손에 응하여 떨어지고 병이 곧 없어졌다. 집안사람들이 울며 절하고 비단을 바쳤으나 공은 웃으며 ‘나는 네 목숨이 위태로움을 불쌍히 여겼지 기술을 판 것이 아니다’라고 하고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그러나 침을 행하는 법은 반드시 음양에 통하고 혈도를 분별해야 한다. 털끝만큼 잘못해도 천 리 차이가 나므로, 공 같은 사람이라야 비로소 그 기술을 행할 수 있다.
成豐初鄭作夫都閒奉繳徵皖南左額受槍傷時賊勢方熾鄭枕戈露宿以至腫勢日甚醫者謂是破傷風邪已內閉不能治有一老兵取桑條數十莖以火燒其中取和酒令服遂愈此法會見之方書不意其奇驗如此然則應驗諸方醫家亦不可不諳也
성풍 초에 정작부 도한이 명을 받들어 완남을 정벌하다 왼쪽 이마에 총상을 입었다. 그때 적의 기세가 한창 왕성하여 정씨가 창을 베고 한데서 자므로 부종이 날로 심해졌다. 의사는 파상풍의 사기가 이미 안에 갇혀 치료할 수 없다고 하였다. 한 늙은 병사가 뽕나무 가지 수십 줄기를 가져다 가운데를 불로 태워 취한 것을 술에 섞어 복용시키니 나았다. 이 법은 방서에서 본 적이 있었지만 이처럼 기이한 효험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렇다면 검증된 여러 처방도 의가가 익히지 않아서는 안 된다.
齊諧記載江夏郭坦有兄於病後忽能食日必需米斛余閱五年家至擊坦乃驅使自覓食兒因飢不可忍乃取圃中韭瞰之竟盡二畦旋覺悶極因而大嘔陡出一物狀如龍撮飯著物腳化為水而且病頓愈物則恰莫能識云及觀閭閻僧睡余偶筆言秦有化谷蟲長僅數寸於谷器中投其一不二三日谷盡化水始悟郭兒所嘔或即此蟲是必採韭時未經洗淨誤吞其子致有此患韭能解蛇蟲諸毒敵得療此異疾
《제해기》에 실린 이야기에 따르면 강하의 곽탄에게는 병후 갑자기 잘 먹게 된 아이가 있어 날마다 쌀 한 곡 남짓이 필요하였다. 다섯 해가 지나 집안이 궁핍해지자 탄은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게 내쫓았다. 아이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여 밭의 부추를 먹어 두 이랑을 모두 비웠다. 곧 몹시 답답해져 크게 토하였는데 갑자기 용 같은 물건 하나가 나왔다. 밥을 집어 그 물건에 대자 곧 물로 변하였고 아이의 병은 단번에 나았으나, 그 물건은 알아보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뒤에 여염승의 《수여우필》을 보니 진 땅에 화곡충이 있어 길이가 몇 촌에 불과하지만 곡식 그릇에 한 마리만 넣어도 이삼 일 안에 곡식이 모두 물이 된다고 하였다. 그제야 곽씨 아이가 토한 것이 혹 이 벌레임을 깨달았다. 반드시 부추를 캘 때 깨끗이 씻지 않아 그 알을 잘못 삼켜 이 병이 생겼을 것이다. 부추는 뱀과 벌레의 여러 독을 풀 수 있으므로 이 기이한 병을 치료할 수 있었던 것이다.
諺云走馬看傷寒蓋言轉眼變更治之不容稍緩也若令晨服一劑明晚再服中間已隔兩畫一夜經絡已傳藥力有所不及則難取效矣故古方有日三服甚則晝夜服六次使藥不間腳始能制病若危急之症死生於旦暮之間用藥尤當不矢其時近日有一等醫人日則高臥晚始出診以為延者眾而深夜猶不得安息一至病家故作多忙之態聊且疏方告其病情則閉目不答似厭其言之多也嗟乎病者求醫望之甚切早延夕至一日虛過以致鞭長莫及誰之過與其心安乎哉
속담에 말을 달리듯 상한을 보라고 하였으니,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하므로 치료에 조금도 늦출 수 없다는 뜻이다. 아침에 한 제를 복용하고 다음 날 저녁에 다시 복용하게 하면 그 사이 두 낮과 한 밤이 벌어져 이미 경락에 전해졌고 약력이 미치지 못하니 효과를 얻기 어렵다. 그러므로 옛 처방에는 하루 세 번, 심하면 밤낮으로 여섯 번 복용하게 한 것이 있어 약력이 끊기지 않아야 비로소 병을 제어한다. 위급한 증은 아침저녁 사이에 생사가 갈리므로 약을 쓸 때 더욱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근래 어떤 의사는 낮에는 높이 누워 있다가 저녁에야 진찰하러 나오면서, 부르는 사람이 많아 밤늦게도 쉬지 못한다고 여긴다. 환자 집에 도착하면 일부러 바쁜 체하며 대충 처방을 쓰고, 병정을 알려 주면 눈을 감고 대답하지 않아 말이 많음을 싫어하는 듯하다. 아, 환자가 의사를 구하는 마음은 매우 간절한데 아침에 불러 저녁에 오니 하루를 헛되이 보내 마침내 채찍이 닿지 못하게 된다. 누구의 잘못이며 그 마음이 편안할 수 있겠는가?
有友病疝嘗間方於余言按前人治疝各有所偏立方不無錯雜仲景以寒為名故主溫散調營補虛不入氣分之藥而子和又以辛香流氣為主謂肝得疏泄病將自愈也巢氏言陰氣內積復加寒氣蓋由營衛失調而致陳無擇亦言女血因寒濕而為瘕南氣因寒聚而成疝是以疝屬寒者固多然此病亦有起於濕熟者蓋濕熱在經遏郁既久外復感冒寒氣收束絡脈不行所以作痛若事作寒論恐未盡然近惟葉氏有暴疝多寒久疝多熱之議發前人所夫發後學似當深味今友患此有年且多目疾維友疝病治肝十居八人因以辛甘化風為治而附其說於此
산병을 앓는 친구가 내게 처방을 물은 적이 있다. 내가 말하였다. ‘선인의 산병 치료를 살피면 각각 치우친 바가 있어 처방이 뒤섞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중경은 한을 이름으로 삼아 따뜻하게 흩고 영을 조절하며 허를 보하는 것을 위주로 하고 기분의 약은 넣지 않았습니다. 자화는 또 맵고 향기로운 약으로 기를 흐르게 하는 것을 위주로 하여, 간이 소설하면 병이 저절로 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소씨는 음기가 안에 쌓인 데다 한기가 더해진 것으로 영위의 조화가 깨져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진무택도 여자의 혈은 한습 때문에 가가 되고 남자의 기는 한 때문에 모여 산이 된다고 하였으니, 산이 한에 속하는 경우는 본래 많습니다. 그러나 이 병은 습열에서 일어나기도 합니다. 습열이 경에 있어 오랫동안 억눌리고 울체된 데다 밖으로 한기를 감수하면 한이 거두어 묶어 낙맥이 통하지 않으므로 아픕니다. 오직 한으로만 논하면 온전히 그러하지 않을 듯합니다.’ 근래에는 오직 섭씨가 갑작스러운 산에는 한이 많고 오래된 산에는 열이 많다고 논하여 선인이 밝히지 않은 것을 밝혔다. 후학은 깊이 음미해야 할 것이다. 지금 친구는 이 병을 여러 해 앓았고 눈병도 많다. 산병은 간을 치료할 경우가 열에 여덟아홉이므로, 맵고 단 약으로 풍을 변화시키는 것을 치료로 삼고 그 설을 여기에 덧붙인다.
經云濕多成五泄水濕侵脾固多注下然因風病泄者亦習見焉蓋腸有風則飧泄胃有風則濡泄肝為風臟故厥陰病每多作瀉今之俗丁不察病情以為健脾導濕治瀉之要用藥大都香燥不如肝為剛臟必甘柔酸斂以和之燥剛刦津香能耗微不反增其病乎竹樓閒筆載宋時有朝貴患痢經年群醫每進升陽理解之劑而病轉劇蜀醫唐慎微診之曰此腸風也投以育陰之品不旬而瘥余每治腸風泄瀉亦以柔肝獲效故特筆之
경에서 습이 많으면 오설이 된다고 하였다. 수습이 비를 침범하면 본래 쏟아지는 설사가 많지만, 풍 때문에 설사하는 경우도 흔히 본다. 장에 풍이 있으면 손설이 되고 위에 풍이 있으면 유설이 된다. 간은 풍의 장이므로 궐음병에는 설사가 많다. 지금의 속된 의사는 병정을 살피지 않고 건비도습이 설사 치료의 요체라고 여겨 약을 대부분 향기롭고 건조하게 쓴다. 그러나 간은 강한 장이므로 반드시 달고 부드럽게 하고 시게 거두어 조화시켜야 함을 모른다. 건조하면 진액을 빼앗고 향기로우면 소모시키니 도리어 병을 더하지 않겠는가? 《죽루한필》에 따르면 송나라의 한 조정 귀인이 이질을 일 년째 앓았는데, 여러 의사가 승양하고 이기를 풀어 주는 약제를 올릴 때마다 병이 도리어 심해졌다. 촉의 의사 당신미가 진찰하고 ‘이는 장풍입니다’라고 하며 음을 기르는 약을 투여하니 열흘도 되지 않아 나았다. 나도 장풍의 설사를 치료할 때마다 간을 부드럽게 하여 효험을 얻었으므로 특별히 적는다.
痢疾古稱滯下蓋濕熱內阻氣失流行久成積滯昔人每以導氣分消為主此誠治夏秋時痢之常法然風淫火迫寒浸積痰亦能致痢治之又當分別更有脾腎咬量入胃輸化不清積留於腸回曲折之間入秋氣肅收藏不固而下泄者道光丁酉先君年七十有三仲秋患痢晝夜百餘次初延醫診視進苦辛調氣之劑因循十餘日病益甚聞谷即哎雖湯飲亦不能下咽滿口白糜而作呃逆學家惶惶余方寸已亂溫無意見惟日夜祈禱因思得一人與之共商庶可放膽立方越日適毗陵莊生至莊號春冶曾從余學醫頗有機變因令診春冶蹙額曰尊年營衛既虧痢疾大下陰液已涸今口糜呃逆胃氣將絕實難措手惟有扶持元氣兼養胃陰冀得胃氣稍醒以圖轉機未識是否余曰子言頗合遂與定生脈佐芍藥銀花陳皮炙柬等味以糯稻根煎湯代水春冶用黨參余曰是方所重在參黨參氣味平淡僅可調補常病豈能恃以為治乃用吉林上好山參每服五分日進藥一次參剛晝夜四次如是者五日旁症悉除漸能進粥旬餘而痢亦止然仍不撤參藥至冬初能大啖肉食盤飧羅列無不稱美春初始能起床步履然能食不充肌肉余竊慮之氣候漸暖飲食漸滅夏日惟食粥數次至秋而痢復作悉依前法治之遂愈次年秋病又作仍進參藥先君謂麟曰汝素知醫豈不知攻補有時前者初病會服利導之劑繼用參藥是以有效去年病即服參積滯未清故今秋復發參藥斷不可再用余心知非參之不可而又不敢違命日夜苦思忽憶先君昔患肝疾得蘇郡醫生阮仁昌治愈先君每稱其能乃稟知延請星夜著人赴蘇越五日而阮至診之日濕熱內蘊參藥姑緩乃用芩苓查樸等治痢之藥先君索方觀之深以為然命速煎余不能措一辭時已申分服後未及半時即覺氣促神亂延至亥刻遽爾見背嗚呼痛哉可見二載之一息綿存皆人參之力一旦受此耗散氣泄不能再續今日思之未嘗不飲泣而痛恨焉
이질은 옛날에 체하라고 하였다. 습열이 안을 막아 기가 흐르지 못하고 오래되어 적체가 되므로, 옛사람은 기를 이끌고 나누어 없애는 것을 위주로 하였다. 이는 여름과 가을의 유행성 이질을 치료하는 일반 법이다. 그러나 풍이 과하거나 화가 핍박하거나 한이 스미거나 담이 쌓여도 이질이 될 수 있으므로 치료는 구별해야 한다. 또 비신의 문제로 위에 들어간 음식이 맑게 수송되고 변화하지 못해 장의 굽이진 사이에 쌓여 머물다가, 가을의 숙한 기가 이르면 거두고 저장하는 것이 견고하지 못하여 아래로 설사하는 경우도 있다. 도광 정유년, 선친은 일흔세 살에 중추부터 이질을 앓아 밤낮으로 백여 차례 변을 보았다. 처음 의사를 불러 진찰받고 쓰고 매운 조기약을 투여하였으나 십여 일을 지체하는 사이 병이 더욱 심해졌다. 곡식 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하고 탕이나 음료도 삼키지 못하였으며 입안 가득 흰 미란이 있고 딸꾹질하였다. 온 집안이 두려워하였고 나도 마음이 어지러워 의견을 세우지 못한 채 밤낮으로 기도만 하였다. 함께 상의할 사람을 얻어야 대담하게 처방을 세울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는데, 다음 날 마침 비릉의 장생이 왔다. 그의 호는 춘야로 내게 의술을 배운 적이 있고 변통에 밝았으므로 진찰하게 하였다. 춘야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어르신은 연세가 높아 영위가 이미 부족한 데다 이질로 많이 내려 음액이 다 말랐습니다. 지금 입이 헐고 딸꾹질하니 위기가 끊어지려 하여 실로 손쓰기 어렵습니다. 오직 원기를 지탱하고 위음도 길러 위기가 조금 깨어나기를 바라며 전기를 도모할 뿐인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대 말이 매우 합당하다’고 하고 함께 생맥에 작약·은화·진피·구운 감초 등을 보좌시키며 찰벼 뿌리를 달인 물을 물 대신 쓰도록 정하였다. 춘야가 당삼을 쓰기에 나는 ‘이 처방에서 중한 것은 인삼입니다. 당삼은 기미가 평담하여 보통 병을 조절하고 보할 수 있을 뿐, 어찌 의지하여 치료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길림의 최상 산삼을 매번 5푼씩 쓰고, 약은 하루 한 번 투여하되 인삼은 밤낮으로 네 번씩 투여하였다. 이처럼 닷새 지나자 곁의 증상이 모두 없어지고 점차 죽을 먹을 수 있었으며, 열흘 남짓 뒤 이질도 멎었다. 그래도 인삼약을 거두지 않았다. 겨울 초가 되자 고기를 크게 먹을 수 있어 상에 차린 음식마다 맛있다고 하였다. 봄 초에야 침상에서 일어나 걸을 수 있었으나, 먹을 수 있어도 살이 차지 않아 나는 속으로 걱정하였다. 날씨가 점차 따뜻해지자 음식이 점차 줄어 여름에는 죽만 몇 차례 먹었다. 가을에 이질이 다시 생겨 모두 앞의 법대로 치료하자 나았다. 이듬해 가을에 병이 다시 생겨 인삼약을 계속 올리자 선친이 나 린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평소 의술을 아는데 어찌 공보에 때가 있음을 모르느냐? 앞서 처음 병들었을 때 소통시키고 이끄는 약을 복용한 뒤 인삼약을 썼으므로 효과가 있었다. 지난해에는 병들자마자 인삼을 복용하여 적체가 맑아지지 않았으므로 올해 가을 다시 발한 것이다. 인삼약은 절대로 다시 써서는 안 된다.’ 나는 인삼이 없어서는 안 됨을 마음속으로 알았지만 명을 어길 수도 없어 밤낮으로 고심하였다. 그러다 선친이 옛날 간병을 앓았을 때 소군의 의사 완인창에게 치료받아 나아 늘 그 능력을 칭찬하셨던 일이 떠올랐다. 이에 아뢰어 모셔 오기로 하고 밤길로 사람을 소주에 보냈다. 닷새 뒤 완씨가 와서 진찰하고 ‘습열이 안에 쌓였으니 인삼약은 잠시 늦추십시오’라고 하며 황금·복령·산사·후박 등 이질약을 썼다. 선친은 처방을 가져오게 하여 보시고 매우 옳다고 여기며 빨리 달이라고 명하셨다. 나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때는 이미 신시였는데 복용한 뒤 반 시각도 되기 전에 숨이 가쁘고 정신이 흐려졌으며 해시에 이르러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 통탄스럽다! 두 해 동안 한 줄기 숨이 이어진 것은 모두 인삼의 힘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루아침에 이런 소모와 발산을 받아 기가 새어 나가 다시 잇지 못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을 삼키며 아프고 한스럽지 않은 적이 없다.
余作醫話不過遣興非沾沾於五連六氣而言也適閱楊瑀山居新話載事死不以病而疑為病死余故話不涉醫而亦登醫話其略言錢塘韓介石巨室也延佑某年夏雷雨驟至令庖僮登樓閉窗雨過覓僮則已僵斃因疑中風猝死而觀身佩之刀絛鞘如故刃則銷鑠過半揚言其故殊不可解余謂此必雷死非病死也嘗見西人於高樓及藏火藥處每坎地豎鐵桿上比屋宇以引雷火流入地中而其旁必盡去五金大屬言能引雷由此證之是僮之死亦以刀鐵引雷人室而然也猝中雲乎哉
내가 의화를 쓰는 것은 흥을 풀기 위한 것일 뿐 오운육기를 이야기하는 데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다. 마침 양우의 《산거신화》에서 병이 아닌 죽음을 병사로 의심한 일을 읽었으므로, 이야기가 의술과 관계없어도 의화에 싣는다. 대략 말하자면 전당의 한개석은 부호였다. 연우 어느 해 여름에 천둥과 비가 갑자기 닥치자 부엌 하인에게 누각에 올라가 창문을 닫게 하였다. 비가 지나 하인을 찾으니 이미 굳어 죽어 있어 중풍으로 갑자기 죽은 것으로 의심하였다. 그러나 몸에 찬 칼을 보니 끈과 칼집은 그대로인데 칼날은 절반 넘게 녹아 있었다. 양씨는 그 까닭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나는 이는 반드시 벼락에 죽은 것이지 병사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양인은 높은 누각과 화약 저장소에 땅을 파고 쇠막대를 세우되 위쪽이 집보다 높게 하여 번갯불을 땅속으로 흘려보내며, 그 곁에는 오금에 속한 물건을 모두 치워 그것들이 벼락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로 증명하면 그 하인의 죽음도 쇠칼이 벼락을 실내로 끌어들여 생긴 것이다. 어찌 졸중이라고 하겠는가?
蘇郡葉天士良醫也有孫六齡發痘葉視之曰絕症無生理不必服藥其子婦只生一子不忍坐視因延兒科診之遂疏方進藥旬余病良已兒科頗自得謂其家人曰老先生道雖高究非專科臨症不多誤為逆候其子若婦亦甚德之以為乃翁固不若也葉聞謂其子曰兒痘果愈耶某先生力也當設筵演劇以酬其勞子遂折東招之兒科盛服往葉出眾客咸稱喜乃顰蹙曰喜恐不能終席耳眾初不解及開宴金鼓一聲兒嗷然哭遂絕葉乃嘆曰吾早知其必死也兒科恧然問放曰此兒先天既薄感氣又深不能外達今未兼旬勉強收結所泄乃陽明之毒也腎經所伏仍然不動聞震晌則心驚心火既動內迫腎水之火互沖毒即激發而莫可御矣兄科慚而退眾始服其識又我邑醫士王惠昭亦名冠一時四方求治者趾相接一日隨僕行郭外見隔溪一女子耘于田土熟視良久顧僕曰汝可跣足涉溪以泥水塗面突前緊執女手作拖其下水之勢任伊號哭不可捨去僕曰百步外有耕田者聞聲來救恐難脫身王曰有我在無害也僕如其言女大駭極聲呼救其父持挺狂奔而來王急止之曰是若女耶將發痘非此一驚無活理三日後必見點以驗我言其父雖未深信然素慕王名姑試之至期果然亟延診視且問故王曰此臂經痘也猝然震駭可使轉入心經今無妨矣遂為定方不兩旬而愈或曰二症皆發於腎經一則因驚致死一則因駭得生何皆言之驗也余曰葉子年幼質弱感氣既重正不勝邪毒伏不能外達故發即死村女身大氣旺一發即透透則生驚者皆欲觸其速發也然惟葉之能決其必死於初發之時王能取法於未發之際是非三折肱者其能如是哉
소군의 섭천사는 양의였다. 여섯 살 손자가 두창을 앓자 보고 ‘목숨이 끊어질 증이라 살 이치가 없으니 약을 복용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아들과 며느리는 외아들을 가만히 볼 수 없어 소아과 의사를 불러 진찰하게 하였고, 처방을 받아 약을 먹이니 열흘 남짓 뒤 병이 나았다. 소아과 의사는 자못 자부하여 집안사람에게 ‘노선생의 도가 높아도 결국 전문과가 아니어서 접한 증이 많지 않으니 잘못하여 역후로 보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아들과 며느리도 그에게 매우 감사하며 아버지가 본래 못하다고 여겼다. 섭씨가 듣고 아들에게 ‘아이가 두창에서 과연 나았느냐? 아무개 선생의 공이니 잔치를 베풀고 연극을 보여 노고에 보답해야 한다’고 하였다. 아들이 주인이 되어 초청하자 소아과 의사는 성장을 하고 갔다. 섭씨가 나오니 손님들이 모두 축하하였으나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기쁨이 잔치 끝까지 가지 못할까 염려됩니다’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모두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잔치가 시작되어 징과 북이 한 번 울리자 아이가 크게 울고 곧 숨이 끊어졌다. 섭씨는 탄식하며 ‘나는 일찍부터 반드시 죽을 줄 알았다’고 하였다. 소아과 의사가 부끄러워하며 까닭을 묻자 말했다. ‘이 아이는 선천이 이미 약한 데다 감수한 기가 깊어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였다. 지금 이십 일도 되지 않아 억지로 거두어 맺혔으나, 내보낸 것은 양명의 독일 뿐이고 신경에 잠복한 것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큰 소리를 듣자 심이 놀랐고, 심화가 움직여 안으로 신수의 화를 핍박하며 서로 치밀어 독이 격발하니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소아과 의사는 부끄러워 물러났고 여러 사람은 비로소 그의 식견에 감복하였다. 또 우리 고을 의사 왕혜소도 한때 이름이 으뜸이어서 사방에서 치료를 구하는 이가 잇달았다. 하루는 하인과 성 밖을 가다가 개울 건너 한 여자가 밭에서 김매는 것을 보고 오랫동안 유심히 살피더니 하인에게 말했다. ‘맨발로 개울을 건너 진흙물을 얼굴에 바르고 갑자기 다가가 여자의 손을 꽉 붙잡아 물로 끌어내리는 듯하라. 울부짖어도 놓지 말아라.’ 하인이 ‘백 걸음 밖에서 밭 가는 사람이 소리를 듣고 구하러 오면 빠져나오기 어려울 듯합니다’라고 하자, 왕씨는 자신이 있으니 괜찮다고 하였다. 하인이 그대로 하자 여자는 크게 놀라 있는 힘껏 구원을 외쳤고 아버지가 몽둥이를 들고 미친 듯 달려왔다. 왕씨가 급히 막으며 ‘이분이 따님입니까? 곧 두창이 발할 것인데 이렇게 한 번 놀라게 하지 않으면 살 이치가 없습니다. 사흘 뒤 반드시 점이 나타날 것이니 제 말을 확인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아버지는 깊이 믿지는 않았으나 평소 왕씨의 명성을 흠모하여 우선 시험해 보았다. 때가 되자 과연 그러하여 급히 진찰을 청하며 까닭을 물었다. 왕씨는 ‘이는 비경의 두창입니다. 갑자기 놀라면 심경으로 옮겨 들어가게 할 수 있으니 이제 괜찮습니다’라고 하고 처방을 정하여 이십 일도 되지 않아 나았다. 어떤 이가 ‘두 증이 모두 신경에서 발하였는데 하나는 놀라서 죽고 하나는 놀라서 살았으니 어찌 모두 말이 맞았습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섭씨의 손자는 어리고 바탕이 약하며 감수한 기가 무거워 정기가 사기를 이기지 못하고 독이 잠복하여 밖으로 나가지 못하므로 발하면 곧 죽었습니다. 마을 여자는 몸이 크고 기가 왕성하여 발하면 곧 투발하고, 투발하면 삽니다. 놀라게 한 것은 모두 빨리 발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섭씨는 초기부터 반드시 죽을 것을 판단하였고, 왕씨는 아직 발하지 않았을 때 방법을 취하였으니 삼절굉의 경험이 없는 사람이 어찌 이럴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古人嘗以水火治病其效甚速如熨灸之類今尚有之以水療疾者世所罕見也接後漢時有婦人臥疾經年諸藥無效華佗令坐石槽中用冷水灌頂云當百始及半已冷顫欲死灌者懼而欲止佗弗許灌至七十覺有熱氣繼而氣若蒸釜水如沸湯滿百灌乃始溫褥厚被而臥醒來病若失矣又南史載將軍房伯玉服五石散因以致疾常覺寒悚雖夏月必披裘徐嗣伯診之曰伏熱也須以水發之然非冬月不可迨至十一月水滴成冰平旦令伯玉解衣坐石上取新汲冷水從頂澆之盡二十斛口噤氣絕家人啼哭請止嗣伯怒叱盡水百斛伯玉始能動背上彭彭有起曰熱不可忍乞冷飲嗣伯以水一升飲之疾頓愈自後肢體常暖冬月猶服單衣時珍曰此皆伏熱之證火鬱則發之必於冬月者蓋冬至後陽氣在內平旦亦陽氣方盛之所折之以寒使熱氣鬱遏至極而激發之米真人靈驗篇云有人患風疾掘坑令人解衣坐坑內以熱湯淋之良久以簟蓋之汗出而愈宗奭云四時暴泄肢冷腹痛令坐熱湯中浸至腹上頻頻揉擦生陽諸藥無速於此二者皆以水療疾冷熱雖殊其理一也
옛사람은 물과 불로 병을 치료하여 효험이 매우 빨랐다. 찜질과 뜸 같은 것은 지금도 있지만 물로 병을 치료하는 것은 세상에서 드물게 본다. 후한 때 한 부인이 병석에 누운 지 여러 해로 약이 모두 효과가 없었는데, 화타가 돌구유에 앉히고 찬물을 정수리에 붓되 백 번 해야 한다고 하였다. 절반쯤 되자 이미 춥고 떨려 죽으려 하므로 붓던 사람이 두려워 그치려 하였으나 화타는 허락하지 않았다. 일흔 번에 이르자 열기가 느껴졌고, 이어 기운이 솥에서 찌듯하며 물이 끓는 탕처럼 되었다. 백 번을 채운 뒤에야 따뜻한 요와 두꺼운 이불에 눕혔으며, 깨어나니 병이 사라진 듯하였다. 또 《남사》에 따르면 장군 방백옥이 오석산을 복용한 뒤 병들어 늘 춥고 떨리므로 여름에도 갖옷을 입었다. 서사백이 진찰하고 ‘잠복한 열이니 물로 발하게 해야 하지만 겨울이 아니면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십일월이 되어 물방울이 얼 때 이른 아침에 백옥의 옷을 벗기고 돌 위에 앉혀 새로 길은 찬물을 정수리부터 부었다. 스무 곡을 다 붓자 입이 다물리고 기가 끊어져 집안사람이 울며 그쳐 달라고 하였으나, 사백은 성내어 꾸짖었다. 물 백 곡을 다 쓰자 백옥이 비로소 움직일 수 있었고 등에 부풀어 오르는 것이 생기며 ‘열이 견딜 수 없으니 찬물을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사백이 물 한 되를 마시게 하자 병이 단번에 나았다. 그 뒤 팔다리가 늘 따뜻하여 겨울에도 홑옷을 입었다. 이시진은 ‘이는 모두 잠복한 열의 증이니 화가 울체되면 발하게 해야 한다. 반드시 겨울에 하는 것은 동지 뒤 양기가 안에 있고 이른 아침도 양기가 한창 성한 때이므로, 찬 것으로 꺾어 열기가 극도로 억눌린 뒤 격발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미진인의 《영험편》에는 풍병 환자가 있으면 구덩이를 파고 옷을 벗겨 그 안에 앉힌 뒤 뜨거운 물을 끼얹으며, 한참 뒤 자리를 덮으면 땀이 나고 낫는다고 하였다. 종석은 ‘사시에 갑자기 설사하고 팔다리가 차며 배가 아프면 뜨거운 물에 앉혀 배 위까지 잠기게 하고 자주 문질러 양을 생기게 한다. 어떤 약도 이것보다 빠르지 않다’고 하였다. 두 가지 모두 물로 병을 치료하니 냉열은 달라도 이치는 하나이다.
蜘蛛之毒甚於蛇蠍余嘗見友家一婢左臂為蛛所齒腫如甕痛極悶絕或令以羊血沖酒灌之使醉昏睡一日夜腫始退偶閱劉禹錫傳信方載判官張延嘗為斑蛛傷頸初不覺越宿首大如斗有二赤紋繞項下至心前幾至不救有方士取大藍汁入麝杳雄黃以蛛投之即化為水遂以汁點咬處兩日悉平本草言蜘蛛能制昊蚣蛇傷其性毒可知古方有蜘蛛散取能定幽暗之風以治陰疝吳門王晉三古方選注云蜘蛛有毒人咸畏之而長邑宰林公瑛山海衛人壯年調理方多用之久亦無害言有毒者或南北地異所產不同耳
거미의 독은 뱀과 전갈보다 심하다. 나는 친구 집의 계집종이 왼팔을 거미에게 물려 항아리처럼 붓고 몹시 아파 답답하여 혼절한 것을 보았다. 누군가 양의 피를 술에 타서 부어 먹여 취하게 하였고, 하루 밤낮 깊이 잔 뒤 부종이 비로소 물러났다. 우연히 유우석의 《전신방》을 보니 판관 장연이 무늬 있는 거미에게 목을 물렸으나 처음에는 몰랐다. 하룻밤 지나 머리가 말처럼 커지고 두 붉은 줄이 목을 둘러 가슴 앞까지 내려와 거의 구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어떤 방사가 큰 쪽의 즙에 사향과 웅황을 넣고 거미를 던지자 곧 물로 변하였다. 그 즙을 물린 곳에 찍어 바르니 이틀 만에 모두 평정되었다. 본초에는 거미가 지네와 뱀의 상처를 제어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그 독성을 알 수 있다. 옛 처방에 지주산이 있는 것은 어두운 음의 풍을 안정시키는 성질을 취하여 음산을 치료한 것이다. 오문의 왕진삼은 《고방선주》에서 ‘거미는 독이 있어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지만, 장읍의 수령 임영은 산해위 사람으로 젊었을 때 조리 처방에 거미를 많이 썼어도 오래도록 해가 없었다. 독이 있다고 한 것은 혹 남북의 땅이 달라 나는 종류가 다르기 때문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物理相制多有不可解者顧但知真相制處亦可救一時之急鄰有幼孩為群蜂所螫頃刻腫甚或令搗芋艿縛之而消按沈括筆談言處士劉陽居王屋山時見一蜘蛛為蜂螫墜地其腹如鼓欲裂乃徐行人田間齒芋梗以瘡就磨之良久腹頓消然剛以芋治螫或亦本於此耳
만물의 이치가 서로 제어하는 데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다. 그러나 실제로 서로 제어하는 점만 알아도 한때의 위급함을 구할 수 있다. 이웃의 어린아이가 벌떼에 쏘여 순식간에 몹시 부었는데, 누군가 토란을 찧어 붙이게 하니 가라앉았다. 심괄의 《필담》을 살펴보면 처사 유양이 왕옥산에 살 때 거미 한 마리가 벌에 쏘여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배가 북처럼 부풀어 터지려 하였으나, 천천히 밭으로 들어가 토란 줄기를 물고 상처를 거기에 비비더니 한참 뒤 배가 갑자기 가라앉았다. 그렇다면 토란으로 벌에 쏘인 것을 치료하는 법도 혹 여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乾隆初郡城某紳患腹痛發必昏厥勢甚危篤四方醫士延聘殆盡諸藥畢投竟無一驗乃榜示遍衢有能治者酬千金時淫歲試士子咸集郡中金邑有周生者性好博場後興發薄資盡罄招覆案發周不與同寓亦大半散去周坐困旅邸欲歸不得忽夢亡師某謂曰汝已得取不負此來周日昨已出案門生無分先生尚未知耶某日汝案在紅箋上周方欲再問某遽起日速取看案周醒以為妄想所致晨起無聊遂至貢院見案傍果有紅箋視之乃某官招醫帖也因思正無歸計姑就之倘有機會亦未可料遂貿煞往略一診祝詭言此症非湯藥可療必余手製靈廾方期有效納以翌日寓沈思必得一物庶可偽為丹藥因徘徊戶外見牆邊有半朽蒲包乃以黃土封個焚為灰分作數包袖以往日越兩時可一服不過三服病當愈然是非尋常藥肆中物價值昂貴必先稍償藥資主人言若有驗不靳重酬預咐不能應命周不得已爽然返寓越日有干僕數輩盜金而至日先生妙藥昨進二服即吐血一塊腹痛頓愈聊奉薄酬還求復診今病已根去靜養自蠻無須用藥余有急務欲歸不克再往為我謝覆可也時我邑楊介眉醫名重海內紳延伊調理稱周術之神楊令將所吐之物洗去血汙置清水頃之蠕蠕自動引之長四五寸乃一螞蝗也日此必飲水誤吞入腹幸未生子故得一吐而盡然私慕周之技乘閒往返登堂肅拜執弟子禮甚恭周駭日先生醫道誰不敬服樸素無學問何敢當此楊曰願聞所以知某紳之患而治之周見其誠遂實告楊曰蒲包灰尚有否周乃取餘次出楊當之日是已此鹽包也鹽能殺蛭故有此驗耳
건륭 초 군성의 한 신사가 복통을 앓아 발할 때마다 혼절하므로 매우 위독하였다. 사방의 의사를 거의 다 부르고 여러 약을 모두 투여해도 하나도 효험이 없어, 거리마다 방을 붙여 치료할 수 있는 사람에게 천금을 사례한다고 하였다. 그때 세시가 있어 선비들이 군에 모였는데 금읍의 주생은 노름을 좋아하였다. 흥이 나서 얼마 안 되는 노자마저 다 써 버렸고 합격자 명단이 발표되어도 이름이 없었다. 함께 묵던 이도 대부분 흩어져 주생은 여관에 곤궁히 앉아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 갑자기 꿈에 돌아가신 스승이 나타나 ‘너는 이미 뽑혔으니 이번 걸음이 헛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주생이 ‘어제 이미 명단이 나왔는데 제자는 몫이 없었습니다. 선생께서는 아직 모르십니까?’라고 하니 ‘네 이름은 붉은 종이에 있다’고 하였다. 다시 물으려는데 스승이 급히 일어나 ‘어서 명단을 보러 가라’고 하였다. 주생은 깨어 헛생각 때문에 그런 줄 알았으나, 아침에 무료하여 공원에 가 보니 명단 곁에 과연 붉은 종이가 있었다. 보니 아무개 관인이 의사를 구하는 글이었다. 돌아갈 방도가 없으니 우선 가 보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무턱대고 찾아갔다. 대략 진찰한 뒤 거짓으로 ‘이 증은 탕약으로 치료할 수 없고 제가 손수 만든 영단이라야 효험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다음 날을 약속하였다. 숙소로 돌아와 무엇이든 하나 얻어 가짜 단약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문밖을 서성이던 중 벽 곁의 반쯤 썩은 부들 꾸러미를 보았다. 황토로 봉하여 태운 재를 몇 봉지로 나누어 소매에 넣고 가서 ‘두 시각마다 한 번씩 복용하면 세 번을 넘기지 않아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 약방의 물건이 아니어서 값이 비싸니 먼저 약값을 조금 주셔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주인은 ‘효험이 있으면 후한 사례를 아끼지 않겠지만 미리 주는 것은 따를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주생은 부득이 실망하여 숙소로 돌아갔다. 다음 날 건장한 하인 몇 사람이 돈을 가지고 와 ‘선생의 묘약을 어제 두 번 복용하자 핏덩이 하나를 토하고 복통이 곧 나았습니다. 우선 작은 사례를 드리며 다시 진찰해 주시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주생은 ‘지금 병의 뿌리가 이미 없어졌으니 고요히 요양하면 저절로 나아 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급히 돌아갈 일이 있어 다시 갈 수 없으니 대신 감사의 말을 전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그때 우리 고을 양개미가 의술로 해내에 이름났으므로 신사는 그를 불러 조리하면서 주생의 신기한 기술을 칭찬하였다. 양씨가 토한 물건의 피를 씻고 맑은 물에 놓게 하니 잠시 뒤 꿈틀거리기 시작하였다. 늘여 보니 길이가 넉댓 촌인 거머리였다. ‘이는 반드시 물을 마시다 잘못 삼켜 배에 들어간 것인데, 다행히 아직 새끼를 낳지 않아 한 번 토하고 다 나온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속으로 주생의 기술을 흠모하여 틈을 타 찾아가 당에 올라 공손히 절하며 제자의 예를 갖추었다. 주생이 놀라 ‘선생의 의술을 누가 존경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평소 학문이 없는데 어찌 감당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양씨는 ‘그 신사의 병을 알아내 치료하신 까닭을 듣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다. 주생이 진심을 보고 사실대로 말하자 양씨는 부들 꾸러미 재가 남았느냐고 물었다. 주생이 남은 재를 꺼내자 양씨가 맛보고 ‘맞습니다. 이것은 소금 꾸러미입니다. 소금은 거머리를 죽일 수 있으므로 이런 효험이 있었던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古有防風粥以真珠蘭砰金犀取油萊五香稻為糜耳一孟價值一金白居易在翰林日上當賜一甌食之口香七日云可除風濕是亦芳香逐濕之意也
옛날 방풍죽이라는 것이 있어 진주란과 금서에서 기름을 취하고 오향도를 쪄서 죽을 만들었다. 한 사발 값이 한 금이었다. 백거이가 한림에 있을 때 황제가 한 사발을 내려 먹었더니 입안의 향기가 이레 동안 갔다고 하며, 풍습을 제거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도 향기로운 것으로 습을 몰아내는 뜻이다.
按粱州離記錫酷能消介類憶說部載有少年眼中昔見一鏡醫者言其吃鱠太多有魚鱗在胸致眼生花耳乃設芥醋一瓶令於飢時啜之疾遂愈又有為魚骨所硬幾廢飲食後服白錫而解證此則錫酷之可消介類其說信然
《양주이기》를 살펴보면 석초는 갑각류를 소화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소설류 기록에서 본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 소년이 눈앞에 늘 거울 하나가 보이자 의사가 ‘회를 너무 많이 먹어 가슴 속에 물고기 비늘이 있으므로 눈앞에 꽃무늬가 생긴 것이다’라고 하였다. 겨자식초 한 병을 마련하여 배고플 때 마시게 하니 병이 나았다. 또 물고기 뼈가 목에 걸려 거의 음식을 먹지 못하던 사람이 뒤에 백석을 복용하고 풀린 경우도 있었다. 이를 증거로 삼으면 석초가 갑각류를 소화시킬 수 있다는 말이 참인 것이다.
走方醫賣藥市中或日一日必療一病雖未必然而亦時有驗者邑有李跛開魚行於東門外自言幼時足背生細瘡數顆無甚痛苦絕不為意夏月赤足坐門首有走方醫目之日此非癬疥疾也毒發陽明已久亟宜外達不治常發腸癱此足廢矣伊父怒其妄而叱之進去不臉月病發醫藥半年始愈而足果廢可見走方祝由之類雖多以小術惑人訛取財物而於方藥所不能療之痼疾往往以符咒草藥取效即此亦見其非全妄也
떠돌이 의사가 시장에서 약을 팔면서 하루에 반드시 한 병을 치료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더라도 때로 효험이 있는 경우가 있다. 우리 고을의 절름발이 이씨는 동문 밖에서 생선 가게를 하였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어렸을 때 발등에 작은 헌데 몇 개가 생겼으나 별로 아프거나 괴롭지 않아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하였다. 여름에 맨발로 문 앞에 앉아 있는데 떠돌이 의사가 보고 ‘이는 선이나 개의 병이 아닙니다. 독이 양명에서 발한 지 오래되었으니 급히 밖으로 내보내야 합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흔히 장탄이 생겨 이 발을 못 쓰게 됩니다’라고 하였다. 아버지는 망령된 말을 한다고 성내어 꾸짖어 쫓아냈다. 한 달이 되지 않아 병이 발하고 반년 동안 의약으로 치료한 뒤에야 나았으나 발은 과연 못 쓰게 되었다. 이를 보면 떠돌이 의사와 축유 같은 부류가 비록 작은 술법으로 사람을 현혹하고 재물을 속여 취하는 경우가 많아도, 방약으로 치료할 수 없는 고질병에 부적과 주문, 약초로 효험을 얻는 일이 있으니 전부 허망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曹吉云太史於道光乙巳釋褐旋里行抵山東其僕墜車折脛羈旅覽醫聞五十里外有某醫能治遂繞道訪之所居甚幽僻聚族數十家皆業農醫者年已半百鬚髮間白草履葛衫吐屬溫厚略詢邦族調行途遭此洵可憐也細視傷痕言骨雖斷尚可續先出藥水一匙令飲更以藥塗之約越日痛緩一月可瘥但必一年不可行遠始復故步耳酬以四金亦無不足意後果如期而愈可見僻壤荒村亦有能手即其舉重若輕而不矜其技是亦世俗所難耳嗣於友人席間談及此事濟南徐濟良太常言所飲之藥名木乃伊凡人骨斷得此能續既閱陶九成輟耕錄載天方國人有年七十八歲願捨身濟眾者即絕飲食日惟澡身啖蜜經月而便溺皆蜜既死國人殮以石棺仍用蜜滿浸鐫其年月識而痙之俟百年後起封則成蜜劑遇傷肢體者服少許立愈蓋即木乃伊也然甚可貴雖在彼國亦不易得云據此徐子所言信有囪矣
조길운 태사가 도광 을사년에 처음 벼슬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다 산동에 이르렀을 때 하인이 수레에서 떨어져 정강이가 부러졌다. 나그네 길에 의사를 찾다가 50리 밖의 어떤 의사가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길을 돌아 찾아갔다. 그가 사는 곳은 매우 외지고 조용하여 수십 집의 일가가 모여 모두 농업에 종사하였다. 의사는 나이가 쉰으로 수염과 머리에 흰 털이 섞였고 짚신과 갈옷 차림에 말씨가 온후하였다. 성씨와 집안을 대략 묻고 ‘여행 중 이런 일을 당했으니 참으로 가엾습니다’라고 하였다. 상처를 자세히 살피고 뼈가 부러졌으나 아직 이을 수 있다고 하며, 먼저 약물 한 숟가락을 내어 마시게 하고 다시 약을 발랐다. 하루 지나면 통증이 누그러지고 한 달이면 나을 수 있지만, 반드시 일 년 동안 먼 길을 걷지 않아야 예전 걸음을 되찾을 것이라고 하였다. 네 금으로 사례하여도 부족히 여기는 기색이 없었으며 뒤에 과연 기한대로 나았다. 외딴 시골에도 능한 이가 있고 어려운 일을 가볍게 하면서 기술을 자랑하지 않는 것은 세속에서 하기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다. 뒤에 친구의 자리에서 이 일을 말하니 제남의 서제량 태상이 ‘마신 약의 이름은 목내이이며 사람의 뼈가 부러졌을 때 이것을 얻으면 이을 수 있다’고 하였다. 나중에 도구성의 《철경록》을 보니 천방국 사람이 일흔여덟 살에 몸을 바쳐 여러 사람을 구하고자 하면 음식을 끊고 날마다 목욕하며 꿀만 먹었다. 한 달이 지나 대소변이 모두 꿀이 되고 죽으면 나라 사람들이 돌관에 염하되 꿀을 가득 채워 담그고 연월을 새겨 표시하여 두었다. 백 년 뒤 봉함을 열면 밀제가 되며 팔다리를 다친 사람이 조금만 복용해도 곧 나으니, 이것이 곧 목내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매우 귀하여 그 나라에서도 쉽게 얻지 못한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서씨의 말은 참으로 근거가 있다.
泰西醫士言善治跌撲損傷不知此技莫過於蒙古乾隆時越東俞孝謙澄北上墮車折斷脅骨四根蒙古醫生取驢骨易之束以帛牛年而愈惟戒終身弗食驢肉又齊次鳳侍郎趨直圓明園墜馬破腦腦漿流溢僅存一息延蒙古傷科治之刲羊腦以補之調藥末敷其外一日夜少蘇然視物皆倒懸以鼓於腦後敲數十槌視物始正閱八月而平復今中外醫人恐未必有此神技也
태서의 의사는 넘어지고 부딪쳐 손상된 것을 잘 치료한다고 말하지만, 이 기술이 몽골만 못함은 알지 못한다. 건륭 때 월동의 유효겸 징이 북쪽으로 가다가 수레에서 떨어져 갈비뼈 네 개가 부러졌다. 몽골 의사가 당나귀 뼈로 바꾸고 비단으로 묶어 반년 만에 나았으나, 평생 당나귀 고기를 먹지 말라고 경계하였다. 또 제차봉 시랑이 원명원에 숙직하러 급히 가다가 말에서 떨어져 머리가 깨지고 뇌수가 흘러 겨우 한 줄기 숨만 남았다. 몽골 상과를 불러 치료하게 하니 양의 뇌를 베어 보충하고 약가루를 개어 겉에 발랐다. 하루 밤낮 지나 조금 깨어났으나 물체가 모두 거꾸로 보이므로 뒤통수에서 북을 수십 번 두드렸더니 비로소 똑바로 보였다. 여덟 달 지나 평복하였다. 지금 안팎의 의사에게 이런 신묘한 기술이 반드시 있을지는 모르겠다.
元明有剛哈刺咱慶王在上都嘗因墜馬致兩目黑睛俱無而舌出幾至胸諸醫束手時維廣惠司卿聶某言識此症乃以剪刀去其舌少頃復出一舌復去之並於兩旁各去一指許用藥塗之越夕而目睛如舊更無疾苦事見楊瑀山居新話謂聶某親與言之其剪下之舌尚存也按廣惠司乃回回醫人所隸聶某或曾見此症故能為之治惜當日元誠先生會未一詢其病由也
원명 때 강합랄찰 경왕이 상도에 있을 때 말에서 떨어져 두 눈의 검은 눈동자가 모두 없어지고 혀가 거의 가슴까지 나왔다. 여러 의원이 손을 쓰지 못하였는데, 당시 광혜사경 섭 아무개가 이 증상을 안다고 하였다. 이에 가위로 그 혀를 잘라 내자 잠시 뒤 다시 혀 하나가 나왔으므로 또 잘라 내고, 양옆에서도 각각 한 손가락 길이쯤 잘라 낸 뒤 약을 발랐다. 하룻밤이 지나자 눈동자가 예전처럼 되고 다시는 병고가 없었다. 이 일은 양우의 《산거신화》에 보이는데, 섭 아무개가 직접 이야기해 주었으며 잘라 낸 혀도 아직 남아 있다고 하였다. 살펴보면 광혜사는 회회인 의원들이 소속된 곳이다. 섭 아무개는 혹 이 증상을 본 적이 있어서 치료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원성 선생이 그 병의 원인을 한 번도 물어보지 않은 것이 애석하다.
咸豐初黃嚴邑某賈於滬一夕偕友小飲歸時已三鼓倏有旋風颳地起風過葉仆地不起同伴扶掖回寓逾時氣絕其友徐姓者當謂餘日葉年壯盛氣體素強何病之驟而死之速也余曰此殆非病或因驚散生魂耳部是時尚可救否曰按本草以腰刀鞘二三寸燒灰服謂可救明年徐赴蘇郡泊舟黃渡晚餐方畢聞岸上喧呶聲往觀見一人倒地困詢其何病其家人曰本無疾苦因黃昏出門欲往友家行未牛里遽踣於此徐憶余言令以刀鞘試之移時漸蘇頃即起坐自言初至此聞樹頭鳥聲亂噪陰風起林間使人亳發皆豎忽來一巨人揮拳猛擊駭極狂竄正不識路繼聞前面鋒刃聲甚厲意巨人持械復來遂回身而走不知何以仍在此也觀此可見古書所載奇方異疾若治之得中罔無不驗者然此理甚微頗不易解嘗觀拮奇集載黑犬遍體無雜毛目如丹朱者名風夷能冶飛頭之疾初不知飛頭何疾閱搜神記吳時將軍朱桓一婢每夜臥頤輒飛去將曉復還又酉陽雜俎言嶺南溪洞中往往有飛頭者故有飛頭猴子之名頭飛一日前頭有痕匝項如紅縷妻子咸守之其人及夜狀如病頭忽離身而去將曉復還如夢覺云噫此固疾耶奇甚矣未識何中而得編闊諸書無從考證耳宋徐文伯入山採藥遇二老人鑿石取水自飲文伯渴甚欲乞一孟老人曰此玉液也非汝可飲過懇之授半盞方入口齒即相擊下咽覺冷不可耐一老曰何自苦乃爾遂摘樹葉三片使食食之即覺溫暖異常老人復授書一冊曰歸習之能療做人疾文伯暮年遂神其技嘗於路旁見一人倒地死腹大如甕文伯曰此人為爆蛇擊死氣雖絕神未離尚可活也乃取藥丸納其鼻孔頃之腹嗚便紲而蘇眾問所施何藥曰䲵角犀也按䲵角犀乃巨蛇角能解諸毒又明帝時有內侍患頭痛如破發即厥絕群醫以為風文伯曰此腦蛆也以藥點兩眼角頃則鼻中出蛆無數乃取以搗汁入藥少許令服日此腦蛆所化非此不能補耳自後病遂不發
함풍 초년에 황엄현의 어떤 사람이 상해에서 장사하였다. 어느 날 밤 친구들과 조금 술을 마시고 돌아올 때 이미 삼경이었는데,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땅에서 일어났다. 바람이 지나가자 엽이 땅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였다. 동행이 부축하여 숙소로 돌아왔으나 얼마 뒤 숨이 끊어졌다. 그의 친구인 서씨가 내게 말하였다. “엽은 한창 나이로 몸도 늘 튼튼하였는데 어찌 병이 그리 갑작스럽고 죽음이 그리 빠릅니까?” 내가 말하였다. “이는 아마 병이 아니라 놀라서 살아 있는 혼이 흩어진 것일 겁니다.” “그때에도 구할 수 있었겠습니까?” “《본초》에는 허리에 차는 칼의 칼집을 2~3촌 잘라 태운 재를 먹이면 구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듬해 서씨가 소군으로 가다가 황도에 배를 대었다. 저녁밥을 막 먹은 뒤 강가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려 가 보니 한 사람이 땅에 쓰러져 있었다. 무슨 병인지 물으니 그 집 사람이 말하였다. “본래 아픈 데가 없었는데, 해 질 무렵 친구 집에 가려고 나갔다가 반 리도 못 가 갑자기 여기 쓰러졌습니다.” 서씨가 내 말을 기억하고 칼집으로 시험하게 하였더니 얼마 뒤 점차 깨어나 곧 일어나 앉았다. 그가 스스로 말하였다. “처음 여기에 왔을 때 나무 위의 새들이 어지럽게 지저귀고 숲에서 음산한 바람이 일어나 온몸의 털이 곤두섰습니다. 갑자기 거인이 나타나 주먹을 휘둘러 세게 치기에 몹시 놀라 미친 듯 달아나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이어 앞에서 칼날 소리가 몹시 사납게 들려 거인이 무기를 들고 다시 오는 줄 알고 몸을 돌려 달렸는데, 어찌하여 여전히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를 보면 옛 책에 실린 기이한 처방과 이상한 병도 치료가 적중하면 효험이 없는 것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이치는 매우 미묘하여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일찍이 《길기집》을 보니 온몸에 잡털이 없고 눈이 붉은 주사 같은 검은 개를 풍이라 하며, 비두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비두가 무슨 병인지 몰랐다. 《수신기》를 보니 오나라 때 장군 주환의 여종 하나가 매일 밤 누우면 턱이 날아갔다가 날이 밝을 무렵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또 《유양잡조》에는 영남의 계동에 머리가 날아가는 사람이 종종 있으므로 비두후자라는 이름이 있다고 하였다. 머리가 날아가기 하루 전에는 머리에 붉은 실 같은 자국이 목을 둘러 생기므로 처자들이 모두 지켜본다. 그 사람은 밤이 되면 병든 듯하다가 머리가 갑자기 몸에서 떨어져 날아가고, 날이 밝을 무렵 다시 돌아오면 꿈에서 깨어난 것 같다고 한다. 아, 이것도 참으로 병인가? 매우 기이하다. 무엇에 맞아 생기는지 알지 못하겠고 여러 책을 두루 보아도 고증할 길이 없다. 송나라 서문백이 약을 캐러 산에 들어갔다가 두 노인이 돌을 뚫고 물을 얻어 마시는 것을 만났다. 문백은 몹시 목이 말라 한 사발을 청하려 하였다. 노인이 “이는 옥액으로 네가 마실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나 거듭 간청하자 반 잔을 주었다. 입에 넣자 곧 이가 서로 부딪쳤고 삼키니 차가워 견딜 수 없었다. 한 노인이 “어찌 스스로 이처럼 괴로움을 당하는가?” 하며 나뭇잎 세 장을 따 먹게 하니, 먹고 나서 곧 유난히 따뜻해졌다. 노인은 다시 책 한 권을 주며 “돌아가 익히면 사람들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였다. 문백은 만년에 마침내 그 의술이 신묘해졌다. 한 번은 길가에서 사람이 쓰러져 죽어 있는데 배가 항아리처럼 큰 것을 보고 말하였다. “이 사람은 폭사에 맞아 죽었다. 기는 끊어졌어도 신이 아직 떠나지 않았으므로 살릴 수 있다.” 이에 약환을 콧구멍에 넣으니 잠시 뒤 배에서 소리가 나고 설사를 하며 깨어났다. 사람들이 무슨 약을 썼느냐고 묻자 “작각서다”라고 하였다. 살펴보면 작각서는 큰 뱀의 뿔로 여러 독을 풀 수 있다. 또 명제 때 어떤 내시가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발작하면 곧 정신을 잃어 여러 의원이 풍이라고 여겼다. 문백은 “이는 뇌저다”라 하고 약을 두 눈구석에 찍어 발랐다. 잠시 뒤 코에서 구더기가 무수히 나왔으므로 이를 가져다 찧어 즙을 내고 약을 조금 넣어 먹게 하며 말하였다. “이는 뇌저가 변화한 것이니 이것이 아니면 보할 수 없다.” 그 뒤로 병이 다시 발작하지 않았다.
時下庸淺醫梳有三惡習寫方作狂草用藥好奇異不問病情妄言知脈不知醫稱司命當如何鄭重而率意如此其道亦概可知矣耍知此輩固未會讀書識字略知藥性溫涼便欲以寒投熱恐人識其學淺而必強書脈案又慮多別字故作行草以混字跡不慮肆人莫辯不顧病者安危忍心大膽莫此為甚方中每用非習見之品有本草所不載者余當考其所本不但不明出處且未辨其氣味不知古人常用之藥不過數十昧如六君四物六味等百世不刊之方試問有異常之藥否聲色證形脈為五診故必聞聲棚色辨證察形復以脈合病情庶幾胸有成竹然亦有脈症兩歧者故前人有取症不取脈取脈不取症之義按人身脈絡肯乎天地流行達乎陰陽造化但可測其常不能盡其變也晉太醫令王叔和撰脈經猶未能盡泄其奧蓋脈理淵深惟求於微茫呼吸之間豈能瞭如指掌哉陶節庵日指下難明者真言也誇言遍曉者但能言而不能行也其所著傷寒全生集惟取浮中沈以分陰陽虛實病之傳變但求於動靜躁盛之間此亦宗仲景只別陰陽之義也
요즘 용렬하고 천박한 의원들에게는 세 가지 나쁜 습관이 있다. 처방을 광초로 쓰고, 약을 쓸 때 기이한 것을 좋아하며, 병정을 묻지도 않고 맥을 안다고 함부로 말하는 것이다. 의원은 생명을 맡는 사람이라 불리니 얼마나 신중해야 하겠는가? 그런데 이처럼 제멋대로이니 그 의술도 대략 알 만하다. 이런 사람들은 본래 책을 읽어 글자를 익힌 적도 없이 약성이 따뜻하고 서늘한 것을 조금 알고는 곧 찬 약으로 열을 치료하려 한다. 남이 자신의 학식이 얕음을 알까 두려워 억지로 맥안을 쓰고, 또 틀린 글자가 많을까 염려하여 행초로 써서 글자 모양을 흐린다. 약방 사람이 알아보지 못할 것을 걱정하지도 않고 환자의 안위를 돌보지도 않으니, 잔인하고 대담하기가 이보다 심할 수 없다. 처방에는 늘 흔히 보지 못하는 약물을 쓰는데 《본초》에 실리지 않은 것도 있다. 내가 그 근거를 살펴보면 출처가 분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기미도 분별하지 못한다. 옛사람이 늘 쓰던 약은 몇십 가지에 지나지 않았다. 육군·사물·육미 같은 것은 백세토록 바뀌지 않을 처방인데, 그 안에 기이한 약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소리·안색·증상·형체·맥은 다섯 가지 진찰이므로 반드시 소리를 듣고 안색을 살피며 증상을 분별하고 형체를 관찰한 뒤 다시 맥을 병정에 맞추어야 거의 가슴속에 확실한 판단이 선다. 그러나 맥과 증상이 서로 다른 경우도 있으므로 앞사람들은 증상을 취하고 맥은 취하지 않거나, 맥을 취하고 증상은 취하지 않는 뜻을 두었다. 사람 몸의 맥락은 천지의 운행에 부합하고 음양의 조화에 통하므로 그 일정한 것은 헤아릴 수 있어도 변화를 다 알 수는 없다. 진나라 태의령 왕숙화가 《맥경》을 지었어도 그 오묘함을 모두 드러내지 못하였다. 맥리는 깊고 깊어 희미한 호흡 사이에서 찾을 수밖에 없으니 어찌 손바닥 보듯 분명히 알 수 있겠는가? 도절암이 “손가락 아래에서 밝히기 어렵다는 것이 참말이다. 두루 안다고 자랑하는 자는 말만 할 뿐 실행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가 지은 《상한전생집》에서는 부·중·침만 취하여 음양허실을 나누고 병의 전변은 동정과 조성 사이에서만 찾았으니, 이것도 중경이 음양만 구분한 뜻을 따른 것이다.
抱朴子曰服金者壽如金服玉者壽如玉然煉服之法失傳已久世人未得其術而輕試之淺則骨痿久則致命是欲延年而反促其壽矣後魏李預餐玉致疾謂其妻曰服玉者當屏居山林排棄嗜欲而我酒色不絕自致於死撲藥之過然雖死而屍體必當有異宜勿遽殮令人知餐服之功時在七月中長安毒熱如拂而屍停四日體仍不變日亦無穢昔人有臨死服玉層五筋死經三年膚殼如生者李時玲日服玉末不能令生者不死惟能使死者不朽耳
《포박자》에서 “금을 먹는 자는 금처럼 오래 살고, 옥을 먹는 자는 옥처럼 오래 산다”고 하였다. 그러나 제련하여 먹는 방법은 전해지지 않은 지 이미 오래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그 방법을 얻지 못하고 경솔하게 시험하니, 가볍게는 뼈가 약해지고 오래되면 목숨을 잃는다. 수명을 늘리려다가 도리어 단축하는 것이다. 후위의 이예가 옥을 먹다가 병이 나서 아내에게 말하였다. “옥을 먹는 자는 산림에 숨어 살며 기호와 욕망을 버려야 하는데, 나는 술과 여색을 끊지 않아 스스로 죽음을 불렀으니 약을 내리친 잘못이다. 그러나 죽어도 시체는 반드시 남다를 것이니 서둘러 염하지 말고 사람들이 복용의 효험을 알게 하라.” 때는 7월 중순으로 장안의 지독한 더위가 끓는 듯하였으나 시체를 나흘 두어도 몸이 변하지 않았고 냄새도 없었다. 옛날에 죽음에 임박하여 옥 부스러기 5근을 먹고 죽은 지 3년이 지나도 피부와 몸이 살아 있는 것 같았던 사람이 있다. 이시령은 “옥가루를 먹어도 산 사람을 죽지 않게 할 수는 없고, 다만 죽은 사람을 썩지 않게 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東坡晚年好燒煉之術冬與方外遊嘗遇靈智道人授以煉服丹法方於二至日常吸鼻液漱咽獨居淨案溺則封置瓷器中滿月開視當有細砂結其上如浮蟻然以絹濾取川新汲水淘淨棗肉為丸此名陽丹陰煉又取人乳入銀鼎慢火費煉如淡金色為丸此名陰丹陽煉蓋此二物須經煆煉始有陰陽相濟之功得成九轉還丹之力坡背謂靈智妙用沉機捷法非其人不輕泄也
동파는 만년에 소련하는 술법을 좋아하여 자주 방외의 사람들과 어울렸다. 일찍이 영지 도인을 만나 단약을 제련하여 먹는 방법을 전수받았다. 두 지일에 늘 콧물을 들이마시고 입을 가셔 삼키면서 깨끗한 방에 홀로 지내고, 소변을 보면 사기그릇에 봉하여 둔다. 한 달이 차서 열어 보면 위에 작은 모래가 떠 있는 개미처럼 맺혀 있으니, 비단으로 걸러 갓 길은 물로 깨끗이 씻고 대추 살로 환을 만든다. 이를 양단음련이라 한다. 또 사람 젖을 은 솥에 넣고 약한 불로 달여 연한 금빛처럼 되면 환을 만드는데, 이를 음단양련이라 한다. 이 두 가지는 반드시 단련을 거쳐야 비로소 음양이 서로 돕는 공효가 생기고 구전환단의 힘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동파는 일찍이 영지의 묘한 작용과 깊은 기틀, 빠른 방법은 마땅한 사람이 아니면 함부로 누설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成天地者氣也天地成而萬物生氣固為生牛之本凡血肉之物氣全則生氣盡剛死此自然之理術家有服氧之法不過能卻病延年亦不能令人不飢不食然接孔子家語食石者肥澤而不老食水者耐寒而若浮食肉者勇而悍食谷者智慧而夭食氣者神明而壽不食者不死而神是食氣固能不死也嘗闊宋人雜話嘉佑間河北大飢有民襁負一子覓食他方中傍迫於飢困逐棄子於空塚中歲定歸鄉過其處收埋殘骨則兒未死肥健愈於棄時塚中空無所有惟見蟾蜍大如車輪氣咻咻然自出穴中抱兒與之食不食六七歲肌膚如玉其父攜至京師以示兒科醫者言物之有氣者能蟄燕索蝦蟆之類是也能蟄則能不食而壽此千歲蝦蟆也兒得氣故不飢若聽不食終身不娶後必成道無須藥也東坡集亦載其事諒非子慮然思兒在塚中得其氣不死或然既比穴仍不貪不飢理殊不易解
천지를 이루는 것은 기이다. 천지가 이루어지면 만물이 생겨나니 기는 본래 생명의 근본이다. 피와 살을 가진 것은 모두 기가 온전하면 살고 기가 다하면 죽으니 이는 자연의 이치이다. 술가에게 복기법이 있으나 병을 물리치고 수명을 늘릴 수 있을 뿐, 사람을 배고프지 않고 먹지 않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자가어》에 따르면 돌을 먹는 자는 살지고 윤택하여 늙지 않으며, 물을 먹는 자는 추위를 견디고 잘 뜨며, 고기를 먹는 자는 용감하고 사나우며, 곡식을 먹는 자는 지혜롭지만 일찍 죽고, 기를 먹는 자는 신명이 밝고 오래 살며, 먹지 않는 자는 죽지 않고 신령해진다고 하였으니, 기를 먹으면 본래 죽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찍이 송나라 사람의 잡화를 보니 가우 연간에 하북에 큰 기근이 들었다. 한 백성이 아이 하나를 포대기에 업고 다른 곳으로 먹을 것을 찾아가다가 도중에 굶주리고 지쳐 빈 무덤 속에 아이를 버렸다. 해가 안정된 뒤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그곳에 들러 남은 뼈를 거두어 묻으려 했더니, 아이가 죽지 않고 버릴 때보다 더 살지고 건강하였다. 무덤 속에는 아무것도 없고 다만 수레바퀴만 한 두꺼비가 구멍 속에서 씩씩거리며 기를 내뿜고 있었다. 아이를 안아다가 먹을 것을 주어도 먹지 않았고, 여섯이나 일곱 살이 되었을 때 피부가 옥 같았다. 아버지가 서울로 데려가 소아과 의원에게 보이니 그가 말하였다. “기를 지닌 것 가운데 동면할 수 있는 것으로 제비·뱀·두꺼비 같은 것이 있다. 동면할 수 있으면 먹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다. 이것은 천 살 된 두꺼비다. 아이가 그 기를 얻었으므로 배고프지 않은 것이다. 먹지 않는 대로 두고 평생 장가들지 않으면 뒤에 반드시 도를 이루니 약이 필요 없다.” 《동파집》에도 이 일이 실려 있으니 아마 허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아이가 무덤 속에서 그 기를 얻어 죽지 않은 것은 그럴 수도 있겠으나, 이미 굴을 나와서도 먹지 않고 배고프지 않은 것은 이치상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昔在京邸遇東魯宋老人太常初年九十有四鬚髮皓然顏如童子下榻福清道院日惟靜坐一室三餐之外無所嗜好余會叩其攝生之術曰飲食但取益人毋求爽口弗食與體相妨之物自言幼時脾胃素弱故生平不食瓜果油膩炙煿雖佳品羅列未嘗朵頤故能保此殘年縱口腹而不自惜其身不可為智此言勝藥石余嘗志之
예전에 서울의 숙소에서 동로의 송 노인을 만났는데 태상이었다. 그때 나이는 아흔넷이고 수염과 머리카락이 하얗지만 얼굴은 어린아이 같았다. 복청도원에 묵으며 날마다 방 하나에서 조용히 앉아 있을 뿐 세 끼 식사 외에는 좋아하는 것이 없었다. 내가 섭생하는 방법을 여쭈니 말하였다. “음식은 사람에게 이로운 것만 취하고 입에 맞는 것을 구하지 말며 몸에 방해되는 것을 먹지 않아야 하오.” 또 스스로 어려서 비위가 본래 약하여 평생 참외와 과일, 기름진 것과 구운 것을 먹지 않았으므로, 좋은 음식이 즐비해도 입맛을 다시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 남은 나이를 보전할 수 있었소. 입과 배의 욕구를 풀어 주며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 것은 지혜롭다고 할 수 없소.” 이 말은 약석보다 나으므로 나는 늘 기억하였다.
神農以赭鞭鞭百草盡去其毒而後辨其氣味察其寒溫著本草經三卷後雖漸積增加然至漢末亦僅傳三百六十五種至明柬璧氏匯諸諸家著綱目一書多至一千八百九十二種而歧誤亦多餘謂古書簡而多缺今書繁而多訛近惟澉水吳氏之從新去取適中便於檢閱宜為人所膾炙然屆今甫百年而品味已多變異甚至有是名而無是物肆中遂以他藥代之醫者但知某藥治某病泛取而浪用之貽誤尚有窮乎余不揣固鄙嘗欲明出處辨氣味詮真偽去所無補所缺更勒一書名曰本草時宜以切於用然必考證詳確而後筆之故二十年來僅得七十餘種今年逾周甲慮不能竟其事倘得假吾數年應於是書無憾云
신농은 붉은 채찍으로 온갖 풀을 쳐서 독을 모두 없앤 뒤 기미를 분별하고 한온을 살펴 《본초경》 세 권을 지었다. 뒤에 차츰 늘어났으나 한나라 말에도 겨우 365종이 전해졌다. 명나라 동벽씨가 여러 학자의 것을 모아 《강목》 한 책을 지었을 때는 1,892종에 이르렀으나 서로 엇갈리고 잘못된 것도 많다. 나는 옛 책은 간략하여 빠진 것이 많고 오늘날 책은 번다하여 잘못이 많다고 생각한다. 근래에는 감수 오씨의 《종신》만이 취하고 버림이 적절하고 찾아보기 편하여 사람들에게 널리 읽힐 만하다. 그러나 지금 겨우 백 년이 되었는데 약물의 종류와 맛이 이미 많이 달라졌고, 심지어 이름만 있고 그 물건은 없어 약방에서 다른 약으로 대신하기까지 한다. 의원들은 어떤 약이 어떤 병을 치료한다는 것만 알고 함부로 취하여 마구 쓰니, 잘못을 끼치는 데 끝이 있겠는가? 나는 고루하고 비루함을 헤아리지 않고 일찍이 출처를 밝히고 기미를 분별하며 진위를 설명하고 없는 것을 없애고 빠진 것을 보충하여, 다시 한 책을 엮어 《본초시의》라 이름 짓고 실제 쓰임에 맞추려 하였다. 그러나 반드시 상세하고 정확하게 고증한 뒤에야 써야 하므로 20년 동안 겨우 70여 종을 얻었다. 이제 나이가 환갑을 넘어서 그 일을 마치지 못할까 걱정한다. 만일 몇 년의 수명을 더 얻는다면 이 책에 유감이 없을 것이다.
人參在古本草云生土黨山谷及遼東形長而色黃狀如防風產百濟者形細而堅白氣味薄於上黨此皆言黨參也瀕湖李氏輯本草綱目廣收諸品而未及於參至我朝澉水吳氏訂從新一書始分人參黨參為兩種知明時尚無人參百濟新羅高厥等國來中土互市者皆上黨之類按談苑載邵化及為川國王治藥言參技極堅用斧斷之香馥一殿又航海續編云遼東有韃參色紅澤體實有心味甘微苦斷之有金並玉闌紋人啣之走氣息自若則都指人參而言矣時以中國未行敵不入內地國初始見用其名乃著於時嗣後採者多而產漸少入山柳無所得生棄其業逍光初近山家戶取子種之偽充山參遂以亂反漸至真者幾絕醫者以是物多偽亦將棄此勿用是亦參之一厄也今寧古臺參久已罕見惟船廠為上鳳以城次之鳳產質嫩而糖重故價亦較賤但昔以光圓短熟為佳今則以糙熟兼均為貴是又參之小變當觀甌北集云曩閱國史我朝以參貿高麗定價十兩一斤迨定鼎中原售者多而個慚貴然考康熙甲午查悔余謝挨愷功惠唐詩有十斤易一兩蓋是時參價不過十換乾隆十五年餘應京兆試慮精力不支以白金一兩六錢易參一錢二十八年因病服參則其價貴已過半三十年來何啻更增十倍云云按今之市價雖不甚相懸而物產則遠不如前矣余嘗悉心辨別始知是物真偽固非難識在今之醫士尋常草木尚不深求氣味況非習見之品有終其身未嘗一睹廬山面目者猶何可與言哉究之真非絕無特其價過昂識者亦罕故非富貴家素講服餌者鮮克知其味矣然於痘科產科及元氣欲脫之症實有起死回生之力斷非他藥所能代也憶昔某戚婦每產血必大下服參則止道光壬辰復娩時次參甚行某置兩許意十倍服之功力足以柑抵及服崩血愈甚氣竭欲脫急市山參一錢服之即止按參之功用固在諸藥之上行之中土百有餘年活人無算自為奸民私種以致魚目混珠遂見疑於世而勿用可不惜哉
인삼은 옛 《본초》에서 상당의 산골짜기와 요동에서 나며, 모양이 길고 빛이 누렇고 방풍처럼 생겼고, 백제에서 나는 것은 가늘고 단단하며 희고 기미는 상당산보다 엷다고 하였다. 이는 모두 당삼을 말한 것이다. 빈호 이씨가 《본초강목》을 편찬하며 여러 약물을 널리 모았으나 인삼에는 미치지 못하였고, 우리 왕조의 감수 오씨가 《종신》을 편정하면서 비로소 인삼과 당삼을 두 종류로 나누었다. 이로써 명나라 때는 아직 인삼이 없었고, 백제·신라·고궐 등의 나라에서 중국으로 와 교역한 것은 모두 상당의 종류였음을 알 수 있다. 《담원》에 소화급이 천국왕을 위해 약을 마련하며 “삼의 가지가 매우 단단하여 도끼로 자르니 향기가 온 전각에 가득하였다”고 하였고, 또 《항해속편》에는 “요동에 달삼이 있는데 붉고 윤택하며 몸이 충실하고 속심이 있다. 맛은 달면서 조금 쓰고 잘라 보면 금정옥란 무늬가 있다. 사람이 이것을 머금고 달리면 호흡이 평상시와 같다”고 하였으니, 이는 모두 인삼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당시 중국에서는 쓰이지 않았으므로 내지에 들어오지 않았고, 국초에 비로소 쓰이면서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 뒤 캐는 자가 많아 생산이 점점 줄고 산에 들어가도 얻는 것이 없자 마침내 그 생업을 버렸다. 도광 초년에는 산 가까이 사는 집마다 씨를 얻어 심고 산삼으로 속여 진짜와 뒤섞으니, 차츰 진품이 거의 끊어지게 되었다. 의원들도 가짜가 많다는 이유로 이 약을 버리고 쓰지 않으려 하니, 이것도 삼이 겪는 하나의 재앙이다. 지금 영고대의 삼은 오래전부터 보기 드물고, 선창산이 가장 좋으며 봉이성산이 그다음이다. 봉산은 질이 연하고 당분이 많아 값도 비교적 싸다. 다만 옛날에는 매끈하고 둥글며 짧고 잘 익은 것을 좋게 여겼으나, 지금은 거칠고 익은 정도가 고른 것을 귀하게 여기니 이것도 삼의 작은 변화이다. 《구북집》을 보니 이러하였다. “지난날 국사를 보니 우리 왕조가 삼으로 고려와 교역할 때 정한 값은 1근에 10냥이었다. 중원에 도읍을 정한 뒤 파는 사람이 많아지고 값은 점점 비싸졌다. 그러나 강희 갑오년에 사희여가 의개공이 삼을 보내 준 것에 감사한 시를 살펴보면 ‘10근을 1냥과 바꾼다’고 하였으니, 그때 삼 값은 열 배를 바꾸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건륭 15년에 내가 경조시에 응시할 때 정력이 버티지 못할까 걱정하여 은 1냥 6돈으로 삼 1돈을 바꾸었다. 28년에 병으로 삼을 먹을 때는 값이 이미 절반 넘게 비싸졌고, 30년 동안에 다시 열 배 오른 정도에 그치겠는가.” 지금의 시세를 보면 값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물건은 예전만 훨씬 못하다. 내가 일찍이 마음을 다하여 분별해 보니 이 물건의 진위를 알아보는 것이 본래 어렵지 않음을 비로소 알았다. 지금 의원들은 흔한 초목도 그 기미를 깊이 찾지 않는데, 하물며 흔히 보지 못하는 물건이겠는가? 평생 그 진면목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자가 있으니 어찌 함께 말할 수 있겠는가? 결국 진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값이 너무 비싸고 아는 사람도 드물므로, 평소 복이를 강구하는 부귀한 집이 아니면 그 맛을 아는 이가 드물다. 그러나 두과와 산과, 원기가 벗어나려는 증상에는 실로 죽은 이를 되살리는 힘이 있으니 다른 약으로 대신할 수는 결코 없다. 예전에 어떤 친척의 부인이 출산할 때마다 반드시 피를 크게 쏟았는데 삼을 먹으면 멎었다. 도광 임진년에 다시 출산하였을 때는 질이 낮은 삼이 매우 유행하였다. 그 사람이 1냥쯤 사서 열 배를 먹이면 효력이 맞먹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먹고 나서 출혈이 더욱 심해지고 기가 다하여 탈하려 하였다. 급히 산삼 1돈을 사서 먹이니 곧 멎었다. 삼의 공용은 본래 여러 약보다 뛰어나 중국에서 쓰인 백여 년 동안 살린 사람이 헤아릴 수 없었다. 간사한 백성들이 사사로이 심어 물고기 눈이 구슬과 뒤섞인 뒤부터 세상에서 의심하여 쓰지 않게 되었으니 애석하지 않은가?
經云五穀為養五蔬為充蔬者疏也所以佐穀氣而疏通壅滯也時珍日凡草木之可茹者為韭芥葵蔥藿五菜然菜固不止於五說原蔬植三百有六十綱目僅收一百五種餘俱不可考今民生日用之常更不及十之三四耳按蔬品惟蒜胡荽苜蓿漢時得之西域唐貞觀中泥婆羅國又獻菠稜菜渾提蔥至今傳種不絕近通泰西諸國其蔌果攜入內地土人寬種植之市以獲利而華人亦有以之充饌者今略擇數種辨其氣味以備考證卷心菜俗名哈唎菜葉卷如球色青經霜後微紅去數層內葉嫩黃脆美俟其皂放其大如蓋氣味廿平利腸清胃大抵似菘而味不及耳花菜來自花旗故名葉缺刻如細芥色淺黃味甘淡潤肺化痰性亦和平筍芽色白細長形加玉箸味淡微辛中實無節固非竹類士人因其形似筍芽故名之耳然南菘北植即化蕪菁今隔數萬里重洋而仍不失色味是亦不可解也
경에서 “오곡으로 기르고 다섯 채소로 채운다”고 하였다. 채소의 소는 소통한다는 뜻이니 곡기의 작용을 도와 막힌 것을 소통시키는 것이다. 시진은 초목 가운데 먹을 수 있는 것을 부추·겨자·아욱·파·콩잎의 다섯 채소라 하였다. 그러나 채소가 본래 다섯 가지에 그치지는 않는다. 《설원》의 채소는 360가지인데 《강목》에는 겨우 105가지를 실었고 나머지는 모두 고찰할 수 없다. 오늘날 백성들이 날마다 늘 쓰는 것은 그 십분의 삼사에도 미치지 못할 뿐이다. 채소 중 마늘·고수·목숙은 한나라 때 서역에서 얻었고, 당 정관 연간에 니파라국에서 또 파릉채와 혼제총을 바쳐 지금까지 종자가 끊이지 않고 전해졌다. 근래 태서 여러 나라와 왕래하면서 그 채소와 과일을 내지에 들여오자, 토박이들이 널리 심어 시장에 내다 팔아 이익을 얻고 중국 사람들도 이것으로 반찬을 마련한다. 이제 몇 가지를 간략히 골라 기미를 분별하여 고증에 대비한다. 권심채는 속칭 합리채라고 한다. 잎이 공처럼 말리고 푸른빛인데 서리를 맞으면 조금 붉어진다. 몇 겹을 벗기면 속잎은 연한 누런빛으로 아삭하고 맛있으며, 잎이 활짝 펴지면 크기가 덮개만 하다. 기미는 달고 평하며 장을 이롭게 하고 위를 맑게 한다. 대체로 배추와 비슷하지만 맛은 못하다. 화채는 화기에서 왔으므로 붙인 이름이다. 잎에 가는 겨자처럼 패인 자국이 있고 연한 누런빛이며 맛은 달고 담담하다. 폐를 윤택하게 하고 담을 삭이며 성질도 화평하다. 순아는 희고 가늘고 길어 옥젓가락처럼 생겼으며 맛은 담담하고 조금 맵다. 속이 차 있고 마디가 없으므로 본래 대나무 종류가 아니다. 사람들이 죽순의 싹과 비슷하게 생겼다 하여 이름 붙였을 뿐이다. 그러나 남쪽 배추를 북쪽에 심으면 곧 순무로 바뀌는데, 이제 수만 리의 겹겹 바다를 건너와서도 빛깔과 맛을 잃지 않으니 이것도 이해할 수 없다.
古人春食涼夏食寒以養陽秋食溫冬食熱以養陰此四時之宜以合陰陽而安六腑然天生果品亦以應候以益人如春生梅酸斂以平肝木夏生瓜甘寒以清暑熱秋生梨甘涼以肅肺金冬熟杞甘溫以益腎水此即經言五果為助五味五色以應五臟也
옛사람은 봄에 서늘한 것을 먹고 여름에 찬 것을 먹어 양을 길렀으며, 가을에 따뜻한 것을 먹고 겨울에 뜨거운 것을 먹어 음을 길렀다. 이는 사계절에 마땅하게 하여 음양에 맞추고 육부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하늘이 과실을 내는 것도 계절에 응하여 사람을 이롭게 한다. 봄에 나는 매실은 시고 수렴하여 간목을 평하게 하고, 여름에 나는 참외는 달고 차서 더위의 열을 맑게 하며, 가을에 나는 배는 달고 서늘하여 폐금을 숙정하게 하고, 겨울에 익는 구기는 달고 따뜻하여 신수를 보익한다. 이것이 곧 경에서 오과가 보조하며 다섯 맛과 다섯 색이 오장에 응한다고 한 것이다.
方伎之流以法取童女初行經水謂之紅鉛多方制煉以惑人而尤甚行於明末有術士制一粒丹用乳調勻使人仰臥從鼻灌之美其名曰進大藥朝貴多趨之李可灼紅丸之案即此物也按婦人月水咸熱有毒服之傷腦術士之言豈足信哉觀蕭了真金丹詩亦可悟矣
방기를 행하는 무리는 방법을 써서 동녀가 처음 흘리는 월경수를 얻어 홍연이라 하고, 여러 방식으로 제련하여 사람을 미혹하였는데 특히 명나라 말에 매우 유행하였다. 어떤 술사는 한 알의 단을 만들어 젖에 고루 개고 사람을 반듯이 눕혀 코로 부어 넣으면서 대약을 들인다는 이름으로 미화하였고, 조정의 귀인들이 많이 따랐다. 이가작의 홍환 사건이 바로 이 물건이다. 살펴보면 부인의 월수는 짜고 뜨거우며 독이 있어 먹으면 뇌를 상한다. 술사의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소료진의 금단시를 보아도 깨달을 수 있다.
竹根木屑賢者注意世固無棄物也惟醫亦然苟明其意凡物皆可療疾如徐嗣伯嘗以棺中死人枕治屍疰石疣及多見鬼物均應手取效或問三症不同何皆用枕而瘥嗣伯曰屍疰鬼氣也伏而未起故令人沈滯以枕治之魂氣飛越不赴體矣石疣甚僻蟲性轉堅非藥力可遣因亦以鬼物驅散之至眼昏而見魍魎者邪氣入肝也以邪引邪固當用枕鉤之三者不相同而適相似得其意之所在而治之故皆驗也大抵自來以前未嘗用此嗣後靈鞋屍席與自縊死繩咸用以治病而本草亦收之耳
대뿌리와 나무 부스러기에도 현자는 마음을 두니 세상에는 본래 버릴 물건이 없다. 의술도 그러하여 그 뜻을 밝히면 무엇이든 병을 치료할 수 있다. 서사백은 일찍이 관 속 죽은 사람의 베개로 시주와 석우, 귀신이 자주 보이는 병을 치료하여 모두 손을 대자마자 효과를 얻었다. 누가 세 증상이 서로 다른데 어찌 모두 베개를 써서 나았느냐고 물으니 사백이 말하였다. “시주는 귀신의 기가 숨어 아직 일어나지 않아 사람을 가라앉고 막히게 하는 것이다. 베개로 치료하면 혼기가 날아 흩어져 몸으로 오지 않는다. 석우는 매우 특이하며 벌레의 성질이 갈수록 굳어져 약의 힘으로 없앨 수 없으므로, 이 또한 귀신의 물건으로 쫓아 흩어지게 한다. 눈이 어두워 망량이 보이는 것은 사기가 간에 들어간 것이다. 사로 사를 이끄니 본래 베개로 끌어내야 한다. 세 가지는 같지 않으나 마침 서로 비슷하므로 그 뜻이 있는 바를 얻어 치료하였기에 모두 효과가 있었다.” 대체로 그 이전에는 이것을 쓴 적이 없었는데, 뒤에는 죽은 이의 신과 시신을 깐 자리, 스스로 목매어 죽은 줄도 모두 병을 치료하는 데 쓰게 되어 《본초》에도 실렸다.
藥有雷丸之名本草謂與雷斧雷機畢霹靂擊物時精氣所化若埋於向陽之處數年後即大如卵堅如鐵矣按雷火本地中濕蒸之氣鬱久勃發隨地氣升池為陰中之陽雷丸得其餘氣故能除胃火散皮中結熱難久服則令人陰痿蓋亦性陰所致元至正間邑農家有老嫗為雷擊死頃之復甦日中含藥一丸吐以示人比鄰俞某意為神丹奪而吞之遂患喉痛物格格然若不化後因怒咳隨痰以出視之狀加李核質光潤而色黃斧擊不碎數年之咽痛遂止意此即雷丸之顯俞吞時其升騰之氣方盛迫火上炎故患咽痛迨為怒所激隨氣湧出物既去宜其病之頓失也
약에 뇌환이라는 이름이 있다. 《본초》에서는 뇌부·뇌기와 함께 벼락이 물건을 칠 때 정기가 변화한 것이라 하였고, 볕이 드는 곳에 묻으면 몇 년 뒤 알만큼 커지고 쇠처럼 단단해진다고 하였다. 살펴보면 뇌화는 본래 땅속의 습기가 쪄서 된 기가 오래 막혔다가 갑자기 일어나 땅의 기를 따라 올라오는 것으로, 음 가운데 양이다. 뇌환은 그 남은 기를 얻으므로 위화를 없애고 피부 속에 맺힌 열을 흩을 수 있으나, 오래 먹으면 사람을 음위하게 하니 이 또한 성질이 음하기 때문이다. 원나라 지정 연간에 고을의 한 농가에 늙은 여인이 벼락을 맞아 죽었다가 잠시 뒤 다시 살아났다. 입에 약 한 알을 머금고 있어 뱉어 사람들에게 보이니, 이웃 유 아무개가 신단이라고 여겨 빼앗아 삼켰다. 그러자 목이 아프고 무언가 걸려 내려가지 않는 듯하였다. 뒤에 화가 나 기침하면서 가래와 함께 나왔는데, 살펴보니 자두씨처럼 생겼고 매끄럽고 윤택하며 누런빛이었다. 도끼로 쳐도 부서지지 않았고 몇 년 동안의 목 아픔은 마침내 멎었다. 생각건대 이것이 곧 뇌환의 종류일 것이다. 유가 삼킬 때는 그 올라가는 기가 한창 왕성하여 화를 몰아 위로 타오르게 하였으므로 목이 아팠고, 노여움에 격발되어 기를 따라 솟아 나온 뒤에는 물건이 이미 없어졌으므로 병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 당연하다.
古無煙草昔閱入自海外得淡巴菰燃之以管吸其煙雲能闢瘴故明時徵滇軍中咸服之至我朝始盛行於內地今雖擔夫農工之輩無不備以供客按本草云其牲純陽能行能散故可化濕禦寒其氣入口頃刻而周一身令人通體俱快然火氣熏灼大損肺氣今之多患喉舌諸瘡未必非嗜煙所致近人慾避其火氣以銅為器置水於中使煙從水底起名曰水菸袋以為得既濟之法不知一吸三呼更傷氣分術生者還宜遠之
옛날에는 담배가 없었다. 예전에 외국에서 들어온 사람이 담파고를 얻어 불을 붙이고 관으로 그 연기를 빨아들이며 장기를 물리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명나라 때 운남을 정벌하는 군중에서 모두 피웠고, 우리 왕조에 이르러 비로소 내지에 크게 유행하였다. 지금은 짐꾼과 농부, 장인들까지도 손님에게 내려고 갖추지 않는 이가 없다. 《본초》에서 말하기를 그 성질은 순양으로 운행시키고 흩을 수 있으므로 습을 삭이고 추위를 막을 수 있으며, 그 기가 입에 들어가면 잠깐 사이 온몸에 돌아 온몸을 상쾌하게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화기가 쐬고 태워 폐기를 크게 상하니, 지금 목과 혀에 여러 창이 많이 생기는 것도 담배를 즐기는 탓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근래 사람들이 그 화기를 피하려고 구리로 기구를 만들고 그 안에 물을 넣어 연기가 물 밑에서 올라오게 하고는 수연대라 이름 지었다. 이것으로 기제의 방법을 얻었다고 여기지만, 한 번 들이마시고 세 번 내쉬는 것이 더욱 기분을 상함을 모른다. 생명을 보양하는 사람은 오히려 멀리해야 한다.
蜀地產椒分五色以按五行服餌家謂是草中之大丹煉服能堅齒髮調關節耐寒暑久則輕身益壽按椒性辛熱能損肺泄氣煉服亦非所宜今人因其馨香快膈每用以蘸食腥膽不知其肋火動血因以致病者夥矣漸寧陳彥生好食椒年未五十齒落過半此其驗也
촉 땅에서 나는 초는 다섯 색으로 나뉘어 오행에 맞는다. 복이하는 사람들은 이를 풀 가운데 대단이라 하며, 제련하여 먹으면 치아와 머리털을 튼튼하게 하고 관절을 고르게 하며 추위와 더위를 견디고, 오래되면 몸을 가볍게 하고 수명을 늘린다고 한다. 살펴보면 초는 성질이 맵고 뜨거워 폐를 손상하고 기를 새게 하므로 제련하여 먹는 것도 마땅하지 않다. 지금 사람들은 향기롭고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하여 늘 비린 음식에 찍어 먹지만, 화를 돕고 혈을 움직여 병이 드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모른다. 점녕의 진언생은 초를 즐겨 먹었는데 나이 오십이 못 되어 이가 절반 넘게 빠졌으니 이것이 그 증거이다.
諸凡含血之物其骨皆難長在人自胚胎至成人必二十年方堅骨髓惟麋鹿骨自生至堅不過兩月計一日夜能長數寸雖草木之易生猶不能及所以能堅筋骨強陽道益精髓舊有髓道士斑龍丸歌曰尾閭不禁滄海竭九轉靈丹都漫說惟有斑龍頂上珠能補玉堂關下穴其丸蓋鹿茸所合也但鹿則喜山而屬陽故夏至解角麋乃喜澤而屬陰故冬至解角今人採茸不分麋鹿豈知陰陽既別功用亦殊而可混用乎
피를 지닌 모든 동물은 뼈가 자라기 어렵다. 사람은 태아에서 어른이 되기까지 반드시 20년이 지나야 골수가 단단해지지만, 고라니와 사슴의 뿔은 돋아나서 단단해지기까지 두 달에 지나지 않는다. 계산하면 하루 밤낮에 몇 촌씩 자라니 쉽게 자라는 초목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근골을 튼튼하게 하고 양도를 강하게 하며 정수를 보익할 수 있다. 옛날 수 도사의 반룡환 노래에 “미려가 막지 못하면 푸른 바다가 마르니 구전영단도 모두 헛말이다. 오직 반룡 정수리 위의 구슬만이 옥당관 아래의 구멍을 보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 환약은 녹용으로 합하여 만든 것이다. 다만 사슴은 산을 좋아하고 양에 속하므로 하지에 뿔이 떨어지며, 고라니는 못을 좋아하고 음에 속하므로 동지에 뿔이 떨어진다. 지금 사람들은 녹용을 채취할 때 고라니와 사슴을 구분하지 않으니, 음양이 이미 다르면 공용도 달라 섞어 쓸 수 없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四時草木應候而生採取亦必及時非其時則氣味異而功用亦差即血肉之品亦不宜生取以失其性嘗聞今之市麝臍者生而割之其香未蘊臍穢尚腥人藥多至損人按麝食芳草至冬香蘊於臍至春臍癢自以爪剔出採芳婦女拾以相贈馨香染袖經年不退名曰生香頗不易得今山中獵戶當取麝糞暴乾得麝生割臍香以糞實之或取飛虻去首足翅入臍封固久之香亦不散名日當門子是以一麝而獲五臍之利也虻且有毒不良可知以之和香料猶可若入藥餌不反有所損乎兒
사계절의 초목은 계절에 응하여 자라므로 채취도 반드시 때에 맞아야 한다. 제때가 아니면 기미가 달라지고 공용도 차이가 난다. 피와 살을 가진 동물의 약재도 산 채로 취하면 그 성질을 잃으므로 마땅하지 않다. 들으니 요즘 시장에서 사향 배꼽을 파는 자들은 산 채로 잘라 낸다. 향이 아직 배꼽에 모이지 않아 더럽고 여전히 비리므로 약에 넣으면 사람을 해치는 일이 많다. 사향노루는 향기로운 풀을 먹고 겨울이 되면 배꼽에 향이 쌓이며, 봄이 되면 배꼽이 가려워 스스로 발톱으로 후벼 내놓는다. 향기로운 풀을 캐는 여자들이 이를 주워 서로 주면 향기가 소매에 배어 해가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를 생향이라 하는데 매우 얻기 어렵다. 요즘 산속 사냥꾼들은 사향노루의 똥을 가져다 볕에 말렸다가 사향노루를 잡으면 산 채로 배꼽의 향을 잘라 내고 그 자리에 똥을 채운다. 또는 나는 등에의 머리·다리·날개를 떼어 배꼽 안에 넣고 단단히 봉한다. 오래되어도 향이 흩어지지 않으므로 당문자라 하는데, 이렇게 하면 사향노루 한 마리에서 배꼽 다섯 개의 이익을 얻는다. 게다가 등에는 독이 있으니 좋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향료에 섞는 것은 괜찮겠으나 약에 넣으면 도리어 해롭지 않겠는가? 아이.
今市賣有所謂酷鱉者云出普陀山似螺而扁大如豆粒言能催生產婦於臨蓐時吞之兒即持以出然余嘗試之恰無驗也按海槎余錄謂是相思子生海中好事者取藏篋笥終歲不壤出投醋中則能轉旋不已而無催生之說據此蓋耍物耳正如閩部疏載莆田所產小白石狀如杏仁擘之腹文如蟲取兩石離立碟中須臾自相迎合名曰雌雄石近亦有市賣者謂其能治目疾且可合媚藥其價故甚昂貴而不知其藉此愚人亦無佐驗也
지금 시장에서 이른바 혹별이라는 것을 판다. 보타산에서 나며 소라와 비슷하되 납작하고 콩알만 하다고 한다. 출산을 촉진할 수 있어 산부가 해산할 때 삼키면 아이가 곧 이것을 쥐고 나온다고 하나, 내가 일찍이 시험해 보니 전혀 효과가 없었다. 《해사여록》에는 이것을 상사자라 하며 바다에서 나고, 호사가가 가져다 상자에 넣어 두면 한 해가 지나도 상하지 않으며 꺼내 식초에 넣으면 끊임없이 돈다고 하였으나 출산을 촉진한다는 말은 없다. 이에 따르면 그저 장난감일 뿐이다. 《민부소》에 실린 보전산 작은 흰 돌과 같다. 이것은 살구씨처럼 생겼고 쪼개면 속의 무늬가 벌레 같으며, 두 돌을 접시에 떨어뜨려 세워 놓으면 잠깐 뒤 저절로 서로 다가가 합쳐지므로 자웅석이라 한다. 근래 이것도 시장에 내다 파는 자들이 있는데 눈병을 치료할 수 있고 미약도 만들 수 있다고 하여 값이 매우 비싸다. 그러나 이것으로 사람을 속이는 것임을 모르니, 또한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
木鱉子本草言其無毒能治瀉痢疳積而發明下又載薊門人有二子服此俱斃特著為戒近聞南門外有農人曹某年已半百子僅九齡患腹痛時發時止經年不愈或言此疳積木鱉可療曹即市五文盡數煎與其子服不逾時乃顫筋弛骨節盡解而死按木鱉有兩種一產南中形細而底凸又名木蝨子昔人用以治痢審其牲味不過苦參子之類耳此種今已絕少現肄中所賣者皆番本鱉出回回國外科嘗用以傳瘡服之能殺人切勿人藥以嘗試也
목별자는 《본초》에서 독이 없으며 설사와 이질, 감적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였으나, 발명 아래에는 또 계문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를 먹고 모두 죽었다는 일을 실어 특별히 경계하였다. 근래 들으니 남문 밖의 농부 조 아무개는 나이가 이미 쉰이고 아들은 겨우 아홉 살이었다. 아이가 배가 아팠다가 그쳤다가 하여 일 년이 지나도 낫지 않자, 누가 이는 감적이므로 목별로 치료할 수 있다고 하였다. 조가 곧 5문어치를 사서 모두 달여 아들에게 먹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떨며 근육이 풀리고 뼈마디가 모두 풀려 죽었다. 살펴보면 목별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남쪽에서 나며 모양이 가늘고 밑이 볼록하여 목슬자라고도 한다. 옛사람이 이질 치료에 썼던 것으로, 그 성미를 살피면 고삼자와 같은 종류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종류는 지금 이미 매우 드물고 현재 약방에서 파는 것은 모두 회회국에서 나는 번본별이다. 외과에서 종기에 붙이는 데 흔히 쓰는데, 먹으면 사람을 죽일 수 있으니 결코 약에 넣어 시험해서는 안 된다.
夏子益曰天地山川樹木皆有脂此係陰陽氣化之餘結而成髓飲天脂者成上仙地脂成地仙山川樹木之脂壽俱無量鬼谷子語仙錄云取天脂須於危峰絕頂人跡罕到之處置金髮明珠每於寅卯之交往採有清露即傾去得漿色白芳香不散味極清甘者是也地脂於地脈流行聚合之處從上湧出不收仍人地大抵天地之脂每六十年一泄山脂即鐘乳石之類鍾乳乃石之汁液脂其髓也水脂出大海中高噴百丈還落水中介類吞之得為神樹脂數千老樹枯而復榮者再始有脂能化瓔兒遊行不定頗不易得方鎮編年載高展為幷州判官一日見砌間沫出以手撮之試塗一老吏面上皺皮頓改顏色如少展問承天道士曰此名地脂食之不死展乃發磚已無有矣
하자익은 “천지·산천·수목에는 모두 지가 있다. 이는 음양의 기화에서 남은 것이 맺혀 수가 된 것이다. 천지를 마시는 자는 상선이 되고 지지를 마시면 지선이 되며, 산천과 수목의 지를 마셔도 수명이 모두 헤아릴 수 없어진다”고 하였다. 귀곡자의 《어선록》에서는 천지를 얻으려면 사람이 드물게 이르는 험한 봉우리 꼭대기에 금발명주를 놓고 인시와 묘시가 교차할 때마다 가서 채취하는데, 맑은 이슬이 있으면 쏟아 버리고 흰빛의 즙으로 향기가 흩어지지 않고 맛이 매우 맑고 단 것을 얻어야 한다고 하였다. 지지는 지맥이 흘러 모이는 곳에서 위로 솟아 나오는데, 거두지 않으면 다시 땅으로 들어간다. 대체로 천지의 지는 60년마다 한 번 나온다. 산지는 곧 종유석 같은 종류로, 종유는 돌의 진액이고 지는 그 수이다. 수지는 큰 바다 속에서 나와 백 장 높이로 뿜어 올랐다가 다시 물속에 떨어지며, 껍데기 있는 동물이 삼키면 신이 된다. 수지는 수천 년 된 늙은 나무가 말랐다가 다시 무성해져야 비로소 생기며, 영아로 변하여 떠돌아다니므로 얻기가 매우 어렵다. 《방진편년》에는 고전이 병주판관이 되었을 때 하루는 섬돌 사이에서 거품이 나오는 것을 보고 손으로 움켜쥐어 늙은 아전의 얼굴에 발라 보았더니, 주름진 피부가 갑자기 바뀌어 얼굴빛이 젊은 사람 같아졌다고 하였다. 고전이 승천 도사에게 물으니 “이것은 지지라 하며 먹으면 죽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에 벽돌을 들추었으나 이미 아무것도 없었다.
國朝康熙間順德有民入山樵採忽聞樹頂有兄啼聲仰視見古木上有氣縷縷如煙飛鳥過之皆墮斫祝其中有人狀類凝脂問之不應拂之則笑一同伴曰此名樹脂非惡物也遂蒸食食已覺熱尋浴溪中肉盡潰裂死而余謂仙佛之書大都渺茫固不足信凡異常之物智者不食信然
우리 왕조 강희 연간에 순덕의 어떤 백성이 나무하러 산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나무 꼭대기에서 아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올려다보니 고목 위에서 기가 연기처럼 가닥가닥 나왔고, 새가 그 위를 지나면 모두 떨어졌다. 나무를 찍어 보니 그 속에 굳은 기름처럼 생긴 사람이 있었다.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쓰다듬으면 웃었다. 동행 하나가 “이것은 수지라는 것으로 나쁜 물건이 아니다”라고 하므로 마침내 쪄서 먹었다. 먹은 뒤 열이 나 곧 시냇물에서 목욕하였더니 살이 모두 문드러지고 갈라져 죽었다. 나는 신선과 부처의 책은 대체로 아득하고 허황하여 본래 믿을 만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릇 비상한 물건은 지혜로운 사람이 먹지 않는다는 말이 참으로 그러하다.
使君子之名相傳有潘州郭使君療小兒腹痛每用此取效因有是稱按小兒腹痛蟲患為多而凡殺蟲藥多苦辛惟使君子味甘孩提服餌不損脾胃故尤相宜也至世俗謂蟲無盡殺殺盡則無以消食此真愚俗之言李時珍嘗譬之樹有蠹屋有蟻國有盜是福是禍不問可知矣余亦謂修養之家必以去三尸即此類推蟲固宜殺而不宜留也今人好食白淪雞子言能安五臟益氣血而不知且頗不易化非煮之極熟多致停滯南史載李道念一病五年屢治未效丞相褚澄診之曰非冷非熱當是過食白淪雞子耳煮蒜令食遂吐一物形如卵視之雛雞也翅足俱全澄曰未盡以蒜更吐之計出十二枚而愈李時珍嘗見一朝貴每晨必進雞子數枚久而無恙因詢其庖此外尚有何好庖言食不撒蒜李曰頓有此耳觀此足知是物不宜多食而蒜之能消肉積益信然矣
사군자라는 이름은 반주의 곽 사군이 소아의 복통을 치료할 때 늘 이것을 써서 효과를 보았으므로 그렇게 불렀다고 전한다. 소아의 복통은 충으로 인한 것이 많은데, 살충약은 대부분 쓰고 매우나 사군자만은 맛이 달아 어린아이가 먹어도 비위를 손상하지 않으므로 더욱 적합하다. 세속에서는 벌레를 다 죽일 수 없고 다 죽이면 음식을 소화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데,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속인의 말이다. 이시진은 이를 나무의 좀, 집의 개미, 나라의 도적에 비유하였으니 복인지 화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도 수양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삼시를 제거한다고 생각하니, 이로 미루어 보면 벌레는 본래 죽여야지 남겨서는 안 된다. 요즘 사람들은 흰 삶은 달걀을 즐겨 먹으며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기혈을 보익한다고 하지만, 달걀은 매우 소화되기 어려워 아주 푹 삶지 않으면 정체되는 일이 많다는 것을 모른다. 《남사》에 이도념이 한 병으로 5년 동안 여러 번 치료해도 효과가 없자 승상 저징이 진찰하고 “찬 병도 뜨거운 병도 아니니 흰 삶은 달걀을 지나치게 먹은 탓일 것이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마늘을 삶아 먹이자 알처럼 생긴 물건 하나를 토했는데, 보니 병아리로 날개와 발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저징은 아직 다 나오지 않았다며 마늘로 다시 토하게 하였고, 모두 열두 개가 나온 뒤 나았다. 이시진은 어떤 조정 귀인이 매일 아침 달걀을 여러 개 먹는데 오래되어도 탈이 없는 것을 보고, 그 요리사에게 이 밖에 무엇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요리사가 밥상에서 마늘을 거두지 않는다고 하자 이씨는 “바로 이것 때문이구나”라고 하였다. 이를 보면 달걀은 많이 먹기에 적당하지 않음을 알 수 있고, 마늘이 고기로 생긴 적을 삭일 수 있다는 것도 더욱 믿을 만하다.
釋道家有五辛之禁道以韭薤蒜蕓薹胡荽為五葷而釋家則葫小蒜興渠慈蔥茗蔥也所禁雖有異同煞皆辛熏之品生食增恚熟食發淫以其有捐性靈故屏絕也
불가와 도가에는 오신의 금기가 있다. 도가에서는 부추·염교·마늘·운대·고수를 오훈이라 하고, 불가에서는 호·소산·흥거·자총·명총을 말한다. 금하는 것에 같고 다른 점이 있으나 모두 맵고 냄새가 강한 것으로, 날로 먹으면 성내는 마음을 더하고 익혀 먹으면 음욕을 일으켜 성령을 손상하므로 끊어 버리는 것이다.
絲瓜本蔬中佳品世俗相傳其性至寒食之敗陽按本草言甘平能除熱利腸解毒通絡而生生編又謂暖胃助陽余嘗考其性味不過甘涼之品因其涼血故治腸風崩漏其絡貫串如人脈絡故能通絡其質軟滑故曰敗陽暖胃之說抑何反也 狗蠅牛蝨古方未嘗用之而近世醫家每以此治痘蓋出齊柬野語周密言同僚括蒼陳坡老懦也其孫三歲出痘半漿倒□勢已不治遇一士授藥少許服之移時即紅潤乃乞其方以壽仳蓋用狗蠅和醅以酒調服耳按藥中蟲蟻不過取其飛揚走散之功故多施於傷科外症以通血閉痘症全賴氣血以成漿結痂元虛之症當以參耆培養元氣切勿以此為法也
수세미외는 본래 채소 가운데 좋은 것이지만, 세속에서는 그 성질이 지극히 차서 먹으면 양을 해친다고 전한다. 《본초》에는 달고 평하며 열을 없애고 장을 이롭게 하고 독을 풀고 낙을 통하게 한다고 하였고, 《생생편》에는 또 위를 따뜻하게 하고 양을 돕는다고 하였다. 내가 그 성미를 살펴보니 달고 서늘한 종류에 지나지 않는다. 혈을 서늘하게 하므로 장풍과 붕루를 치료하고, 그 그물 같은 섬유가 사람의 맥락처럼 꿰어 이어져 있으므로 낙을 통하게 하며, 그 질이 부드럽고 미끄러우므로 양을 해친다고 말한 것이다. 위를 따뜻하게 한다는 말은 어찌 이리 반대인가? 개파리와 소이는 옛 처방에서 쓴 적이 없지만 근세의 의원들은 늘 이것으로 두창을 치료한다. 이는 《제동야어》에서 나왔다. 주밀은 동료인 괄창의 진파가 늙은 유학자인데, 세 살 된 손자가 두창이 나 고름이 반쯤 찼을 때 도□하여 이미 치료할 수 없는 형세였다고 하였다. 어떤 선비를 만나 약을 조금 받아 먹였더니 얼마 뒤 곧 붉고 윤택해졌다. 이에 그 처방을 청하여 다른 사람을 오래 살게 하려 하였는데, 개파리를 술밑에 섞어 술에 타 먹이는 것이었다. 살펴보면 약 가운데 벌레와 개미는 날고 달리며 흩는 공용을 취할 뿐이므로, 주로 상과의 외증에 써서 혈이 막힌 것을 통하게 한다. 두증은 온전히 기혈에 의지하여 고름이 차고 딱지가 앉으므로 원기가 허한 증상에는 인삼과 황기로 원기를 길러야 하며, 결코 이것을 법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當見幼科取青蒿中蟲和藥以治小兒急慢驚風古方未見用此惟保嬰集極言其功效井有詩云一半硃砂一半雪其功只在青蒿節任教死去也還魂服時須用生人血蓋用硃砂和之乳汁點服也
일찍이 유과에서 청호 속의 벌레를 얻어 약에 섞어 소아의 급경풍과 만경풍을 치료하는 것을 보았다. 옛 처방에는 이것을 쓴 것이 보이지 않고 오직 《보영집》에서 그 효험을 극찬하였으며, 시도 있다. “절반은 주사요 절반은 눈이니, 그 공효는 다만 청호의 마디에 있다. 죽어 갔더라도 혼이 돌아오게 하며, 복용할 때는 반드시 산 사람의 피를 써야 한다.” 주사와 섞어 젖에 타서 먹이는 것이다.
今人冬月每以酒和牛乳燉食而薛立齋言酒不可與乳同飲則乳汁下咽得酒則凝頗不易化若以酒燉食乳已熟而成塊本無害他胡小園太守晨起食乳不耐膻氣急呼酒飲遂覺膈間痞悶一日夜不思飲食服神面麥孽俱無效余令取酥奧消導藥服之遂愈酥本乳之精華得同氣以相引故易取效也世言楙有百益一損梨則百損一益按楙即木瓜不過藉酸澀之性得以舒筋伐本豈若梨之甘能養胃涼可清心潤燥化痰除煩解熱且渙風邪而消癰毒哉嘗閱陳鵠耆舊續聞載湖南崔孝廉道出泗州聞呂某精太素脈俾診之呂曰君來年可得官秋髮癰毒不可治崔求預處一方呂謝不能固請之乃曰京師有大馬劉者可訪也明年崖果登第遂訪劉劉令日啖梨至一一百餘顆乃偏生小瘡而無他患又類編載有士人狀若有疾厭厭然曰無聊賴醫者楊吉老診之言氣血為熱鑠此去三年當以疽死士人慮之間茅山有羽士能醫不輕為人治乃易青衣投執薪水役乃以實告道士亦令食梨而愈考經疏言膏粱之家厚味膿酒縱肆無節不病痰火必有癰疽卒中之患惟頻食佳梨能轉重為輕變危為安據此則梨之功用甚大損益之說抑何相反如此耶腰膝無力腎氣不足也粟形如腎故能補腎虛每於冬月以袋盛生慄懸高處干之晨起吃數顆再以豬腎粥助之久則奇效然須細嚼連液吞嚥若頓貪至飽反致傷脾滯氣蘇子由詩老去自添腰腳病山翁服慄舊傳方客來為說晨興後三咽極收白玉漿是得食慄之訣矣
요즘 사람들은 겨울에 늘 술에 우유를 섞어 중탕하여 먹는다. 설립재는 술을 젖과 함께 마시면 안 된다고 하였는데, 젖이 목을 넘어가 술을 만나면 굳어 소화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술로 중탕하여 먹으면 젖이 이미 익어 덩어리가 되었으므로 본래 해가 없다. 호소원 태수는 아침에 일어나 젖을 먹다가 누린내를 참지 못하여 급히 술을 가져오라 하여 마셨다. 그러자 가슴 사이가 막히고 답답하여 하루 밤낮 음식을 생각하지 못하였고, 신국과 맥아를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내가 소를 취해 소도약과 함께 먹게 하니 나았다. 소는 본래 젖의 정화이므로 같은 기가 서로 이끌어 쉽게 효과를 얻은 것이다. 세상에서는 무는 백 가지 이로움과 한 가지 해로움이 있고, 배는 백 가지 해로움과 한 가지 이로움이 있다고 말한다. 살펴보면 무는 곧 모과로, 시고 떫은 성질을 빌려 근육을 펴고 목을 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어찌 배의 단맛이 위를 기르고 서늘함이 심을 맑게 하며, 조를 윤택하게 하고 담을 삭이며 번을 없애고 열을 풀고, 또 풍사를 흩고 옹독을 삭이는 것과 같겠는가? 일찍이 진곡의 《기구속문》을 보니 호남의 최 효렴이 사주를 지나다가 여 아무개가 태소맥에 정통하다는 말을 듣고 진찰하게 하였다고 한다. 여가 “그대는 내년에 관직을 얻을 수 있으나 가을에 옹독이 나 치료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자, 최는 미리 처방 하나를 마련해 달라고 청하였다. 여가 할 수 없다고 사양하였으나 굳이 청하므로 “서울에 대마 유라는 사람이 있으니 찾아가 보라”고 하였다. 이듬해 최가 과연 급제하여 유를 찾아가니, 유는 날마다 배를 먹되 백여 개에 이르도록 하였다. 그러자 작은 종기만 생기고 다른 병은 없었다. 또 《유편》에는 어떤 선비가 병든 듯 시들시들하며 날마다 의지할 낙이 없었는데, 의원 양길로가 진찰하고 “기혈이 열에 녹았으니 앞으로 3년 뒤 저로 죽을 것이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선비가 이를 걱정하던 중 모산에 의술을 아는 도사가 있지만 남을 함부로 치료해 주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하인 옷으로 갈아입고 땔나무와 물을 나르는 일을 맡은 뒤 사실을 말하니, 도사 역시 배를 먹게 하여 나았다. 《경소》를 살펴보면 기름진 음식을 먹는 집에서 맛 좋은 음식과 진한 술을 절제 없이 마음껏 먹으면 담화가 생기지 않더라도 반드시 옹저나 졸중의 병이 생기며, 다만 좋은 배를 자주 먹으면 무거운 것을 가볍게 하고 위태로운 것을 편안하게 바꿀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따르면 배의 공용이 매우 큰데, 손익에 대한 말이 어찌 이처럼 서로 반대인가? 허리와 무릎에 힘이 없는 것은 신기가 부족한 것이다. 밤은 모양이 신과 같으므로 신허를 보할 수 있다. 겨울마다 생밤을 자루에 담아 높은 곳에 매달아 말리고 아침에 일어나 몇 알을 먹은 뒤 돼지 콩팥죽으로 도우면 오래되어 기이한 효과가 난다. 다만 반드시 잘 씹어 침과 함께 삼켜야 하며, 한꺼번에 탐내어 배부르게 먹으면 도리어 비를 상하고 기를 막는다. 소자유의 시에 “늙어 가며 저절로 허리와 다리 병이 더하니, 산 늙은이가 밤 먹는 옛 처방을 전한다. 손님이 와서 아침에 일어난 뒤 세 번 삼킬 때 흰 옥 같은 즙을 극진히 거두라고 말하네”라고 하였으니, 밤 먹는 요령을 얻은 것이다.
櫻桃味甘性熱故王雖有飽食不須悉內熱大官還有蔗漿塞句張子和言舞水一富家有二子好貪紫櫻日啖一二升半月後長者發肺痿幼發肺癰相繼而殤嗟乎天生百果所以養入倘縱其嗜欲反滋其害邵堯夫云爽口物多終作疾真格言也
앵두는 맛이 달고 성질이 뜨겁다. 그러므로 왕수에게 “배불리 먹어도 속의 열을 걱정할 필요 없으니, 대관에게는 또 사탕수수 즙이 있네”라는 구절이 있다. 장자화는 무수의 한 부잣집에 두 아들이 있어 자색 앵두를 탐하여 날마다 1~2되씩 먹었는데, 보름 뒤 큰아이는 폐위가 생기고 작은아이는 폐옹이 생겨 잇달아 어려서 죽었다고 하였다. 아, 하늘이 온갖 과일을 낸 것은 사람을 기르기 위해서인데, 기호와 욕심을 마음껏 풀면 도리어 해를 더한다. 소요부가 “입에 맞는 것이 많으면 끝내 병이 된다”고 하였으니 참으로 격언이다.
蓬□氣味苦辛功專殺伐古人用之必雜以參朮慮其耗氣也令人用以破積滯治胸脅諸痛取其能散氣中之血耳而好古言亦能益氣然審其性味亦猶厚朴檳榔之類益氣之脫切勿輕信本草載王執中久患心睥痛服醒脾藥反脹用篷術泡以水酷煎服立愈余謂脘痛每多肝木犯胃篷術苦辛泄降兼之醋味酸收正合治肝之法是以效也
봉□는 기미가 쓰고 매우며 공효가 오로지 쳐서 없애는 데 있으므로, 옛사람은 쓸 때 반드시 인삼·백출을 섞었으니 기를 소모할까 염려한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적체를 깨뜨리고 가슴과 옆구리의 여러 통증을 치료하는 데 쓰는데, 이는 기 가운데의 혈을 흩을 수 있음을 취한 것이다. 그러나 호고는 기를 보익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 성미를 살피면 후박·빈랑 같은 종류이니, 기를 보익한다는 말을 결코 가볍게 믿어서는 안 된다. 《본초》에는 왕집중이 오랫동안 심비통을 앓아 성비약을 먹으면 도리어 더부룩해졌는데, 봉출을 불려 물과 식초에 달여 먹고 곧 나았다고 실려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완통은 대부분 간목이 위를 범해서 생긴다. 봉출은 쓰고 매워 설강시키며 거기에 식초의 신맛이 수렴하니, 바로 간을 치료하는 법에 맞으므로 효과가 난 것이다.
元素日芎藭上行頭目下行血海能散肝經之風為少陽厥陰血虛頭痛之聖藥余按芎藭性味辛溫以佐地芍而使不寒不滯故四物湯用以為使此如六味之有澤瀉也其非導任之品可知矣今人每用以為君治少陽厥陰症不知陰弱之人多虛熱挾肝膽之火上炎而致嘔逆痰咳頭痛氣喘是宜甘緩育陰而使火風自滅豈可以升散之品以助其勢乎虞搏謂骨蒸多汗及氣弱者不可久服穹藭能令真氣走泄而陰愈虛也李時珍曰芎藭肝經藥也若單服久服則辛香歸肺肺氣偏勝金來賊木而肝必受邪久則偏絕使人夭亡故醫者貴乎格物也
원소는 “궁궁은 위로 두목에 가고 아래로 혈해에 가며 간경의 풍을 흩을 수 있으므로, 소양과 궐음의 혈허두통에 성약이다”라고 하였다. 내가 살펴보니 궁궁의 성미는 맵고 따뜻하여 지황과 작약을 도와 차거나 막히지 않게 하므로 사물탕에서 사약으로 쓰는 것이다. 이는 육미에 택사가 있는 것과 같다. 따라서 홀로 맡길 약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지금 사람들은 늘 이것을 군약으로 써서 소양과 궐음의 증상을 치료한다. 그러나 음이 약한 사람에게는 허열이 많고 간담의 화를 끼고 위로 타올라 구역·담해·두통·기천이 생긴다는 것을 모른다. 이럴 때는 단맛으로 완화하고 음을 길러 화와 풍이 저절로 꺼지게 해야 하는데, 어찌 올리고 흩는 약물로 그 기세를 도울 수 있겠는가? 우박은 골증이 있고 땀이 많거나 기가 약한 사람은 궁궁을 오래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으니, 진기를 달아나 새게 하여 음을 더욱 허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시진은 “궁궁은 간경의 약이다. 만일 단독으로 먹거나 오래 먹으면 맵고 향기로운 기운이 폐로 돌아가 폐기가 치우쳐 왕성해지고, 금이 와서 목을 해치므로 간이 반드시 사를 받는다. 오래되면 한쪽이 끊어져 사람을 요절하게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의원에게는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 귀하다.
昔人言生薑調中益胃能除肺經諸病而為嘔家聖藥按姜性辛溫用以宣肺氣開塞痰平嘔逆若為肺胃必需之品則不然蓋胃為陽土性喜甘柔肺應秋金亦宜清肅辛散之品恐非所宜余謂但可用以醒胃不當用以益胃或問本草言夜間勿食姜食之令人氣閉何也曰肺以氣順為安臥則氣血寧靜若以辛溫助之使痰氣上壅而阻氣道諺云早除籮卜夜除姜亦此意也
옛사람은 생강이 중을 조절하고 위를 보익하며 폐경의 여러 병을 없앨 수 있어 구토하는 사람의 성약이라고 하였다. 생강은 성질이 맵고 따뜻하므로 폐기를 펴고 막힌 담을 열며 구역을 가라앉히는 데 쓰지만, 폐와 위에 반드시 필요한 약물이라고 한다면 그렇지 않다. 위는 양토로 성질이 달고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며, 폐는 가을의 금에 응하여 또한 맑고 엄숙함이 마땅하므로 맵고 흩는 약물은 적합하지 않을 듯하다. 나는 다만 위를 깨우는 데 쓸 수 있을 뿐 위를 보익하는 데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누가 “《본초》에서 밤에 생강을 먹지 말라고 하며 먹으면 기가 막힌다고 하였는데 왜 그렇습니까?”라고 물었다. 내가 대답하였다. “폐는 기가 순조로워야 편안하고, 누우면 기혈이 고요해진다. 만일 맵고 따뜻한 것으로 도우면 담기가 위로 몰려 기도를 막게 된다. 속담에 아침에는 무를 빼고 밤에는 생강을 빼라고 하는 것도 이런 뜻이다.”
牡蠣一名蠔山附石而生傀儡相連加房故亦名蠣房以是海氣所化體用皆陰本草故言能治虛損煩熱余嘗用以潛陽較勝於鰒陶隱居木通典老鵰入海化為城云是百歲雕所化按城即螺在然蠣生石間堅實不動類雖屬介迥異螺蚌說恐未然近人疏方每書左牡蠣蓋以方面為牡也陳海藏當非之謂是鹹水結減塊然不動陰陽之道何由而生但考南州志蠣房贊亦有牝牡異斑句似牝牡又可以斑辨矣顧余嘗驗之所謂左右者以其附石不移順流旋轉水激成紋非有雌雄之別也
모려는 호산이라고도 하며 돌에 붙어 자란다. 울퉁불퉁한 것들이 방처럼 이어져 있으므로 여방이라고도 한다. 바다의 기가 변화한 것으로 체와 용이 모두 음하므로 《본초》에서 허손과 번열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였다. 내가 일찍이 잠양에 써 보니 복보다 낫다. 도은거의 목통에는 늙은 수리가 바다에 들어가 성으로 변한다며 백 살 된 수리가 변화한 것이라고 하였다. 성은 곧 소라이지만, 모려는 돌 사이에 생겨 단단하고 움직이지 않으니 껍데기 있는 종류에 속해도 소라와 조개와는 매우 다르다. 그 말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근래 사람들이 처방을 쓸 때 늘 좌모려라고 쓰는 것은 방향으로 수컷을 정하기 때문이다. 진해장은 일찍이 이를 비판하며 “이는 짠물이 맺혀 된 것으로 꼼짝하지 않는데, 음양의 도가 어디에서 생기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남주지》의 여방찬에도 “암수의 무늬가 다르다”는 구절이 있으니, 암수는 무늬로 분별할 수도 있는 듯하다. 내가 일찍이 살펴보니 이른바 좌우란 돌에 붙어 움직이지 않은 채 흐름을 따라 돌아가는 물이 부딪쳐 무늬를 만든 것이지 암수의 구별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蟹為江鄉美品而吳俗尤多嗜之每至三秋不撤此味昔人言蟹能解結散血故其字從解言考其性味鹹寒能動風耗血味雖美多食恰能捐人埤雅言未被霜者不可食昔余家治屋工人掘地陳滿獲一巨蟹重斤餘烹食之夜半腹大痛洞泄而死蟹譜震澤漁者網得蟹其大如斗以螯剪網皆斷怒欲烹之其侶有老於漁者曰嘗間龜蟹之殊顯者是江湖之使烹必有禍乃令釋之然凡物之異於常者食多傷人豈獨龜蟹而已哉
게는 강가 고장의 맛있는 음식으로 오 지방 풍속에서는 특히 좋아하여 가을 세 달이면 이 음식을 밥상에서 거두지 않는다. 옛사람은 게가 맺힌 것을 풀고 혈을 흩을 수 있으므로 그 글자가 해를 따른다고 하였다. 성미를 살펴보면 짜고 차며 풍을 움직이고 혈을 소모하므로, 맛있어도 많이 먹으면 사람을 해친다. 《비아》에서는 서리를 맞지 않은 것은 먹을 수 없다고 하였다. 옛날 우리 집에서 집을 고칠 때 일꾼 진만이 땅을 파다가 무게가 1근이 넘는 큰 게를 얻었다. 삶아 먹고 한밤중에 배가 몹시 아프고 심하게 설사하다 죽었다. 《해보》에는 진택의 어부가 게를 그물로 잡았는데 크기가 말만 하고 집게로 그물을 잘라 모두 끊어 놓자 화가 나 삶으려 하였다고 한다. 그 동료 가운데 어로에 경험이 많은 사람이 “거북과 게 가운데 유달리 큰 것은 강호의 사자이므로 삶으면 반드시 화가 있다고 들었다”고 하여 놓아주게 하였다. 그러나 보통과 다른 물건은 먹으면 사람을 해치는 일이 많으니, 어찌 거북과 게뿐이겠는가?
菌之類種甚多問粵間人所植楠木沃以米汁而生者名曰香菌乃可充饌若生墟落穢濕之地則本鬱蒸之氣所化其性多毒食之殺人我邑新橋鎮昔有農人於竹園中得鮮菌數枚甚肥白煮而食之竟以腹瀉死憶道光巳西春淫兩經月偏地生菌友人謝月屏家於庭角忽生一菌大加盆色淺紅其紋淺有鳥獸形謝以為瑞芝邀余往觀余曰此毒菌也不久常萎越夕果漸小未幾而蕉謝人咸以為芝而余獨日菌且知其敗之速謂必有所見余曰當閱珍珠船所載李涼公鎮朔方時畊氓於園樹下產二本大數尺上有機臺中間二隻對博併成三字曰朝榮觀公聞而疑之乃令氓掘其地僅三四尺即有巨蟒穴其下目光如鏡口吐沫成菌今觀君家所生疑即此類見背有蓑紋故知非芝以氣化必易萎也
버섯의 종류는 매우 많다. 민월 지방 사람들이 심는 것으로 남목에 쌀뜨물을 주어 나는 것을 향균이라 하며, 이것은 반찬으로 쓸 수 있다. 무너진 마을의 더럽고 습한 곳에서 난 것은 본래 울증한 기가 변화한 것이므로 성질에 독이 많아 먹으면 사람을 죽인다. 우리 고을 신교진에서 예전에 어떤 농부가 대숲에서 매우 살지고 흰 생버섯 몇 개를 얻어 삶아 먹었다가 결국 설사로 죽었다. 도광 사서년 봄에 궂은비가 달을 넘겨 내려 온 땅에 버섯이 났던 일이 기억난다. 친구 사월병 집의 뜰 모퉁이에서 갑자기 버섯 하나가 났는데 크기가 대야만 하고 연한 붉은빛이었으며, 무늬에 어렴풋이 새와 짐승 형상이 있었다. 사는 상서로운 지초라 여겨 나를 불러 보게 하였다. 내가 “이는 독버섯으로 머지않아 시들 것이다”라고 하였더니, 하룻밤 뒤 과연 차츰 작아져 얼마 지나지 않아 말랐다. 사람들이 모두 지초라 하였으나 나만 버섯이라 하고 빨리 상할 것도 알았으니 반드시 본 바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였다. “일찍이 《진주선》에서 보니 이양공이 삭방을 다스릴 때 농민의 뜰 나무 아래 두 포기가 나서 크기가 몇 자나 되었다고 한다. 위에는 기대가 있고 가운데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노름하는 모습이 있으며 ‘조영관’이라는 세 글자도 이루어졌다. 공이 듣고 의심하여 그 땅을 파게 하였더니, 겨우 3~4자 아래에 큰 이무기가 굴을 파고 있었고 눈빛은 거울 같았으며 입에서 거품을 토하여 버섯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 그대 집에 난 것도 이와 같은 종류가 아닐까 생각한다. 뒷면에 도롱이 같은 무늬가 있어 지초가 아님을 알았고, 기가 변화한 것이므로 반드시 쉽게 시드는 것이다.”
閩產桂圓味甘肉厚能悅胃養螢凡勞損心脾而血耗者宜食之因其形如龍口故又名龍眼道家每取肉細嚼待滿口生津淚淚下咽名飲玉泉余嘗試之頗益昔華亭陸平泉宗伯享壽百齡日惟食龍眼數千飲食如少時然其昧過甘多食令人中滿有痰熱者亦似不甚宜也初摘鮮蓮氣清味甘能和中養心氣煮粥食之益人腸胃昔人言生食須去心否則恐患霍亂按蓮子中青心能清心去熱霍亂之說不知何據惟今肆中所賣石蓮產粵東味上其味大苦會見食之而作嘔者今人每用以治痢誤矣
민 지방에서 나는 계원은 맛이 달고 살이 두터워 위를 기쁘게 하고 영을 기를 수 있으므로, 심비를 과로로 상하여 혈이 소모된 사람은 먹는 것이 좋다. 모양이 용의 입과 같으므로 용안이라고도 한다. 도가에서는 늘 살을 취해 잘 씹어 입안에 진액이 가득해지면 흘려 삼키는데, 이를 옥천을 마신다고 한다. 내가 시험해 보니 매우 이로웠다. 옛날 화정의 육평천 종백은 백 살을 살았는데 날마다 용안 수천 개만 먹었으며 음식 먹는 것이 젊을 때와 같았다. 그러나 맛이 지나치게 달아 많이 먹으면 중이 그득해지므로 담열이 있는 사람에게도 그다지 적합하지 않을 듯하다. 막 딴 생연자는 기가 맑고 맛이 달아 중을 조화롭게 하고 심기를 기를 수 있으며 죽을 끓여 먹으면 장위에 이롭다. 옛사람은 날로 먹을 때 반드시 심을 빼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곽란이 생길까 두렵다고 하였다. 살펴보면 연자 속 푸른 심은 심을 맑게 하고 열을 없앨 수 있으니 곽란이 생긴다는 말은 무엇에 근거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지금 약방에서 파는 석련은 광동에서 나며 맛이 매우 쓰다. 먹고 구토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지금 사람들은 늘 이것으로 이질을 치료하니 잘못이다.
側柏代茗別有一種清芳之氣當春末夏初嫩葉方長時採服之能除風濕但其性味苦燥非壯水之品而丹溪以為補陰要藥說恐未然咸豐癸丑洞庭陸秋谷販於陝遇盜遂入山谷行數里杳無人跡忽聞林間人語周視恰無所見惟有大柏一株枝幹修偉高出雲際時腹中甚餒因採葉食之遂忘飢渴今年逾周甲鬚髮未斑步履飲啖一如少時每言食柏之驗曩閱航海續編廣成子取雲陽液以療世人疾苦雖垂死可活初不知雲陽液為何物後觀抱朴子山中樹能人語者非樹能語乃雲陽為之注云陽樹精也陸之所食或即此耳王宇泰云病酒者當服枳椇按枳椇一名木蜜又名金鉤樹似白楊其子著枝端長才盈寸駢生如指屈曲相連春生秋熟霜後味甘如飴昔人有造酒庫而以枳棋木架屋者其後一室之酒皆淡薄無味乃余少時會傷酒發熱取汁服之反覺中滿是或味甘所致耳
측백을 차 대신 쓰면 별도로 맑고 향기로운 기가 있다. 늦봄과 초여름에 어린잎이 막 자랄 때 따서 먹으면 풍습을 없앨 수 있다. 다만 성미가 쓰고 조하므로 수를 강하게 하는 약물이 아닌데, 단계가 보음하는 요약이라 한 말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함풍 계축년에 동정의 육추곡이 섬서에서 장사하다 도적을 만나 산골짜기로 들어갔다. 몇 리를 가도 인적이 전혀 없었는데 갑자기 숲속에서 사람 말소리가 들렸다. 사방을 보아도 아무것도 없고 다만 큰 측백나무 한 그루가 있어 가지와 줄기가 길고 웅장하며 높이 구름 위로 솟아 있었다. 그때 배가 몹시 고파 잎을 따 먹었더니 곧 주림과 목마름을 잊었다. 지금 나이가 환갑을 넘었어도 수염과 머리털에 흰 것이 없고 걷고 먹고 마시는 것이 젊을 때와 같아 늘 측백을 먹은 효험을 말한다. 지난날 《항해속편》에서 광성자가 운양액으로 세상 사람들의 병고를 치료하여 죽기 직전이라도 살릴 수 있다고 하였으나, 처음에는 운양액이 무엇인지 몰랐다. 뒤에 《포박자》를 보니 산속 나무가 사람 말을 하는 것은 나무 자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운양이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주에서 운양은 나무의 정령이라고 하였다. 육이 먹은 것도 혹 이것일 것이다. 왕우태는 술 때문에 병든 사람은 지구를 먹어야 한다고 하였다. 지구는 목밀이라고도 하고 금구라고도 하며, 나무는 백양과 비슷하다. 열매는 가지 끝에 붙고 길이가 겨우 한 촌이 넘으며 손가락처럼 나란히 나서 굽이굽이 이어진다. 봄에 생겨 가을에 익고 서리를 맞으면 맛이 엿처럼 달다. 옛날 어떤 사람이 술 창고를 만들며 지기나무로 지붕을 얹었는데, 그 뒤 방 안의 술이 모두 묽고 싱거워져 맛이 없어졌다. 그러나 내가 어렸을 때 술에 상하여 열이 나 그 즙을 먹었더니 도리어 중이 그득해졌는데, 혹 맛이 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鴆毒鳥也邕州朝天鋪及深山處有之其種有一二大如鴉黑身赤目一大如鸚毛紫綠色頭長七八寸雄曰經日雌曰陰諧聲羯鼓如遇毒蛇則嗚聲邦邦蛇入石穴禹步作法石裂蛇出秋冬解羽蟄穴熏之出走聽絃而斃以法取膽著銀瓶倘染指指即斷用作毒矢著人立死鴆羽瀝酒犀角即解凡鴆穴處必有犀天地所以制殺機也
짐은 독이 있는 새로 옹주의 조천포와 깊은 산에 있다. 그 종류에는 하나는 까마귀만큼 크고 몸이 검으며 눈이 붉고, 하나는 앵무만큼 크고 깃털이 자줏빛과 녹색이며 머리 길이가 7~8촌인 것이 있다. 수컷을 경일, 암컷을 음해라고 하며 소리는 갈고 같다. 독사를 만나면 방방 소리를 내어 운다. 뱀이 돌구멍으로 들어가면 우보를 걸으며 법술을 행하여 돌이 갈라지고 뱀이 나오게 한다. 가을과 겨울에는 깃이 빠지고 굴에 숨는데, 연기를 쐬면 나와 달아나고 활시위 소리를 들으면 죽는다. 방법에 따라 쓸개를 얻어 은병에 담는데, 손가락에 묻으면 손가락이 곧 끊어진다. 독화살을 만드는 데 써서 사람에게 맞으면 곧 죽는다. 짐의 깃으로 술에 독이 배게 한 것은 서각으로 곧 풀린다. 짐이 굴을 파고 사는 곳에는 반드시 무소가 있으니, 천지가 죽이는 작용을 제어하는 것이다.
蘇郡某世業藥材精於辨別同業咸推巨眼同治間賈於滬有航海客攜羼角一箱托售某開視遂邀同市共觀曰此名天馬角偽物也以此販楚鄂間可獲利十倍然殺人亦如之餘若不言恐售偽者踵至且慮嗣後無識者害何底止遂以百金易之對眾焚燬客甚感愧
소군의 어떤 사람은 대대로 약재를 생업으로 하여 감별에 정통하였으므로 동업자들이 모두 뛰어난 안목이라고 추켜세웠다. 동치 연간에 상해에서 장사할 때 바다를 건너온 객이 찬각 한 상자를 가지고 와 팔아 달라고 맡겼다. 그 사람이 열어 보고 곧 같은 시장 사람들을 불러 함께 보게 하며 말하였다. “이는 천마각이라는 가짜 물건이다. 이것을 초·악 지방에 가져다 팔면 열 배의 이익을 얻을 수 있으나, 사람을 죽이는 것도 그만큼일 것이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가짜를 파는 자가 뒤따라 올까 걱정되고, 또 앞으로 이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면 그 해가 어디서 그칠지 걱정된다.” 마침내 백금으로 사서 사람들 앞에서 태워 버리니 객이 몹시 감동하고 부끄러워하였다.
冬季取大鯖魚膽人川良未懸壁問俟干取末以治咽喉之疾而酈湛若赤雅又云其膽治目功比空青魚大膽小者上魚大膽大者次之魚小膽大者下矣粵東花縣漁者得魚到縣親剖官稅其膽始敢出市聞私者杖故其詩有金環殉吉鷯花縣稅鯖魚之句今藤江所市者皆以鯇膽灌黃藤膏偽為之耳辨之不精必見笑於魚目矣
겨울에 큰 청어의 쓸개를 얻어 천량 가루를 넣고 벽 사이에 매달아 두었다가 마르면 가루로 만들어 인후의 병을 치료한다. 그러나 역담약의 《적아》에는 또 그 쓸개가 눈을 치료하는 공효가 공청에 비견된다고 하였다. 물고기는 크고 쓸개는 작은 것이 상품, 물고기도 크고 쓸개도 큰 것이 그다음, 물고기는 작고 쓸개는 큰 것이 하품이다. 광동 화현의 어부는 물고기를 얻으면 현에 가서 직접 배를 가르고 관에서 그 쓸개를 세금으로 거두어야 비로소 시장에 낼 수 있었다. 몰래 처리한 것이 알려지면 장형에 처하였으므로, 그의 시에 “금환은 길료에 따라 죽고, 화현에서는 청어에 세금을 매기네”라는 구절이 있다. 지금 등강에서 파는 것은 모두 환어의 쓸개에 황등고를 부어 넣어 가짜로 만든 것이다. 감별이 정밀하지 않으면 반드시 물고기 눈을 구슬로 안다는 비웃음을 받게 될 것이다.
杜詩豈無青精飯使我顏色好青精一名南天燭又名墨飯草用以煮反色純黑仙經云草木之正氣與神通食青燭之精命不復殞是也
두보의 시에 “어찌 청정반이 없어 내 얼굴빛을 좋게 하랴”라고 하였다. 청정은 남천촉이라고도 하고 묵반초라고도 하는데, 이것으로 밥을 지으면 빛깔이 온통 검다. 선경에서 “초목의 바른 기는 신과 통한다. 청촉의 정을 먹으면 목숨이 다시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