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日而欲釐正國醫學說 , 難矣 ! 外則余岩等挾其邪說 , 為虎作倀 , 上欺政府 , 下蒙社會 , 日以消滅中醫為能事 ; 內則學說紛歧 , 各持一是 , 不能貫通 。 甚則前人已經釐正而不可移易者 , 如葉香岩 、 王孟英之言外感溫病 , 柳寶詒之言伏氣溫病 , 唐容川之補註 《 傷寒 》、《 金匱 》 各書 , 不特為海內所公認 , 外人亦重金贖買 , 此於國醫學說之發展 , 大有關係 。 乃近日海上名流如惲氏鐵樵 , 逞其偏見 , 於此數家 , 痛加詆譭 。 若不亟為糾正 , 實於釐正 , 國醫學說大有障礙 , 吾故謂其難也 。 雖然孔子修 《 春秋 》、 正禮樂而大道以明 , 孟子闢楊 、 墨而邪說以息 , 使當日無此二聖人 , 中國何由此文化 ? 吾輩既處此正道陵夷 , 外患內憂交相侵迫 , 使畏葸自安不出而任此艱鉅 , 俾後學有正軌可循 , 國醫前途尚堪設想乎 ? 羅君振湘積學敦行 , 兼精岐黃 , 博覽群書 , 孜孜不倦 , 於釐正國醫學說尤為熱心 , 前著 《 醫學闢謬 》 以發明六氣 , 駁斥余岩 , 詞嚴義正 , 與吳君漢仙 《 警鐸 》 一書均為近出傑作 , 吾道干城 。 近復有 《 治痢南針 》 之作 , 其書於前人學說採擇綦嚴 , 而折衷以己之心得 , 病理治法條理井然 。 清代雖有治痢專書而無此完備 , 能完備者而又無此精核 。 羅君學說固不僅此 , 然已如此審確 , 他可知矣 。 西醫日以科學二字驕我 , 其實科學之解釋 , 不過學問之有統系而已 。 吾國醫學久有全部之統系 , 惟對於一病有一病之統系 , 雖有專書 , 尚未完全 。 前讀韓君止軒之 《 瘧疾論 》、 唐氏容川之 《 血證論 》 及近人張君壽頤之 《 中風斠詮 》, 心竊是之 , 思欲仿其體裁 , 使一病有一病之完全統系學說 , 顧以牽於塵勞 , 有志未遂 , 心則無日忘之 。 今讀羅君此作 , 當不禁怦怦欲動 。 吾願羅君以此推廣 , 達吾未能達之目的 , 固於釐正國醫學說大有禆益 , 亦免西醫日持其科學二字以相欺矇 , 無畏難 , 無苟安 , 以竟此全功也 。 抑更有進者 , 孟子云守先王之道以待後之學者 。 今則守之外 , 更須加以發明 ; 待之時 , 當須急與啟迪 。 加以外患內憂交相侵迫 , 其難有百倍於守與待者 。 匹夫有責 , 豈異人任 。 對於外 , 則師孟子之距楊 、 墨 ; 對於內 , 則師孔子修 《 春秋 》、 正禮樂 。 吾願與羅君共勉之也 。
오늘날 국의의 학설을 바로잡으려 하니 어렵도다! 밖에서는 여암 등이 사설을 끼고 호랑이의 앞잡이가 되어 위로 정부를 속이고 아래로 사회를 기만하며 날마다 중의를 없애는 것을 능사로 삼고, 안에서는 학설이 여러 갈래로 갈려 저마다 자기 주장만 옳다고 하며 관통하지 못한다. 심지어 앞사람들이 이미 바로잡아 바꿀 수 없는 것, 이를테면 섭향암과 왕맹영의 외감온병에 관한 말, 유보이의 복기온병에 관한 말, 당용천이 주를 보충한 《상한론》과 《금궤요략》 등의 책은 온 나라가 인정할 뿐 아니라 외국인도 많은 돈을 주어 사들이므로 국의 학설의 발전에 큰 관계가 있다. 그런데 최근 상해의 명류인 운철초 같은 이는 편견을 부려 이 몇 집안을 심하게 헐뜯는다. 이를 서둘러 바로잡지 않으면 국의 학설을 바로잡는 데 실로 큰 장애가 되기에, 나는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춘추》를 편수하고 예악을 바로잡아 큰 도를 밝히셨고, 맹자는 양주와 묵적을 물리쳐 사설을 그치게 하셨으니, 당시에 이 두 성인이 없었다면 중국에 어떻게 이러한 문화가 있었겠는가? 우리들은 이미 바른 도가 쇠하고 외환과 내우가 서로 침범하는 때에 처하였으니, 두려워하며 스스로 편안하기만을 구하고 나서서 이 어려운 일을 맡아 후학에게 따를 바른 길을 주지 않는다면, 국의의 앞날을 어찌 생각할 수 있겠는가? 나진상 군은 학문을 쌓고 행실을 돈독히 하며 기황의 의술에도 정통하여 여러 책을 널리 보고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으며, 국의 학설을 바로잡는 데 특히 열심이다. 앞서 《의학벽류》를 지어 육기를 밝히고 여암을 논박하였는데 말은 엄정하고 뜻은 바르니, 오한선 군의 《경탁》과 함께 최근에 나온 걸작이자 우리 도의 방패와 성이다. 최근 다시 《치리남침》을 지었는데, 이 책은 앞사람의 학설을 매우 엄격하게 채택하고 자신의 터득한 바에 따라 절충하여 병리와 치료법의 조리가 정연하다. 청대에도 이질을 다룬 전문 서적이 있었지만 이처럼 완비되지 못하였고, 완비된 것은 또 이처럼 정밀하고 간결하지 못하였다. 나군의 학설이 물론 이것뿐은 아니지만 이미 이처럼 세밀하고 정확하니 다른 것도 알 만하다. 서의는 날마다 ‘과학’ 두 글자로 우리에게 교만을 부리지만, 과학의 뜻은 실상 학문에 체계가 있다는 데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의학에는 오래전부터 전체의 체계가 있었으나, 병 하나마다 체계를 갖추는 데에는 전문 서적이 있어도 아직 완전하지 못하였다. 전에 한지헌 군의 《학질론》, 당용천의 《혈증론》과 근인의 장수이 군의 《중풍교전》을 읽고 마음속으로 옳게 여겨, 그 체재를 본떠 병마다 완전한 체계의 학설을 갖추려 하였다. 다만 세상일에 얽매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마음으로는 하루도 잊은 적이 없다. 지금 나군의 이 저술을 읽으니 절로 마음이 움직인다. 나는 나군이 이를 넓혀 내가 이루지 못한 목적을 이루기를 바란다. 그러면 국의 학설을 바로잡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서의가 날마다 과학 두 글자를 내세워 우리를 속이는 것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구차히 편안함을 구하지 말며 이 공업을 온전히 이루어야 한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말하면, 맹자는 선왕의 도를 지켜 뒤의 학자를 기다린다고 하셨다. 지금은 지키는 것 밖에 더욱 밝혀 드러내야 하고, 기다리는 동안에는 시급히 계도해야 한다. 게다가 외환과 내우가 서로 침범하니, 그 어려움은 지키고 기다리는 것보다 백 배나 된다. 보통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으니 어찌 다른 사람이 맡을 일이겠는가? 밖을 대할 때에는 맹자가 양주와 묵적을 물리친 것을 본받고, 안을 대할 때에는 공자가 《춘추》를 편수하고 예악을 바로잡은 것을 본받아야 한다. 나는 나군과 함께 이를 힘쓰고자 한다.
民國二十一年六月衡陽曾覺叟序於長沙種福源
민국 21년 6월, 형양의 증각수가 장사 종복원에서 서문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