痢疾者 , 大便下利紅白 , 裡急後重 , 日數十行 。 其為病也 , 善傳染 , 但亦有不甚傳染者 , 猶不覺其慘 。 其傳染迅速者 , 嘗至有一人患病 , 傳染一家 , 一家患病 , 傳染一鄉一邑 , 朋友不相往來 , 親戚不相顧問 , 骨肉不相居處 , 慘莫慘於是矣 。 究其原因 , 不甚傳染者 , 因天時氣候和平 , 一人獨受濕熱 , 或飲食失調 , 致生此病 ; 傳染迅速者 , 多由天時不正 , 並地下汙穢之氣感於人身 , 鬱結不解 , 變生此病 。 西醫謂之細菌 , 國醫謂之戾氣 , 其實細菌之發生皆因於戾氣 。 嘗觀兵燹 、 水災 、 凶年之後 , 人民死於溝壑 , 至夏秋兩暘交蒸 , 蠅蚋蛄嘬 , 而戾氣以起 , 故謂之瘟疫流行 。 民元以來 , 戰爭不息 , 災禍時聞 , 瘟疫流行 , 報端屢載 。 以余所聞見者 , 民十九年 , 平 、 瀏難民散居嶽麓山 、 北門外等處 , 死於痢疾者十之七八 ; 二十年 , 我瀏難民聚居古鎮 、 縣城等處 , 死於痢疾者十之六七 。 他如湘 、 贛 、 皖 、 鄂各難區 , 無不在在皆是 。 此豈天欲殺人而假手於痢耶 ? 防禦無方 , 治療乏術 , 要亦人事之不具耳 ! 竊以治痢方法 , 各家皆有發明 , 舉一漏百 , 終難得其要領 。 雖聖如仲景 , 書尚闕如 ; 賢如嘉言 , 法僅逆挽 。 即西醫傳入中國 , 亦只知滑利為能事 , 遂致此最惡最慘之症 , 自中而西 , 至今尚無善本 , 操仁術者豈不引為恨事乎 ? 余自承庭訓 , 及入醫校學醫以來 , 於此等慘惡之症間嘗留意 , 擬著白喉 、 瘟瘧 、 霍亂 、 痢疾等書 , 以與世之具有同心者互相研究 。 但前供株萍路局醫職 , 光陰虛度 , 去秋因事赴京 , 贊襄於中央國醫館理事之職 。 今春回湘 , 得有暇晷 , 乃將痢疾一書先行脫稿 , 分為表 、 里 、 寒 、 熱 、 實 、 虛 , 顏曰 《 治痢南針 》。 沿用古方 , 本大聖不作之旨 ; 統分六類 , 實吾人自用之愚 。 撮要提綱 , 方少法備 , 雖間有與古變通之處 , 要皆幾經折肱之言 。 若能尋余所集 , 無論不甚傳染與傳染迅速之症 , 皆無不治之痢矣 。 凡遐陬僻壤 、 絕少良醫 , 好覽方書 , 苦無門徑者 , 一閱此冊 , 則胸有成竹矣 。 居家旅行 , 置藏篋中 , 自衛衛人 , 非常便益 , 豈尚有痢症險惡之堪虞耶 ? 付梓後 , 隨將霍亂編出 , 故附於編末 。
이질이란 대변으로 붉고 흰 것을 설사하며 이급후중이 있고 하루에 수십 차례 배변하는 것이다. 이 병은 잘 전염되지만, 그다지 전염되지 않는 경우도 있어 그 참혹함을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빠르게 전염되는 것은 한 사람이 병들면 한 집안에 옮고, 한 집안이 병들면 한 마을과 한 고을로 옮아, 친구끼리 왕래하지 못하고 친척끼리 돌아보지 못하며 골육끼리 함께 거처하지 못하는 데 이르니 이보다 참혹한 것은 없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그다지 전염되지 않는 것은 때와 기후가 평온한데 한 사람만 습열을 받거나 음식 조절을 잘못하여 생긴 것이며, 빠르게 전염되는 것은 대개 때의 기운이 바르지 못하고 땅 아래의 더러운 기운까지 사람의 몸에 들어와 울결되어 풀리지 않아 변하여 생긴 것이다. 서의는 이를 세균이라 하고 국의는 여기라 하는데, 실제로 세균의 발생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된다. 일찍이 전란·수재·흉년 뒤에 백성들이 도랑과 골짜기에서 죽고, 여름과 가을의 두 볕이 함께 찌며 파리와 모기와 벌레가 빨아먹으면 여기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으니, 그러므로 온역이 유행한다고 한다. 민국 원년 이후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재화가 자주 들리며 온역이 유행하는 일이 신문에 거듭 실렸다. 내가 듣고 본 바로는 민국 19년 평강과 유양의 난민이 악록산과 북문 밖 등에 흩어져 살았는데 이질로 죽은 사람이 열에 일고여덟이었고, 20년에는 우리 유양의 난민이 고진과 현성 등에 모여 살았는데 이질로 죽은 사람이 열에 예닐곱이었다. 그 밖에 호남·강서·안휘·호북의 각 재난 지역도 곳곳이 모두 그러하였다. 이것이 어찌 하늘이 사람을 죽이려 이질의 손을 빌린 것이겠는가? 방어할 방도가 없고 치료할 의술이 부족하였으니, 요컨대 사람이 할 일을 갖추지 못했을 뿐이다! 생각하건대 이질 치료법은 여러 의가가 모두 밝혀낸 바가 있지만 하나를 들면 백 가지가 빠져 끝내 요령을 얻기 어렵다. 중경처럼 성스러운 이도 관련 저술은 빠져 있고, 가언처럼 현명한 이도 방법은 역류를 거슬러 만회하는 데 그쳤다. 서의가 중국에 들어와서도 매끄럽게 잘 통하게 하는 것만을 능사로 알아, 이처럼 가장 악하고 참혹한 병에 대하여 중국에서 서양에 이르기까지 지금도 좋은 책이 없으니, 인술을 행하는 사람이 어찌 한스러운 일로 여기지 않겠는가? 나는 집안의 가르침을 받고 의학교에 들어가 의학을 배운 뒤로 이런 참혹하고 악한 병에 때때로 마음을 두어, 백후·온학·곽란·이질 등의 책을 지어 같은 뜻을 가진 세상 사람들과 함께 연구하려 하였다. 다만 전에 주평철도국의 의사로 일하면서 세월을 헛되이 보냈고, 지난가을 일로 경성에 가서 중앙국의관 이사의 직무를 도왔다. 올봄 호남으로 돌아와 한가한 시간을 얻자 이질에 관한 책부터 원고를 완성하여 표·리·한·열·실·허로 나누고 《치리남침》이라 이름하였다. 옛 처방을 그대로 쓴 것은 큰 성인도 새로 만들지 않는다는 뜻에 근거하였고, 전체를 여섯 부류로 나눈 것은 실로 나 자신이 쓰려는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요점을 모으고 강령을 세워 처방은 적어도 방법은 갖추었으며, 간혹 옛것을 변통한 곳이 있으나 모두 여러 차례 팔이 부러져 보듯 경험을 거친 말이다. 내가 모은 것을 따라 찾을 수 있다면, 그다지 전염되지 않는 증상이든 빠르게 전염되는 증상이든 치료하지 못할 이질은 없을 것이다. 먼 변방과 외진 시골에서 훌륭한 의사가 매우 드물어 처방서를 즐겨 보면서도 입문할 길이 없어 고심하는 사람은 이 책을 한 번 보면 가슴속에 확실한 방도가 생길 것이다. 집에 있을 때나 여행할 때나 상자에 넣어 두면 자신과 남을 지키는 데 매우 편리하고 유익할 것이니, 이질의 험악함을 여전히 근심할 일이 있겠는가? 판각에 넘긴 뒤 이어 곽란 편을 엮었으므로 책 끝에 붙였다.
中華民國二十一年夏月瀏陽羅振湘序於長沙之醫社
중화민국 21년 여름, 유양의 나진상이 장사의 의사에서 서문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