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之一身 , 首重榮衛 。 外而皮肉筋骨 , 內而經絡藏府 , 無非榮衛為之煦濡 , 調和則安 , 逆亂則病 , 離絕則死 。 是榮衛為人身之化機 , 凡百疾病皆系焉 , 而瘧其尤著者也 。 考 《 素問 · 瘧論 》 及 《 刺瘧篇 》, 分六經 , 分五藏 , 分六府 , 雖發時不同 , 病形各異 , 而要其旨歸 , 則總關於榮衛之見端 。 曰夏傷於暑 , 藏於皮膚之內 , 腸胃之外 , 此榮氣之所舍也 , 非瘧舍之關榮者乎 ? 曰衛氣之所在與邪氣相合 , 則病作 , 非瘧發之關衛者乎 ? 仲景淵源相承 , 曰 : 瘧脈自弦 。 以瘧邪伏於榮舍 , 發則阻滯衛氣故也 。《 靈樞 》 論衛氣失常 , 則脈大弦急 ,《 金匱 》 論腹痛寒疝 , 弦則衛氣不行 。 籲 ! 仲景一語抵人千百 , 此其所以為百世之師乎 ! 後世諸家不加研究 , 迄今千餘載 , 瘧病絕少定論 。 西昌喻氏 、 洄溪徐氏皆謂風暑入少陽 , 率以柴胡為不祧之法 , 拘矣 。 葉天士治瘧 , 一生不用柴胡 。 王士雄謂柴胡只可治少陽正瘧 , 雖不如喻 、 徐兩公子之專主少陽 , 而於榮衛 , 曾莫之及 , 費伯雄以少陽不能主瘧而有在衛 、 在榮 、 在府之分 , 韓善徵謂瘧不專屬少陽而有衛氣榮血之論 , 是於榮衛近之矣 , 而未中瘧關榮衛之的 。 惟盧之頤 《 痎瘧論疏 》, 全引經文 , 以白虎各半治榮舍 , 青龍各半治衛氣 , 雖於瘧舍關榮 、 瘧發關衛 , 啟其端倪而不能大暢厥詞 , 讀其書者有遺憾焉 。 餘業醫近十年 , 竊嘆瘧之劇繁且險 , 反復流連 , 非特一兩月不痊 , 甚有延至二三年者 。 診驗之餘 , 幾經博考冥索 , 始知瘧以榮衛為主腦 , 治之輒獲效果 。 而析疑辨難 , 互相切劘 , 則吾鄉陳原欽先生之力為最多 。 乃不採譾陋 , 彙集成篇 , 先將榮衛之生始會合 、 內外出入 、 陰陽順逆 、 道路異同 、 度數疾徐 , 一一剖晰 , 挈明大旨 , 然後分論瘧舍之關榮 、 瘧發之關衛 , 而溫熱暑濕各因 、 藏府經絡諸症與夫病情之傳變 、 病勢之兼併 , 並著於篇 , 以備治瘧者之採擇焉 。 雖然榮衛為人身之化機 , 凡百疾病皆系焉 。 能明夫榮衛之生始會合 、 內外出入 、 陰陽順逆 、 道路異同 、 度數疾徐 , 又豈僅可以治瘧已哉 !
사람의 한 몸에서는 무엇보다 영위가 중요하다. 밖으로 피부·살·근육·뼈에서 안으로 경락과 장부까지 영위가 따뜻하게 하고 적시지 않는 것이 없다. 조화로우면 편안하고 거슬러 어지러우면 병들며 끊어져 떨어지면 죽는다. 그러므로 영위는 사람 몸의 변화 기틀이어서 모든 질병이 여기에 달려 있고, 학질은 그중에서도 특히 뚜렷하다. 『소문』의 「학론」과 「자학편」을 살펴보면 육경·오장·육부로 나누어 발작 시각이 다르고 병의 모습도 제각각이지만, 그 뜻이 돌아가는 요점은 모두 영위에서 단서가 드러나는 데 관계한다. ‘여름에 서에 상하여 피부 안, 장위 밖에 숨으니 이는 영기가 머무는 곳이다’라고 하였으니, 학사의 거처가 영과 관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위기가 있는 곳에서 사기와 합하면 병이 발작한다’고 하였으니, 학질의 발작이 위와 관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중경은 그 연원을 이어 ‘학질의 맥은 저절로 현하다’고 하였다. 학사가 영의 거처에 잠복하였다가 발하면 위기를 막기 때문이다. 『영추』는 위기가 정상을 잃으면 맥이 대하고 현급하다고 논하였고, 『금궤』는 복통과 한산을 논하며 현하면 위기가 운행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아아! 중경의 한마디는 남의 천백 마디와 맞먹으니, 이것이 백세의 스승이 된 까닭이 아니겠는가! 후대의 여러 의가는 연구를 더하지 않아 지금까지 천여 년 동안 학질에 대한 정론이 매우 적었다. 서창의 유씨와 회계의 서씨는 모두 풍서가 소양에 들어간다고 하여 대개 시호를 바꿀 수 없는 법으로 삼았으니 구애된 것이다. 섭천사는 학질을 치료하면서 평생 시호를 쓰지 않았다. 왕사웅은 시호가 소양의 정학만 치료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유·서 두 분처럼 소양만 주로 삼은 것과는 다르지만, 영위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였다. 비백웅은 소양이 학질을 주관할 수 없다고 하여 위·영·부에 있는 것을 나누었고, 한선징은 학질이 오로지 소양에 속하지 않는다며 위기영혈을 논하였다. 이는 영위에 가까우나 학질과 영위의 관계라는 핵심에 맞지는 않았다. 오직 노지이의 『해학론소』는 경문을 모두 인용하여 백호각반으로 영의 거처를, 청룡각반으로 위기를 치료하였다. 학사의 거처는 영에 관계하고 발작은 위에 관계한다는 단서는 열었지만 그 뜻을 충분히 펴지 못하여 읽는 사람에게 유감이 있다. 나는 의업을 한 지 거의 십 년으로, 학질이 심하고 복잡하며 위험하고 거듭 오래 머물러 한두 달에 낫지 않을 뿐 아니라 이삼 년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음을 탄식하였다. 진찰하고 경험하는 사이 여러 차례 널리 고찰하고 깊이 탐색한 뒤에야 학질은 영위를 중심으로 삼아야 함을 알았고, 치료할 때마다 효과를 얻었다. 의심과 어려움을 분석하고 변별하며 서로 갈고닦는 데에는 우리 고을 진원흠 선생의 힘이 가장 컸다. 이에 얕고 보잘것없음을 가리지 않고 모아 글을 이루었다. 먼저 영위의 생성과 회합, 안팎의 출입, 음양의 순역, 경로의 같고 다름, 운행 횟수와 속도를 하나하나 분석하여 큰 뜻을 밝힌 뒤, 학사의 거처가 영에 관계하고 발작이 위에 관계함을 나누어 논하였다. 온·열·서·습의 각 원인, 장부·경락의 여러 증상, 병정의 전변과 병세의 겸병도 함께 적어 학질을 치료하는 이가 취사하여 쓰도록 하였다. 그러나 영위는 사람 몸의 변화 기틀이므로 모든 질병이 여기에 달려 있다. 영위의 생성과 회합, 안팎의 출입, 음양의 순역, 경로의 같고 다름, 운행 횟수와 속도를 밝힐 수 있다면 어찌 학질만 치료할 수 있겠는가!
中華民國元年二月自序於養生園
중화민국 원년 이월 양생원에서 스스로 서문을 쓰다.
天地之大 , 日月運行焉 ; 人身之大 , 榮衛運行焉 。 天地有羅孛與日月同道 , 則日月蝕 ; 人身有伏邪與榮衛並居 , 則榮衛偏 , 此瘧病之關榮衛也 。 余初業醫 , 臨症治瘧 , 輒主少陽 , 所用成方多不效 。 竊以為瘧 , 酷瘧也 , 如此大症 , 斷非拘一經 、 執一藥所能治者 。 奈後世治瘧 , 諸家紛紛聚訟 , 西昌喻氏專主少陽 , 以柴胡為主 ; 沈再平於主用柴胡治瘧者 , 非之 ;《 葉氏醫案 》 治瘧不用柴胡 , 徐洄溪非之 , 迄莫折衷一是 。 進求 《 金匱 》 瘧病 , 寥寥數節 , 難尋端緒 。 即瘧脈自弦之文 , 注家多牽入少陽矣 。 乃取 《 素問 · 瘧論 》、《 刺瘧篇 》 讀之 。《 瘧論 》 言巨陽 、 陽明 , 不及少陽 ;《 刺瘧篇 》 首列六經 , 不專重少陽 , 仍莫得其指歸 。 於是反復尋繹 ,《 瘧論 》 有曰 : 此榮氣之所舍也 。 又曰 : 與衛氣並居 。 不覺頓悟曰 : 瘧病關榮衛 , 不特不專主少陽 , 並不專主六經矣 。 獨是榮衛運行 , 為百病轄 。 考 《 內經 》 以榮衛名篇首者凡六 , 其散見者 , 不止 《 瘧論 》, 數節互相發明 。 余於榮衛之生會主散 、 出入 、 順逆 、 道路之各殊 , 疾徐之異度 , 幾經默悟冥搜 , 殊難了了 , 急索解人不得 , 以為醫不明榮衛 , 無論百病 , 即治瘧莫試也 。 劉君裁吾性穎悟 , 青年篤於醫 , 與余交最厚 , 居址距數里 , 故往來尤密 , 凡醫書與病症之疑難 , 相與質辨近十年 。 至論瘧病關於榮衛 , 尤心相印 。 一日袖卷授余曰 : 此所著 《 治瘧機要 》 也 。 余展誦之 , 其書先將榮衛挈明大旨 , 次論瘧舍關榮 , 瘧發關衛 , 瘧脈自弦 , 皆獨出心裁 , 闡明經旨 ; 後論溫熱暑濕各因 、 經絡藏府諸症 , 與夫病變病並 , 無不奏刀騞然 。 所選諸方 , 一經指點 , 用以治瘧 , 皆能中榮衛之的 。 瘧病得此 , 誠暗室一燈 , 千載之疑竇破矣 。 雖然是書條分榮衛 , 意在令閱者醒目 , 似有無數榮衛 , 其實一也 。 能明夫榮衛之主散生會 , 其中出入 、 順逆 、 道路 、 度數 , 一如日月之運行天地 , 或一日一周 , 或一月一周 , 或一年一周 , 雖光芒之照射各殊 , 不得謂非一日月 , 敢以質之劉君並天下之留心榮衛者 。 是為序 。
천지의 광대함 속에서는 해와 달이 운행하고 사람 몸의 광대함 속에서는 영위가 운행한다. 천지에서 나후와 패성이 해와 달과 같은 길을 가면 일식과 월식이 생기고, 몸에서 복사가 영위와 함께 머물면 영위가 치우치니, 이것이 학질이 영위와 관계하는 까닭이다. 내가 처음 의업을 할 때 학질을 치료하면 늘 소양을 주로 삼았으나 사용한 기성 처방이 대부분 효과가 없었다. 나는 학은 혹독하게 학대한다는 뜻이니 이처럼 큰 병을 한 경에 구애되고 한 약에 집착하여 치료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후대에 학질을 치료하는 의가들의 논쟁이 분분하여, 서창 유씨는 오로지 소양을 주로 삼아 시호를 중심으로 하였고 심재평은 시호를 주로 써 학질을 치료하는 사람들을 비판하였다. 『섭씨의안』은 학질에 시호를 쓰지 않았고 서회계는 이를 비판하여, 끝내 하나의 옳은 결론으로 절충하지 못하였다. 더 나아가 『금궤』의 학병을 구하였으나 몇 조문뿐이어서 단서를 찾기 어려웠고, ‘학맥은 저절로 현하다’는 글도 주석가 대부분이 소양에 끌어들였다. 이에 『소문』의 「학론」과 「자학편」을 읽었다. 「학론」은 거양과 양명을 말하고 소양에는 미치지 않았으며, 「자학편」은 먼저 육경을 열거하고 소양만을 중히 하지 않았으나 여전히 그 뜻이 돌아가는 곳을 얻지 못하였다. 거듭 생각하던 중 「학론」의 ‘이는 영기가 머무는 곳이다’와 ‘위기와 함께 머문다’는 말에 문득 깨달아, 학질은 영위에 관계하니 소양만을 주로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육경만을 주로 하는 것도 아니라고 하였다. 영위의 운행은 모든 병을 관할한다. 『내경』을 고찰하면 영위로 편명을 삼은 것이 모두 여섯이고 흩어져 보이는 곳은 「학론」에만 그치지 않아 여러 조문이 서로 밝혀 준다. 나는 영위의 생성·회합·주관·흩어짐, 출입·순역·경로의 차이, 속도와 횟수의 다름을 여러 차례 묵묵히 깨우치고 깊이 찾았지만 명료하게 알기 어려웠다. 급히 해석해 줄 이를 찾아도 얻지 못하여, 의사가 영위를 모르면 온갖 병은 물론이고 학질조차 치료를 시도할 수 없다고 여겼다. 유재오 군은 성품이 영민하고 이해가 빠르며 젊어서부터 의학에 독실하였다. 나와 친분이 가장 두텁고 사는 곳도 몇 리 떨어지지 않아 왕래가 특히 잦았으며, 의서와 병증의 의문점을 서로 따져 변별한 지 거의 십 년이다. 학질이 영위에 관계한다는 논의에서는 더욱 마음이 맞았다. 어느 날 책을 소매에 넣어 와 나에게 주며 ‘내가 지은 『치학기요』입니다’라고 하였다. 펴서 읽어 보니 먼저 영위의 큰 뜻을 밝히고 다음 학사의 거처가 영에 관계하며 발작이 위에 관계하고 학맥이 저절로 현함을 논하였는데, 모두 독창적으로 경의 뜻을 밝혔다. 뒤에서는 온·열·서·습의 각 원인, 경락·장부의 여러 증상, 병의 변화와 겸병을 논하여 칼이 시원하게 들어가듯 막힘이 없었다. 고른 여러 처방도 한 번 가리켜 설명하자 학질에 쓸 때 모두 영위의 핵심에 맞았다. 학질에 이 책을 얻은 것은 참으로 어두운 방의 한 등불이어서 천 년의 의문이 풀렸다. 다만 이 책이 영위를 조목별로 나눈 뜻은 독자의 눈을 깨우치려는 데 있다. 영위가 무수히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하나이다. 영위의 주관·흩어짐·생성·회합을 알고 그 출입·순역·경로·운행 횟수를 밝힐 수 있다면, 해와 달이 천지에서 운행하여 하루에 한 바퀴, 한 달에 한 바퀴, 한 해에 한 바퀴 도는 것과 같다. 빛이 비치는 양상이 다르더라도 하나의 해와 달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감히 유군과 천하에서 영위에 마음을 쓰는 이들에게 묻는다. 이를 서문으로 삼는다.
中華民國元年五月同邑原欽陳寶序於松蔭山房
중화민국 원년 오월 같은 고을의 원흠 진보가 송음산방에서 서문을 쓰다.
處世界競爭之大舞臺 , 無論何業 , 苟無學問 、 閱歷 , 則在天演淘汰之內 , 必不能占最優勝之地 , 醫學一門亦然 。 余曾循長江 , 涉重洋 、 東北 , 至津 、 奉 , 經過閩 、 浙江 、 寧 、 蘇 、 滬 , 素稱醫術 、 向產名賢之區 , 意必有邃學問 、 深閱歷其人者 , 互相討論 , 倡明此道 , 而卒罕遇其人 , 至是而益嘆劉君裁吾之不可多得也 。 其人向勤學 , 善穎悟 , 與余攻方書有年 , 而進步之速不可以道里計 , 近十年來學更有進 , 讀書別有會心 , 編入 《 醫學檀幾 》 約百餘卷 , 其曰 《 傷寒匯方 》, 曰 《 金匱鑑別 》, 曰 《 外臺發揮 》, 曰 《 金元四家節要 》, 曰 《 景岳選瑜 》, 曰 《 喻氏節要 》, 曰 《 葉案選粹 》, 曰 《 王案類編 》, 曰 《 溫熱精言 》, 曰 《 喉科扼要 》。 其餘有疑 , 則辨之 ; 有得 , 則筆之 ; 有訛 , 則證之 。 雜卷浩繁 , 不可枚舉 , 所臨之症 , 編入 《 編症自鏡 》。 積日累月 , 每年不下數十卷 。 其例 , 先姓名 , 次年齡 , 次病症 , 次脈象 , 次舌苔 , 次形色 , 次服藥 , 一一標準 , 然後著案 、 著方 , 審慎周詳 , 議論卓越 , 靡不娓娓動人 , 雖喻嘉言之議病式 , 近世之診斷學 , 有過之無不及 。 其學問之邃 , 閱歷之深 , 為何如萍跡漂泊 , 企仰殊深 , 吾知劉君當更有進也 。 及歸 , 造訪 , 又編成 《 治瘧機要 》 四卷矣 。 回憶向之遊閩 、 浙江 、 寧 、 蘇 、 滬時 , 夏秋之病瘧者 , 纏綿歲月 , 劇繁且惡 , 中醫只知柴胡法之一治 , 固不愈 ; 西醫之規尼丁殺其蟲毒 , 鐵劑補其血液 , 終嫌其隘而未盡效 。 得是書讀之 , 研究病源 , 直探其根柢 , 選擇方法 , 亦極其閎通 , 榮衛三焦 , 洞若觀火 , 暑濕諸症 , 朗若列眉 , 豈徒治瘧之機要已哉 ? 余不辭校閱 , 勸付梨棗 , 亦保種之一端也 。 方今中外交通 , 科學互參 , 劉君以翹楚青年 , 既精中醫而並博及西醫 , 朝夕研核 , 不遺餘力 , 其學問之邃 , 閱歷之深 , 又當何如耶 !
세계가 경쟁하는 큰 무대에 처해서는 어떤 업이든 학문과 경험이 없으면 자연 진화의 도태 속에서 반드시 가장 우월한 자리를 차지할 수 없으니 의학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일찍이 장강을 따라가고 바다를 건너 동북의 천진과 봉천에 이르렀으며, 복건·절강·남경·소주·상해 등 평소 의술로 이름나고 명현을 배출하던 곳을 지나갔다. 반드시 학문이 깊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만나 서로 토론하고 이 도를 밝혀 펼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끝내 그런 사람을 만나기 드물었다. 이로써 유재오 군이 얻기 어려운 인물임을 더욱 탄식하였다. 그는 평소 학문에 부지런하고 깨달음이 뛰어나 나와 함께 방서를 연구한 지 여러 해인데, 진보의 빠르기를 거리로 헤아릴 수 없다. 최근 십 년 동안 학문이 더욱 진전되고 독서에서 특별한 깨달음을 얻어 『의학단궤』 약 백여 권에 편입하였다. 그중 『상한회방』·『금궤감별』·『외대발휘』·『금원사가절요』·『경악선유』·『유씨절요』·『섭안선수』·『왕안류편』·『온열정언』·『후과액요』가 있다. 그 밖에도 의심나는 것은 변별하고 얻은 것은 적으며 잘못된 것은 고증하였다. 잡권이 매우 많아 일일이 들 수 없고 직접 진료한 증상은 『편증자경』에 편입하였다. 날과 달이 쌓여 해마다 수십 권이 넘었다. 형식은 먼저 성명, 다음 나이·병증·맥상·설태·형색·복용약을 하나하나 표준으로 기록한 뒤 의안과 처방을 쓰는 것이다. 신중하고 주도면밀하며 논의가 탁월하여 차근차근 사람을 감동시키지 않는 것이 없으니, 유가언의 의병식이나 근세의 진단학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다. 학문의 깊음과 경험의 깊이가 어떠하겠는가. 떠도는 나그네 신세로 특히 깊이 우러러보았고 유군이 더 진보하리라 알았다. 돌아와 방문하니 또 『치학기요』 네 권을 편찬하였다. 이전에 복건·절강·남경·소주·상해를 여행할 때를 돌이켜 보면, 여름가을 학질 환자들은 오랫동안 병이 얽혀 심하고 복잡하며 나빴다. 중의는 시호법 한 가지 치료만 알아 낫지 않았고, 서의의 규니정으로 충독을 죽이며 철제로 혈액을 보하는 것도 결국 범위가 좁아 충분히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느꼈다. 이 책을 읽으니 병의 근원을 연구하여 곧장 뿌리를 캐고 방법을 고르는 것도 매우 넓고 통달하였다. 영위와 삼초는 불을 보듯 환하고 서습의 여러 증상은 눈썹을 늘어놓은 듯 분명하니, 어찌 학질 치료의 요점뿐이겠는가? 나는 교열을 사양하지 않고 간행을 권했으니, 이 또한 종족을 보존하는 한 가지 길이다. 지금 중외가 교통하고 과학을 서로 참조하는 때에 유군은 빼어난 청년으로서 이미 중의에 정통하고 서의까지 널리 섭렵하여 아침저녁으로 연구하고 검토하며 힘을 아끼지 않는다. 그 학문과 경험의 깊이가 앞으로 또 어떠하겠는가!
中華民國元年八月同邑洪嶷謝邑南序於養性學校
중화민국 원년 팔월 같은 고을의 홍억 사읍남이 양성학교에서 서문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