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病之與傷寒 。 猶水火冰炭之不相入也 。 世以治溫古無專書 。 襲治傷寒法治之 。 以溫熱之病 。 輒投以麻桂辛溫之劑 。 抱薪救火是自焚也 。 或者窮而思變 。 則又易以防風通聖之屬 。 雜苦寒攻下於溫散之中 。 不惟苦燥傷陰且有下早結胸引邪內陷之患 。 近世陳三錫別創升降神化散等方 。 雖知力避辛溫 。 然於初起病在上焦即溷入中下二焦之品 。 譬之治盜不分良莠一例 。 剪屠寇雖滅而民亦傷矣 。 獨葉天士 。 薛生白諸先哲遵內經風熱淫於內治 。 以辛涼鹹寒之旨 。 立三焦分治之法 。 界限井然 。 深入軒岐閫奧 。 淮安吳鞠通復取兩賢緒論 。 觸類引伸 。 著為溫病條辨 。 窮源竟委綱舉目張至是而治溫之法始大備焉 。 是書作於乾嘉之際 。 百餘年來流布南北效若桴鼓 。 光緒戊寅塗朗軒中丞重鋟於大梁全活不可勝計 。 顧以卷帙繁重習醫者憚於研索外邑荒陬知者 。 尤鮮每遇溫病仍沿舊法甚有盛暑染疴 。 猶目為傷寒者藥與病乖漫不加察其殺人何異操刃哉余客豫數十年目擊心傷久擬別輯簡編稍挽積習多事卒卒蓄志未償 。 門人蕭吉甫夙精醫理願任編校之勞因與博採旁搜反復考訂越半載書成名曰溫病指南付之剞劂所冀見者 。 廣為傳布 。 務使僻壤窮鄉咸知信守庶幾跡斯民於仁壽永無疵癘夭札之虞是則區區之大願也夫光緒癸卯孟春山陰婁傑 。
온병과 상한은 물과 불, 얼음과 숯불처럼 서로 들어맞지 않는다. 세상에서는 온병을 다스리는 데 옛날부터 전문 서적이 없었다 하여 상한을 다스리는 법을 그대로 따라 치료한다. 온열의 병에 번번이 마황·계지 같은 맵고 따뜻한 약제를 투여하니, 땔나무를 안고 불을 끄려다가 스스로 타는 것이다. 혹 막다른 데 이르러 변화를 생각하면 다시 방풍통성산 따위로 바꾸어, 따뜻하게 발산하는 약 가운데 쓰고 차며 공하하는 약을 섞는다. 이는 쓰고 건조한 성질로 음을 상할 뿐만 아니라, 너무 일찍 하법을 써서 결흉이 생기고 사기를 안으로 빠져들게 하는 우환도 있다. 근세에 진삼석이 승강신화산 등의 처방을 따로 만들었다. 비록 신온한 약을 힘써 피할 줄은 알았으나, 처음 병이 상초에 있을 때 곧 중초와 하초의 약품을 뒤섞어 넣었다. 비유하면 도적을 다스리면서 양민과 악인을 구별하지 않고 한결같이 베어 죽이는 것과 같으니, 도적은 없어져도 백성 역시 상한다.
오직 섭천사·설생백 등 선철들이 『내경』의 풍열이 안에서 지나치면 맵고 서늘하며 짜고 찬 약으로 다스린다는 뜻을 따라 삼초를 나누어 다스리는 법을 세우니, 경계가 정연하고 헌원과 기백의 심오한 경지에 깊이 들어갔다. 회안의 오국통이 다시 두 현인의 남긴 논의를 취하고 같은 부류에 따라 미루어 확장하여 『온병조변』을 지었다. 근원을 궁구하고 말단까지 다하며 강령을 들고 조목을 펼쳤으니, 이에 이르러 온병을 다스리는 법이 비로소 크게 갖추어졌다. 이 책은 건륭·가경 연간에 지어졌으며, 백여 년 동안 남북에 퍼져 효험이 북채로 북을 치면 소리가 나는 것과 같았다. 광서 무인년에 중승 도낭헌이 대량에서 다시 판각하니 온전히 살린 사람이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다만 권질이 번다하고 많아 의학을 익히는 사람들이 연구하고 탐구하기를 꺼리며, 외딴 고을과 궁벽한 곳에는 아는 사람이 더욱 적다. 온병을 만날 때마다 여전히 옛 방법을 따르며, 심지어 한여름에 병든 것까지 상한이라 부르니, 약과 병이 어긋나도 무심히 살피지 않는다. 그 사람 죽이는 것이 칼을 잡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내가 하남에 객거한 수십 년 동안 이를 눈으로 보고 마음 아파하여, 오래전부터 간략한 책을 따로 엮어 쌓인 습속을 조금이나마 돌이키려 하였으나, 일이 많고 바빠 품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문인 소길보가 평소 의리에 정통하여 편찬과 교정의 수고를 맡기를 원하므로, 함께 널리 모으고 두루 찾으며 거듭 고증하고 바로잡았다. 반년이 지나 책이 완성되자 『온병지남』이라 이름하여 판각에 부쳤다. 바라는 것은 이를 보는 이들이 널리 전하여, 반드시 외진 곳과 가난한 시골까지 모두 알고 믿어 지키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거의 이 백성들을 어질고 장수하는 경지로 이끌어 영원히 병고와 역병으로 요절할 걱정이 없게 할 것이니, 이것이 곧 나의 큰 소원이다. 광서 계묘년 맹춘, 산음 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