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局方行於宋 , 而醫之漢學衰 ; 白劉河間起於金 , 而醫之漢學復盛 。 然而 《 史記 》 僅謂 :「 倉公得 《 五色奇咳脈書 》」。 今其書不傳 ,《 正義 》 引顧野王謂 :「《 漢書 · 藝文志 》 有 《 五音奇胲 》 二十六卷 」。 今漢志又無此書名 , 故好高論者 , 並 《 內經 》 亦疑為漢儒偽作 , 不知三代六經 , 何一非漢儒所述 ? 蓋漢時耆宿 , 猶及聞羸秦未焚之書 , 詳者不及記 , 僅記其扼要語 , 故意遠而辭約 。 執其約者 , 拘泥之 , 附會之 , 動輒閡隔不通 , 如劉歆用周官 , 徒足為天下病 。 以此咎經 , 經不任咎也 。 夫醫道之傳 , 以文字傳之 。 醫道之精微淵奧 , 萬變而無弊者 , 則當於無文字處求之 ; 無文字虛懸而無的 , 則仍當於有文字處之引其端末 , 竟其餘緒處求之 。 而後知辭約者 , 意果遠 ,《 內經 》 果非聖不作也 。 向嘗持此論以質故友 , 蔣子寶素 。 蔣子韙予言 , 其著醫略也 , 即為之序 , 迄今四十餘年矣 。 同里馬子清儒 , 以所著 《 溫病辨症 》 見示 。 予素不知醫 , 然讀其自序 , 專宗葉氏 , 以上通仲景 , 而神契 《 內經 》, 此亦如經學家 , 由陸德明 、 孔穎達發明焉 。 誠以表章六經 , 尋流溯源 , 一以貫之 , 其必無閡隔不通之病 , 可傳後世無疑也 。 古人云 :「 多歌曲者 , 自能造麴 ; 多讀書者 , 自能著書 。」 昔蔣子讀書多 , 著書亦多 , 惜所刻只 《 醫略十三篇 》, 余皆散失 。 馬子年力富強 , 由此以往 , 學隨年進 , 所以發前人之未發 , 方且轉葉氏而上者 , 正未可量 , 此其造端耳 , 當不第如蔣子 , 但以十三篇傳也 。 馬子勉乎哉 ! 予即以昔日望蔣子者望之 。
백(白), 『국방』이 송나라에서 행해지자 의학의 한학이 쇠하였고, 백(白), 유하간이 금나라에서 일어나자 의학의 한학이 다시 성하였다. 그러나 『사기』에는 다만 “창공이 『오색기해맥서』를 얻었다”고 하였을 뿐이다. 지금 그 책은 전하지 않으며, 『정의』는 고야왕의 말을 인용하여 “『한서·예문지』에 『오음기해』 26권이 있다”고 하였다. 지금의 『한서』 「예문지」에는 또 이 책 이름이 없으므로 고상한 논의를 좋아하는 사람은 『내경』까지도 한나라 유자가 위작한 것으로 의심한다. 삼대의 육경 중 어느 것인들 한나라 유자가 서술하지 않은 것이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 대개 한나라 때의 노숙한 학자들은 이진(羸秦)이 아직 불태우지 않은 책을 들을 수 있었으나, 자세한 것은 미처 기록하지 못하고 요긴한 말만 기록하였으므로 뜻은 깊고 말은 간략하다. 그 간략한 것에 매달리는 사람은 이를 고집하고 부회하여 걸핏하면 막혀 통하지 않으니, 유흠이 『주관』을 써서 한갓 천하의 폐단을 이루기에 족했던 것과 같다. 이 때문에 경을 탓한다면 경은 그 허물을 맡을 수 없다. 의도가 전해지는 것은 문자로 전해지는 것이다. 의도의 정미하고 깊고 오묘하여 만변해도 폐단이 없는 것은 문자가 없는 곳에서 구해야 한다. 문자가 없어 허공에 매달려 근거가 없다면 다시 문자가 있는 곳에서 그 시말을 이끌어 내고 남은 실마리를 끝까지 밝히는 데서 구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말이 간략한 것은 과연 뜻이 깊고, 『내경』은 과연 성인이 아니면 짓지 못함을 알게 된다. 일찍이 이 논의를 가지고 옛 벗 장보소에게 물었더니 장보소가 내 말을 옳게 여겼다. 그가 『의략』을 저술할 때 곧 서문을 써 주었는데 지금까지 40여 년이 되었다. 같은 고을의 마청유가 저술한 『온병변증』을 보여 주었다. 나는 본래 의술을 알지 못하지만 그의 자서를 읽어 보니 오로지 엽씨를 종주로 삼아 위로 중경에 통하고 정신으로 『내경』에 부합하였다. 이 또한 경학자가 육덕명·공영달을 거쳐 밝혀 내는 것과 같다. 참으로 육경을 드러내어 밝히고 흐름을 찾아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하나로 꿰뚫는 것이니, 반드시 막혀 통하지 않는 폐단이 없어 후세에 전할 수 있음이 의심스럽지 않다. 옛사람은 “노래를 많이 부르는 사람은 스스로 곡(麴)을 만들 수 있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스스로 책을 지을 수 있다”고 하였다. 옛날 장보소는 책을 많이 읽고 저술도 많았으나 안타깝게도 판각한 것은 『의략십삼편』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흩어져 없어졌다. 마청유는 나이와 기력이 한창이니 이로부터 학문이 나이와 함께 진보하여 앞사람이 미처 밝히지 못한 것을 밝히고 장차 엽씨를 돌아 위로 나아갈 것은 참으로 헤아릴 수 없다. 이는 그 시작일 뿐이니 장보소처럼 다만 13편으로만 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청유는 힘쓸지어다! 나는 지난날 장보소에게 기대하였던 것으로 그에게 기대한다.
(光緒十二年季秋中浣八十老人李承霖序)
(광서 12년 늦가을 중순에 여든 살 노인 이승림이 서문을 쓰다.)
自神農嘗百草 , 而藥之功用以彰 。 然必辨其病之源流 , 而後施治為有據 。 如溫病一症 , 其有類於傷寒 , 並有類於雜病者 , 固宜辨之早 , 辨矣 , 即辨 。 其為溫病而又有寒極似熱 、 熱極似寒 、 虛極似實 、 實極似虛之別 。 苟稽古未深 , 閱歷未久 , 而欲臨時得心應手焉 , 可乎 ? 同邑馬君清儒 , 沉潛好學 , 尤工於醫 , 於溫病一門 , 要以仲聖為遠宗 , 以葉氏為近守 , 暇時就其讀書所得 , 及臨證所親歷者 , 作為 《 溫病辨症 》。 愛而讀之 , 其中窮源溯委 , 毫髮無遺 , 舉凡風暑燥濕之相類不相類者 , 無不了如指掌 。 噫 ! 馬君之用心 , 可謂深矣 ; 馬君之濟人 , 可謂眾矣 。 是非獨仲 、 葉之功臣 , 抑亦後學之津梁者矣 ! 雖然此豈盡為馬君之學哉 ? 特以見其一斑云耳 , 爰為之序 。
신농이 온갖 풀을 맛본 이래 약의 효능과 쓰임이 드러났다. 그러나 반드시 병의 근원과 흐름을 분별한 뒤에야 치료를 시행하는 데 근거가 있다. 온병 한 증상에는 상한과 비슷한 것도 있고 잡병과 비슷한 것도 있으니 참으로 일찍 분별해야 하며, 분별하였으면 곧 분별해야 한다. 온병이면서도 한이 극하여 열과 비슷한 것, 열이 극하여 한과 비슷한 것, 허가 극하여 실과 비슷한 것, 실이 극하여 허와 비슷한 구별이 있다. 옛것을 깊이 상고하지 않고 경험도 오래되지 않았으면서 임시에 마음에 맞고 손에 응하기를 바란다면 가능하겠는가? 같은 고을의 마청유는 침잠하여 배우기를 좋아하고 특히 의술에 능하다. 온병 한 분야에서 중경 성인을 멀리 종주로 삼고 가까이 엽씨를 지키는 것을 요체로 하여, 틈틈이 독서에서 얻은 것과 진료에서 몸소 겪은 것으로 『온병변증』을 지었다. 아껴 읽어 보니 그 안에서 근원을 궁구하고 말류를 거슬러 살펴 털끝만큼도 빠뜨리지 않았고, 풍·서·조·습의 서로 비슷한 것과 비슷하지 않은 것을 모두 손바닥 보듯 분명히 알았다. 아, 마군의 마음 씀은 깊다고 이를 만하며, 마군이 구제한 사람은 많다고 이를 만하다. 이는 중경과 엽씨의 공신일 뿐 아니라 후학의 나루와 다리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찌 이것이 마군의 학문 전부이겠는가? 다만 그 일부분을 보일 따름이니 이에 서문을 쓴다.
(光緒丙戌巧月同里桐生弟丁之干拜序)
(광서 병술년 교월에 같은 고을의 아우 동생(桐生) 정지간이 삼가 서문을 쓰다.)
昔範文正有言 :「 不為良相 , 當為良醫 」。 豈不以醫之濟人與於等哉 。 然而業醫者 , 往往以濟人之具殺人 , 則又何也 ? 其弊由於稽古未深 , 師心自用 , 讀書不求甚解 , 晰理未造精微 。 反是者 , 又泥於古人之陳法 , 而無運用之妙 , 聽其論則善 , 施諸用則乖 。 若是者 , 均足以僨事 , 又安能取古人之是 , 救今人之非 , 著書立說 , 以示正鵠哉 ? 吾友馬君清儒 , 博聞強識 , 尤邃於醫 , 於溫病一門 , 獨宗葉氏 , 辨其伏邪時邪 , 幾於剖毫晰芒 , 其用心可謂深矣 ! 苟非信而好古 , 而又加以閱歷之功者 , 烏能若此 ? 吾讀馬君之書 , 而知馬君之能濟人 , 且知馬君之志 , 欲令業醫者不迷於所向而均能濟人 , 豈徒葉氏之功臣 , 抑亦其範文正之襟期者歟 ? 爰樂聞而為之序 。
옛날 범문정이 “좋은 재상이 되지 못하면 마땅히 좋은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어찌 의사가 사람을 구제하는 일이 그와 같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의업을 하는 사람들이 흔히 사람을 구제할 도구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인가? 그 폐단은 옛것을 깊이 상고하지 않고 자기 마음을 스승으로 삼아 독단적으로 쓰며, 책을 읽어도 깊이 이해하려 하지 않고 이치를 밝혀도 정미한 데 이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와 반대인 사람은 또 옛사람의 묵은 법에 얽매여 운용의 묘함이 없으므로 논의를 들으면 좋지만 실제로 쓰면 어긋난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일을 그르치기에 족하니 어찌 옛사람의 옳은 것을 취하여 지금 사람의 그릇됨을 구하고, 책을 짓고 학설을 세워 올바른 표적을 보일 수 있겠는가? 내 벗 마청유는 널리 듣고 굳게 기억하며 특히 의술에 깊다. 온병 한 분야에서 오로지 엽씨를 종주로 삼아 복사와 시사를 분별하는 것이 거의 터럭과 가시 끝을 가르듯 하니, 그 마음 씀이 깊다고 이를 만하다. 믿고 옛것을 좋아하면서 경험의 공까지 더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나는 마군의 책을 읽고 마군이 사람을 구제할 수 있음을 알았으며, 또 그의 뜻이 의업을 하는 사람들이 향할 바에 미혹되지 않고 모두 사람을 구제할 수 있게 하려는 데 있음을 알았다. 어찌 다만 엽씨의 공신이겠는가? 또한 범문정의 포부를 지닌 사람이 아니겠는가? 이에 듣기를 기뻐하여 서문을 쓴다.
(光緒十二年孟春同里萃冷弟袁善作序)
(광서 12년 맹춘에 같은 고을의 아우 취랭 원선이 서문을 짓다.)
自赭寇之熾 , 以至戡定後十數年 , 余睽隔里閭最久 , 於故鄉後起之秀罕識 。 問艤飄西津 , 轍遏訪楊文子安孝廉 , 每嘖嘖誇其高足馬君不去口 。 蓋凡星象易傳 , 暨疇人諸學 , 皆力造間奧 , 嗣復分其餘智 , 以肄習俞跗之術 , 而詣遂精 。 子安文邃於醫者 , 今墓草宿矣 。 余無以徵其言之不謬 。 甲申夏 , 余始回籍 。 從弟東云茂才 , 近懸壺 , 亦稱道馬君醫道之逞東云 。 讀先高祖招仙公之遺書 , 又親見吾從父偉人之製藥之精 , 宜其善於取友 , 而處心領受也 。 一日 , 攜馬君所輯十三篇 , 問序於余 。 余沉溺詞章 , 生平於僦貸季 、 苗父 , 諸賢之學 , 概不經心記述 。 客焦溪時 , 唯嗜與楊文譚詩 , 最膺於社老詩律之細 , 酒酣以往 , 各舉數十聯 , 互相探討 , 至切理饜心處 , 則相視而笑 。 今馬君之醫 , 於溫病一門 , 獨心折葉氏 , 而於類不類之中 , 剖析清楚 , 以藥時醫之誤 , 又恐自以為不誤之誤 。 因薈萃群言 , 以輔翼葉氏 , 而絕不敢掉以輕心 。 斯真如詩律之細也 。 又子安先生算學篤守 , 勿庵東原之說 , 曾手編勾股 , 循序兩拳 , 以啟道初學 , 使其取逕之易 。 今馬君之辨症 , 一如其師之算學 , 羅羅清疏 , 與人以規矩 , 即示人以巧 , 是在人神而明之而已 。 抑予有感焉 ? 庚午春 , 伯兄子猶先生僑居記光時 , 患溫病 , 醫者誤投以熱劑 , 遂致不起 , 每勖東云 , 以克紹家學 , 籍以濟世 , 不致為庸流所殺 。 一追溯往事 , 往往引以自咎 , 今見是書 , 不禁觸余鴒原之痛也 。
자구가 치성하던 때부터 평정된 뒤 십수 년에 이르기까지 나는 고향 마을과 오래 떨어져 있어 고향에서 뒤에 일어난 빼어난 사람들을 거의 알지 못하였다. 문(問), 서진에 떠다니며 배를 대고 수레를 멈추어 양문 자안 효렴을 찾아가면, 매번 그 뛰어난 제자 마군을 입에서 떼지 않고 거듭 칭찬하였다. 성상과 역전 및 주인(疇人)의 여러 학문에서 모두 힘써 간오(間奧)에 나아갔으며, 뒤에는 남은 지혜를 나누어 유부의 술을 익혀 마침내 경지가 정밀해졌다는 것이다. 자안문(子安文)은 의술에 깊은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무덤의 풀이 오래되었으니, 나는 그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징험할 수 없었다. 갑신년 여름에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왔다. 종제 동운 무재가 근래 의업을 시작하여 역시 마군 의도의 뛰어남을 칭찬하였다. 동운은 선고조 초선공의 유서를 읽었고 또 내 종부 위인이 약을 만드는 정밀함을 직접 보았으니, 벗을 잘 취하고 마음을 두어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다. 하루는 마군이 편집한 13편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서문을 청하였다. 나는 사장에 빠져 평생 구대계·묘부 등 여러 현인의 학문에는 대개 마음을 두어 기록하지 않았다. 초계에 머물 때에는 오직 양문과 시를 이야기하기 좋아하였으며, 사로(社老)의 시율이 세밀한 것에 가장 마음이 움직였다. 술이 거나해지면 각자 수십 연을 들어 서로 탐구하다가 이치에 맞고 마음에 흡족한 곳에 이르면 마주 보고 웃었다. 지금 마군의 의술은 온병 한 분야에서 오로지 엽씨에게 마음으로 탄복하여, 비슷한 것과 비슷하지 않은 것 가운데서 분명히 분석함으로써 당시 의사들의 잘못을 고치려 하였다. 또 스스로 잘못이 없다고 여기는 잘못을 염려하여 여러 말을 모아 엽씨를 돕고 조금도 마음을 가벼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는 참으로 시율의 세밀함과 같다. 또 자안 선생은 산학에서 물암과 동원의 학설을 굳게 지켜 일찍이 구고를 순서에 따라 두 권(拳)으로 손수 엮어 초학자를 이끌고 쉬운 길을 취하게 하였다. 지금 마군의 변증도 그 스승의 산학과 한결같아 또렷하고 분명하다. 사람에게 규구를 주면서 곧 기교도 보여 주는 것이니, 다만 사람이 신묘하게 밝혀 내기에 달렸다. 그런데 나에게는 감회가 있다. 경오년 봄 맏형 자유 선생이 기광(記光)에 우거할 때 온병을 앓았는데, 의사가 열제를 잘못 투여하여 마침내 일어나지 못하였다. 늘 동운에게 가학을 잘 이어 세상을 구제함으로써 용렬한 무리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라고 권면하였다. 지난 일을 돌이킬 때마다 자책하곤 하였는데, 이제 이 책을 보니 형제를 잃은 슬픔이 일어남을 금할 수 없다.
(時光緒乙酉仲春上浣同里李思緩謹序)
(광서 을유년 중춘 상순에 같은 고을의 이사완이 삼가 서문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