馬君清儒著 《 溫病辨症 》, 問序於余 , 余辭不獲 , 乃為之序而歸之 。 曰 :「 自仲景先師雜病論亡 , 溫熱一門遂由此埃滅 。」 然其論曰 :「 太陽病發熱而渴 , 不惡寒者 , 為溫病 。」 是漢師論溫病之語 , 固非一無所見 , 不過仲師所論 , 乃伏邪之溫熱 , 於時氣溫熱之從上受者 , 仍缺耳 。 然仲景於溫熱傷寒之辨 , 故犁然畫然 。 淺工不審 , 以溫熱初起頗類傷寒 , 遂以麻桂等品投之 , 不能外解 , 反致內結 , 轉謂仲景之法 , 不能治傷寒 , 輾轉傳偽 。 唐宋以來 , 論溫病者 , 皆無諦當之處 。 自劉河間創議 , 謂熱病當以三焦為主 , 其識實超諸家之上 。 近葉氏天土 , 更能深造自得 , 所著 《 溫熱論 》, 語皆心得 , 而一一皆體會 《 靈 》《 素 》 而出 , 亦可謂昭往哲而示來茲矣 。 余嘗有志撰述 , 稽合各家異同得失之故 , 而折衷之 。 人事之多 , 故握槧之不可以苟 , 未及事事周備 , 而齒髮固已衰矣 。 往者嘗與清儒言血分之邪 , 非達氣分不能解 。 清儒則大韙之 , 謂為深得葉氏之旨 , 其論醫也 , 與余同 。 而其銳意撰述 , 則勝於余 。 一日 , 於所著 《 溫病辨症 》 示余 。 獨能遠宗河間 , 近法天土 , 取捨正矣 。 其體又以大意先之 , 則擇之精 , 發明之語後之 , 則語之詳 , 綱目清矣 。 而其作例語 , 則謂為中人初學入門而設 。 抑何所執之謙 , 而詞之下也 。 或謂馬君之書 , 實出自諸先生 , 而又間引 《 易象 》 以雜之 , 子何盛稱之歟 ? 曰 :「 此不足為馬君病 , 易以道陰陽 , 而其為象 , 多近取諸身 , 人身備陰陽五行之氣 , 亦何不可以附譬 。 況之古人如班之於馬 , 多全襲其辭 。」 衛正叔纂 《 禮記集說 》 曰 :「 他人著書唯恐不出於己 , 此集唯恐不出於人 。」 古人閎識雅懷 , 而其為言乃如此 。 馬君此書 , 取其演贊葉氏耳 。 若世之語誇心得 , 甘背葉氏而不辭者 , 以云獨闢則有之矣 。 豈馬君自慎不自矜之心所肯出哉 ? 客聞而退 , 遂亦附著於末 , 以附此之序馬君書者 , 是為序 。
마청유가 『온병변증』을 지어 나에게 서문을 청하였다. 사양하였으나 면하지 못하여 이에 서문을 써서 돌려주었다. “중경 선사의 『잡병론』이 없어진 뒤 온열 한 분야도 이로부터 티끌처럼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논에는 “태양병에 열이 나고 갈증이 있으며 오한하지 않는 것은 온병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한나라 스승이 온병을 논한 말이니 참으로 전혀 소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중경 선사가 논한 것은 복사의 온열이며, 위로부터 받는 시기의 온열은 여전히 빠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중경의 온열과 상한의 구별은 본래 분명하였다. 서투른 의사들이 살피지 않고 온열의 초기가 상한과 꽤 비슷하다고 하여 마황·계지 같은 약을 투여하니, 밖으로 풀리지 않고 도리어 안에서 맺히게 되었다. 그러고는 도리어 중경의 법으로 상한을 치료할 수 없다고 말하여 잘못된 것이 거듭 전해졌다. 당·송 이래 온병을 논한 사람들에게는 모두 정확히 들어맞는 곳이 없었다. 유하간이 열병은 삼초를 위주로 해야 한다는 논의를 처음 세운 뒤 그 식견은 실로 여러 학자보다 뛰어났다. 근세의 엽천토는 더욱 깊이 나아가 스스로 얻을 수 있었으니, 저술한 『온열론』의 말은 모두 마음으로 얻은 것이며 하나하나 『영추』·『소문』을 체득하여 나온 것이다. 또한 앞선 현인을 밝히고 뒤에 오는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고 이를 만하다. 나는 일찍이 저술할 뜻을 품고 여러 학설의 같고 다름과 득실의 까닭을 상고하여 절충하려 하였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 많고 저술을 구차하게 할 수 없으므로 미처 일마다 두루 갖추지 못한 채 치아와 머리털이 이미 쇠하였다. 지난날 청유와 함께 혈분의 사는 기분에 도달하지 않으면 풀릴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청유는 크게 옳게 여기며 엽씨의 뜻을 깊이 얻었다고 하였다. 그가 의술을 논하는 것은 나와 같으나 저술에 뜻을 기울이는 것은 나보다 낫다. 하루는 저술한 『온병변증』을 나에게 보여 주었는데, 홀로 멀리 하간을 종주로 삼고 가까이 천토를 본받았으니 취사가 올바르다. 체제는 대의를 앞에 두어 선택이 정밀하고, 밝혀 풀이하는 말을 뒤에 두어 말이 상세하니 강목이 분명하다. 또 범례에서는 보통 자질의 초학자가 입문하도록 마련하였다고 하였으니, 어찌 그 지닌 바가 그토록 겸손하고 말이 낮은가? 어떤 사람이 “마군의 책은 실로 여러 선생에게서 나온 데다 간혹 역상을 인용하여 섞었는데, 그대는 어찌 이토록 칭찬하는가?”라고 하였다. 나는 “이것은 마군의 흠이 되기에 부족하다. 『역』은 음양을 말하며 그 상은 대부분 가까이 몸에서 취한다. 사람의 몸에는 음양오행의 기가 갖추어져 있으니 어찌 비유로 붙이지 못하겠는가? 더구나 옛사람도 반씨가 마씨에 대하여 그러하였듯 그 말을 온전히 답습한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위정숙이 『예기집설』을 편찬하며 “다른 사람은 책을 지으면서 자기에게서 나오지 않을까 염려하지만 이 책은 다른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을까 염려한다”고 하였다. 옛사람의 넓은 식견과 고아한 마음은 그 말이 이와 같았다. 마군의 이 책은 엽씨를 부연하고 도운 것을 취할 따름이다. 세상에서 마음으로 얻었다고 말로 자랑하며 기꺼이 엽씨를 등지고도 사양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독자적으로 열었다고 할 것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 스스로 삼가고 자랑하지 않는 마군의 마음이 기꺼이 낼 것이겠는가? 손님이 듣고 물러갔으므로 마침내 이 말도 끝에 붙여 마군의 책에 서문을 쓰는 여기에 덧붙이니 이것이 서문이다.
(光緒丙戌仲夏同里賓嵎弟劉旭拜序)
(광서 병술년 중하에 같은 고을의 아우 빈우 유욱이 삼가 서문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