昔仲景先師雜病論亡 , 溫熱一門遂由此湮墜 , 至唐宋金元間 , 名賢輩出 , 則論溫病者多 , 然胥未能得其原 , 所謂習焉不精 , 語焉不詳者也 ! 我朝葉先生天士 , 嘗體會 《 靈 》、《 素 》, 尤善學仲景 , 尋繹 《 傷寒 》、《 金匱 》 之旨 , 兼博考諸家 , 於章句下 , 得其神理 , 明六氣所由受 , 發為溫熱論 。 於溫熱一症 , 批隙導竅 , 實明所由來 。 示百世之津梁者 。 在此 , 凡治溫熱者 , 遵葉氏法而行之 , 則重者輕 , 輕者解 , 死者生 , 危者安矣 。 後起諸先生 , 亦或從葉氏法恢廓之 , 而絕未有天質之高出於葉氏 , 且能補葉氏之不足者 。 即如徵氏有云 :「 傷寒為法 , 法在救陽 ; 溫熱為法 , 法在救陰 。」 與葉氏治溫熱 , 實不離救陰一法相吻合 , 是徵氏之說 , 亦從葉氏來也 。 竊怪近今之懸壺家 , 咸知尊仲師 , 而不知尊葉氏 , 往往視熱病多有誤為傷寒者 。 宗元不揣搗昧 , 特於傷寒溫熱之現症 , 類與不類者辨之 。 為吾人臨證一助 , 亦取其顯豁呈露耳 。 其法皆出自諸先生 , 而獨宗於葉氏 , 要使人於溫熱病 , 知尊葉氏 , 並使人知尊葉氏 , 實所以尊仲師 , 庶予之辨症 , 或不至有傷寒溫熱之誤 。 非自矜也 , 實自慎也 。 予之誤 , 予豫防之 , 人固幸矣 。 予豫防己之誤 。 而有能指吾自以為不誤之誤 , 則予又幸矣 。 友人李君東云(恩蓉)邃於醫 , 為余參訂 , 兼慫恿付築氏 , 予重韙其意 , 爰梓之以為初學之導 , 如謂以著書自任 , 非惟不敢 , 亦不暇時 。
옛날 중경 선사의 『잡병론』이 없어진 뒤 온열 한 분야도 이로부터 묻혀 쇠하였다. 당·송·금·원에 이르러 이름난 현인들이 잇달아 나와 온병을 논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모두 그 근원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른바 익혔어도 정밀하지 않고 말하였어도 상세하지 못한 것이었다. 우리 왕조의 엽천사 선생은 일찍이 『영추』·『소문』을 체득하고 특히 중경을 잘 배워 『상한』·『금궤』의 뜻을 찾아 풀었으며 여러 학설을 널리 상고하였다. 장구 아래에서 그 신묘한 이치를 얻고 육기를 받는 까닭을 밝혀 『온열론』을 지었다. 온열 한 증상에서 틈을 열고 구멍을 이끌어 실로 그 유래를 밝혔으니, 백세에 나루와 다리를 보여 준 것이 여기에 있다. 온열을 치료하는 사람이 엽씨의 법을 따라 행하면 중한 것은 가벼워지고 가벼운 것은 풀리며 죽을 사람은 살고 위태로운 사람은 편안해진다. 뒤에 나온 여러 선생도 혹 엽씨의 법을 따라 넓혔으나, 천품이 엽씨보다 높아 그 부족함을 보충할 수 있었던 이는 전혀 없었다. 곧 징씨가 “상한의 법은 양을 구하는 데 있고, 온열의 법은 음을 구하는 데 있다”고 한 것은 엽씨가 온열을 치료할 때 실로 음을 구하는 한 법을 떠나지 않은 것과 부합하니, 징씨의 설도 엽씨에게서 나온 것이다. 나는 근래 의사들이 모두 중경 선사를 존중할 줄 알면서 엽씨를 존중할 줄 모르고 흔히 열병을 상한으로 잘못 보는 경우가 많음을 이상하게 여긴다. 종원은 자신의 도매(搗昧)함을 헤아리지 않고 특별히 상한과 온열의 나타나는 증상 가운데 비슷한 것과 비슷하지 않은 것을 분별하였다. 우리가 진료할 때 한 가지 도움이 되도록 하려는 것으로, 다만 분명하게 드러내는 데 뜻을 두었다. 그 법은 모두 여러 선생에게서 나왔으나 오로지 엽씨를 종주로 삼았으니, 사람들이 온열병에서 엽씨를 존중할 줄 알게 하고 엽씨를 존중하는 것이 실로 중경 선사를 존중하는 길임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변증이 혹 상한과 온열을 혼동하는 잘못에 이르지 않기를 바란다.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실로 스스로 삼가는 것이다. 나의 잘못을 내가 미리 막으면 남들이 참으로 다행일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의 잘못을 미리 막는데도 스스로 잘못이 아니라고 여기는 나의 잘못을 지적해 줄 사람이 있다면 나 또한 다행일 것이다. 벗 이동운(은용)은 의술에 깊어 나를 위해 참정해 주었고 아울러 축씨(築氏)에게 맡기도록 권하였다. 나는 그 뜻을 매우 옳게 여겨 이에 판각하여 초학자의 길잡이로 삼았다. 저술을 스스로 맡았다고 한다면 감히 그러지 못할 뿐 아니라 그럴 겨를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