夫人之受胎 , 陰注陽生 , 造化已有定分 , 豈容一毫人力於其間耶 。 切聞有以命書究其吉凶克害 , 臨產之際 , 私心意謂時乖 , 故不令坐草 。 驀遇胎轉 , 便為時良 , 催發坐草急產 。 意迎就好時而避惡時 , 殊不知妊婦欲產不得產 , 未當產而強取生 , 以主蹉跌逼迫 , 使產母不勝痛憤而失全生 , 豈有巢毀而卵不破乎 。 又如顧指失掌 , 掌既失指何存焉 。 世之詳命書者 , 心雖自愧 , 不可追悔 。 但以數終藉初舉之意而殞者 , 只得聽其不率哀哉 。 大凡懷孕 , 雖云十月之胎 , 有七八月而先產者 , 或過月而方生者 , 如堯母懷之十四月 , 乃婦稟受氣血強弱之不同 , 蓋猶命書所謂 , 五行欲其自足勿有胎元者是也 。 且晝夜十二時分作百刻之數 , 氣息一萬三千五百 , 呼吸之間 , 便生賢愚 , 安可力取時好惡而避貧奪富哉 。 然命亦曰 : 人之在幼 , 禍福未明 , 當考目擊之端倪 , 驗作他年之徵兆是也 。 已生之人 , 猶不可前知休咎 , 況以未生之子 , 伺候好時 , 預定貴賤可乎 。 若如所欲 , 則是不由造物反由人 。 嗜命書者 , 故當窮其造物限量之數 , 察其天地盈縮之理 , 無以偏見而枉殺人 。 胡不聞竊娠偷生 , 兩獲康寧者何 ? 蓋無他阻傷犯 , 得任情性生於自然也 。 今若為誠言 , 初宜戒之 , 若以為狂言 , 聽其為之 , 且聞之者尚不寒而慄 , 奈母子何 。 為之者 , 後雖悟歿於非命 , 然已獲殺人之過 , 陰譴亦自難逃 。 余竊思之 , 可謂恩生於害而恩未生則害先至深矣 。 籲 , 可畏哉 。 又有盤腸獻花產者 , 醫書不述其事 , 然亦可驚 。 有臨分娩產腸先出 , 兒即隨產 , 俗用冷水噴產母面 , 其腸自收 。 此法虛弱之人切不可用 , 恐驚怯或病或即脫絕 。 舊法以蓖麻子四十粒研爛塗腦頂 , 自然收上 , 如收了即以水洗去頂上蓖麻子 。 又有久而其腸為風吹乾不能收者 , 以磨刀水少許 , 火上溫過以潤盤腸 , 煎好磁石湯一杯 , 令產母服 , 自收 。
사람이 태를 받는 것은 음이 주입되고 양이 생겨 조화에 이미 정해진 분수가 있으니 그 사이에 어찌 털끝만큼의 인력을 용납하겠는가? 듣건대 명서로 길흉과 극해를 따져 출산에 임하여 속으로 때가 나쁘다고 여겨 산자리에 앉히지 않다가, 갑자기 태가 돌아 좋은 때라 하면 산자리에 앉혀 급히 낳으라고 재촉하는 일이 있다. 좋은 때를 맞추고 나쁜 때를 피하려는 뜻이지만, 임부가 낳으려 해도 낳지 못하게 하고 낳을 때가 아닌데 억지로 낳게 하여 어긋나고 핍박하게 만들면 산모가 고통과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생명을 온전히 하지 못함을 전혀 모른다. 둥지가 무너졌는데 알이 깨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손가락을 돌보다 손바닥을 잃는 것과 같으니 손바닥을 잃으면 손가락이 어찌 남겠는가? 세상에서 명서를 자세히 아는 이는 마음으로 부끄러워해도 돌이켜 후회할 수 없다. 다만 운수가 다했다고 하여 처음 일을 일으킨 뜻을 핑계 삼으며, 죽은 경우에는 그가 따르지 않는 것을 그대로 둘 수밖에 없으니 슬프다. 대체로 임신은 열 달의 태라고 하지만 일곱여덟 달에 먼저 낳는 경우도 있고 달수가 지나서야 낳는 경우도 있으니, 요임금의 어머니가 열네 달 품었던 것처럼 부인이 타고받은 기혈의 강약이 다르기 때문이다. 명서에서 오행은 스스로 충족되기를 바라며 태원이 있지 않게 한다고 한 것과 같다. 낮과 밤 열두 시를 백 각으로 나누면 기식이 1만 3,500번이며 호흡 사이에 곧 어질고 어리석음이 생기니 어찌 억지로 때의 좋고 나쁨을 골라 가난을 피하고 부를 빼앗겠는가? 명에 관한 말에도 사람이 어릴 때에는 화복이 분명하지 않으니 눈으로 보는 단서를 살펴 훗날의 징조로 삼으라고 하였다. 이미 태어난 사람의 길흉도 미리 알 수 없는데 하물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좋은 때에 맞추어 귀천을 미리 정할 수 있겠는가? 바라는 대로 된다면 조물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람에 따르는 것이다. 명서를 좋아하는 이는 조물의 한정된 수를 궁구하고 천지의 차고 줄어드는 이치를 살펴 편견으로 억울하게 사람을 죽이지 말아야 한다. 몰래 임신하여 숨어 낳아도 두 사람 모두 건강하고 편안함을 얻는다는 말을 어찌 듣지 못하였는가? 다른 방해와 손상이 없어 타고난 성정에 맡겨 자연스럽게 낳기 때문이다. 이제 이를 참된 말로 여기면 처음부터 경계해야 하며 미친 말로 여기면 그가 하게 둘 뿐이다. 듣는 사람도 춥지 않은데 떨릴 지경이니 모자를 어찌하겠는가? 그렇게 한 이는 뒤에 비명에 죽었음을 깨닫더라도 이미 사람을 죽인 과오를 얻었으므로 저승의 견책도 스스로 피하기 어렵다. 내가 생각건대 은혜가 해에서 생긴다고 할 만하나 은혜가 생기기도 전에 해가 먼저 깊이 이르는 것이다. 아, 두렵다! 또 반장헌화산이라는 것이 있는데 의서에는 그 일을 서술하지 않았으나 역시 놀랍다. 분만에 임하여 산장이 먼저 나오고 아이가 뒤따라 태어나는 경우에 세속에서는 냉수를 산모의 얼굴에 뿜으면 장이 저절로 들어간다고 한다. 이 법은 허약한 사람에게 결코 써서는 안 되니 놀라고 겁내어 병들거나 곧 허탈하여 죽을까 염려해서이다. 옛 법은 피마자 마흔 알을 짓찧어 정수리에 바르면 저절로 거두어 올라가며, 들어가면 곧 물로 정수리의 피마자를 씻어 낸다. 또 오래되어 장이 바람에 말라 들어가지 못하면 칼 간 물 조금을 불 위에 데워 반장을 적시고 좋은 자석을 달인 물 한 잔을 산모에게 먹이면 저절로 거두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