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此篇所錄 。 盡系予之先考停雪先生親驗歷試之說 。 無一涉虛構者 。 然世治此故者 。 概非溫劑 。 則阿片固澀之屬耳 。 適有用芩連石膏者 。 斷莫及硝黃者 。 故必有以此編為妄論異說者 。 故又採諸家所發明一二 。 從類增附並加愚按以備參考 。
이 편에 기록한 것은 모두 나의 선친 정설 선생이 직접 경험하고 여러 번 시험한 설로, 하나도 꾸며 낸 것이 없다. 그러나 세상에서 이를 치료하는 것은 대개 온제가 아니면 아편처럼 굳게 하고 수렴하는 부류일 뿐이다. 간혹 황금·황련·석고를 쓰는 사람이 있어도 결코 망초와 대황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 편을 망령된 논의와 기이한 설로 여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기에 여러 사람이 밝힌 것 한두 가지를 더 채택하여 부류에 따라 덧붙이고 나의 안설도 더하여 참고하도록 하였다.
一所錄方藥 。 皆系歷試有效者 。 故僅僅爾 。 本非為此數方盡之也 。 此外千金外臺以下 。 至後世方書 。 必有可用者 。 子孫繼我志 。 亦以其各經效者補焉 。 是予先考所屬望也 。
기록한 처방과 약은 모두 여러 번 시험하여 효과가 있었던 것이므로 이 정도일 뿐이며, 본래 이 몇 처방으로 다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밖에도 『천금』·『외대』에서 후세의 방서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쓸 만한 것이 있을 것이다. 자손이 나의 뜻을 이어 각자 효과를 경험한 것으로 보충하는 것이 나의 선친이 바라던 바이다.
一篇中所載方藥 。 專治里症之藥 。 而不及發表之方者 。 瘟疫之邪先從口鼻入容於里 。 不如傷寒從表及里 。 其適見表症者有之 。 從里達於表者也 。 故瘟疫一切禁發表 。 況此症入於裡之勢 。 尤急而達於表者甚稀乎 。 是以清解逐穢為主矣 。 覽者勿以傷寒先表后里之例拘焉 。
이 편에 실은 처방과 약은 오로지 이증을 치료하는 약이며 발표하는 처방에 미치지 않은 것은, 온역의 사기가 먼저 입과 코를 통해 들어와 속에 머물러 상한이 표에서 리에 이르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때로 표증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으나 리에서 표로 도달한 것이다. 그러므로 온역에는 발표를 일절 금한다. 더구나 이 증은 리로 들어가는 기세가 더욱 급하고 표로 도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 않은가? 이에 청해하고 더러운 것을 몰아내는 것을 위주로 삼았다. 읽는 사람은 상한에서 먼저 표를 치료하고 뒤에 리를 치료하는 예에 얽매이지 말라.
一此篇盡清解逐穢之劑 。 而不及溫補諸湯者 。 瘟疫本火熱之邪 。 古人禁溫補 。 況如此疾火熱之尤甚者 。 故雖四損之人 。 不宜溫補 。 若犯之 。 則徒速其斃耳 。 故於溫補諸湯 。 一切不錄焉 。 覽者勿怪其不便 。
이 편은 모두 청해하고 더러운 것을 몰아내는 약제이며 온보하는 여러 탕에 미치지 않은 것은, 온역이 본래 화열의 사기여서 옛사람이 온보를 금하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처럼 화열이 특히 심한 병에서는 사손의 사람이라도 온보해서는 안 된다. 이를 범하면 다만 죽음을 재촉할 뿐이므로 온보하는 여러 탕은 일절 기록하지 않았다. 읽는 사람은 그 불편함을 괴이하게 여기지 말라.
一預防並薰藥 。 雖非醫家上乘 。 古人既有其方 。 俗間亦往往苦微之 。 故舉一二以備其採擇耳 。
예방과 훈약은 비록 의가의 가장 높은 방법은 아니지만 옛사람에게 이미 그 처방이 있고 민간에서도 왕왕 고미(苦微)하므로 한두 가지를 들어 골라 쓸 수 있게 하였을 뿐이다.
一凡論瘟疫者 。 以吳又可為古今獨步 。 爾後如劉松峰 。 戴麟郊 。 周拘元 。 周禹載 。 楊慄山 。 汪期蓮 。 孔敏禮 。 吳鞠通 。 諸家咸學步者 。 今此編 。 亦以吳氏為歸宿 。
온역을 논하는 사람은 모두 오우가를 고금에 독보적인 사람으로 여긴다. 그 뒤 유송봉·대린교·주구원·주우재·양률산·왕기련·공민례·오국통 등은 모두 그 걸음을 배운 사람이다. 이제 이 편도 오씨를 귀착점으로 삼는다.
一文辭西土之事 。 而固非我邦所長也 。 故借彼文字 。 以記我事 。 取達意而足 。 覽者莫咎其支離鴂舌 。 則幸矣 。 高島久也祐啟識 。
문사는 서쪽 땅의 일로 본래 우리나라의 장기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 문자를 빌려 우리의 일을 기록하되 뜻을 전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읽는 사람이 문장이 지리하고 외국인의 혀와 같다고 허물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다카시마 구야 우계가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