侍醫佐田玉安年五旬余 。 七月來患齦疸 。 舌下爛蝕 。 飲食漸減 。 疲羸日加 。 百治無效 。 請數醫皆以為不治 。 至十月中 。 請予治 。 予以為結毒上郁 。 與歸靈湯兼服結毒紫金丹 。 十旬余 。 一日蝕處俄然迸出鮮血一二升 。 乃子驚惶 。 迎予 。 以予不在家 。 男往診之 。 手足厥冷 。 六脈沉伏 。 精神昏憒 。 按其腹水分動築如奔馬 。 因作獨參湯加犀角數分與之 。 須臾厥回脈出 。 因與回春犀角地黃湯 。 此夜脈全復 。 精神亦漸加 。 次日與十全大補湯 。 以鮮地黃代熟地黃 。 猶兼與紫金丹 。 乃子又質之一口科 。 曰齦疽出血 。 是虛火上炎之所為 。 不足深怪 。 第如嚴君之症 。 病勢極虛劇 。 疲羸殊甚 。 若及再三恐至不可 。 請予熟慮 。 請勿易視之 。 然而飲食稍進 。 氣力稍益 。 動作又減 。 子竊以為未必然也 。 轉與本朝經驗革解湯 。 四五日後兩腿筋縮 。 有時痛如刺嚬蹙叫其苦 。 且心膈溫溫 。 時時欲吐 。 予不解其何故 。 想是毒氣逼心之症 。 試使服犀角數分 。 及晚全止 。 此夜大便一行硬通 。 續水瀉二行 。 次早亦水瀉一行 。 動作復加 。 乃子驚以為脾胃虛衰之候 。 或歸咎於鮮地黃犀角 。 一醫來診曰 。 脾胃既虛衰 。 假令不服鮮地黃犀角 。 亦必至於此 。 喻家人曰 。 死不出於十旬外 。 謝而去 。 此日予亦往診之 。 舌上少有白胎 。 乾燥 。 小便則濁短少 。 予以為決非虛衰之候 。 然脈息無變 。 亦無寒熱之候 。 心疑之 。 或是瀉疫 。 猶與前方而歸 。 次早乃子來曰 。 夜中亦水瀉二行 。 及曉復一行 。 飲食漸減 。 疲羸又加 。 予翻然悟曰 。 予過矣 。 予過矣 。 是感瀉疫無疑也 。 因憶前日之出血也 。 動築也 。 筋縮也 。 噁心也 。 皆是邪氣逼血分之候 。 然今時令向寒 。 邪熱頗慢 。 故不至劇 。 作調胃承氣湯一貼 。 與之曰 。 予當往診之 。 宜先服之 。 午後往之且問曰 。 前藥服盡否耶 。 乃子曰前藥有硝黃 。 此疲羸之極 。 恐不堪其峻 。 且病者亦不肯服 。 故欲待子來決之 。 予因診之 。 舌胎雖薄稍乾燥 。 水分動頗高 。 因姑謂病者曰 。 前藥以有硝黃不肯服 。 今宜與他藥 。 然有邪氣非柴胡不可 。 予當作小柴胡湯 。 敢服耶否 。 病者頷之 。 因竊喻乃子曰 。 嚴君症果是新感瀉疫也 。 其實非硝黃斷弗能治也 。 若顧其尩羸而不服之 。 則必斃 。 然予但恐子納先人之言 。 不敢進之 。 若從予言 。 今作劑 。 不然則已 。 別無治法 。 乃子懇請曰 。 謹奉教 。 於是與大柴胡加芒硝湯二貼而去 。 次日往問之曰 。 昨夜服所賜之藥以來 。 水瀉全息 。 今朝下白膿數滴耳 。 余笑曰 。 果如予言 。 再與前方三貼 。 次日其次子來謝曰 。 昨夜大便一行滑通 。 其色如膠 。 爾後腰腿攣痛全止 。 夜半後熟睡 。 達曉水分動築亦減 。 今朝食粥數口 。 氣力亦加 。 仍與千金竹葉湯三貼 。 晡後使男往診之 。 舌胎全去 。 膿稍和 。 大便前夜以來不通 。 小便色稍薄 。 飲食漸加 。 精神頗益 。 次日復與前方 。 凡四日而新病全解 。 因再與治本病藥 。
시의 사다 옥안(玉安)은 쉰 남짓이었다. 7월부터 은달(齦疸)을 앓아 혀 아래가 문드러지고 패이며 음식이 점차 줄고 피곤하고 여윔이 날로 더하였다. 온갖 치료에도 효험이 없고 몇 의원을 청하여도 모두 불치라 하였다. 10월 중순에 내게 치료를 청하였다. 나는 결독이 위로 울체한 것으로 여겨 귀령탕을 주고 결독자금단을 겸복하게 하였다. 열 순 남짓 뒤 어느 날 패인 곳에서 갑자기 선혈 한두 승이 뿜어져 나왔다. 아들이 놀라 나를 맞이하러 왔으나 내가 집에 없어 내 아들이 가서 진찰하였다. 손발이 궐랭하고 육맥이 침복하며 정신이 혼미하였고, 배를 누르니 수분의 박동이 달리는 말 같았다. 독삼탕에 서각 몇 푼을 더하여 주니 잠깐 만에 궐이 돌아오고 맥이 나왔다. 이에 『회춘』의 서각지황탕을 주니 그날 밤 맥이 완전히 회복되고 정신도 점차 나아졌다. 다음 날 십전대보탕을 주되 숙지황을 생지황으로 대신하고 자금단도 여전히 겸하여 주었다.
그의 아들이 다시 한 구과 의원에게 물으니 ‘은저로 피가 나는 것은 허화가 위로 타올라 생긴 것이므로 깊이 괴이하게 여길 일은 아니다. 다만 어르신의 증상처럼 병세가 극도로 허하고 심하며 피곤하고 여윔이 유달리 심한 경우, 두세 번에 이르면 불가한 지경에 이를까 두렵다’고 하며 나에게 깊이 생각하고 가볍게 보지 말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음식이 조금 들어가고 기력이 조금 나아지며 움직임도 줄었으므로, 아들은 속으로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여겼다. 본조 경험의 혁해탕(革解湯)으로 바꾸어 주었는데 사오 일 뒤 두 다리의 근육이 오그라들고 때로 찌르듯 아파 얼굴을 찡그리며 괴롭다고 외쳤다. 또 심격이 울렁거려 때때로 토하려 하였다. 나는 그 까닭을 이해하지 못하고 독기가 가슴을 핍박하는 증상이라 생각하여 시험 삼아 서각 몇 푼을 복용시켰다. 저녁이 되자 모두 멎었고 그날 밤 단단한 대변을 한 차례 본 뒤 이어 물 같은 설사를 두 차례 하였다. 다음 날 아침에도 물 같은 설사를 한 차례 하였고 움직임이 다시 더하였다.
그의 아들은 놀라 비위가 허하고 쇠한 징후라 여기거나 생지황·서각을 탓하였다. 한 의원이 와서 진찰하고 ‘비위가 이미 허하고 쇠하였으니 생지황·서각을 먹지 않았더라도 반드시 이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집안사람에게 ‘열 순이 지나기 전에 죽을 것이다’라고 타이른 뒤 사양하고 갔다. 그날 나도 가서 진찰하니 혀에 백태가 조금 있고 말랐으며 소변은 탁하고 짧고 적었다. 나는 결코 허쇠의 징후가 아니라고 여겼으나 맥에 변화가 없고 한열의 징후도 없어 마음으로 의심하였다. 혹 사역인가 하면서도 앞의 처방을 그대로 주고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그의 아들이 와서 ‘밤에도 물 같은 설사를 두 차례 하고 새벽에 다시 한 차례 하였으며, 음식이 점차 줄고 피곤하고 여윔이 또 더한다’고 하였다. 나는 문득 깨닫고 ‘내가 잘못하였다. 내가 잘못하였다. 이는 사역에 감촉된 것이 의심 없다’고 하였다. 생각하니 앞서 피를 흘린 것, 박동한 것, 근육이 오그라든 것, 메스꺼워한 것은 모두 사기가 혈분을 핍박한 징후였다. 그러나 지금 절기가 추워지는 때여서 사열이 자못 느리므로 극심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조위승기탕 1첩을 지어 주며 ‘내가 가서 진찰하겠으니 먼저 복용하라’고 하였다. 오후에 가서 앞의 약을 다 먹었는지 물었다. 아들이 ‘앞의 약에는 망초·대황이 있는데 이처럼 극도로 피곤하고 여위어 그 준렬함을 견디지 못할까 두렵고 환자도 먹으려 하지 않으므로, 선생이 와서 결정해 주시기를 기다렸습니다’라고 하였다. 진찰하니 설태는 얇지만 조금 말랐고 수분의 박동이 자못 높았다. 우선 환자에게 ‘앞의 약은 망초·대황이 있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지금은 다른 약을 주어야겠다. 그러나 사기가 있어 시호가 아니면 안 되니 내가 소시호탕을 지으려 한다. 먹겠는가’라고 하니 환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의 아들에게 몰래 타일렀다. ‘어르신의 증상은 과연 새로 사역에 감촉된 것이다. 실제로 망초·대황이 아니면 결코 치료할 수 없다. 여윈 것만 돌아보고 복용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는다. 다만 나는 그대가 앞사람의 말을 받아들여 감히 먹이지 않을까 두렵다. 내 말을 따른다면 지금 약을 지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둘 뿐이며 다른 치료법은 없다.’ 아들이 간절히 ‘삼가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라고 청하였다. 이에 대시호가망초탕 2첩을 주고 갔다. 다음 날 가서 물으니 ‘어젯밤 주신 약을 먹은 뒤 물 같은 설사는 모두 멎었고 오늘 아침 흰 고름 몇 방울만 내렸습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웃으며 ‘과연 내 말과 같다’고 하고 앞의 처방 3첩을 다시 주었다.
다음 날 둘째 아들이 와서 사례하며 ‘어젯밤 대변이 한 차례 미끄럽게 통하였는데 빛이 아교 같았습니다. 그 뒤 허리와 다리가 당기고 아픈 것이 모두 멎었고 한밤중 뒤에는 깊이 잠들었으며, 새벽에는 수분의 박동도 줄었습니다. 오늘 아침 죽 몇 입을 먹고 기력도 더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계속 『천금』의 죽엽탕 3첩을 주고 해질녘 뒤 아들을 보내 진찰하게 하니 설태가 모두 없어지고 고름이 조금 조화로워졌으며(膿稍和), 대변은 전날 밤부터 통하지 않았고 소변 빛은 조금 옅어졌으며 음식은 점차 늘고 정신도 자못 나아졌다. 다음 날 다시 앞의 처방을 주니 모두 나흘 만에 새 병이 완전히 풀려 다시 본래 병을 치료하는 약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