余曾讀延陵吳氏之書 。 竊以為是醫林之權書也 。 其書往往翻案古經 。 新立非常之論 。 而其立論多出權變 。 然而殊切事實者何也 。 亦其人有取捨之權耳 。 庸師或不諳其理 。 徒效其顰者 。 其害豈淺鮮哉 。 高島恆齋君 。 先考停雪君 。 嘗著瀉疫新論 。 大抵本之吳氏 。 能取其長 。 而舍其短 。 學殖有淵 。 議論有源 。 彼非執一無權者之比也 。 況恆齋君能張紹述之業 。 其論斷亦無餘蘊矣 。 停雪君歿後 。 瀉疫之病 。 累歲比比而有之 。 庸師皆以為古來未曾有之病 。 徒焦思於無何有之鄉 。 乏治方活潑之機 。 新論之所見豈在於斯歟 。 吳氏以降 。 唱和疫說者 。 多以吳氏領袖矣 。 余則每讀其書 。 未能無疑於吳氏 。 稱之醫林之權書也 。 吳氏之後 。 清人有奇恆痢之說 。 曰奇恆者 。 異於恆常也 。 高島氏之立論 。 亦與此說相符 。 抑識者之見有殊域合轍者歟 。 其閣古經 。 而求之權書 。 新出非常之見 。 亦家傳心法 。 所以新論之為新論耳 。 讀此書者善探著作之意而善用之 。 活潑之機 。 其必有存於其中者也 。
나는 일찍이 연릉 오씨의 책을 읽고 의림에서 권변을 다루는 책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책은 왕왕 옛 경전의 안을 뒤집고 비상한 논의를 새로 세웠으며 그 논의는 대부분 권변에서 나왔는데도 실제 일에 유난히 들어맞는 것은 어째서인가? 그 사람에게 취하고 버릴 권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용렬한 의원이 그 이치를 모르면서 찡그리는 모습만 본뜬다면 그 해가 어찌 얕고 적겠는가? 다카시마 항재 군의 선친 정설 군은 일찍이 『사역신론』을 지었는데 대체로 오씨에 근본하면서 그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버릴 줄 알았다. 학문에 깊이가 있고 논의에 근원이 있으니 하나만 고집하고 권도가 없는 사람에 견줄 바가 아니다. 더구나 항재 군이 선대의 뜻을 잇고 서술하는 일을 펼쳐 그 논단에도 남김이 없다. 정설 군이 돌아간 뒤 사역의 병이 해마다 곳곳에 있었으나 용렬한 의원들은 모두 예부터 없던 병이라 하여 그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생각을 태우며 활발하게 치료하는 기틀이 없었다. 신론의 견해가 어찌 여기에 있겠는가? 오씨 이후 역병설을 주고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씨를 우두머리로 삼았다. 그러나 나는 그 책을 읽을 때마다 오씨에 의문이 없을 수 없어 의림의 권변서라고 불렀다. 오씨 뒤에 청나라 사람에게 기항리라는 설이 있었는데 기항이란 늘 그러한 것과 다르다는 말이다. 다카시마 씨의 논의도 이 설과 부합하니, 식견 있는 사람들의 견해가 다른 지역에서도 궤를 같이하는 것인가? 옛 경전을 잠시 제쳐 놓고 권변서에서 구하여 비상한 견해를 새로 내는 것도 집안에 전하는 심법이니 신론이 신론인 까닭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저작의 뜻을 잘 탐구하여 잘 쓴다면 활발한 기틀이 반드시 그 안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