牛黃何時傳入日本 。 如第一報告 。 已於續日本紀元文武天皇之條內錄有二年正月己巳 。 土佐國獻牛黃 。 十一月己酉 。 下總國獻牛黃 。 可知奈良朝以前已有牛黃之紀載 。 惟確係何時輸入 。 則不可考 。 按漢藥學之東漸 。 由來甚久 。 其直接輸入 。 始於日本之欽明天皇23年(西紀562年)有吳人知聰 。 攜藥書明堂圖百十餘卷 。 東至日本 。 但在此事以前 。 已由朝鮮有間接之輸入 。 據歷史有允恭天皇3年一月(西紀414年)天皇篤疾 。 求良醫於新羅 。 同年八月 。 醫者金波鎮漢紀武來朝 。 使其療天皇之御疾 。 又欽明天皇14年(西紀553年)遣使百濟令其醫博士歷博士易博士更迭來朝 。 且令其攜送各種藥品 。 先於允恭天皇之前 。 或已有韓醫學之輸入 。 亦為一般史家所公認 。 此種韓醫學 。 原非朝鮮之固有 。 乃受中國之漢醫影響而成者 。 故此亦可謂由朝鮮介紹而間接輸入日本 。 如仔細考究 。 允恭天皇之求醫於新羅 。 事在吳普本草成立後約200年 。 而在陶弘景之神農本草經成立前約100年 。 又欽明天皇之求醫藥於百濟 。 乃陶弘景神農本草經成立後之事 。 由允恭天皇至欽明天皇之時期 。 神農本草經所紀載之藥物 。 已盛行於韓土 。 故無論神農本草經及更早之吳普本草內所記有之牛黃諸藥 。 想當時已有韓土供為藥品 。 按余之推想 。 彼時定有經韓土介紹而至日本之可能 。 欽明天皇23年已後 。 已開直接輸入之道 。 其後又50年至推古天皇16年 。 命醫師惠日福因等留學唐土 。 苦心勵學 。 凡15年學成歸國 。 廣為傳播 。 此後更有多數醫家 。 相繼留學 。 故此時日本之漢方醫學 。 非常盛行 。 且由唐供給多量之醫藥 。 然此時唐朝醫學 。 以巢元方之病源候論 。 孫思邈之千金方等為中心 。 故千金方內多數之牛黃處方 。 早經留學生而傳入 。 故牛黃確實在奈良朝以前之推古天皇時期輸入日本 。 然更早於推古天皇之時期 。 是否已由韓氏介紹輸入 。 亦不無可疑也 。 關於牛黃在當時之應用 。 用法 。 藥理見解及其後有何變遷 。 於以下諸條詳加討論 。
우황이 언제 일본에 전해졌는지는 첫 번째 보고에서 말한 것처럼 《속일본기》의 문무천황 조에 이미 2년 정월 기사에 토좌국이 우황을 바쳤고 11월 기유에 하총국이 우황을 바쳤다고 적혀 있으므로 나라시대 이전에 우황 기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정확히 언제 수입했는지는 고찰할 수 없다. 한약학이 동쪽으로 전해진 유래는 매우 오래되었으며 직접 수입은 일본 긴메이천황 23년, 서기 562년에 오나라 사람 지총이 약서와 명당도 110여 권을 가지고 일본으로 간 데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이미 조선을 거쳐 간접적으로 수입되었다. 역사에 따르면 인교천황 3년 1월, 서기 414년에 천황이 중병에 걸려 신라에 좋은 의사를 구하였고 같은 해 8월 의사 금파진한기무가 와서 천황의 병을 치료하게 하였다. 또 긴메이천황 14년, 서기 553년에는 백제에 사신을 보내 의박사·역박사·역학 박사를 번갈아 오게 하고 여러 약품도 가져오게 하였다. 인교천황 이전에도 한의학이 들어왔을 수 있다는 것은 일반 역사가들도 공인한다. 이러한 한의학은 본래 조선 고유의 것이 아니라 중국 한의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므로 이 역시 조선의 소개로 일본에 간접 수입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인교천황이 신라에 의사를 구한 것은 《오보본초》 성립 후 약 200년, 도홍경의 《신농본초경》 성립 전 약 100년이다. 또 긴메이천황이 백제에 의약을 구한 것은 도홍경의 《신농본초경》 성립 뒤이다. 인교천황에서 긴메이천황까지의 시기에 《신농본초경》에 기록된 약물은 이미 한국 땅에서 성행하였다. 따라서 《신농본초경》과 그보다 이른 《오보본초》에 기록된 우황 등의 약은 당시 이미 한국 땅에서 약품으로 쓰였을 것이다. 내 추측으로는 그때 한국 땅의 소개를 거쳐 일본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분명 있다. 긴메이천황 23년 이후에는 직접 수입의 길이 열렸고, 그 뒤 다시 50년이 지나 스이코천황 16년에는 의사 혜일·복인 등을 당나라에 유학 보내 애써 공부하게 하여 모두 15년 만에 학업을 마치고 돌아와 널리 전파하였다. 이후에도 많은 의가가 잇달아 유학하여 당시 일본의 한방의학이 매우 성행하였고 당에서 많은 의약을 공급하였다. 당시 당의 의학은 소원방의 《병원후론》과 손사막의 《천금방》 등을 중심으로 하였으므로 《천금방》의 여러 우황 처방은 일찍이 유학생을 통해 전해졌다. 따라서 우황은 확실히 나라시대 이전 스이코천황 시기에 일본에 들어왔다. 다만 스이코천황보다 더 이른 시기에 이미 한국의 소개를 거쳐 들어왔는지는 의문이 없지 않다. 우황의 당시 응용·사용법·약리 견해 및 이후의 변화는 다음 항목들에서 자세히 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