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四章 、 日本之牛黃藥用史

牛黃何時傳入日本 。 如第一報告 。 已於續日本紀元文武天皇之條內錄有二年正月己巳 。 土佐國獻牛黃 。 十一月己酉 。 下總國獻牛黃 。 可知奈良朝以前已有牛黃之紀載 。 惟確係何時輸入 。 則不可考 。 按漢藥學之東漸 。 由來甚久 。 其直接輸入 。 始於日本之欽明天皇23年(西紀562年)有吳人知聰 。 攜藥書明堂圖百十餘卷 。 東至日本 。 但在此事以前 。 已由朝鮮有間接之輸入 。 據歷史有允恭天皇3年一月(西紀414年)天皇篤疾 。 求良醫於新羅 。 同年八月 。 醫者金波鎮漢紀武來朝 。 使其療天皇之御疾 。 又欽明天皇14年(西紀553年)遣使百濟令其醫博士歷博士易博士更迭來朝 。 且令其攜送各種藥品 。 先於允恭天皇之前 。 或已有韓醫學之輸入 。 亦為一般史家所公認 。 此種韓醫學 。 原非朝鮮之固有 。 乃受中國之漢醫影響而成者 。 故此亦可謂由朝鮮介紹而間接輸入日本 。 如仔細考究 。 允恭天皇之求醫於新羅 。 事在吳普本草成立後約200年 。 而在陶弘景之神農本草經成立前約100年 。 又欽明天皇之求醫藥於百濟 。 乃陶弘景神農本草經成立後之事 。 由允恭天皇至欽明天皇之時期 。 神農本草經所紀載之藥物 。 已盛行於韓土 。 故無論神農本草經及更早之吳普本草內所記有之牛黃諸藥 。 想當時已有韓土供為藥品 。 按余之推想 。 彼時定有經韓土介紹而至日本之可能 。 欽明天皇23年已後 。 已開直接輸入之道 。 其後又50年至推古天皇16年 。 命醫師惠日福因等留學唐土 。 苦心勵學 。 凡15年學成歸國 。 廣為傳播 。 此後更有多數醫家 。 相繼留學 。 故此時日本之漢方醫學 。 非常盛行 。 且由唐供給多量之醫藥 。 然此時唐朝醫學 。 以巢元方之病源候論 。 孫思邈之千金方等為中心 。 故千金方內多數之牛黃處方 。 早經留學生而傳入 。 故牛黃確實在奈良朝以前之推古天皇時期輸入日本 。 然更早於推古天皇之時期 。 是否已由韓氏介紹輸入 。 亦不無可疑也 。 關於牛黃在當時之應用 。 用法 。 藥理見解及其後有何變遷 。 於以下諸條詳加討論 。
우황이 언제 일본에 전해졌는지는 첫 번째 보고에서 말한 것처럼 《속일본기》의 문무천황 조에 이미 2년 정월 기사에 토좌국이 우황을 바쳤고 11월 기유에 하총국이 우황을 바쳤다고 적혀 있으므로 나라시대 이전에 우황 기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정확히 언제 수입했는지는 고찰할 수 없다. 한약학이 동쪽으로 전해진 유래는 매우 오래되었으며 직접 수입은 일본 긴메이천황 23년, 서기 562년에 오나라 사람 지총이 약서와 명당도 110여 권을 가지고 일본으로 간 데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이미 조선을 거쳐 간접적으로 수입되었다. 역사에 따르면 인교천황 3년 1월, 서기 414년에 천황이 중병에 걸려 신라에 좋은 의사를 구하였고 같은 해 8월 의사 금파진한기무가 와서 천황의 병을 치료하게 하였다. 또 긴메이천황 14년, 서기 553년에는 백제에 사신을 보내 의박사·역박사·역학 박사를 번갈아 오게 하고 여러 약품도 가져오게 하였다. 인교천황 이전에도 한의학이 들어왔을 수 있다는 것은 일반 역사가들도 공인한다. 이러한 한의학은 본래 조선 고유의 것이 아니라 중국 한의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므로 이 역시 조선의 소개로 일본에 간접 수입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인교천황이 신라에 의사를 구한 것은 《오보본초》 성립 후 약 200년, 도홍경의 《신농본초경》 성립 전 약 100년이다. 또 긴메이천황이 백제에 의약을 구한 것은 도홍경의 《신농본초경》 성립 뒤이다. 인교천황에서 긴메이천황까지의 시기에 《신농본초경》에 기록된 약물은 이미 한국 땅에서 성행하였다. 따라서 《신농본초경》과 그보다 이른 《오보본초》에 기록된 우황 등의 약은 당시 이미 한국 땅에서 약품으로 쓰였을 것이다. 내 추측으로는 그때 한국 땅의 소개를 거쳐 일본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분명 있다. 긴메이천황 23년 이후에는 직접 수입의 길이 열렸고, 그 뒤 다시 50년이 지나 스이코천황 16년에는 의사 혜일·복인 등을 당나라에 유학 보내 애써 공부하게 하여 모두 15년 만에 학업을 마치고 돌아와 널리 전파하였다. 이후에도 많은 의가가 잇달아 유학하여 당시 일본의 한방의학이 매우 성행하였고 당에서 많은 의약을 공급하였다. 당시 당의 의학은 소원방의 《병원후론》과 손사막의 《천금방》 등을 중심으로 하였으므로 《천금방》의 여러 우황 처방은 일찍이 유학생을 통해 전해졌다. 따라서 우황은 확실히 나라시대 이전 스이코천황 시기에 일본에 들어왔다. 다만 스이코천황보다 더 이른 시기에 이미 한국의 소개를 거쳐 들어왔는지는 의문이 없지 않다. 우황의 당시 응용·사용법·약리 견해 및 이후의 변화는 다음 항목들에서 자세히 논의한다.
一 、 牛黃之藥性
1. 우황의 약성
牛黃之氣味 。 平安朝以前 。 並無記述 。 在平安朝之藥經太素及康賴本草均謂牛黃苦平有小毒 。
우황의 기미는 헤이안시대 이전에는 기록이 없다. 헤이안시대의 《약경태소》와 《강뢰본초》는 모두 우황이 쓰고 평하며 독이 조금 있다고 하였다.
日本戰國時代之藥性能毒大成 。 謂牛黃苦平有小毒 。 一曰甘涼無毒 。 德川時代之和語本草 。 謂牛黃甘涼 。
일본 전국시대의 《약성능독대성》에서는 우황은 쓰고 평하며 독이 조금 있다고 하였고, 다른 설로는 달고 서늘하며 독이 없다고 하였다. 도쿠가와시대의 《화어본초》는 달고 서늘하다고 하였다.
牛黃之相使相惡 。 奈良朝以前無論及之者 。 至平安朝醫心方內 。 始有牛黃惡龍骨 、 地黃 、 龍膽 、 常山 、 蜚蠊 、 牛膝 、 乾漆 。 人參為之使 。 得牡丹菖蒲利耳目 。
우황의 상사·상오는 나라시대 이전에는 논한 사람이 없고, 헤이안시대 《의심방》에서 처음으로 우황은 용골·지황·용담·상산·비렴·우슬·건칠을 싫어하며 인삼을 사약으로 삼고 목단·창포를 얻으면 귀와 눈을 이롭게 한다고 하였다.
其後戰國時代(日本)之藥性能毒大成 。 德川時代之和語本草 。 皆作同樣之記載 。 要其持論亦不出乎醫心方之範圍 。 想系牛黃輸入之際 。 即有此說傳自中華 。 至今仍沿用之 。
그 뒤 일본 전국시대의 《약성능독대성》과 도쿠가와시대의 《화어본초》도 모두 같은 기록을 남겼다. 요컨대 그 주장은 《의심방》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니 우황이 들어올 때 이 설도 중국에서 전해져 지금까지 그대로 쓰인 듯하다.
二 、 牛黃之用法
2. 우황의 사용법
平安朝之康賴本草曰 。 牛黃 。 勿見日月光用之 。
헤이안시대의 《강뢰본초》에서는 우황은 햇빛과 달빛을 보게 하지 않고 쓴다고 하였다.
醫心方之合藥料理法內牛黃 。 細末 。 加粉服之 。
《의심방》의 합약요리법에는 우황을 곱게 가루 내어 가루를 더하고 복용한다고 되어 있다.
藥性能毒大成之牛黃之條 。 謂採取後勿見日光 。 百日陰乾之 。 又曰 。 用時盛乳缽內研細用之 。
《약성능독대성》의 우황 조에는 채취한 뒤 햇빛을 보게 하지 말고 백 일 동안 그늘에 말린다고 하였다. 또 쓸 때는 유발에 담아 곱게 갈아 쓴다고 하였다.
德川時代之和語本草曰 。 牛黃研為極細而用 。 故知用法 。 亦與中國古時所施行者相同 。
도쿠가와시대의 《화어본초》에서는 우황을 아주 곱게 갈아 쓴다고 하였으므로 사용법도 중국의 옛 시행법과 같음을 알 수 있다.
三 、 牛黃之應用
3. 우황의 응용
牛黃雖如上所述 。 已於奈良朝前推古於皇之際 。 輸入日本 。 然當時應用於何病 。 已無記載 。 據今日之推測 。 彼時既為漢醫東漸之開始 。 而又以病源候論千金方等為中心 。 當然以千金方等所記載之用法為準繩 。 如驚癇寒熱 。 小兒百病 。 邪鬼狂癲等是 。 惟此時之牛黃 。 均仰供於中國之輸入 。 其應用尚少 。 至奈良朝時 。 方漸盛行 。 由下記錄 。 可以證之 。
위에서 말했듯 우황은 나라시대 이전 스이코천황 무렵에 이미 일본에 들어왔지만 당시 어떤 병에 썼는지는 기록이 없다. 지금 추측하자면 당시 한의가 동쪽으로 전해지기 시작하였고 《병원후론》·《천금방》 등을 중심으로 하였으므로 당연히 《천금방》 등에 기록된 사용법을 기준으로 삼았을 것이다. 경간·한열, 소아의 온갖 병, 사귀·광전 등이 그것이다. 다만 당시 우황은 모두 중국 수입에 의존하여 사용이 아직 적었고 나라시대에 이르러 점차 성행하였음을 다음 기록으로 증명할 수 있다.
奈良東大寺正倉院御庫中收藏之藥物 。 及關於藥物之記錄 。 為日本古代藥物記錄之至寶 。 但奈良朝代所用之藥物記錄已失 。
나라 도다이지 정창원 어고에 소장된 약물과 약물 관련 기록은 일본 고대 약물 기록의 지보이다. 다만 나라시대에 쓰던 약물 기록은 이미 없어졌다.
據他記錄載有天平勝寶8年(西紀756年)考謙天皇 。 在父皇聖武天皇77忌辰之時 。 賜種種寶物及60種之藥物 。 供於東大寺廬舍那佛 。 此60種之御藥 。 皆為當時所作為藥用者 。 其御供養之願文 。
다른 기록에 따르면 덴표쇼호 8년, 서기 756년에 고겸천황은 부황 쇼무천황의 칠칠 기일에 여러 보물과 60종의 약물을 내려 도다이지 노사나불에게 공양하였다. 이 60종의 어약은 모두 당시 약으로 쓰던 것이다. 그 공양 발원문은 다음과 같다.
以前安置堂內供養廬舍那佛 。 若有緣病苦可用者 。 並知僧網 。 後聽充用 。 伏願服此藥者 。 萬病悉除 。 千苦皆救 。 諾善成就 。 諾惡斷卻 。 自非業道 。 長無夭折 。 遂使命終之後 。 往生花藏世界 。 面奉廬舍那佛 。 必欲證得遍法世界 。 然則牛黃是否亦在60種藥物之內 。 雖未載明 。 查當時之御藥目錄 。 及奉廬舍那佛種種藥帖 。 均未載有牛黃 。 又另一記錄即由天平勝寶4年 。 至文德天皇之齊衡3年 。 約100年之間 。 記載進納於正倉院之藥物及其他之雜物出入繼文內 。
이상은 당 안에 안치하여 노사나불께 공양합니다. 인연이 있는 이의 병고에 쓸 수 있으면 승강에게 알리고 뒤에 사용을 허락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이 약을 복용하는 이는 온갖 병이 모두 없어지고 모든 고통에서 구제되며 여러 선이 성취되고 여러 악이 끊어지며, 스스로 업도에 속한 것이 아니라면 오래도록 요절이 없게 하소서. 마침내 목숨이 끝난 뒤에는 화장세계에 왕생하여 노사나불을 직접 받들고 반드시 두루한 법세계를 증득하게 하소서. 그렇다면 우황도 60종 약물에 포함되었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당시 어약목록과 노사나불께 바친 여러 약첩을 살펴보면 모두 우황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또 다른 기록인 덴표쇼호 4년부터 몬토쿠천황의 사이코 3년까지 약 100년 동안 정창원에 들인 약물과 다른 잡물의 출입계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麝香一管 犀角一枚 雄黃一劑 犀角杯一口 玉杯一枚
사향 1관, 서각 1개, 웅황 1제, 서각배 1개, 옥배 1개.
天平勝寶四年四月八日
덴표쇼호 4년 4월 8일.
即天寶8年孝謙天皇供養60種御藥之前4年 。 已有牛黃麝香犀角雄黃之收藏於正會院矣 。 麝香犀角雄黃等既為當時供養之御藥 。 及醫療之用品 。 牛黃亦必於當時博同等之價值 。 惟其用於何病 。 獨無記載 。 想彼時既以千金方病源候論等為本 。 則牛黃之應用 。 亦必循該書等所述無疑 。
곧 천보 8년 고켄천황이 60종의 어약을 공양하기 4년 전에 이미 우황·사향·서각·웅황이 정회원에 소장되어 있었다. 사향·서각·웅황 등이 당시 공양한 어약이자 의료용품이었던 만큼 우황도 당시 같은 가치를 얻었을 것이다. 다만 어떤 병에 썼는지는 유독 기록이 없다. 당시 《천금방》·《병원후론》 등을 근본으로 삼았으므로 우황의 응용도 이 책들의 설명을 따랐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再平安朝時代醫心方第25卷癇病方曰 。 廣利方 。 孩子驚癇不知人 。 迷悶嚼目方 。 牛黃大豆許 。 和蜜水服立效 。
다시 헤이안시대 《의심방》 제25권 간병방에서는 《광리방》의 아이가 경간으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정신이 아득하고 답답하며 눈을 씹는 증의 처방으로, 우황을 콩알만큼 꿀물에 섞어 복용하면 곧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再同書10卷 。 治大腹水腫方曰 。 千金治大腹水腫 。 氣息不通 。 命在旦夕者方 。
또 같은 책 10권의 대복수종을 치료하는 처방에서는 《천금》에서 배가 크게 붓고 숨이 통하지 않아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을 치료하는 처방이라고 하였다.
牛黃(二分)昆布(十分) 海藻(十分) 牽牛子(八分) 桂心(八分) 椒目(三兩) 葶藶(六兩)
우황 2푼, 곤포 10푼, 해조 10푼, 견우자 8푼, 계심 8푼, 초목 3냥, 정력 6냥.
上七味 。 別搗葶藶 。 熟如膏 。 合和丸 。 如梧子 。 飲服十丸 。 日再稍加 。 小便利為度 。
위 일곱 가지 가운데 정력은 따로 고약처럼 충분히 찧고 합하여 반죽해 오동나무 씨 크기의 환을 만든다. 미음으로 열 환을 복용하고 하루 두 번 조금씩 늘려 소변이 잘 나오게 되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
想惠日福因等留學生所輸入之唐醫學 。 至奈良朝時始盛 。 至平安朝更廣 。 上記諸處方 。 定被當時所採用 。 且此數朝代內 。 牛黃所應用之疾病 。 亦略相同 。
혜일·복인 등 유학생이 들여온 당 의학은 나라시대에 비로소 성행하고 헤이안시대에 더욱 넓어졌으니 위의 여러 처방도 당시 채택되었을 것이다. 이 여러 시대 동안 우황을 쓴 질병도 대략 같았다.
其後鎌倉時代 。 當時代表的處方書如萬安方內 。 亦有牛黃清心丸 。 牛黃萬病丸(上回報告參照)等處方 。 其他更記載癲病狂痙邪鬼中風毒瘡等多數處方 。 想在此時期 。 宋朝醫學介於僧侶之手 。 而入日本 。 故萬安方內之處方 。 實與宋朝所載者相同 。 牛黃且可用於中風解毒矣 。
그 뒤 가마쿠라시대의 대표적인 처방서인 《만안방》에도 우황청심환·우황만병환 등의 처방이 있다. 앞 보고를 참고할 수 있다. 그 밖에 전병·광경·사귀·중풍·독창 등 여러 처방도 기록하였다. 이 시기에 송 의학이 승려의 손을 거쳐 일본에 들어왔으므로 《만안방》의 처방은 실로 송대에 기록된 것과 같으며 우황을 중풍과 해독에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其後足利時代應仁之亂前後 。 所謂關白一條兼良之尺素往來內載蘇合丸 、 至寶丸 、 腦麝丸 、 沉麝丸 、 牛黃丸 、 麝香丸 、 菟絲子丸 、 阿伽陀藥並臘藥等 。 當世人人燧袋之底 。 面面小藥器中 。 心齋持之 。 以不得貯為恥辱候云云 。 當時寶貴牛黃 。 概可想見 。 然應用想亦與前代無異 。
그 뒤 아시카가시대 오닌의 난 전후에 이른바 관백 이치조 가네요시의 《척소왕래》에는 소합환·지보환·뇌사환·침사환·우황환·사향환·토사자환·아가타약 및 납약 등을 당시 사람마다 부싯돌 주머니 밑과 작은 약그릇 속에 마음에 새겨 지니고, 저장하지 못한 것을 치욕으로 여겼다는 말이 실려 있다. 당시 우황을 귀히 여긴 정도를 대략 상상할 수 있으나 응용은 앞 시대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更後日本戰國時代之藥性能毒大成曰 。 牛黃入於肝 。 治筋病 。 安魂定魄 。 攘邪綏神 。 益肝膽又清心 。 除熱 。 利痰 。 治健忘 。 及小兒百病狂癇寒熱並男女驚狂等 。 再同書之附方內 。 又載有用牛黃治中風 。 小兒驚風 。 腹痛 。 夜啼 。 痘瘡黑陷之處方 。 藥性能毒大成一書 。 原為蒐集普通之藥品而論其藥性效能之本草 。 由此可想像牛黃在當時為盛用之藥品 。
그 뒤 일본 전국시대의 《약성능독대성》에서는 우황은 간에 들어가 근의 병을 치료하고 혼을 편안하게 하고 백을 안정시키며 사기를 물리치고 신을 편안하게 하며 간담을 잘 배출하게 하고 심을 맑히고 열을 없애며 담을 잘 배출하게 하여 건망과 소아의 온갖 병·광간·한열 및 남녀의 경광 등을 치료한다고 하였다. 또 같은 책의 부방에는 우황으로 중풍·소아 경풍·복통·야제·두창의 검은 함몰을 치료하는 처방이 실려 있다. 《약성능독대성》은 본래 흔한 약품을 모아 약성과 효능을 논한 본초이므로 우황이 당시 널리 쓰이던 약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再後德川時代初期之和語本草有牛黃治小兒百病 。 驚癇寒熱熱盛口噤 。 大人狂癲痙 。 中風失音口噤 。 驚悸 。 小兒驚痢夜啼 。 邪魅 。 中惡 。 健忘 。 墮胎 。 牛黃乃定精神安魂涼熱 。 利痰 。 搜肝風 。 清心逐鬼良藥也 。
그 뒤 도쿠가와 초기의 《화어본초》에는 우황이 소아의 온갖 병, 경간·한열과 열이 성한 구금, 성인의 광전·경련, 중풍·실음·구금, 경계, 소아의 경리·야제, 사매·중악·건망을 치료하고 낙태시킨다고 되어 있다. 우황은 정신을 안정시키고 혼을 편안하게 하며 열을 식히고 담을 잘 배출하게 하고 간풍을 찾아 제거하고 심을 맑히고 귀신을 쫓는 좋은 약이다.
同朝末期出版之觀聚方要補內亦云 。 牛黃涼驚丸 。 治小兒胞熱 。 小兒驚疳 。 牛黃人參散 。 治小兒驚熱 。 牛黃丸 。 治小兒百病 。 牛黃瀉心湯 。 治小兒癲疾癇狂 。 牛黃清心丸 。 治中風失音健忘心氣不足神志不定等處方 。
같은 시대 말기에 간행된 《관취방요보》에도 우황양경환은 소아의 포열·경감을 치료하고, 우황인삼산은 소아의 경열을 치료하며, 우황환은 소아의 온갖 병을 치료하고, 우황사심탕은 소아의 전질·간광을 치료하며, 우황청심환은 중풍·실음·건망·심기부족·신지불정 등을 치료한다는 처방이 있다.
明治維新以後 。 漢藥漸廢 。 牛黃遂失其價值 。 只有少數人 。 尚用以治小兒百病 。 熱病 。 大人狂癲 。 在民間或用為傷寒熱之特效藥 。
메이지유신 이후 한약이 점차 폐지되면서 우황은 가치를 잃었고 소수만이 소아의 온갖 병·열병·성인의 광전을 치료하는 데 쓴다. 민간에서는 상한열의 특효약으로 쓰기도 한다.
以上本草可約而言之 。 牛黃在奈良前已傳入日本 。 當時僅用於痙攣性諸病及小兒百病熱病大人狂癲等 。 奈良平安以後 。 其需要更多 。 至日本戰國時代 。 受宋醫學之影響 。 以迄德川時代 。 日增月益 。 且可用於中風或解毒等 。 至明治維新以後 。 遂與漢醫學同歸零替 。
이상 본초의 내용을 요약하면 우황은 나라시대 이전에 이미 일본에 전해졌고 당시에는 여러 경련성 질환과 소아의 온갖 병·열병·성인의 광전 등에만 썼다. 나라·헤이안 이후 수요가 더욱 많아지고 일본 전국시대에는 송 의학의 영향을 받아 도쿠가와시대까지 날로 늘었으며 중풍이나 해독에도 쓸 수 있게 되었다. 메이지유신 이후에는 한의학과 함께 쇠퇴하였다.
四 、 牛黃之藥理見解
4. 우황의 약리에 관한 견해
此亦為日本戰國時代以後 。 即金元醫方傳入之時 。 方有論及牛黃之藥性者 。 茲舉二三例如下 。
이 역시 일본 전국시대 이후, 곧 금원 의방이 전해졌을 때 비로소 우황의 약성을 논한 사람이 있었다. 두세 가지 예를 다음에 든다.
藥性能毒大成曰 。 牛黃入肝經 。 治筋病 。 安魂定魄 。 攘鬼邪之祟 。 正精神 。 益肝膽 。
《약성능독대성》에서는 우황은 간경에 들어가 근의 병을 치료하며 혼을 편안하게 하고 백을 안정시키며 귀사의 빌미를 물리치고 정신을 바르게 하고 간담을 이롭게 한다고 하였다.
和語本草曰 。 牛黃治小兒百病驚癇熱盛口噤 。 因小兒諸病多為胎熱毒疾 。 犯邪惡 。 乃心肝二經之病 。 牛黃涼熱利痰逐惡邪入肝心二經也 。
《화어본초》에서는 우황이 소아의 온갖 병과 경간으로 열이 성하여 입을 다문 것을 치료하는 까닭은 소아의 여러 병이 대부분 태열의 독질과 사악의 침범으로 심간 두 경의 병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우황은 열을 식히고 담을 잘 배출하게 하고 악사를 쫓으며 간심 두 경에 들어간다.
治大人狂癲痙 。 此皆風火之相搏也 。 牛黃涼心火搜肝風也 。
성인의 광전과 경련을 치료한다. 이는 모두 풍화가 서로 부딪친 것이므로 우황은 심화를 식히고 간풍을 찾아 제거한다.
治驚悸 。 定魂魄 。 安精神 。 清心肝風熱也 。
경계를 치료한다. 혼백을 안정시키고 정신을 편안하게 하며 심간의 풍열을 맑힌다.
治中風失音口噤 。 此亦搜肝風涼心熱利痰也 。
중풍으로 목소리를 잃고 입을 다문 것을 치료한다. 이 역시 간풍을 찾아 제거하고 심열을 식히며 담을 잘 배출하게 하는 것이다.
治健忘 。 利痰定魂魄精神也 。
건망을 치료한다. 담을 잘 배출하게 하고 혼백과 정신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諸說均謂牛黃能入心肝 。 故能治心肝之病 。 如驚癇寒熱 。 小兒百病 。 中風口噤等症 。 與金元諸家之說 。 殆相一致 。
여러 설은 모두 우황이 심간에 들어가므로 경간·한열, 소아의 온갖 병, 중풍·구금 등의 심간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니 금원 여러 학자의 설과 거의 일치한다.
總括
총괄
本章可總括如下
이 장을 다음과 같이 총괄할 수 있다.
(一)牛黃已於奈良朝前之推古天皇時代傳入日本 。
1. 우황은 나라시대 이전 스이코천황 때 이미 일본에 전해졌다.
(二)牛黃氣味苦平甘涼 。 有毒無毒 。 人各一說 。 其相使相惡 。 亦如中國所論者相同 。 即人參牡丹菖蒲可使 。 龍骨地黃常山蜚蠊牛膝乾漆相惡 。
2. 우황의 기미는 쓰고 평하다거나 달고 서늘하다 하며 독이 있다거나 없다 하여 사람마다 설이 다르다. 상사·상오도 중국에서 논한 것과 같아 인삼·목단·창포는 사약으로 쓸 수 있고 용골·지황·상산·비렴·우슬·건칠과는 상오한다.
(三)牛黃原為由中國傳入 。 故其用法 。 亦如當時所教 。 即經長期間之陰乾研末而用 。
3. 우황은 본래 중국에서 전해졌으므로 사용법도 당시 가르친 대로 오래 그늘에 말린 뒤 가루로 갈아 쓰는 것이다.
(四)牛黃之輸入日本 。 適唐醫學以病源候論千金方盛時期 。 故其應用亦如千金方所載者相同 。 如痙攣性諸病小兒百病大人狂癲熱病等症 。 其後牛黃在中國應用漸廣 。 遂亦影響及日本 。 故鎌倉時代 。 更用於治中風 。 健忘 。 虛乏 。 瀉痢 。 大小便不通 。 及解毒之目的 。 迄乎明治維新 。 遂與多數之漢藥 。 廢而不用矣 。
4. 우황이 일본에 수입된 때는 마침 당 의학에서 《병원후론》·《천금방》이 성행한 시기였으므로 응용도 《천금방》에 실린 것과 같아 여러 경련성 질환, 소아의 온갖 병, 성인의 광전·열병 등의 증에 썼다. 이후 중국에서 우황의 응용이 점차 넓어지면서 일본에도 영향을 주어 가마쿠라시대에는 중풍·건망·허핍·사리·대소변불통을 치료하거나 해독을 목적으로 더욱 쓰였다. 메이지유신에 이르러서는 많은 한약과 함께 폐지되어 쓰지 않게 되었다.
(五)其藥理之見解 。 古雖不明 。 至日本戰國時代以後 。 受金元醫方之影響 。 亦謂黃乃心肝間之凝結物 。 必逆而治心肝之病如痙病狂癇癲病及小兒百病中風熱病等 。
5. 약리에 관한 견해는 옛날에는 불분명하였지만 일본 전국시대 이후 금원 의방의 영향을 받아 황은 심간 사이의 응결물이므로 거꾸로 경병·광간·전병 및 소아의 온갖 병·중풍·열병 등 심간의 병을 반드시 치료한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