產後感冒時邪 , 宜溫散 , 不宜涼散 , 人人知之 。 而亦有不宜於溫而宜於涼者 , 誤用溫則不得不用大寒矣 。 歸鞠氏侄女 , 冬月初產無恙 , 至六日頭痛身熱 , 凜凜畏寒 , 予用梔豉湯 , 夜半熱退 , 逾日復熱 , 更醫用產後逐瘀成法 , 遂加煩躁 。 余謂冬溫為病 , 清之可安 。 通評虛實論曰 : 乳子而病熱 , 脈懸小者 , 手足溫則生 , 仍依時邪治例 , 用白虎湯而愈 。 凡產後無產證而染他證者 , 即當以他證治之 , 而丹溪大補氣血之言 , 卻不可拘 。 仲景云 : 病解能食 , 七八日更發熱者 , 此為胃實 , 大承氣湯主之 。 夫陽明經中 , 仲景尚再三戒人不可輕下 , 而產後亡血既多 , 仍云承氣主之 , 蓋既為胃實自有不得不用之理 , 舉一證而產後之挾實者可類推也 。 仲景云 : 產後下利虛極 , 白頭翁加甘草阿膠湯主之 。 夫既曰虛極 , 仍用白頭翁湯者 , 下痢中既有渴欲飲水熱而下重之證 , 則白頭翁湯自有不得不用之理 。 惟其虛極 , 故加甘草 、 阿膠以養其正 , 舉一證而產後之挾虛者可類推也 。
산후 시사에 감모되면 온산이 좋고 양산은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온법이 맞지 않고 양법이 맞는 경우도 있으며, 온약을 잘못 쓰면 매우 찬 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귀국씨의 조카딸은 겨울에 출산하여 처음에는 탈이 없었으나 엿샛날 두통·신열과 오싹한 오한이 생겼다. 내가 치시탕을 쓰자 한밤중에 열이 내렸으나 하루 지나 다시 열이 났다. 의사를 바꾸어 산후 어혈을 몰아내는 통상법을 쓰자 번조가 더해졌다. 나는 동온병이므로 맑게 하면 편안해질 수 있다고 하였다. 「통평허실론」에 “아이에게 젖 먹이는 이가 열병을 앓아 맥이 현소하더라도 손발이 따뜻하면 산다”라고 하였으므로, 여전히 시사 치료례를 따라 백호탕을 써서 나았다. 산후의 증은 없고 다른 증에 감염된 경우에는 다른 증으로 다스려야 하며, 단계가 기혈을 크게 보하라고 한 말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중경은 “병이 풀려 먹을 수 있게 되었다가 7~8일 뒤 다시 열이 나면 위실이니 대승기탕이 주치한다”라고 하였다. 양명경에서도 중경은 가볍게 내리지 말라고 거듭 경계했는데 산후에 피를 많이 잃었음에도 승기탕이 주치한다고 한 것은, 위실이면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 한 증으로 산후에 실을 겸한 경우를 유추할 수 있다. 중경은 “산후 하리로 극히 허하면 백두옹가감초아교탕이 주치한다”라고 하였다. 극히 허하다고 하고도 백두옹탕을 쓰는 것은, 하리 가운데 갈증으로 물을 마시려 하고 열과 하중이 있으면 백두옹탕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치가 있기 때문이다. 극히 허하므로 감초·아교를 더하여 정기를 기르는 것이다. 이 한 증으로 산후에 허를 겸한 경우를 유추할 수 있다.
產後惡露不行 , 胸腹飽脹 , 溫之通之 , 人人知之 。 而亦有不宜於溫而宜於涼 , 不宜於通而宜於和者 。 東門鞠上玉室初產患此 , 其脈數大而疾 , 上兼鼻衄 , 余用當歸二兩煎湯 , 沖熱童便與服 , 稍稍安穩 , 但惡露止有點滴耳 。 更醫用炮薑等溫通套劑 , 遂至胸腹增脹 , 惡露點滴不行 , 有欲依產後春溫治例 , 大進苦寒之品 , 余曰 : 又非穩治 。 堅用歸地丹芍等涼血和血之劑 , 十餘日 , 惡露大行而全愈 。 凡產後病解能食 , 七八日更發熱者 , 當作別病治 。 初產後即發熱者 , 則仍作產後治 。 但各有寒熱 , 兩途不可不條分縷析 。
산후 오로가 나오지 않아 가슴과 배가 팽만하면 따뜻하게 하고 통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온법보다 양법이, 통법보다 화법이 적절한 경우도 있다. 동문의 국상옥 아내는 출산 직후 이 병을 앓았고 맥은 삭대하면서 빠르며 위로 코피까지 났다. 나는 당귀 2냥을 달여 뜨거운 동변을 타서 먹이니 조금 안정되었으나 오로는 방울방울 나올 뿐이었다. 의사를 바꾸어 포강 등 상투적인 온통제를 쓰자 가슴과 배가 더욱 부풀고 오로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산후 춘온의 예를 따라 쓰고 찬 약을 많이 쓰려는 이가 있었으나 나는 그것도 안전한 치료가 아니라고 하였다. 당귀·지황·목단피·작약 등의 양혈화혈제를 꾸준히 써서 10여 일 뒤 오로가 크게 나오고 완쾌하였다. 산후 병이 풀려 먹을 수 있다가 7~8일 뒤 다시 열이 나면 별개의 병으로 다스려야 하고, 출산 직후 곧 열이 나면 여전히 산후병으로 다스려야 한다. 다만 각각 한열이 있으므로 두 길을 세밀하게 나누지 않을 수 없다.
郡城侯姓婦年三下有八 , 因元霄夜遊 , 行走太勞 , 歸即小產 。 醫者皆以其胸腹有塊 , 用逐瘀成法 , 每劑必加炮薑 , 俱未有效 。 後雖停藥 , 而骨節如焚 , 積塊愈大 , 小便艱澀 , 熱痛異常 。 至三月初始延余診 , 已奄奄一息 。 診其脈沉伏之極 , 隱隱難尋 , 予固知其陰虛陽盛 , 但日期多延 , 宜用緩治 。 初投復脈減去薑桂 , 神氣稍安 , 繼投丹溪大補陰丸 , 諸恙悉減 , 終投本事虎杖湯 , 積塊平復 , 淋痛皆除 , 不及一月 , 飲食大增而全愈 。
군성의 후씨 부인은 38세였다. 정월 대보름 밤에 구경 나가 너무 많이 걸어 돌아오자마자 유산하였다. 의사들은 모두 가슴과 배에 덩어리가 있다고 어혈을 몰아내는 통상법을 쓰면서 매 제마다 포강을 더하였으나 효과가 없었다. 뒤에 약을 끊었어도 뼈마디가 타는 듯하고 덩어리가 더욱 커지며 소변이 어렵고 열과 통증이 심하였다. 3월 초에야 나를 불렀는데 이미 숨이 끊어질 듯하였다. 맥은 극도로 침복하여 희미하게 찾기 어려웠다. 음허양성인 줄은 분명히 알았으나 날이 많이 지났으므로 완만히 다스려야 했다. 처음 복맥탕에서 생강·계지를 빼고 투여하자 신기가 조금 안정되었고, 이어 단계의 대보음환을 투여하자 여러 증이 모두 줄었다. 마지막으로 『본사』의 호장탕을 주자 적괴가 평복되고 임통이 모두 없어졌으며 한 달도 안 되어 음식이 크게 늘고 완쾌하였다.
得勝渡衛姓婦初產惡露不行 , 發熱疼痛 , 中挾冬溫伏氣 , 醫用逐瘀溫經套劑 , 遂至熱邪流注左腿 , 日夜難安 , 飲多食少 , 至冬至朝延予診治 。 予變產後宜溫之說 , 用涼血大劑 , 加通瘀解毒 , 四服全愈 。
득승도의 위씨 부인은 출산 직후 오로가 나오지 않고 발열·통증이 있었으며 동온의 복기를 겸하였다. 의사가 어혈을 몰고 경을 따뜻하게 하는 상투적 약을 쓰자 열사가 왼쪽 다리로 흘러 밤낮 편치 않았고 많이 마시며 적게 먹었다. 동짓날 아침에 나를 불러 치료받았다. 나는 산후에는 따뜻하게 해야 한다는 설을 바꾸어 양혈약 대제에 어혈을 통하게 하고 독을 푸는 약을 더하여 네 번 복용으로 완쾌시켰다.
郡城張六老室 , 產後月餘 , 崩中不止 , 時當暑月 , 醫用和中養血 , 俱不能止 , 病已三日夜 , 視為必死 。 余診其脈 , 浮大欲脫 , 連聲索救 , 神氣尚清 , 急令煎黃耆一兩 , 當歸一兩 , 服之頃刻立止 。 古方當歸補血湯 , 黃耆多於當歸五倍 , 今加當歸與黃耆等分者 , 時當暑月 。 恐黃耆之過亢也 。
군성의 장육로 아내는 출산 한 달 남짓 뒤 붕중이 멎지 않았다. 때가 더운 달이었고 의사가 화중양혈약을 써도 멎지 않았다. 사흘 밤낮을 앓아 반드시 죽을 것으로 여겼다. 내가 보니 맥이 부대하여 빠져나가려 했고 연달아 구해달라고 외쳤지만 정신은 아직 맑았다. 급히 황기 1냥·당귀 1냥을 달여 먹이니 잠깐 사이에 곧 멎었다. 옛 당귀보혈탕은 황기가 당귀보다 다섯 배 많은데, 지금 당귀를 늘려 황기와 같은 분량으로 한 것은 더운 달이라 황기가 지나치게 치성해질까 염려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