府廩生高菊裳(名崇瑚弟藥房名崇瑞選拔又中式)令堂 , 病陽虛久痢 , 醫頻服溫補延至半載 , 病反增劇 , 晝夜三五十次 。 余診時 , 但述腰脊空痛異常 , 遂用斑龍丸峻補奇脈 。 初服一劑 , 病勢大減 , 自後連服數劑 , 竟無增減 , 服參些少 , 略安片刻 , 而菊裳藥房昆仲 , 以尊人病怔忡經年 , 參藥大費 , 人參豈能常服 。 余為沉思良久 , 改用黃耆建中加鹿角 。 時有醫士李蘅堂(秀)在座 , 謂峻補之法 , 繼以宣通陽氣 , 亦是一法 。 力贊此方為中病 , 堅服二十餘劑而愈 。
부의 늠생 고국상의 어머니가 양허로 오래 이질을 앓았다. (국상의 이름은 숭호이고, 아우 약방의 이름은 숭서로 선발되어 또 시험에 합격하였다.) 의사가 온보약을 자주 먹여 반년이 되었지만 병은 도리어 심해져 밤낮 30~50차례였다. 내가 진찰할 때 허리와 척추가 텅 빈 듯 몹시 아프다고만 하여 반룡환으로 기맥을 강하게 보하였다. 처음 한 제에 병세가 크게 줄었지만 뒤에 여러 제를 잇달아 먹어도 증감이 없었고, 인삼을 조금 먹으면 잠시 편안했다. 국상·약방 형제는 아버지가 정충을 여러 해 앓아 인삼 약값이 많이 들었는데 어찌 인삼을 늘 먹을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내가 오래 생각한 뒤 황기건중탕에 녹각을 더하여 바꾸었다. 그때 의사 이형당(수)이 자리에 있다가 강하게 보한 뒤 양기를 펴서 통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이 처방이 병에 맞는다고 힘써 찬성하였다. 20여 제를 꾸준히 복용하여 나았다.
南匯東門李連城病肝氣脹痛 , 因多服左金 , 遂至下痢不止 , 食飲不思 , 人亦不與之食 。 更醫則倏張倏李 , 用藥則惟朮惟苓 , 僉云不治 , 已措辦後事矣 。 不得已而索治於余 , 予令其早上服大劑歸脾 , 晚間服大劑六味 , 並令家人誘其食肉 , 即有效驗 , 一月全痊 。
남회 동문의 이연성은 간기로 배가 불러 아팠다. 좌금환을 많이 먹은 뒤 이질이 멎지 않고 음식을 생각하지 않게 되었으며 사람들도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의사는 갑자기 장씨로 바꾸었다가 다시 이씨로 바꾸었으나 약은 오직 출(朮)과 복령뿐이었다. 모두 치료할 수 없다고 하여 이미 장례 준비를 하였다. 부득이 나에게 치료를 청했기에 아침에는 귀비탕 대제를, 저녁에는 육미탕 대제를 먹게 하고 가족들에게 고기를 먹도록 권하게 하였더니 곧 효과가 있어 한 달 만에 완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