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營千總龔振邦 , 多欲陰虧 , 夏月病足膝痿弱 。 余謂當作暑痿治 , 清暑益氣加活血之品 。 授方不服 , 轉服傷科之藥 。 一旦昏厥 , 心痛欲死 。 仍延余診 。 脈來虛散 , 生脈散加和中之品 , 服一劑果覺少安 , 渠家信之不篤 , 遍請他醫通同酌治 , 改用參地桂附 , 服之轉增脹滿 。 又請一醫以和中降氣為治 , 脹滿雖稍除而元氣愈弱 , 病者益難支撐 , 改用參朮一劑 , 而從前心痛欲死之證復作 。 不得已 , 遂聽命於予焉 。 余謂此屬少陰腎水虧乏 , 轉服傷科之藥 , 則氣亦虛矣 。 參朮桂附 , 適以耗陰 , 橘半枳砂 , 適以耗氣 , 俱未中病 , 故愈治癒劇 。 壯水之主以制陽光 , 乃正治也 , 用六味合生脈等 , 堅服五十餘劑而愈 。
전영 천총 공진방은 성욕을 많이 따라 음이 손상되었고 여름에 발과 무릎이 무력해졌다. 나는 서위로 치료해야 한다며 청서익기탕에 활혈약을 더하였다. 처방을 주어도 먹지 않고 상과약을 먹다가 어느 날 혼궐하며 가슴이 아파 죽을 듯하였다. 다시 나를 불렀기에 맥을 보니 허산하였다. 생맥산에 중초를 조화시키는 약을 더하여 한 제를 먹자 과연 조금 편안해졌다. 그러나 집안에서 굳게 믿지 않고 여러 의사를 불러 함께 의논하여 인삼·지황·계(桂)·부자로 바꾸자 더 팽만해졌다. 또 다른 의사는 화중강기로 치료하여 팽만은 조금 줄었지만 원기가 더욱 약해져 환자가 버티기 어려웠다. 인삼·백출 한 제로 바꾸자 앞서 가슴이 아파 죽을 듯했던 증이 재발하였다. 부득이 내게 맡겼다. 나는 이것이 소음의 신수가 부족한 것인데 상과약을 먹어 기까지 허해졌다고 하였다. 인삼·백출·계(桂)·부자는 음을 소모하고 귤피·반하·지(枳)·사인은 기를 소모하므로 모두 병에 맞지 않아 치료할수록 심해진 것이다. 수의 주인을 튼튼히 하여 양의 빛을 제어하는 것이 정치이므로 육미탕에 생맥산 등을 합하여 50여 제를 꾸준히 먹고 나았다.
南匯營兵朱七官 , 濕熱成痿 , 求治於他縣時醫 , 以峻補剛劑囑其頻服 , 半月後厥陽上逆 , 頭眩耳鳴 , 胸中擾攘不安 , 格寒於下 , 兩腳如冰 , 自分已無生理 。 友人武生顧鳴鶴與朱鄰近 , 延予判決死生 , 余按脈象狂大 , 謂此證因溫補誤投 , 非絕證也 。 遂用芩連知柏豬膽汁等大寒之品 , 一劑即減 , 投二十余劑而全愈 。
남회 군영의 병사 주칠관은 습열로 위증이 되어 다른 현의 당대 의사에게 치료받았다. 그가 강하게 보하는 강경한 약을 자주 먹으라고 하여 보름 뒤 궐양이 위로 거슬러 머리가 어지럽고 귀가 울며 가슴이 소란스럽고 불안하였다. 한이 아래에 막혀 두 발이 얼음같아 스스로 더는 살 길이 없다고 여겼다. 주씨와 이웃한 벗 무생 고명학이 나를 불러 생사를 판정해달라고 하였다. 내가 맥을 짚으니 몹시 대하여, 온보약을 잘못 투여한 것이지 죽을 증은 아니라고 하였다. 황금·황련·지모·황백·돼지 담즙 등 매우 찬 약을 쓰자 한 제에 줄었고 20여 제로 완쾌하였다.
郡城徐華封女病痿 , 兩足不能相去以寸 , 脊間皮寬肉軟 , 有如斗大 , 醫用雜補氣血之劑不效 。 予謂飲食如故 , 病屬下焦 , 耆朮守中 , 不能達下 , 四物誠為女科要藥 , 若欲填實精髓 , 則又不勝任矣 。 考 《 內經 》 筋痿骨痿 , 皆屬奇經絡病 , 乃用生鹿角 、 龜板 、 海參 、 魚膠 、 羊肉等血肉之味 , 配入熟地 、 枸杞 、 牛膝 、 歸芍 , 堅服三十余劑而全痊 。
군성 서화봉의 딸은 위증으로 두 발을 한 치도 서로 벌리지 못하였고, 척추 사이의 피부가 늘어지고 살이 무르며 한 말만큼 컸다. 의사가 기혈을 보하는 약을 섞어 써도 효과가 없었다. 나는 음식이 여전하고 병이 하초에 있으므로 황기·백출은 중초를 지켜 아래로 도달하지 못하며, 사물탕은 부인과의 요약이지만 정수를 충실하게 채우려면 감당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내경』을 살피면 근위·골위는 모두 기경락의 병이므로 생녹각·귀판·해삼·어교·양고기 등 혈육의 약에 숙지황·구기자·우슬·당귀·작약을 배합하였다. 30여 제를 꾸준히 먹고 완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