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國醫術 , 自軒岐而後 , 代有名人 , 著述宏富 , 學者畢生不能卒其業 。 振自弱冠後 , 始涉獵及之 , 家藏而外 , 復假諸友人 , 得稍窺其門徑 。 旋由族人介紹 , 受業子北範席君育先師之門 。 先師不以振為不肖 , 立案立方 , 往往俯有所商 。 徒以處境艱窘 , 未獲久侍函丈 , 良以為憾 。 應診之始 , 每診一病 , 輒為查覈古方 , 推闡病象 , 仿徨終夜 , 休息未遑 。 迨再診奏效 , 始釋重負 。 倘或不治 , 等於剚刃 , 深自引咎 , 迄今三十年矣 , 事以經過而知難 , 言以有徵而益信 。 回首前塵 , 庸有一得 , 謹就追憶所及 , 拉雜記之 。 對於細微之事 , 古人所不道 , 良工之易忽者 , 尤加詳焉 。 若夫精微之學 , 深奧之理 , 有古籍在 , 非振所敢贅也 。 名之曰醫話 , 等諸尋常之談話云爾 。
우리나라의 의술은 헌원·기백 이후 대대로 이름난 사람이 있었고 저술이 방대하고 풍부하여 배우는 사람이 평생을 바쳐도 그 학업을 마칠 수 없다. 나 진은 약관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섭렵하였으며, 집에 소장한 것 외에도 벗들에게 빌려 조금이나마 그 문로를 엿볼 수 있었다. 이어 일족의 소개로 북범의 석육 선생 문하에서 배웠다. 선생께서는 내가 못났다고 여기지 않으시고 의안과 처방을 세울 때면 흔히 몸소 의논해 주셨다. 다만 형편이 어렵고 궁핍하여 오래 스승 곁에서 모시지 못한 것이 참으로 유감이었다. 진료를 시작했을 때에는 병 하나를 진찰할 때마다 고방을 찾아 대조하고 병상을 추론하고 풀어 밝히며 밤새 방황하여 쉴 틈이 없었다. 재진하여 효과가 나야 비로소 무거운 짐을 벗었다. 혹 치료하지 못하면 칼날을 찌른 것과 같아 깊이 자신을 탓하였으니 지금까지 30년이 되었다. 일은 겪어 보아야 어려움을 알고 말은 증거가 있어야 더욱 믿게 된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작은 소득도 있기에 삼가 기억이 미치는 대로 두서없이 적었다. 미세한 일 가운데 옛사람이 말하지 않았거나 좋은 의사도 소홀히 하기 쉬운 것은 더욱 자세히 하였다. 정미한 학문과 심오한 이치는 고적이 있으므로 내가 감히 덧붙일 바가 아니다. 이름을 의화라 하였으니 일상적인 이야기와 같을 뿐이다.
中華民國十九年秋月
중화민국 19년 가을.
鵝湖劬生華國振記
아호의 구생 화국진이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