余賦性孱弱 。 幼嬰多病 。 迨丁年尤甚 。 嘗患內傷 。 諸藥罔效 。 於是悉取內經 。 難經 。 甲乙經 。 東垣十書 。 傷寒六書各論 。 及薛氏等書 。 至於殊國僻壤 。 奇方怪疾 。 皆沿波溯源 。 推詳考索 。 循古人之餘而為之 。 不知其已瘳已 。 人情莫不欲言其所自 。 知交親承是謬 。 推庸多奏效 。 妄意遂謂凡病不出傷寒內傷之範圍也 。 壬寅秋 。 天時熱甚 。 入冬仍不寒 。 四方疫癘大作 。 其證似瘧而寒熱不閒 。 似傷寒而三陽經少陰太陰經證齊 。 似內傷而氣口脈不大於人迎 。 向所妄意以自信者 。 胥失之矣 。 彼以傷寒治者七日逝 。 以內傷治 。 以瘧治者 。 先後亦逝 。 間有染輕本固者 。 稍淹浹旬 。 終歸不起 。 至一發不能言者 。 其死尤速 。 惟輕而不服藥者 。 百起一二 。 即老醫宿匠 。 計與術兩窮矣 。 然天地之大德曰生 。 塞極必有以通之者 。 有宋李待制之書在也 。 書名瘴瘧衛生方 。 專是一證 。 始以風壤闊越 。 一涉獵而置之 。 而後乃知其寶也 。 論證則辨晰周詳 。 用藥則簡易平順 。 此真妙於治也 。 且諸書瘧部亦嘗及瘴瘧矣 。 本末未甚悉 。 豈身履其地 。 傳不獲習乎 。 待制造端王張討潤 。 皆因宦彼地 。 得其真詮 。 是書賴以全 。 予始以一二及十百 。 因沿鄉曲面流疏遠 。 隨手應心 。 刻期色起矣 。 予秘之 。 是以人命為私也 。 告之同業 。 懼不能遍 。 謀梓以廣之 。 區區之公而已 。 客有告之者曰 。 夫瘧何有於瘴哉 。 閩廣之間 。 山深雨淫 。 積嵐為瘴 。 黃霧隱天 。 中人作苦 。 吾信界在中土 。 土不同方 。 風亦殊俗 。 曠絕千里 。 嵐瘴何從 。 母乃巧於署名以炫技乎 。 余曰 。 否否 。 諸疾之作 。 由天時也 。 四時之變 。 由氣數也 。 人身肖天地與氣順逆也 。 易曰 。 觀乎天文以察時變 。 其徵在國 。 國實以人 。 天氣流轉 。 山澤通之 。 以時驗變 。 以人驗時 。 奧氣不藏 。 時之變也 。 物直槎夭 。 人直疾病 。 山川不必同 。 而氣至則行之矣 。 故吾信不必閩廣而氣類之 。 此瘴瘧之所由作也 。 且如癸卯之冬 。 四山花木盎然 。 如春甲辰夏仲菊華如秋六月反擁絮 。 春秋隕霜不殺 。 注謂四時失其序 。 則其施必悖 。 月令仲夏行秋令 。 民殃於疫 。 在昔識之 。 蓋天失其序 。 盩氣旁行 。 於是乎在邇 。 年以來冬復大暖 。 草木禽蟲不含不蟄 。 殆物得氣之先 。 與韓昌黎雪擁藍關句 。 李唐嶺南尚雪 。 今絕無之 。 馴至洛陽 。 杜鵑天氣 。 自南而北 。 不尤信乎 。 客因領之 。 予又謂瘴瘧於文為瘧 。 章言疾彰於外 。 內無實也 。 為瘧如虎 。 反爪向人也 。 以瘧施無實之人 。 故多瀕於死 。 李待制之調劑 。 思深哉 。 不揣愚陋 。 次其源委 。 附以鄙見 。 別傷寒內傷諸瘧之形似 。 詳藥餌之宜用宜禁 。 驗病色之可治弗治 。 編曰瘴瘧指南 。 車僭妄之罪固無所逃 。 然於活人 。 或有小補 。 庸有未盡 。 以俟後之君子 。
나는 타고난 성품과 몸이 여리고 약하여 어려서부터 병이 많았고 장년에 이르러 더욱 심해졌다. 일찍이 내상을 앓았는데 온갖 약이 효과가 없었다. 이에 『내경』·『난경』·『갑을경』·『동원십서』·『상한육서』의 각 논설과 설씨 등의 책을 모두 가져다가, 다른 나라와 외진 지방의 기이한 처방과 괴이한 질병에 이르기까지 모두 흐름을 따라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자세히 추구하고 고찰하였다. 옛사람이 남긴 자취를 따라 시행하였더니 나도 모르게 병이 이미 나았다. 사람은 누구나 그 유래를 말하고 싶어 한다. 친지들이 직접 나의 이 그릇된 견해를 받아 적용하였는데 효과를 거둔 경우가 많았다. 그리하여 망령되이 모든 병이 상한과 내상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임인년 가을에는 날씨가 몹시 더웠고 겨울에 들어서도 여전히 춥지 않아 사방에 역려가 크게 일어났다. 그 증상이 학질과 비슷하되 한열이 그치지 않았고, 상한과 비슷하되 삼양경과 소음·태음경의 증상이 함께 나타났으며, 내상과 비슷하되 기구맥이 인영맥보다 크지 않았다. 지난날 망령되이 생각하여 스스로 믿었던 것이 모두 어긋났다. 상한으로 치료한 사람은 7일 만에 죽었고 내상이나 학질로 치료한 사람도 앞뒤로 죽었다. 간혹 감염이 가볍고 본래 몸이 튼튼한 사람도 십여 일쯤 더 버티다가 끝내 일어나지 못하였다. 한 번 발병하여 말을 하지 못한 사람은 더욱 빨리 죽었다. 오직 병이 가벼우면서 약을 먹지 않은 사람만 백 명 가운데 한두 명이 일어났다. 늙고 숙련된 의원조차 계책과 의술이 모두 궁하였다. 그러나 천지의 큰 덕은 만물을 살리는 데 있으니 막힘이 극에 이르면 반드시 통하게 할 길이 있다. 송나라 이대제의 책이 있었다. 책 이름은 『장학위생방』으로 오로지 이 한 가지 증을 다루었다. 처음에는 풍토가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여겨 한 번 훑어보고 덮어 두었는데 뒤에야 그 보배로움을 알았다. 증을 논함에는 분별이 명료하고 두루 상세하며, 약을 씀에는 간편하고 평온하여 참으로 치료에 오묘한 책이다. 여러 의서의 학질 항목에서도 장학을 언급하였으나 그 본말이 그다지 자세하지 않았다. 어찌 몸소 그 땅을 밟고도 전해진 것을 익히지 못하였겠는가. 대제가 처음 기틀을 세우고 왕씨와 장씨가 검토하고 윤색하였는데, 모두 그곳에서 벼슬하며 참뜻을 얻었기에 이 책이 온전해질 수 있었다. 나는 처음 한두 사람에서 열 사람, 백 사람으로 적용을 넓혔고, 향리를 따라 먼 곳에까지 퍼지자 손에 따라 마음먹은 대로 응하여 정해진 기간 안에 얼굴빛이 살아났다. 내가 이를 비밀로 한다면 사람의 목숨을 사유물로 삼는 것이다. 동업자에게 알리더라도 두루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 판각하여 널리 펴고자 하니 작은 공심일 뿐이다. 어떤 객이 말하였다. “학질이 장기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민·광 지역은 산이 깊고 비가 지나치게 내려 산안개가 쌓여 장기가 되고 누런 안개가 하늘을 가려 사람을 해칩니다. 우리 신주는 중국의 가운데에 있어 지방도 다르고 풍속도 다르며 천 리나 멀리 떨어졌는데 산안개와 장기가 어디서 오겠습니까? 교묘하게 이름을 붙여 의술을 과시하는 것은 아닙니까?” 나는 말하였다. “아니다, 아니다. 여러 병의 발생은 천시에서 비롯되고 사계절의 변화는 기수에서 비롯된다. 사람의 몸은 천지를 닮아 기와 더불어 순행하고 역행한다. 『역』에서 ‘하늘의 무늬를 살펴 때의 변화를 관찰한다’고 하였다. 그 징험은 나라에 있으며 나라는 실로 사람으로 이루어진다. 천기가 흘러 움직이면 산과 못이 이를 통하게 한다. 계절로 변화를 살피고 사람으로 계절을 살피니 따뜻한 기가 감추어지지 않는 것은 계절의 변이다. 사물은 槎夭를 당하고 사람은 질병을 당한다. 산천이 반드시 같지 않아도 그 기가 이르면 행해진다. 그러므로 우리 신주는 민·광 지역이 아니더라도 기가 그와 비슷하니 이것이 장학이 생기는 까닭이다. 계묘년 겨울에는 사방 산의 꽃과 나무가 봄처럼 무성하였고, 갑진년 한여름에는 국화가 가을처럼 피었으며 6월에 도리어 솜옷을 껴입었다. 『춘추』의 ‘서리가 내려도 죽이지 못하였다’는 구절에 주석하기를 ‘사계절이 그 차례를 잃으면 그 작용이 반드시 어그러진다’고 하였다. 「월령」에서는 ‘한여름에 가을의 정령을 행하면 백성이 역병의 재앙을 입는다’고 하였으니 예전부터 이를 알았다. 하늘이 그 차례를 잃어 어그러진 기가 옆으로 퍼지는 일이 근래에 있는 것이다. 근년에는 겨울이 다시 매우 따뜻하여 초목은 기운을 머금지 않고 새와 벌레는 숨지 않으니, 아마 사물이 먼저 기를 받은 것이다. 한창려의 ‘눈이 남관을 에워쌌다’는 구절에 비추면 이씨 당나라 때에는 영남에도 눈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없다. 차츰 낙양에까지 두견화 피는 날씨가 이르러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오니 더욱 믿을 만하지 않은가?” 객이 이에 이해하였다. 나는 또 말하였다. “장학의 글자는 瘧·章으로 이루어지는데, 章은 병이 밖으로 드러나고 안에는 충실함이 없다는 말이다. 瘧은 호랑이가 발톱을 뒤집어 사람을 향하는 것과 같다. 속이 충실하지 못한 사람에게 학질이 닥치므로 흔히 죽음에 이른다. 이대제의 약물 조제는 생각이 깊다.” 나는 어리석고 비루함을 헤아리지 않고 그 근원과 경과를 차례로 서술하고 졸견을 덧붙여, 상한·내상·여러 학질의 비슷한 형태를 구별하며 마땅히 쓸 약과 금할 약을 자세히 설명하고 병색으로 치료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 편찬한 것을 『장학지남』이라 하였다. 車, 참람하고 망령된 죄는 진실로 피할 수 없겠으나 사람을 살리는 데 혹 조금 보탬이 될 것이다. 아직 다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 후세의 군자를 기다린다.
萬曆三十七年歲次己酉十月朔信州鄭全望撰 。
만력 37년 기유년 10월 초하루에 신주의 정전망이 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