謝氏 《 發背對口治訣論 》 序

《 發背對口治訣 》, 先大父邃喬公所著也 。 先大父性穎悟 , 好讀書 , 常以濟世為念 , 敦學不怠 , 屢困棘闈 。 及先伯父香伯公舉於鄉 , 始無意進取 , 惟讀書以自娛 , 暇則講求岐黃 。 曰 : 士不能得志 , 是亦濟世之一道也 。 通內 、 外科 , 多所闡發 。 每視病必矜重 , 四方延請 , 雖遠必至 , 卻饋遺貧困者 , 以藥助之 。 嘗為人治發背 、 對口諸證 , 以古人之法投之多不效 , 沉思其故曰 : 是非古人之欺我也 ? 特未通其變耳 。 夫一證之成 , 其受病必有偏重之處 , 審其所偏重而切治 , 則效可立見也 。 自是 , 凡治此證必辨其位之左右 、 上下 , 色之赤白 、 深淺 , 脈之浮沉 、 遲速 , 以審其經絡腑臟竅穴之所繫 , 與夫陰陽虛實 、 淫郁燥濕之所歸 , 而復參之天時 , 相其地宜 , 以制五行生剋之用 。 取古人之法 , 損益變化以通之 , 於是所治罔不效 。 既而先伯父迎養琴江署舍 , 多暇 , 乃取歷年醫案 , 裁定發背對口治訣幾卷 , 附錄經驗幾卷 , 及歸而授之 。 先君曰 : 此書未經人道勿輕視之 ! 藝雖小 , 亦足以濟世矣 。 先君東環公暨先叔父東揆公亦皆以儒術通素理 , 先君久戰北闈未遑 , 展施先叔父以是道行 。 世善用先大父遺法 , 故所治多奇而中 。 今先君 、 先叔父相繼逝世矣 ! 為與諸弟皆材劣 , 不能通一藝 , 先人之書具在 , 徒使置而勿用 , 是先人濟世之志至為等而中絕也 。 楊君子逸夙聞是書 , 勉余欹梓 , 余欣然從之 。 庶幾先人遺術傳播四方 , 高明之士鑑而採擇焉 , 未必不有補於世 , 雖未能述先世之事 , 猶不失先世之志也夫 !
《발배대구치결》은 돌아가신 할아버지 수교공이 지으신 것이다. 할아버지는 천성이 영민하고 독서를 좋아하여 늘 세상을 구제할 뜻을 품고 부지런히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으셨으나 과거장에서 여러 번 곤경을 겪으셨다. 돌아가신 큰아버지 향백공이 향시에 급제한 뒤에야 벼슬에 나아갈 뜻을 버리고 독서로 즐기며 틈틈이 기황의 학문을 연구하셨다. “선비가 뜻을 얻지 못하면 이것도 세상을 구제하는 한 길이다”라고 하셨다. 내과와 외과에 통하여 많이 밝혀 내셨으며 진찰할 때마다 반드시 신중히 하셨다. 사방에서 부르면 멀어도 가셨고 선물을 사양하며 가난한 사람에게 약을 주어 도우셨다. 일찍이 발배와 대구 등의 증을 치료하면서 옛사람의 법을 써도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자 까닭을 깊이 생각하고 “옛사람이 나를 속인 것이 아니니 다만 그 변화에 통하지 못했을 뿐이다. 한 증이 이루어질 때 병든 곳에는 반드시 치우쳐 중한 데가 있으므로 그 치우침을 살펴 맞게 치료하면 효과가 곧 나타난다”고 하셨다. 그때부터 이 증을 치료할 때마다 위치의 좌우와 상하, 색의 적백과 깊고 옅음, 맥의 부침과 빠르고 느림을 구별하여 경락·부장·규혈이 어디에 매였는지, 음양·허실·음울·조습이 어디에 돌아가는지 살피셨다. 다시 천시를 참작하고 땅에 맞는 것을 살펴 오행 생극의 작용을 조절하며 옛사람의 법을 덜고 더하고 변화시켜 통하게 하니 치료에 효과가 없는 것이 없었다. 뒤에 큰아버지가 금강 관사로 모셔 봉양하자 여가가 많아 여러 해의 의안을 취하여 《발배대구치결》 몇 권을 다듬고 경험 몇 권을 부록으로 붙이셨으며 돌아와 선친에게 전하셨다. “이 책은 남이 말하지 않은 것이니 가볍게 보지 말라. 기예는 작아도 세상을 구제하기에 족하다”고 하셨다. 선친 동환공과 돌아가신 숙부 동규공도 모두 유술로 평소의 이치에 통하셨다. 선친은 오래 북쪽 과거장에서 힘쓰느라 펼칠 겨를이 없었고 숙부는 이 도로 세상에 행하셨다. 할아버지의 유법을 잘 쓰셨으므로 치료가 기이하면서도 적중한 경우가 많았다. 이제 선친과 숙부가 잇달아 돌아가셨다. 나 위와 여러 아우는 모두 재주가 모자라 한 가지 기예에도 통하지 못한다. 선인의 책이 모두 있는데도 그저 놓아두고 쓰지 않으면 선인의 세상 구제할 뜻이 우리에게 이르러 끊어지는 것이다. 양자일 군이 평소 이 책을 듣고 내게 판각을 권하여 기꺼이 따랐다. 선인의 남긴 기술이 사방에 전해지고 고명한 선비가 살펴 취한다면 세상에 보탬이 없지 않을 것이다. 선대의 일을 계승하지는 못해도 선대의 뜻을 잃지는 않는 것이리라.
道光二十年仲春七日孫翼為謹序
도광 20년 중춘 7일, 손자 익위가 삼가 서문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