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氣感人 。 以燥證為難明 。 燥氣發病 。 以白喉為最險 。 險而難則病不擇醫 。 醫不識病 。 遘輒遭夭 。 死亡接踵 。 而生人之禍亟矣 。 其病則在於醫不讀書 。 與讀而未會其通 。 素問陰陽應象大論生氣通天論均脫秋傷於燥一節 。 而秋燥之病變始隱 。 國朝嘉言喻氏 。 自南沈氏 。 始各以其獨得之見 。 著為方論 。 吳氏鞠通融會其說 。 節以入書 。 於是燥證始略有門逕可循 。 然於白喉猶未之及 。 吾友陳慄庵院醫之良也 。 癸巳春闔門患白喉者四人 。 長女最劇 。 時就余與何君志石參議方劑 。 書中所定三炁降龍丹等皆新制驗方也 。 嗣以愛子不起 。 盡發院中藏書 。 窮究旨要 。 始悟白喉一證 。 悉屬燥火 。 因作訂正論一卷乞鑑定 。 余謂醫以切實適用為要 。 不必惑於近人體例之說 。 可仍仿吳氏例 。 改為條辨 。 刪削未果 。 會學堂開辦醫報 。 隨期課書 。 慄庵羸而善病 。 因囑女夫其高弟胡鑫就原稿詮次成書 。 隨報刊行 。 雖條僅十五 。 而綱舉目張 。 犁然各當 。 不僅為白喉家正法眼藏 。 而一切喉科病變方法悉寓焉 。 三折肱 。 九折臂 。 不綦信歟 。 自來論秋燥者 。 無慮十數家 。 似以吳氏為較長 。 然於義例則亦尚未周 。 其言曰 。 燥氣為病 。 輕則為燥 。 重則為寒 。 化氣為濕 。 復氣為火 。 則實不根之言 。 窒而鮮通 。 夫天有六氣 。 而火分君相 。 故經但言寒暑燥濕風五氣 。 應時布令 。 則為平氣 。 本不為病 。 其病者勝氣也 。 如燥氣盛行則擾動四氣 。 何言之 。 行於所生則氣感而為濕 。 行其所生則氣泄而為寒 。 行其所勝則氣化而為風 。 行所不勝則氣伏而為火 。 推之六氣 。 皆同斯例 。 蓋金勝則木受制而風證起 。 如內經所稱歲金太過 。 肝木受邪 。 兩脅滿且痛引少腹 。 及陽明司天 。 肝氣上從 。 掉振鼓慄 。 筋痿不能久立 。 丈夫癲疝等證 。 皆燥而化風也 。 即吳氏亦有燥金司令 。 頭疼身寒熱 。 胸脅痛 。 甚則疝瘕痛者 。 桂枝柴胡各半湯加味主之之文 。 乃於化氣 。 獨不知有風 。 是僅知六氣之當補燥氣 。 不及悟燥氣之尚能化風 。 顧指失臂 。 六氣終於不全 。 一間未達 。 則亦九仞之井類也 。 昔宋孫兆校正內經 。 正謬訛者六千餘字 。 增注義者二千餘條 。 而秋傷於濕 。 不復悟有脫簡 。 將貫穿錯綜會通 。 仍待之其人歟 。 嗚呼 。 斯道沉薶埋 。 垂四千年矣 。 秋燥之論 。 至本朝而始有定說 。 白喉之源 。 至吾院而始有專書 。 何其幸也 。 慄庵開悟邁其曹 。 醫院初創 。 首先畢業 。 書成遠近仿治 。 多所全活 。 因樂為弁其簡端 。 遂縱論燥證傳變 。 微特箴砭吳氏 。 使成全璧 。 且亦用以廣吾同院之意 。 使知燥氣明則六淫可推 。 六淫清則百病可治 。 僅秋燥白喉云乎哉 。 舉一反三 。 貴會其通 。 是在世之善讀是編者 。
육기가 사람을 감촉하는 병 가운데 조증이 가장 밝히기 어렵고, 조기가 일으키는 병 가운데 백후가 가장 위험하다. 위험하고 어려워 환자는 의사를 가리지 못하고 의사는 병을 알아보지 못하니, 걸리면 요절하고 죽음이 잇따라 사람에게 미치는 화가 급박하다. 그 폐단은 의사가 책을 읽지 않거나 읽어도 회통하지 못하는 데 있다. 《소문》의 〈음양응상대론〉과 〈생기통천론〉에는 모두 ‘가을에 조에 상한다’는 한 절이 빠져 추조의 병변이 가려지게 되었다. 우리 왕조의 유가언과 심자남이 비로소 각자 독자적으로 깨달은 견해를 처방과 논설로 저술하였고, 오국통이 그 설을 융합하여 추려 책에 넣었다. 이로써 조증에는 비로소 대략 따를 길이 생겼지만 백후에는 아직 미치지 못했다. 내 벗 진율암은 의원의 훌륭한 의사이다. 계사년 봄 온 집안에서 백후에 걸린 사람이 네 명이었고 큰딸이 가장 심했다. 당시 나와 하지석에게 와서 처방을 의논했는데, 이 책에서 정한 삼기강룡단 등이 모두 새로 만든 경험방이다. 뒤에 사랑하는 아들이 일어나지 못하자 의원에 소장한 책을 모두 꺼내어 요지를 끝까지 연구한 끝에 백후가 모두 조화에 속함을 깨달았다. 이에 《정정론》 한 권을 지어 감정을 청했다. 나는 의학은 실제에 맞게 쓰이는 것이 중요하니 근래 사람들의 체례설에 현혹될 필요가 없으며, 오씨의 예를 따라 조변으로 고치면 된다고 했다. 아직 삭제하고 다듬지 못한 때 학당에서 의보를 개설하여 호마다 책을 싣게 되었다. 율암은 여위고 병이 잦아 사위이자 뛰어난 제자인 호흠에게 원고를 풀이하고 순서대로 엮어 책으로 만들게 하여 의보에 연재하였다. 조문은 겨우 열다섯이지만 큰 줄기를 들면 세목이 펴지고 분명하게 각각 들어맞는다. 백후를 치료하는 이의 정법안장일 뿐 아니라 모든 후과 병변의 방법이 그 안에 들어 있다. 팔을 세 번 꺾고 아홉 번 부러뜨린 경험을 어찌 깊이 믿지 않겠는가? 예로부터 추조를 논한 이는 십수 명이나 되며 오씨가 비교적 뛰어난 듯하다. 그러나 의례가 아직 두루 갖추어지지는 않았다. 그가 ‘조기가 병이 되면 가벼우면 조가 되고 무거우면 한이 되며, 화기는 습이 되고 복기는 화가 된다’고 한 말은 실로 근거가 없고 막혀서 통하는 데가 적다. 하늘에는 육기가 있지만 화는 군화와 상화로 나뉘므로 경전에는 다만 한·서·조·습·풍의 오기를 말하였다. 철에 맞게 명령을 펴면 평기이며 본래 병이 되지 않는다. 병이 되는 것은 이기는 기이다. 조기가 성행하면 나머지 네 기를 흔든다.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소생(所生)’에 행하면 기가 감응하여 습이 되고, 그 ‘소생(所生)’에 행하면 기가 새어 한이 되며, 이기는 것에 행하면 기가 변화하여 풍이 되고, 이기지 못하는 것에 행하면 기가 엎드려 화가 된다. 육기로 미루어도 모두 이 예와 같다. 금이 이기면 목이 제어되어 풍증이 일어난다. 《내경》에서 세금이 태과하면 간목이 사기를 받아 양옆구리가 그득하고 통증이 아랫배까지 당긴다고 한 것과, 양명이 사천하면 간기가 위로 따라가 흔들리고 떨며 근이 위약해 오래 서지 못하고 남자가 전산을 앓는 등의 증이 모두 조가 풍으로 변한 것이다. 오씨도 ‘조금이 사령하여 머리가 아프고 몸에 오한과 발열이 나며 가슴과 옆구리가 아프고, 심하면 산가로 아픈 경우 계지시호각반탕에 가미하여 주치한다’고 했다. 그런데 화기에 풍이 있음을 홀로 모르니, 육기에 조기를 보충해야 함만 알고 조기가 풍으로 변할 수도 있음은 깨닫지 못한 것이다. 손가락을 돌아보다 팔을 잃은 격이니 육기가 끝내 온전하지 못하다. 한 틈을 통하지 못하면 아홉 길 판 우물과 같은 것이다. 옛날 송나라 손조가 《내경》을 교정하여 잘못된 글자 6천여 자를 바로잡고 주석 2천여 조를 더했지만, ‘가을에 습에 상한다’는 대목에는 빠진 글이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꿰뚫고 엇갈려 살펴 회통하는 일은 여전히 그럴 사람을 기다리는 것인가? 아아, 이 도가 묻힌 지 거의 4천 년이다. 추조의 논의는 우리 왕조에 이르러서야 정설이 생겼고 백후의 근원은 우리 의원에 이르러서야 전문서가 생겼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율암은 깨달음이 동료들보다 뛰어나 의원이 처음 창설되었을 때 가장 먼저 졸업하였다. 책이 이루어지자 원근에서 본떠 치료하여 온전히 살린 사람이 많았다. 이에 기꺼이 책머리에 서문을 쓰며 조증의 전변을 널리 논하였다. 오씨를 경계하고 바로잡아 완전한 옥으로 만들려는 것만이 아니라, 같은 의원 사람들의 뜻을 넓혀 조기를 밝히면 육음을 미룰 수 있고 육음을 분명히 하면 백병을 치료할 수 있음을 알리고자 한다. 어찌 추조와 백후만 말하겠는가? 하나를 들어 셋을 미루며 회통하는 것이 귀하다. 이는 세상에서 이 책을 잘 읽는 이에게 달려 있다.
時光緒二十四年歲次著雍閹茂律中仲呂東甌陳虯志三書於天津紫竹林 。
광서 24년, 세차 저옹엄무, 율이 중려에 해당하는 때 동구 진규 지삼이 천진 자죽림에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