余纂白喉條辨 。 自丁酉出版 。 迄今一紀矣 。 於前賢白喉諸書議論 。 間有未愜於心者 。 莫不詳加討論 。 斟酌妥協 。 以期悉合病情治法而後已 。 顧獨於忌表二字 。 尚嫌疏釋 。 未能盡致 。 心竊病之 。 蓋白喉為太陰肺經伏燥 。 苟無時邪感觸 。 自不宜無故表散 。 兆成燎原之禍 。 若確屬挾有時感表症者 。 則解表自難容緩 。 如前第五條所言挾溫熱者 。 可加薄荷荷葉扁豆花之類 。 挾寒濕燥三氣者 。 雖麻葛前蘇香薷藿香等皆可酌用 。 或外感里燥並重 。 亦須表裡清疏 。 二者兼顧 。 但先使表邪得解 。 縱白髮滿喉 。 則施治亦自易易矣 。 唯不得浪用薑桂辛熱引邪入里之品耳 。 嘗見時醫未讀白喉忌表抉微者 。 動輒表散 。 為禍固烈 。 乃有已見此書 。 未能洞徹原理 。 往往坭守忌表二字 。 縱有外感甚厲 。 開手即一味清滋 。 轉使外邪陷入 。 里燥愈甚 。 卒成爛喉等病 。 斃命者所在皆有見之 。 實堪痛悼 。 夫六淫病 。 邪氣從外入者 。 無不以解表為要務 。 白喉雖為太陰伏燥 。 法宜直從肺經清降 。 苟外感未去 。 輒先注意於此 。 且有於清降之中 。 再亂入苦重滋膩之品 。 則外邪未有不被牽率而內陷 。 終致清疏兩無所施 。 坐視殞命者 。 傷何如之 。 (僕)二少女年甫十齡 。 曾於某年夏月往鄰里觀劇 。 時值溽暑鬱蒸 。 (當數日前西風大作夏行秋令故有白喉症發現)加之劇場人氣醞釀 。 歸即寒熱大作 。 肢體如廢 。 腹痛餐泄 。 舌苔灰濁而喉間又復發白 。 (僕)權其輕重 。 理宜解暑去濕為先 。 蓋治白喉不外清滋之品 。 暑濕得解 。 則用藥自無牽掣矣 。 遂用香薷飲合正氣散加減 。 再入石膏鮮葦莖二味 。 略顧肺中之燥 。 (石膏為治燥火主藥其性兼能達表清裡熟讀仲聖書者自能得其旨歸故喉間一見白磈白片此味即不容緩乃時醫於冬地石斛元參等味習為故然浪用不怪視石膏反不敢輕於一試識力不真往往坐失病機殊堪太息)二劑後表解體鬯 。 痛止泄愈 。 而喉中日勢轉劇 。 幾至滿喉皆是 。 乃急轉用西洋參石膏葦莖元參杏仁枇杷葉等味 。 三劑白去八九 。 喉中唯覺燥痛 。 遂再加羚羊鮮生地二味 。 病遂全愈 。 使當初下手時疑忌香薷藿香辛燥與白喉有礙 。 把握不定 。 不以全力專去暑濕 。 恐遺禍有不可勝言矣 。 要之白喉病夾症頗夥 。 唯太陰伏燥獨發者 。 自當以清降滋潤為重 。 如辛散苦重 。 皆在所禁 。 前已辨之詳矣 。 若挾六淫時感 。 自當濕因濕治 。 寒因寒治 。 暑熱因暑熱治 。 先解其表 。 則本症治法 。 自無顧慮 。 斷不可坭守忌表二字 。 使外感與伏燥 。 互相牽引 。 譬如觀奕 。 一著錯則全局輸矣 。 吾願世之治白喉者 。 因此意神而明之 。 或能與吾民同躋壽域也 。 故不辭繁複 。 復補此篇於後 。
내가 편찬한 《백후조변》이 정유년에 출판된 뒤 지금까지 한 기가 지났다. 선현의 여러 백후서 논의 가운데 마음에 흡족하지 않은 것은 모두 자세히 토론하고 적절히 헤아려 병정과 치료법에 모두 맞기를 기한 뒤에야 그쳤다. 다만 ‘기표’, 곧 표를 다스리는 것을 금한다는 두 글자는 풀이가 소략하여 뜻을 다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백후는 태음폐경에 잠복한 조이므로 시사의 감촉이 없으면 까닭 없이 표를 발산하여 들불 같은 화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 그러나 실제로 시감의 표증을 겸했다면 해표를 늦추기 어렵다. 앞의 제5조에서 말했듯 온열을 겸하면 박하·하엽·편두화 등을 더하고, 한·습·조의 세 기를 겸하면 마황·갈근·전호·소엽·향유·곽향 등도 모두 헤아려 쓸 수 있다. 외감과 이조가 모두 심하면 표리를 맑히고 소통시켜 둘을 함께 돌봐야 한다. 먼저 표사가 풀리게 하면 흰 것이 목에 가득 나더라도 치료는 쉬워진다. 다만 생강·육계처럼 맵고 뜨거워 사기를 안으로 끌어들이는 약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백후기표결미》를 읽지 않은 당시 의사가 툭하면 표를 발산하여 화를 크게 일으키는 것을 보았다. 이 책을 보았어도 원리를 꿰뚫지 못하여 ‘기표’ 두 글자만 고집하는 이도 있다. 외감이 매우 심해도 처음부터 오로지 맑히고 자양하여 도리어 외사를 안으로 빠뜨리고 속의 조를 더 심하게 하여 끝내 난후 같은 병으로 죽게 하는 사례를 곳곳에서 보았으니 참으로 애통하다. 육음병에서 사기가 밖에서 들어온 경우 해표를 요무로 삼지 않는 것이 없다. 백후는 태음의 복조여서 곧바로 폐경을 맑히고 내려야 하지만, 외감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는데 여기에 먼저 주의하고 청강하는 가운데 다시 쓰고 무겁고 자니한 약을 함부로 넣으면 외사가 이끌려 안으로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끝내 청법과 소법 모두 쓸 수 없어 앉아서 죽음을 보게 되니 얼마나 슬픈가? 나의 둘째 어린 딸은 겨우 열 살 때 어느 해 여름 이웃에 연극을 보러 갔다. 당시 무덥고 습한 더위가 울증하였다. 며칠 전 서풍이 크게 불어 여름에 가을 기후가 행했으므로 백후가 나타났다. 극장의 사람 기운까지 쌓여 돌아온 즉시 오한과 발열이 크게 나고 팔다리를 못 쓰는 듯하며 배가 아프고 소화되지 않은 음식이 섞여 설사하고 혀의 태는 회색으로 탁하며 목 안이 다시 희어졌다. 나는 경중을 헤아려 서를 풀고 습을 없애는 것을 먼저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백후를 치료하는 약은 청자하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므로 서습이 풀리면 용약에 걸림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향유음과 정기산을 합하여 가감하고 석고·신선한 위경을 더하여 폐 속의 조도 조금 돌보았다. 석고는 조화를 치료하는 주약으로 표를 통하게 하고 이를 맑히는 성질도 갖추었다. 중경의 책을 숙독하면 그 뜻을 알 수 있으므로 목 안에 흰 덩어리나 조각이 보이기만 하면 이 약을 늦출 수 없다. 그런데 당시 의사들은 맥문동·지황·석곡·현삼 등을 습관적으로 함부로 쓰는 것은 이상히 여기지 않으면서 석고는 도리어 가볍게 시험할 엄두도 못 낸다. 식견이 참되지 않아 흔히 병기를 놓치니 참으로 탄식할 일이다. 두 제 뒤 표가 풀리고 몸이 시원해지며 통증과 설사가 나았으나 목 안의 흰 것은 날로 심해져 거의 온 목을 채웠다. 급히 서양삼·석고·위경·현삼·행인·비파엽 등으로 바꾸니 세 제에 흰 것의 8~9할이 없어지고 목 안이 마르고 아플 뿐이었다. 다시 영양과 신선한 생지황을 더하자 완전히 나았다. 처음에 향유·곽향이 맵고 조하여 백후에 방해될까 의심하고 확신하지 못해 전력을 다하여 서습을 없애지 않았다면 남긴 화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요컨대 백후는 겸증이 매우 많다. 태음복조만 발하면 청강하고 자윤하는 것을 중시하고 신산·고중은 모두 금하니 앞에서 자세히 밝혔다. 육음의 시감을 겸하면 습은 습에 따라, 한은 한에 따라, 서열은 서열에 따라 치료하여 먼저 표를 풀면 본증의 치료에 염려가 없다. ‘기표’ 두 글자에 얽매여 외감과 복조가 서로 끌어당기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바둑에 비유하면 한 수 잘못으로 판 전체를 잃는 것이다. 세상에서 백후를 치료하는 이가 이 뜻을 신묘하게 밝혀 백성과 함께 장수의 경지에 오르기를 바라므로 번복을 마다하지 않고 이 편을 뒤에 더한다.
宣統元年太歲己酉十月慄盦漻甫再識於湫漻齋
선통 원년 태세 기유 10월 율암 류보가 추류재에서 다시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