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物與人殊體 , 而人藉以養生卻病者 , 何也 ? 蓋天地亦物耳 , 惟其形體至大 , 則不能無生 。
온갖 사물은 사람과 몸이 다른데도 사람이 그것에 의지하여 생명을 기르고 병을 물리치는 것은 어째서인가? 천지 또한 사물일 뿐이나, 그 형체가 지극히 크므로 생겨나는 것이 없을 수 없다.
其生人也得其純 , 其生動物也得其雜 , 其生植物也得其偏 。 顧人之所謂純者 , 其初生之體然耳 。 及其感風寒暑濕之邪 , 喜怒憂思之擾 , 而純者遂漓 ; 漓則氣傷 , 氣傷則形敗 。 而物之雜者 、 偏者 , 反能以其所得之性補之 、 救之 。 聖人知其然也 , 思救人必先知物 。 蓋氣不能違理 , 形不能違氣 , 視色別味 , 察聲辨奧 , 權輕重度 , 長短審形之事也 ; 測時令 , 詳嗜好 , 分盛衰 , 別土宜 , 求氣之術也 。 形氣得而性以得 。 性者 , 物所生之理也 , 由是而立本草 、 制湯劑以之治人 。 有餘瀉之 , 不足補之 , 寒者熱之 , 熱者寒之 , 溫者清之 , 清者溫之 , 從者反治 , 逆者正治 。
천지가 사람을 낳을 때에는 사람이 그 순수한 기운을 얻고, 동물을 낳을 때에는 동물이 그 섞인 기운을 얻으며, 식물을 낳을 때에는 식물이 그 치우친 기운을 얻는다. 그러나 사람에게 이른바 순수하다는 것은 처음 태어났을 때의 몸이 그러할 뿐이다. 풍한서습의 사기에 감촉되고 희노우사의 어지럽힘을 받으면 순수하던 것이 마침내 엷어진다. 순수함이 엷어지면 기가 상하고, 기가 상하면 형체가 무너진다. 그런데 사물의 섞이거나 치우친 기운은 도리어 자신이 얻은 성질로 사람을 보충하고 구제할 수 있다. 성인은 그러함을 알아, 사람을 구하려면 반드시 먼저 사물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기는 이치를 어길 수 없고 형체는 기를 어길 수 없으므로, 빛깔을 보고 맛을 구별하며 소리를 살피고 오묘함을 분별하며 무게를 달고 길이를 재는 것은 형체를 살피는 일이다. 시령을 헤아리고 좋아하는 것을 자세히 살피며 성쇠를 나누고 알맞은 토질을 구별하는 것은 기를 구하는 방법이다. 형체와 기를 알면 성질도 알게 된다. 성질이란 사물이 생겨나는 이치이다. 이로부터 본초를 세우고 탕제를 만들어 사람을 치료하였다. 남는 것은 사하고 부족한 것은 보하며, 찬 것은 덥게 하고 더운 것은 차게 하며, 따뜻한 것은 맑게 하고 서늘한 것은 따뜻하게 하며, 따르는 것은 반치하고 거스르는 것은 정치한다.
或以類相從 , 或畏忌各矯其弊以復於平 。 其始則異 , 其終則同 。 夫天地生之 , 聖人保之 , 造化之能 , 聖人半之 , 天地不能專也 。 漢末張仲景 《 金匱要略 》 及 《 傷寒論 》 中諸方 , 大半皆三代以前遺法 , 其用藥之義 , 與 《 本經 》 吻合無間 。 審病施方 , 應驗如響 。 自唐以後 , 藥性不明 , 方多自撰 , 如 《 千金方 》、《 外臺秘要 》 之屬 , 執藥治病 , 氣性雖不相背 , 而變化已鮮沿及 。 宋元藥品日增 , 性未研極 , 師心自用 , 謬誤相仍 。 即用本經諸種 , 其精微妙義 , 多所遺漏 。 是以方不成方 , 藥非其藥 , 間有效用 , 亦偶中而非可取 。 必良由本經之不講故也 。 余竊悲焉 ! 欲詳為闡述 , 其如耳目所及無多 , 古今名實互異 , 地土殊產 , 氣味不同 。 且近世醫人所不常用之藥 , 無識別而收採者 。 更有殊能異性 , 義在隱微 , 一時難以推測 , 若必盡解全經 , 不免昧心誣聖 。 是以但擇耳目所習見不疑 , 而理有可測者 , 共得百種 , 為之探本溯原 , 發其所以然之義 。 使古聖立方治病之心 , 灼然可見 , 而其他則闕焉 。 後之君子 , 或可因之而悟其全 , 雖荒陋可嗤 , 而敬慎足矜也 。
혹은 같은 부류끼리 서로 따르게 하고, 혹은 상외와 상기의 관계로 각각 그 폐단을 바로잡아 평온함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 시작은 다르지만 그 끝은 같다. 천지가 낳은 것을 성인이 보전하니, 조화의 능력을 성인이 절반 맡아 천지가 독차지할 수 없다. 한나라 말 장중경의 《금궤요략》과 《상한론》에 있는 여러 처방은 대체로 모두 삼대 이전에 남겨진 법으로, 약을 쓰는 뜻이 《본경》과 빈틈없이 들어맞는다. 병을 살펴 처방을 쓰면 메아리가 울리듯 효험이 나타난다. 당나라 이후로 약성이 밝게 드러나지 않고 처방을 스스로 지은 것이 많아졌다. 《천금방》과 《외대비요》 같은 책은 약을 가지고 병을 치료하면서 기와 성질이 서로 어긋나지는 않았지만, 그 변화까지 따라 미친 것은 이미 드물었다. 송나라와 원나라에 이르러 약의 종류는 날로 늘어났으나 성질을 끝까지 연구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스승 삼아 제멋대로 써서 잘못이 잇따랐다. 《본경》의 여러 약을 쓰더라도 그 정미하고 오묘한 뜻을 많이 빠뜨렸다. 이 때문에 처방은 처방답지 않고 약은 그 약답지 않으며, 간혹 효용이 있더라도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이지 반드시 취할 만한 것은 아니다. 이는 참으로 《본경》을 강구하지 않은 까닭이다. 나는 이를 남몰래 슬퍼하였다! 자세히 풀어 밝히고 싶었으나, 보고 들은 것이 많지 않고 고금의 이름과 실물이 서로 다르며 토질에 따라 산물이 달라 기와 맛도 같지 않으니 어찌하겠는가. 또 근세 의가가 흔히 쓰지 않는 약은 알아보고 거두어 채취하는 사람도 없다. 더구나 특별한 능력과 다른 성질을 지녀 그 뜻이 은미한 데 있는 것은 한때에 추측하기 어렵다. 반드시 경전 전체를 모두 풀이하려 한다면 양심을 속이고 성인을 무함하는 일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다만 보고 들어 익숙하여 의심이 없고 이치를 헤아릴 수 있는 것을 골라 모두 백 종을 얻어, 그 근본과 근원을 탐구하고 그러한 까닭을 밝혔다. 옛 성인이 처방을 세워 병을 치료한 마음을 환히 볼 수 있게 하고, 나머지는 비워 두었다. 뒤의 군자는 혹 이를 바탕으로 그 전체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거칠고 고루하여 비웃을 만하나, 공경하고 삼간 점은 가상히 여길 만하다.
乾隆元年歲在柔兆執徐余月上弦松陵徐大椿題於揚子江舟次
건륭 원년, 해가 유조집서에 해당하는 여월 상현에 송릉 서대춘이 양자강의 배 안에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