或以類相從 , 或畏忌各矯其弊以復於平 。 其始則異 , 其終則同 。 夫天地生之 , 聖人保之 , 造化之能 , 聖人半之 , 天地不能專也 。 漢末張仲景 《 金匱要略 》 及 《 傷寒論 》 中諸方 , 大半皆三代以前遺法 , 其用藥之義 , 與 《 本經 》 吻合無間 。 審病施方 , 應驗如響 。 自唐以後 , 藥性不明 , 方多自撰 , 如 《 千金方 》、《 外臺秘要 》 之屬 , 執藥治病 , 氣性雖不相背 , 而變化已鮮沿及 。 宋元藥品日增 , 性未研極 , 師心自用 , 謬誤相仍 。 即用本經諸種 , 其精微妙義 , 多所遺漏 。 是以方不成方 , 藥非其藥 , 間有效用 , 亦偶中而非可取 。 必良由本經之不講故也 。 余竊悲焉 ! 欲詳為闡述 , 其如耳目所及無多 , 古今名實互異 , 地土殊產 , 氣味不同 。 且近世醫人所不常用之藥 , 無識別而收採者 。 更有殊能異性 , 義在隱微 , 一時難以推測 , 若必盡解全經 , 不免昧心誣聖 。 是以但擇耳目所習見不疑 , 而理有可測者 , 共得百種 , 為之探本溯原 , 發其所以然之義 。 使古聖立方治病之心 , 灼然可見 , 而其他則闕焉 。 後之君子 , 或可因之而悟其全 , 雖荒陋可嗤 , 而敬慎足矜也 。
혹은 같은 부류끼리 서로 따르게 하고, 혹은 상외와 상기의 관계로 각각 그 폐단을 바로잡아 평온함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 시작은 다르지만 그 끝은 같다. 천지가 낳은 것을 성인이 보전하니, 조화의 능력을 성인이 절반 맡아 천지가 독차지할 수 없다. 한나라 말 장중경의 《금궤요략》과 《상한론》에 있는 여러 처방은 대체로 모두 삼대 이전에 남겨진 법으로, 약을 쓰는 뜻이 《본경》과 빈틈없이 들어맞는다. 병을 살펴 처방을 쓰면 메아리가 울리듯 효험이 나타난다. 당나라 이후로 약성이 밝게 드러나지 않고 처방을 스스로 지은 것이 많아졌다. 《천금방》과 《외대비요》 같은 책은 약을 가지고 병을 치료하면서 기와 성질이 서로 어긋나지는 않았지만, 그 변화까지 따라 미친 것은 이미 드물었다. 송나라와 원나라에 이르러 약의 종류는 날로 늘어났으나 성질을 끝까지 연구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스승 삼아 제멋대로 써서 잘못이 잇따랐다. 《본경》의 여러 약을 쓰더라도 그 정미하고 오묘한 뜻을 많이 빠뜨렸다. 이 때문에 처방은 처방답지 않고 약은 그 약답지 않으며, 간혹 효용이 있더라도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이지 반드시 취할 만한 것은 아니다. 이는 참으로 《본경》을 강구하지 않은 까닭이다. 나는 이를 남몰래 슬퍼하였다! 자세히 풀어 밝히고 싶었으나, 보고 들은 것이 많지 않고 고금의 이름과 실물이 서로 다르며 토질에 따라 산물이 달라 기와 맛도 같지 않으니 어찌하겠는가. 또 근세 의가가 흔히 쓰지 않는 약은 알아보고 거두어 채취하는 사람도 없다. 더구나 특별한 능력과 다른 성질을 지녀 그 뜻이 은미한 데 있는 것은 한때에 추측하기 어렵다. 반드시 경전 전체를 모두 풀이하려 한다면 양심을 속이고 성인을 무함하는 일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다만 보고 들어 익숙하여 의심이 없고 이치를 헤아릴 수 있는 것을 골라 모두 백 종을 얻어, 그 근본과 근원을 탐구하고 그러한 까닭을 밝혔다. 옛 성인이 처방을 세워 병을 치료한 마음을 환히 볼 수 있게 하고, 나머지는 비워 두었다. 뒤의 군자는 혹 이를 바탕으로 그 전체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거칠고 고루하여 비웃을 만하나, 공경하고 삼간 점은 가상히 여길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