體仁子曰 :「 是書何謂而秘稱禁書 ?」 蓋緣外無獨秘 , 故以禁書名之也 。 非秘而不行之也 , 所緣元胡久穢中土 , 我朝太祖高皇帝 , 愛念民生 , 平胡滅虜 , 掃蕩膻腥 。 惟是諸臣不但恐懼 , 所向無前 。 然當破釜焚舟之後 , 未免瘡痍困苦 。 我太祖臨戎則心苦 , 有切膚之痛 , 故恆破錢糧鉅萬 , 招致方外名人及諸奇醫 , 並求接骨出鏃 、 內傷跌僕 、 金瘡種種異術 , 遍尋起死回生之妙訣 , 不待言而心懇切矣 。 又擇選經驗者 , 錄出成帙 , 藏之禁中 , 以為國家征伐鬥戰之備用 。 時青田先生與聞國家大事 , 君臣魚水 , 而得禁藏於家 。 予乃與裔孫松石翁交好數十年 , 一日偶談岐黃之學 , 因嘆青囊秘方不得復見於時 。 翁云 :「 吾祖有禁方一冊 , 等閒不以示人 , 用之輒獲奇驗 。」 乃出是書 , 授予視之 。 書雖不多 , 然皆出於岐黃外 , 別傳秘方奇法 , 非時醫所能覷其藩離者也 。 予何幸而得之 , 謹當世世寶之勿替也 。 恐後之子孫不知 , 或有遺棄之者 , 故特序其所出之源流雲耳 。
체인자가 말하였다. “이 책은 무슨 까닭에 비밀스럽게 금서라 부르는가?” 밖에는 홀로 비밀스럽게 전하는 것이 없으므로 금서라 이름한 것이지, 숨겨 두어 행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다. 원나라 오랑캐가 오래 중원을 더럽히자 우리 왕조 태조 고황제는 백성의 삶을 아껴 오랑캐를 평정하고 없애며 비린내를 쓸어버렸다. 여러 신하들은 두려워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향하는 곳마다 앞을 막을 이가 없었다. 그러나 솥을 깨고 배를 불사르며 싸운 뒤에는 상처와 고통을 면하지 못했다. 태조는 전장에 나갈 때 마음이 괴로워 살을 에는 아픔을 느꼈으므로 늘 막대한 돈과 양곡을 들여 방외의 명인과 기이한 의사들을 불러 모았다. 접골과 화살촉 제거, 내상과 낙상, 금창의 여러 이술을 구하고 죽음에서 되살리는 묘결을 두루 찾았으니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간절했다. 또 경험으로 확인된 것을 골라 기록하고 책으로 엮어 궁중에 두어 국가의 정벌과 전투에 대비하였다. 당시 청전 선생은 국가의 큰일에 참여하여 임금과 신하가 물과 고기 같은 사이였으므로 궁중의 비방을 집에 간직할 수 있었다. 나는 그 후손 송석옹과 수십 년 교유하였다. 어느 날 우연히 의학을 이야기하다 청낭의 비방을 다시 세상에서 볼 수 없음을 탄식하니, 옹이 “우리 선조에게 금방 한 책이 있어 아무에게나 보이지 않으며 쓰면 번번이 기이한 효험을 얻는다”고 하고 이 책을 꺼내어 보여 주었다. 책은 많지 않지만 모두 기황의 의술 밖에서 따로 전하는 비방과 기법으로 당시 의사들이 그 울타리조차 엿볼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다행히 이를 얻었는가! 삼가 대대로 보배롭게 여겨 잃지 말아야 한다. 후손들이 알지 못하고 버리는 이가 있을까 염려되어 그 나온 근원과 흐름을 특별히 서문으로 적을 뿐이다.
時宣德二年小春望日謹序
선덕 2년 소춘 보름날 삼가 서문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