溯源 痘診之症 , 不著先秦古書 , 故溯流窮源 , 類多未定之見 。 有謂在母腹中時食穢血而致者 , 有謂在交媾時欲火所鍾者 , 蓋皆胎毒也 。 宋元以來 , 醫家之說大抵皆然 。 而近又有天行疫厲與傷寒同 , 則是外感了 , 與胎毒無干 , 不知傷寒之病 , 人有不患之者 ; 而痘則人人不得而免 。 傷寒則既病之後 , 不能保其不再病 ; 而痘疹一出之後 , 永不復出 。 如此 , 則所謂胎毒者 , 是也 。 然食穢之於欲火 , 自有男女以來即有之 , 何此不見於漢以前 , 而特於建武以後始有之 , 豈建武以前獨無胎毒耶 ? 曰 : 痘疹之症 , 其始也 , 未有不本於胎毒 ; 而其既也 , 未始不成於外感 。 惟其本於胎毒 , 故人人不得而免 ; 惟其成於外感 , 故特見於建武之後 , 而建武以前無見也 。 經云 : 不平之溫熱者瘡 。 蓋上古之時 , 風氣未漓 , 稟受素厚 , 即有胎毒 , 自能內消 。 寒涼之地 , 腠理閉秘 , 疫厲難侵 ; 溫熱之方 , 風氣平安 , 瘡亦不作 , 故未聞有患痘者 。 至建武時 , 胡虜極西北之人 , 到南方溫熱之地 , 腠理開通 , 偶感時行疫厲之氣 , 觸動在胎時所受溫熱毒 , 發為此瘡 , 所傳染無一得免 , 而痘症著矣 。 即如俗所云楊梅瘡者 , 亦起近代 , 亦能傳染 , 其一發之後 , 不復再出 , 又與痘同 。 蓋人在氣交之中 , 故痘疹由外感而成者 , 類能傳染 , 惟莫開其端 , 則其症不著 , 要未可以執一論也 。 惟內染外感 , 相搏而成 , 故欲發之初 , 未見紅點之際 , 以微汗散之 , 未有不愈者 。 失此不汗 , 至於將出未出之時 , 其勢已成 , 更欲汗之 , 虛者不能成漿 , 實者必成斑爛矣 。 可不審哉 。
근원을 거슬러 살핌. 두진의 증상은 선진의 옛 책에 실려 있지 않으므로, 흐름을 거슬러 근원을 궁구하는 견해에는 대체로 확정되지 않은 것이 많다.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더러운 피를 먹어서 생긴다고도 하고, 교구할 때 욕화가 모여서 생긴다고도 하니, 모두 태독이라는 것이다. 송·원 이래 의가의 설명은 대체로 모두 그러하였다. 그런데 근래에는 천행역려가 상한과 같다고 하니, 이는 외감이며 태독과는 관계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한은 앓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두창은 누구도 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상한은 한번 앓은 뒤 다시 앓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지만, 두진은 한번 돋은 뒤 다시는 돋지 않는다. 이와 같다면 이른바 태독이라는 말이 옳다. 그러나 더러운 것을 먹는 것과 욕화는 남녀가 생긴 이래로 있었는데, 어찌 한 이전에는 보이지 않다가 건무 이후에야 처음 생겼는가? 건무 이전에만 태독이 없었단 말인가?
말하자면, 두진은 처음에 태독에 근본하지 않는 것이 없고 나중에는 외감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 태독에 근본하므로 누구도 면하지 못하며, 외감으로 이루어지므로 건무 이후에만 나타나고 그 이전에는 보이지 않은 것이다. 경에서 ‘고르지 못한 온열은 창이 된다’고 하였다. 상고에는 풍기가 아직 야박해지지 않고 타고난 기가 본래 두터워, 태독이 있더라도 저절로 안에서 삭일 수 있었다. 차고 서늘한 땅은 주리가 굳게 닫혀 역려가 침범하기 어렵고, 따뜻한 지방은 풍기가 평안하여 창이 생기지 않았으므로 두창을 앓는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건무 때에 이르러 서북쪽 끝의 호인들이 남방의 따뜻한 땅에 와서 주리가 열리고, 우연히 유행하는 역려의 기를 받아 태중에 있을 때 받은 온열독을 건드려 이 창이 생겼다. 전염된 이 가운데 하나도 면하지 못하여 두창의 증상이 드러난 것이다.
세속에서 양매창이라 하는 것도 근대에 생겨 전염될 수 있고 한번 생긴 뒤에는 다시 나오지 않으니, 이 또한 두창과 같다. 사람은 기가 교류하는 가운데 있으므로 외감으로 이루어지는 두진은 대체로 전염될 수 있다. 다만 그 단서를 열지 않으면 증상이 드러나지 않으니, 요컨대 한 가지에 집착하여 논해서는 안 된다. 안의 감염과 밖의 감촉이 서로 맞부딪쳐 이루어지므로, 발하려는 초기에 아직 붉은 점이 보이지 않을 때 약간 땀을 내어 흩으면 낫지 않는 것이 없다. 이때를 놓쳐 땀을 내지 않고 나오려 하나 아직 나오지 않은 때에 이르면 형세가 이미 이루어진다. 다시 땀을 내고자 하면 허한 이는 장액을 이루지 못하고 실한 이는 반드시 반점이 짓무르게 된다. 어찌 자세히 살피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