婦人病之別立科目 , 濫觴於扁鵲之為帶下醫 , 繼之者仲景有婦人方 , 至元代設帶醫 、 乳醫 、 褥醫等科 。 宋 · 陳自明著 《 婦人良方 》, 明 · 王肯堂著 《 女科準繩 》, 清 · 武之望著 《 濟陰綱目 》, 而婦人科遂獨立矣 。 夫婦人與男子之不同治 , 根於生理之不同軌 , 故經帶病 、 乳疾及胎產諸症 , 為婦人方書立論之鵠 , 江浦陳珠泉君能醫 , 於婦人科獨長 , 嘗藏 《 胎產證治 》 一書 , 書為肯堂所著 , 清 · 岳昌源氏重訂 。 分月經 、 胎前 , 臨產 、 產後四大類 , 言不過二萬 , 而綱舉目張 , 簡明扼要 , 婦人病症 , 瞭如指掌 , 宜乎陳君珍為青囊環寶 , 藏之數十秋 , 按法施治 , 全活數百人也 。 茲念異說橫流 , 中醫凌替 , 實效方書 , 亟宜公布 , 檢付中醫書局印行 , 於是學者得一暗室明燈 , 終南捷經 。 而陳君仁厚之心 , 醫林共仰 , 王氏不傳之秘 , 薄海爭誦焉 。 既倩吾兄伯未審定 , 余謹為序如此 。 至於肯堂之書 , 流傳者僅 《 六科準繩 》, 前歲中醫書局得 《 醫學筆麈 》, 今復得 《 胎產證治 》, 吾知其遺書之失傳者 , 當不止此 , 則更願中醫人士竭力搜求 , 使先賢之苦心得永垂於不朽 , 曷勝馨香禱之 !
부인병을 별도의 과목으로 세운 것은 편작이 대하의가 된 데서 시작되었다. 이어 중경에게 부인방이 있었고 원대에는 대의·유의·욕의 등의 과목을 설치하였다. 송의 진자명이 《부인양방》을 짓고 명의 왕긍당이 《여과준승》을 지었으며 청의 무지망이 《제음강목》을 지으면서 부인과가 마침내 독립하였다. 부인을 남자와 다르게 치료하는 것은 생리가 서로 다름에 근본하므로 월경과 대하의 병, 유질과 태산의 여러 증이 부인 방서에서 논설을 세우는 목표가 된다. 강포의 진주천 군은 의술에 능하고 부인과에 특히 뛰어나다. 일찍이 《태산증치》 한 책을 간직하였는데 왕긍당이 지은 것을 청의 악창원이 다시 정리한 책이다. 월경·태전·임산·산후 네 큰 부류로 나뉘고 글은 이만 자를 넘지 않지만 강령과 조목이 잘 드러나며 간명하고 요점을 잡아 부인병증이 손바닥을 가리키듯 분명하다. 진군이 이를 청낭의 귀중한 보배로 여기고 수십 년 간직하며 법에 따라 치료하여 수백 명을 온전히 살린 것은 당연하다. 이제 이설이 멋대로 흐르고 중의가 쇠퇴함을 생각하여 실제 효과가 있는 방서를 급히 공개해야 한다고 여겨 중의서국에 보내 인쇄하게 하였다. 이에 배우는 이는 어두운 방의 밝은 등불과 종남의 지름길을 얻었고 진군의 어질고 후한 마음을 의림이 함께 우러르며 왕씨가 전하지 않던 비법을 온 세상이 앞다투어 읽게 되었다. 이미 내 형 백미에게 심정을 청하였기에 나는 삼가 이처럼 서문을 쓴다. 왕긍당의 책으로 전하는 것은 오직 《육과준승》이었는데 지난해 중의서국이 《의학필주》를 얻었고 이제 다시 《태산증치》를 얻었다. 전해지지 않은 그의 유서는 여기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중의계 인사들이 힘껏 찾아 앞선 현인의 고심이 영원히 불후하게 드리우게 하기를 더욱 바란다. 향을 올려 기원하는 마음을 어찌 다 말하겠는가.
民國十九年四月上海秦之萬又安予
민국 19년 4월 상해의 진지만 우안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