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金匱 》 治婦人妊娠產後難病諸篇 , 立方不多 , 而精理名言 , 讀者觸類引伸 , 無在不有左右逢源之妙 , 承其緒而昌明者 , 實惟 《 千金方 》。 唐宋以來 , 婦科之書 , 汗牛充棟 , 往往一症數方 , 或十數方 , 方日多而用其方者 , 乃有效有不效 , 時醫以四物湯為婦科總方 , 其妙處在川芎一味 , 以其味辛氣溫 , 通上下而行血中之氣也 。 然有失血過多之症 , 氣息幾微 , 不但禁用香竄之川芎 , 即四物亦宜慎用 , 然後嘆泥方以治病 , 或昧治而試方 , 雖經方亦足以殺人 , 烏可以不致謹也 。 夫治病之道 , 有經有權 , 是故調經方論 , 前人主於溫補 , 有合酌用寒涼者 , 審其對症則然也 。 胎前主治 , 大要貴於安胎 , 有時胎之不安 , 由於抱病 , 用藥以去病為先者 , 審其對症則然也 。 產後諸症常法 , 當大補氣血 , 雖有他症 , 以末治之 , 然當察其輕重緩急 , 間有酌用苦寒兼及驅蕩之品者 , 審其對症則然也 。 凡吾所言 , 有時於 《 金匱 》、《 千金 》 與否 , 今不暇計 , 而要之讀書者 , 固宜觀其通也 。 有明 · 王肯堂先生 《 六科準繩 》 中女科一種 , 允為醫林一大著作 , 而不免稍失之繁 , 今此書為肯堂先生手稿 , 清初名醫岳泗庵先生刪校重訂 , 雖僅一卷 , 而簡當精核 , 余得其稿本於江右黃氏 , 藏篋中三十年矣 。 今重違中醫書局錢君季寅之請 , 校印行世 。 吾知手此一編者 , 其於婦科證治 , 如觀螺紋而數家珍也 , 用兵者無一定之法 , 弈棋者無一定之譜 , 惟醫亦然 , 苟昧於通變而泥成方 , 吾知其為孫武弈秋之所棄 , 終其身不能涉岐黃氏之藩籬者也 。 若昧症治而以方試病之庸醫 , 更何論焉 , 明乎此而後可讀此書 , 且可進而讀 《 金匱 》、《 千金 》 之書 。
《금궤》에서 부인의 임신과 산후 난병을 치료하는 여러 편은 세운 처방이 많지 않으나 정밀한 이치와 명언이 있어 읽는 이가 부류를 미루어 넓히면 어디에서나 좌우로 근원을 만나는 묘미가 있다. 그 실마리를 이어 밝힌 것은 실로 《천금방》이다. 당송 이래 부과의 책은 소가 땀을 흘리고 집에 가득 찰 만큼 많았으며 흔히 한 증에 여러 처방 또는 십수 처방이 있었다. 처방은 날로 많아졌으나 이를 쓰는 사람에게는 효과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였다. 당시 의사들은 사물탕을 부과의 총방으로 삼았다. 그 묘미는 천궁 한 약에 있으니 맛이 맵고 기가 따뜻하여 위아래를 통하고 혈 속의 기를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를 너무 많이 잃어 숨이 거의 미미한 증에서는 향기롭게 달아나는 천궁만 금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탕도 신중하게 써야 한다. 그러고 보면 처방에 얽매여 병을 치료하거나 치료를 모르면서 처방을 시험하면 경방도 사람을 죽이기에 충분함을 탄식하게 되니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병을 치료하는 도에는 정법과 권변이 있다. 그러므로 조경 처방의 논설은 앞사람이 온보를 주로 하였어도 한량약을 헤아려 함께 쓰는 경우가 있으니 증에 맞음을 살펴서 그러한 것이다. 태전의 주치는 대요가 안태를 중시하지만 때로 태가 불안한 원인이 앓는 병에 있어 병을 없애는 것을 먼저 하는 경우가 있으니 증에 맞음을 살펴서 그러한 것이다. 산후 여러 증의 상법은 기혈을 크게 보하고 다른 증이 있어도 말단으로 치료하는 것이지만 그 경중과 완급을 살펴 간혹 고한약과 몰아내어 씻는 약을 함께 헤아려 쓰는 경우가 있으니 증에 맞음을 살펴서 그러한 것이다. 내가 말한 모든 것이 때로 《금궤》·《천금》과 맞는지 여부는 지금 헤아릴 겨를이 없으나 요컨대 책을 읽는 이는 본래 그 통하는 바를 보아야 한다. 명나라 왕긍당 선생의 《육과준승》 가운데 여과 한 종은 참으로 의림의 큰 저작이지만 조금 번다한 결점을 면하지 못한다. 지금 이 책은 긍당 선생의 수고를 청초 명의 악사암 선생이 산교하고 다시 정리한 것이다. 비록 한 권뿐이지만 간결하고 타당하며 정밀하다. 나는 강우의 황씨에게서 그 고본을 얻어 상자 속에 간직한 지 삼십 년이 되었다. 이제 중의서국 전계인 군의 청을 거듭 거절하기 어려워 교정하여 인쇄하고 세상에 내놓는다. 이 한 편을 손에 쥔 사람은 부과 증치에서 소라 무늬를 보거나 집안 보배를 세듯 분명해질 것임을 안다. 군사를 쓰는 이는 일정한 법이 없고 바둑을 두는 이는 일정한 기보가 없으며 의사도 그러하다. 통변을 모르고 성방에 얽매이면 손무와 혁추에게 버림받아 평생 기황씨의 울타리에도 들어가지 못할 것임을 안다. 증치를 모르고 처방으로 병을 시험하는 용의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이를 밝힌 뒤에야 이 책을 읽을 수 있고 더 나아가 《금궤》·《천금》도 읽을 수 있다.
民國十八年六月江浦陳洙珠泉氏序於滬寓之種瑤草堂
민국 18년 6월 강포의 진수 주천씨가 상해 거처의 종요초당에서 서문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