紹興王宗正曰 : 診脈之法 , 當從心肺俱浮 、 肝腎俱沉 、 脾在中州之說 , 王敘和獨守寸關尺分部位 , 以測五臟六腑之脈者 , 非也 。
소흥(紹興)의 왕종정(王宗正)이 말하였다. “진맥하는 법은 심과 폐의 맥은 모두 얕고, 간과 신의 맥은 모두 깊으며, 비는 가운데에 있다는 설을 따라야 한다. 왕서화(王敘和)가 오직 촌·관·척으로 부위를 나누는 법만 지켜 오장육부의 맥을 헤아린 것은 잘못이다.”
慈溪趙繼宗曰 : 脈訣言左心小腸肝膽腎 , 右肺大腸脾胃命者 , 非也 。 心 、 肺居上 , 為陽 、 為浮 , 肝 、 腎居下 , 為陰 、 為沉 , 脾居中州 , 半陰半陽 、 半浮半沉 。 當以左寸為心 , 右寸為肺 , 左尺為肝 , 右尺為腎 , 兩關為脾 , 關者 , 陰陽之界限 ; 前 , 取陽三分 ; 後 , 取陰三分 。 所謂土居金 、 木 、 水 、 火 、 之中 , 寄王於四時 , 不獨右關為脾也 。 肝既為陰 , 豈宜在半陰半陽 、 半浮半沉之左關耶 ? 命門即是腎 , 不宜以右尺為診 。 (詳儒醫精要)
자계(慈溪)의 조계종(趙繼宗)이 말하였다. “『맥결』에서 왼쪽에는 심·소장·간·담·신을, 오른쪽에는 폐·대장·비·위·명문을 배속한 것은 잘못이다. 심과 폐는 위에 있어 양이며 얕고, 간과 신은 아래에 있어 음이며 깊다. 비는 가운데에 있어 반은 음이고 반은 양이며, 반은 얕고 반은 깊다. 마땅히 왼쪽 촌을 심으로, 오른쪽 촌을 폐로, 왼쪽 척을 간으로, 오른쪽 척을 신으로 삼고, 양쪽 관을 비로 삼아야 한다. 관은 음양의 경계이므로, 그 앞에서는 양의 3분을 취하고 뒤에서는 음의 3분을 취한다. 이른바 토(土)는 금·목·수·화의 가운데에 머물러 사계절에 나누어 왕성해지는 것이므로, 오른쪽 관만이 비인 것은 아니다. 간이 이미 음이라면, 어찌 반음반양이며 반부반침인 왼쪽 관에 자리하는 것이 합당하겠는가? 명문은 곧 신이니, 오른쪽 척을 명문을 진찰하는 자리로 삼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자세한 내용은 『유의정요(儒醫精要)』에 보인다.)
吳草廬曰 : 醫者於寸關尺 , 輒名之曰 : 此心脈 、 此肺脈 、 此肝脈 、 此脾脈 、 此腎脈者 , 非也 。 五臟六腑 , 凡十二經 , 兩手寸關尺者 , 手太陰肺經之一脈也 。 分其部位 , 以候他臟之氣耳 , 脈行始於肺 , 終於肝 , 而復會於肺 , 肺為氣所出之門戶 , 故名曰氣口 , 而為脈之大會 。 以佔一身焉 。 (詳文集)
오초려(吳草廬)가 말하였다. “의원들이 촌·관·척에서 걸핏하면 ‘이것은 심맥, 이것은 폐맥, 이것은 간맥, 이것은 비맥, 이것은 신맥’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잘못이다. 오장육부에는 모두 십이경이 있지만, 양손의 촌·관·척은 수태음폐경(手太陰肺經)의 한 맥이다. 그 부위를 나누어 다른 장의 기를 살필 뿐이다. 맥의 운행은 폐에서 시작하여 간에서 끝나고, 다시 폐에 모인다. 폐는 기가 나오는 문이므로 기구라고 이름하며, 맥이 크게 모이는 곳이 된다. 이곳으로 온몸을 살피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문집에 보인다.)
李時珍曰 : 兩手六部 , 皆肺之經脈也 , 特取此以候五臟六腑之氣耳 , 非五臟六腑所居之處也 。 凡診察皆以肺 、 心 、 脾 、 肝 、 腎各候一動 , 五十動不止者 , 五臟皆足 , 內有一止 , 則知一臟之脈不至 。 據此推之 , 則以肺經一脈 , 候五臟六腑之氣者 , 可心解矣 。 褚 、 儲 、 趙氏不知脈隨五臟之氣 , 行於經隧之間 , 欲以男女臟腑 , 顛倒部位 , 執泥不通 。 戴同父言 , 褚氏倒裝五臟 , 丹溪別男女尺寸 , 草廬明三部皆肺 , 三說皆有真見 , 學者所當宗師 。 若夫趙氏所云 , 蓋本於宋人王宗正難經圖解 , 豈知脈分兩手 , 出於素問脈要精微論 , 而越人推明關脈 , 及一脈十變於難經 , 非始於叔和也 。 若如其說 , 則一脈十變何從推之 , 可謂鑿而任矣 。 命門即腎之說 , 乃越人之誤也 。 予嘗著命門考 、 命門三焦客難二說 , 凡二千餘言云 。
이시진이 말하였다. “양손의 여섯 부위는 모두 폐의 경맥이다. 특별히 이곳을 취하여 오장육부의 기를 살필 뿐이지, 오장육부가 자리한 곳은 아니다. 진찰할 때에는 언제나 폐·심·비·간·신에 대하여 각각 한 번의 맥동을 살핀다. 50번 뛰는 동안 멎지 않으면 오장이 모두 충족한 것이고, 그 안에 한 번 멎음이 있으면 한 장의 맥이 이르지 않았음을 안다. 이것을 근거로 미루어 보면, 폐경의 한 맥으로 오장육부의 기를 살핀다는 뜻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저씨(褚氏)·저씨(儲氏)·조씨(趙氏)는 맥이 오장의 기를 따라 경맥의 통로 사이를 운행한다는 것을 모르고, 남녀의 장부를 근거로 그 부위를 뒤집으려 하였으니, 한쪽에 얽매여 통달하지 못한 것이다. 대동보(戴同父)는 “저씨가 오장을 거꾸로 배치한 설, 단계가 남녀의 촌맥과 척맥을 구별한 설, 초려가 세 부위 모두 폐의 맥임을 밝힌 설은 모두 참된 견해가 있으니, 배우는 사람들이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라고 말하였다. 조씨가 말한 것은 대체로 송나라 사람 왕종정의 『난경도해(難經圖解)』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맥을 양손으로 나누는 법은 『소문』의 「맥요정미론(脈要精微論)」에서 나왔고, 월인이 『난경』에서 관맥과 한 맥의 열 가지 변화를 미루어 밝혔으니, 숙화에게서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님을 어찌 알았겠는가? 만약 그의 말대로라면 한 맥의 열 가지 변화를 무엇을 따라 추론하겠는가? 억지로 끼워 맞추어 제멋대로 한 것이라 할 만하다. 명문이 곧 신이라는 설은 월인의 잘못이다. 나는 일찍이 「명문고(命門考)」와 「명문삼초객난(命門三焦客難)」 두 편을 지었으며, 모두 2천여 자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