右博濟堂腳氣概論刻成 。 或曰是書獨舉一病 。 而不復他及 。 其無嫌於博濟之名乎 。 余曰 。 否 。 奉官准也 。 余嘗周遊乎歐西諸國 。 歐西之人 。 就求治者眾矣 。 其症大抵與和漢之病症無異 。 而腳氣則絕罔見也 。 故歐西醫家 。 亦無有發明焉 。 是以官特創病院 。 以救療斯疾 。 吾黨之士 。 亦體斯旨 。 原古今之良法 。 集諸家之經驗 。 普施博試以著此編者 。 何傷其偏狹乎 。 且夫賀川子玄之於產論 。 池田錦橋之於痘利辨要 。 華岡青洲之於瘍科瑣言 。 皆嘔心鏤骨之所得 。 世以為圭臬 。 顧一握驪珠於腳氣病中 。 則百端疾疢皆為我使用 。 猶正統一歸則九夷八蠻悉受其正朔也 。 或唯唯而退 。 則書以為跋 。 明治十二年五月高島久也祜啟謹識
위의 《박제당각기개론》을 새겨 완성하자 어떤 이가 말하였다. ‘이 책은 오직 한 병만 들고 다른 것에는 미치지 않았으니 박제라는 이름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내가 말하였다. ‘아니다. 관의 인가를 받든 것이다. 나는 일찍이 유럽 여러 나라를 두루 다녔는데 유럽 사람 중 치료를 구하러 온 이가 많았다. 그 증상은 대체로 일본과 중국의 병증과 다르지 않았으나 각기는 전혀 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유럽의 의가도 이에 대해 밝혀 놓은 것이 없다. 이에 관에서 특별히 병원을 창립하여 이 병을 구제하고 치료하게 하였다. 우리 무리도 이 뜻을 본받아 고금의 좋은 법을 근원으로 삼고 여러 의가의 경험을 모아 널리 베풀고 두루 시험하여 이 편을 지었으니, 어찌 치우치고 좁다고 흠이 되겠는가? 더구나 하천자현의 《산론》, 지전금교의 《두리변요》, 화강청주의 《양과쇄언》은 모두 심혈을 기울이고 뼈에 새길 만큼 애써 얻은 것으로 세상에서 규범으로 여긴다. 다만 각기병 가운데서 여의 구슬 하나를 손에 넣으면 온갖 질병을 모두 내가 부려 쓸 수 있으니, 정통이 하나로 돌아오면 구이팔만이 모두 그 역법을 받드는 것과 같다.’ 어떤 이는 공손히 응답하고 물러났다. 이에 글을 써 발문으로 삼는다. 메이지 12년 5월, 고도구야 호계가 삼가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