腳氣晉宋以前 。 名為緩風 。 晉宋呼為腳中 。 見王羲之及羊欣書 。 至腳氣之稱 。 蓋始見梁武帝書曰 。 數朝腳氣 。 轉動不得是也 。 唐人或謂之軟腳病 。 論其病因 。 孫王二家之言為至備 。 而其最古而盡者 。 唯左氏為然 。 曰沃饒而近鹽 。 土鹽水淺 。 於是乎有現溺重腿之疾 。 蓋此疾不于山岡起伏 。 水泉湍急之境 。 而必於濱海衍沃水泉重濁之際 。 不於攻苦食淡之徒 。 而必於安坐玉食之人 。 唐人稱為江南之疾 。 韓昌黎曰 。 是疾也 。 江南之人 。 常常有之 。 柳子厚之貶永州也 。 亦曰昏眊重腿 。 意以為常 。 孫氏論腳氣曰 。 魏周之代無此疾 。 魏周皆在江北故也 。 太史公稱楚越之地 。 烹海為鹽飰稻羹魚地勢饒食不待賈而足以故呰窳說者曰 。 呰弱也 。 窳病也 。 羸弱而足病也 。 則江南之多腳氣 。 秦漢既然 。 而左氏之言 。 於是乎益驗矣 。 其在我也 。 唯江戶稱最多此疾 。 而京攝次之 。 意者江戶地勢 。 大較與江南相類 。 而士民之眾 。 魚鹽之饒 。 百貨之富 。 蓋有過無不及也 。 此則地勢之偶相類 。 乃患狀之所以相同也歟 。 夫江戶既稱腳氣最多 。 則我輩為人之司命者 。 不宜不講明之於平日也 。 是今村祇卿之所以有鉤要之選也耶 。 至如其論藥性方意 。 頗有與吾所見不能相一者 。 蓋人心如面 。 各行其所得 。 誰謂不可乎 。 姑書其嘗所考證辨之簡端云 。
각기는 진·송 이전에는 완풍이라 하였다. 진·송 때는 각중이라 불렀으니 왕희지와 양흔의 글에 보인다. 각기라는 명칭은 아마 양 무제의 글에 ‘여러 날 각기로 움직일 수 없다’고 한 데 처음 보일 것이다. 당나라 사람은 연각병이라고도 하였다. 병인을 논한 것은 손씨와 왕씨 두 사람의 말이 가장 갖추어졌으나, 가장 오래되고 뜻이 충분한 것은 오직 좌씨의 말이다. ‘기름지고 풍요로우며 소금 나는 곳에 가깝고, 땅에 염분이 있고 물이 얕으므로 현뇨(現溺)와 다리가 무거운 병이 있다’고 하였다. 이 병은 산언덕이 기복하고 샘물이 세차게 흐르는 곳이 아니라 반드시 바닷가의 넓고 비옥하며 물이 무겁고 탁한 곳에서 생긴다. 고생하며 담박하게 먹는 사람이 아니라 반드시 편히 앉아 좋은 음식을 먹는 사람에게 생긴다. 당나라 사람은 강남의 병이라 하였다. 한창려는 ‘이 병은 강남 사람에게 흔히 있다’고 하였다. 유자후도 영주에 귀양 갔을 때 ‘눈이 어둡고 다리가 무겁지만 늘 있는 일로 여긴다’고 하였다. 손씨가 각기를 논하면서 ‘위·주 시대에는 이 병이 없었다’고 한 것은 위·주가 모두 강북에 있었기 때문이다. 태사공은 초·월 땅을 두고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들고 쌀밥에 생선국을 먹는다. 땅이 비옥하여 사들이지 않아도 먹을 것이 넉넉하므로 자유하다’고 하였다. 풀이하는 이는 ‘자는 약함이고 유는 병이니, 몸이 여위고 약하며 발에 병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니 강남에 각기가 많은 것은 진·한 때 이미 그러하였으며, 좌씨의 말이 더욱 입증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에도에 이 병이 가장 많다고 하며 교토와 셋쓰가 그다음이다. 생각건대 에도의 지세는 대체로 강남과 비슷하지만, 백성의 수와 생선·소금의 풍부함과 온갖 물산의 넉넉함은 더하면 더하였지 못하지 않다. 지세가 우연히 비슷하여 병의 모습도 같은 것인가. 에도에 각기가 가장 많다 하니, 사람의 생명을 맡은 우리들은 평소 이를 강구하여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이마무라 기쿄가 구요를 엮은 까닭일 것이다. 약성과 처방의 뜻을 논한 데에는 내 견해와 일치하지 않는 것이 제법 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얼굴과 같으니 저마다 얻은 바를 행하는 것을 누가 옳지 않다 하겠는가. 우선 일찍이 고증하고 분별한 바를 책머리에 쓴다.
文久紀元龍集重光作平夏五月朔江戶侍醫法眼棠邊丹波元佶撰
분큐 원년, 세차 중광작평, 여름 5월 초하루에 에도 시의 법안 당변 단파원길이 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