舊德堂醫案

申江鄒邑侯子含仲夏患瀉精神疲憊面目青黃因素不服藥遷延季秋忽眩暈仆地四肢抽搦口斜唇動篇體冰冷麵黑肚縮六脈全無署中幕賓通曉醫理各言己見或曰諸風掉眩法宜平肝或曰諸寒收引理應發散議論紛紜不敢投劑延予決之曰脾為升陽之職胃為行氣之府坤土旺則清陽四布干健乖則濁陰蔽塞此自然之埋也今泄瀉既久沖和耗散所以脾元下脫胃氣十浮陰陽阻絕而成天地之否故卒然仆倒所謂上空則潰也況肝脾二經為相勝上臟脾虛則木旺肝旺則風生故體冷麵青歪斜搐搦相因而致也若誤認風寒的候而用發表之方恐已往之陽追之不返矣宜急煎大劑參附庶為治本合署驚訝見予議論嚴確乃用人參一兩熟附二錢生薑五片煎就灌下一二時手指稍溫至夜牛而身暖神蘇能進米飲後以理中補中調理而安
신강의 읍후 추자함이 한여름에 설사하여 정신이 피곤하고 얼굴빛이 청황색이었다. 평소 약을 먹지 않아 늦가을까지 끌다가 갑자기 어지러워 쓰러지고 팔다리를 떨며 입이 비뚤어지고 입술이 움직이고 온몸이 얼음처럼 차며 얼굴이 검고 배가 움츠러들고 육맥이 모두 없어졌다. 관아의 막빈들은 의리를 알아 각자 견해를 말하였다. 혹은 여러 풍의 흔들림과 현훈이니 간을 평하게 해야 한다 하고, 혹은 여러 한의 수축이니 발산해야 한다 하여 논의가 분분하되 감히 약을 주지 못하고 나를 불러 결정하게 하였다. 나는 비는 양을 올리는 직책이고 위는 기를 운행하는 부이므로 곤토가 왕성하면 청양이 사방으로 퍼지고 건의 건전함이 어긋나면 탁음이 가로막는 것은 자연의 이치라고 하였다. 지금 설사가 오래되어 충화가 소모·흩어졌으므로 비의 원기가 아래로 탈하고 위기가 위로 떠 음양이 끊겨 천지의 비괘가 된 것이니 갑자기 쓰러지는 것은 이른바 위가 비면 무너진다는 것이다. 더구나 간과 비는 서로 이기는 장이므로 비가 허하면 목이 왕성하고 간이 왕성하면 풍이 생긴다. 따라서 몸이 차고 얼굴이 푸르며 비뚤어지고 경련하는 것이 서로 이어져 생긴다. 풍한의 확실한 증으로 잘못 알아 발표 처방을 쓰면 이미 떠난 양을 좇아도 되돌리지 못할까 두렵다. 급히 많은 양의 인삼과 부자를 달여야 근본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였다. 관아 사람들이 놀랐으나 내 논의가 엄정하고 확실함을 보고 인삼 1냥·숙부자 2돈·생강 5쪽을 달여 부어 먹였다. 한두 시각에 손가락이 조금 따뜻해지고 한밤중에 몸이 따뜻해지며 정신이 깨어 미음을 먹을 수 있었다. 뒤에 이중과 보중으로 조리하여 안정되었다.
文學陸元振經年伏枕足膝枯細耳輪焦薄形容憔悴歷訪名醫俱用四物地黃湯反覺胸膈凝滯飲食減少自謂此身永廢而心猶未慊延予商治診兩寸關俱見沉滯獨尺部洪大重按若絕此腎虛精耗髓空骨痿之徵也蓋腎者作強之官也居下而主陰氣藏精而充骨髓者也故腎旺則精盈而肢節堅強腎虛則髓竭而膝臏軟弱王太僕云滋宙者必固其根伐下者必枯其上今坎水不能灌溉經絡滋養百骸宜乎耳輪焦薄足膝枯細也內經所謂腎氣熱則腰脊不舉足不任身骨枯髓減發為骨痿端合此證若從事滋陰恐用草木不能驟補精血反壅滯陽氣以致中脘不舒痿躄艱難耳必用氣血之屬同類相求兼以報使之品直抵下焦譬之天雨溝渠盈溢滂沛河澤奚慮隧道不行足膝難步耳疏方用人參白朮當歸地黃茯苓肉桂鹿茸龜甲萎蕤牛膝等重劑數帖而稍能轉舒百帖而愈
문학 육원진은 일 년 내내 누워 지내며 발과 무릎이 마르고 가늘고 귓바퀴가 마르고 얇으며 모습이 초췌하였다. 명의를 두루 찾아 모두 사물지황탕을 썼으나 도리어 흉격이 막히고 음식이 줄었다. 스스로 이 몸이 영영 못 쓰게 되었다고 하면서도 마음이 만족하지 못하여 나를 불러 치료를 의논하였다. 양쪽 촌관은 모두 침체하고 척부만 홍대하되 깊이 누르면 끊어진 듯하여 신허로 정이 소모되고 골수가 비고 뼈가 약해진 징후였다. 신은 작강의 관원으로 아래에 있어 음기를 주관하고 정을 저장하여 골수를 채운다. 신이 왕성하면 정이 가득하고 사지와 관절이 튼튼하며 신이 허하면 골수가 고갈되고 무릎이 약해진다. 왕태복은 위를 기르려면 반드시 뿌리를 굳게 하고 아래를 베면 반드시 위가 마른다고 하였다. 지금 감수가 경락을 적시고 온몸의 뼈를 기르지 못하므로 귓바퀴가 마르고 얇고 발과 무릎이 마르고 가는 것이 당연하다. 《내경》의 신기에 열이 있으면 허리와 척추를 들지 못하고 발이 몸을 감당하지 못하며 뼈가 마르고 골수가 줄어 골위가 된다는 말이 이 증과 꼭 맞는다. 자음만 하면 초목으로 정혈을 갑자기 보하지 못하고 도리어 양기를 막아 중완이 불편하고 위벽으로 걷기 어려워질까 염려된다. 반드시 기혈을 지닌 같은 부류의 물건을 써서 동류를 구하고 인도하는 약을 겸해 곧장 하초에 이르게 해야 한다. 하늘에서 비가 내려 도랑이 넘치고 강과 못에 가득하면 어찌 통로가 통하지 않고 발과 무릎으로 걷기 어려움을 염려하겠는가. 인삼·백출·당귀·지황·복령·육계·녹용·귀갑·위유·우슬 등을 많은 양으로 처방하니 몇 첩에 조금 움직일 수 있었고 100첩에 나았다.
嘉定孝廉陸佑公長子童年發熱偏嘗涼藥熱勢更熾晝夜不減復認陽明熱證投大劑白虎禁絕穀食致肌肉消瘦漸致危困迎予往治見面色枯而不澤脈現細數力斷大虛之證速用甘溫之藥庶可挽回佑老駭日皆言外感寒熱無閒內傷寒熱不齊今發熱晝夜不已而反言內虛者必有確見願聆其詳予曰陽虛晝劇陰虛夜劇此陰陽偏勝因有界限之分今脾胃並虛陰陽俱病元氣衰殘陰火攻衝獨浮肌膚表雖身熱如焚而寒必中伏況肌肉消鑠脾元困憊也徹夜無臥胃氣不和也面無色澤氣血不榮也脈象無神天真衰弱也此皆不足之明驗若禁川五味則胃氣益孤專服寒涼則生氣絕滅宜晨服補中益氣湯加麥來冬五味以培資生之本暮服逍遙散以疏乙木之郁兼佐濃鮮之品蘇胃養陰庶元神充而虛陽內斂也令先飲豬肺湯一碗當即安睡熱即稍減遂相信用藥服十劑而精神爽快調理經年服參數斤乃獲全愈
가정의 효렴 육우공의 장자가 어린 나이에 발열하여 찬 약을 두루 먹었으나 열이 더욱 성해 밤낮으로 줄지 않았다. 다시 양명열증으로 알아 대량의 백호를 주고 곡식을 끊게 하니 살이 여위고 점차 위태로워져 나를 불러 치료하게 하였다. 얼굴빛이 마르고 윤기가 없으며 맥이 세삭한 것을 보고 크게 허한 증이라 단정하고 빨리 감온한 약을 써야 돌이킬 수 있다고 하였다. 우 노인은 모두 외감의 한열은 간격이 없고 내상의 한열은 일정하지 않다고 하는데 지금 밤낮으로 열이 그치지 않음에도 내허라 하니 확실한 견해를 자세히 듣고 싶다고 놀라 말했다. 나는 양허는 낮에 심하고 음허는 밤에 심한 것은 음양이 한쪽으로 치우쳐 경계가 있기 때문이며, 지금은 비위가 함께 허하고 음양이 모두 병들어 원기가 쇠하고 음화가 치밀며 피부 겉에만 떠 있으므로 몸은 타는 듯 뜨거워도 한이 반드시 속에 잠복해 있다고 하였다. 살이 소모되는 것은 비원이 지친 것이고 밤새 자지 못하는 것은 위기가 조화롭지 않은 것이며 얼굴에 윤기가 없는 것은 기혈이 영양하지 못하는 것이고 맥에 신이 없는 것은 천진이 쇠약한 것이니 모두 부족의 명확한 증거이다. 오미를 금하면 위기가 더욱 외로워지고 한량약만 복용하면 생기가 끊어진다. 아침에는 보중익기탕에 맥문동·오미를 더하여 생명의 근본을 기르고 저녁에는 소요산으로 을목의 울체를 풀며 진하고 신선한 음식으로 위를 살리고 음을 길러야 원신이 충실해지고 허양이 안으로 수렴된다고 하였다. 먼저 돼지 폐의 탕 한 사발을 마시게 하니 즉시 편히 자고 열이 조금 줄어 약을 믿고 쓰게 되었다. 10제를 복용하니 정신이 상쾌해졌으며 한 해를 조리하고 인삼 몇 근을 먹은 뒤 완전히 나았다.
常鎮道尊陳麼久患下血甲辰春召予調治診得六脈安靜右尺重按稍虛此命門火衰不能生土土虛榮弱稍微下陷而成便血之候蓋土為生化之母堤防下氣者經曰營出中焦又曰氣因於中小者腳胃也為生氣生血之鄉升清降濁之職故胃盛則循經之血灑陳於外腳強則守榮之血滋養於中皆賴少火生氣耳若元陽既虧離虛無以生坤坎滿無以養良使脾胃衰殘而清陽不升轉輸失化而陰血不統宜乎精華之氣不能上奉辛金反下滲庚大腸也當用甘溫之劑培中宮之虛升陽之品提下陷之氣庶生長令行而陰血歸藏方以補中益氣加阿膠醋炒荊芥數劑而安
상진의 도존 진요가 오래 하혈하여 갑진년 봄 나를 불러 조치하게 하였다. 육맥은 안정되고 오른쪽 척맥만 깊이 누르면 조금 허하여 명문의 화가 쇠해 토를 생기게 하지 못하고 토가 허하고 영이 약해 조금 아래로 처져 변혈이 된 증후였다. 토는 생화의 어머니로 아래로 가는 기를 막아 주므로 경에서 영은 중초에서 나온다 하고 기는 중에서 비롯한다고 하였다. 중은 비위로 기와 혈을 만드는 곳이며 청을 올리고 탁을 내리는 직책이다. 위가 성하면 경을 따라 흐르는 혈이 밖에 퍼지고 비가 강하면 영을 지키는 혈이 안을 기르니 모두 소화가 기를 만드는 데 의지한다. 원양이 부족하면 리가 허하여 곤을 생기게 하지 못하고 감이 가득하여 간을 기르지 못하므로 비위가 쇠하여 청양이 오르지 않고 전수와 변화가 실조하여 음혈을 통섭하지 못한다. 정화의 기가 위로 신금에 받들어지지 않고 도리어 경인 대장으로 스며드는 것이 당연하다. 감온한 약으로 중궁의 허를 기르고 승양약으로 처진 기를 들어야 생장의 명령이 행해지고 음혈이 돌아가 저장된다. 보중익기에 아교와 식초에 볶은 형개를 더하여 몇 제에 안정되었다.
保定文選張魯彥少年登第縱恣酒色患便血四年午晨各去一次諸藥雜投劑多功少延予調治診其脈象兩手浮洪斷為腎虛火動之候蓋血乃精化精充而血始盛陰隨陽動陽密而陰乃固房勞太過則真水虧而虛火獨發元氣不足則閉藏弛而陰不固也遂以熟地山萸山藥石斛歸身白芍秦艽阿膠等煎成調棉花子灰二錢空心溫服數帖乃愈
보정의 문선 장노언은 젊어서 급제하여 술과 색을 마음대로 즐기다가 변혈을 4년 앓아 아침과 낮에 한 번씩 보았다. 여러 약을 뒤섞어 써 약은 많고 효과는 적어 나를 불러 조치하게 하였다. 양손 맥이 부홍하여 신허화동의 증으로 단정하였다. 혈은 정이 변화한 것으로 정이 충실해야 혈이 성하며 음은 양을 따라 움직이므로 양이 치밀해야 음이 견고하다. 방로가 지나치면 진수가 부족하여 허화만 발하고 원기가 부족하면 닫아 저장하는 힘이 느슨해져 음이 굳지 못한다. 숙지·산수유·산약·석곡·귀신·백작·진교·아교 등을 달여 면화자회 2돈을 타서 빈속에 따뜻하게 먹게 하니 몇 첩에 나았다.
庠生陸符九夫人系董文敏公之孫女也懷孕三月忽崩湧如泉胎墮而胞息脹悶昏沉發熱譫語上視見鬼面黑流涎已三月矣此皆瘀血灌滿胞中上掩心肺故惡證畢現治法須分先後用肉桂歸尾澤蘭香附紅花牛膝元胡索煎成調失笑散去其胞中垢穢使不上升繼以參耆芎歸肉桂助其傳送庶或有救如方修服神思稍清覺痛陣連腰恍恍如下隊將鵝翎探入喉中一嘔而胞下脹悶諸苦若失
상생 육부구의 부인은 동문민공의 손녀이다. 임신 3개월에 갑자기 샘처럼 혈붕하여 태가 떨어졌으나 포가 남아 막혀 부풀고 답답하며 혼침하고 열이 나고 헛말하며 위를 보며 귀신을 보고 얼굴이 검고 침을 흘린 지 석 달이었다. 이는 모두 어혈이 포 안에 가득 차 위로 심폐를 덮은 것이므로 나쁜 증이 모두 드러난 것이다. 치료는 선후를 나누어 육계·귀미·택란·향부·홍화·우슬·현호색을 달여 실소산을 타서 포 안의 더러운 것을 없애 위로 오르지 못하게 한 뒤 인삼·황기·천궁·당귀·육계로 운반을 도와야 혹 구할 수 있다. 처방대로 복용하니 정신이 조금 맑아지고 허리까지 이어지는 진통이 아래로 떨어지는 듯 어렴풋이 느껴졌다. 거위 깃털을 목구멍에 넣어 한 번 구토하니 포가 내려왔고 창만과 답답함 등 여러 고통이 사라졌다.
協鎮王公生長薊北腠理閉密癸卯秋謁提臺粱公於茸城乘涼蚤歸中途濃睡覺惡寒發熱緣素無病患不謹調養過食腥葷日增喘促氣息聲粗不能安枕更汗出津津語言斷落不能發聲延予商治六脈洪滑右寸關尤汨汨動搖以脈合證知為痰火內郁風寒外束正欲出而邪遏之邪欲上而氣逆之邪正相搏氣湊於肺俾橐籥之司失其治節清肅之氣變為擾動是以呼吸升降不得宣通氣道奔迫發為肺鳴一切見證咸為風邪有餘肺氣壅塞之徵若能散寒驅痰諸病自愈乃用三拗湯(三拗湯麻黃不去根節杏仁不去皮尖甘草生用按此方治感冒風寒咳嗽鼻塞麻黃留節發中有收杏仁留尖取其能發留皮取其能澀甘草生用補中有發故名三拗)加橘紅半夏前胡一劑而吐痰喘緩二劑而胸爽臥安夫以王公之多欲誤認丹田氣短用溫補之品則膠固膚腠客邪焉能宣越頑痰何以渙解故臨症之時須貴乎諦審也
협진 왕공은 계북에서 자라 주리가 치밀하였다. 계묘년 가을 용성에서 제대 양공을 뵙고 서늘한 때를 타 일찍 돌아가다 중도에 깊이 잠들었다가 깨어 오한과 발열이 있었다. 평소 병이 없었으므로 조양을 삼가지 않고 비린 고기를 지나치게 먹어 천촉이 날마다 심해지고 숨소리가 거칠어 편히 눕지 못하였다. 땀이 줄줄 나고 말이 끊겨 소리를 내지 못하여 나를 불렀다. 육맥은 홍활하고 오른쪽 촌관은 더욱 콸콸 움직였다. 맥과 증을 합하여 담화가 안에 울체되고 풍한이 밖을 묶은 것으로 알았다. 정기가 나오려 하나 사기가 막고 사기가 위로 가려 하니 기가 거슬러 사정이 서로 싸우며 기가 폐에 모여 풀무의 직책이 조절을 잃고 청숙한 기가 소란해진 것이다. 따라서 호흡과 승강이 소통하지 못하여 기도가 급박해지고 폐명이 생겼다. 모든 증이 풍사의 유여와 폐기의 막힘이므로 한을 흩고 담을 몰아내면 저절로 낫는다. 삼요탕에 귤홍·반하·전호를 더하여 한 제에 담을 토하며 숨이 누그러지고 두 제에 가슴이 시원하고 편히 누웠다. (삼요탕은 마황의 뿌리와 마디를 제거하지 않고 행인의 껍질과 끝을 제거하지 않으며 감초를 생으로 쓴다. 이 처방은 풍한 감모의 기침과 코막힘을 치료한다. 마황의 마디를 남겨 발산 가운데 수렴이 있고 행인의 끝을 남겨 발산함을 취하며 껍질을 남겨 수렴함을 취한다. 감초를 생으로 써 보하는 가운데 발산이 있으므로 삼요라 한다.) 왕공이 욕망이 많다는 이유로 단전의 기가 짧다고 잘못 알아 온보약을 쓰면 피부와 주리를 굳게 하여 객사가 어찌 퍼져 나가고 완담이 어찌 풀리겠는가. 그러므로 증에 임해서는 자세한 살핌이 귀하다.
□商吳維宗年將衛順忽然染吐血嗽痰晝夜不安醫見年邁多勞誤投參耆遂覺一線穢氣直衝清道如煙似霧胸間隱隱而疼喘急不臥闔戶悲泣特遣伊侄遠顧蓬門具陳病概並言伊子幼齡倘成沉疴何人撫育深為慘惻予憫其懇切細為審度知水乾龍奮焦灼嬌臟將見腐肺成癰所以咳咯不止蓋金水一氣水火同原干金既可生水坎水又能養金惟源流相濟則離焰無輝如真水涸流則相火飛越俾清虛廓然之質成擾攘溷濁之氣況乎甘溫助陽愈傷肺液宜壯水之主以鎮陽光使子來救母而邪火頓息也方以生熟地黃各二錢天冬麥冬各一錢五分茯苓紫菀川貝枯芩瓜蔞霜甘草節各一錢二劑而煙消霧散喘息臥安以後加減不旬日而嗽痰俱止
상인 오유종은 나이가 거의 이순인데 갑자기 토혈하고 담을 기침하여 밤낮 편하지 않았다. 의사가 나이가 많고 노고가 많음을 보고 인삼과 황기를 잘못 주자 한 줄기 더러운 기가 연기와 안개처럼 청도로 치밀고 가슴이 은근히 아프며 숨이 급해 눕지 못하였다. 온 집이 슬피 울며 조카를 멀리 내 초가에 보내 병의 대략을 말하고 아들이 어려 고질병이 되면 누가 기르겠느냐고 하여 몹시 참담하였다. 나는 간절함을 가엾이 여겨 자세히 헤아리니 물이 말라 용이 날뛰며 연약한 장을 태워 폐가 썩어 옹이 되려 하므로 기침과 각혈이 멎지 않는 것이었다. 금수는 한 기이고 수화는 같은 근원이라 건금이 수를 만들고 감수가 금을 기르며 근원과 흐름이 서로 도와야 리의 불꽃이 빛나지 않는다. 진수의 흐름이 마르면 상화가 날아올라 맑고 빈 바탕이 소란하고 혼탁한 기로 변한다. 더구나 감온으로 양을 도우면 폐액을 더욱 상하므로 수의 주인을 튼튼하게 하여 양광을 진정시켜 자가 모를 구하고 사화가 곧 멎게 해야 한다. 생지황·숙지황 각 2돈, 천동·맥동 각 1돈 5푼, 복령·자완·천패·고금·과루상·감초절 각 1돈을 썼다. 두 제에 연기와 안개가 걷히고 숨이 편해 누울 수 있었으며 뒤에 가감하여 열흘 안에 기침과 담이 모두 멎었다.
相國文湛持在左春坊時患左足下有一線之火直衝會厭燔灼咽嗌必得抬肩數次火氣稍退頃之復來或用補中益氣加肉桂服之更甚求治於家君脈兩尺虛耎知非實火奔迫乃虛炎泛上然虛症之中又有脾腎之分脾虛者氣常下陷法當升舉腎虛者氣常上僭又當補斂今真陰衰耗孤陽無依須滋坎之陰以抑離之亢乃為正治方以熟地四錢丹皮山萸各二錢麥冬錢半五味三分黃柏七分牛膝一錢煎成加童便一杯服四帖而虛火乃退左足遂涼參戎王麗堂夫佞佛長齋性躁多怒腹脹累年曆用湯丸全無奏效延予治時腹大臍突青筋環現兩脅更甚喘滿難臥此係怒氣傷肝坤宮受制之證前醫但知平肝之法未知補肝之用所以甲膽氣衰沖和暗捐清陽不升濁氣不降壅滯中州脹勢更增殊不知肝木自甚則肝亦自傷不但中土虛衰已也法當調脾之中兼以疏肝之品使肝木調達則土自發育耳擬方用蒼朮白朮各錢半白芍廣皮香附茯苓各一錢肉桂木香生薑皮各五分服後頓覺腹向脹寬喘平臥安後加人參調理而今瘥
상국 문담지가 좌춘방에 있을 때 왼발 아래에서 한 줄기 불이 곧장 회염으로 치밀어 목구멍을 태우는 병을 앓았다. 반드시 어깨를 몇 차례 들어야 화기가 조금 물러났으나 잠시 뒤 다시 왔다. 누군가 보중익기에 육계를 더하였더니 더욱 심하여 부친께 치료를 구하였다. 양쪽 척맥이 허하고 연하여 실화가 치미는 것이 아니라 허한 불꽃이 위로 넘치는 것임을 알았다. 그러나 허증 가운데도 비와 신의 구별이 있어 비허는 기가 늘 아래로 처지므로 올려야 하고 신허는 기가 늘 위로 넘으므로 보하고 수렴해야 한다. 지금 진음이 소모되어 고양이 의지할 데 없으므로 감의 음을 길러 리의 항성함을 억제하는 것이 정치이다. 숙지 4돈, 단피·산수유 각 2돈, 맥동 1돈 반, 오미 3푼, 황백 7푼, 우슬 1돈을 달여 동변 한 잔을 넣어 네 첩 복용하니 허화가 물러나고 왼발이 서늘해졌다. 참융 왕여당의 부인은 불교를 깊이 믿어 오래 채식하고 성급하며 분노가 많아 복창을 여러 해 앓았다. 탕환을 두루 써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 내가 치료할 때는 배가 크고 배꼽이 튀어나오며 푸른 힘줄이 둘레에 드러나고 양쪽 옆구리는 더욱 심하며 숨차고 그득하여 눕기 어려웠다. 이는 분노가 간을 상하여 곤궁이 제약된 증이다. 앞의 의사는 간을 평하게 하는 법만 알고 보간의 작용은 몰라 갑담의 기가 쇠하고 충화가 모르는 사이 줄어 청양이 오르지 않고 탁기가 내려가지 않아 중주에 막혀 창만이 더욱 심해졌다. 간목이 스스로 지나치면 간도 스스로 상하니 중토만 허약해지는 것이 아님을 몰랐다. 비를 조절하는 가운데 소간약을 겸하여 간목이 잘 퍼지면 토가 저절로 발육하게 해야 한다. 창출·백출 각 1돈 반, 백작·광피·향부·복령 각 1돈, 육계·목향·생강피 각 5푼을 썼다. 복용 뒤 곧 복창이 느슨해지고 숨이 고르며 편히 누웠고 뒤에 인삼을 더해 조리하여 완전히 나았다.
休寧汪振先夫人受孕八月胎前勞瘵肉削肌瘦環口黧黑舌色紅潤飲食如常六脈滑利狀若無病予曰九候雖調形肉已脫法在不治所賴者胎元活潑真陰未散線息孤陽依附丹田譬之枯楊生花根本已撥胎前尚有生機恐五十日後雖有神丹總難回挽蓋分娩之時榮衛俱離百節開張況處久病之軀當此痛苦之境恐元神無依陰陽決絕僅陳軀殼而生氣杳然豈能再延耶越二月果子存母歿
휴녕 왕진선의 부인은 임신 8개월에 산전 노채로 살이 깎이고 여위며 입 둘레가 검었으나 혀는 붉고 윤택하고 음식은 평소와 같으며 육맥이 활리하여 병이 없는 듯하였다. 나는 구후가 고르더라도 형체와 살이 이미 탈하면 불치이며, 의지하는 것은 태원이 활발하여 진음이 흩어지지 않고 한 줄기 숨의 고양이 단전에 붙어 있는 것뿐이라고 하였다. 마른 버드나무에 꽃이 피는 것 같아 뿌리가 이미 뽑혔으니 산전에는 아직 생기가 있지만 50일 뒤에는 신단이 있어도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분만할 때는 영위가 모두 흩어지고 온 관절이 벌어지는데 오래 병든 몸이 이런 고통을 맞으면 원신이 의지할 데 없어 음양이 끊겨 껍데기만 남고 생기가 아득해질 터이니 어찌 더 살겠는가. 두 달 뒤 과연 아이는 살고 어머니는 죽었다.
青溪何伊祥之內患吞酸已二十餘載矣因病隨年長復加恚怒胸膈否塞狀若兩截食入即反肢體浮腫治者非破氣消導即清痰降火投劑累百未獲稍安邀予治之左三部弦大空虛右寸關沉而帶澀乃苦寒傷胃清陽下陷之徵也蓋胃司納受脾主運動胃虛則三陽不行脾弱則三陰不化致倉稟閉塞賁門阻滯奚能化導槽粕轉輸出入乎況氣者升於脾而降於胃運用不息流行上下者今胸膈氣噎乃氣虛而滯非氣實而滿如誤認有餘之象妄施攻伐之方不特無補於脾而反損於胃所以投劑愈多而病勢愈劇也立方用六君子加炮姜官桂先將代赭石一兩槌未和入清泉取水煎藥才服入口覺胸宇不寧忽然有聲隔絕隧道食亦不吐或云胃虛而用六君子此千古正治毋庸議論如代赭石治法今人未聞願領其詳予曰醫者意也代赭系代郡之土稟南離之色能生養中州腳胃屬土土虛即以土補乃同氣相求之義也
청계 하이상의 아내는 탄산을 20여 년 앓았다. 병이 나이와 함께 오래되고 분노까지 더해져 흉격이 막혀 두 동강 난 듯하고 음식이 들어가면 도로 나오며 팔다리가 부었다. 치료자는 파기소도 아니면 청담강화를 하여 수백 제를 써도 조금도 편해지지 않아 나를 불렀다. 왼쪽 세 부위는 현대하고 속이 비었으며 오른쪽 촌관은 침하면서 삽하여 고한이 위를 상하고 청양이 아래로 처진 징후였다. 위는 받아들이고 비는 운행을 맡으므로 위가 허하면 삼양이 움직이지 않고 비가 약하면 삼음이 변화시키지 못하여 창름이 닫히고 분문이 막히니 어찌 찌꺼기를 소화하고 출입을 운반하겠는가. 또 기는 비에서 오르고 위에서 내려 쉬지 않고 위아래로 흐른다. 지금 흉격에 기가 막힌 것은 기허로 정체한 것이지 기실로 그득한 것이 아니다. 유여한 모습으로 잘못 알아 공격하는 처방을 함부로 쓰면 비에 도움이 없을 뿐 아니라 위를 해치므로 약을 많이 쓸수록 병이 심해진다. 육군자에 포강·관계를 더하고 먼저 대자석 1냥을 가루 내 맑은 샘물에 섞어 그 물로 약을 달였다. 막 입에 넣자 가슴이 불안하더니 갑자기 소리가 나며 막힌 통로가 풀리고 음식도 토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위허에 육군자를 쓰는 것은 천고의 정치라 논의할 필요가 없으나 대자석 치료법은 요즘 듣지 못했다며 자세히 묻기에, 의란 뜻이며 대자석은 대군의 흙으로 남방 리의 빛을 받아 중주를 기를 수 있고 비위는 토에 속하니 토허에 토로 보하는 것은 동기가 서로 구하는 뜻이라고 하였다.
居君顯子舍青年患癧因睡中驚醒即口眼歪斜嚼舌流血四肢搐搦學家驚異邀醫用治痰不效干予診視因其抽掣不常難以候脈但望面色黃中現青搐搦之勢左甚於右經日東方屬青入通於肝其病為驚駭況乎久患瘰瀝則肝膽之氣嘗譏於外而陰血不榮於內偶因夢中驚駭觸動肝火火旺而風生風生而搖動此自然之理也且四肢為胃土之末口目乃胃脈所過木氣搖土所以喎斜瘛瘲夫舌屬心脾齒屬陽明陽明氣盛則口噤心脾氣盛則舌挺一挺一噤故令嚼舌宜用平肝之品佐以驅風清火遂用二陳湯加山梔枳殼鉤藤羌活防風一劑而諸苦若失
거군현의 젊은 아들이 나력을 앓다가 잠에서 놀라 깬 뒤 입과 눈이 비뚤어지고 혀를 깨물어 피를 흘리며 팔다리가 경련하였다. 집안이 놀라 의사를 불러 담을 치료하였으나 효과가 없어 나에게 진찰을 청하였다. 경련이 일정하지 않아 맥을 짚기 어려웠고 얼굴빛이 누런 가운데 푸르며 경련이 오른쪽보다 왼쪽이 심한 것만 보았다. 경에서 동방은 청색에 속하여 간에 통하고 그 병은 놀람이라고 하였다. 오래 나력을 앓아 간담의 기가 늘 밖으로 흩어지고 음혈이 안을 기르지 못한 데 우연히 꿈에서 놀라 간화를 움직였으니 화가 왕성하여 풍이 생기고 풍이 생겨 흔들리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사지는 위토의 말단이고 입과 눈은 위맥이 지나므로 목기가 토를 흔들어 비뚤어지고 경련한다. 혀는 심비에 속하고 이는 양명에 속하므로 양명기가 성하면 입을 악물고 심비기가 성하면 혀가 뻗는다. 하나는 뻗고 하나는 악물기 때문에 혀를 깨무는 것이다. 간을 평하게 하는 약에 거풍·청화를 보좌해야 하므로 이진탕에 산치·지각·구등·강활·방풍을 더하니 한 제에 여러 고통이 사라졌다.
江右李太宰諱日宣有如夫人自耳至脅忽結核成塊偏延瘍科均以瘦愈治之反增發熱體瘦口燥唇乾飲食少進迎家君往診脈左關芤而無力此肝血枯竭不能榮養諸筋故筋脈攣縮有似瘰癧而實非也若以敗毒清火消痰化堅之劑投之則胃氣轉傷變症百出矣當滋養肝血以濡潤筋脈為要方用四物湯加丹皮玉竹秦艽麥冬等劑不數服而痊
강우의 태재 이일선에게 여부인이 있었는데 귀에서 옆구리까지 갑자기 결핵이 덩어리졌다. 양과 의사를 두루 불러 모두 나력으로 치료하였으나 도리어 열이 나고 몸이 여위며 입과 입술이 마르고 음식이 줄었다. 부친을 불러 진찰하니 왼쪽 관맥이 규하며 무력하여 간혈이 고갈되어 여러 근을 기르지 못하므로 근맥이 오그라든 것이었다. 나력과 비슷하나 실은 아니었다. 패독청화·소담화견하는 약을 주면 위기가 더욱 상하여 변증이 온갖 모양으로 나타나므로 간혈을 길러 근맥을 적시는 것이 요점이었다. 사물탕에 단피·옥죽·진교·맥동 등을 더하니 몇 번 복용하지 않아 나았다.
內卿令喬殿史次君自幼腹痛諸醫作火治氣治積治數年不愈後以理中建中相間而服亦不見效特延予治六脈微弦面色青黃予曰切脈望色咸屬肝旺凌脾故用建中以建中焦之氣俾脾胃治而肝木自和誠為合法宜多服為重於畫或甚於夜或飢餓而發或飽逸而止治皆不同殿史曰方飲食下咽便作疼痛得大便後氣覺稍快若過飢則痛交陰分則貼然予曰我得之矣曏者所用小建中亦是治本之方但藥酸寒甘飴發滿所以無效賢郎尊恙緣過飢而食食必太飽致傷脾胃失運用之職故得肝旺凌脾之候所謂源同而流異者是也今以六君子湯加山查麥芽肋其建運之機令無壅滯之患則痛自愈也服二劑而痛果止所以醫貴精詳不可草草
내경령 교전사의 둘째 아들은 어려서부터 복통하여 여러 의사가 화·기·적을 치료하였으나 여러 해 낫지 않았고 뒤에 이중과 건중을 번갈아 복용해도 효과가 없어 특별히 나를 불렀다. 육맥은 약간 현하고 얼굴빛은 청황색이었다. 나는 맥과 색이 모두 간왕이 비를 업신여긴 데 속하므로 건중으로 중초의 기를 세워 비위가 다스려지면 간목이 저절로 조화롭게 하는 것은 참으로 합당하니 많이 복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낮에 심한지 밤에 심한지, 배고플 때 생기는지 배부르고 편할 때 그치는지에 따라 치료가 모두 다르다고 하였다. 전사는 음식이 목을 넘어가면 곧 아프고 대변을 본 뒤 기가 조금 시원하며 지나치게 배고프면 아프고 밤이 되면 편안하다고 하였다. 나는 알겠다고 하였다. 앞서 쓴 소건중도 근본을 치료하는 처방이지만 약이 시고 차며 단 엿이 그득함을 일으키므로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아들의 병은 지나치게 굶었다가 너무 배불리 먹어 비위를 상하고 운행의 직책을 잃어 간왕이 비를 업신여기는 증을 얻었으니 근원은 같고 흐름은 다른 것이다. 이제 육군자탕에 산사·맥아를 더하여 건운의 기틀을 돕고 막힘을 없애면 통증이 저절로 낫는다. 두 제에 과연 통증이 멎었으니 의술은 정밀하고 상세해야 하며 소홀해서는 안 된다.
庠生範嘯凡令正向患頭眩症六脈浮滑服消痰順氣之藥略無效驗予曰無痰不眩此雖古語然痰之標在脾而其本屬腎素問曰頭痛巔疾下虛上實此之誚也夫肝為乙木之本腎為癸水之源腎陰不充肝火便發上動於巔而眩作也治法以扶脾為主脾安則木自和而肺金有養金為水母而子亦不虛何而瘥
상생 범소범의 부인은 예전부터 머리가 어지러웠고 육맥이 부활하였으나 소담순기약은 조금도 효과가 없었다. 나는 담이 없으면 현훈이 없다는 것은 옛말이지만 담의 표는 비에 있고 본은 신에 속한다고 하였다. 《소문》의 두통과 전질은 아래가 허하고 위가 실하다는 말이 이것이다. 간은 을목의 근본이고 신은 계수의 근원이라 신음이 충실하지 않으면 간화가 발하여 위로 머리 꼭대기를 움직여 현훈이 생긴다. 치료는 비를 돕는 것이 주가 되어야 하니 비가 편안하면 목이 저절로 조화롭고 폐금이 길러지며 금은 수의 어머니라 자도 허하지 않게 된다. 그리하여 나았다.
周浦顧公鼎慕夜遭刦左半身自頭至足計傷三十七刀流血幾干筋骨斷折百日以來濃血淋瀝肉腐皮黑痛苦不堪不能轉側專科俱用滋陰養血止痛生肌反凝滯胃口妨礙賁門致飲食厭惡瘡口開張乞予救療左寸關部位刀傷瀝瀝膿水迸流大都虛微不堪尋按耳蓋虛為陰傷微為陽弱陰陽失職榮衛空虛氣血衰殘肌肉滑爛靈樞云衛氣者所以溫分肉而充皮毛肥腠理而司開闔故瘡口不收皆由衛氣散失不能收斂耳即有流膿宿血內藏其穴能使陽和生動火氣周流自然膿收瘡斂長肉生肌旬月之間可許步履如初觀者咸駭予言為遷為此危重不過苟延時日安得無恙如果回春則先生非李乃呂先生也遂力擔承用養營湯大劑服二十帖瘡口盡斂飲食亦進至百帖即能起坐復用藥酒及還少丹出入加減四五月後可以倚杖行步越明年便能卻杖迄今榮壯勝常此亦偶然不可多得
주포의 고공정이 저녁에 강도를 만나 왼쪽 반신의 머리에서 발까지 모두 37군데 칼을 맞아 피가 거의 마르고 근골이 끊어졌다. 100일 동안 고름과 피가 줄줄 흐르고 살이 썩고 피부가 검어 고통이 견딜 수 없으며 돌아눕지 못하였다. 전문의들은 모두 자음양혈·지통생기약을 썼으나 도리어 위구를 막고 분문을 방해하여 음식을 싫어하고 창구가 벌어져 나에게 구해 달라 하였다. 왼쪽 촌관 부위도 칼에 다쳐 고름물이 계속 쏟아졌으며 맥은 대체로 허미하여 깊이 짚기 어려웠다. 허는 음의 손상이고 미는 양의 약함으로 음양이 직책을 잃고 영위가 비며 기혈이 쇠하여 살이 무르고 썩은 것이다. 《영추》는 위기가 분육을 따뜻하게 하고 피부와 털을 충실하게 하며 주리를 살찌우고 개합을 맡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창구가 아물지 않는 것은 모두 위기가 흩어져 수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름과 묵은 피가 구멍 안에 있어도 양화가 생동하고 화기가 두루 흐르게 하면 저절로 고름이 거두어지고 창이 아물며 살이 자라 한 달 남짓 사이에 처음처럼 걸을 수 있다고 하였다. 보는 사람들이 내 말이 우활하다며 이런 위중한 병은 시일이나 겨우 연장할 뿐 어찌 무사하겠느냐고 하였다. 과연 회춘하면 선생은 이 선생이 아니라 여 선생이라고 하였다. 나는 힘써 맡아 양영탕을 대량으로 주니 20첩에 창구가 모두 아물고 음식도 늘었으며 100첩에 일어나 앉을 수 있었다. 다시 약주와 환소단을 가감하여 4~5개월 뒤 지팡이에 의지해 걷고 이듬해에는 지팡이를 버렸다. 지금도 평소보다 튼튼하니 이 또한 우연으로 쉽게 얻을 수 없는 일이다.
大場張公享內正年逾四句傷子悲憫崩湧如泉用四物膠艾或增棕櫚棉灰毫不可遏醫頗明義理論陽生陰長無陽則陰不能生用補中益氣以調脾培本勢雖稍緩然半載以來仍數日一崩大如拳塊徹夜不臥胸膈脹滿勢甚危殆邀予診視面色青黃唇爪失澤四肢麻木遍體痠疼六脈芤虛時或見澀此病久生郁大虛挾寒之象夫脾喜歌樂而惡憂思喜溫燥而怨寒濕若投膠艾止澀之劑則隧道壅塞而鬱結作矣若專用升柴提舉之法則元氣衰耗而生髮無由也乃以歸脾湯加益智炮姜大劑與服四帖而勢緩便能夜寐胸膈頓寬飲食增進調理兩月天癸始正記前後服人參十六觔貧者奈河
대장의 장공향 부인은 마흔을 넘어 자식을 잃은 슬픔으로 샘처럼 혈붕하였다. 사물·교애를 쓰고 종려·면회를 더해도 조금도 막지 못하였다. 의사는 이치를 제법 알아 양이 생겨야 음이 자라고 양이 없으면 음이 생기지 못한다고 하여 보중익기로 비를 조절하고 근본을 길렀다. 기세는 조금 줄었으나 반년 동안 여전히 며칠마다 한 번씩 주먹만 한 덩어리로 혈붕하고 밤새 자지 못하며 흉격이 그득하여 매우 위태로워 나를 불렀다. 얼굴빛은 청황색이고 입술과 손톱은 윤기를 잃었으며 팔다리가 마목하고 온몸이 시큰하며 육맥이 규허하고 때로 삽하여 오래 병들어 울체가 생기고 크게 허하면서 한을 낀 모습이었다. 비는 노래와 즐거움을 좋아하고 근심과 생각을 싫어하며 온조를 좋아하고 한습을 꺼린다. 교애와 지삽약을 주면 통로가 막혀 울결이 생기고 승마·시호로 들어 올리기만 하면 원기가 쇠하여 생발할 수 없다. 귀비탕에 익지·포강을 더해 대량으로 주니 네 첩에 기세가 줄고 밤에 자며 흉격이 곧 넓어지고 음식이 늘었다. 두 달 조리하니 천계가 비로소 정상으로 돌아왔다. 앞뒤로 인삼 16근을 복용하였으니 가난한 사람은 어찌하겠는가.
檇李孝廉沈天生夫人血崩不止勢如湧泉醫謂血熱則行血寒則止四物加芩柏等劑兩晝夜不減延家君往治診其脈息安靜全無病象肌體清癯原非壯實知為脾胃氣虛不能攝血苦寒雜進反以潛消陽氣須用甘溫之品以回生長之令乃以補中益氣湯加阿膠炮姜大補脾元升舉陽氣二劑而崩止以後調理漸安
취리의 효렴 심천생 부인은 혈붕이 샘처럼 멎지 않았다. 의사는 혈이 뜨거우면 흐르고 차면 멎는다 하여 사물에 황금·황백 등을 더하였으나 이틀 밤낮 줄지 않아 부친을 불러 치료하게 하였다. 맥은 안정되어 병의 모습이 전혀 없었고 몸은 여위어 본래 건장하지 않았으므로 비위의 기허로 혈을 거두지 못하는 것으로 알았다. 고한약을 뒤섞어 주면 도리어 양기를 모르게 소모하니 감온한 약으로 생장의 명령을 되돌려야 한다. 보중익기탕에 아교·포강을 더하여 비원을 크게 보하고 양기를 올리니 두 제에 혈붕이 멎었고 뒤에 조리하여 점차 안정되었다.
河間司李朱思皇長公令方夫人坐孕七月胎睡異常喘急不能言並不能臥者月餘舉家徬徨投藥甚亂一醫用人參白朮以實脾一醫改用商陸葶藶以潤肺相去天淵益增疑思邀予決言予曰此症似危脈幸洪滑產前可保無慮即應分娩之後頗費周旋耳舍前兩治余不過一二劑便狨安枕矣座中訝出言之易各言辨駁予據理折之日胃為清陽之海肺為元氣之龠故呼吸升于丹田清濁輸化賴於中土若平素膏粱太過則中州積熱況胎孕內結則相火有餘至六七月以來肺胃用事胎漸成大故胎氣愈逼而火愈旺湊逆於上喘呼不臥名曰子懸者是也茲用參朮丫補則肺氣壅塞若用葶藶苦寒則胃氣孤危均致變症蜂起豈非實實虛虛之患乎疏方用蘇梗枳殼腹皮各三錢茯苓陳皮半夏各錢半甘草五分生薑三片一帖便能言再劑則安臥合門信為神丹余曰無歡也胎前喘急藥石易療恐臨盆在邇其喘復生雖靈丹在握不能為也須預備奇策調護真元不致臨產渙散乃可萬全不數日產一子甚覺強健越兩日喘果復作驚呆無措進食亦減常時此胃土虛而不能生金之象以大劑參朮苓草五味肉桂數劑乃安
하간의 사리 주사황의 맏아들 아내 방씨는 임신 7개월에 태로 인한 부종이 심하고 숨이 급하여 말하지 못하며 눕지도 못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온 집안이 당황하여 약을 매우 어지럽게 주었다. 한 의사는 인삼·백출로 비를 실하게 하고 다른 의사는 상륙·정력으로 폐를 윤택하게 하니 하늘과 땅 차이여서 더욱 의심하여 나를 불러 결정하게 하였다. 나는 증은 위태로운 듯하나 다행히 맥이 홍활하므로 산전은 염려 없이 보전할 수 있지만 분만 뒤에는 상당히 힘이 들겠다고 하였다. 앞의 두 치료를 버리면 나는 한두 제로 편히 눕게 할 수 있다고 하니 좌중에서 쉽게 말한다고 놀라 각자 반박하였다. 나는 이치로 논박하였다. 위는 청양의 바다이고 폐는 원기의 풀무라 호흡은 단전에서 오르며 청탁의 운반과 변화는 중토에 의지한다. 평소 기름진 음식을 지나치게 먹으면 중주에 열이 쌓이며 태가 안에 맺히면 상화가 유여하다. 6~7개월에는 폐위가 일을 맡고 태가 점차 커지므로 태기가 더욱 압박하고 화가 더욱 왕성하여 위로 치밀고 숨차서 눕지 못하니 이를 자현이라 한다. 인삼·백출로 보하면 폐기가 막히고 정력의 고한을 쓰면 위기가 외롭고 위태로워져 모두 변증을 벌떼처럼 일으키니 실한 것을 실하게 하고 허한 것을 허하게 하는 해가 아니겠는가. 소경·지각·복피 각 3돈, 복령·진피·반하 각 1돈 반, 감초 5푼, 생강 3쪽을 썼다. 한 첩에 말할 수 있고 두 제에 편히 누워 온 집이 신단으로 믿었다. 나는 기뻐하지 말라며 산전의 천급은 약으로 쉽게 치료하지만 출산이 가까워 다시 생기면 영단을 쥐고 있어도 어찌하지 못할까 두렵다고 하였다. 미리 특별한 계책을 준비하여 진원을 조호하고 출산 때 흩어지지 않게 해야 만전이다. 며칠 뒤 아들을 낳고 매우 건장해 보였으나 이틀 뒤 과연 천증이 재발하여 놀라 어쩔 줄 몰랐고 식사도 평소보다 줄었다. 이는 위토가 허하여 금을 생기게 하지 못하는 모습이므로 인삼·백출·복령·감초·오미·육계를 대량으로 몇 제 써서 안정되었다.
歙人方李生儒人向患左脅疼痛服行氣逐血之劑反加嘔逆甚至勺水難容脈左沉右洪明屬怒動肝火來海脾陰過投峻藥轉傷胃氣俾三陰失職倉廩無由而化五陽衰憊傳道無由而行所以中脘不通食反上湧斯理之自然毋容議也方以異功散加白芷肉桂於土中瀉水並禁與飲食用黨參五錢陳倉米百餘粒陳皮一錢生薑三錢加伏龍肝水三碗煎耗一半飢時略飲數口二三日後方進稀粥庶胃氣和而食不自嘔依法而行果獲奇效
흡 사람 방이생의 유인은 예전부터 왼쪽 옆구리가 아팠는데 행기축혈약을 먹고 도리어 구역이 심해져 한 숟가락의 물도 받지 못하였다. 맥은 왼쪽이 침하고 오른쪽이 홍하여 분노가 간화를 움직여 비음을 해친 것이 분명하였다. 준렬한 약을 지나치게 주어 위기를 더욱 상하게 하였으므로 삼음이 직책을 잃어 창름의 음식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오양이 쇠하여 전달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중완이 통하지 않고 음식이 도리어 치미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로 논의할 필요가 없다. 이공산에 백지·육계를 더하여 토 가운데서 수를 사하고 음식을 주지 못하게 하였다. 당삼 5돈, 묵은 창고 쌀 100여 알, 진피 1돈, 생강 3돈에 복룡간수 3사발을 넣어 절반으로 달여 배고플 때 몇 모금씩 마시게 하였다. 2~3일 뒤에야 묽은 죽을 주어 위기가 조화로워지면 음식을 저절로 토하지 않게 하였다. 법대로 하니 과연 기이한 효과를 얻었다.
柯靄寧患吐血後咳嗽連聲氣喘吐沫日哺潮熱服四物知柏後兼服蘇子貝母百部丹皮之屬病勢轉劇乞予治之六脈芤耎兩足浮數知為陰枯精竭而孤陽氣浮俾肺金之氣不能歸納丹田壯火之勢得以遊行清道所以嬌臟受傷喘嗽乃發理應六味丸加五味沉香導火歸源但脾氣不實乃先以人參白朮黃耆山萸山藥各一錢五分石斛丹皮各一錢五味子念一粒肉桂五分服數十帖大便始實改用前方調養月餘咳嗽亦瘥後三年前病復發信用苦寒遂至不起
가애녕은 토혈 뒤 기침이 이어지고 숨차며 거품을 토하고 해질 무렵 조열이 있었다. 사물·지백을 먹은 뒤 소자·패모·백부·단피 등을 겸하여 병이 더욱 심해져 나에게 치료를 청하였다. 육맥은 규하고 연하며 두 척맥은 부삭하여 음이 마르고 정이 고갈되어 고양의 기가 뜬 것임을 알았다. 폐금의 기가 단전으로 돌아가 납입되지 못하고 장화가 청도를 돌아다녀 연약한 장을 상하므로 천수하는 것이다. 마땅히 육미환에 오미·침향을 더해 화를 근원으로 이끌어야 하나 비기가 튼튼하지 않아 먼저 인삼·백출·황기·산수유·산약 각 1돈 5푼, 석곡·단피 각 1돈, 오미자 21알, 육계 5푼을 썼다. 수십 첩을 먹어 대변이 비로소 단단해진 뒤 앞의 처방으로 바꾸어 한 달 남짓 조양하니 기침도 나았다. 3년 뒤 앞의 병이 재발하였는데 고한약을 믿고 쓰다가 끝내 일어나지 못하였다.
云間田二府封翁久瀉肉脫少腹疼痛飲食下咽泊泊有聲才入賁門而魄門已滲出矣或以湯藥厚脾或以丸散實腸毫不見效幾瀕於危召予力救望其色印堂年壽夭而不澤切其脈氣口六部細弱無神則知清陽不升原陰下陷非但轉輸失職將見閉藏傾敗矣蓋腎者胃之關也脾之母也後天之氣土能制先天之氣腎可生脾良由坤士是離火所生而良木又屬坎水所生耳故飲食入胃如水穀在釜雖同脾土以腐熟亦必藉少火以生氣猶上萬物雖始於土皆從陽氣而生長彼生生化化之氣悉屬於一點元陽所謂四大一身皆屬金不知何物是陽精也惟命門火衰丹田氣冷使脾臟不能運行精微腸胃不能傳化水穀三焦無出納之權五陽乏敷布之導升騰精華反趨下陷故曰瀉久亡陰下多亡陽陰陽根本悉歸骨中若徒知補脾而不能補腎是未明隔二之治也宜用辛熱之品暖補下焦甘溫之劑資培中上譬之爐中加火而丹易盛燈內添油而燃不息真有水中火發雪裡花開之妙何慮寒谷之不回春耶遂用人參白朮炮姜炙甘草熟附子煎成調赤石於末三錢與服漸覺平安十劑而痛止泄減面色潤澤飲食增進不一月而全愈乃蒙賜顧繾綣竟日而去越明年春田公覲還父子重逢喜出望外不意過食瓜果前症復發竟難挽回卒於仲夏庚寅日可見木旺凌脾之驗毫髮不爽也
운간의 전 이부의 봉옹은 오래 설사하여 살이 빠지고 아랫배가 아프며 음식이 목을 넘어가면 콸콸 소리가 나고 분문에 들어가자마자 항문에서 새어 나왔다. 탕약으로 비를 두텁게 하거나 환산으로 장을 실하게 해도 효과가 전혀 없어 거의 위태로워 나를 불러 구하게 하였다. 인당과 연수의 빛이 어둡고 윤기가 없고 기구의 여섯 맥이 세약하고 신이 없어 청양이 오르지 않고 원음이 아래로 처진 것을 알았다. 운반이 직책을 잃었을 뿐 아니라 닫아 저장하는 기능이 무너지려 하였다. 신은 위의 관문이며 비의 어머니이다. 후천의 기는 토가 제어하고 선천의 기는 신이 비를 생기게 할 수 있으니 곤토는 리화에서 생기고 간목은 감수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음식이 위에 들어가는 것은 수곡이 솥에 있는 것과 같아 비토가 부숙하더라도 반드시 소화로 기를 만들어야 한다. 만물이 토에서 시작하더라도 모두 양기에 따라 자라는 것과 같으며 끊임없이 생화하는 기는 모두 한 점의 원양에 속한다. 이른바 사대와 한 몸은 모두 금에 속하되 무엇이 양정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명문 화가 쇠하고 단전 기가 차면 비장이 정미를 운행하지 못하고 장위가 수곡을 전달·변화시키지 못하며 삼초가 출납 권한을 잃고 오양이 퍼뜨리는 인도를 잃어 올라야 할 정화가 도리어 아래로 처진다. 그러므로 오래 설사하면 음을 잃고 많이 내리면 양을 잃는다고 하며 음양의 근본은 모두 골중으로 돌아간다. 비를 보하는 것만 알고 신을 보하지 못하면 두 단계를 건너 치료하는 법을 모르는 것이다. 신열약으로 하초를 따뜻하게 보하고 감온약으로 중·상초를 길러야 한다. 화로에 불을 더하면 단이 쉽게 이루어지고 등잔에 기름을 더하면 계속 타는 것과 같아 물속에서 불이 나고 눈 속에 꽃이 피는 묘함이 있으니 찬 골짜기에 봄이 돌아오지 않음을 어찌 염려하겠는가. 인삼·백출·포강·자감초·숙부자를 달여 적석지 가루 3돈을 타서 주니 점차 편안해졌다. 10제에 통증이 멎고 설사가 줄며 얼굴이 윤택해지고 음식이 늘었으며 한 달 안에 완전히 나았다. 은혜롭게 찾아와 종일 정을 나누고 돌아갔다. 이듬해 봄 전공이 조회에서 돌아와 부자가 재회하여 뜻밖의 기쁨을 얻었으나 과일을 지나치게 먹어 앞의 증이 재발하고 끝내 돌이키지 못하여 한여름 경인일에 죽었다. 목왕이 비를 업신여기는 증험이 조금도 어긋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庠生奚易思令正發熱腹痛嘔惡不食六脈沉鬱面黑如薰用解鬱調中之劑前症漸愈若感怒氣應必復發半載以來形神憔悴小便澀痛小腹重墜延予治之予曰癥瘕痞塊多屬中脘發則形象可求痃癖兩症貼在臍旁發則攻衝而痛數症皆水道通利者也今小水澀滯少腹重墜必身皮甲錯繞臍生瘡此係下焦肝火久郁不舒已成小腹癰也非予專門應瘍科調治庶可奏效延醫治之果如予言越數日而癰潰膿色稠紫服托裡養榮等劑月餘而康
상생 해역사의 부인은 발열과 복통, 구역으로 먹지 못하고 육맥이 침울하며 얼굴이 그을린 듯 검었다. 해울조중약으로 앞의 증은 점차 나았으나 성을 내면 반드시 재발하였다. 반년 동안 형체와 정신이 초췌해지고 소변이 잘 나오지 않고 아프며 아랫배가 무겁게 처져 나를 불렀다. 나는 징가·비괴는 대개 중완에 속하여 생기면 형상을 찾을 수 있고 현·벽 두 증은 배꼽 옆에 붙어 발하면 치밀고 아프나 모두 소변은 통한다고 하였다. 지금 소변이 막히고 아랫배가 무겁게 처지므로 반드시 몸의 피부가 갑각처럼 거칠고 배꼽 둘레에 창이 생길 것이다. 이는 하초의 간화가 오래 울체되어 풀리지 않아 이미 소복옹이 된 것으로 내 전문이 아니니 양과에서 조치해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 하였다. 의사를 불러 치료하니 과연 내 말과 같아 며칠 뒤 옹이 터지고 고름이 짙은 자주색이었다. 탁리양영 등의 약을 한 달 남짓 먹고 건강해졌다.
除敬山傷寒鬱熱過經不解愈後食復譫語神昏剌高胎黑耳襲加愚六脈洪大此陽明胃熱血化為斑之狀乃燃燈照其胸腹果紫斑如綠豆大者期如列足但未全透於肌表宜清胃解毒使斑點透露則神清熱減矣用竹葉石膏湯二劑壯熱頓退斑勢掀發但昏呆愈甚厲聲呼之亦不醒覺將身掀動全無活意惟氣尚未絕俱云死矣予復診其脈兩手皆在不過虛微耳蓋此症始因胃熱將腐先用寒涼以解其客邪今邪火雖退正氣獨孤故兩目緊閉僵如死狀急用補胃之劑以醒胃脘真陽生機自回也即以生脈散合四君子湯一劑至夜半而兩目能視乃索米粥以後訓理漸安
제경산은 상한의 울열이 경을 지나도 풀리지 않았고 나은 뒤 식복하여 헛말하고 정신이 흐리며 혀의 가시가 높고 태가 검으며 귀가 먹고 더욱 멍해졌다. 육맥이 홍대하여 양명 위열로 혈이 반점이 되려는 모습이었다. 등불로 가슴과 배를 비추니 과연 녹두만 한 자주색 반점들이 줄지어 있었으나 아직 피부 겉으로 완전히 나오지 않았다. 위를 맑히고 해독하여 반점이 드러나면 정신이 맑아지고 열이 줄 것이다. 죽엽석고탕 두 제에 큰 열이 곧 물러나고 반점이 솟아났으나 혼미함이 더 심하여 큰 소리로 불러도 깨어나지 않고 몸을 흔들어도 살아 있는 기색이 없으며 숨만 끊어지지 않아 모두 죽었다고 하였다. 다시 맥을 보니 두 손에 모두 있고 허미할 뿐이었다. 이 증은 처음 위열이 썩으려 하여 한량으로 객사를 풀었으나 이제 사화는 물러나고 정기만 외로워진 까닭에 두 눈을 꼭 감고 죽은 듯 뻣뻣한 것이다. 급히 위를 보하는 약으로 위완의 진양을 깨우면 생기가 저절로 돌아온다. 생맥산에 사군자탕을 합하여 한 제를 주니 밤중에 두 눈으로 볼 수 있고 쌀죽을 찾았으며 뒤에 조리하여 점차 안정되었다.
妻祖黃含美庚辰會試患傷寒劇甚時家君薄遊都門乃與診視舌黑剌高壯熱妄語神思昏沉奄奄一息此為邪熱內甚亢陽外焚臟腑燔灼血隨沸騰斑將出矣遂用生地丹皮元參麥冬黃連知母甘草一劑而斑現再劑而神清三劑而舌剌如洗矣
아내의 조부 황함미가 경진년 회시 때 상한을 매우 심하게 앓았다. 당시 부친께서 도성에 잠시 머물다 진찰하니 혀가 검고 가시가 높으며 큰 열과 망언, 혼침으로 숨이 끊어질 듯하였다. 이는 사열이 속에서 심하고 항성한 양이 겉에서 타올라 장부가 타고 혈이 끓어 반점이 나오려는 것이었다. 생지·단피·원삼·맥동·황련·지모·감초를 쓰니 한 제에 반점이 드러나고 두 제에 정신이 맑아지며 세 제에 혀의 가시가 씻은 듯 없어졌다.
燕京禮垣房之麟患傷寒五日病勢困殆伊親在太醫院者七人莫能措手延家君治之脈人迎緊盛右關洪大神思若狂舌胎微黑此邪熱拂鬱神思昏憒而如狂亢陽煽熾火極似水而舌黑炎炎蘊隆將成燎原若非涼血火將焚矣視其胸腹果有紅斑遂用化斑清火一服頓愈
연경 예원의 방지린이 상한 5일째 매우 위태로웠다. 친족 중 태의원에 있는 일곱 사람도 손을 쓰지 못하여 부친을 불렀다. 인영맥은 긴성하고 오른쪽 관맥은 홍대하며 정신이 미친 듯하고 설태가 조금 검었다. 사열이 울체하여 정신이 혼미하므로 미친 듯하고 항성한 양이 타올라 화가 극하면 수와 비슷해져 혀가 검은 것이었다. 뜨거움이 쌓여 들판을 태우려 하니 양혈하지 않으면 불에 탈 것이다. 가슴과 배를 살피니 과연 붉은 반점이 있어 화반청화약을 쓰니 한 번 복용하고 곧 나았다.
分鎮符公祖恭人形體壯盛五旬手指麻木已歷三載甲辰秋偶感恚怒忽失聲仆地痰潮如鋸眼合遣尿六脈洪大適予往茸城飛騎促歸緣符公素諳醫理自謂無救議用小續命湯俟予決之予日是方乃辛溫重聚利於祛邪妨於養正其故有三蓋北人氣實南人氣虛雖今古通論然北人居南日久服習水土卑稟更移唐腠亦疏故卑下之鄉柔脆之氣每乘虛來犯致陰陽顛倒榮衛解散而氣虛卒中此南北之辨者一況中風要旨又在剖別閉脫夫閉者邪塞道路正氣壅塞閉拒不通脫者邪勝五內心氣飛越脫絕不續二證攸分相懸霄壤故小續命湯原為角弓反張牙關緊急閉證而設若用於眼合遺尿之脫證是既傷其陰復耗其陽此閉脫之辨者二又風為陽中陰氣內應於肝肝為陰中陽臟外合於風恚怒太過大起肝膽內火外風猖狂擾亂必然挾勢而乘脾土故痰涎洶湧責脾勿統攝腎不歸經滋根固蒂尚恐不及若從事發散是為虛虛此真似之辨者三靈樞所謂虛邪偏客於身半其入者內居榮衛榮衛稍衰則正氣去邪氣獨留髮為偏枯端合此症當法河間東垣用藥保全脾腎兩臟庶可回春亦以六君子加黃者白艾桂枝鉤藤竹瀝薑汁服二劑惡症俱減脈亦收斂俁聲啞如故此腎水衰心宙枯槁至更余後火氣下行腎精上朝方能出音遂用地黃飲子服至十五劑大便始通堅黑如鐵雖有聲出狀似燕語乃朝用補中益氣湯加五味麥冬以培脾夕用地黃湯加肉蓯蓉當歸以滋腎調理百日語言加舊步履如初怛右手稍遜於前耳
분진 부공조의 부인은 체격이 건장하고 쉰 살에 손가락이 마목한 지 3년이었다. 갑진년 가을 우연히 성을 낸 뒤 갑자기 소리를 잃고 쓰러져 담이 끓는 소리가 톱질 같고 눈을 감고 소변을 지리며 육맥이 홍대하였다. 마침 내가 용성에 가 있어 말을 급히 보내 재촉하였다. 부공은 평소 의리를 알아 스스로 구할 수 없다 하면서 소속명탕을 쓰자고 의논하고 내 결정을 기다렸다. 나는 이 처방은 신온약이 많이 모여 사기를 없애는 데는 좋지만 정기를 기르는 데는 방해되며 그 까닭이 셋이라고 하였다. 북인은 기가 실하고 남인은 기가 허한 것은 고금의 통론이지만 북인이 남쪽에 오래 살며 수토에 익숙해지면 품성이 바뀌고 주리도 성글어진다. 낮은 지방의 부드럽고 약한 기가 허를 타고 침범하여 음양이 뒤집히고 영위가 풀려 기허로 졸중하니 이것이 남북의 구별 첫째이다. 또한 중풍의 요점은 폐와 탈을 구별하는 것이다. 폐는 사기가 길을 막아 정기가 옹색하고 닫혀 통하지 않는 것이고, 탈은 사기가 오장을 이겨 심기가 날아가 끊겨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두 증은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 소속명탕은 본래 각궁반장과 이를 악무는 폐증을 위해 만들었는데 눈을 감고 소변을 지리는 탈증에 쓰면 음을 상한 데 다시 양을 소모하니 이것이 폐탈의 구별 둘째이다. 또 풍은 양 가운데 음기로 안으로 간에 응하고 간은 음 가운데 양장으로 밖으로 풍에 합한다. 분노가 지나치면 간담을 크게 일으켜 안의 화와 밖의 풍이 날뛰며 반드시 기세를 끼고 비토를 침범하므로 담연이 넘치는 것은 비가 통섭하지 못하고 신이 경으로 돌려보내지 못한 책임이다. 뿌리를 기르고 밑동을 굳혀도 미치지 못할까 두려운데 발산하면 허한 것을 더 허하게 하니 이것이 진과 사의 구별 셋째이다. 《영추》의 허사가 몸의 반쪽에 치우쳐 머물며 안으로 영위에 들어가 있고 영위가 조금 쇠하면 정기가 떠나고 사기만 남아 편고를 일으킨다는 말이 이 증과 맞는다. 하간·동원의 약법을 본받아 비신 두 장을 보전해야 회춘할 수 있다. 육군자에 황기·백애·계지·구등·죽력·생강즙을 더하니 두 제에 악증이 모두 줄고 맥도 수렴하였으나 목소리가 쉰 것은 여전하였다. 이는 신수가 쇠하고 심이 말라 경점이 지난 뒤 화기가 내려가고 신정이 올라와야 비로소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지황음자를 15제 복용하자 대변이 비로소 나왔는데 쇠처럼 단단하고 검었다. 소리는 나도 제비 소리 같았다. 아침에는 보중익기탕에 오미·맥동을 더해 비를 기르고 저녁에는 지황탕에 육종용·당귀를 더해 신을 길렀다. 100일 조리하니 말과 걸음이 예전과 같아졌고 오른손만 전보다 조금 못하였다.
瘍科君略曹先生長君大美內正日晡潮熱經候不至治者皆云血枯經閉用通經之品寒熱愈甚嘔吐噁心予診兩手滑利為結胎之兆非經閉也寒熱者乃氣血護養胎元不能滋榮肌膚耳至五六月後胎元已充氣血自盛則寒熱自止時以予言為謬延原醫調理仍加破血之劑忽夜半崩如泉痛勢頻逼下一肉塊而形已成矣此時尚未得子悔恨不逮染成產蓐逾年而卒
양과의 군략 조 선생의 장남 대미의 부인은 해질 무렵 조열이 있고 월경이 오지 않았다. 치료자들은 모두 혈고경폐라 하여 통경약을 쓰니 한열이 더 심하고 구토·오심이 생겼다. 내가 진찰하니 양손 맥이 활리하여 임신의 징조이지 경폐가 아니었다. 한열은 기혈이 태원을 보호하느라 피부를 기르지 못한 것일 뿐이며 5~6개월 뒤 태원이 충실해지고 기혈이 성하면 저절로 그친다고 하였다. 당시 내 말을 잘못이라 여겨 원래 의사에게 조리를 맡기자 파혈약을 더하였다. 갑자기 한밤중에 샘처럼 혈붕하고 진통이 자주 닥쳐 살덩이 하나가 나왔는데 형체가 이미 이루어져 있었다. 당시 아직 자식이 없어 후회해도 미치지 못하였고 산욕병이 되어 해를 넘겨 죽었다.
茂才虞葛來少年多欲醉飽無憚初患脅痛繼而嘈雜漸成反胃醫久無效邀家君往視見面色如土面上兩顴稍帶赤色六脈細數食飲即吐歷覽前方頗不相膠但四君理中頻服不瘳知病不獨在中州也信為無陰則吐耳況諸嘔吐皆屬於火而季脅又屬肝腎之鄉即以地黃湯加石斛沉香愈後一載秋前舊症復發適家君有攜李之行於予診治左關弦長知怒氣傷肝故現獨大之象用加味逍遙散而安又兩月因勞忍肌恣酒感怒前症蜂起較前尤甚六脈虛耎脅痛脹悶臥則氣塞欲絕此大虛而得盛候為脈證相反法在不治伊父強請立方仍用逍遙散更醫用小建中湯二寸余劑脅脹稍寬痛則仍在咯血稠痰醒穢難近復干余治往者虛耎之脈變成蛛絲之細兩眸露白氣促聲嘶脾元大壞肺氣孤危此肺痿之惡候也時冬水將弱春木方強延於冬者得腎水之相助也記初十立春木氣臨官肺受其侮脾受其乘豈能再延耶果歿於初十之寅時
무재 우갈래는 젊어서 욕망이 많고 술에 취하고 배불리 먹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처음 협통을 앓다가 조잡이 생기고 점차 반위가 되었다. 오래 치료해도 효과가 없어 부친을 불렀다. 얼굴이 흙빛이고 양 광대뼈만 조금 붉으며 육맥이 세삭하고 먹고 마시면 곧 토하였다. 앞의 처방을 살펴보니 크게 어긋나지는 않았으나 사군·이중을 자주 먹어도 낫지 않아 병이 중주에만 있지 않음을 알았으니 참으로 음이 없으면 토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구토는 화에 속하고 계협은 간신의 부위이므로 지황탕에 석곡·침향을 더하였다. 나은 뒤 한 해가 지나 가을 전에 옛 병이 재발했는데 마침 부친이 취리에 가셔서 내가 진료하였다. 왼쪽 관맥이 현장하여 분노가 간을 상해 홀로 큰 맥이 나타난 것으로 알고 가미소요산을 써 안정시켰다. 두 달 뒤 일하며 배고픔을 참고 술을 함부로 마시고 성을 내어 앞의 증이 벌떼처럼 일어나 더욱 심하였다. 육맥은 허하고 연하며 옆구리가 아프고 부풀어 답답하며 누우면 기가 막혀 끊어질 듯하였다. 이는 크게 허한 데 성한 증후가 있어 맥과 증이 상반하므로 불치였다. 아버지가 강하게 처방을 청하여 소요산을 다시 썼다. 의사를 바꾸어 소건중탕 20여 제를 쓰니 협창은 조금 줄었으나 통증은 남고 피와 걸쭉한 담을 뱉으며 비리고 더러워 가까이하기 어려웠다. 다시 나에게 청했을 때 전의 허연한 맥은 거미줄처럼 가늘게 변하고 두 눈의 흰자가 드러나며 숨이 급하고 목소리가 쉬었다. 비원이 크게 무너지고 폐기가 외롭고 위태로운 폐위의 악후였다. 당시 겨울의 수가 약해지고 봄의 목이 강해지려 하였으니 겨울까지 이어진 것은 신수가 도왔기 때문이다. 초열흘에 입춘하여 목기가 임관하면 폐가 업신여김을 받고 비가 침범을 받으니 어찌 더 살겠는가. 과연 초열흘 인시에 죽었다.
素君素多勞動因乘暑遠行遂胸臆不寬呃忒連發八日以來聲徹鄰里自汗津津語言斷落湯藥偏嘗毫無效果舉家惶恐特干余治現症雖脈尚有根況準頭年壽溫潤不晦法令人中光澤不枯若論色脈生機猶存但徒藉湯丸恐泄越之陽不返潛伏之陰難消常先用艾火灸期門三壯並關元氣海諸穴再煎大劑四君子湯加炮姜肉桂為佐丁香柿蒂篇使內外夾攻譬之釜底加薪剛蒸氣上騰而中焦自暖四大皆春何慮陰翳之不散真陽之不復耶果一艾而呃止再進而全愈共駭為神奇云間司李王公傷風鼻塞周身刺痛欲用表劑邀余商治六脈浮虛予曰風為陽邪衛為陽氣陽與陽合則傷表分病雖屬標而治則求其本蓋肺主皮毛司開闔充元氣主清肅者也清陽不發腠理空疏外來風邪內舍肺分經曰邪之所湊其氣必虛正謂此也法宜東垣先生補中益湯補中兼發乃謂至常王公曰可服一劑而諸病捐除
소군은 평소 노동이 많았고 더위를 무릅쓰고 멀리 다니다 가슴이 편하지 않고 딸꾹질이 이어졌다. 8일 동안 소리가 이웃까지 들리고 자한이 줄줄 나며 말이 끊겼다. 탕약을 두루 먹어도 효과가 전혀 없어 온 집이 두려워하며 나에게 청하였다. 드러난 증은 심해도 맥에 아직 뿌리가 있고 코끝과 연수 부위가 따뜻하고 윤택하며 어둡지 않고 법령과 인중도 광택이 있어 마르지 않았다. 색과 맥으로 논하면 생기가 남아 있으나 탕환에만 의지하면 새어 나간 양이 돌아오지 않고 잠복한 음이 없어지기 어려웠다. 먼저 쑥불로 기문에 3장, 관원·기해 등의 혈에도 뜸뜨고 대량의 사군자탕에 포강·육계를 보좌로, 정향·시체를 사약으로 더하여 달였다. 안팎에서 협공하는 것은 솥 밑에 장작을 더하여 김이 올라 중초가 따뜻해지고 사대에 모두 봄이 드는 것과 같으니 어찌 음예가 흩어지지 않고 진양이 돌아오지 않음을 염려하겠는가. 과연 뜸 한 번에 딸꾹질이 그치고 다시 약을 주니 완전히 나아 모두 신기하다 하였다. 운간 사리 왕공은 상풍으로 코가 막히고 온몸이 찌르듯 아파 표제를 쓰려 하여 나를 불렀다. 육맥은 부허하였다. 나는 풍은 양사이고 위는 양기이므로 양과 양이 합하여 표분을 상하지만 병이 표에 속해도 치료는 근본을 구해야 한다고 하였다. 폐는 피모를 주관하고 개합을 맡으며 원기를 채우고 청숙을 주관한다. 청양이 발하지 않아 주리가 비고 성글면 밖의 풍사가 안으로 폐분에 머무니 경에서 사기가 모이는 곳은 그 기가 반드시 허하다고 한 말이 이것이다. 동원 선생의 보중익탕으로 중을 보하면서 발산하는 것이 가장 평상한 법이라 하였다. 왕공이 좋다 하여 한 제를 복용하니 여러 병이 없어졌다.
徽商朱聖修內人嘔逆吐食出多入少皆利痰白沫眩暈氣急半月有餘大肉盡消治者咸謂反胃謂吐沫脾敗已無救矣於余調治手少陰脈動甚兩尺滑利為結胎之兆而見惡阻之候非翻胃也用人參橘紅白朮半夏蘇梗桔梗赤苓砂仁枇杷葉伏龍肝水煎服三劑而吐減數劑而全瘥後產一女
휘주 상인 주성수의 아내는 구역하여 음식을 토하고 들어가는 것보다 나오는 것이 많았으며 모두 담과 흰 거품이었다. 어지럽고 숨이 급한 지 보름 남짓에 큰 살이 모두 빠졌다. 치료자들은 모두 반위이며 거품을 토하니 비가 무너져 구할 수 없다고 하였다. 내가 조치할 때 수소음맥이 몹시 뛰고 양쪽 척맥이 활리하여 임신의 징조에 오조가 나타난 것이지 반위가 아니었다. 인삼·귤홍·백출·반하·소경·길경·적령·사인·비파엽을 복룡간수에 달여 먹게 하니 세 제에 구토가 줄고 몇 제에 완전히 나았으며 뒤에 딸을 낳았다.
義與藎臣魯學師夫人胎前滯下胸腹脹痛飲食艱難大便赤濃小便短少藎翁曰內子素患胸痛已歷多年在敝地舉發或用枳樸檳黃方能奏效若投輕劑徒增困苦耳餘聆其言而妄為之辨曰胸為肺室賴母氣以升騰始能清肅運行灌溉四臟一有失調則天氣閉塞地氣冒明沖利之氣鬱而成否水穀之滯搏而成痛皆緣胃脘氣弱不能行氣於三陰三陽也若不培其元以固倉廩之虛泛用苦寒降沉之品轉傷上焦虛無之氣雖暫時爽快殊不知潛損胃陽暗增其病所以多年不瘥而日就痿黃也況帶下尤為所禁即宜安胎之中雜以順氣利血之品庶便膿愈而後重除正氣復而邶自解用當歸白芍各二錢白朮茯苓各錢半陳皮神麯各一錢升麻葛根各七分煨木香炙草各五分薑棗煎服數帖而愈後產一子復用建中理中二湯出入加減胸痛亦痊
의흥의 학사 노진신의 부인은 산전 체하로 가슴과 배가 부풀고 아프며 먹기 어렵고 대변에 붉은 고름이 나오며 소변이 적었다. 진옹은 아내가 평소 흉통을 여러 해 앓았는데 고향에서 발작할 때 지각·후박·빈랑·대황을 써야 효과가 있고 가벼운 약은 고통만 더한다고 하였다. 나는 듣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가슴은 폐의 방으로 모의 기에 의지해 올라야 청숙하게 운행하여 네 장을 적신다. 한 번 조화를 잃으면 천기가 닫히고 지기가 밝음을 덮어 충리의 기가 울체되어 비가 되고 수곡의 정체가 부딪혀 통증이 되니 모두 위완의 기가 약하여 삼음삼양에 기를 운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본을 길러 창름의 허를 굳히지 않고 고한강침약을 함부로 쓰면 상초의 허무한 기를 더욱 상한다. 잠시 시원해도 위양을 은밀히 손상하여 병을 더하므로 여러 해 낫지 않고 날마다 여위고 누레진다. 더구나 대하에는 더욱 금하는 바이다. 안태하는 가운데 순기·이혈약을 섞어야 고름변이 낫고 뒤가 무거운 것이 없어지며 정기가 회복되어 사기가 저절로 풀린다. 당귀·백작 각 2돈, 백출·복령 각 1돈 반, 진피·신국 각 1돈, 승마·갈근 각 7푼, 잿불에 구운 목향·자초 각 5푼을 생강·대추와 달여 몇 첩에 나았고 뒤에 아들을 낳았다. 다시 건중·이중 두 탕을 가감하여 흉통도 나았다.
婁江祭酒吳梅村夫人產後患痢晝夜百餘次不能安枕用滯下通導而後重轉增延家君治之斷為陰虛陽陷用六味湯加肉桂以保衰敗之陰以補中湯加木香以提下陷之氣蓋新產之後營衛空虛陰陽殘弱咸賴孤臟之力生血生氣無可復後天資生之本既患下痢則知元陽已虛又投峻劑必使真陰愈竭惟舍通法而用塞法易寒劑而用溫劑俾胃關澤而魄門通暢倉凜實而傳道運化自然精微變化清濁調和矣可見胎前產後所侍者脾元也所賴者陽氣也坤厚既旺干健自復丹溪云產後以大補氣血為主雖有雜症以末治之誠者是言也
누강의 제주 오매촌의 부인은 산후 이질로 밤낮 100여 번 설사하여 편히 눕지 못하였다. 체하의 통도법을 쓰자 뒤가 무거운 증상이 더해져 부친을 불렀다. 음허양함으로 단정하고 육미탕에 육계를 더하여 쇠한 음을 보전하며 보중탕에 목향을 더하여 처진 기를 올렸다. 새로 출산한 뒤 영위가 비고 음양이 약하면 모두 홀로 남은 장의 힘으로 혈과 기를 만들어 후천의 생명 근본을 회복하는 데 의지한다. 이미 하리하므로 원양이 허함을 알 수 있는데 준제를 또 주면 진음이 더욱 고갈된다. 통법을 버리고 색법을 쓰며 한제를 온제로 바꾸어 위의 관문이 윤택하고 항문이 원활하며 창름이 충실하고 전달과 운화가 이루어지게 하면 정미가 변화하고 청탁이 조화로워진다. 산전·산후에 의지하는 것은 비원과 양기임을 알 수 있다. 곤의 두터움이 왕성하면 건의 굳건함이 저절로 회복된다. 단계가 산후에는 기혈을 크게 보하는 것을 주로 하며 잡증이 있어도 말단으로 치료한다고 하였으니 참으로 옳은 말이다.
龔姓婦產拍發痙口歪不語角弓反張時或梢愈頃之復作諸醫皆用風治予曰肝為藏血之鄉風水之司也肝氣為風肝血為水流則風息而筋脈舒古人云治風先治血信有矣況產後氣衰於表血衰於裡氣衰則腠理疏而外風易襲血耗則肝木枯而內風煽動故血不養筋則角弓反張風淫胃脈則唇口引動常用滋潤之品內養肝血直補其虛少佐驅風之劑使同氣相求得以易入用四物去芍藥加羌活防風獨活鉤勾酒炒荊芥兩劑而愈若用辛散則風能燥血辛走陽氣適滋其困矣
공씨 부인이 산후 경증으로 입이 비뚤어지고 말하지 못하며 각궁반장하였다. 때로 조금 나았다가 곧 다시 생기자 여러 의사는 모두 풍으로 치료하였다. 나는 간은 혈을 저장하는 곳이며 풍수의 담당이라고 하였다. 간기는 풍이고 간혈은 수이니 수가 흐르면 풍이 쉬고 근맥이 펴진다. 옛사람의 풍을 치료하려면 먼저 혈을 치료하라는 말은 참되다. 산후에는 겉의 기와 속의 혈이 쇠하여 기가 쇠하면 주리가 성글어 외풍이 쉽게 침범하고 혈이 소모되면 간목이 말라 내풍이 일어난다. 혈이 근을 기르지 못하면 각궁반장이 되고 풍이 위맥에 넘치면 입술과 입이 당겨 움직인다. 자윤약으로 안의 간혈을 길러 허를 바로 보하며 거풍약을 조금 보좌하여 동기가 서로 구해 쉽게 들어가게 해야 한다. 사물에서 작약을 빼고 강활·방풍·독활·구구·술에 볶은 형개를 더하니 두 제에 나았다. 신산약을 쓰면 풍은 혈을 마르게 하고 매운맛은 양기를 달아나게 하여 도리어 고통을 늘린다.
遂安令曹緣岩長君安初少年嗜欲真元素虛已亥秋丁內艱悲慟大過內火燔灼腎水乾涸肌肉頓消咳咯膿血腥穢異常延予商治六脈洪大重按虛豁右寸獨數此上盛下虛之候夫上盛者赫曦過極肺中之假陽旺也下虛者涸梳衰竭腎家真陰虛也陰虛則火獨發坎宮津液上騰救母浸浸熾灼反成稠痰濁陰膠結於清虛之臟久而肺熱葉焦腐化為癰若不求本而治則腎陰愈虛邪火更旺癰將潰也法當先清上焦痰火保定肺氣以麥冬沙參紫菀貝母橘紅茯苓甘草桔梗瓜蔞霜等五更時服復用六味湯加麥冬五味大劑臨臥服以滋化源數帖而痰清嗽減一月而精充神復越三載因感於邪術廣圖婢妾以自娛前症復發卒至不救
수안령 조연암의 장남 안초는 젊어서 욕망을 즐겨 진원이 본래 허하였다. 기해년 가을 모친상을 당하여 슬픔이 지나쳐 내화가 타오르고 신수가 말라 살이 갑자기 빠지고 고름과 피를 기침하여 비리고 더러움이 유별났다. 나를 불러 보니 육맥은 홍대하되 깊이 누르면 텅 비고 오른쪽 촌맥만 삭하여 위가 성하고 아래가 허한 증후였다. 위가 성한 것은 심한 열기로 폐의 가양이 왕성한 것이고 아래가 허한 것은 마르고 쇠하여 신의 진음이 허한 것이다. 음허하면 화만 발하므로 감궁의 진액이 올라 모를 구하려 하나 점차 타서 도리어 걸쭉한 담이 된다. 탁음이 청허한 장에 엉겨 오래되면 폐열로 폐엽이 마르고 썩어 옹이 된다. 근본을 구하여 치료하지 않으면 신음은 더욱 허하고 사화는 더욱 왕성하여 옹이 터지려 할 것이다. 먼저 상초의 담화를 맑혀 폐기를 보전해야 하므로 맥동·사삼·자완·패모·귤홍·복령·감초·길경·과루상 등을 오경에 먹게 하고, 다시 육미탕에 맥동·오미를 더해 대량으로 잠자리에 들 때 먹여 화원을 길렀다. 몇 첩에 담이 맑아지고 기침이 줄며 한 달에 정이 차고 신이 회복되었다. 3년 뒤 사술에 미혹되어 비첩을 널리 구해 스스로 즐기다가 앞의 증이 재발하여 끝내 구하지 못하였다.
晉中商人高鳴軒年六旬外久歷鞍馬餐風冒霧六淫之邪襲其經絡染成痿廢已三年矣偏訪名醫咸以解表為治兩足愈覺無力頑麻不仁辛丑夏初適過海邑告余服藥累百不獲少瘥自信此身永廢矣予曰風寒濕氣乘虛而入不思養正以補其本一誤也屢解表而風邪已去猶然發散愈損真元二誤也且氣虛則麻血虛則本人有恆言是症必為中風先兆乃以神效黃耆湯加肉桂服之才四帖麻頓去便能卻杖而行後以還少丹調理月餘倍常矍鑠德州都諫王介清丁內艱患左脅頑痹足腿麻木按摩片時少堪步履服清火消痰補氣活血病勢不減後服闋人涼邀家君診視見伊腎肝脈虛斷為腎虛不能生肝肝虛不能榮血水虧血耗經隧枯澀之症先以四物湯加秦艽石斛牛膝葳蕤不數劑而脅痹頓除後服腎氣丸一杯永不復發
진중 상인 고명헌은 예순을 넘었고 오래 말을 타고 다니며 바람 속에서 먹고 안개를 무릅써 육음의 사기가 경락을 침범하여 위폐가 된 지 3년이었다. 명의를 두루 찾아 모두 해표로 치료하니 두 발에 더욱 힘이 없고 마목하여 감각이 없었다. 신축년 초여름 해읍을 지나다 나에게 약 수백 제를 먹어도 조금도 낫지 않아 이 몸이 영영 못 쓰게 될 것이라 믿는다고 하였다. 나는 풍한습이 허를 타 들어왔는데 정기를 길러 근본을 보하려 하지 않은 것이 첫째 잘못이며, 거듭 해표하여 풍사가 이미 갔는데도 발산하여 진원을 더 상한 것이 둘째 잘못이라고 하였다. 또한 기허하면 마하고 혈허하면 목하다는 것은 늘 하는 말이니 이 증은 반드시 중풍의 전조이다. 신효황기탕에 육계를 더해 겨우 네 첩을 먹이니 마목이 곧 없어지고 지팡이 없이 걸었다. 뒤에 환소단으로 한 달 남짓 조리하니 평소보다 두 배로 정정하였다. 덕주의 도간 왕개청은 모친상 중 왼쪽 옆구리가 완비하고 발과 다리가 마목하여 잠시 안마해야 조금 걸을 수 있었다. 청화소담·보기활혈약으로 줄지 않았고 뒤에 복상을 마치고 들어와 부친의 진찰을 받았다. 신간맥이 허하여 신허로 간을 생기게 하지 못하고 간허로 혈을 기르지 못하여 수가 부족하고 혈이 소모되어 경수가 마르고 막힌 증이라 단정하였다. 먼저 사물탕에 진교·석곡·우슬·위유를 더하니 몇 제 안에 협비가 사라졌고 뒤에 신기환 한 배를 복용하여 다시 재발하지 않았다.
秦商張玉環感寒咳嗽變成哮喘口張不閉語言不續呀呷有聲外聞鄰里投以二陳枳桔毫不見減延予救之診六脈右手寸關俱見浮緊重取帶滑斷為新寒外束舊痰內搏閉結清道鼓動肺金當以三拗湯宣發外邪湧吐痰涎為要若畏首畏尾漫投膚淺之劑則風寒閉固頑痰何由解釋況經曰辛甘發散為陽麻黃者辛甘之物也夏天地輕清之氣輕可去實清可利肺肺道通而痰行痰氣行而哮愈矣乃以前藥服之果一劑而汗出津津一曰夜約吐痰鬥許哮喘遂平越二年因不忌口復起前證而歿
진 상인 장옥환이 한을 받아 기침하다 효천으로 변하여 입을 벌리고 닫지 못하며 말이 이어지지 않고 헐떡이는 소리가 이웃까지 들렸다. 이진·지길을 주어도 조금도 줄지 않아 나에게 구해 달라 하였다. 오른손 촌관맥이 부긴하며 깊이 짚으면 활하여 새 한이 밖을 묶고 묵은 담이 안에서 부딪쳐 청도를 닫고 폐금을 흔드는 것으로 단정하였다. 삼요탕으로 외사를 발산하고 담연을 토하게 하는 것이 요점이다. 앞뒤를 두려워하며 얕은 약을 함부로 주면 풍한이 굳게 닫혀 완담이 어떻게 풀리겠는가. 경에서 신감하게 발산하는 것은 양이라고 하였는데 마황은 신감한 물건으로 천지의 가볍고 맑은 기를 받아 가벼움으로 실을 제거하고 맑음으로 폐를 이롭게 한다. 폐도가 통하면 담이 움직이고 담기가 움직이면 효증이 낫는다. 앞의 약을 먹이니 과연 한 제에 땀이 줄줄 나고 하루 밤낮에 약 한 말의 담을 토하여 효천이 가라앉았다. 2년 뒤 음식 금기를 지키지 않아 앞의 증이 재발하여 죽었다.
茸城朱公亮令媛血枯經閉已年餘矣大肉去半飲食減少日哺寒熱至夜半微汗而解予診其脈兩手細數證屬難療素問二陽之病發心脾有不得隱曲女子不月夫心統各經之血脾為諸陰之首二經乃子母之臟且氣恆相通也病則二臟之氣乘澀榮血無以資土故地道之不行由心脾之氣不充也張潔古師弟首重內經一以訓榮培土為主而薜新甫將逍遙歸脾二方為用使氣血旺而經自通若不培補其源反以消堅破硬苦寒傷胃通道癸水為捷徑殊不知愈攻則虛而愈閉且生生之源從此剝削殆盡直至風消賁閉雖有神丹難為治矣不信予言專行通道竟至不起
용성 주공량의 딸은 혈이 말라 월경이 닫힌 지 한 해가 넘었다. 큰 살이 절반 빠지고 음식이 줄며 해질 무렵 한열이 나고 한밤중에 조금 땀이 나면 풀렸다. 양손 맥이 세삭하여 치료하기 어려운 증이었다. 《소문》은 이양의 병이 심비에서 발하면 남몰래 하는 일을 이루지 못하고 여자는 월경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심은 각 경의 혈을 통솔하고 비는 여러 음의 머리로 두 경은 모자 관계이며 기가 늘 통한다. 병들면 두 장의 기가 어긋나 막혀 영혈이 토를 돕지 못하므로 지도인 월경이 통하지 않는 것은 심비의 기가 충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장결고 사제는 《내경》을 가장 중시하여 한결같이 영을 조절하고 토를 기르는 것을 주로 하였고 설신보는 소요·귀비 두 처방으로 기혈이 왕성해져 월경이 저절로 통하게 하였다. 근원을 기르지 않고 도리어 단단한 것을 삭이고 깨며 고한으로 위를 상하게 하여 계수를 통하게 하는 것을 지름길로 삼으면 공격할수록 허하여 더욱 닫히는 줄을 모르는 것이다. 생명의 근원이 이때부터 거의 다 깎여 풍소·분폐에 이르면 신단이 있어도 치료하기 어렵다. 내 말을 믿지 않고 오로지 통도법을 행하여 끝내 일어나지 못하였다.
嘉定庠生沈來壅食後感寒頭疼發熱胸膈脹滿醫用表散消導雖胸次稍舒寒熱愈劇反增神昏不寐已三傳經矣一醫因病久症虛議用溫補一醫頗明醫理復爾消導議論多端過予決之六脈弦數不和與寒熱往來大便溏而小便赤此少陽經症不可汗下與滲利轉犯他經只宜和解其邪易散縱有食停俾邪氣解而食自消此仲景先生之秘旨也竟以小柴胡汽去人參加丹皮炒山梔花粉冬一劑而神清氣爽寒熱亦定
가정 상생 심래는 식체 뒤 한을 받아 두통과 발열, 흉격 창만이 있었다. 의사가 표산소도하여 가슴은 조금 편해졌으나 한열은 더욱 심하고 정신이 흐려 잠들지 못하였으며 이미 세 차례 경을 전하였다. 한 의사는 병이 오래되어 증이 허하다 하여 온보를 의논하고 다른 의사는 의리를 제법 알아 다시 소도하려 하니 논의가 여러 갈래여서 나에게 결정하게 하였다. 육맥이 현삭하고 조화롭지 않으며 한열이 왕래하고 대변은 묽고 소변은 붉었다. 이는 소양경증이라 발한·공하·삼리하여 다른 경을 범해서는 안 되고 화해만 해야 사기가 쉽게 흩어진다. 식체가 있더라도 사기가 풀리면 음식이 저절로 소화되는 것이 중경 선생의 비지이다. 소시호탕에서 인삼을 빼고 단피·볶은 산치·화분·동을 더하니 한 제에 정신이 맑고 기가 상쾌하며 한열도 가라앉았다.
上洋王邑尊幕賓張姓盛暑發熱至六七日昏沉不語面赤苔焦與水則咽大便不通身艱轉側醫者束手投柬招治予診畢謂王公曰病雖危候脈象和順況身體軟緩唇吻紅潤氣息調勻俱為吉兆只因邪熱傳入手少陰經鬱而不舒所以面赤昏呆口噤不語乃以導赤散加黃連麥冬佐犀角少許加燈心竹葉煎成用刷腳抉開口徐徐灌下片時覺面色稍退再劑而目開能視三劑而語言如舊後調理乃安
상양 왕 읍존의 막빈 장씨가 한여름에 발열한 지 6~7일째 혼침하여 말하지 않고 얼굴이 붉고 설태가 타며 물을 주면 삼키고 대변이 통하지 않으며 몸을 돌리기 어려웠다. 의사들이 손을 놓고 글을 보내 나를 불렀다. 진찰 뒤 왕공에게 병은 위태로우나 맥상이 화순하고 몸이 부드러우며 입술이 붉고 윤택하고 숨이 고른 것은 모두 길조라고 하였다. 사열이 수소음경에 전해 들어가 울체되어 풀리지 않으므로 얼굴이 붉고 멍하며 입을 악물고 말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도적산에 황련·맥동을 더하고 서각 조금을 보좌로 하며 등심·죽엽을 더해 달였다. 솔 자루로 입을 열어 천천히 부어 먹이니 잠시 뒤 얼굴의 붉음이 조금 가시고 두 제에 눈을 떠 보며 세 제에 말이 예전과 같아져 뒤에 조리하여 안정되었다.
李元吉妻半產後血崩如注頭暈眼暗飲食少進面色青黃六脈虛大無力甚至昏量不蘇一日數次延予治之予曰血脫益氣陽生陰長靈樞之旨也況陽為陰之使陰為陽之守今久患崩中宜乎幾微之時而欲絕奚能固其內守之陰所以經流不竭皆陽氣不能衛外故也若從事養陰止澀是人已入井而又投之以石耳用補中益氣湯加五味艾葉服之勢不稍衰予思古語云大虛必挾寒再以人參一兩熟附一錢煎成呷下乃熟睡片時醒來暈減神清後以養榮湯去肉桂加附子調理而安
이원길의 아내는 반산 뒤 혈붕이 쏟아지듯 하며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어두우며 음식이 줄고 얼굴빛이 청황색이었다. 육맥은 허대하고 무력하며 심하면 의식을 잃어 깨어나지 않는 일이 하루에 몇 번씩 있어 나를 불렀다. 나는 탈혈에는 기를 보하여 양이 생기면 음이 자라게 한다는 것이 《영추》의 뜻이라고 하였다. 양은 음의 사자이고 음은 양을 지키는 것이다. 지금 오래 붕중을 앓아 미약한 때 끊어지려 하니 어찌 안에서 지키는 음을 굳힐 수 있겠는가. 월경의 흐름이 고갈되지 않는 것은 모두 양기가 밖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양음지삽만 하는 것은 사람이 이미 우물에 들어갔는데 돌을 던지는 것과 같다. 보중익기탕에 오미·애엽을 더하여 먹였으나 기세가 조금도 줄지 않았다. 크게 허하면 반드시 한을 낀다는 옛말을 생각하여 인삼 1냥·숙부자 1돈을 달여 조금씩 마시게 하였다. 잠시 푹 자고 깨어나자 어지럼이 줄고 정신이 맑아졌으며 뒤에 양영탕에서 육계를 빼고 부자를 더하여 조리해 안정되었다.
雷廉道潘畏庵乃郎自幼腹痛向以內傷調治時或見愈不能社根庚子春過龍華掃墓歸由巨浦而前適風雨驟至銀浪排山泊舟小港因而受飢忍寒痛遂大作邀予往治左手脈皆弦遲右寸關虛大無力蓋此症因飲食過飽傷其中州嗣後食雖消而大陰分野猶然損傷故一有不調痛即隨至況歷有歲時中脘之陽不布畜積痰涎結成窠臼即內經云未傳寒中之謂也若不用溫補辛散之品其沉鬱久凝之疾焉能轉否為泰乎用異功散加桂枝半夏炮姜木香為粗末姜煎服痛即止後照前方加益智仁白芍神麯薑湯和丸後不復發大學士徐元扈夫人胃脘痛初以氣治次以食治繼以火治總不見效痛至昏□良久復甦延家君治之曰夫人尊恙非氣非食亦非火也由勞碌太甚中氣受傷脾陰弱而不化胃陽衰而不布陰陽並虛倉廩壅滯轉輸既弱隧道失運所以濁清相干氣血相搏而作痛者若用消導則至高之氣愈耗誤投寒劑則胃脘之陽益傷為今之計非補不可雖云痛無補法此指邪氣方銳者言也今病勢雖甚而手按略止脈氣雖大而重按稍鬆則脈症俱虛不補而何用六君子湯加香附砂仁一劑而眩定痛止
뇌렴도의 반외암의 아들은 어려서부터 복통하여 내상으로 조치하면 때로 나았으나 뿌리를 없애지 못하였다. 경자년 봄 용화로 성묘 갔다 거포를 거쳐 돌아오는데 갑자기 비바람이 닥치고 은빛 파도가 산처럼 밀려와 작은 항구에 배를 댔다. 굶주리고 추위를 참아 통증이 크게 생겨 나를 불렀다. 왼손 맥은 모두 현지하고 오른쪽 촌관은 허대하며 무력하였다. 이 증은 너무 배불리 먹어 중주를 상한 뒤 음식은 소화되어도 태음의 분야가 여전히 손상되어 조금만 조화롭지 않아도 곧 통증이 생기는 것이다. 여러 해 지나 중완의 양이 퍼지지 못하고 담연을 쌓아 보금자리를 이루었으니 《내경》의 전해지지 않은 한중이라는 말이다. 온보·신산약을 쓰지 않으면 깊이 울체하여 오래 엉긴 병을 어찌 비에서 태로 돌리겠는가. 이공산에 계지·반하·포강·목향을 더하여 굵은 가루로 만들고 생강과 달여 먹이니 통증이 멎었다. 뒤에 앞 처방에 익지인·백작·신국을 더하여 생강탕으로 환을 만들어 먹이니 재발하지 않았다. 대학사 서원호의 부인은 위완통을 처음에는 기로, 다음에는 음식으로, 이어 화로 치료하였으나 효과가 없었고 아프면 혼절했다가 한참 뒤 깨어났다. 부친을 불러 치료하니 병은 기도 음식도 화도 아니며 지나친 노고로 중기가 상하고 비음이 약하여 변화시키지 못하며 위양이 쇠하여 퍼지지 못한 것이라고 하였다. 음양이 함께 허하고 창름이 막혀 운반이 약하고 통로가 운행을 잃으므로 청탁이 서로 침범하고 기혈이 부딪혀 아프다. 소도하면 높은 기를 더욱 소모하고 찬 약을 잘못 주면 위완의 양을 더 상하니 보하지 않을 수 없다. 통증에는 보법이 없다는 말은 사기가 한창 날카로운 경우를 말한다. 지금 병세가 심해도 손으로 누르면 조금 멎고 맥기가 커도 깊이 누르면 조금 느슨하니 맥과 증이 모두 허하다. 보하지 않고 무엇을 하겠는가. 육군자탕에 향부·사인을 더하니 한 제에 어지럼과 통증이 멎었다.
疁城王五松子舍大肉削去虛氣攻衝症情恍惚手足麻木不能自主夜寤不寧咸謂心脾之氣渙散所以脈絡脹張如不束之狀所謂解㑊者也蓋陽明為氣血俱多之鄉主束骨而利機關者也陽明戊土一虛必盜母氣自養而心亦虛以靈樞云心怵惕思慮則傷神神傷則恐懼自失破㿉肉脫矣治宜補心脾之氣以充元神之用可指日而奏功乃與歸脾湯服數帖而始止
유성 왕오송의 아들은 큰 살이 빠지고 허기가 치밀며 증세가 어렴풋하고 손발이 마목하여 스스로 움직임을 다스리지 못하며 밤에 깨어 편하지 않았다. 모두 심비의 기가 흩어져 맥락이 늘어나 묶이지 않은 듯한 이른바 해역이라고 하였다. 양명은 기혈이 모두 많은 곳으로 뼈를 묶고 관절을 원활하게 한다. 양명의 무토가 허해지면 반드시 모의 기를 빼앗아 스스로 기르므로 심도 허해진다. 《영추》는 심이 두려워하고 생각하면 신이 상하며 신이 상하면 두려워 스스로 잃고 몸이 무너지며 살이 빠진다고 하였다. 심비의 기를 보하여 원신의 작용을 채우면 날짜를 짚어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귀비탕 몇 첩을 주니 비로소 멎었다.
分鎮符公祖令媛久瀉肉脫肢體浮腫大腹脹痛便內赤蟲形如柳葉有口無目更兼咳嗽煩躁夜臥不寐召予調治符公日小女之疾起於夏間因飲食不節淹纏半載服利水藥身腫不減用參耆等劑脹悶益增予細為審察蓋中央脾土喜燥而亞濕臟腑為根本生化源頭雖云至陰之地實操升陽之權盛暑之際六陽外發陰寒潛伏加以浮瓜沉李飲冷吞寒使干陽之氣鬱坤土之中所以氣滯而濕化濕化而熱生濕熱壅滯轉輸不行倉廩之精華下陷而為泄瀉久則清陽愈虛濁陰愈盛留於中州則為腹脹散於肌肉則為浮腫上乘肺分則為咳嗽況脾為諸陰之首肝為風木之司濕熱盛則陰虛而煩躁夜爭肝風旺則遇濕而蟲形生化頭赭雖多不越木旺土衰之徵治當調脾抑肝佐以升清降濁使濕去土燥病當慚去用白朮茯苓半夏芍藥黃連肉桂乾葛柴胡厚朴鳥梅花椒等劑調理而安
분진 부공조의 딸은 오래 설사하여 살이 빠지고 팔다리가 부으며 배가 크게 불러 아팠다. 대변에 버들잎 모양의 붉은 벌레가 있었는데 입은 있고 눈은 없었다. 기침과 번조로 밤에 자지 못하여 나를 불렀다. 부공은 딸의 병이 여름에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여 시작해 반년을 끌었으며 이수약으로 부종이 줄지 않고 인삼·황기 등을 쓰면 창만과 답답함이 더한다고 하였다. 자세히 살피니 중앙의 비토는 조를 좋아하고 습을 싫어하며 장부의 근본이자 생화의 근원으로 지음의 땅이지만 실은 승양의 권한을 맡는다. 한여름에는 육양이 밖으로 발하고 음한이 잠복하는데 물에 식힌 참외와 자두를 먹고 찬 것을 마시고 삼켜 건양의 기가 곤토 가운데 울체하였다. 기가 정체하면 습이 되고 습이 되면 열이 생겨 습열이 막히고 운반이 되지 않으므로 창름의 정화가 아래로 처져 설사한다. 오래되면 청양이 더욱 허하고 탁음이 더욱 성하여 중주에 머무르면 복창, 기육에 흩어지면 부종, 위로 폐분을 침범하면 기침이 된다. 비는 여러 음의 머리이고 간은 풍목의 담당이므로 습열이 성하면 음허하여 번조하고 밤에 다투며 간풍이 왕성하면 습을 만나 벌레의 형체가 생긴다. 증상이 많아도 목왕토쇠의 징후를 벗어나지 않는다. 비를 조절하고 간을 억제하며 승청강탁을 보좌하여 습이 없어지고 토가 마르면 병이 점차 없어진다. 백출·복령·반하·작약·황련·육계·건갈·시호·후박·오매·화초 등으로 조리하여 안정되었다.
燕山中丞劉漢儒泄瀉數日醫見肝脈弦急認為火熱用苦寒平肝掇洞泄不已筋攣少氣招家君往治日此因寒氣入腹清陽不能上騰即素問清氣在下則生飧泄之意也前醫以肝脈局為火予以肝脈盛為寒蓋寒束之脈每多見弦先哲明訓班班可考何得以寒為熱耶方以蒼朮白朮各二錢羌活防風各一錢乾葛炮姜各八分升麻柴胡各五分一劑而減
연산 중승 유한유가 며칠 설사하자 의사가 간맥의 현급을 보고 화열로 알아 고한으로 평간하였다. 마침내 설사가 그치지 않고 근육이 당기며 기가 적어져 부친을 불렀다. 부친은 한기가 배에 들어가 청양이 위로 오르지 못한 것으로 《소문》의 청기가 아래에 있으면 손설이 생긴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앞 의사는 간맥을 화로 보았으나 나는 간맥이 성한 것을 한으로 본다. 한에 묶인 맥에는 현이 흔하다는 선철의 명훈이 분명히 있으니 어찌 한을 열로 여기겠는가. 창출·백출 각 2돈, 강활·방풍 각 1돈, 건갈·포강 각 8푼, 승마·시호 각 5푼을 쓰니 한 제에 줄었다.
上洋秦齋之勞欲過度每陰雨左足麻木有無可形容之苦歷訪名醫非養血即補氣時作時止終未奏效戊戌春病勢大作足不轉舒背心一片麻木不已延予治之左脈沉緊右脈沉澀此風濕寒三氣雜至合而為痹其風氣勝者為行痹寒氣勝者為痛痹濕氣勝者為著痹著痹者即麻木之謂也明系濕者邪內著痰氣凝結鬱而不暢發為著痹須宣發燥濕之劑加以報使之藥直至足膝庶濕痰消而大氣周流也方以黃耆蒼朮桂枝半夏羌活獨活防已威靈仙數帖而痊若以齋之多勞多欲而日服參耆壅瘀隧道外邪為能發而病安能去乎
상양의 진재지는 노고와 욕망이 지나쳐 흐리고 비가 올 때마다 왼발이 마목하여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있었다. 명의를 두루 찾아 양혈 아니면 보기를 하였으나 때로 생기고 때로 멎을 뿐 끝내 효과가 없었다. 무술년 봄 병이 크게 일어나 발을 움직이지 못하고 등 한가운데가 계속 마목하여 나를 불렀다. 왼쪽 맥은 침긴하고 오른쪽은 침삽하였다. 풍·습·한 세 기가 섞여 비가 되는데 풍이 우세하면 행비, 한이 우세하면 통비, 습이 우세하면 착비이며 착비는 곧 마목이다. 습사가 안에 붙고 담기가 엉겨 울체되어 펴지지 않아 착비가 된 것이 분명하므로 선발조습약에 인도약을 더하여 발과 무릎에 바로 이르게 해야 습담이 사라지고 대기가 두루 흐른다. 황기·창출·계지·반하·강활·독활·방기·위령선을 몇 첩 써서 나았다. 노고와 욕망이 많다는 이유로 인삼·황기를 날마다 먹여 통로를 막으면 외사가 어찌 발산하고 병이 어찌 없어지겠는가.
海寧相國陳素庵病足腫痛用補血藥則腫愈甚用補氣藥則痛益增延家君往治診其脈耎而氣滑屬濕痰流注下焦為有餘之症定非不足也若滋陰則壅沉滯陽氣若補陽則膠固經絡此病之所以增進也用陳皮茯苓半夏獨活蒼朮厚朴桔梗靈仙兩服痛減腫消故虛虛之禍世所共戒實實之殃人每蹈之若從執補養之法是未明標本緩急邪正虛實之機也烏足以與議道哉所以動人立法專主驅邪誡慮夫補實之禍以救未流時弊耳
해녕 상국 진소암은 발이 붓고 아팠는데 보혈약을 쓰면 더 붓고 보기약을 쓰면 더 아파 부친을 불렀다. 맥이 연하고 기가 활하여 습담이 하초로 흘러든 유여한 증이지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자음하면 양기를 막고 가라앉히며 보양하면 경락을 굳히므로 병이 더해지는 것이다. 진피·복령·반하·독활·창출·후박·길경·영선을 두 번 복용하자 통증과 부종이 줄었다. 허한 것을 허하게 하는 재앙은 세상이 함께 경계하지만 실한 것을 더 실하게 하는 재앙은 사람들이 흔히 밟는다. 보양법만 고집하면 표본·완급·사정·허실의 기미를 밝히지 못한 것이니 어찌 함께 도를 논하겠는가. 그러므로 옛사람이 법을 세워 거사를 오로지 주로 한 것은 실한 것을 보하는 재앙을 경계하여 말류의 시폐를 구하려 한 것이다.
皖城玉山王學師子舍產後早服參耆致惡露不盡兼因過於恚怒變為臌脹菁筋環腹神闕穴出延予商治左手脈皆弦勁重按則澀右手洪滑此下焦積瘀怒氣傷肝以致是症夫畜血之候小腹必硬而手按畏痛且水道清長脾虛之症大腹柔軟而重按之不痛必水道澀滯以此辨之則屬虛屬實判然明矣王翁日是症為積瘀不行無疑矣前治皆模糊脈理洞投藥石所以益增脹痛今聆詳辨洞如觀火請疏方為感遂用歸梢赤芍香附青皮澤蘭厚朴枳實肉桂元胡等加生薑間投花椒仁丸三服數日後脹痛悉愈張侍川脾泄經年湯藥遍嘗大肉盡削小便枯竭勢已危殆余往診之方脈弦細右脈虛微此係干陽不運坤陰無權所以脾傷而破㿉肉脫肺虛而氣化失調俾濁陰不降內滯腸胃清陽不發下乘腎肝由是三陰受傷而成久泄之症況當四十年之升陽之氣與濁陰之令自此相半今侍川已逾五旬不思舉其下陷之陽反以滲利為用則失治本之旨矣且下久亡陰未有久泄而腎不虛者若單補其脾則力緩不能建功須得溫暖下焦之品輔佐其脾間丹田火旺則脾土自溫暖中州健運則沖和自布精微之氣上奉干金下輸膀胱分別清濁則二便自和可以指日收功矣方用人參白朮黃耆炙草廣皮木香升麻柴胡肉巢補骨脂數劑而小便亦實後以四神丸加煨木香調理乃安
완성 옥산의 왕 학사의 자사는 산후에 일찍 인삼·황기를 복용하여 오로가 다 나오지 않았고 지나친 분노까지 겹쳐 고창이 되었다. 푸른 힘줄이 배를 두르고 신궐혈이 튀어나와 나를 불렀다. 왼손 맥은 모두 현경하고 깊이 누르면 삽하며 오른손은 홍활하였다. 하초에 어혈이 쌓이고 분노가 간을 상해 이 증이 된 것이다. 축혈이면 아랫배가 반드시 단단하고 누르면 통증을 꺼리며 소변이 맑고 길다. 비허이면 배가 부드럽고 깊이 눌러도 아프지 않으며 반드시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다. 이로 구별하면 허실이 분명하다. 왕옹은 어혈이 쌓여 움직이지 않는 증이 틀림없으며 앞 의사들은 맥리를 모호하게 알고 함부로 약을 주어 창통을 더했다고 하였다. 이제 자세한 구별을 들으니 불 보듯 분명하다며 처방을 청하였다. 귀초·적작·향부·청피·택란·후박·지실·육계·현호 등에 생강을 더하고 사이사이 화초인환을 세 번 주니 며칠 뒤 창통이 모두 나았다. 장시천은 비설을 일 년 내내 앓아 탕약을 두루 먹었으나 큰 살이 모두 빠지고 소변이 말라 위태로웠다. 내가 진찰하니 왼쪽 맥은 현세하고 오른쪽은 허미하였다. 건양이 운행하지 않고 곤음이 권한을 잃어 비가 상하고 몸이 무너지며 살이 빠지고, 폐허로 기화가 조절되지 않아 탁음이 내려가지 못하고 장위에 정체하며 청양이 발하지 못하고 아래로 신간을 침범한 것이다. 이로써 삼음이 상하여 오래 설사한다. 마흔에는 올라가는 양기와 탁음의 명령이 서로 절반이 되는데 시천은 이미 쉰을 넘었다. 처진 양을 들어 올리지 않고 삼리법을 쓰면 근본 치료의 뜻을 잃는다. 또 오래 내리면 음을 잃으니 오래 설사하면서 신이 허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 비만 보하면 힘이 느려 효과를 내지 못하므로 하초를 따뜻하게 하는 약으로 비를 도와야 한다. 단전의 화가 왕성하면 비토가 따뜻해지고 중주가 잘 운행하면 충화가 퍼져 정미의 기가 위로 건금에 받들어지고 아래로 방광에 운반되어 청탁을 나누니 두 변이 조화로워져 날짜를 짚어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인삼·백출·황기·자초·광피·목향·승마·시호·육소·보골지를 몇 제 쓰니 소변도 실해졌고 뒤에 사신환에 잿불에 구운 목향을 더하여 조리해 안정되었다.
家君治江右太師傅繼庵夫人久泄不已脈象遲微微為陽衰遲為陰勝此脾土虛而真陽衰也蓋脾虛必補中而後土旺陽衰必溫中然後寒釋乃以四君子加薑桂服二劑而畏寒如故泄亦不減知非土中之陽不旺乃水中火不升也須助少火之氣上蒸於脾方能障土之濕遂用人參三錢白朮五錢肉桂一錢附於一錢數帖漸瘥從八味丸調理乃安 春元唐次仲小腹臍傍刺痛連脅及胸坐臥不安余診六脈弦滑重取則澀此食後感怒填寒太陰致肝氣鬱而不舒胸困作痛經日木鬱達之解其鬱而痛自止用二陳湯合平胃散加枳殼木香一服而愈 秣陵羅明求奉藩摧餉適感風寒發熱惡寒頭疼而體痛至七日後變成溫瘧發時驚駭異常日哺見鬼如二歲童子大者數十纏繞腰間悚懼不堪至晚方散已五六發矣治者皆篇鬼瘧議用截法然猶未決過余診視六脈洪滑余曰此係痰涎內積非真邪祟外干也古語有云無痰不成瘧又曰怪病多屬痰蓋痰乃液所化液乃腎所主必平日腎水素弱虛火獨旺煎熬精液成痰攻衝經絡而為瘧之根本況腰原屬腎其液化痰更無疑矣惟先服其痰俟痰去而瘧鬼自除然後培補本原至為切當遂用小柴胡湯加茯苓枳殼檳榔臨服調元明粉三錢頃刻便潤下積痰甚快至明日而瘧鬼俱絕
부친께서 강우 태사 부계암의 부인을 치료하였다. 오래 설사가 그치지 않고 맥이 지미하였는데 미는 양쇠, 지는 음승이므로 비토가 허하고 진양이 쇠한 것이다. 비허는 중을 보해야 토가 왕성해지고 양쇠는 중을 따뜻하게 해야 한이 풀린다. 사군자에 강·계를 더하여 두 제를 먹였으나 추위를 타는 것이 여전하고 설사도 줄지 않아 토 가운데 양이 왕성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수 가운데 화가 오르지 않는 것임을 알았다. 소화의 기가 비로 올라 찌게 도와야 토의 습을 막을 수 있으므로 인삼 3돈·백출 5돈·육계 1돈·부자 1돈을 썼다. 몇 첩에 점차 나아 뒤에 팔미환으로 조리하여 안정되었다. 춘원 당차중은 아랫배와 배꼽 옆이 찌르듯 아프고 옆구리와 가슴까지 이어져 앉고 눕기 불안하였다. 육맥이 현활하고 깊이 짚으면 삽하였다. 식후 성을 내어 태음을 채우고 차게 하여 간기가 울체되고 펴지지 않아 가슴이 괴롭고 아픈 것이었다. 경에서 목울은 펼친다고 하였으니 울체를 풀면 통증이 저절로 멎는다. 이진탕에 평위산을 합하고 지각·목향을 더하니 한 번 복용하여 나았다. 말릉 나명구는 번부의 명을 받아 군량을 독촉하다 풍한을 받아 발열·오한·두통·신통이 있었다. 7일 뒤 온학으로 바뀌어 발작할 때 몹시 놀라며 해질 무렵 두 살 아이만 한 귀신 수십이 허리에 감겨 있는 것을 보고 견딜 수 없이 두려워하다 저녁이 되어야 흩어지는 일이 이미 대여섯 번 있었다. 치료자들은 모두 귀학이라 하여 끊는 법을 의논하였으나 결정하지 못하고 나에게 보였다. 육맥이 홍활하여 나는 담연이 안에 쌓인 것이지 진짜 사수가 밖에서 침범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담이 없으면 학질이 되지 않고 괴병은 흔히 담에 속한다는 옛말이 있다. 담은 액이 변한 것이며 액은 신이 주관하므로 평소 신수가 약하고 허화만 왕성하여 정액을 달여 담이 되어 경락을 치밀며 학질의 근본이 된 것이다. 허리는 본래 신에 속하니 그 액이 담으로 변한 것은 더욱 의심이 없다. 먼저 담을 제어하여 없애면 학질과 귀신이 저절로 사라지므로 뒤에 본원을 기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소시호탕에 복령·지각·빈랑을 더하고 먹을 때 원명분 3돈을 타니 잠시 뒤 대변이 윤택하게 내려가 쌓인 담을 매우 시원하게 배출하였다. 이튿날 학질과 귀신이 모두 없어졌다.
句容孔太師隨朝使者每至午余無端見鬼恐懼昏沉夜半發熱黎明始蘇諸醫用安神養血之藥繼投導痰順風之劑均無效驗邀家君診視兩手脈現滑數此因沉湎於酒酒能生濕濕能助火火濕相合而成痰痰迷心竅則見鬼即以橘紅貝母天花粉干菖蒲黃苓麥冬山梔竹茹苦丁茶二服而神清鬼沒四劑而平復如初
구용의 공 태사를 따라 조정에 가는 사자는 한낮이 지난 뒤 까닭 없이 귀신을 보고 두려워하며 혼침하고 한밤에 열이 나서 새벽에야 깨어났다. 여러 의사가 안신양혈약을 쓰고 이어 도담순풍약을 주었으나 모두 효과가 없어 부친을 불렀다. 양손 맥이 활삭하여 술에 빠졌기 때문임을 알았다. 술은 습을 만들고 습은 화를 도와 화습이 합쳐 담이 되며 담이 심규를 가리면 귀신을 본다. 귤홍·패모·천화분·건창포·황금·맥동·산치·죽여·고정차를 두 번 복용하니 정신이 맑아지고 귀신이 사라졌으며 네 제에 예전처럼 회복되었다.
胡文宰子舍向患怯弱乙巳季夏方飲食後忽腹中絞痛自謂著暑調天水散一服不愈又疑停食進山查麥芽湯其痛更增發厥昏暈無有停歇中脘硬痛手不可近兩眼露白舌縮譫語狀若神靈延醫調治或日大便實而用□樸或云積暑而用芩連諸藥雜投病勢益增當事者咸疑懼無措余獨謂虛症力主大補之劑蓋平昔脈弦洪兼數且右手更旺今也轉數成遲左手更覺無本根此至虛有盛候恁脈合症之良法急煎理中湯加陳皮半夏與服庶胃氣充肺元陽流動總有蓄積盤踞方隅定然向風自化果一劑而稍安數劑而全愈
호문재의 아들은 예전부터 허약하였다. 을사년 늦여름 막 식사한 뒤 갑자기 배가 뒤틀리듯 아파 스스로 더위를 먹었다고 여겨 천수산을 한 번 타 먹었으나 낫지 않았다. 식체를 의심하여 산사·맥아탕을 먹으니 통증이 더하고 궐증과 혼훈이 끊이지 않았다. 중완이 단단하고 아파 손을 가까이할 수 없으며 두 눈의 흰자가 드러나고 혀가 움츠러들며 헛말하여 신령에 들린 듯하였다. 의사를 불러 조치하니 어떤 이는 대변이 실하다 하여 □·후박을 쓰고 어떤 이는 더위가 쌓였다 하여 황금·황련을 썼다. 여러 약을 섞어 주어 병이 더 심해지자 관계자들은 모두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어쩔 줄 몰랐으나 나만 허증이라 하며 대보를 강력히 주장하였다. 평소 맥이 현홍하면서 삭하고 오른손이 더욱 왕성하였는데 지금은 삭이 지로 바뀌고 왼손은 더욱 뿌리가 없었다. 이는 지극한 허에 성한 증후가 있는 것으로 맥에 의거해 증을 합하는 좋은 방법이다. 급히 이중탕에 진피·반하를 더해 달여 주어 위기가 충실하고 원양이 흐르면 쌓인 것이 한쪽을 차지해도 반드시 바람을 따라 저절로 풀릴 것이다. 과연 한 제에 조금 편해지고 몇 제에 완전히 나았다.
慈溪天生楊先生館江灣鎮時值盛暑壯熱頭痛神昏發斑狂亂不畏水火數人守望猶難禁止甚至舌黑刺高環口青暗氣促眼紅譫語直視迎余往治余見眾人環繞蒸汗如雨病狂躁無有休息尋衣摸床正在危候強按診脈幸尚未散急取筋頭纏綿用新汲水抉開口鑿去芒剌即以西瓜與之猶能下咽乃用大桶置涼水並灑濕中間空地設席於地扶忠者臥上再用青布丈許摺作數層浸濕搭在心間便能云頓入清涼世界六字語雖模糊亦為吉兆遂用大劑白虎湯與服加黃芩山梔元參半日之間狂奔亂走目無交睫此藥人口熟睡如泥鄉人盡曰休矣余曰此胃和而睡著也不可驚覺自日中至半夜方蘇其病遂愈
자계의 양천생 선생이 강만진에 머물던 한여름에 큰 열과 두통, 혼미와 발반이 있고 미쳐 날뛰며 물과 불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지켜도 막기 어렵고 혀가 검으며 가시가 높고 입 둘레가 푸르고 어두우며 숨이 급하고 눈이 붉고 헛말하며 곧게 보아 나를 불렀다. 여러 사람이 둘러싸 땀이 비처럼 나고 환자는 쉬지 않고 광조하며 옷을 더듬고 침상을 만져 매우 위태로웠다. 억지로 눌러 맥을 짚으니 다행히 아직 흩어지지 않았다. 급히 젓가락 끝에 솜을 감아 새로 길은 물을 쓰며 입을 벌리고 혀의 가시를 걷어 낸 뒤 수박을 주니 아직 삼킬 수 있었다. 큰 통에 찬물을 담고 가운데 빈 땅도 적신 뒤 자리를 깔고 환자를 부축해 눕혔다. 푸른 천 한 장가량을 여러 겹 접어 적셔 가슴에 얹으니 ‘문득 청량세계에 들었다’는 여섯 글자를 말할 수 있었다. 말은 흐릿해도 길조였다. 대량의 백호탕에 황금·산치·원삼을 더해 주었다. 반나절 동안 미친 듯 뛰어다니며 눈을 붙이지 못했는데 약이 입에 들어가자 진흙처럼 깊이 잤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끝났다고 하였으나 나는 위가 조화로워 잠든 것이니 놀라 깨우지 말라 하였다. 한낮부터 한밤까지 자고 깨어 병이 나았다.
吳明初平素體弱因年來憂鬱忽然嘔血自蚤至慕百餘碗兩目緊閉四肢畏寒冷汗如注湯藥人口隨即吐出舉族驚狂迎余視之幸病雖為急脈尚未散喘促猶緩一線生機尚可挽回若以血藥投治則不及矣蓋初則血隨氣上今則氣隨血脫語云有形之血不能速生幾微之氣在所急固此陽生陰長之道寓諸靈素扶陽抑陰之權具於羲易誠以陽者生之本陰者死之基故充塞四大溫潤肌肉皆賴此陽氣耳今脈氣虛微天真衰敗也汗雨不收衛氣散失也四肢畏冷虛陽不能旁達也兩目緊閉元神不能上注也藥入即吐繼之以血者乃嘔傷胃脘守榮之血不藏也為再用湯藥恐激動其吐宜設計以取之遂用人參一兩內芨四錢均為細末米飲調丸如櫻桃大含化自黃昏至一更約用一半湯飲方通血亦不吐至明日神思稍清脈氣夫靜似芤似革參互不調全無胃氣盡屬陰亡於中陽散於外之象乃速煎參附進之以追散失之元陽八日內記服人參二斤附子五枚而元氣頓充脈始收斂至今強健倍常徜此時稍有疑慮從任淺劑焉能挽回其真氣耶
오명초는 평소 몸이 약하고 근래 근심과 울체로 갑자기 피를 토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100여 사발이었다. 두 눈을 꼭 감고 사지가 추위를 타며 식은땀이 쏟아지고 탕약이 입에 들어가면 곧 토하니 온 집안이 놀라 나를 불렀다. 다행히 병은 급하지만 맥이 아직 흩어지지 않았고 천촉도 완만하여 한 줄기 생기를 돌이킬 수 있었다. 혈약으로 치료하면 미치지 못한다. 처음에는 혈이 기를 따라 올라갔으나 이제 기가 혈을 따라 탈한다. 형체 있는 혈은 빨리 생기게 할 수 없고 미약한 기를 급히 굳혀야 한다는 말은 양이 생겨 음이 자라는 도로 《영추》·《소문》에 있으며, 부양억음의 권도는 복희의 역에 갖추어져 있다. 양은 생의 근본이고 음은 죽음의 바탕이므로 사대를 채우고 기육을 따뜻하고 윤택하게 하는 것은 모두 양기에 의지한다. 지금 맥기가 허미한 것은 천진이 쇠한 것이고, 땀이 비처럼 거두어지지 않는 것은 위기가 흩어진 것이며, 사지가 찬 것은 허양이 곁으로 이르지 못하는 것이고, 눈을 꼭 감는 것은 원신이 위로 주입되지 못하는 것이다. 약이 들어가면 토하고 피가 이어지는 것은 구토로 위완이 상하여 영을 지키는 혈이 저장되지 못하는 것이다. 탕약을 다시 쓰면 구토를 자극할까 두려워 방법을 세웠다. 인삼 1냥과 내급 4돈을 모두 곱게 가루 내 미음으로 앵두 크기의 환을 만들어 머금어 녹이게 하였다. 황혼부터 초경까지 약 절반을 쓰니 탕음이 비로소 통하고 피도 토하지 않았다. 이튿날 정신은 조금 맑아졌으나 맥기가 고요하지 않고 규맥 같기도 혁맥 같기도 하며 뒤섞여 조화롭지 않고 위기가 전혀 없었다. 이는 모두 안에서 음이 망하고 밖에서 양이 흩어지는 모습이었다. 급히 인삼·부자를 달여 흩어진 원양을 뒤쫓아 붙들었다. 8일 동안 인삼 2근과 부자 5개를 복용하니 원기가 곧 충실해지고 맥이 비로소 수렴하였다. 지금까지 평소보다 훨씬 건장하다. 당시 조금이라도 의심하여 가벼운 약에 맡겼다면 어찌 진기를 돌이켰겠는가.
上海邑尊陳虞門慕賓吐血不已或用犀角地黃湯降火或以加味四物湯滋陰絕谷數日氣喘隨斃延家君診治六脈虛弱精神怠倦明屬思慮過度脾元虧損所以氣衰則火旺火旺則血沸而上溢也血脫則氣孤氣孤則胃閉而絕谷也法當甘以脾脾溫以啟胃甘溫相濟脾胃調和庶元陽得以扶持氣血有所生長耳遂用四物湯加米仁石斛麥冬五味廣皮桔棚數劑而愈
상해 읍존 진우문의 막빈은 토혈이 멎지 않아 서각지황탕으로 강화를 하거나 가미사물탕으로 자음하였다. 며칠 곡식을 끊어 숨차며 죽으려 하여 부친을 불렀다. 육맥이 허약하고 정신이 피로하여 생각이 지나쳐 비원을 손상한 것이 분명하였다. 기가 쇠하면 화가 왕성하고 화가 왕성하면 혈이 끓어 위로 넘친다. 혈이 탈하면 기가 외롭고 기가 외로우면 위가 닫혀 곡식을 끊는다. 단맛으로 비를 기르고 따뜻함으로 위를 열어 감온이 서로 도와 비위가 조화로워져야 원양이 부축되고 기혈이 생장한다. 사물탕에 미인·석곡·맥동·오미·광피·길붕을 더하여 몇 제에 나았다.
吳淞一女在閨時患左眼上胞內生疙瘩日漸長大下垂遮目紅腫重墜痛楚異常端科者始以驅風治標繼以養血治本遷延歲月未獲稍減余診其脈左關弦強搏指右關媽澀予曰目廓應肝內輪應脾肝脾二臟性喜疏利故憂思傷脾則氣結而血瘀恚怒傷肝則氣鬱而熱生由是火炎血沸上騰空竅目廓積閉火旺赤腫也治宜疏中宮之滯瀉東方之實則鬱開火降瘀化腫消耳用龍膽瀉肝湯數帖疙瘩漸消復以六味丸料加龍膽草白蒺藜決明子牡蠣與滋陰之中兼以清火之品逾日而平復
오송의 한 여자는 혼인 전 왼쪽 윗눈꺼풀 안에 멍울이 생겨 날마다 커지고 아래로 처져 눈을 가렸다. 붉게 붓고 무겁게 처지며 통증이 유별났다. 전문가는 처음 거풍으로 표를 치료하고 뒤에 양혈로 본을 치료하였으나 세월을 끌어도 조금도 줄지 않았다. 내가 보니 왼쪽 관맥은 현강하여 손가락을 치고 오른쪽 관맥은 삽하였다. 나는 눈의 곽은 간에 응하고 안쪽 윤은 비에 응하며 간비 두 장은 소통하기를 좋아한다고 하였다. 근심과 생각이 비를 상하면 기가 맺히고 혈이 어체되며 분노가 간을 상하면 기가 울체되고 열이 생긴다. 이로써 화가 타고 혈이 끓어 위로 빈 구멍에 올라 눈곽에 쌓여 막히고 화가 왕성하여 붉게 붓는다. 중궁의 정체를 소통시키고 동방의 실함을 사해야 울체가 열리고 화가 내려가며 어혈이 풀리고 붓기가 사라진다. 용담사간탕 몇 첩에 멍울이 점차 줄었다. 다시 육미환 재료에 용담초·백질려·결명자·모려를 더하여 자음 가운데 청화약을 겸하니 날이 지나 회복되었다.
周文怕鄉居課農偶發寒熱解表一劑轉覺神思恍惚日增倦怠目呆如愚語言錯亂晝夜呻吟六脈微弱不堪重按余曰是症之因必有大驚損傷神氣故現神鬼飛越之象蓋神藏於心心主鎮靜魂藏於肝肝主驚駭故驚則氣亂心失鎮靜之當神氣孤浮邪入神明之窟由是魂無安宅飄蕩於外若能安神益氣固守飛揚之真自然魂隨神攝可復清明之職丹書所謂神是性兮氣是命神不外馳氣自定者也遂服歸脾湯數帖靈動如初自述病概緣溪頭失足從高墜下遂覺神氣越出精采不定作見遊魂鬚眉狀貌酷肖己身約長尺許或從空行走或相依同寢所謂魂離吾體斷不誣矣自後稍有震怒驚呆復作屢用前方獲效後遷於城道逢形人因而受驚至晚忽大呼殺入舉家駭異議用前藥值余適至復診其脈弦強搏指較前大異此正虛祟乘之病非從前神脫魂離者比也治當清痰降火祟是不作若用參耆膠固邪氣將成痼疾矣乃以溫膽湯加蘇子黃芩山梔瓜蔞服即熟睡醒來諸病如失但覺倦怠乃淡粥調養數日後仍服歸脾湯而全愈則知鬼豈真鬼那
주문파는 시골에 살며 농사를 감독하다 우연히 한열이 생겨 해표약 한 제를 먹자 도리어 정신이 흐릿해지고 날마다 피로하며 눈이 멍하고 말이 어지럽고 밤낮 신음하였다. 육맥이 미약하여 깊이 누르기 어려웠다. 나는 원인에 반드시 큰 놀람이 있어 신기를 상했으므로 신혼이 날아가는 모습이 나타났다고 하였다. 신은 심에 저장되고 심은 진정을 주관하며 혼은 간에 저장되고 간은 놀람을 주관한다. 놀라면 기가 어지러워 심이 진정의 마땅함을 잃고 신기가 외로이 떠 사기가 신명의 굴에 들어가므로 혼이 편히 살 곳이 없어 밖으로 떠돈다. 안신익기하여 날아가는 진기를 굳게 지키면 혼이 저절로 신을 따라 거두어져 청명의 직책을 회복할 수 있다. 단서에서 신은 성이고 기는 명이며 신이 밖으로 달리지 않으면 기가 저절로 안정된다고 한 것이다. 귀비탕 몇 첩을 먹고 예전처럼 영민해졌다. 스스로 병의 경과를 말하기를 개울에서 발을 헛디뎌 높은 데서 떨어진 뒤 신기가 밖으로 나간 듯하고 정신이 안정되지 않았으며, 떠도는 혼을 보았는데 수염·눈썹·모습이 자기와 매우 같고 길이가 한 자쯤 되어 공중을 다니거나 함께 기대어 잤다고 하였다. 이른바 혼이 몸을 떠난다는 것이 참으로 허언이 아니었다. 뒤에 조금만 격노해도 놀라 멍한 것이 다시 생겨 앞 처방으로 거듭 효과를 얻었다. 뒤에 성 안으로 이사하여 길에서 형인을 만나 놀란 뒤 저녁에 갑자기 사람을 죽인다고 크게 외쳐 온 집안이 놀랐다. 앞의 약을 쓰려던 때 마침 내가 와서 다시 맥을 보니 현강하여 손가락을 쳐 예전과 크게 달랐다. 이는 정기가 허한 틈에 수가 탄 병으로 예전의 신탈혼리와는 다르다. 청담강화해야 수가 일어나지 않으며 인삼·황기를 쓰면 사기를 굳혀 고질병이 될 것이다. 온담탕에 소자·황금·산치·과루를 더하니 먹고 곧 푹 자고 깨어나 여러 병이 사라졌다. 피로만 느껴 묽은 죽으로 며칠 조양한 뒤 다시 귀비탕을 먹어 완전히 나았으니 귀신이 어찌 참된 귀신이겠는가.
蔞江金公採謀秋患痢晝夜百餘次赤膿腥穢嘔惡不食口渴發熱向用滯下法竟難奏效忽冷汗不止四肢如冰氣促神昏延余往治外證雖逆六脈尚存乃煎附子埋小湯服二劑四肢漸溫自汗漸收又服數帖精神充旺痢下頓除若抱痢之赤白口渴身熱再投涼藥氣將脫矣故曰瀉虛補實神失其室此之謂也
누강의 금공채는 가을에 이질을 앓아 밤낮 100여 번 붉은 고름이 나오고 비리고 더러우며 구역하여 먹지 못하고 갈증과 발열이 있었다. 체하법으로도 효과를 얻지 못하다 갑자기 식은땀이 그치지 않고 사지가 얼음처럼 차며 숨이 급하고 혼미하여 나를 불렀다. 외증은 역하나 육맥이 아직 있어 부자이중탕을 달여 두 제를 먹이니 사지가 점차 따뜻해지고 자한이 거두어졌다. 다시 몇 첩에 정신이 충실해지고 이질이 곧 없어졌다. 이질의 적백과 갈증·신열에 얽매여 찬 약을 다시 주었으면 기가 탈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허를 사하고 실을 보하면 신이 그 집을 잃는다는 말이 이것이다.
淮右章公克壬寅春客遊海邑患溫病發熱邪氣再傳壯熱神昏濈濈自汗眼紅面赤口渴舌黑胸膈滿悶勢甚危殆醫者泛用清熱輕劑以冀倖免余曰春溫之溫邪伏藏於冬觸發於春隨天氣化寒鬱為熱此時令之熱也脈來洪大舌黑口乾灼熱汗流神思昏□此脈症之熱也當速煎甘寒大劑清徹里邪庶不使胃熱腐化若從任芩連諸藥恐一杯之水難救車薪之火勢必自焚矣立方用石膏五錢麥冬二錢知母花粉各一錢五分山梔一錢甘草五分加竹葉粳米燈心為引二劑而神爽熱除
회우의 장공극은 임인년 봄 해읍에 객지로 왔다가 온병으로 발열하였다. 사기가 다시 전해져 큰 열과 혼미, 줄줄 나는 자한, 붉은 눈과 얼굴, 갈증과 검은 혀, 흉격의 그득함으로 매우 위태로웠다. 의사는 청열하는 가벼운 약을 함부로 써 요행히 면하기를 바랐다. 나는 춘온의 온사는 겨울에 잠복하여 봄에 촉발되고 천기를 따라 변화하여 한이 울체되어 열이 된 것이니 이는 시령의 열이라고 하였다. 맥이 홍대하고 혀가 검고 입이 마르며 타는 듯 뜨겁고 땀이 흐르고 정신이 혼미한 것은 맥과 증의 열이다. 빨리 감한한 약을 대량으로 달여 속의 사기를 철저히 맑혀야 위열이 썩어 변화하지 않게 한다. 황금·황련 등에만 맡기면 물 한 잔으로 수레의 땔나무 불을 구하기 어려워 반드시 스스로 타 버릴 것이다. 석고 5돈, 맥동 2돈, 지모·화분 각 1돈 5푼, 산치 1돈, 감초 5푼에 죽엽·멥쌀·등심을 인경약으로 더하니 두 제에 정신이 상쾌하고 열이 없어졌다.
大名司理陳玉山素患胸膈脹悶四肢頑麻六脈堅勁似芤類革咸屬沖和虛損清陽散耗之症用六君子湯加益智肉桂以培腳並進金匱腎氣丸一料已惡粒米不進者二十餘日六脈頓退重接豁然予曰脈為神機神為氣立全賴胃氣充沛者也今脈息無神則知鬱結傷脾脾病傳胃俾磅礴浩大之氣停留鬱滯於中所以胃脘否滿者脾主中州也右脅脹痛者坤出西南也況木雖條達依土為生土既磽薄木無生長此物理中之常耳故鬱怒太過不但重損脾陰而肝亦自病所以不能藏血而血瘀血去而陰傷陰傷則陽無以自主將有飛越之虞也速宜培養元神不使渙散乃可萬餘遂用附子理中湯數帖食能慚進後用六君子湯兼八味丸而安
대명의 사리 진옥산은 평소 흉격이 부풀고 답답하며 팔다리가 완마하였다. 육맥이 단단하고 강하며 규맥과 혁맥 같아 모두 충화가 허손되고 청양이 흩어져 소모된 증이었다. 육군자탕에 익지·육계를 더해 비를 기르고 금궤신기환 한 제를 함께 먹였으나 이미 쌀 한 톨도 먹지 못한 지 20여 일로 육맥이 갑자기 물러나고 깊이 누르면 텅 비었다. 나는 맥은 신의 기틀이고 신은 기로 서므로 전적으로 위기가 충실함에 의지한다고 하였다. 지금 맥에 신이 없으니 울결이 비를 상하고 비병이 위에 전하여 넓고 큰 기가 속에 머물고 막힌 것을 알 수 있다. 위완이 막혀 그득한 것은 비가 중주를 주관하기 때문이고 오른쪽 옆구리가 부풀고 아픈 것은 곤이 서남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목은 뻗어 나가도 토에 의지해 사는데 토가 메마르면 목이 자라지 못하는 것은 물리의 상도이다. 그러므로 울노가 지나치면 비음만 심하게 손상하는 것이 아니라 간도 스스로 병들어 혈을 저장하지 못하여 혈이 어체된다. 혈이 가면 음이 상하고 음이 상하면 양이 스스로 주재하지 못해 날아갈 염려가 있으니 빨리 원신을 길러 흩어지지 않게 해야 만전이다. 부자이중탕 몇 첩에 음식을 점차 먹었고 뒤에 육군자탕과 팔미환을 겸하여 안정되었다.
文學包曰余因食蟹腹痛發則厥逆逾月不已延余商治述前服平胃二陳繼服薑桂理中不但無效反增脹痛余曰痛非一端治亦各異感寒者綿綿無間因熱者作止不當二者判若霄壤尊恙痛勢有時脈帶沉數其為火鬱無疑雖因食蟹然寒久成熱火鬱於中熱鬱似寒厥冷於外此始末傳變之道明訓可考察何執泥虛寒漫投剛劑是以火濟火求愈豈不難哉以四逆散加酒炒黃連一劑而愈
문학 포왈여는 게를 먹은 뒤 복통하여 발작하면 궐역하고 한 달 넘게 그치지 않아 나를 불렀다. 앞서 평위·이진을 먹고 이어 강계·이중을 먹었으나 효과가 없고 도리어 창통이 늘었다고 하였다. 나는 통증은 한 가지가 아니고 치료도 다르며 한을 받은 것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열로 인한 것은 발작과 멎음이 일정하지 않아 둘은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고 하였다. 지금 통증에 때가 있고 맥이 침삭하므로 화울이 틀림없다. 게를 먹어 생겼으나 한이 오래되어 열이 되고 화가 속에 울체되며 열울이 한과 비슷하여 겉으로 궐랭한 것이다. 처음과 끝에 전변하는 도리는 명훈에서 살필 수 있는데 어찌 허한에 얽매여 강한 약을 함부로 주는가. 이는 불에 불을 보태는 것이니 낫기를 구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사역산에 술에 볶은 황련을 더하니 한 제에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