舊德堂醫案序

嘗聞炎帝之澤壽世而資生堯舜之政仁民而及物利濟天下其揆一也然愛民者以親親為先壽世者以老老為務元晏先生云人受先人之體有八尺之服不知醫事此遊魂耳雖有忠孝之心慈惠之念君父危困赤子塗地何以濟之聖賢所以精思極論而盡其理耳餘嘗有志於斯奈周旋皇路勞瘁簿書每嘆元晏高風有慚蘇仟奇行也及承乏雲門觀風海邑有修之李君者年富而學博養邃而識純其決病也如洞垣之照其投劑也若大還之丹無論沉疴怪病卒能返本回真仁風翔洽遐聲稱久矣余之所不能去於心者辛丑季秋余將入覲
일찍이 염제의 은택은 세상의 수명을 늘리고 생명을 돕고, 요순의 정치는 백성을 어질게 대하여 만물에 미치니 천하를 이롭게 구제하는 법도는 같다고 들었다. 그러나 백성을 사랑하는 사람은 친족을 친애하는 것을 앞세우고 세상의 수명을 늘리는 사람은 노인을 공경하는 데 힘쓴다. 원안 선생은 사람이 선조의 몸을 받고 여덟 자의 몸을 지니고도 의술을 모르면 떠도는 혼일 뿐이라고 하였다. 충효의 마음과 자혜의 생각이 있어도 임금과 아버지가 위태롭고 어린 백성이 쓰러질 때 무엇으로 구제하겠는가. 성현이 깊이 생각하고 끝까지 논하여 그 이치를 다한 까닭이다. 나도 일찍이 여기에 뜻이 있었으나 벼슬길을 다니며 문서에 지쳐 매번 원안의 높은 풍모를 탄식하고 소선의 기이한 행실에 부끄러워하였다. 운문의 직임을 맡아 해읍의 풍속을 살피게 되니 수지라는 이군이 있었는데 나이가 한창이고 학식이 넓으며 수양이 깊고 식견이 순수하였다. 병을 판별하는 것은 담장 너머를 꿰뚫어 보는 듯하고 약을 주는 것은 대환단 같아서 오래된 병과 괴이한 병을 막론하고 끝내 근본과 참됨으로 되돌리니 인풍이 두루 미치고 먼 곳까지 명성이 전해진 지 오래였다. 내 마음에서 잊을 수 없는 일은 신축년 늦가을 내가 조정에 들어가 뵈려 할 때이다.
彤廷會家君忠泄神疲形瘁已成痼疾恐不起其如會同大典已任北山之後報政長征曷紓南顧之憂自度此身不忠不孝何自立於大地間也幸李君以補天之功干旋造化展指上陽春而沉寒忽散潑壺中甘露而元氣頓光起家君於萬死一生之危依然堂上俾不肖於燕山楚水之遙還膽膝下微李君德澤不及此余□恩有素銘德無涯聊仿古人式廬下車之敬旌其堂曰今日東垣以著培杏弘林步武乎易水師弟也繼而視膳失節泄瀉復作病入膏肓痛難身代雖先子盡其天年而李君德意之厚與道望之隆深足追述也孰謂和緩才名有遜於秦晉兩君哉余故爰載始末附諸簡端以志感云若夫活人功用自有筆舌可紀是刻特其一班耳
붉은 조정에 나아가려던 때 마침 부친께서 설사를 앓아 정신이 피로하고 몸이 수척하여 고질병이 되어 일어나지 못할까 두려웠다. 회동의 큰 의례에 이미 북산의 책임을 맡았고 정사를 보고하는 먼 길에 나서야 하니 어찌 남쪽을 돌아보는 근심을 풀겠는가. 스스로 이 몸이 충성도 효도도 하지 못하니 어찌 대지 사이에 서겠는가 생각하였다. 다행히 이군이 하늘을 깁는 공으로 조화를 돌려 손끝에 봄볕을 펴니 깊은 한기가 갑자기 흩어지고 병 속의 감로를 뿌리니 원기가 문득 빛났다. 부친을 만 번 죽을 가운데 한 번 살아날 위기에서 일으켜 여전히 당상에 계시게 하였으므로 불초한 나도 연산과 초수의 먼 곳에서 무릎 아래를 바라볼 수 있었다. 이군의 덕택이 아니면 여기에 이르지 못하였다. 나는 평소 은혜를 입어 그 덕을 새김에 끝이 없으므로 옛사람이 집 앞에서 수레의 가로대를 잡고 수레에서 내리던 공경을 본받아 그 당에 ‘오늘날의 동원’이라고 표창하였다. 살구 숲을 기르고 넓혀 역수의 사제와 발걸음을 같이함을 드러낸 것이다. 이어 식사를 돌보는 데 절도를 잃어 설사가 다시 생기고 병이 고황에 들어가니 몸으로 대신하지 못하는 것이 괴로웠다. 선친께서 천수를 다하셨으나 이군의 두터운 덕의와 높은 도망은 깊이 추술할 만하다. 누가 의화와 의완의 재능과 명성이 진나라와 진나라의 두 사람보다 못하다고 하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일의 처음과 끝을 적어 책머리에 붙여 감사를 기록한다. 사람을 살리는 공용은 저절로 글과 말로 기록할 수 있으니 이 간행본은 그 한 부분일 뿐이다.
西秦田元愷華臣氏書於云間署中
서진의 전원개 화신씨가 운간 관아에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