余奉命視學江左 , 按臨蘇屬 , 蘇屬人文淵藪 。 校士之暇 , 留心博訪 。 震澤吳生金壽 , 以所纂 《 三家醫案 》 請序於余 。 三家者 , 葉天士 、 薛生白 、 繆宜亭三先生也 。 三先生皆吳中往哲 , 素聞其治病之神 , 如磁引針 , 如鼓應桴 。 今閱其方案 , 靈機活潑 , 議論精醇 , 誠非學有根源 , 不克臻此超詣 。 然非吳生拾遺補缺 , 匯萃成編 , 財當日斟今酌古 , 殊途同歸之理 , 何由觀其會通 ? 余故心折三先生 , 而並以此多吳生也 。
나는 명을 받들어 강좌의 학정을 살피다가 소주 관할 지역에 이르렀다. 소주 지역은 인문이 모이는 곳이므로 선비들을 시험하는 여가에 마음을 기울여 널리 물었다. 진택의 오금수 생이 자신이 편찬한 『삼가의안』의 서문을 내게 청하였다. 삼가는 엽천사·설생백·무의정 세 선생이다. 세 선생은 모두 오중의 옛 현인으로, 병을 다스리는 신묘함이 자석이 바늘을 끌고 북이 북채에 응하는 것 같다고 평소 들어왔다. 이제 그 처방과 의안을 보니 영묘한 기틀이 활발하고 의론이 정밀하고 순수하여, 참으로 배움에 근원이 없으면 이처럼 뛰어난 경지에 이를 수 없다. 그러나 오생이 빠진 것을 줍고 모자란 것을 보충하여 모아 책으로 만들지 않았다면, 당시 현재를 헤아리고 옛것을 참작하여 길은 달라도 같은 곳에 이르는 이치를 어찌 두루 통하여 볼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세 선생에게 마음으로 탄복하며, 아울러 이 일로 오생도 높이 평가한다.
吳生博學好古 , 工詩 , 善六法 , 兼通醫理 , 為吳郡張容庭入室弟子 。 容庭者 , 繼三家而起者也 。 生於醫 , 固無俟於余言 , 而余竊有一言為生進者 。 蓋醫之道 , 下流為藝 , 上通於儒 。 軒歧以來 ,《 內經 》 尚矣 , 而後賢輩出 , 代有成書 。 要其旨 , 虛實以質異 , 情性以因感 , 風氣以變生 。 所謂窮陰陽升降之微 , 悉運會轉移之故 , 五行盡其變 , 五土異其宜 , 實足與天地權生息之機 , 為國家培太平之本 , 醫之學不亦大哉 !
오생은 박학하고 옛것을 좋아하며 시에 능하고 육법을 잘하며 의리에도 통하여, 오군 장용정의 입실제자이다. 용정은 삼가를 이어 일어난 사람이다. 오생의 의학에는 본래 내 말을 기다릴 것이 없지만, 내가 그를 위해 드릴 말 한 가지가 있다. 의학의 도는 아래로 흐르면 기술이 되고 위로 통하면 유학에 이른다. 헌원과 기백 이래 『내경』이 오래되었으며, 뒤에 어진 이들이 잇달아 나와 대대로 책을 이루었다. 그 뜻을 요약하면 허실은 바탕에 따라 달라지고 정성은 느끼는 인연에 따라 달라지며 풍기는 변화에 따라 생긴다는 것이다. 이른바 음양이 오르내리는 미묘함을 궁구하고 운회가 옮겨가는 까닭을 다 알아, 오행의 변화를 다하고 다섯 토질에 알맞은 것을 달리하는 것이다. 실로 천지와 더불어 생장하고 쉬는 기틀을 헤아리고 국가를 위해 태평의 근본을 북돋울 만하니, 의학의 배움이 또한 크지 않은가!
余望吳生 , 能近守師承 , 遠宗前哲 , 功深養到 , 實至名歸 。 有以傳三先生之書 , 必有以傳三先生之學 , 則此集其蒿矢焉耳 。 故於請序也書以勖之 。 並囑其持示容庭 , 其不以使者之言為河漢否 ?
나는 오생이 가까이로는 스승에게서 전수받은 것을 지키고 멀리로는 옛 현인을 본받아, 공을 깊이 들이고 함양을 충분히 하여 실상이 이르면 명성이 따르기를 바란다. 세 선생의 책을 전할 수 있다면 반드시 세 선생의 학문도 전할 수 있을 것이니, 이 문집은 그 첫 화살일 뿐이다. 그러므로 서문을 청할 때 글을 써서 그를 권면한다. 아울러 이 글을 가지고 용정에게 보여주도록 부탁하니, 그가 사자의 말을 허황하게 여기지는 않겠는가?
道光紀元歲次辛巳十月既望賜進士及弟
도광 원년 세차 신사 10월 기망, 사진사급제
誥授光祿大夫南書房行走戶部左侍郎
고수 광록대부 남서방행주 호부좌시랑
提督江蘇全省學政加三級歸安姚文田撰
제독강소전성학정 가삼급 귀안 요문전이 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