婦人一科 , 古人稱以為難 , 以其嗜欲多於男子 , 又多經脈胎產一途 , 感邪且十倍 , 加以稟性恆執 。 余早歲學醫 , 求產科書 , 如 《 產寶 》、《 產經 》、《 良方 》、《 濟陰 》 等書 , 靡不周覽 , 往往汗漫雜出 。 惟吾家薛氏所傳 《 濟陰萬金書 》 最為得其要領 , 余更為銓次 , 始於調經 , 次以胎產 , 終以雜症 , 方有字號者 , 乃日常必用之方 , 吾家之秘也 。 家無恆產 , 此為恆業 , 囑我後人不可輕視 , 雖至親誼友 , 慎勿轉觀 。
부인과 한 분야를 옛사람들이 어렵다고 한 것은 여자의 기호와 욕망이 남자보다 많고, 또 월경과 임신·출산의 한 갈래가 더 있어 사기를 받는 것이 열 배나 되며, 타고난 성품이 늘 고집스럽기 때문이다. 나는 젊어서 의학을 배워 산과의 책을 구하면서 《산보》·《산경》·《양방》·《제음》 등의 책을 두루 보지 않은 것이 없었으나, 흔히 내용이 넓고 흩어져 뒤섞여 있었다. 오직 우리 집안의 설씨가 전한 《제음만금서》가 가장 요령을 얻었으므로 내가 다시 가려 차례를 정하여 조경으로 시작하고 임신·출산을 다음에 놓으며 잡증으로 끝맺었다. 처방에 글자 표지가 있는 것은 날마다 반드시 쓰는 처방으로 우리 집안의 비밀이다. 집안에 일정한 재산은 없으나 이것을 항업으로 삼으니, 우리 후손에게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당부한다. 지극히 가까운 친척이나 의리 있는 벗이라도 삼가 돌려보이지 말라.
大明隆慶三年菊月 , 崑山平橋鄭敷政
대명 융경 3년 국월, 곤산 평교 정 부정.
余得鄭氏 《 濟陰萬金書 》 閱之 , 大是快心 , 但方論顛倒 , 故為重訂 。 其醫療之方 , 可云全備 , 學者誠得其要領而出以新機 , 則秦鏡在握 , 真可隨施而隨效者也 。 但和陽氏戒 「 勿輕傳 」 之語 , 竊有微憾 。 醫藥者 , 天下之公用也 , 仁者存心 , 事事求其公 , 猶或失之 , 奈何云 「 不可轉觀 」, 而忍夭折斯人之命哉 ! 用付梓人 , 以傳諸寓內云 。
나는 정씨의 《제음만금서》를 얻어 읽고 마음이 크게 흡족하였으나, 처방과 논설이 뒤바뀌어 있어 다시 정리하였다. 그 치료 처방은 온전히 갖추어졌다고 할 만하니, 배우는 이가 참으로 요령을 얻고 새로운 기틀을 발휘한다면 진나라의 거울을 손에 쥔 것과 같아, 참으로 시행하는 대로 효과를 볼 수 있다. 다만 화양씨가 ‘가볍게 전하지 말라’고 경계한 말에는 가만히 조금 유감이 있다. 의약은 천하에서 함께 쓰는 것이다. 어진 이는 마음을 두고 일마다 공평함을 구해도 오히려 잘못할 수 있는데, 어찌 ‘돌려보여서는 안 된다’고 하여 차마 이 사람들의 목숨이 요절하게 하겠는가! 이에 판각하는 이에게 맡겨 온 세상에 전하게 한다.
康熙四十年桂月 , 北洲渚水方謨丕顯氏序
강희 40년 계월, 북주 저수 방모 비현씨가 서문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