執古方以為治 。 謂之泥 。 舍古方以為治 。 謂之鑿 。 泥也 。 鑿也 。 皆非也 。 如吾近藤先生之於術 。 其庶免於斯弊者乎 。 蓋先生之學 。 祖述劉張 。 探溯李朱 。 旁搜曲證 。 至矣 。 盡矣 。 先生嘗謂病有古之病 。 則方亦有古之方 。 病有今之病 。 則方亦有今之方 。 夫人身者 。 活物也 。 何必以古法於今乎 。 不必泥古方 。 不必舍今方 。 別有一條正路焉 。 噫 。 先生之意 。 不固不陋 。 可謂盡矣 。 寧令先生當古昔之世 。 劉張朱李可亦許乎 。 頃著藤氏醫談 。 以示門下 。 子弟刻成 。 命予校 。 且序焉 。 然是特先生之緒餘也耳 。 世勿以為儘先生而可也 。
고방을 고집하여 치료하는 것을 구애됨이라 하고, 고방을 버리고 치료하는 것을 억지로 천착함이라 한다. 구애됨과 천착함은 모두 옳지 않다. 우리 근등 선생의 의술이라면 거의 이러한 폐단을 면하였을 것이다. 선생의 학문은 유씨와 장씨를 본받아 계술하고, 이씨와 주씨를 탐구하여 거슬러 올라가며, 널리 찾아 세세히 증명하였으니 지극하고도 다하였다. 선생은 일찍이 ‘병에 옛날의 병이 있으면 처방에도 옛날의 처방이 있고, 병에 지금의 병이 있으면 처방에도 지금의 처방이 있다. 사람의 몸은 살아 있는 것이니, 어찌 반드시 옛것으로 지금의 법을 삼겠는가. 고방에 구애될 필요도 없고 금방을 버릴 필요도 없으며, 따로 한 줄기 바른 길이 있다’고 하였다. 아, 선생의 뜻은 고집스럽지도 않고 좁지도 않으니, 다하였다고 할 만하다. 만일 선생이 옛 시대를 만났더라도 유·장·주·이가 또한 인정하였을 것이다. 근래 《등씨의담》을 지어 문하에 보이니, 자제들이 판각을 마치고 나에게 교정하며 서문도 쓰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선생이 남긴 일부일 뿐이니, 세상에서는 이것으로 선생의 전부라고 여기지 않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