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巢造變 , 從亂群盜 , 發人塚墓 , 掘取金寶 。 遇大穴焉 , 方丈餘 , 中環石 , 十有八片 , 形制如槨 , 其蓋六石 , 題曰 :「 有齊褚澄所歸 。」 啟蓋棺 , 骨已蛇蟻 , 所穴環石內向 , 文字曉然 。 盜疑兵書 , 移置穴外 , 視之棄去 。 先人遇見 , 讀徹 。 囑鄰慎護 。 明年具舟載歸 , 欲送官以廣其傳 , 遭時兵革不息 , 先人亦不幸 。 遺命異物終當化去 , 神書理難久藏 , 其以褚石為吾棺槨之實隱 , 則骸骨全 , 褚石或興吾名 , 亦顯淵 。 募能者調墨 , 治刻百本散之 。 余遵遺戒 。 先人諱廣 , 字叔常 。
황소가 반란을 일으키자 난리에 가담한 여러 도적이 남의 무덤을 파헤쳐 금은보화를 캐냈다. 그러다가 사방이 한 장 남짓한 큰 묘혈을 만났는데, 안에는 돌 열여덟 장을 둘러놓아 곽과 같은 모양을 이루었고 덮개는 돌 여섯 장이었다. 거기에는 “제나라 저징이 돌아가 쉴 곳”이라고 적혀 있었다. 덮개와 관을 열자 유골은 이미 뱀과 개미의 차지가 되었으며, 묘혈을 둘러싼 돌의 안쪽에는 글자가 뚜렷했다. 도적들은 병서인 줄 알고 묘혈 밖으로 옮겨놓았으나, 살펴보고는 버리고 떠났다. 선친께서 우연히 발견하고 끝까지 읽은 뒤 이웃에게 당부하여 잘 지키게 하셨다. 이듬해 배를 마련하여 싣고 돌아와 관청에 보내 널리 전하려 하였으나, 전란이 그치지 않는 때를 만났고 선친께서도 불행히 돌아가셨다. 유언하시기를 “기이한 물건은 끝내 사라지게 마련이고 신묘한 글도 이치상 오래 감추어둘 수 없다. 저씨의 돌을 내 관곽 속에 깊이 감추어두면 내 유골도 온전할 것이고, 저씨의 돌이 혹 내 이름을 드러내면 연, 네 이름 또한 드러날 것이다. 능숙한 이를 구하여 먹을 조제하고 판각을 마련하여 백 부를 찍어 나누어주어라”라고 하셨다. 나는 그 유훈을 따랐다. 선친의 휘는 광이고 자는 숙상이다.
清泰二年五月十九日古揚蕭淵序
청태 2년 5월 19일, 옛 양주의 소연이 서문을 쓰다.
靖康初 , 金人犯順 , 群盜乘間 , 在處有之 。 去揚城北三十五里陳源橋 , 有蕭家世居其間 , 蓋貧不能自振矣 , 守一塚甚勤 , 曰 :「 吾十二世祖葬父於此 , 吾家塚凡數百世 , 世惟守此耳 。」 盜疑其起家者 , 富而厚葬 。 日夕窺之二家 , 因語人曰 :「 吾十二世祖葬其父明經廣叔常 , 用石刻秘經為槨 , 從治遺命也 , 已而不忍其柩有將發之兆 , 遂敕子孫世守之耳 。」 窺者仍故二家 , 因會鄉人啟視之 , 漆棺如新刻 , 石十有九片 。 其一蓋蕭淵序也 , 乃移柩葬居側 , 而舉石於門外 。 有告蕭得埋寶者 , 遂納石於今 。 予持缽將為南獄之遊 , 過蕭門結葬緣 , 適見其事 , 謾錄諸策 , 以埃能者 。
정강 초에 금나라 사람들이 침입하자 도적 떼가 틈을 타 곳곳에 나타났다. 양성에서 북쪽으로 35리 떨어진 진원교에는 소씨 집안이 대대로 살고 있었다. 가난하여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면서도 한 무덤을 매우 정성스럽게 지키며 말하였다. “우리 12대 선조께서 아버지를 이곳에 장사 지냈습니다. 우리 집안의 무덤은 여러 백 대에 걸쳐 있지만, 대대로 오직 이곳만 지켰습니다.” 도적들은 그가 가문을 일으킨 사람으로서 부유하게 후장했으리라 의심하였다. 밤낮으로 이를 엿보는 두 집안이 있었다. 이에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우리 12대 선조께서 아버지인 명경 광 숙상을 장사 지내면서 비밀 경전을 새긴 돌로 곽을 만드셨으니, 유언을 따라 처리한 것입니다. 그 뒤 관이 파헤쳐질 조짐을 차마 두고 볼 수 없어 자손에게 대대로 지키게 했을 뿐입니다.” 엿보는 자들은 여전히 그 두 집안이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을 모아 열어보니 칠한 관은 새것 같고, 글을 새긴 돌은 열아홉 장이었다. 그중 하나는 소연의 서문이었다. 관을 집 곁으로 옮겨 묻고 돌은 문밖으로 들어냈다. 어떤 이가 소씨가 매장된 보물을 얻었다고 고발하자, 마침내 돌을 ‘금(今)’에 바쳤다[원문 불명]. 나는 발우를 지니고 남악으로 유람하려다가 소씨 집 앞을 지나며 장례의 인연을 맺었는데, 마침 그 일을 목격하였다. 이에 책에 대강 기록하여 능력 있는 이를 기다린다.
二年結制前五日 , 衛國釋義堪書 。
2년, 결제 닷새 전 위국의 승려 의감이 쓰다.
齊褚澄彥通遺書一秩 , 才二千六百二十言 , 發揮人身中造化之秘 , 明白要約 , 殆無餘蘊 。 蓋沉酣於 《 內經 》、《 素問 》、《 靈樞 》 之旨者也 , 其司馬季主 、 扁鵲 、 倉公之流乎 。 彥通在當時 , 連姻宗室 , 貴富鮮儷 , 而能造詣如此 , 則超出塵表之姿 , 又可想見之也 。 方虛谷選詩 , 謂孫思邈 《 千金方 》 三十六卷 。 每卷藏一仟方 , 在人自求之耳 。 予觀此書 , 亦寓思邈之意淵乎微哉 , 敘其出處 , 顯晦甚詳 , 奚俟予之置啄邪 , 但若臨席啖臠 , 使人自不忍下咽 , 遂僭引數語於篇首 , 亦珍愛之癖云 。
제나라 저징 언통의 유서 한 질은 겨우 2,620자로 사람 몸속 조화의 비밀을 밝혀놓았는데, 명백하고 간결하여 거의 남겨둔 뜻이 없다. 이는 『내경』·『소문』·『영추』의 뜻에 깊이 잠긴 사람의 저술이니, 사마계주·편작·창공과 같은 부류라 할 만하다. 언통은 당시 황실과 혼인으로 맺어져 부귀가 견줄 이 드물었는데도 이처럼 깊은 경지에 이르렀으니, 세속을 뛰어넘은 자질도 상상할 수 있다. 방허곡은 시를 뽑으면서 손사막의 『천금방』 36권에는 권마다 천 가지 처방을 간직했으므로 사람이 스스로 찾아낼 따름이라고 하였다. 내가 이 책을 보니 역시 사막의 뜻이 깃들어 있어 깊고도 미묘하다. 이 책이 나온 내력과 드러나고 감추어진 경위를 매우 상세히 서술해놓았으니, 어찌 내 군말을 기다리겠는가. 다만 자리에 앉아 고깃점을 맛보면서 차마 곧바로 삼키지 못하는 마음과 같아, 외람되이 몇 마디를 책머리에 붙였다. 이것도 진귀하게 아끼는 버릇이라 하겠다.
正德丙寅清明日舒城秦民悅邦約書 。
정덕 병인년 청명일, 서성의 진민열 방약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