廬州衛武生鄭道出示南齊褚澄遺書幾十篇 。 云 : 得之先世 。 故書中考之丁介跋尾 , 當是宋嘉泰初劉繼先印本 , 字畫完好如新 , 金讀之既作而嘆曰 :「 予少時曾於 《 宋史 · 藝文志 》 見有是書目 。 又見 《 三元延壽 》、《 居家必用 》、《 養生纂要 》 諸書引用其說 , 往來京師 , 嘗偏閱書肆博坊蓄書之家 , 求其全本無所得 , 迄今三十餘年 , 始獲經目 , 噫 ! 古書之罕見於世 , 奚獨此哉 。 史稱澄善醫術以勤 , 謹見知沒於永明元年 , 觀是書立論精詣 , 所謂邃於醫而慎於朮者非耶 , 褚氏子孫以其書入石殉葬 , 為不柄計其用心勤矣 。 意澄平時所自愛重 , 子孫遵其垂歿之言而慎藏之歟 , 雖其遺墓不幸為盜所發 , 遺書則幸因盜以傳也 , 自是蕭廣載其石 , 廣子淵復以納壙 , 釋義堪錄諸策 , 劉繼先又以入梓 , 更三數人之手始克流布當時 , 蓋自永明至嘉泰初 , 上下七百二十餘年 , 至於今又幾何年 , 所著之書 , 久埋而復見 , 已棄而獲存 , 幾絕而僅有 , 若有神物相之者 。 殆與汲塚之 《 周書 》, 昭陵之 《 義帖 》, 石室之 《 陰符 》, 經佛龕之古文 , 苑事相類 。 歐陽子云 : 人之賢者傳遂遠 , 是固然矣 。 要之古今載籍 , 或傳或否 , 皆不可必 , 人未必皆賢言 , 未必皆粹高文鉅冊 , 或散佚無聞片楮尺素 , 或珍襲可考 , 金石有不足恃 , 而或出於破塚敗壁之間 , 子孫有不可托而偶得於牧豎 、 偷兒之手 , 悶於前或彰於後 , 盛行於一時 , 或煙沒於萬世 , 莫不有數存焉耳 。 而物之聚散顯晦固有時哉 , 然而非聖之書不經之談 , 迂僻怪誕於事 , 無益且不可以為訓 , 使有識者見之 , 必以覆醬瓿制帷帳而投之水火也 。 今猶不免加災於木 , 增垢於石 , 重為楮墨之費者何限 , 況乎書坊所刻 , 大率類家集以徼時名 , 褒程文以逐時好 , 日以浸廣 , 求如蕭廣 , 冀之嗜古 , 良亦鮮矣 , 金於此尤所浩嘆 。 竊謂是書 , 形氣血脈之說 , 明切簡備 , 庶幾可為衛生之助 , 其平脈篇有曰 : 澄生當後世傳其言而已爾 , 初決其秘發悟後人 , 澄蓋以其所得筆之於書 , 與天下後世共之也 , 豈若俚俗 , 醫師規規然 , 因病處方 , 隨證著論 , 以覬倖於萬一者可及哉 , 嗚呼 ! 疾固尼父所慎醫 , 亦事親者所當知 , 因是書得之難 , 而欲其傳之廣 , 且久必有同區區余意者矣眾 , 斯文之不泯也 。
여주위의 무생 정도가 남제 저징의 유서 수십 편을 내보이며 선대로부터 얻은 것이라고 하였다. 옛 책의 정개 발문 끝을 살펴보니 송나라 가태 초 유계선의 인본일 터인데 글자 획이 새것처럼 완전하였다. 나 금은 다 읽고 일어나 탄식하였다. “나는 젊을 때 『송사·예문지』에서 이 책의 목록을 본 적이 있고, 또 『삼원연수』·『거가필용』·『양생찬요』 등의 책에서 그 학설을 인용한 것도 보았다. 서울을 오가며 서점과 책방, 장서가의 집을 두루 찾아 완본을 구했으나 얻지 못했다. 지금까지 30여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직접 보게 되었으니, 아! 옛 책 가운데 세상에서 보기 드문 것이 어찌 이 책뿐이겠는가.” 역사에서는 저징이 의술에 뛰어나고 부지런하며 신중하여 인정받았고 영명 원년에 죽었다고 하였다. 이 책의 논리가 정밀하고 깊은 것을 보면, 이른바 의학에 깊고 의술에 신중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저씨의 자손이 그 책을 돌에 새겨 순장한 것은 ‘불병(不柄)’을 위한 계책[원문 불명]으로서 마음을 쓴 정성이 지극하였다. 아마 저징이 평소 스스로 아끼고 중히 여겼으므로 자손이 임종 때의 말을 따라 삼가 간직한 것이리라. 그의 무덤이 불행히 도적에게 파헤쳐졌지만 유서는 다행히 그 도적 덕분에 전해졌다. 그 뒤 소광이 돌을 실어오고 광의 아들 연이 다시 무덤에 넣었으며, 승려 의감이 책에 기록하고 유계선이 다시 목판에 새겼다. 서너 사람의 손을 거친 뒤에야 당시 세상에 유포될 수 있었다. 영명에서 가태 초까지는 대략 720여 년이며, 지금까지는 또 얼마의 세월이 흘렀는가. 저술한 책이 오래 묻혔다가 다시 드러나고, 버려졌다가 보존되며, 거의 끊어졌다가 간신히 남았으니, 마치 신물이 돕는 듯하다. 이는 급총의 『주서』, 소릉의 『의첩』, 석실의 『음부』, 불감에 보존된 고문 경전의 옛일과 대체로 비슷하다. 구양자는 ‘어진 사람은 전해짐이 오래간다’라고 하였으니 진실로 그러하다. 요컨대 고금의 서적이 전해질지 아닐지는 모두 반드시 기약할 수 없다. 사람이라고 반드시 모두 어질지는 않고, 말이라고 반드시 모두 순수하지는 않다. 뛰어난 문장과 큰 책이 흩어져 없어져 알려지지 않기도 하고, 종이 한 조각과 짧은 편지가 귀하게 간직되어 고찰할 수 있기도 하다. 금석조차 믿기에 부족하여 무너진 무덤과 허물어진 벽 사이에서 나오기도 하고, 자손에게 맡길 수 없던 것이 우연히 목동과 좀도둑의 손에서 얻어지기도 한다. 앞 시대에 묻혔던 것이 뒤에 드러나기도 하고, 한때 성행하던 것이 만세토록 연기처럼 사라지기도 하니, 그 속에 운수가 없는 것이 없다. 사물이 모이고 흩어지고 드러나고 감추어지는 데는 참으로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인의 도에 맞지 않는 책과 경전에 어긋나는 말로서, 우활하고 치우치고 괴이하여 일에 이익이 없고 교훈으로 삼을 수도 없는 것은 식견 있는 사람이 보면 반드시 장독 덮개나 휘장으로 만들고 물이나 불에 던져버릴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오히려 나무에 재앙을 더하고 돌에 더러움을 더하며 종이와 먹을 거듭 허비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하물며 책방에서 새기는 것은 대개 문집을 모아 당대의 명성을 구하거나 과거시험 문장을 찬양하여 당대의 기호를 따르는 것으로 날마다 점점 많아진다. 소광처럼 옛것을 좋아하기를 바랄 만한 이는 참으로 드무니, 나는 이 점에서 더욱 크게 탄식한다. 가만히 생각건대 이 책의 형·기·혈·맥에 관한 논설은 명확하고 절실하며 간결하면서도 갖추어져 있어 생명을 보전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하다. 「평맥」편에는 ‘나 징은 후세에 태어나 그 말을 전할 따름이다. 처음 그 비밀을 풀어 후세 사람을 깨우쳤다’라고 하였다. 저징은 자신이 얻은 것을 책에 써서 천하 후세와 함께하려 했던 것이다. 어찌 속된 의사들이 좁은 견해로 병에 따라 처방하고 증에 따라 논설을 붙이며 만에 하나의 요행을 바라는 것으로 이에 미칠 수 있겠는가. 아! 질병은 본래 공자께서 신중히 여기신 것이고 의술 또한 어버이를 섬기는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얻기가 어려웠으므로 널리 오래 전해지기를 바라는 나의 보잘것없는 뜻에 동감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니, 이 글이 없어지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