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雖小道而義精 , 工賤而任重 。 余自習醫以來 , 兢兢業業 , 造次於是 , 顛沛於是 , 歷經卅餘年 , 成就些微事業 , 多從困苦勤慎中得之 。 汝輩學醫 , 且將遊戲念頭 , 刪除淨盡 , 然後耐煩做去 , 何愁不日進於高明 。
의학은 작은 도이지만 뜻은 정밀하며 업은 천하게 여겨져도 책임은 무겁다. 나는 의학을 익힌 이래 삼가고 조심하여 황급할 때도 이 일에, 어려움에 넘어질 때도 이 일에 힘쓰며 30여 년을 지냈다. 작은 성취는 대부분 고생과 부지런함과 신중함에서 얻었다. 너희가 의학을 배우려면 먼저 장난하려는 생각을 말끔히 없앤 뒤 번거로움을 견디며 해 나가야 한다. 어찌 날로 고명한 경지에 나아가지 못할까 걱정하겠는가.
醫仁術也 , 其心仁 , 其術智 , 愛人好生為之仁 , 聰明權變為之智 , 仁有餘而智不足 , 尚不失為誠厚之士 , 若智有餘而仁不足 , 則流為欺世虛狂之徒 。
의학은 인술이다. 그 마음은 어질고 그 기술은 지혜로워야 한다. 사람을 사랑하고 생명을 좋아하는 것이 인이고 총명하며 임기응변하는 것이 지이다. 인은 남으나 지가 부족하면 그래도 성실하고 후덕한 선비임을 잃지 않지만, 지는 남으나 인이 부족하면 세상을 속이는 허망하고 경박한 무리로 흘러간다.
凡治一病 , 先須細心診視 , 其病雖輕 , 亦不可輕許無事 , 恐其人因病輕而自忽 , 致生他變也 。 其病雖重 , 亦不宜決裂回絕 , 恐病家聞而生怖 , 愈致慌張也 。 然真正無妨 , 與絕證畢具不可救者 , 不在此例 。
병 하나를 치료할 때에는 먼저 세심히 진찰해야 한다. 병이 가벼워도 일이 없다고 쉽게 장담해서는 안 된다. 환자가 병이 가볍다고 스스로 소홀히 하여 다른 변화가 생길까 염려해서이다. 병이 무거워도 단호하게 거절해서는 안 된다. 환자 집에서 듣고 두려워하여 더욱 당황할까 염려해서이다. 그러나 진정 아무 위험이 없거나 절증이 모두 갖추어져 구할 수 없는 경우는 이 예에 속하지 않는다.
曾有一病人 , 年約十三四 , 其母呼之出外廂診視 , 其面色青黃而無和悅之氣 , 目向下視 , 亦不轉瞬 , 其脈小 , 身無熱 , 問其疾苦不答 。 其母代言曰 : 咳嗽十餘日矣 。 余處以平常治嗽套方一劑 , 明日即死 。 余聞之駭然 , 自咎識淺術疏 。 後又遇一船家 , 年約四十 , 面色雖不青 , 然神呆目睛不轉 , 脈亦小 , 病咳嗽氣急 , 問其疾不答 , 余即回卻 , 後兩日果死矣 。 此屬肺絕證 , 經曰 :「 肺絕之脈 , 如風吹毛 」, 蓋言其細也 。 前二證神氣已離 , 其死必矣 。
전에 열서너 살쯤 된 환자가 있었다. 어머니가 바깥방으로 불러 진찰하게 하였는데 얼굴빛이 푸르고 누르며 온화하고 즐거운 기색이 없고 눈은 아래만 보며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맥은 작고 몸에는 열이 없었으며 어디가 괴로운지 물어도 답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대신 기침한 지 십여 일이라고 하였다. 나는 평범한 기침 치료의 상용 처방 한 제를 주었는데 다음 날 죽었다. 듣고 크게 놀라 식견이 얕고 의술이 서툰 것을 자책하였다. 뒤에 마흔쯤 된 뱃사람을 만났는데 얼굴은 푸르지 않아도 정신이 멍하고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으며 맥도 작았다. 기침과 숨 가쁨이 있었고 병을 물어도 답하지 않아 나는 바로 사양하였다. 이틀 뒤 과연 죽었다. 이는 폐절증이다. 경에 “폐가 끊어지는 맥은 바람이 털을 부는 듯하다”고 하였으니 가늘다는 말이다. 앞의 두 증은 신기가 이미 떠났으므로 반드시 죽을 것이었다.
又見一女子 , 年十八九 , 四月間患時證 , 與其母同日得病 , 至七日同時戰汗 , 其母戰陷發厥而死 , 女正得汗未收 , 聞母死驚起 , 號淘痛哭 , 極力勸慰方止 , 自此如醉如呆 , 兀坐不語 。 邀余診治 , 脈極弦而銳 , 目睛環轉不定 , 此為膽絕之候也 。 因驚傷膽 , 神魂失守 , 不可為也 。 果至晚發狂而死 。 經云 :「 少陽終者 , 目睘絕系 , 絕系者 , 一日半死 。」 又曰 :「 得神者昌 , 失神者亡 」。 又曰 :「 狂言者失志 , 失志者死 。」
또 열여덟아홉 살 여자가 사월에 시증을 앓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와 같은 날 병들어 이레째에 동시에 떨며 땀이 났다. 어머니는 떨다가 함몰되어 궐이 발하여 죽었는데, 딸은 막 땀이 나 아직 거두지 않은 때에 어머니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놀라 일어나 통곡하였다. 힘써 달래서야 멎었으나 이때부터 취하고 멍한 듯 앉아 말하지 않았다. 나를 불러 진찰하게 하니 맥이 몹시 현하고 날카로우며 눈동자가 빙빙 돌아 안정되지 않았다. 이는 담절의 징후로 놀라 담을 손상하고 신혼이 지킴을 잃어 손쓸 수 없었다. 과연 저녁에 발광하고 죽었다. 경에 “소양이 다하면 눈이 치뜨이고 계가 끊어지며, 계가 끊어진 사람은 하루 반 만에 죽는다”고 하였다. 또 “신을 얻으면 창성하고 신을 잃으면 죽는다”, “광언하는 사람은 뜻을 잃은 것이며 뜻을 잃은 사람은 죽는다”고 하였다.
臟結為死證 , 仲聖戒不可攻 。 余曾治二人 , 皆不治而死 。 其一素有肝氣 , 其一素有癖塊 , 皆卒然腹中硬滿大痛 , 得食則嘔 , 二便不行 , 腹中硬塊或豎或橫者數條 。 初用深師七氣湯 , 如吳萸 、 官桂 、 木香 、 厚朴 、 烏藥等 , 送下備急丸五粒 , 不得利 。 又轉用許學士溫脾湯 , 亦不得利 。 他醫進仲景黃連湯加肉桂 , 痛嘔亦不止 。 一人四日死 , 一人三日死 , 竟一無辦法 。
장결은 죽을 증이므로 중경 성인은 공격하지 말라고 경계하였다. 나는 두 사람을 치료하였으나 모두 낫지 못하고 죽었다. 한 사람은 평소 간기가 있었고 한 사람은 벽괴가 있었는데, 모두 갑자기 배 속이 단단하고 그득하며 몹시 아프고 먹으면 토하며 대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배 속의 단단한 덩어리가 세로 또는 가로로 여러 줄 있었다. 처음 심사칠기탕으로 오수유·관계·목향·후박·오약 등을 써서 비급환 5알을 넘기게 하였으나 설사하지 않았다. 또 허학사의 온비탕으로 바꾸어도 설사하지 않았다. 다른 의사가 중경의 황련탕에 육계를 더하여 주어도 통증과 구토가 멎지 않았다. 한 사람은 나흘 만에, 한 사람은 사흘 만에 죽어 끝내 아무 방법도 없었다.
旭高自按 : 或曰灸關元或可救 , 然其人痛無暫安 , 安能施灸法哉 。 每思陰邪盤踞 , 臟氣凝結 , 不通不出 , 若用通陽之屬 , 如附子 、 肉桂 、 乾薑 、 半夏 、 茯苓 、 烏藥 、 澤瀉等味 , 送下來復丹通臟腑之陽 , 理三焦之氣 , 假我數年 , 再遇斯證 , 得試此法 , 未識何如 。
욱고가 스스로 살핀다. 누군가는 관원에 뜸을 뜨면 혹 구할 수 있다고 하였지만 환자가 잠시도 통증에서 편안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뜸을 시행하겠는가. 늘 생각건대 음사가 차지하고 장기가 엉겨 통하지 않고 나가지 않는 것이므로, 부자·육계·건강·반하·복령·오약·택사 같은 통양약으로 내복단을 넘겨 장부의 양을 통하게 하고 삼초의 기를 다스리면 어떨까 한다. 몇 해의 시간을 더 얻어 다시 이 증을 만나면 이 법을 시험해 보고 싶지만 어떨지는 모르겠다.
一嫗年五十有餘 , 當冬月大便後 , 腹中微痛 , 胸悶滿 , 噁心 , 微惡寒 , 微發熱 。 初醫以為感寒 , 用疏通發散藥不效 , 延至旬外 , 邀余治之 。 診得脈左沉小 , 右脈浮而無力 , 此中氣虛而感寒也 。 當用六君子湯 , 加炮薑 、 木香 、 蘇葉汁 , 意議已定 , 方亦寫出 。 適某醫來 , 與之商訂 , 將方請正 , 醫曰 :「 今病已十餘日不大便 , 且胸腹滿悶 , 暫緩參 、 朮 、 炮姜 , 易入枳殼 、 栝蔞 , 稍磨紫金錠 , 香開氣分 , 治其痛滿 。」 病者正愁大便不通 , 未敢進食 , 主翁亦畏投補劑 , 恐滋脹滿 , 遂聽某醫之言 。 余亦未便與之爭論 。 詎知藥下即大解 , 初尚稀溏 , 後即稀水 , 泄瀉不休 , 肢冷不溫 。 明日 , 某醫始議參 、 朮 、 炮姜 , 急煎已不納矣 , 是晚遂斃 。 此役也 , 深悔余無主見 , 假如當時力爭 , 猶可挽救 , 計不出此 , 坐令致斃 , 余深痛悔 。
쉰이 넘은 노파가 겨울에 대변을 본 뒤 배가 약간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고 그득하며 메스껍고 조금 춥고 조금 열이 났다. 처음 의사는 감한이라 여겨 소통·발산약을 썼으나 효과가 없었고 열흘이 넘어서 나를 불렀다. 맥은 왼쪽이 침소하고 오른쪽이 부하면서 무력하였으므로 중기가 허한 상태에서 한을 받은 것이었다. 육군자탕에 포강·목향·소엽즙을 더하려고 뜻을 정하고 처방도 썼다. 마침 다른 의사가 와서 의논하며 처방을 바로잡아 달라 하니 그는 “이미 십여 일 대변을 보지 못하고 가슴과 배가 그득하고 답답하므로 인삼·출·포강은 잠시 미루고 지각·괄루로 바꾸며 자금정을 조금 갈아 향기로운 것으로 기분을 열어 통증과 그득함을 치료하자”고 하였다. 환자는 대변이 통하지 않아 걱정하여 감히 음식을 먹지 못하였고 남편도 보제를 주면 창만이 늘까 두려워하여 그 의사의 말을 따랐다. 나도 논쟁하기 불편하여 그러지 못하였다. 뜻밖에 약을 먹자 곧 크게 배변하였는데 처음에는 묽은 변이었다가 뒤에는 물이 되어 설사가 멎지 않고 사지가 차서 따뜻해지지 않았다. 다음 날 그 의사가 비로소 인삼·출·포강을 의논하였으나 급히 달여도 이미 받아들이지 못하여 그날 밤 죽었다. 이 일에서 나는 주견이 없었음을 깊이 후회한다. 당시 힘껏 다투었다면 구할 수도 있었는데 그 계책을 내지 못하여 앉아서 죽게 하였으니 깊이 아프고 후회스럽다.
旭高自按 : 或曰參 、 朮 、 炮姜但遲一日 , 先一日則生 , 遲一日則死 , 恐亦未必 ? 余曰 : 不然 , 當其大便未泄 , 元氣未脫 , 早用此方 , 十能救五 。 竊憂世俗 , 一患重證 , 必多延醫 , 眾因病重 , 不肯負責 , 互相推諉 , 致誤事多矣 , 慨夫 !
욱고가 스스로 살핀다. 누군가는 “인삼·출·포강이 하루 늦었을 뿐인데 하루 먼저면 살고 하루 늦으면 죽는다는 것은 반드시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그렇지 않다. 대변이 아직 설사로 나오지 않고 원기가 아직 탈하지 않았을 때 일찍 이 처방을 썼으면 열에 다섯은 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중증을 앓으면 반드시 여러 의사를 부르고, 의사들은 병이 무거워 책임지려 하지 않으며 서로 미루다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으니 걱정스럽고 한탄스럽다.
浦瑤官年三十二 , 形胖 , 多痰多濕 , 九月間因勞碌葷酒數日 , 遂得伏暑證 。 初起寒輕熱重 , 如瘧狀 , 一日輕 , 一日重 , 五六日後 , 但熱不寒 , 舌苔干黃 , 大便不通 , 熱甚煩躁 , 脘腹硬痛 。 余用大柴胡一服如神 , 安穩一日 , 仍復煩躁 , 舌根苔仍干黃 , 據其脘腹猶痛 , 改用鮮斛 、 栝蔞 、 連翹 、 山梔等 , 送下滾痰丸三錢 , 是晚便泄三次 , 明日診視 , 諸恙霍然 , 余亦許其無事 。 詎知薄暮 , 心中難過 , 外不發熱 , 手足不溫 , 神疲如迷 , 喉中汨汨不休 , 如嚥唾之聲 , 口角津津 , 涎沫流出不止 , 直至三更 , 發厥數次 , 病家惶恐 , 甫明即求治 。 診得脈細如絲 , 舌苔黃者變白 , 而且濕膩 , 余亦為之驚愕 , 此所謂 「 熱病未已 , 寒病復起 」 是也 。 因其人中氣不足 , 兩下之後 , 中氣愈虧 , 致太陰寒痰上升 , 故有此急變 。 進附子 、 草果 、 乾薑 、 半夏 、 茯苓 、 陳皮等味 , 或可挽救 。 病家曰 :「 先生昨日用寒 , 今日用熱 , 有是理乎 ? 抑有所據乎 ? 但此子性命 , 全託先生身上 。」 余聞此言 , 因徐徐告曰 :「 醫之心 , 仁心也 , 所以敢冒不韙 , 而隨機應變 , 有是證 , 必有是藥 , 昨熱用寒 , 今寒用熱 , 又何疑乎 。 余肯寫此方 , 是余之熱心也 , 服與不服 , 余不相強 , 然勢已急 , 欲圖萬一之幸 , 舍此別無良法 。」 言畢辭歸 , 次日復來請 , 蓋喜其昨幸服藥見效矣 。 連進附子四貼而痊 。 然寒證已退 , 已能啜粥數盞 , 尚有餘波 , 仍復寒熱如瘧 , 但不甚重耳 。 再以豆卷 、 半夏等平調 , 五 、 六劑而瘥 。
포요관은 서른두 살로 살이 찌고 담과 습이 많았다. 구월에 며칠 동안 수고하며 고기와 술을 먹다가 복서증을 얻었다. 처음에는 한은 가볍고 열은 무거워 학질처럼 하루는 가볍고 하루는 심하였다. 닷새 엿새 뒤 열만 있고 한은 없어졌으며 설태가 마르고 누르며 대변이 통하지 않고 열이 심하여 번조하며 위완과 배가 단단하고 아팠다. 내가 대시호를 한 번 쓰니 신효하여 하루 안정되었다가 다시 번조하였고 혀뿌리의 태도 여전히 마르고 누르며 위완과 배가 아직 아팠다. 신선한 석곡·괄루·연교·산치자 등으로 바꾸어 곤담환 3돈을 넘기게 하니 그날 밤 세 번 설사하였다. 다음 날 진찰하니 여러 병이 시원히 풀려 나도 무사하다고 하였다. 뜻밖에 해질녘 마음속이 괴롭고 밖으로 열은 없으며 손발이 따뜻하지 않고 정신이 피곤하고 혼미하였다. 목구멍에서 침을 삼키는 듯한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입가에 침과 거품이 계속 흘러나와 삼경까지 이르러 여러 차례 궐이 발하였다. 가족이 두려워하며 날이 밝자마자 치료를 구하였다. 맥은 실처럼 가늘고 누렇던 설태는 희게 변하면서 축축하고 끈끈하였다. 나도 놀랐으니 이른바 “열병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한병이 다시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중기가 부족한 사람이 두 번의 하법 뒤 더욱 부족해져 태음의 한담이 올라왔으므로 이런 급변이 생긴 것이다. 부자·초과·건강·반하·복령·진피 등을 주면 혹 구할 수 있었다. 가족은 “선생은 어제 찬 약을 쓰고 오늘 뜨거운 약을 쓰니 그런 이치가 있습니까? 근거가 있습니까? 이 사람의 목숨을 온전히 선생께 맡깁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천천히 “의사의 마음은 어진 마음이므로 비난을 무릅쓰고 기회에 따라 변화하는 것입니다. 이런 증이 있으면 반드시 이런 약이 있습니다. 어제 열에는 한약을, 오늘 한에는 열약을 쓰는데 무엇을 의심합니까. 제가 이 처방을 쓰려는 것은 열심 때문입니다. 먹고 안 먹고는 강요하지 않지만 형세가 급하여 만에 하나의 다행을 구하려면 이것 말고 좋은 법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다음 날 다시 청하였으니 어제 다행히 약을 먹고 효과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부자를 네 첩 연이어 주어 나았다. 그러나 한증이 물러가 죽을 몇 잔 먹을 수 있었어도 여파가 남아 학질처럼 한열이 다시 났는데 심하지는 않았다. 두권·반하 등으로 평온하게 조절하니 다섯여섯 제 만에 나았다.
錢氏子翩翩少年也 , 未完婚 , 春心勃勃 , 偶宿妓 , 勇於使內 , 染淋濁 , 莖中作痛連毛際 。 醫用分清滲利藥 , 淋痛俱減 , 但覺少腹中央 , 下連毛際時隱痛 , 以後或大痛 , 或微痛 , 或不痛 。 或用金鈴子 、 延胡索 , 或用吳萸 、 烏藥 , 或用韭根 、 兩頭尖 , 皆不效 。 一醫用肉桂五苓散 , 痛止兩日而復作 , 又用補中益氣湯 , 其痛更甚 。 始邀余診 , 余望問之下 , 知此子腎氣素虧 , 竭力使內 , 又斫傷腎氣 , 敗精化而為濁 , 初醫過用滲利寒藥 , 再傷腎臟之陽 , 醫用肉桂止痛 , 痛止二日者 , 得溫通之力也 。 改用升提補中藥 , 痛勢反甚者 , 下焦精氣兩虧 , 升其陽則腎益虧也 。 當用金匱腎氣丸 , 補陰中之陽 , 據其宅窟而招安之 。 服下痛果定 , 有時仍微痛 , 連服腎氣湯十餘貼 , 後改用腎氣丸 , 每朝服三錢 , 一月痊愈 。
전씨의 아들은 풍채 좋은 소년으로 아직 혼인하지 않았고 춘심이 왕성하였다. 우연히 기녀와 동침하며 지나치게 성교한 뒤 임탁에 걸려 음경 속이 아프고 음모 가장자리까지 이어졌다. 의사가 분청·삼리약을 쓰니 임과 통증은 줄었으나 아랫배 한가운데에서 아래로 음모 가장자리까지 때로 은근히 아팠다. 이후 크게 아프기도 조금 아프기도 아프지 않기도 하였다. 금령자·현호색, 오수유·오약, 부추뿌리·양두첨 등을 써도 효과가 없었다. 한 의사가 육계오령산을 쓰자 이틀 통증이 멎었다가 재발하였고 보중익기탕을 쓰니 더 아팠다. 그제야 나를 불렀다. 보고 물은 뒤 평소 신기가 부족한데 힘껏 성교하여 다시 신기를 손상하고 패정이 변하여 탁이 된 줄 알았다. 처음 의사가 삼리하는 찬 약을 지나치게 써서 신장의 양을 다시 상한 것이다. 육계로 이틀 통증이 멎은 것은 온통의 힘을 얻어서이며, 승제·보중약으로 바꾸어 더 아픈 것은 하초의 정과 기가 모두 부족한데 그 양을 끌어올려 신이 더욱 부족해져서이다. 금궤신기환으로 음 가운데 양을 보하여 그 거처에 자리 잡고 불러 안정시켜야 했다. 먹자 과연 통증이 가라앉았으나 때로 조금 아파 신기탕을 십여 첩 연복하고 뒤에는 신기환으로 바꾸어 아침마다 3돈씩 먹이니 한 달에 나았다.
旭高自按 : 夫此病用腎氣丸而無疑者 , 全從服過肉桂止痛二日悟出 , 古人云 : 會心處非別有玄妙也 。
욱고가 스스로 살핀다. 이 병에 의심 없이 신기환을 쓴 것은 모두 육계를 먹고 통증이 이틀 멎었다는 데서 깨달은 것이다. 고인이 “마음으로 깨닫는 곳에 따로 현묘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 말이 이것이다.
有人染楊梅瘡 , 服過輕粉升藥 , 抑遏其毒於內 , 瘡愈之後 , 多致筋骨攣痛 , 數年之後 , 隨其痛處 , 必發出一塊 , 色白不紅 , 漸潰腐爛 , 連年累月 , 不肯收斂 , 遂成廢疾 。《 瘍科心得集 》 中載十味淡齋方 , 忌食鹽味一百二十日 , 無有不愈者 。 然有脾胃薄弱 , 驕恣任性之人 , 不肯服淡 , 將如之何 ! 余見 《 外科發揮 》 載一方 , 用土茯苓四兩 , 氣虛加四君子湯一兩 , 血虛加四物湯一兩 , 煎湯飲月餘即驗 。《 集驗方 》 更加皂莢子七粒 、 川椒四十九粒 , 有熱者再加芩 、 連 , 仿此治之 , 亦一法也 。
양매창에 걸린 사람이 경분과 승약을 먹어 독을 속에 눌러 막으면 헌데가 나은 뒤에도 근골이 당기고 아픈 경우가 많다. 몇 해 뒤 아픈 곳에 반드시 덩어리가 생기는데 희고 붉지 않으며 점차 터져 썩고 여러 해 여러 달 아물려 하지 않아 폐질이 된다. 《양과심득집》에 십미담재방이 실려 있는데 소금 맛을 120일 금하면 낫지 않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비위가 약하고 교만하여 제멋대로 하는 사람이 싱겁게 먹으려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외과발휘》에 한 처방이 실렸으니 토복령 4냥에 기허면 사군자탕 1냥, 혈허면 사물탕 1냥을 더하여 달여 한 달 남짓 마시면 효과가 있다. 《집험방》은 조협자 7알·천초 49알을 더하고 열이 있으면 황금·황련을 다시 더하였으니 이를 본떠 치료하는 것도 한 법이다.
凡生疔疽部位 , 初起一粒雖小 , 須要小心 , 切不可說無事 。 余嘗見唇疔一粒 , 其形甚小 , 並無寒熱 , 以為無事 , 其人能食酒肉 , 亦不避風 , 三五日後 , 即走黃而死 。 對口發背 , 變端稍遲 , 然斷不可輕視忽略 , 說話之中 , 須要活落 , 免致擔憂 。
정저가 생기는 부위에는 처음 한 알이 작더라도 주의해야 하며 결코 무사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나는 입술에 정 하나가 매우 작고 한열도 없어 무사하다고 여겼던 것을 보았다. 그 사람은 술과 고기를 먹을 수 있었고 바람도 피하지 않았는데 사흘에서 닷새 뒤 독이 퍼져 죽었다. 대구·발배는 변하는 시기가 조금 늦지만 결코 가볍게 보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말을 할 때에는 여지를 두어 근심을 떠안지 않도록 해야 한다.
有孕無孕 , 辨別最難 , 方書雖有 「 手少陰脈動甚者 , 妊子也 」 一句 , 然竟有心脈不甚顯著者 , 大抵經阻二三月 , 小有寒熱 , 或時嘔惡 , 是為懷子之象 。 若腹中痛者 , 非胎也 。 若乳頭紫黑色者 , 是胎也 。 乳頭轉色紫黑 , 乃是有胎之的候 。 再者 , 察其人形象康健否 , 雖有時不食 , 有時仍能食 , 此即所謂疑病也 。
임신 여부는 구별하기 가장 어렵다. 방서에 “수소음맥이 몹시 뛰면 아이를 밴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으나 실제로 심맥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대체로 월경이 두세 달 막히고 약간 한열이 있거나 때로 구역하고 메스꺼우면 임신의 모습이다. 배 속이 아프면 태가 아니다. 유두가 자흑색이면 태이다. 유두색이 자흑색으로 변하는 것이 태가 있는 확실한 징후이다. 또 그 사람의 형상이 건강한지 살펴야 한다. 때로 먹지 못해도 때로는 여전히 먹을 수 있으면 곧 이른바 의병이다.
凡看咳嗽病 , 或陰精虧損之體 , 或元氣素弱之軀 , 無病之時 , 已先腿足乏力 , 或手足心灼熱 , 在女子或經水不調 , 而漸生咳嗽 , 便是虛勞之根 , 切不可大進辛溫消痰以及表散之藥 , 便宜甘潤生津 , 如川貝 、 玉竹 、 甜杏仁 、 穭豆衣 、 沙參等類 。 若兼頭眩心悸 , 加入茯神 、 滁菊之類 。 或有稍夾風邪而起者 , 亦不過加入桑葉 、 桔梗之屬 。 倘若但以前胡 、 杜蘇子 、 牛蒡 、 荊芥 、 防風 、 橘葉 、 橘紅 、 枳殼 、 萊菔子等味 , 必致劫津而成喘逆嗆咳 , 及見惡寒潮熱 , 虛勞之病成矣 。 此等病甚多 , 切宜仔細 。
기침병을 볼 때 음정이 부족한 몸이거나 원기가 본래 약한 몸으로, 병이 없을 때 이미 다리와 발에 힘이 없거나 손발바닥이 뜨겁고 여자에게 월경이 고르지 않다가 점차 기침이 생기면 곧 허로의 뿌리이다. 절대로 맵고 따뜻하여 담을 없애거나 표를 흩는 약을 크게 주어서는 안 된다. 달고 윤택하게 진액을 생기게 하는 것이 좋으니 천패·옥죽·단 행인·검정콩 껍질·사삼 등이다. 머리 어지럼과 심계를 겸하면 복신·저국 등을 더한다. 풍사를 조금 끼고 시작한 경우도 상엽·길경 등을 더할 뿐이다. 전호·두소자·우방·형개·방풍·귤엽·귤홍·지각·나복자 등만 쓰면 반드시 진액을 빼앗아 천역과 사레드는 기침이 되고 오한과 조열까지 나타나 허로병이 이루어진다. 이런 병이 매우 많으므로 반드시 자세히 살펴야 한다.
一婦人通身發出紅斑 , 大者如黃豆 , 小者如綠豆 , 皆平而不腫 , 又無脂水 , 至夜則癢甚 , 日中稍可 , 此是血虛生風 。 詢其證 , 經水一月兩至 , 淋漓不斷 , 且頭眩 、 心跳 、 心嘈 , 顯然血虛生風 , 熱灼營陰 , 膚髮紅斑而搔癢也 。 用生地 、 阿膠 、 穭豆衣 、 白芍 、 胡麻等而瘥 。 若認為風濕 , 而用祛風燥濕則謬矣 。
한 부인의 온몸에 붉은 반점이 났는데 큰 것은 콩만 하고 작은 것은 녹두만 하며 모두 평평하고 붓지 않으며 진물도 없었다. 밤에는 몹시 가렵고 낮에는 조금 괜찮았으니 혈허로 풍이 생긴 것이었다. 증을 물으니 월경이 한 달에 두 번 오고 조금씩 계속되어 끊이지 않았으며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뛰고 속이 허전하고 괴로웠다. 분명 혈허로 풍이 생기고 열이 영음을 태워 피부에 홍반과 가려움이 생긴 것이었다. 생지황·아교·검정콩 껍질·백작약·호마 등을 써서 나았다. 풍습이라 여겨 거풍·조습을 썼다면 잘못이었을 것이다.
飲邪作痛 , 在脅為多 , 或停中脘 。 其痛也 , 或嘔酸苦青綠水 , 或腹中漉漉有聲 , 或大便泄瀉稀水 , 則痛反松 , 脈沉而弦 , 是其候也 。 治宜溫通蠲飲 , 如乾薑 、 半夏 、 陳皮 、 茯苓 、 桂枝 、 澤瀉等味 。 昔見一中年婦人 , 病脘脅痛 , 皆以為肝氣 , 服藥不效 。 飲食泛嘔而不納 , 十餘日米粒不進 , 但飲茶數口而已 , 一日 , 呻吟不安 , 囑咐後事 , 眾皆以為必死 。 傾忽嘔稀水半桶 , 倦極不語者半日 , 醒後漸思食 , 以米湯少少飲之 , 不嘔 , 再與稀糊粥少許頻頻飲下 , 亦不嘔 , 從此調理月餘 , 居然平復 。 今歲見一老嫗年逾七十 , 亦病脘痛 , 舌苔微白 , 諸藥不效 , 後竟不服藥 , 米粒不進共十八日 , 惟瞑目待斃而已 。 詎知忽然瀉出稀水黃糞甚多 , 從此漸思穀食 , 未幾即復 , 今已談笑自若矣 。
음사가 통증을 일으키는 곳은 옆구리가 많고 중완에 머물기도 한다. 아플 때 시고 쓰고 푸르거나 녹색의 물을 토하거나 배에서 졸졸 소리가 나며, 물 같은 변을 설사하면 도리어 통증이 누그러지고 맥은 침현한 것이 그 징후이다. 치료는 따뜻하게 통하게 하며 음을 제거해야 하니 건강·반하·진피·복령·계지·택사 등을 쓴다. 예전에 중년 부인이 위완과 옆구리 통증을 앓는 것을 보았다. 모두 간기라 여겼으나 약이 효과가 없었다. 음식을 토해 받아들이지 못하여 십여 일 동안 쌀알 하나 먹지 못하고 차 몇 모금만 마셨다. 어느 날 신음하며 불안해하고 뒷일을 당부하여 모두 반드시 죽으리라 여겼다. 갑자기 묽은 물 반 통을 토하고 지극히 피곤하여 반나절 말하지 않다가 깨어난 뒤 점차 먹고 싶어하였다. 미음을 조금씩 마시게 하니 토하지 않았고 다시 묽은 죽을 조금씩 자주 주어도 토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한 달 남짓 조리하여 뜻밖에도 회복하였다. 올해는 일흔이 넘은 노파가 역시 완통을 앓고 설태가 조금 희며 여러 약이 효과가 없는 것을 보았다. 뒤에는 아예 약을 먹지 않고 모두 18일 동안 쌀알 하나 먹지 못하여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릴 뿐이었다. 뜻밖에 갑자기 묽은 물과 누런 변을 매우 많이 설사하였고 그 뒤 점차 곡식을 생각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회복하여 지금은 평소처럼 말하고 웃는다.
旭高曰 : 是證之得不死者 , 雖然粒食不進 , 但神氣全無死象 , 如痛定時言語清楚 , 其正氣尚未脫離 , 是以不致於死 , 得能平復 。 須知脘腹痛證 , 若大痛不休者 , 必死且速 , 若時作時止者 , 未必便死 , 亦臨證之要訣 。
욱고가 말한다. 이 증에서 죽지 않은 것은 곡식을 먹지 못해도 신기에 죽을 모습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통증이 안정될 때 말이 또렷하였으니 정기가 아직 떠나지 않아 죽음에 이르지 않고 회복할 수 있었다. 위완·복통증에서 몹시 아프고 쉬지 않으면 반드시 빨리 죽지만 때로 발하고 때로 멎으면 곧 죽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하니 이것도 임증의 요결이다.
高氏女將出閣 , 夏末秋初 , 趕緊刺繡 , 黃昏早起 , 勞碌殊甚 。 於七月十三日清晨 , 出幃開窗 , 忽聞鵲噪 , 頓生驚疑 , 汗出浹背 。 早膳食麵一碗 , 遂覺懶不怡 , 至夜忽發熱 , 頭大痛 。 初醫以為肝陽 , 但用清泄重鎮之劑 , 如羚羊 、 決明等藥 。 不效 。 再易一醫 , 用龍膽瀉肝湯送下當歸龍薈丸 , 詎知藥入即吐 , 從此湯水不得進 , 納即嘔吐 , 壯熱無汗 , 神識昏蒙 , 滿頭皆痛 , 小溲短赤 , 始邀余診 。 及余至 , 適值老醫張三明亦至 , 同至內診視畢 。 張曰 :「 壯熱無汗 , 必夾風邪 , 舌苔黃膩 , 必夾痰濁 , 雖有肝陽 , 當先解表化痰 。」 余亦以為然 。 遂用牛蒡 、 荊芥 、 薄荷 、 蔓荊 、 滑石 、 半夏 、 橘皮 、 竹茹 , 磨沖玉樞丹 。 明日又來請 , 據云 , 病大增劇 , 一夜不安 , 幾乎發厥 , 聞之駭然 。 隨往診視 , 詢之 , 乃知昨日仍服苦降清泄之方 。 余躊躇良久而後言曰 :「 內因肝風上升 , 外因暑風挾積 , 論理當散風邪兼消食積 , 而後清鎮肝陽 , 既得多方轉側 , 今已先授清鎮 , 將胃中所蘊之痰濁食滯 , 盡阻遏在中 , 氣不得通 , 因而嘔逆 , 邪不得散 , 因而壯熱 , 無汗 , 舌苔黃濁 , 大便六七日不通 , 脈象弦滑數疾 , 病機偏向於裡 , 雖頭痛如破 , 固屬肝陽 , 而神糊煩躁 , 胸膈已如燎原 , 為今之計 , 莫若且用涼膈散 , 表裡雙解 , 俟得汗得便 , 神氣稍清 , 再進熄風和陽之藥 , 循序圖治 , 庶可漸臻坦途 」。 於是竟疏涼膈散全方 , 服下得寐 , 少頃 , 先出慄糞 , 後下稀溏三四次 , 遽而一夜安然 。 直至黎明 , 木旺陽升之際 , 忽手指牽引 , 面色變青 , 舉家慌亂 , 以為痙厥 , 莫可挽救 。 邀集諸醫商討 , 皆言難治 , 其危在傾刻 , 深怪涼膈之非 。 眾楚方咻 , 適余應邀請亦至 , 診得脈象弦 , 特少和 , 神氣略清 , 頭痛時止時甚 。 余曰 :「 諸公所言痙厥在邇 , 有何確據 ?」 眾曰 :「 脈細數 , 肢冷 , 手足搐搦 , 豈非痙厥 !」 余曰 :「 唯 , 唯 , 尚容緩思 。 得汗得便 , 一夜安然 , 表裡盡行暢達 , 肢雖不溫 , 而非厥冷 , 是熱退而和也 。 頭痛時作 , 乃肝陽為劇耳 。 舌苔黃膩 , 仍兼痰濁 。 此時當用熄風和陽化痰安神之劑為治 。」 眾議遂息 。 乃投羚羊 、 決明 、 半夏 、 茯神 、 川連 、 橘紅 、 枳實 、 鉤鉤 、 菖蒲 、 竹瀝 、 薑汁等味 , 調珠珀散六七分 。 明日再診 , 喜其病勢漸安 , 即仿此加入鮮薄荷根 , 因其喉間痰膩 , 且身尚微熱 , 而無汗也 。 連進兩服 , 而諸證皆平矣 。
고씨의 딸이 곧 시집가려 하여 늦여름과 초가을에 수를 서둘러 놓느라 저녁부터 이른 아침까지 매우 수고하였다. 칠월 13일 이른 아침 장막에서 나와 창을 열다가 갑자기 까치 우는 소리를 듣고 곧 놀라고 의심하여 땀이 등에 흠뻑 났다. 아침으로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나른하고 유쾌하지 않았는데 밤에 갑자기 열이 나고 머리가 크게 아팠다. 처음 의사는 간양이라 여겨 영양각·결명 등의 청설·중진약만 썼으나 효과가 없었다. 다른 의사로 바꾸어 용담사간탕으로 당귀용회환을 넘기게 하였는데 약이 들어가자 토하였다. 이때부터 물도 넘기지 못하고 먹으면 토하며 높은 열에 땀이 없고 정신이 혼미하며 온 머리가 아프고 소변이 짧고 붉어 그제야 나를 불렀다. 내가 이르렀을 때 노의 장삼명도 와 함께 안에 들어가 진찰하였다. 장씨는 “높은 열에 땀이 없으면 반드시 풍사를 끼고 누렇고 끈끈한 설태는 반드시 담탁을 낀 것이니 간양이 있어도 먼저 해표·화담해야 한다”고 하였다. 나도 옳게 여겨 우방·형개·박하·만형자·활석·반하·귤피·죽여에 옥추단을 갈아 타게 하였다. 다음 날 다시 청하였는데 병이 크게 심해져 밤새 불안하고 거의 궐이 발할 뻔했다고 하니 놀랐다. 곧 가서 진찰하고 물으니 어제 여전히 고강·청설하는 처방을 먹은 줄 알았다. 나는 오래 망설인 뒤 “안으로는 간풍이 올라가고 밖으로는 서풍에 적이 끼었으니 이치상 풍사를 흩고 식적을 없앤 뒤 간양을 맑히고 누르며 여러 방면으로 조절해야 합니다. 지금은 먼저 청진을 써서 위 속의 담탁·식체를 모두 중간에 막아 기가 통하지 못하여 구역하고, 사기가 흩어지지 못하여 높은 열과 무한이 생겼습니다. 설태가 누렇고 탁하며 대변이 엿새 이레 통하지 않고 맥이 현활삭질하니 병기는 리로 치우쳤습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픈 것은 본래 간양이지만 정신이 흐리고 번조하며 흉격이 들판을 태우는 불 같습니다. 지금은 우선 양격산으로 표리를 함께 풀어 땀과 대변이 나오고 신기가 조금 맑아진 뒤 식풍화양약을 주어 순서대로 치료하면 점차 순탄해질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양격산 전방을 적어 주었다. 먹고 잠들었다가 잠시 뒤 처음에는 밤톨 같은 변, 뒤에는 묽은 변을 서너 차례 보고 곧 밤새 편안하였다. 새벽에 목이 왕성하고 양이 오를 때 갑자기 손가락이 당기고 얼굴이 푸르게 변하자 온 집안이 당황하여 경궐로 여기며 구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의사들을 모아 의논하니 모두 치료하기 어렵고 위급함이 잠깐 사이에 있다며 양격을 쓴 잘못을 심하게 탓하였다. 여러 사람이 시끄럽게 말할 때 나도 초청을 받아 도착하였다. 맥은 현하지만 조금 고르게 되었고 정신은 약간 맑으며 두통은 때로 멎고 때로 심하였다. 내가 “경궐이 임박했다는 데 무슨 확실한 근거가 있습니까”라고 하니 모두 “맥이 세삭하고 사지가 차며 손발이 경련하니 경궐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그렇군요. 조금 더 생각해 봅시다. 땀과 대변을 보고 밤새 편안하였으니 표리가 모두 통하였습니다. 사지가 따뜻하지 않아도 궐랭은 아니며 열이 물러가 조화된 것입니다. 두통이 때로 나는 것은 간양이 심해서일 뿐입니다. 누렇고 끈끈한 설태는 아직 담탁을 겸하니 지금은 식풍·화양·화담·안신하는 약으로 치료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견이 가라앉아 영양각·결명·반하·복신·천련·귤홍·지실·조구등·창포·죽력·생강즙 등에 주박산 6~7푼을 타서 주었다. 다음 날 다시 진찰하니 병세가 점차 안정되어 기뻤다. 이를 본떠 신선한 박하뿌리를 더한 것은 목에 담이 끈끈하고 몸에 아직 미열이 있는데 땀이 없었기 때문이다. 두 번 연이어 먹으니 여러 증이 모두 평온해졌다.
溫邪證三五日 , 或六七日 , 面目肢體發黃者 , 多生於茶客酒客輩 , 平日素多濕熱 , 一受溫邪 , 穢濁蒸熏 , 即發黃疸 。 往往外無大熱 , 舌苔濁厚 , 而又煩躁不安 , 渴不多飲 , 神氣昏狂 , 或有汗或無汗 , 脈或大滑 , 或沉數 。 或用茵陳 、 梔子 、 大黃 , 或用犀角 、 鮮地 、 茵陳 、 石斛 、 苓 、 梔 、 芩 、 滑 、 如甘露飲等 , 所見五六證皆死 。 大抵 《 傷寒論 》 中發黃 , 無穢濁蒙閉 , 故無汗者用麻黃連翹赤小豆湯 , 使濕熱從外而泄 。 有汗者用茵陳蒿湯 , 使濕熱從下而泄 。 此溫邪發黃 , 濕熱蒸熏於外 , 穢濁蒙閉於內 , 故難治 , 當細細參究 , 質問諸博雅 , 姑記於此 , 驗後之得失 。
온사증 사흘에서 닷새 또는 엿새 이레에 얼굴·눈·팔다리·몸이 누렇게 되는 것은 차와 술을 즐기는 사람에게 많이 생긴다. 평소 습열이 많다가 온사를 받으면 더러운 탁기가 찌고 훈증하여 곧 황달이 난다. 흔히 겉에는 큰 열이 없고 설태는 탁하고 두꺼우며 번조하고 불안하고 목말라도 많이 마시지 않으며 신기가 혼미하고 광란한다. 땀이 있거나 없고 맥은 대활하거나 침삭하다. 인진·치자·대황을 쓰거나 서각·신선한 지황·인진·석곡·복령·치자·황금·활석 등 감로음 같은 것을 썼는데, 본 대여섯 사례가 모두 죽었다. 대체로 《상한론》의 발황에는 더러운 탁기가 가려 막는 것이 없으므로 땀이 없으면 마황연교적소두탕으로 습열을 밖으로 내보내고, 땀이 있으면 인진호탕으로 습열을 아래로 내보낸다. 이 온사발황은 습열이 밖을 찌고 훈증하며 더러운 탁기가 안을 가려 막으므로 치료하기 어렵다. 자세히 참구하고 박식한 이들에게 물어야 하기에 우선 여기에 적어 뒤의 득실을 검증한다.
凡虛體及吃鴉片之人 , 病溫邪五六日 , 忽然煩躁 , 大汗出而熱仍不退 , 神識反昏 , 或反大熱 、 煩躁 、 昏狂 , 此屬正虛不能敵邪外出 , 而反內陷也 。 或停一日 , 亦有再作寒慄戰汗 , 而神識乃清者 。 如葉氏所云 :「 邪盛正虛 , 不能一戰而解 , 停一二日再戰汗而愈者 」 是也 。 倘若再戰而神識不清 , 反加痰喘呃忒 , 則頓時生變 , 此不可不知 。
허한 몸이나 아편을 먹는 사람이 온사를 앓은 지 닷새 엿새에 갑자기 번조하고 땀이 크게 나도 열이 여전히 물러가지 않으며 정신이 도리어 혼미해지거나, 도리어 고열·번조·혼광이 생기면 정기가 허하여 사기를 대적해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고 도리어 안으로 빠진 것이다. 하루를 쉬었다가 다시 오한으로 떨며 땀이 나고 정신이 맑아지는 경우도 있다. 섭씨가 “사기는 성하고 정기는 허하여 한 번의 전한으로 풀리지 않다가 하루 이틀 뒤 다시 전한하고 낫는 경우”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다시 떨고도 정신이 맑지 않고 담천·딸꾹질이 더해지면 갑자기 병세의 변화가 생기니 이를 알아야 한다.
凡有疝氣之人 , 忽發寒熱 , 腎囊腫大 , 其色帶紅者 , 防發囊癰 , 此其一也 。 又有不發囊癰者 , 或胯凹 , 或腿膝腫痛 , 色紅 , 醫作濕火例治 。 然吃煙之人 , 或高年正虛之輩 , 腫痛不已 , 而其脾胃薄弱 , 頻仍作呃 , 蓋肝腎之氣上衝於胃也 , 此證必凶多吉少 。 用人參 、 丁香 、 柿蒂 、 旋覆花 、 代赭石等 , 呃止者生 , 不止者死 。
산기가 있는 사람이 갑자기 한열이 나고 음낭이 커지며 붉은빛을 띠면 낭옹이 생길 것을 경계해야 하니 이것이 하나이다. 또 낭옹은 생기지 않고 사타구니나 넓적다리·무릎이 붓고 아프며 붉은 경우도 있어 의사는 습화의 예로 치료한다. 그러나 연기를 피우는 사람이나 나이가 많고 정기가 허한 사람에게 부종과 통증이 그치지 않고 비위가 약하여 딸꾹질이 자주 나면 간신의 기가 위로 위를 치미는 것이다. 이 증은 반드시 흉한 경우가 많고 길한 경우가 적다. 인삼·정향·시체·선복화·대자석 등을 써서 딸꾹질이 멎으면 살고 멎지 않으면 죽는다.
曾見一種舌苔 , 舌根至舌心或黃或白 , 舌尖至舌心光紅無苔 , 其舌心有苔無苔交界處 , 宛如刀切之狀 , 此謂兩截舌 , 陰陽不交之確證 。 又有一邊有苔 , 一邊無苔 , 左右各半者 , 此謂營衛隔絕 , 其證必凶 。
한 종류의 설태를 보았는데 혀뿌리에서 혀 한가운데까지는 누렇거나 희고, 혀끝에서 가운데까지는 매끈하고 붉으며 태가 없었다. 가운데의 태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의 경계가 칼로 자른 듯하였으니 이것을 양절설이라 하며 음양이 서로 통하지 않는 확실한 증거이다. 또 한쪽에는 태가 있고 다른 쪽에는 없어 좌우가 반반인 경우는 영위가 격절된 것으로 그 증은 반드시 흉하다.
江陰巷李三喜之妻 , 因夏月起造房屋 , 勞碌受熱 , 至秋季遂患肛門之內 , 臟頭之間 , 後重氣墜 , 頻欲登圊 , 但有紅膩點滴些些 , 並無糞穢 。 自服制大黃解下干糞後稍松 , 但肛門墜痛 , 一日數十次 , 終不減 。 屢易諸醫 , 皆以為痢疾 , 用川連 、 木香 、 芩 、 芍皆不效 , 已數十日矣 , 始邀余診 。 脈尺部洪大 , 詢其病由 , 因夏暑勞碌過度 , 濕熱下注腸臟之頭 , 結為臟毒 。 以致臟頭腫熱疼痛如刺 , 如得下膿血少許 , 則痛稍松 , 須臾仍氣墜腹脹 , 則又欲登圊 , 雖有似乎痢疾 , 但腹中不痛 , 痛在臟頭肛門之裡 , 非痢疾乃臟毒 。 定方用川連 、 胡連 、 犀角 、 苦參子 、 槐米炭 、 地榆炭 、 金銀花 、 象牙屑 、 刺蝟皮 、 蘆薈共等分為末 , 用豬臟頭一個 , 酒煮爛 , 與前藥和為丸 , 初服每朝二錢五分 , 半月後每朝一錢五分 , 以後逐漸減少 。 但服此方 , 必腹中略痛片刻 , 解下穢糞極臭 , 墜痛從此大松 。 服此丸二十日 , 忽然瀉下汙血鮮血有半桶許 , 舉家驚惶 , 急來邀余 。 處以歸脾湯 , 去木香 , 加白芍 、 阿膠 , 連服三貼 , 神氣即復 。 仍服前丸 , 每日一錢 , 用黃耆 、 黨參煎湯送下 , 從此漸臻坦途 。
강음항 이삼희의 아내가 여름에 집을 짓느라 수고하고 열을 받은 뒤 가을에 항문 안쪽, 장두 사이에 후중과 기가 처지는 증이 생겼다. 자주 변소에 가려 하였으나 붉고 끈끈한 것이 조금씩 방울질 뿐 변은 없었다. 스스로 법제한 대황을 먹고 마른 변을 본 뒤 조금 누그러졌지만 항문이 처지고 아픈 것이 하루 수십 차례여서 끝내 줄지 않았다. 여러 의사를 바꾸어도 모두 이질이라 하며 천련·목향·황금·작약을 썼으나 효과가 없었다. 이미 수십 일이 지나 나를 불렀다. 척맥이 홍대하였고 병의 원인을 물으니 여름 더위에 지나치게 수고하여 습열이 장의 끝으로 내려가 장독으로 맺힌 것이었다. 그래서 장두가 붓고 뜨겁고 찌르듯 아프며 고름과 피가 조금 나오면 통증이 조금 누그러지지만 곧 다시 기가 처지고 배가 부풀어 변소에 가고 싶어하였다. 이질과 비슷하지만 배 속은 아프지 않고 통증이 장두와 항문 안에 있으므로 이질이 아니라 장독이었다. 천련·호황련·서각·고삼자·괴미탄·지유탄·금은화·상아가루·자위피·노회를 모두 같은 분량으로 가루 내고 돼지 장두 하나를 술로 푹 삶아 앞 약과 섞어 환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아침마다 2돈 5푼, 보름 뒤에는 아침마다 1돈 5푼, 그 뒤에는 점차 줄였다. 다만 이 약을 먹으면 반드시 잠시 배 속이 조금 아프고 악취가 심한 더러운 변이 나오는데 그 뒤 처지는 통증이 크게 누그러졌다. 이 환을 20일 복용하다 갑자기 더러운 피와 선혈이 반 통가량 설사로 나와 온 집안이 놀라 급히 나를 불렀다. 귀비탕에서 목향을 빼고 백작약·아교를 더하여 세 첩 연복하니 신기가 회복하였다. 다시 앞 환을 하루 1돈씩 황기·당삼 달인 탕으로 넘기게 하여 이때부터 점차 순탄해졌다.
門人繆禮和曰 : 此病究因勞乏受熱 , 氣陷熱潛 , 宜用歸脾湯加苦參 、 大黃為佳 。 斯言誠然 , 但余所用丸藥 , 專主臟毒 。 如初起體質未虛 , 而濕熱下注腸臟 , 則歸脾湯加苦參 、 大黃為優也 。
문인 무예화는 “이 병은 결국 수고하고 열을 받아 기가 내려앉고 열이 숨어 생긴 것이니 귀비탕에 고삼·대황을 더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이 말은 참으로 옳다. 다만 내가 쓴 환약은 장독을 전적으로 주치한다. 처음에 체질이 아직 허해지지 않았고 습열이 장으로 내려간 경우라면 귀비탕에 고삼·대황을 더하는 것이 더 낫다.
張川官之孫 , 年十八歲 , 冬月感寒夾積 , 腹痛泄瀉 。 他醫用吳萸 、 木香 、 烏藥 、 檳 、 楂以溫中消積 , 泄止得干屎 , 但少腹板窒 , 小便不利 。 適戚墅堰吳仲三子到錫 , 因請診治 , 斷為腸癰 , 用黃耆 、 銀花 、 當歸等味 , 一服 , 遂便下如水晶魚腦之膩質 。 而老醫趙桂三亦同聲附和 , 於吳方加入延胡等味 , 服二三劑後 , 病勢日篤 , 日夜泄白膩凍數十次 , 小便不通 。 邀余診視 , 細繹病情 , 斷非腸癰 。 適趙醫亦至 , 礙於前輩 , 只得委屈周旋 , 立案曰 : 腸癰為病 , 有寒有熱 , 熱者大黃牡丹皮湯 , 寒者苡仁附子敗醬散 , 此古人規則也 。 是證脈弦緊而不數 , 面色青而不渴 , 屬寒積也 。 鄙意宜用溫通 。 遂以肉桂五苓散加楂肉 、 砂仁 , 一服見效 。 即加炮薑 、 木香 。 第三方因溺後氣向下墜 , 腰尻痠痛 , 全屬陽虛氣陷之象 , 用東垣法參入前方 , 如黨參 、 升麻 、 冬朮 、 肉桂 、 茯苓 、 澤瀉 、 炮薑 、 木香 、 訶子 、 鹿角 、 砂仁 , 連服三劑 。 大便白膩全止 , 脾胃已開 , 面色紅活 , 遂去肉桂 、 減輕炮姜 , 服數劑全愈 。
장천관의 손자는 열여덟 살로 겨울에 한을 받고 적을 겸하여 복통과 설사가 있었다. 다른 의사는 오수유·목향·오약·빈랑·산사로 중초를 따뜻하게 하고 적을 없앴다. 설사가 멎고 마른 변을 보았으나 아랫배가 판처럼 막히고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았다. 마침 척서언의 오중삼자가 무석에 와서 진찰을 청하니 장옹이라 단정하고 황기·금은화·당귀 등을 썼다. 한 번 먹자 수정 같은 생선 뇌 모양의 끈끈한 물질이 대변으로 나왔다. 노의 조계삼도 동조하여 오씨 처방에 현호색 등을 더하였는데 두세 제 뒤 병세가 날로 위중해져 밤낮으로 흰 젤리 같은 것을 수십 차례 설사하고 소변이 통하지 않았다. 나를 불러 진찰하게 하여 병정을 자세히 살피니 결코 장옹이 아니었다. 마침 조 의사도 와서 선배라는 점에 걸려 부득이 뜻을 굽혀 대응하며 의안에 이렇게 썼다. “장옹병에는 한과 열이 있어 열이면 대황목단피탕, 한이면 의이인부자패장산을 쓰는 것이 고인의 법칙입니다. 이 증은 맥이 현긴하나 삭하지 않고 얼굴이 푸르고 목마르지 않아 한적에 속합니다. 제 생각에는 온통해야 합니다.” 육계오령산에 산사육·사인을 더하니 한 번에 효과가 있어 포강·목향을 더하였다. 셋째 처방 때에는 소변 뒤 기가 아래로 처지고 허리와 엉덩이가 시큰하고 아파 모두 양허·기함의 모습이므로 동원의 법을 앞 처방에 참작하였다. 당삼·승마·동출·육계·복령·택사·포강·목향·가자·녹각·사인을 세 제 연복하니 흰 끈끈한 변이 완전히 멎고 비위가 열리며 얼굴빛이 붉고 생기 있게 되었다. 육계를 빼고 포강을 줄여 몇 제 먹으니 완전히 나았다.
旭高曰 : 以上二證 , 李氏婦明明是臟毒 , 諸醫以為痢疾 , 張氏孫顯然寒痢 , 諸醫反謂腸癰 , 是非顛倒 , 舉世皆然 , 可慨也 !
욱고가 말한다. 위 두 증에서 이씨 부인은 분명 장독인데 여러 의사는 이질이라 하였고, 장씨 손자는 명백한 한리인데 여러 의사는 도리어 장옹이라 하였다. 옳고 그름이 뒤집힌 일이 온 세상에 다 그러하니 한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