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快讀裴子之書而異之也 , 學不貫今古 , 識不通天人 , 才不近仙 , 心不近佛者 , 寧耕田織布 , 取衣食耳 , 斷不可作醫以誤世 。 醫固神聖之業 , 非後世讀書未成 , 生計未就 , 擇術而居之具也 。 是必慧有夙因 , 念有專習 , 窮致天人之理 , 精思竭慮於古今之書 , 而後可言醫 。 每見庸工治病 , 十失其五 ; 良工治病 , 亦十失其一 , 由一以循累之 , 誤亦未忍言也 。 即能窮致天人之理 , 精思竭慮古今之書 , 而病伏於內 , 醫測於外 , 病以奇伏 , 醫以意測 , 幸而得則竟得矣 , 或偶不得 , 則不為二豎所笑者無之 。 此扁鵲所以需上池之水 , 而思邈所以藉龍宮之方也 。 夫上池之水不易得 , 龍宮之方不再傳 , 則惟窮理讀書 , 以學識參造化之權而後可 。 若裴子者 , 斯其人矣 ; 若裴子者 , 固數百年所未出之人也 。 古今之有學識者 , 當首推張戴人及劉河間 , 能與病血戰 , 而不奉表稱臣於病 , 第未免過甚耳 。 其餘諸家 , 立法非不善 , 實為鄉愿逋逃之藪 。 故謂醫有成心 , 不可也 ; 謂醫有成理 , 尤不可也 。 無成理而有或效 , 醫信難言哉 ! 裴子之言曰 : 以生死易視者易之 。 固數百年所未出之言也 。 獨謂裴子學貫今古 , 識通天 , 人才則仙而心則佛 , 信也非譽矣 。 誦其言皆軒岐所欲言而深悔未及言 , 亦諸大家所欲言而格格不能言 , 豈帝憫枉札之禍 , 助其神智而授之使言歟 ? 推此而失者可得 , 難者可易 , 而謂醫無成理 , 尤不可也 。 余以多病學醫 , 日為醫而醫日下 , 初似可遊刃 , 邇皆茫然 , 抑鬱焦思 , 徒廢寢食 , 行將耕田織布 , 棄醫而去 , 以求無誤於世 。 今秋得晤個亭先生 , 極口兆期裴子學識 , 且示以所著書 , 余嚮慕裴子名 , 而不圖其貫通至此也 。 一再讀之 , 豁乎快有所獲 , 裴子教我矣 。 何時共晨夕 , 而相咨晰 , 究竟此神聖之業哉 !
나는 배자의 책을 시원스레 읽고 기이하게 여겼다. 학문이 고금에 관통하지 못하고 식견이 천인에 통하지 못하며 재주가 신선에 가깝지 못하고 마음이 부처에 가깝지 못한 사람은 차라리 밭을 갈고 베를 짜서 옷과 밥을 얻을 뿐이지, 결코 의사가 되어 세상을 그르쳐서는 안 된다. 의술은 본래 신성한 사업이지, 후세에 독서를 이루지 못하고 생계를 마련하지 못한 이가 기술을 골라 살아가는 도구가 아니다. 반드시 지혜에 숙인이 있고 생각에 전일한 익힘이 있어 천인의 이치를 끝까지 궁구하고 고금의 책에 정밀히 생각하며 사려를 다한 뒤에야 의술을 말할 수 있다. 늘 보건대 용렬한 의사는 병을 치료하여 열에 다섯을 잃고 좋은 의사도 열에 하나를 잃는다. 하나에서부터 계속 쌓아 가면 그 잘못도 차마 말할 수 없다. 천인의 이치를 궁구하고 고금의 책에 생각과 사려를 다할 수 있더라도 병은 안에 숨어 있고 의사는 밖에서 헤아린다. 병은 기이하게 숨고 의사는 뜻으로 헤아리니, 다행히 맞히면 마침내 맞히지만 혹 우연히 맞히지 못하면 두 병귀에게 비웃음을 당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편작은 상지의 물을 필요로 하였고 사막은 용궁의 처방에 의지하였다. 상지의 물은 쉽게 얻지 못하고 용궁의 처방은 다시 전하지 않으니 오직 이치를 궁구하고 책을 읽어 학식으로 조화의 권능에 참여한 뒤에야 가능하다. 배자 같은 이가 바로 그런 사람이며, 배자 같은 이는 참으로 수백 년 동안 나오지 않았던 사람이다. 고금에 학식이 있는 사람으로는 장대인과 유하간을 맨 먼저 꼽아야 한다. 병과 혈전을 벌일 수 있고 병에 표문을 올려 신하라 일컫지 않았으나, 다만 지나침을 면하지 못하였다. 나머지 여러 사람은 법을 세운 것이 좋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실로 향원이 달아나 숨는 소굴이 되었다. 그러므로 의사에게 굳어진 마음이 있다고 해서는 안 되며, 의술에 굳어진 이치가 있다고 해서는 더욱 안 된다. 굳어진 이치가 없는데 혹 효과가 있으니 의술은 참으로 말하기 어렵다. 배자는 “생사를 쉽게 보는 자가 그것을 쉽게 여긴다.”라고 말하였다. 참으로 수백 년 동안 나오지 않았던 말이다. 유독 배자는 학문이 고금에 관통하고 식견이 천인에 통하며 재주는 신선 같고 마음은 부처 같다고 하는 것은 참말이지 칭찬이 아니다. 그 말을 읽으면 모두 헌원과 기백이 말하고자 하였으나 미처 말하지 못하여 깊이 후회할 것이며, 여러 대가도 말하고자 하였으나 막혀 말하지 못한 것이다. 상제가 억울하게 일찍 죽는 재앙을 불쌍히 여겨 그의 신지를 도와 주고 말을 맡겨 하게 한 것인가. 이를 미루어 나가면 놓친 것을 얻고 어려운 것을 쉽게 할 수 있으니, 의술에 정해진 이치가 없다고 해서는 더욱 안 된다. 나는 병이 많아 의술을 배웠는데 날마다 의술을 행할수록 의술은 날마다 내려갔다. 처음에는 칼날을 자유로이 놀릴 듯하였으나 요즈음은 모두 망연하여 억울하고 애타게 생각하며 헛되이 침식을 폐하였다. 장차 밭을 갈고 베를 짜며 의술을 버리고 떠나 세상을 그르치지 않기를 구하려 하였다. 올가을 개정 선생을 만나 그가 조기 배자의 학식을 극구 말하고 저술한 책도 보여 주었다. 나는 배자의 명성을 사모하였으나 그 관통함이 이 정도인 줄은 생각하지 못하였다. 거듭 읽자 시원스레 깨닫고 얻는 바가 있었으니 배자가 나를 가르쳤다. 언제 아침저녁을 함께하며 서로 묻고 밝혀 마침내 이 신성한 사업을 끝까지 연구할 수 있을까.
順治十四年丁酉中秋日友弟趙善鳴聲伯父序
순치 14년 정유 중추일, 벗이자 아우인 조선명 성보가 서문을 쓰다.
醫之道難言矣 , 余何人斯 , 敢僭言也 ? 惟是醫教衰而醫日流於弊 , 古聖賢仁壽之傳 , 幾歸淪沒 , 遂不自禁其婆心之熱 , 率蠡見而僭言之也 , 知我罪我 , 其在茲乎 !
의술의 도는 말하기 어렵다. 나는 어떤 사람이기에 감히 분수에 넘치게 말하겠는가. 다만 의학의 가르침이 쇠하고 의술이 날로 폐단에 흘러 옛 성현이 사람을 어질게 하고 오래 살게 하던 전통이 거의 사라지려 하므로, 간절한 마음의 뜨거움을 스스로 억누르지 못하여 좁은 견해를 따라 참람하게 말한 것이다. 나를 알아주거나 나를 탓하는 것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人之一身 , 無非病也 , 亦無非藥 , 泥金 、 石 、 草 、 木 、 鳥 、 獸 、 蟲 、 魚為藥偏矣 , 亦後矣 。 飢飽待時 , 飲食藥也 ; 寒溫適所 , 衣服藥也 ; 動靜有常 , 起居藥也 ; 色不視邪 , 則目明 ; 聲不聽淫 , 則耳聰 ; 口無莠言 , 行無顛步 , 則口體正 , 均藥也 。 使有人焉 , 知填精而不知寡欲 , 知養氣而不知守默 , 知保神而不知絕慮 , 亦焉往而得藥 。《 素問 》, 醫之六經也 , 但言順四時 , 少嗜欲 , 節飲食 , 不為邪氣凌犯 , 初未嘗以藥言 。 其五志為病者 , 即以五志為藥 。 如曰悲勝怒 , 病怒者 , 悽愴哀苦以感之 ; 喜勝悲 , 病悲者 , 謔浪佚豫以娛之 ; 恐勝喜 , 病喜者 , 迫遽危亡以怖之 ; 怒勝思 , 病思者 , 汙辱欺妄以激之 ; 思勝恐 , 病恐者 , 沉疑搜剔以緩之 。 至如逸可治勞 , 靜可治躁 , 處陰以避暑 , 就燠以避寒 , 凡此之類 , 皆非熱非寒 、 非酸非苦 , 無煩採製 , 不費㕮咀 , 隨在而得之之聖藥 , 遠逾草根木皮萬萬也 。 則請為尊生者 , 揭未病之藥 。
사람의 한 몸에는 병 아닌 것이 없고 또한 약 아닌 것이 없다. 금·석·초·목·조·수·충·어만을 약이라 고집하는 것은 치우치며 또한 뒤늦다. 주리고 배부름에 때를 기다리면 음식이 약이고, 춥고 따뜻함을 알맞게 하면 의복이 약이며, 움직이고 고요함에 일정함이 있으면 기거가 약이다. 사악한 빛을 보지 않으면 눈이 밝고 음란한 소리를 듣지 않으면 귀가 밝으며, 입에 나쁜 말이 없고 걸을 때 넘어지는 걸음이 없으면 입과 몸이 바르게 되니 모두 약이다. 정을 채울 줄만 알고 욕심을 적게 할 줄 모르며, 기를 기를 줄만 알고 침묵을 지킬 줄 모르며, 신을 보전할 줄만 알고 사려를 끊을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또 어디에 가서 약을 얻겠는가. 『소문』은 의술의 육경이다. 다만 사시를 따르고 기욕을 줄이며 음식을 절제하여 사기의 침범을 받지 말라고 했을 뿐, 처음부터 약으로 말하지 않았다. 오지가 병이 되면 곧 오지를 약으로 삼는다. 슬픔이 노여움을 이긴다고 하였으니 노여움으로 병든 사람은 처참하고 애달픈 고통으로 감동시키고, 기쁨이 슬픔을 이긴다고 하였으니 슬픔으로 병든 사람은 익살과 즐거운 놀이로 즐겁게 하며, 두려움이 기쁨을 이긴다고 하였으니 기쁨으로 병든 사람은 급박한 위험과 죽음으로 겁주고, 노여움이 생각을 이긴다고 하였으니 생각으로 병든 사람은 모욕과 기만으로 격동시키며, 생각이 두려움을 이긴다고 하였으니 두려움으로 병든 사람은 깊이 의심하고 찾아 밝혀 느슨하게 한다. 안일함으로 수고로움을 치료하고 고요함으로 조급함을 치료하며 그늘에 머물러 더위를 피하고 따뜻한 곳으로 가서 추위를 피하는 것과 같은 경우도 모두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시지도 쓰지도 않으며, 채취하고 만드는 수고나 잘게 써는 비용 없이 어디에서나 얻는 성약으로 풀뿌리와 나무껍질보다 만 배나 낫다. 그러니 생명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미병의 약을 드러내고자 한다.
慎起居 、 節飲食則外感不能侵 , 若情志所傷 , 不可徒以藥治之 。 張戴人深知此義 , 觀其治案 , 可以為萬世法 。 蓋草木之功 , 但可以祛六淫之邪也 。
기거를 삼가고 음식을 절제하면 외감이 침범하지 못한다. 정지에 상한 경우는 약만으로 치료할 수 없다. 장대인은 이 뜻을 깊이 알았으니 그 치험안을 보면 만세의 법으로 삼을 수 있다. 초목의 효능은 다만 육음의 사기를 물리칠 수 있을 뿐이다.
《 素問 》 曰 : 不能治其虛 , 何問其餘 。 夫不曰補其虛 , 而曰治其虛 , 大有深義 。「 治 」 字 、「 補 」 字 , 難易大不相侔 。 補其虛者 , 只有虛而別無邪氣夾虛中 , 譬猶弱國時也 ; 治其虛者 , 不足之中兼有餘之證 , 譬國勢強弱相半時也 。 此時而欲補之 , 則邪未衰 ; 欲瀉之 , 則氣已敗 , 勢介兩難 , 必隨時取中於其間 , 或先攻後補 , 或先補後攻 , 或因攻為補 , 或借補為攻 。 雖攻而正不戕 , 雖補而邪不熾 , 方可謂之治其虛 , 謂之能治其虛耳 。 於此不能 , 其餘何可復問 ? 旨哉 ! 須知治之一字 , 有無限苦心 , 無窮妙用在 , 與虛則補之之一字大有間 , 世都忽而不察 , 特註明之 。
『소문』에 “그 허를 치료하지 못한다면 어찌 나머지를 묻겠는가.”라고 하였다. 그 허를 보한다고 하지 않고 그 허를 치료한다고 한 데에는 매우 깊은 뜻이 있다. ‘치’라는 글자와 ‘보’라는 글자는 어렵고 쉬움이 크게 같지 않다. 그 허를 보한다는 것은 오직 허만 있고 달리 사기가 허 가운데 끼어 있지 않은 것으로, 나라가 약할 때와 같다. 그 허를 치료한다는 것은 부족한 가운데 유여한 증상이 겸한 것으로, 국세의 강약이 반반일 때와 같다. 이때 보하려 하면 사기가 아직 쇠하지 않았고 사하려 하면 기가 이미 패하여 형세가 두 어려움 사이에 있으니, 반드시 때에 따라 그 사이에서 알맞음을 취해야 한다. 먼저 공한 뒤 보하거나 먼저 보한 뒤 공하거나, 공함으로써 보하거나 보함을 빌려 공해야 한다. 공하여도 정기를 해치지 않고 보하여도 사기가 치성하지 않아야 비로소 그 허를 치료한다고 하며, 그 허를 치료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능하지 못하면 나머지를 어찌 다시 물을 수 있겠는가. 깊은 뜻이다. ‘치료한다’는 한 글자에는 무한한 고심과 무궁한 묘용이 있어 ‘허하면 보한다’는 한 글자와 큰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세상이 모두 소홀히 하여 살피지 않으므로 특별히 밝혀 적는다.
分別治虛 、 補虛之異 , 有禪後學不少 。
치허와 보허의 차이를 구분하였으니 후학에게 전해 주는 것이 적지 않다.
醫何以仁術稱 ? 仁即天之理 , 生之原 , 通物我於無間也 。 醫以活人為心 , 視人之病 , 猶己之病 , 凡有求治 , 當不啻救焚拯溺 , 風雨寒暑勿避 , 遠近晨夜勿拘 , 貴賤貧富好惡親疏勿問 , 即其病不可治 , 亦須竭心力以圖萬一之可生 。 是則此心便可徹天地 、 統萬物 , 大公無我而幾於聖矣 。 不如是 , 安得謂之醫而以仁術稱 ?
의술을 어째서 인술이라 일컫는가. 인은 곧 하늘의 이치이고 생명의 근원이며 남과 나를 간격 없이 통하게 하는 것이다.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것을 마음으로 삼고 남의 병을 자기 병처럼 보아야 한다. 치료를 구하는 이가 있으면 불난 곳을 구하고 물에 빠진 이를 건지는 것 못지않게 하여, 비바람과 추위·더위를 피하지 않고 멀고 가까움과 새벽·밤에 구애받지 않으며 귀천·빈부·호오·친소를 묻지 않아야 한다. 그 병을 치료할 수 없더라도 심력을 다하여 만에 하나 살 수 있음을 도모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이 마음이 천지에 통하고 만물을 거느리며 크게 공정하여 사심이 없어 거의 성인에 이를 것이다. 이와 같지 않은데 어찌 의사라 하고 인술이라 일컬을 수 있겠는가.
藹然仁者之言 , 業是術者 , 當書座右 。
온화한 인자의 말이니 이 의술을 업으로 하는 사람은 마땅히 좌우에 써 두어야 한다.
醫者常須愛養自家精力 , 精力不足則倦 , 倦生厭 , 厭生躁 , 厭躁相乘 , 則審脈 、 辨證 、 處方 , 皆苟率而無誠意矣 。 思欲救死全生 , 庸可期乎 ? 今之醫者 , 鮮克不以奔競為專務 , 徒勞苦而不自知 , 大戒也 。
의사는 늘 자신의 정력을 아끼고 길러야 한다. 정력이 부족하면 피곤하고 피곤하면 싫증이 생기며 싫증이 생기면 조급해진다. 싫증과 조급함이 서로 더하면 맥을 살피고 증을 분별하고 처방하는 일이 모두 구차하고 경솔하여 성의가 없게 된다. 죽음에서 구하고 생명을 온전히 하려 한들 어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의사는 다투어 분주히 달리는 것을 전업으로 삼지 않는 이가 드물어 헛되이 수고하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하니 크게 경계할 일이다.
不但奔競當戒 , 尤宜屏除嗜好 , 蓋嗜欲紛則靈機塞也 。
분주히 다투는 것을 경계할 뿐 아니라 더욱 기호를 물리쳐 없애야 한다. 기욕이 어지러우면 영묘한 기틀이 막히기 때문이다.
醫之看病 , 與文家之相題無二 。 病 , 題也 ; 脈 , 題之旨也 ; 藥 , 則詞章也 ; 方法 , 局與勢也 。 善為治者 , 脈證既詳 , 當思所以治之之法 , 而隨因法以立方 , 藥不過如卑賤之職 , 唯吾方法驅使耳 ! 不思者 , 竟以草木為拘 , 見頭痛便用川芎 , 見腳痛便加牛膝 , 救頭救腳 , 茫乎其無統宗 。 雖藥品精良 , 亦何能中病之窾會哉 ? 是猶文家不以題旨局勢為先 , 而僅修詞章之末 , 縱言言錦繡 , 字字琳瑯 , 與本題將千里隔矣 , 何足貴 !
의사가 병을 보는 것은 문장가가 글제를 살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병은 글제이고 맥은 글제의 뜻이며 약은 사장이고 방법은 구성과 형세이다. 치료를 잘하는 사람은 맥과 증을 자세히 살핀 뒤 어떻게 치료할지 그 법을 생각하고 곧 법에 따라 처방을 세워야 한다. 약은 낮고 천한 직분과 같아 오직 나의 방법에 따라 부려질 뿐이다. 생각하지 않는 자는 마침내 초목에 얽매여 두통을 보면 곧 천궁을 쓰고 다리 통증을 보면 곧 우슬을 더하여, 머리를 구하고 다리를 구하느라 망연히 통솔하는 종지가 없다. 약품이 정밀하고 좋아도 어찌 병의 요체에 맞힐 수 있겠는가. 이는 문장가가 글제의 뜻과 구성·형세를 앞세우지 않고 사장의 말단만을 닦아, 비록 말마다 비단 같고 글자마다 아름다운 옥 같아도 본래 글제와는 천 리나 떨어지는 것과 같으니 어찌 귀하게 여기겠는가.
證不辨清 , 脈亦無憑 , 故博學 、 審問 、 慎思 、 明辨 、 篤行五者 , 醫家不可缺一也 。
증을 분명히 분별하지 못하면 맥도 근거가 없다. 그러므로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히 생각하고 명백히 분별하며 독실히 행하는 다섯 가지는 의가에게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된다.
胃為水穀之海 , 脾為生化之源 , 生化旺則氣血清和 , 諸病屏息 , 生化衰則氣血虧損 , 百疾交侵 , 非細故也 。 惟東垣先生深得此旨 , 闡發脾胃元氣之妙 , 可謂呼聾震啟聵光矣 。 世之醫者 , 徒執病形 , 不推病本 , 脾胃之義 , 置而勿講 。 如脾虛氣短似痰喘耳 , 泥為肺熱痰壅 , 瀉以石膏 、 蘇子 ; 脾虛發熱似外感耳 , 認作風寒外束 , 表以羌活 、 麻黃 ; 脾虛下陷 , 變為後重裡急 , 猶謂滯積不行 , 可以硝 、 黃 、 枳 、 樸 ; 脾虛不運 , 變為水脹中滿 , 猶謂宿食未化 , 導以巴豆 、 牽牛 ; 產後感風 , 飲食停滯而嘔吐脹悶 , 誤擬敗血攻心 , 恣餌桃仁 、 四物 ; 勞瘵脾虛 , 飲食減少而噁心溏瀉 , 尚執滋陰降火 , 偏需知 、 柏 、 二冬 , 投之不愈 , 更恣投之 , 脾胃轉傷而疾轉篤 , 技窮莫措 , 歸命於數 。 時弊如斯 , 曷可勝計 ? 無他 , 未明主氣之說故也 。 主氣實而攻之 , 則病易愈 ; 主氣虛而攻之 , 則病反加 , 非藥不能治病也 , 主氣不行藥力也 。 況當世之人 , 氣稟寖 , 兼多沉湎於酒 , 耽縱於色 , 汲汲沽名 , 皇皇求利 , 又復傷於勞思者 , 更不少也 , 司命者 , 其可不亟講於斯 。
위는 수곡의 바다이고 비는 생화의 근원이다. 생화가 왕성하면 기혈이 맑고 조화로워 여러 병이 숨죽이고, 생화가 쇠하면 기혈이 이지러져 온갖 질병이 서로 침범하니 작은 일이 아니다. 오직 동원 선생이 이 뜻을 깊이 얻어 비위 원기의 묘함을 밝혔으니 귀먹은 이를 불러 일깨우고 어두운 이를 열어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의 의사들은 병의 형상만 고집하고 병의 근본을 미루어 찾지 않으며 비위의 뜻은 내버려 두고 강구하지 않는다. 비허로 기가 짧아 담천과 비슷할 뿐인데 폐열과 담옹이라 고집하여 석고·소자로 사하고, 비허로 열이 나서 외감과 비슷할 뿐인데 풍한이 밖에서 묶었다고 알아 강활·마황으로 발표한다. 비허로 하함하여 후중·이급으로 변했는데도 체적이 내려가지 않는다고 하여 망초·대황·지실·후박으로 공하며, 비허로 운화하지 못하여 수창·중만으로 변했는데도 숙식이 소화되지 않았다고 하여 파두·견우로 이끈다. 산후에 풍을 감수하고 음식이 정체하여 구토하고 창민한데 패혈이 심을 공격한다고 잘못 생각하여 도인·사물탕을 함부로 먹이고, 노채로 비가 허하여 음식이 줄고 오심·당설하는데도 자음강화를 고집하여 지모·황백·천문동·맥문동만을 구한다. 투여하여 낫지 않으면 더욱 함부로 투여하여 비위는 더 상하고 병은 더 위독해지며, 술법이 다하여 손쓸 수 없으면 운수 탓으로 돌린다. 시폐가 이와 같으니 어찌 다 셀 수 있겠는가. 다른 까닭이 아니라 주기의 설을 밝히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주기가 실할 때 공하면 병이 쉽게 낫고 주기가 허할 때 공하면 병이 도리어 더해지니, 약이 병을 치료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주기가 약력을 운행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더구나 당세 사람은 기품이 점차 변하고 술에 깊이 빠지고 색에 탐닉하며 급급히 명예를 사고 황황히 이익을 구하는 이가 많다. 또 수고와 생각에 상하는 이도 적지 않으니, 생명을 맡은 자가 어찌 여기를 급히 강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脾胃須分講 , 此段專論脾 。
비와 위는 나누어 논해야 한다. 이 단락은 오로지 비를 논하였다.
補虛之最切要者 , 在扶胃氣 , 胃氣強則飲食進 , 飲食進則血氣生 , 補何如之 ? 所謂得谷者生 , 失谷者死 , 理甚易明耳 。 今之不善補虛者 , 概用當歸 、 地黃 、 人參 、 白朮 、 甘草 、 黃耆等類 , 以為補虛之法 , 莫此若矣 , 不思此等品類 , 雖能補虛 , 要皆甜膩壅隔之性 , 胃之強者則幸矣 , 胃之弱者 , 其可當乎 ? 不脹則瀉 , 不瀉則嘔吐而不能食矣 。 有謂病不轉加於此 , 誰其信之 ?
보허에서 가장 절실하고 중요한 것은 위기를 돕는 데 있다. 위기가 강하면 음식이 들어가고 음식이 들어가면 혈기가 생기니 어떤 보법이 이와 같겠는가. 이른바 곡식을 얻는 자는 살고 곡식을 잃는 자는 죽는다는 것이니 이치는 매우 쉽게 밝힐 수 있다. 지금 보허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당귀·지황·인삼·백출·감초·황기 등을 일률적으로 써서 보허의 법은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여긴다. 이런 종류가 허를 보할 수는 있지만 요컨대 모두 달고 끈끈하여 막히게 하는 성질임을 생각하지 않는다. 위가 강하면 다행이지만 위가 약한 사람이 어찌 감당하겠는가. 배가 불러오지 않으면 설사하고 설사하지 않으면 구토하여 먹지 못한다. 이 때문에 병이 더욱 심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누가 믿겠는가.
此段專論胃 , 然胃陰虛者 , 須養以甘柔 , 此義惟嘉言知之 , 香岩能之 。
이 단락은 오로지 위를 논하였다. 그러나 위음이 허한 사람은 달고 부드러운 것으로 길러야 하니, 이 뜻은 오직 가언이 알았고 향암이 능히 행하였다.
病有藥傷而變重者 , 甚者變證莫識 , 而卒致危亡者 , 不可不知 , 不可不慎 。 昔一婦患經閉 , 服血藥過多 , 血不行而飲食反減 , 又增寒熱嘔逆 , 醫猶謂瘀血攻心 , 倍加峻削 , 病者忽發神昏齒噤 , 口角流涎 , 狀類中風 , 診其脈伏而微 , 心下按之滿急且有聲 。 曰 : 此飲證也 。 詢之乃為藥所傷 , 非湧法不可 , 急取油鵝翎探之 , 一湧而出酸水四五升 , 隨醒 , 先用燥濕寬中藥 , 次與補脾健胃 , 俟飲啖起居如故 , 始進通經丸 , 血乃行 。 一人病瘧兼旬 , 胸滿而畏食 , 胃氣不清故也 。 醫不審 , 與以加減補中益氣湯二服 , 瘧反大劇 , 易用鱉甲 、 何首烏等藥 , 作大劑以截之 , 更脹嘔不勝 , 湯飲俱廢 , 或疑其誤服補藥 , 與陳皮 、 蘆菔等湯 , 病益加 。 予診之六脈濡弱 , 此濕氣滿胸膈也 。 以蒼朮為君 , 佐半夏 、 厚朴 、 澤瀉 、 豆仁等 , 少加薑汁 、 食鹽 , 徐徐與之 , 不食頃嗯然欲吐 , 即探引得吐黃涎惡水甚多始平 , 瘧亦漸止 。 又一小兒 , 甫三歲 , 得心腹痛疾 , 醫者處劑太重 , 煎汁又濃 , 更灌之乳 , 食後反增嘔吐 , 發寒熱而兼喘 , 更數醫咸罔效 , 漸變昏聵 , 不醒人事 , 其家以為不可救 , 遂勿藥以俟之 。 自晨至昏 , 忽聞腹中汩汩聲 , 上下者數四 , 遺穢汁鬥許而蘇 。 凡此等病患者甚多 , 不能悉舉 。 總之人身以胃氣為本 , 胃氣傷 , 雖對病之藥 , 皆不能運化而取效 , 反生他證 。 今之病家 、 醫家 , 均不之察 , 凡有病輒投以藥 , 不愈 , 更醫以藥 , 旋已旋藥 , 甚至病久脾虛 , 飲食不進 , 不思顧其生化之源 , 而猶亂投湯藥之劑 , 致中氣受傷 , 變證百出而死者不少矣 , 可不慎歟 ?
병에는 약에 상하여 더 무거워지는 경우가 있으며, 심하면 알아볼 수 없는 변증이 생겨 끝내 위망에 이르기도 하니 알지 않거나 삼가지 않아서는 안 된다. 옛날 한 부인이 경폐를 앓아 혈약을 지나치게 복용하였는데 혈은 행하지 않고 음식이 도리어 줄었으며 한열·구역이 더해졌다. 의사는 여전히 어혈이 심을 공격한다고 하여 준삭한 약을 배로 더하였다. 환자가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지고 이를 악물며 입가에 침을 흘려 중풍과 비슷해졌다. 맥을 진찰하니 복하면서 미하고 심하를 누르면 그득하고 팽팽하며 소리가 났다. “이것은 음증이다.”라고 하였다. 물으니 약에 상한 것이므로 용법이 아니면 안 되었다. 급히 기름 묻힌 거위 깃털로 자극하니 한 번 토하여 신물 네다섯 되가 나오고 곧 깨어났다. 먼저 조습관중약을 쓰고 이어 보비건위약을 주어 먹고 마시고 기거하는 것이 예전처럼 되기를 기다린 뒤 비로소 통경환을 투여하니 혈이 행하였다. 한 사람은 이십 일 동안 학질을 앓아 가슴이 그득하고 음식을 꺼렸으니 위기가 맑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사가 살피지 않고 가감보중익기탕 두 첩을 주자 학질이 도리어 매우 심해졌다. 별갑·하수오 등으로 바꾸어 대제로 끊으려 하니 더욱 창만하고 구토하여 견디지 못하며 탕과 음료를 모두 먹지 못하였다. 누군가 보약을 잘못 복용한 것으로 의심하여 진피·나복 등의 탕을 주었으나 병이 더욱 심해졌다. 내가 진찰하니 육맥이 유약하였는데 이는 습기가 흉격에 가득한 것이다. 창출을 군약으로 하고 반하·후박·택사·두인 등을 보좌하며 강즙·식염을 조금 더하여 천천히 주었다. 한 끼가 지나기 전에 음 하는 소리를 내며 토하려 하기에 곧 자극하여 이끌어 누런 침과 나쁜 물을 매우 많이 토한 뒤에야 안정되었고 학질도 점차 그쳤다. 또 겨우 세 살 된 소아가 심복통을 앓았는데 의사가 약제를 너무 무겁게 하고 달인 즙도 진하게 하였으며 다시 젖을 먹였다. 먹은 뒤 도리어 구토가 더해지고 한열이 나며 천증도 겸하였다. 여러 의사를 바꾸어도 모두 효과가 없고 점차 혼궤하여 의식을 잃었다. 집에서는 구할 수 없다고 여겨 마침내 약을 끊고 기다렸다. 아침부터 저녁이 되자 갑자기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나며 위아래로 서너 차례 움직이고 더러운 즙을 한 말쯤 내보낸 뒤 깨어났다. 이런 병자가 매우 많아 다 들 수 없다. 요컨대 사람의 몸은 위기를 근본으로 삼는다. 위기가 상하면 병에 맞는 약도 모두 운화하여 효과를 얻지 못하고 도리어 다른 증상을 낳는다. 지금의 병가와 의가는 모두 이를 살피지 않고 병이 있기만 하면 곧 약을 투여하며, 낫지 않으면 의사를 바꾸어 약을 쓰고 잠깐 그쳤다가 다시 약을 쓴다. 심지어 병이 오래되어 비허하고 음식이 들어가지 않는데도 생화의 근원을 돌볼 생각은 하지 않고 여전히 탕약을 마구 투여하여 중기가 상하고 변증이 온갖 가지로 생겨 죽는 이가 적지 않으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凡脾虛濕盛 、 氣滯 、 痰凝者 , 皆不可妄投守補 , 尤忌滋填 , 設誤用之 , 多蹈此轍 。
비허·습성·기체·담응이 있는 사람에게는 모두 지키면서 보하는 약을 함부로 투여해서는 안 되며, 특히 자양하여 채우는 것을 꺼린다. 만일 잘못 쓰면 대부분 이 전철을 밟는다.
藥無所謂王霸也 , 用藥亦無所謂王霸也 , 而有王道霸道之喻 , 亦用之者有王霸耳 。 用藥者常變以審時 , 經權以濟事 , 當補即補 , 當攻即攻 , 當寒即寒 , 當熱即熱 , 曷王霸之有分哉 ? 用之者善 , 甘草 、 參 、 耆王也 , 附子 、 硝黃亦王也 。 春生秋殺之天道也 , 當即無藥非王也 ; 用之不善 , 則附子 、 硝黃霸也 , 甘草 、 參 、 耆亦未始非霸也 。 冬燠夏寒之愆咎也 , 不當即無藥非霸也 。 是則王霸不在藥 , 而在所用 ; 亦不在於用 , 而在善用與不善用 。 今世之談醫者 , 咸以參 、 耆 、 甘草類能補益 , 稱為王道 ; 硝黃 、 附子類能攻伐 , 稱為霸道 , 是泥於藥之有王霸矣 ; 泥藥之有王霸 , 遂泥於用之亦有王霸矣 。 噫 ! 果用藥有王道霸道之岐哉 ? 此惟可與知者言也 。
약에는 이른바 왕도와 패도가 없고 용약에도 이른바 왕도와 패도가 없다. 왕도·패도의 비유가 있는 것은 약을 쓰는 사람에게 왕도와 패도가 있기 때문이다. 용약하는 사람은 상도와 변화를 살펴 때를 헤아리고 경도와 권도로 일을 이루어, 보해야 하면 보하고 공해야 하면 공하며 차게 해야 하면 차게 하고 뜨겁게 해야 하면 뜨겁게 하니 어찌 왕도와 패도의 구별이 있겠는가. 쓰는 사람이 잘하면 감초·인삼·황기도 왕도이고 부자·망초·대황도 왕도이다. 봄에 낳고 가을에 죽이는 천도와 같으니 마땅하면 왕도 아닌 약이 없다. 잘못 쓰면 부자·망초·대황도 패도이고 감초·인삼·황기 역시 패도 아닌 적이 없다.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추운 어긋남과 같으니 마땅하지 않으면 패도 아닌 약이 없다. 그러므로 왕도와 패도는 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쓰는 데 있고, 또한 사용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잘 쓰고 잘못 쓰는 데 있다. 지금 의술을 논하는 사람들은 모두 인삼·황기·감초는 보익할 수 있으므로 왕도라 하고 망초·대황·부자는 공벌할 수 있으므로 패도라 하니, 이는 약에 왕도와 패도가 있다고 얽매인 것이다. 약에 왕도와 패도가 있다고 얽매이다가 마침내 용약에도 왕도와 패도가 있다고 얽매인다. 아, 과연 용약에 왕도와 패도라는 갈림길이 있겠는가. 이것은 오직 아는 사람과 말할 수 있을 뿐이다.
藥無定性 , 貴於用之者得其當 , 固是定論 , 若學識未優 , 而孟浪以施峻厲之劑 , 則豈止霸道哉 ? 直是費人之事矣 。
약에는 정해진 성질이 없고 쓰는 사람이 알맞게 쓰는 것이 귀하다는 것은 참으로 정론이다. 그러나 학식이 뛰어나지 않은데도 경솔하게 준열한 약제를 쓴다면 어찌 패도에 그치겠는가. 바로 사람을 해치는 일이다.
藥有偶中而病愈者 , 有誤中而病愈者 , 未可居功於不疑 , 當猛然省 , 翻然悔 , 惶悚無地 , 則學日長 , 而識日高 。 昔如一木匠趙與鐵匠杜 , 行次乞宿 , 其家有病人不納 。 杜紿曰 : 此趙君世醫家也 , 蒙上司見召 , 失路至此 , 必病者之當愈也 。 主人遂延人 , 診之 , 曰 : 一藥可愈 。 潛出 , 得牛糞一塊 , 作三十粒 , 下以溫水 , 胸中頓覺如蟲行 , 一湧而出小蜣螂狀者二三升 , 病如脫 。 越宿禮餞而去 。 嗚呼 ! 此二人小人也 , 欲苟一宵之寢 , 以穢物治人 , 蓋偶中耳 。 竊恐二人此去 , 必且謂醫學無難 , 而居然世醫家 , 幾不自識其初心矣 。 又有一病身冷而脈沉伏者 , 醫認為陰 , 投以桂 、 附等熱藥 , 一婢煎之 , 適傾廢 , 茫無以應 , 借黃連香薷飲一杯代之 , 不謂一飲而瘥 , 是何也 ? 陽證似陰 , 非陰也 , 醫誤以為陰也 。 設藥不為婢誤 , 醫之誤不可言矣 ! 設藥不為醫誤 , 婢之誤不可言矣 ! 幸其相誤 , 而因誤以中病 , 乃得生耳 。 吾不如此醫亦居功不自疑否 ? 如居功 , 恐又為此婢竊笑也 ! 此二事深可為近世醫家提醒 , 故謹志之 。
약이 우연히 맞아 병이 낫는 경우도 있고 잘못이 맞아 병이 낫는 경우도 있으니 의심 없이 공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 맹렬히 반성하고 돌이켜 뉘우치며 몸 둘 곳 없이 두려워해야 학문이 날로 자라고 식견이 날로 높아진다. 옛날 목수 조씨와 대장장이 두씨가 길을 가다가 묵기를 청하였는데 그 집에 병자가 있어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씨가 속여 “이 조군은 대대로 의업을 한 집안 사람인데 상사의 부름을 받고 가다가 길을 잃어 여기에 이르렀으니 반드시 병자가 나으려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주인이 마침내 들여 진찰하게 하니 “약 한 번이면 나을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몰래 나가 쇠똥 한 덩이를 얻어 서른 알을 만들어 온수로 먹게 하니 가슴속에서 갑자기 벌레가 기어가는 듯하다가 한 번 토하여 작은 말똥구리 같은 것이 두세 되 나왔고 병은 벗어 버린 듯하였다. 하룻밤 뒤 예를 갖추어 전송받고 떠났다. 아, 이 두 사람은 소인이다. 하룻밤 잠을 구차히 얻으려고 더러운 물건으로 사람을 치료했는데 우연히 맞았을 뿐이다. 두 사람이 이 뒤로 의학은 어렵지 않다고 하며 버젓이 세의가를 자처하여 거의 본래 마음을 스스로 알지 못하게 되었을까 두렵다. 또 몸이 차고 맥이 침복한 병자가 있었는데 의사가 음증이라 여겨 계·부자 같은 열약을 주었다. 계집종이 달이다가 마침 쏟아 버려 어찌할지 몰라 황련향유음 한 잔을 빌려 대신 주었는데 뜻밖에도 한 번 마시고 나았다. 어째서인가. 양증이 음증과 비슷한 것이지 음증이 아닌데 의사가 음증으로 잘못 여긴 것이다. 만일 약을 계집종이 잘못하지 않았다면 의사의 잘못은 말할 수 없었을 것이고, 만일 약을 의사가 잘못하지 않았다면 계집종의 잘못은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서로 잘못하여 그 잘못으로 병에 맞았기에 살 수 있었다. 나는 이 의사도 공을 차지하며 스스로 의심하지 않았는지 알지 못한다. 만일 공을 차지하였다면 또 이 계집종에게 몰래 비웃음을 당했을 것이다. 이 두 일은 근세 의가를 깊이 일깨울 만하므로 삼가 적는다.
用藥如用兵 , 暴虎憑河且不可 , 況僥倖偶中而不知惶悚者 , 何足以言醫也 !
약을 쓰는 것은 군사를 쓰는 것과 같다. 맨손으로 범에게 덤비고 맨몸으로 강을 건너는 일도 안 되는데, 하물며 요행히 우연히 맞히고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가 어찌 의술을 말할 수 있겠는가.
人皆以黃耆 、 人參 、 白朮 、 甘草 、 當歸 、 陳皮 、 升麻 、 柴胡八味為補中益氣湯 。 噫 ! 此固補中益氣湯 , 特元氣下陷之補中益氣湯耳 。 蓋中者脾胃也 , 氣即脾胃之氣 , 元氣也 , 立方者以參 、 耆 、 甘草等藥善補中州之元氣而用之也 。 因元氣之下陷 , 不得不佐升 、 柴以舉之 , 非升 、 柴之能補中氣 , 亦非中氣之必佐升 、 柴而後補也 。 中氣既不必佐升 、 柴而後補 , 則凡有以參 、 耆 、 甘草相須而立方者 , 皆補中益氣湯也 , 不必定有升麻 、 柴胡也 。 如有因小兒慢驚與痘漿不足 , 用參 、 耆 、 甘草三味名保元湯者 ; 有脾氣久衰用人參 、 白朮 、 茯苓 、 甘草為四君子湯者 ; 脾虛有痰有濕四君子加陳皮 、 半夏名六君子湯者 ; 飲食少進更加藿香 、 砂仁為香砂六君子湯者 ; 有虛痰眩暈以參 、 耆 、 甘 、 術合天麻 、 半夏等藥為半夏白朮天麻湯者 , 又有合棗仁 、 遠志 、 龍眼 、 當歸為歸脾湯者 ; 有大病後調理元氣用參朮湯與參苓白朮散者 ; 有元氣暴脫脈微欲絕 , 用人參一味為獨參湯者 ; 有暑傷元氣用生脈散 、 清暑益氣等湯 , 與氣虛夾寒而用人參理中湯 、 附子理中湯者 。 凡此之類 , 皆謂之補中益氣湯可也 , 皆謂之元氣不下陷之補中益氣湯亦可也 。 但其間所夾之證與所兼之藥有不同 , 故命名亦各不同耳 。 究其旨何一不在 「 中氣 」 二字上著意哉 !
사람들은 모두 황기·인삼·백출·감초·당귀·진피·승마·시호 여덟 가지를 보중익기탕이라 한다. 아, 이것은 본래 보중익기탕이지만 다만 원기가 하함한 경우의 보중익기탕일 뿐이다. 중은 비위이며 기는 곧 비위의 기, 원기이다. 처방을 세운 사람은 인삼·황기·감초 등이 중주의 원기를 잘 보하므로 쓴 것이다. 원기가 하함하였기 때문에 부득이 승마·시호를 보좌하여 들어 올렸지, 승마·시호가 중기를 보할 수 있어서도 아니며 중기에 반드시 승마·시호를 보좌한 뒤에야 보할 수 있어서도 아니다. 중기를 반드시 승마·시호로 보좌한 뒤에야 보하는 것이 아니라면 인삼·황기·감초를 상수하게 하여 세운 처방은 모두 보중익기탕이니 반드시 승마·시호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소아의 만경과 두장의 부족으로 인삼·황기·감초 세 가지를 써서 보원탕이라 하는 것이 있고, 비기가 오래 쇠하여 인삼·백출·복령·감초를 써서 사군자탕으로 삼는 것이 있으며, 비허에 담과 습이 있어 사군자탕에 진피·반하를 더하여 육군자탕이라 하는 것이 있다. 음식이 적게 들어가면 곽향·사인을 더하여 향사육군자탕으로 삼고, 허담으로 현훈하면 인삼·황기·감초·백출에 천마·반하 등을 합하여 반하백출천마탕으로 삼는다. 또 조인·원지·용안·당귀를 합하여 귀비탕으로 삼는 것이 있고, 큰 병 뒤에 원기를 조리하기 위해 삼출탕과 삼령백출산을 쓰는 것이 있으며, 원기가 갑자기 탈하여 맥이 미하고 끊어지려 할 때 인삼 한 가지만 써서 독삼탕으로 삼는 것이 있다. 서가 원기를 상하면 생맥산·청서익기탕 등을 쓰고, 기허에 한이 끼면 인삼이중탕·부자이중탕을 쓴다. 이러한 부류는 모두 보중익기탕이라 해도 좋고 원기가 하함하지 않은 경우의 보중익기탕이라 해도 좋다. 다만 그 사이에 낀 증과 겸한 약이 다르므로 이름도 각각 다를 뿐이다. 그 뜻을 따져 보면 어느 하나 ‘중기’ 두 글자에 뜻을 두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余亦嘗云 : 東垣此方宜名補中升氣湯 , 若不須升陷 , 但須益氣 , 何必佐以升 、 柴乎 ? 後人不明此義 , 因而貽誤者不少 。
나도 일찍이 동원의 이 처방은 보중승기탕이라 이름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하함한 것을 들어 올릴 필요 없이 다만 익기할 필요만 있다면 어찌 승마·시호로 보좌해야 하겠는가. 후인이 이 뜻을 밝히지 못하여 그르친 경우가 적지 않다.
學不博不可以為醫 , 徒博亦不可以為醫 。 醫者意也 , 聖賢之精蘊形而上者之道也 。 布在方策者言也 , 形而下者之教也 。 學者欲求聖賢之意 , 不得不因言以求之 , 非廣博不可也 。 所謂教非道不立 , 道非教不明也 。 不求其意而徒事於言 , 則雖讀盡天下古今奇書 , 皆糟粕矣 , 何異饕餮百種珍羞 , 填塞胸中而不化者乎 ?
학문이 넓지 않으면 의사가 될 수 없고 넓기만 해도 의사가 될 수 없다. 의는 뜻이다. 성현의 정밀한 속뜻은 형이상의 도이고, 책에 펼쳐 놓은 것은 말이며 형이하의 가르침이다. 배우는 사람이 성현의 뜻을 구하려면 부득이 말을 통하여 구해야 하므로 광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른바 가르침은 도가 아니면 서지 못하고 도는 가르침이 아니면 밝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뜻을 구하지 않고 말에만 힘쓰면 천하 고금의 기이한 책을 다 읽어도 모두 찌꺼기이니, 온갖 진미를 탐식하여 가슴속을 채우고 소화하지 못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讀書者須知出入法 , 若入而不出 , 則死於句下矣 。 此由才不足以勝學 , 故聖人有才難之嘆 。 余謂人必具才 、 學 、 識之三長 , 始可以為醫者 , 正此意也 。 又嘗撰楹帖一聯云 : 近人情之謂真學問 , 知書味即是活神仙 。 附及之 , 與天下之讀書人共勉焉 。
책을 읽는 사람은 들어가고 나오는 법을 알아야 한다. 들어가기만 하고 나오지 못하면 구절 아래에서 죽는다. 이는 재주가 학문을 감당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므로 성인도 인재를 얻기 어렵다고 탄식하였다. 내가 사람은 반드시 재주·학문·식견의 세 장점을 갖추어야 비로소 의사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이 바로 이 뜻이다. 또 일찍이 기둥에 붙이는 대련을 지어 “인정에 가까운 것을 참된 학문이라 하고, 책의 맛을 알면 곧 살아 있는 신선이다.”라고 하였다. 덧붙여 천하의 독서인과 함께 힘쓰고자 한다.
久病後不可恣投以藥 , 且無論藥之謬 , 即對病者不可不慎 。 何也 ? 人之元氣以胃氣為本 , 胃氣又以穀氣為本 。 故 《 內經 》 曰 : 無毒治病 , 十去其九 , 谷 、 肉 、 果 、 菜食養盡之 。 小不以藥養之也 。 凡藥過劑 , 無有不傷脾胃之正氣者 , 正氣傷則有作瀉作嘔與腫滿者 , 甚至膈脹不能食 , 而反生他證者 , 名為補人而實害人 。
오랜 병 뒤에는 약을 함부로 투여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약은 말할 것도 없고 병에 맞는 약도 삼가지 않아서는 안 된다. 어째서인가. 사람의 원기는 위기를 근본으로 삼고 위기는 또 곡기를 근본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내경』에 “무독한 것으로 병을 치료할 때는 열에 아홉을 제거하고 곡식·고기·과일·채소의 음식으로 길러 마무리한다.”라고 하였다. 조금도 약으로 기르지 않는 것이다. 약의 분량이 지나치면 비위의 정기를 상하지 않는 것이 없다. 정기가 상하면 설사하거나 구토하거나 붓고 그득해지며, 심하면 격이 창만하여 먹지 못하고 도리어 다른 증상을 낳으니 명목은 사람을 보한다지만 실제로는 사람을 해친다.
藥為治病而設 , 非養生之物也 。 袁簡齋云享高年者 , 生平不服丸散 , 真見道之言也 。
약은 병을 치료하려고 마련된 것이지 양생하는 물건이 아니다. 원간재가 높은 나이를 누리는 사람은 평생 환·산을 복용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참으로 도를 본 말이다.
病蓋有縱口吻而死者矣 , 亦有絕其谷而視其死者焉 。 世都不察 , 幽潛沉冤者眾矣 。 念及此 , 深為酸鼻 。 夫飲食 , 養生物也 , 可節而不可縱 , 然亦不可使之絕 , 故節之則生 , 不節而縱且絕則死 。 縱而死 , 病者之責矣 , 絕而視其死 , 伊誰之責邪 ? 如傷寒 、 傷風 、 傷食等有餘之病 , 或脹 , 或痛 , 或嘔 , 或吐 , 感之暴而脈躁疾有力 , 且無虛證之兼者 , 雖不與之食 , 亦可也 。 此不可與而不與 , 是節之 , 非絕之也 。 及久病久虛久不飲食之人 , 陡覺穀氣馨香 , 欲求啖而不敢遽啖 , 正胃氣初回之候 , 法當徐投漿粥 , 或少與適口不助邪之物 , 以充胃氣 , 胃氣充則元氣亦充 , 而病自無不愈 。 若概視飲食為毒藥而不與 , 是絕之 , 非節之也 , 則幾微之胃氣 , 將安恃乎 ?
병에는 입을 마음대로 놀려 먹다가 죽는 경우가 있고, 곡식을 끊어 놓고 죽는 것을 지켜보는 경우도 있다. 세상에서 모두 살피지 않아 드러나지 않고 깊이 원통한 일이 많다. 이를 생각하면 코끝이 매우 시큰하다. 음식은 생명을 기르는 물건이므로 절제할 수는 있어도 마음대로 먹어서는 안 되며, 또한 끊게 해서도 안 된다. 그러므로 절제하면 살고 절제하지 않고 마음대로 먹거나 끊으면 죽는다. 마음대로 먹어 죽는 것은 환자의 책임이지만 끊어 놓고 죽음을 지켜보는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상한·상풍·상식 등의 유여한 병으로 혹 창만하거나 아프거나 구역하거나 토하며, 감수한 것이 갑작스럽고 맥이 조질하고 유력하며 허증도 겸하지 않은 경우라면 음식을 주지 않아도 된다. 이는 주어서는 안 될 때 주지 않는 것으로 절제하는 것이지 끊는 것이 아니다. 병이 오래되고 허한 지 오래이며 오래 먹고 마시지 못한 사람이 갑자기 곡기에서 향기로움을 느끼고 먹고자 하나 감히 곧 먹지 못하는 것은 바로 위기가 처음 돌아오는 징후이다. 이때는 천천히 장죽을 주거나 입에 맞고 사기를 돕지 않는 것을 조금 주어 위기를 채워야 한다. 위기가 차면 원기도 차서 병이 저절로 낫지 않는 것이 없다. 만일 음식을 모두 독약처럼 보고 주지 않으면 이는 끊는 것이지 절제하는 것이 아니니, 미약한 위기가 장차 무엇에 의지하겠는가.
得谷者生 , 正為胃氣初回者言也 。
곡식을 얻는 자는 산다는 말은 바로 위기가 처음 돌아오는 사람을 두고 한 말이다.
病到危急時 , 非峻重之藥不能救百中之一二 , 今之醫者皆重惜名譽 , 姑以輕平之劑 , 冀其偶中 , 幸而不死 , 則曰是我之功 , 不幸而死 , 則曰非我之罪 , 恐真心救世者 , 不應如此也 。 真心救世者 , 必慨然以死生為己任 , 當寒即寒 , 當熱即熱 , 當補即補 , 當攻即攻 , 不可逡巡畏縮 , 而用不寒不熱 、 不補不攻 , 如諺所謂不治病 、 不損命之藥 , 嗟嗟 ! 既不治病 , 欲不損命 , 有是理乎 ? 倘於此認不的確 , 不妨闕疑以待高明 , 慎勿嘗試以圖僥倖 , 庶不負仁者之初心 。 醫之道極難知 , 無學者不知 , 有學者未便知 ; 無才者不知 , 有才者未便知 ; 有才有學矣 , 不克隨時取中者亦不知 。 甚矣 ! 知醫者難也 。 今有一等人 , 謾說某某知醫 , 某某不知醫 , 噫 ! 知醫固難 , 而知知醫者 , 恐亦不得容易也 。
병이 위급한 때에 이르면 준중한 약이 아니고서는 백 가운데 한둘도 구할 수 없다. 지금의 의사는 모두 명예를 중히 아껴 우선 가볍고 평한 약제로 우연히 맞기를 바라며, 다행히 죽지 않으면 내 공이라 하고 불행히 죽으면 내 죄가 아니라 한다. 진심으로 세상을 구하는 사람은 이와 같아서는 안 될 것이다. 진심으로 세상을 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분연히 생사를 자신의 책임으로 삼아 차게 해야 하면 차게 하고 뜨겁게 해야 하면 뜨겁게 하며 보해야 하면 보하고 공해야 하면 공해야 한다. 머뭇거리며 움츠러들어 차지도 뜨겁지도 않고 보하지도 공하지도 않는 약, 속담에서 병도 치료하지 않고 목숨도 해치지 않는다고 하는 약을 써서는 안 된다. 아, 이미 병을 치료하지 못하면서 목숨을 해치지 않으려 하니 그런 이치가 있겠는가. 여기에서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 의심나는 것을 남겨 두고 고명한 사람을 기다려도 무방하다. 삼가 시험삼아 써서 요행을 도모하지 말아야 인자의 초심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의술의 도는 지극히 알기 어려워 학문이 없는 사람도 모르고 학문이 있는 사람도 곧 아는 것은 아니며, 재주가 없는 사람도 모르고 재주가 있는 사람도 곧 아는 것은 아니다. 재주와 학문이 있어도 때에 따라 적중함을 취하지 못하면 또한 모르는 것이다. 심하다, 의술을 아는 것의 어려움이여. 지금 어떤 사람들은 아무개는 의술을 알고 아무개는 의술을 모른다고 함부로 말한다. 아, 의술을 알기도 참으로 어렵지만 의술을 아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도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다.
世之恃其學問淹博 , 而輕談醫理者 , 必致誤人自誤而後已 。
세상에서 자신의 학문이 넓고 깊음을 믿고 의리를 가볍게 논하는 사람은 반드시 남을 그르치고 자신도 그르친 뒤에야 그친다.
醫有上工 、 中工 、 下工 。 上工者良工 , 中工者庸工 , 下工者謬工 。 蓋謂庸工之不若良工 , 謬工之不若庸工也 。 以理言之 , 庸工豈止不若良工哉 ? 並不若謬工耳 ! 謬工之殺人 , 殺人而見其跡者也 , 見其跡 , 則人所易知而易遠 , 其為天下之害少 ; 庸工之殺人而不見其跡者也 , 不見其跡 , 則人所易忽而易近 , 其為天下之害多 。 譬猶暴君為不善 , 其亡雖速 , 而天下之害不甚深 ; 庸君未必能為大不善 , 而天下之元氣陰受其賊而不知 , 其亡雖緩 , 而為害於天下不既深乎 ? 嗚呼 ! 庸君誤天下 , 庸醫誤病人 , 一理也 。
의사에는 상공·중공·하공이 있다. 상공은 양공이고 중공은 용공이며 하공은 뮤공이다. 용공은 양공만 못하고 뮤공은 용공만 못하다는 말이다. 이치로 말하면 용공이 어찌 양공만 못한 데 그치겠는가. 뮤공보다도 못할 뿐이다. 뮤공이 사람을 죽이면 그 흔적이 보인다. 흔적이 보이므로 사람들이 쉽게 알고 쉽게 멀리하여 천하에 끼치는 해가 적다. 용공은 사람을 죽여도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흔적이 보이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쉽게 소홀히 여기고 쉽게 가까이하여 천하에 끼치는 해가 많다. 비유하면 폭군이 불선을 행하면 망하는 것은 빨라도 천하의 해가 아주 깊지는 않지만, 용렬한 군주는 반드시 큰 불선을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도 천하의 원기가 모르는 사이 그 해를 받으므로 망하는 것은 느려도 천하에 끼치는 해는 매우 깊은 것과 같다. 아, 용렬한 군주가 천하를 그르치고 용렬한 의사가 병자를 그르치는 것은 한 이치이다.
良工治病 , 因證而施攻補溫涼之藥 ; 庸工則專用溫補 , 以為不損於人 , 而人亦樂從以為穩當 , 雖受其害亦不怨尤 ; 謬工則道聽途說 , 麻 、 桂 、 硝 、 黃妄思弋獲 , 服而即死 , 厥罪無逃 。
양공은 병을 치료할 때 증에 따라 공·보·온·량의 약을 쓴다. 용공은 온보만 전적으로 써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여기고, 사람들도 온당하다고 기꺼이 따라 해를 입어도 원망하지 않는다. 뮤공은 길에서 주워들은 말로 마황·계·망초·대황을 써서 망령되게 맞히려 하므로 복용하면 곧 죽어 그 죄를 피할 수 없다.
醫到病家 , 未診視不可先講病 , 必待望而聞 , 問而切 , 脈證詳明 , 始可斷為是寒 、 是熱 、 是實 、 是虛 , 病在某經 , 當於某經用藥 , 某日當瘥 , 某日當危 , 庶藥與證對 , 而不蹈妄投之弊 。 近有急欲見長者 , 未見病人顏色 , 輒抵掌而談曰 : 某藥可以治某病 , 此必某病也 , 當以某藥治之 。 噫 ! 是猶未命題而先作文以待矣 ! 鮮有不背聖經而誤人命者 。 醫者胸中預擬一成見不得 , 雖病者不為自諱 , 詳告諄諄 , 亦未可遽執為真病情 , 真病本也 , 且待診視後參較果否耳 。 至若侍奉者之傳言 , 延醫者之預達 , 尤不足憑 。 蓋學者胸懷空曠 , 了無執著 , 始得應變無方耳 。 先哲云 : 凡讀書不可先看註解 , 且將本文反復詳味 , 待自家有心得 , 卻以註解參較 , 庶義理昭然 , 不為他說所蔽 。 若先被其說橫吾胸中 , 自家竟無心得矣 , 吾於醫家亦云 。
의사가 병가에 이르면 진찰하기 전에 병을 먼저 말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바라보고 듣고 묻고 짚어 맥과 증이 자세히 밝혀지기를 기다린 뒤에야 한인지 열인지 실인지 허인지, 병이 어느 경에 있어 어느 경에 약을 써야 하는지, 어느 날 나을지 어느 날 위태로울지를 판단해야 약과 증이 맞고 함부로 투여하는 폐단을 밟지 않는다. 요즈음 자신의 장점을 급히 드러내려는 자들은 환자의 얼굴빛도 보지 않고 곧 손뼉을 치며 “아무 약은 아무 병을 치료할 수 있으니 이것은 반드시 아무 병이며 아무 약으로 치료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아, 이는 글제를 내기도 전에 먼저 글을 지어 기다리는 것과 같다. 성경을 어기고 사람의 목숨을 그르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의사는 가슴속에 미리 하나의 성견도 정해서는 안 된다. 환자가 스스로 숨기지 않고 자세히 거듭 고하더라도 곧 참된 병정이며 참된 병본이라 고집해서는 안 되며, 진찰한 뒤 참으로 그러한지 비교하여 보아야 한다. 시봉하는 사람의 전언이나 의사를 청하는 사람의 사전 전달은 더욱 믿을 것이 못 된다. 배우는 사람의 가슴이 텅 비고 넓어 조금도 집착이 없어야 비로소 변화에 일정한 틀 없이 대응할 수 있다. 선철은 “책을 읽을 때는 먼저 주해를 보지 말고 본문을 거듭 자세히 음미하여 자신이 깨달은 바가 생기기를 기다린 뒤 주해와 비교해야 의리가 환히 밝아져 다른 말에 가려지지 않는다. 먼저 그 말이 내 가슴속에 가로놓이면 자신은 끝내 깨달은 바가 없게 된다.”라고 하였다. 나는 의가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한다.
此是看病之法 。
이것이 병을 살피는 법이다.
一婦頭眩耳鳴 , 肉瞤筋惕 , 恍惚不得寐 , 乍作乍止半載矣 。 後乃阻經四月 , 小腹如懷孕 , 醫者疑其妊而安之 。 忽一日下紫黑血少許 , 始識經閉 , 改用通經藥數劑 , 腹不減 , 反增噁心嘔噦 , 粥飲下咽旋越出 , 咽喉焦痛 , 舌黑無津 , 眾醫不能解 。 余診得六脈弦細而滑 , 兩關尤甚 , 曰此頑痰閉滯 , 血海壅瘀 , 月事乃阻耳 。 何以徵之 ? 其脈細而滑者 , 痰脈也 ; 頭眩耳鳴恍惚者 , 痰證也 ; 嘔吐不食者 , 痰客中焦也 ; 舌黑無津 , 咽喉焦痛者 , 痰生熱而然也 。《 素問 》 謂治病必求其本 , 今病本於痰 , 必以治痰為首務 。 遂投礞石滾痰丸八十丸 , 不動再投七十丸 , 小腹微痛 , 次日又服如數 , 小腹痛不可忍 , 將夜半下如豬肝者四五塊 , 每幾盈尺 , 更下如破絮脂膜者無計 , 又累累若石榴子紅白攢綴連絡而下者 , 不啻二三斗 , 小腹頓平 , 痛亦如失 。 其最異吐痰碗許 , 俱如綠草汁色 , 口角流涎 , 忽變如琴絃之堅 。 因憶丹溪先生謂怪病是痰 , 十居八九 , 良然良然 。 時胸次未平 , 飲食少進 , 用橘紅 、 茯苓各一錢 , 枳實 、 黃連 、 半夏曲各八分 , 水煎 , 入薑汁二匙 , 竹瀝半酒杯 , 二劑後 , 以六君子湯加減 , 更服加味潤下丸 , 調理百餘日乃愈 , 逾年生一子 。
한 부인이 머리가 어지럽고 귀가 울리며 살이 꿈틀거리고 근이 떨리며 정신이 황홀하여 잠들지 못하였는데, 발했다 그쳤다 한 지 반년이었다. 뒤에 월경이 네 달 막히고 소복이 임신한 듯하여 의사는 임신을 의심하고 안태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자흑색 혈이 조금 내려오자 비로소 경폐임을 알고 통경약 몇 제로 바꾸었다. 배는 줄지 않고 도리어 오심·구홰가 더해져 죽물이 목으로 넘어가면 곧 다시 나왔으며 인후가 타듯 아프고 혀가 검으며 진액이 없어 여러 의사가 풀지 못하였다. 내가 진찰하니 육맥이 현세하면서 활하고 양관에서 특히 심하여 “이는 완담이 막혀 정체하고 혈해가 옹어하여 월경이 막힌 것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무엇으로 증명하는가. 세하고 활한 맥은 담맥이고, 두현·이명·황홀은 담증이며, 구토하고 먹지 못하는 것은 담이 중초에 머문 것이고, 혀가 검고 진액이 없으며 인후가 타듯 아픈 것은 담이 열을 낳아 그러한 것이다. 『소문』에서 병을 치료할 때 반드시 그 근본을 구하라고 하였으니 지금 병이 담에 근본하므로 반드시 치담을 첫 임무로 삼아야 한다. 이에 몽석곤담환 여든 알을 투여하였으나 움직이지 않아 일흔 알을 다시 투여하니 소복이 조금 아팠다. 다음 날 또 같은 수를 복용하자 소복이 참을 수 없이 아프다가 밤중 가까이 돼지간 같은 덩어리가 네댓 개 내려왔는데 각각 거의 한 자에 찼다. 다시 찢어진 솜이나 지방막 같은 것이 셀 수 없이 내려왔고, 또 석류씨 같은 홍백색의 것이 겹겹이 모여 이어져 내려온 것이 두세 말에 그치지 않았다. 소복이 갑자기 평평해지고 통증도 사라진 듯하였다. 가장 기이한 것은 담을 한 사발쯤 토하였는데 모두 푸른 풀즙 같은 빛이었고, 입가에 흐르던 침이 갑자기 거문고 줄처럼 단단해진 일이었다. 이로 인해 단계 선생이 괴병은 열에 여덟아홉이 담이라고 한 말을 떠올렸으니 참으로 그러하고 참으로 그러하다. 이때 가슴속은 아직 편하지 않고 음식이 적게 들어가므로 귤홍·복령 각 1돈, 지실·황련·반하곡 각 8푼을 물에 달여 강즙 두 숟가락과 죽력 술잔 반을 넣었다. 두 제 뒤 육군자탕을 가감하여 쓰고 다시 가미윤하환을 복용하며 백여 일 조리한 뒤 나았고, 한 해가 지나 아들 하나를 낳았다.
此證必曾誤補 , 否則不至若是之甚也 。
이 증은 반드시 일찍이 잘못 보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처럼 심한 데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有病傷寒傳裡 , 熱結不通者 , 已屢經下 , 而腹中按之 , 則仍繞臍堅結 , 若仰瓦然 。 且其人伏枕不起 , 又累旬 , 肌肉盡爍 , 湯飲幾廢 , 甚至氣怯不足以布息 。 當此之際 , 攻補不能施其巧 , 計將安出 ? 曰 : 論常法在所必攻 , 不攻則腸胃無繇清 , 水穀無繇進 , 元氣無繇復 , 而人曷以生 ? 若遽攻 , 則此立槁之形 , 垂絕之氣 , 能堪之乎 ? 計必先行補法 , 而後察邪正之緩急輕重以攻之 , 攻後旋覆從補 , 補後旋覆從攻 , 而又旋覆從補 , 則庶幾耳 。 但補與攻 , 皆當以漸而毋驟 , 其始也 , 且以小劑生脈散 , 加陳皮煎飲半小甌 , 飲後移時無反復 , 復少與 , 繼則或可漸倍 , 並商攻法也 。 如腹中鬱熱未清 , 渴欲冷飲 , 遂當啖以橘 、 藕 、 瓜 、 梨之屬 , 潤其喉吻 , 飲食久疏 , 胃必弱甚 , 又當間與清米湯 、 大棗湯 , 或扁豆 、 筍蕨 、 蘆菔暨飴糖等湯 , 隨所好以蘇胃氣 。 凡此皆余平時所謂適口不助邪之物 , 佐藥餌以不及者也 , 皆補法也 。 補既得 , 方可議攻 , 攻則唯元明粉一味為佳 , 生何首烏煎服亦佳 , 蜜導 、 膽導尤為良法 。 不應 , 須詳脈之虛實 , 氣之盛衰 , 邪之深淺 , 以導滯丸或小承氣加當歸微下之 , 下後仍須照管元氣 , 毋徑前而勿顧其有虛虛也 。 倘其候果可授餐 , 亦勿得驟之以濃厚 , 先以陳米煎汁飲之 , 次煮熟梨 、 熟棗 、 熟蘆菔等少與之 , 無忤 , 始可徐投漿粥與他物耳 。 須知此證腹中攻不克盡與旁流者恆多 。 惟期脈靜身涼口不渴 , 便可圖進水穀 , 慎勿過攻 , 俟其水穀融洽 , 腸胃充盈 , 不攻亦可自去 。 若必欲去盡 , 而後與之食 , 不將速其死乎 ? 雖然此皆陽證之攻補法也 , 亦有元氣內損之病 , 治療失宜 , 損而復損 , 內雖熱結 , 外則手足未冷而鼻先寒 , 六脈沉遲 , 或虛疾無倫次 , 則又是陽證變陰之候 , 急當以桂 、 附 、 參 、 姜酌微甚而溫補之 , 又不可與梨 、 瓜 、 橘 、 承氣 、 玄明粉同日而語治者矣 。 智者於此 , 不可不熟審而通其變 。 噫嘻 ! 豈特傷寒為然者 , 凡雜病日久 , 鮮有不犯此證者 , 余於治按中每詳言之矣 。
상한이 리로 전하여 열이 맺히고 통하지 않는 병자가 있었다. 이미 여러 번 하법을 썼으나 배를 눌러 보면 여전히 배꼽 둘레가 단단히 맺혀 기와를 뒤집어 놓은 듯하였다. 또 베개에 엎드려 일어나지 못한 지 수십 일이 더 지나 살은 모두 녹고 탕과 음료도 거의 끊겼으며, 심하면 기가 약하여 호흡을 펴기에도 부족하였다. 이런 때에는 공법과 보법도 기교를 펼칠 수 없으니 어떤 계책을 내겠는가. 말하건대, 상법으로 논하면 반드시 공해야 한다. 공하지 않으면 장위가 맑아질 길이 없고 수곡이 들어갈 길이 없으며 원기가 회복할 길이 없으니 사람이 무엇으로 살겠는가. 그러나 갑자기 공하면 당장 마르려는 형체와 끊어지려는 기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반드시 먼저 보법을 행한 뒤 사정의 완급·경중을 살펴 공하고, 공한 뒤 곧 다시 보하며 보한 뒤 곧 다시 공하고 또 곧 다시 보해야 거의 가능하다. 다만 보와 공 모두 점차 행하고 갑작스레 해서는 안 된다. 처음에는 우선 소량의 생맥산에 진피를 더하여 달인 것을 작은 사발 반 마시게 한다. 마신 뒤 시간이 지나도 되돌아 나오는 일이 없으면 다시 조금 주고, 이어 점차 배로 늘릴 수 있으면 공법도 함께 의논한다. 배 속의 울열이 아직 맑혀지지 않아 갈증으로 찬 것을 마시려 하면 귤·연근·오이·배 등을 먹여 목과 입을 적신다. 음식을 오래 멀리하여 위가 반드시 매우 약하므로 맑은 쌀미음·대추탕이나 편두·죽순·고사리·나복·이당 등의 탕을 좋아하는 것에 따라 사이사이 주어 위기를 되살려야 한다. 이것들은 모두 내가 평소 입에 맞고 사기를 돕지 않는 물건이라고 말한 것으로 약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돕는 것이며 모두 보법이다. 보함이 이루어진 뒤에야 공함을 의논할 수 있다. 공할 때에는 원명분 한 가지만 쓰는 것이 좋고 생하수오를 달여 복용하는 것도 좋으며 밀도·담도는 더욱 좋은 법이다. 반응이 없으면 맥의 허실·기의 성쇠·사의 심천을 자세히 살펴 도체환이나 소승기탕에 당귀를 더하여 조금 내려야 한다. 내린 뒤에도 원기를 돌보아야 하며, 곧장 앞으로만 나아가 허한 것을 더욱 허하게 만드는지 돌아보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 징후가 참으로 음식을 줄 수 있더라도 갑자기 농후한 것을 주지 말고 먼저 묵은쌀을 달인 즙을 마시게 하며, 다음 익힌 배·익힌 대추·익힌 나복 등을 조금 주어 거슬림이 없어야 비로소 천천히 장죽과 다른 것을 주어야 한다. 이 증에서는 배 속을 공하여도 다 없애지 못하거나 방류하는 경우가 늘 많음을 알아야 한다. 다만 맥이 안정되고 몸이 서늘하며 입이 마르지 않으면 수곡을 들일 수 있게 도모해야 하며 지나치게 공하지 않도록 삼가야 한다. 수곡이 잘 융화되고 장위가 충실해지기를 기다리면 공하지 않아도 저절로 제거된다. 반드시 모두 없앤 뒤에야 먹을 것을 주려 한다면 죽음을 재촉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양증의 공보법이다. 원기가 안에서 손상된 병에서 치료가 마땅하지 않아 손상에 손상이 거듭되면, 안에는 열이 맺혔더라도 밖으로는 손발이 차기 전에 코부터 차고 육맥이 침지하거나 허질하여 질서가 없기도 하다. 이는 또 양증이 음증으로 변하는 징후이므로 급히 계·부자·인삼·강으로 경중을 헤아려 온보해야 하며, 배·오이·귤·승기탕·현명분으로 치료하는 경우와 같은 날에 논해서는 안 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여기에서 깊이 살펴 변화에 통하지 않을 수 없다. 아, 어찌 상한만 그러하겠는가. 잡병이 오래된 경우에도 이 증을 범하지 않는 것이 드무니 나는 치험안에서 매번 자세히 말하였다.
緩攻輕補 , 深合治虛之旨 。
천천히 공하고 가볍게 보하니 치허의 뜻에 깊이 부합한다.
無病服藥之流弊久矣 , 而今為甚 。 此皆執前人服藥於未病 , 與上工治未病之說而謬焉者也 。 不知服藥於未病者 , 即致治於未亂 , 保邦於未危也 。 善致治者 , 尊賢使能 , 振綱肅紀 , 則政修民和 , 苞桑萬世在茲矣 。 若無過興師 , 則內生反側 , 外兆邊塵 , 不反自貽伊戚哉 ! 然則保國 、 保身無二理 , 用藥 、 用兵無二術 。 善衛生者 , 能於平時節飲食 , 慎起居 , 少嗜欲 , 寡縈慮 , 使五官安職 , 百體清和 , 將遊華胥而臍喬松矣 。 苟思患預防 , 審醫可也 , 問藥性可也 , 讀岐黃書可也 , 若以草木偏攻 , 則寒者戕賊脾元 , 熱者煎熬血脈 , 是猶小人陰柔巽順 , 似乎有德 , 而國家元氣鮮不為之潛移者 。 古人謂壁中用柱 , 壁中添鼠 , 不可不深長思也 。 至若不治已病治未病 , 則又是有說 , 如肝邪旺 , 恐傳變於脾 , 當先瀉肝以平之 ; 心邪旺 , 恐傳變於肺 , 當先瀉心以平之之類是也 。 是則治未病者 , 治病之未傳也 , 非治人之未病也 。 服藥於未病者 , 調攝於未病也 , 非未病而先服藥也 。 二說各有所指 , 皆非無病服藥之謂也 。 夫何貪生者假為棲真元牝之丹 , 縱欲者泥為嬰兒奼女之術 , 岐黃誥戒 , 視若弁髦 ; 伐性斧斤 , 恬如衽席 , 是以疴端呈現 , 種種乖常 , 蒂固根深 , 卒難期效 , 而猶咎刀圭無補 , 毋乃愚乎 ?
병이 없는데 약을 먹는 유폐가 오래되었지만 지금은 더욱 심하다. 이는 모두 앞사람이 병들기 전에 약을 복용한다거나 상공은 미병을 치료한다는 말을 고집하여 잘못된 것이다. 병들기 전에 약을 복용한다는 것은 어지러워지기 전에 다스리고 위태로워지기 전에 나라를 보전한다는 것임을 알지 못한다. 잘 다스리는 사람은 어진 이를 높이고 능한 이를 부리며 강령을 떨치고 기강을 엄숙히 하므로 정사가 닦이고 백성이 화목하여 만세 동안 단단히 유지하는 일이 여기에 있다. 까닭 없이 군사를 일으키면 안으로 불안이 생기고 밖으로 변방의 전란이 나타나니 도리어 스스로 근심을 끼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나라를 보전하고 몸을 보전하는 데 두 이치가 없으며 약을 쓰고 군사를 쓰는 데 두 기술이 없다. 생명을 잘 지키는 사람은 평소에 음식을 절제하고 기거를 삼가며 기욕을 줄이고 얽매인 사려를 적게 하여 오관이 직분에 편안하고 온몸이 맑고 조화롭게 하면 장차 화서에 노닐며 왕자교·적송자와 나란히 할 것이다. 근심을 생각하여 미리 막으려면 의술을 살펴도 좋고 약성을 물어도 좋으며 기황의 책을 읽어도 좋다. 그러나 초목으로 치우쳐 공격하면 찬 것은 비의 원기를 해치고 뜨거운 것은 혈맥을 달인다. 이는 소인이 음유하고 공손히 따르며 덕이 있는 듯하지만 국가의 원기가 그 때문에 은밀히 옮겨가지 않는 경우가 드문 것과 같다. 옛사람이 벽 속에 기둥을 쓰면 벽 속에 쥐를 더한다고 하였으니 깊고 오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병든 것을 치료하지 않고 아직 병들지 않은 것을 치료한다는 데에는 또 설명이 있다. 간사가 왕성하여 비로 전변할까 염려되면 먼저 간을 사하여 평하게 하고, 심사가 왕성하여 폐로 전변할까 염려되면 먼저 심을 사하여 평하게 하는 부류이다. 그러므로 미병을 치료한다는 것은 병이 아직 전하지 않았을 때 치료한다는 것이지 사람이 아직 병들지 않았을 때 치료한다는 것이 아니다. 병들기 전에 약을 복용한다는 것은 병들기 전에 조섭한다는 것이지 병도 없는데 먼저 약을 먹는다는 것이 아니다. 두 설은 각각 가리키는 바가 있으며 모두 병 없이 약을 먹으라는 말이 아니다. 어찌하여 삶을 탐하는 사람은 이를 빌려 서진·원빈의 단이라 하고 욕망에 빠진 사람은 영아·차녀의 술로 고집하는가. 기황의 경계를 버리는 관과 머리장식처럼 보고, 본성을 찍는 도끼를 편안한 잠자리처럼 여기므로 병의 단서가 드러나 갖가지로 상도를 어기고 뿌리가 깊고 단단해져 끝내 효과를 기약하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약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탓하니 어리석지 않은가.
無病而服補藥 , 富貴人之所為 , 是揠苗之助也 。 畏死而求神仙 , 聰明人之所為 , 是大愚若智也 。
병이 없는데 보약을 복용하는 것은 부귀한 사람이 하는 일이니 모를 뽑아 자라도록 돕는 것과 같다. 죽음을 두려워하여 신선을 구하는 것은 총명한 사람이 하는 일이니 큰 어리석음이 지혜로운 듯한 것이다.
王節齋曰 : 畏 , 畏其制我不得自縱 ; 惡 , 惡其異我不能自如 , 此二者不深害 。 蓋彼既畏我 , 我必惡之 ; 我既惡彼 , 彼亦畏我 ; 我雖惡彼 , 彼無忿心 ; 彼雖畏我 , 我能制彼 。 如牛黃惡龍骨 , 而龍骨得牛黃更良 ; 黃耆畏防風 , 而黃耆得防風其功愈大之類是也 。 至相反則兩仇不共 , 共必為害 , 然大毒之病 , 又須大毒之藥以劫之 , 甘草 、 芫花相反藥也 , 而蓮心飲以之治癆瘵 ; 藜蘆 、 細辛相反藥也 , 而二陳湯以之吐風痰 。 又四物湯加人參 、 五靈脂以消血塊 ; 感應丸以巴豆 、 牽牛同劑 , 為攻堅破積之需 。 相反之中 , 亦有相成之妙 。 此古人達至理於規矩準繩之外 , 故用之反以為神 , 非好奇之私 , 而以人命為僥倖也 。
왕절재가 말하였다. “외는 그것이 나를 제어하여 스스로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함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오는 그것이 나와 달라 스스로 자유롭지 못함을 싫어하는 것이니 이 둘은 깊이 해치지는 않는다. 상대가 이미 나를 두려워하면 나는 반드시 상대를 싫어하고, 내가 이미 상대를 싫어하면 상대도 나를 두려워한다. 내가 상대를 싫어해도 상대에게 분한 마음이 없고 상대가 나를 두려워해도 나는 상대를 제어할 수 있다. 우황이 용골을 싫어하지만 용골은 우황을 얻으면 더욱 좋아지고, 황기가 방풍을 두려워하지만 황기는 방풍을 얻으면 효능이 더욱 커지는 부류이다. 상반에 이르면 두 원수가 함께하지 못하여 함께하면 반드시 해가 되지만, 대독의 병에는 또 대독의 약으로 몰아낼 필요가 있다. 감초·원화는 상반약이나 연심음은 그것으로 노채를 치료하고, 여로·세신은 상반약이나 이진탕은 그것으로 풍담을 토하게 한다. 또 사물탕에 인삼·오령지를 더하여 혈괴를 없애고 감응환에서 파두·견우를 같은 제제로 써서 단단한 것을 공격하고 적을 깨뜨리는 데 쓴다. 상반 가운데에도 서로 이루는 묘함이 있다. 이는 옛사람이 규구준승 밖에서 지극한 이치에 통하였기에 이를 쓰면 도리어 신묘하였던 것이지, 기이함을 좋아하는 사심으로 사람의 목숨에 요행을 바란 것이 아니다.”
苟無灼見之真 , 究勿輕於一試 。
분명히 꿰뚫어 보는 참된 식견이 없다면 끝내 가볍게 한 번 시험하지 말아야 한다.
昔南人有言曰 : 人而無恆 , 不可以作巫醫 。 朱子竟認巫醫為兩事 , 一注以交鬼神 , 一注以寄死生 , 岐而二之 , 恐為未當 。 夫醫之道始於神農 , 闡於黃帝 , 著有 《 素問 》、《 內經 》 以救民疾苦 , 所謂墳典之書 , 至尊至貴 , 莫之與並 , 豈可與巫覡之徒同日而語者 ? 但醫有不同 , 名稱亦是有別 。 精於醫者曰明醫 , 善於醫者曰良醫 , 壽君保相者曰國醫 , 粗工褊淺 , 學未精深者曰庸醫 , 但有時運造化者曰時醫 , 至若擊鼓舞趨 , 祈禱疾病 , 不以醫藥為事者則謂之巫醫耳 。 世之稱為 「 端公太保 」、「 夜行卜士 」, 北方稱為 「 師婆 」, 皆此也 , 正南人謂之巫醫也 。 蓋謂一切虛誕之輩 , 亦是不可無恆也 。
옛날 남쪽 사람이 “사람에게 항심이 없으면 무의가 될 수 없다.”라고 말하였다. 주자는 마침내 무와 의를 두 가지 일로 보아 하나는 귀신과 사귄다고 주해하고 하나는 생사를 맡긴다고 주해하여 둘로 나누었는데, 마땅하지 않은 듯하다. 의술의 도는 신농에서 시작하여 황제에게서 밝혀졌으며 『소문』·『내경』을 지어 백성의 질고를 구하였으니, 이른바 분전의 책으로 지극히 높고 귀하여 견줄 것이 없다. 어찌 무격의 무리와 같은 날에 논할 수 있겠는가. 다만 의사에도 차이가 있고 명칭에도 구별이 있다. 의술에 정밀한 사람은 명의, 의술에 뛰어난 사람은 양의, 임금을 오래 살게 하고 재상을 보전하는 사람은 국의라 한다. 거칠고 편협하며 얕아서 학문이 정밀하고 깊지 못한 사람은 용의라 하고, 다만 시운과 조화만 있는 사람은 시의라 한다. 북을 치며 춤추고 달려가 질병을 위해 기도하고 의약을 일삼지 않는 사람은 무의라 할 뿐이다. 세상에서 ‘단공태보’·‘야행복사’라 하고 북방에서 ‘사파’라 하는 것이 모두 이것이며 바로 남쪽 사람이 말한 무의이다. 모든 허탄한 무리도 항심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九原可作 , 朱子必然首肯也 。
구원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다면 주자도 반드시 고개를 끄덕여 찬성할 것이다.
近有一等行醫者 , 偶得一方一藥 , 輒滿顏矜色 , 抵掌傲笑而言曰 : 我藥能救人之命 。 噫 ! 命果何物 ? 而可醫藥救之也哉 ! 即古昔大聖至神靈至慈愛 , 亦不過能以藥治人之病 , 未聞有救人之命者 。 今且無論不能救人之命 , 即欲求其能治人之病者 , 亦不多見矣 。 予雖不敏 , 誦讀於斯者有年 , 博採於斯者有年 , 忘食廢寢 , 默契神參 , 以至歷危際險者又有年 , 亦僅知探虛實 , 測淺深 , 權緩急 , 能治人之病 , 還其不死而已 , 豈遂因以為功 , 而曰我藥能救人之命哉 ! 從未之敢也 。
요즈음 어떤 의사들은 우연히 처방 하나나 약 하나를 얻으면 곧 얼굴 가득 자랑하는 빛을 띠고 손뼉을 치며 오만하게 웃으면서 “내 약은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아, 목숨은 과연 무엇이기에 의약으로 구할 수 있겠는가. 옛날의 큰 성인으로 지극히 신령하고 지극히 자애로운 이도 약으로 사람의 병을 치료할 수 있었을 뿐,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지금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지 못함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이를 구하려 해도 많이 보지 못한다. 나는 비록 민첩하지 못하지만 이를 읽고 익힌 지 여러 해이고 널리 모은 지 여러 해이며, 먹는 것을 잊고 잠을 폐하며 묵묵히 계합하고 정신으로 참구하여 위험한 일을 겪은 지도 여러 해이다. 그래도 겨우 허실을 탐구하고 심천을 헤아리며 완급을 저울질하여 사람의 병을 치료하고 죽지 않게 돌려놓을 줄 알 뿐이다. 어찌 곧 이를 공으로 삼아 내 약이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말하겠는가. 한 번도 감히 그러지 못하였다.
誤藥可以殺人 , 愈病豈非救命 ? 但醫者不可以自矜也 。
잘못된 약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데 병을 낫게 하는 것이 어찌 구명이 아니겠는가. 다만 의사가 스스로 자랑해서는 안 된다.
或問醫之療病 , 須善用權 , 權之義安解乎 ? 裴子曰 : 權者 , 無心物也 。 朱子譬之稱錘 , 以其稱物平施 , 可輕亦可重也 。 用之者胸中不得預擬一成見 , 當在兩 , 稱錘不得不在兩 ; 當在斤 , 稱錘不得不在斤 。 本非一定不移之物 , 而有一定不移之理 ; 有一定不移之理 , 而無一定不移之心 。 醫者必如是 , 而後能乘時制宜 , 以濟人之危而無弊 。 如虛可補也 , 容有時乎不可補 , 而因攻以為補 ; 實可攻也 , 容有時乎不可攻 , 而假補以為攻 。 病在此而治未嘗必在此 , 病在彼而治未嘗必在彼 。 病同而治或不與之同 , 病異而治或不與之異 。 硝 、 黃之寒也 , 以之攻寒 ; 桂 、 附之熱也 , 以之攻熱 ; 羌 、 防發汗而還以斂汗 ; 蒼 、 半傷津而即以生津 ; 地黃之濕亦有補脾利水之功 ; 茯苓之通亦有止溺塞精之益 。 至於改湯作丸 , 變丸為散 , 朝黃連 , 暮附子 , 與怒勝思 、 思勝恐 、 恐勝喜 、 喜勝悲之類 , 無非權也 , 用之者不知有所謂權也 。 惟知時有所不可 , 不執素所守之可以為可 ; 時有所可 , 不執素所守之不可以為不可耳 。 夫不執素所守之可為可 , 所不可為不可 , 而以時之所可為可 , 所不可為不可者 , 乘乎時之所宜也 , 時之所宜 , 即理之所宜也 ; 理之所宜 , 雖欲不權 , 不可得也 。 然則權豈易言哉 ? 非有才 、 有膽 、 有識 、 有學而又虛其心者不能也 ! 何也 ? 蓋權之用在理 , 而理之明在心 , 故必使此心不致有纖微之蔽 , 庶乎理可徹而用可圓 。 心苟不虛 , 心且受蔽 , 理何明乎 ? 縱有學焉 , 無識之學已 ; 縱有識焉 , 無學之識已 ; 縱有才焉 、 膽焉 , 皆浮氣已 , 安遽能乘時制宜而無弊耶 ? 由此言之 , 則不獨無才 、 無膽 、 無識 、 無學者不可以用權 , 即有才 、 有膽 、 有識 、 有學者亦未可以用權 , 必有才 、 有膽 、 有識 、 有學而又虛其心者 , 始可以用權耳 。 噫 ! 權豈易哉 ?
어떤 이가 “의사가 병을 치료할 때에는 권도를 잘 써야 한다는데 권의 뜻은 어떻게 풉니까?”라고 물었다. 배자가 말하였다. “권은 마음이 없는 물건이다. 주자는 저울추에 비유하였으니 물건을 달아 고르게 하여 가벼울 수도 있고 무거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쓰는 사람은 가슴속에 미리 하나의 성견도 정해서는 안 된다. 냥에 있어야 할 때에는 저울추가 냥에 있지 않을 수 없고 근에 있어야 할 때에는 저울추가 근에 있지 않을 수 없다. 본래 일정하여 옮기지 않는 물건은 아니지만 일정하여 옮기지 않는 이치가 있으며, 일정하여 옮기지 않는 이치는 있으나 일정하여 옮기지 않는 마음은 없다. 의사는 반드시 이와 같아야 때에 따라 마땅함을 정하여 사람의 위태로움을 구하고 폐단이 없을 수 있다. 허는 보할 수 있지만 때로는 보해서는 안 되어 공함으로써 보하기도 하고, 실은 공할 수 있지만 때로는 공해서는 안 되어 보함을 빌려 공하기도 한다. 병이 여기에 있어도 치료가 반드시 여기에 있지는 않고 병이 저기에 있어도 치료가 반드시 저기에 있지는 않다. 병이 같아도 치료는 혹 같지 않고 병이 달라도 치료는 혹 다르지 않다. 망초·대황은 차지만 그것으로 한을 공격하고, 계·부자는 뜨겁지만 그것으로 열을 공격한다. 강활·방풍은 발한하지만 도리어 땀을 거두는 데 쓰고 창출·반하는 진액을 상하지만 곧 진액을 낳는 데 쓴다. 지황의 습함에도 보비이수하는 효능이 있고 복령의 통함에도 소변을 그치고 정을 막는 이익이 있다. 탕을 환으로 바꾸거나 환을 산으로 바꾸고 아침에 황련을 쓰고 저녁에 부자를 쓰며, 노여움이 생각을 이기고 생각이 두려움을 이기며 두려움이 기쁨을 이기고 기쁨이 슬픔을 이기는 부류에 이르기까지 모두 권도 아닌 것이 없으나 쓰는 사람은 이른바 권도라는 것이 있음을 모른다. 다만 때에 따라 불가한 것이 있으면 평소 지키던 가한 것을 고집하여 가하다고 여기지 않고, 때에 따라 가한 것이 있으면 평소 지키던 불가한 것을 고집하여 불가하다고 여기지 않을 뿐이다. 평소 지키던 가한 것을 가하다 하고 불가한 것을 불가하다 고집하지 않고, 그때 가한 것을 가하다 하고 불가한 것을 불가하다 하는 것은 때에 마땅한 것을 따르는 것이다. 때에 마땅한 것은 곧 이치에 마땅한 것이며, 이치에 마땅하다면 권도를 쓰지 않으려 해도 그럴 수 없다. 그러니 권도를 어찌 쉽게 말하겠는가. 재주·담력·식견·학문이 있으면서 또 마음을 비우는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다. 어째서인가. 권도를 쓰는 것은 이치에 달렸고 이치를 밝히는 것은 마음에 달렸으므로, 반드시 이 마음에 조금의 가림도 없게 해야 거의 이치에 통하고 쓰임이 원만할 수 있다. 마음이 비지 않으면 마음이 가림을 받는데 이치가 어찌 밝아지겠는가. 학문이 있어도 식견 없는 학문일 뿐이고 식견이 있어도 학문 없는 식견일 뿐이며, 재주와 담력이 있어도 모두 뜬 기운일 뿐이니 어찌 곧 때에 따라 마땅함을 정하여 폐단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로 말하면 재주·담력·식견·학문이 없는 사람만 권도를 쓸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있는 사람도 아직 권도를 쓸 수 없다. 반드시 재주·담력·식견·학문이 있으면서 또 마음을 비우는 사람이어야 비로소 권도를 쓸 수 있다. 아, 권도가 어찌 쉽겠는가.”
權乃學問經濟之極功 , 雖可與立者 , 尚未可與權 , 蓋必權而不失其中 , 之所以為難也 。 苟失其中 , 則不可謂之權矣 。 權豈易言哉 ?
권도는 학문과 경세제민의 지극한 공이다. 함께 설 수 있는 사람이라도 아직 함께 권도를 행할 수는 없으니, 반드시 권도를 행하되 중도를 잃지 않아야 하므로 어려운 것이다. 중도를 잃으면 권도라 할 수 없다. 권도를 어찌 쉽게 말하겠는가.
昔王好古論人參曰 : 肺熱用之則傷肺 。 王節齋論人參曰 : 陰虛血證忌服 , 服之過多必不治 。 余深味之 , 皆千古不可移易之繩墨 , 何後之妄議其非者紛然也 ? 是豈詞不足以發其理 , 而人莫之解歟 ? 非也 ! 唱和成風 , 耳熟心痼 , 遂不復有揭其理而正其誤者矣 ! 謂非吾道之一大不幸哉 ? 夫所謂肺熱者 , 即陰虛之肺熱也 ; 所謂陰虛者 , 即肺熱之陰虛也 。 蓋肺熱謂陽獨盛 , 陰虛謂陰獨虛 , 陰獨虛則陰不足以化陽而火熾 , 火熾則爍金而咳血 , 咯血 , 干嗽 , 聲嘶諸肺熱之候所從出矣 。 此正有陽無陰之病 , 治當曲盡養陰之法以化陽而救熱 , 遽用人參助其陽氣 , 則肺愈熱而陰愈虛 , 嗽喘痰血不愈甚乎 ? 此兩先生所以垂戒諄諄乃爾 , 後人不察 , 悉誤以 《 素問 》「 無陽則陰無以生 」 之旨 , 認作陰虛之病 , 論則曰造化之理 , 陰從乎陽 , 凡陰虛者 , 必皆用人參補陽而生陰 。 又執朱丹溪 「 虛火可補 , 參耆之屬 」, 暨張潔古 「 人參補上焦元氣而瀉肺中火邪 」, 以及李東垣 「 人參補元陽 、 生陰血而瀉陰火 」 諸論 , 以為凡屬虛火 、 肺火 、 陰虛之火 , 無不可用人參以補之 , 遂懜然侈口而斥兩先生之非 。 嗚呼 ! 何其不明之甚耶 ?《 素問 》 謂 「 無陽則陰無以生 」, 論陽虛之病耳 , 非所論於陰虛也 。 其所論於陰虛者 , 已自有 「 無陰則陽無以化 」 之句 , 與此彰彰 , 並載於書 , 豈獨置之勿講乎 ? 一則因其無陽也 , 治當補陽而生陰 ; 一則因其無陰而有陽也 , 治當補陰以化陽耳 。 明乎此 , 則知其無陽者可以補陽 , 而有陽者不可以補陽耳 。 若以補陽氣不足之人參 , 漫加於肺熱陰虛之病 , 是有陽而又補其陽矣 , 奚可哉 ? 若夫丹溪為虛火可補 , 謂其可補氣虛之虛火也 , 非謂人參可補陰虛之虛火也 。 氣屬陽 , 有餘便是火 , 不足而補火自退 , 有餘而補火愈熾矣 。 潔古謂人參補上焦元氣而瀉肺中火邪者 , 亦指其補上焦元氣不足而瀉肺中火邪也 , 非謂人參能補陰血不足而瀉肺中火邪也 。 至東垣謂人參補元陽 、 生陰血而瀉陰火 , 亦因元陽之不足 , 不能生陰以制火 , 故補之 , 非為元陽之有餘也 。 不究其理而妄議其非 , 不大謬哉 ?
옛날 왕호고는 인삼을 논하여 “폐열에 쓰면 폐를 상한다.”라고 하였고, 왕절재는 인삼을 논하여 “음허혈증에는 복용을 꺼리며 지나치게 많이 복용하면 반드시 치료할 수 없게 된다.”라고 하였다. 내가 깊이 음미해 보니 모두 천고에 바꿀 수 없는 준칙인데, 어째서 뒤에 그 잘못을 망령되게 논하는 자들이 어지럽게 많은가. 말이 이치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여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인가. 아니다. 서로 따라 말하는 것이 풍조가 되어 귀에 익고 마음에 굳어져 다시 그 이치를 드러내 잘못을 바로잡는 사람이 없게 된 것이다. 우리 도의 큰 불행이 아니겠는가. 이른바 폐열은 곧 음허의 폐열이고, 이른바 음허는 곧 폐열의 음허이다. 폐열은 양만 성함을 말하고 음허는 음만 허함을 말한다. 음만 허하면 음이 양을 화하기에 부족하여 화가 치성하고, 화가 치성하면 금을 녹여 해혈·각혈·마른기침·목 쉼 등 여러 폐열의 증후가 생긴다. 이는 바로 양은 있으나 음이 없는 병이므로, 치료는 양음의 법을 남김없이 다하여 양을 화하고 열을 구해야 한다. 갑자기 인삼을 써서 양기를 도우면 폐는 더욱 뜨겁고 음은 더욱 허해져 해수·천증·담혈이 더욱 심해지지 않겠는가. 두 선생이 이처럼 거듭 경계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후인이 살피지 않고 『소문』의 ‘양이 없으면 음이 생길 수 없다.’라는 뜻을 모두 음허의 병으로 잘못 알아, 논할 때에는 조화의 이치에서 음은 양을 따른다며 음허에는 반드시 모두 인삼으로 보양하여 음을 낳아야 한다고 한다. 또 주단계의 ‘허화는 보할 수 있으니 인삼·황기 같은 것이다.’, 장결고의 ‘인삼은 상초 원기를 보하여 폐 속 화사를 사한다.’, 이동원의 ‘인삼은 원양을 보하고 음혈을 낳아 음화를 사한다.’ 등의 논의를 고집하여, 허화·폐화·음허의 화에 속하면 인삼으로 보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여기고는 어둡게도 입을 크게 벌려 두 선생을 그르다고 배척한다. 아, 어찌 그리 밝지 못함이 심한가. 『소문』의 ‘양이 없으면 음이 생길 수 없다.’라는 말은 양허의 병을 논한 것이지 음허를 논한 것이 아니다. 음허를 논한 것으로는 이미 ‘음이 없으면 양이 화할 수 없다.’라는 구절이 있어 이것과 함께 책에 뚜렷이 실려 있는데 어찌 유독 내버려 두고 강구하지 않는가. 하나는 양이 없기 때문이니 치료는 보양하여 음을 낳아야 하고, 하나는 음이 없고 양은 있기 때문이니 치료는 보음하여 양을 화해야 한다. 이를 밝히면 양이 없는 경우에는 보양할 수 있지만 양이 있는 경우에는 보양할 수 없음을 알 것이다. 양기부족을 보하는 인삼을 폐열음허의 병에 마구 더하면 양이 있는데 또 그 양을 보하는 것이니 어찌 가능하겠는가. 단계가 허화는 보할 수 있다고 한 것은 기허의 허화를 보할 수 있다는 뜻이지 인삼으로 음허의 허화를 보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기는 양에 속하므로 유여하면 곧 화이며, 부족할 때 보하면 화가 저절로 물러가지만 유여할 때 보하면 화가 더욱 치성해진다. 결고가 인삼은 상초 원기를 보하여 폐 속 화사를 사한다고 한 것도 상초 원기의 부족을 보하여 폐 속 화사를 사함을 가리키지, 인삼이 음혈의 부족을 보하여 폐 속 화사를 사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동원이 인삼은 원양을 보하고 음혈을 낳아 음화를 사한다고 한 것도 원양이 부족하여 음을 낳아 화를 제어하지 못하므로 보한다는 것이지 원양이 유여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이치를 연구하지 않고 망령되게 그르다고 논하니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透徹之論 , 可杜悠悠之口 。
투철한 논의이니 어수선하게 떠드는 입을 막을 수 있다.
世俗謂產後三日內不可用人參 , 測其意恐瘀血之不行耳 。 噫 ! 果瘀血不行而謂不可用 , 誠是矣 ! 設有行之不止 , 以昏眩無知 , 六脈幾絕 , 手足盡冷而為血脫陽亡之候 , 其亦可以不用乎 ? 竊恐此際即立煮人參 、 薑 、 桂急救之 , 亦有不及濟者矣 , 安問三日與不三日也 ? 今之病家 、 醫家未經參究 , 每遇產後 , 但知有瘀血不行之可慮耳 , 而不知有血脫陽亡之可危 , 恆坐視人之死而不救 , 可悼也夫 ! 一巨家室 , 五月而小產 , 產不逾時而即血崩不止 , 六脈虛微 , 神情昏倦 , 此血欲脫而陽欲亡之候也 。 予甚惶怖 , 急以人參一兩 , 肉桂二三錢 , 不切而咀 , 即注爐頭沸水急急煮飲 , 以追脫耗之元陽 , 煮未半而室已運去 , 更視之則六脈既絕 , 手足冷而通體涓涓汗矣 。 予惶怖益甚 , 忙取二大磁甌 , 不待參味煮全 , 旋以一注參汁少許 , 急持與飲 , 復以一又注少許 , 急持與飲 , 如此遞相持飲 , 飲盡即脈起神蘇 , 手足溫而汗已收矣 。 既而胸中作滿 , 疑故於參 , 予謂此非參故 , 乃湯飲多而不能頓行故也 , 頃俟腹中有汩汩行下聲自平耳 。 未幾果然 。 然其所以用參之不切而咀 , 而又以沸水急煮者何也 ? 恐稍緩不及濟事耳 。 其注參汁於大甌而遞相少進者 , 又何也 ? 恐參汁熱而驟難下口 , 轉致遲遲耳 , 非有他也 。 不如是則徒有救人之心 , 而無救人之術 , 與不救者何以異 。
세속에서는 산후 사흘 안에는 인삼을 써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그 뜻을 헤아리면 어혈이 행하지 않을까 두려워한 것일 뿐이다. 아, 참으로 어혈이 행하지 않아 쓸 수 없다고 한다면 옳다. 그러나 혈이 나오는 것이 그치지 않아 혼현하고 의식이 없으며 육맥이 거의 끊어지고 손발이 모두 차서 혈탈양망의 징후가 된다면 역시 쓰지 않아도 되겠는가. 이때에는 즉시 인삼·강·계를 달여 급히 구하더라도 미처 구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까 두려운데 어찌 사흘인지 아닌지를 묻겠는가. 지금의 병가와 의가는 참구하지 않아 산후를 만나면 어혈이 행하지 않는 것만 걱정할 줄 알고 혈탈양망의 위태로움은 알지 못하여 늘 사람이 죽는 것을 앉아서 보고 구하지 않으니 슬프다. 큰 집안의 부인이 다섯 달에 유산하였는데, 산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혈붕이 그치지 않고 육맥이 허미하며 정신이 혼미하고 피곤하였다. 이는 혈이 탈하고 양이 망하려는 징후였다. 나는 매우 두려워 급히 인삼 1냥과 육계 2~3돈을 얇게 썰지 않고 잘게 부수어, 곧 화로 위의 끓는 물을 부어 서둘러 달여 마시게 하여 탈모하는 원양을 뒤쫓으려 하였다. 미처 절반도 달이지 못했는데 부인은 이미 정신을 잃었고 다시 보니 육맥이 끊어졌으며 손발이 차고 온몸에 땀이 줄줄 흘렀다. 나는 더욱 두려워 서둘러 큰 자기사발 두 개를 가져오고 인삼의 맛이 온전히 우러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한 사발에 삼즙을 조금 부어 급히 들고 가 마시게 하고 다시 다른 사발에 조금 부어 급히 들고 가 마시게 하였다. 이처럼 번갈아 들고 가 마시게 하여 다 마시자 곧 맥이 일어나고 정신이 돌아오며 손발이 따뜻해지고 땀이 거두어졌다. 이윽고 가슴속이 그득해지자 인삼 때문이라고 의심하였으나 나는 “이는 인삼 때문이 아니라 탕을 많이 마셔 한꺼번에 내려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기다려 배 속에서 꾸르륵 내려가는 소리가 나면 저절로 편해질 것입니다.”라고 하였고 얼마 뒤 과연 그러하였다. 그런데 인삼을 얇게 썰지 않고 잘게 부수며 끓는 물로 급히 달인 까닭은 무엇인가. 조금이라도 늦으면 일을 구제하지 못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삼즙을 큰 사발에 부어 번갈아 조금씩 먹인 까닭은 또 무엇인가. 삼즙이 뜨거워 갑자기 입에 넣기 어려워 도리어 늦어질까 두려웠을 뿐 다른 까닭은 없다.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사람을 구할 마음만 있고 구할 술법은 없으니 구하지 않는 자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臨證首宜辨虛實 , 不必拘日數 , 傷寒 、 痘疹及諸雜證 , 無不皆然 。
임증에서는 먼저 허실을 분별해야 하며 날짜 수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상한·두진 및 여러 잡증이 모두 그러하다.
甚者成見之誤人也 。 予昔治一女人難產後即發熱不止 , 汗甚多 , 而語甚錯 , 六脈洪大而虛 , 且有坐臥靡寧 , 五六晝夜曾不經一閤眼 , 一閤眼此身不啻飄飄浮雲中 , 則明是一個氣血大虧 , 以致虛陽亢上的證候 。 夫何以參 、 朮 、 歸 、 耆 、 丹皮 、 童便及炒黑乾薑之類 , 屢進而屢不驗 , 且不但不驗 , 反增頭眩耳鳴 , 噁心嘈雜 , 欲嘔不得嘔數證 , 則知其非氣血大虧 , 乃痰涎之壅盛矣 , 遂更一方 : 半夏三錢 , 天麻二錢 , 茯苓 、 橘紅 、 豆仁 、 厚朴 、 黃連 、 枳實各一錢 , 竹茹三錢 , 鐵鏽水煎服 , 不二劑而氣爽神清 , 身涼脈靜矣 。 繼以人參大補脾丸日進二服 , 以培胃中元氣 , 數服後漸覺飲啖加餐 , 月餘全愈 。 然則予之所以誤認為氣血之虧者 , 執產後之成見於胸中耳 , 須知學者不可不虛其心而廣其識也 。
성견이 사람을 그르치는 것이 심하다. 나는 옛날 한 여인이 난산 뒤 곧 발열이 그치지 않고 땀이 매우 많으며 말이 매우 어긋나고 육맥이 홍대하면서 허한 것을 치료하였다. 또 앉거나 누워도 편하지 않아 대여섯 주야 동안 한 번도 눈을 붙이지 못했고, 눈을 한 번 감으면 몸이 뜬구름 속에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이는 분명 기혈이 크게 이지러져 허양이 위로 치솟은 증후로 보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인삼·백출·당귀·황기·단피·동변 및 검게 볶은 건강 등을 여러 번 투여하여도 매번 효험이 없었는가. 효험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두현·이명·오심·조잡과 토하려 해도 토하지 못하는 여러 증상이 더해져, 기혈의 큰 손상이 아니라 담연이 옹성한 것임을 알았다. 이에 처방을 바꾸어 반하 3돈, 천마 2돈, 복령·귤홍·두인·후박·황련·지실 각 1돈, 죽여 3돈을 쇠 녹물로 달여 복용하게 하였다. 두 제도 되기 전에 기가 상쾌하고 정신이 맑아졌으며 몸이 서늘하고 맥이 안정되었다. 이어 인삼대보비환을 하루 두 번 투여하여 위 속 원기를 북돋우니 몇 차례 복용한 뒤 점차 먹고 마시는 양이 늘었으며 한 달 남짓 만에 완전히 나았다. 내가 기혈의 손상이라고 잘못 안 것은 산후라는 성견을 가슴속에 고집했기 때문이다. 배우는 사람은 마음을 비우고 식견을 넓히지 않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凡病皆有虛實 , 不可略存成見 , 非獨產後然也 。
모든 병에는 허실이 있으므로 조금의 성견도 두어서는 안 된다. 산후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長年病與高年病大要在保全胃氣 , 保全胃氣在食不在藥 , 萬不可專攻於藥 , 致妨於食 , 倘其力所能食 , 時所當食 , 寧可因食而廢藥 , 不可因藥而廢食 。 人當病愈後 , 胃氣必虛 , 固不可恣情口吻 , 尤不可小心太過 , 絕口不沾肉味 , 或曰本草謂豬肉助火生痰 , 發風動氣 , 於人有損無益 。 子何出此言也 ? 余曰 : 人以血氣成軀 , 虛則當以血氣之味為補助 。 此固自然之至理 , 岐伯所以有肉為胃藥之稱 , 孟氏所以有非肉不飽之論也 。 朝與夕親 , 習以成性 , 雖有助火生痰 、 發風動氣之害 , 亦與之俱化矣 。 予有一譬焉 , 譬之藥中之大黃 , 非所稱有損無益者乎 ? 而或蟲生其間 , 則必不能離大黃以為命 , 設取而飼之人參 、 白朮之中 , 其蟲反不得所而死矣 。 此各隨其質之所由生 , 性之所由習 , 豈概論物味之損與益哉 ? 又如汙泥糞壤 , 孰不以為穢惡之物 , 唾而遠也 , 其間或生蟲焉 , 則亦必藉汙泥糞壤以為命矣 。 倘憐而愛之者 , 將畜之於清溪洌澗之中 , 其為蟲也 , 得更有逾時之命乎 ? 由此推之 , 則豬肉之於人 , 未嘗有損無益也 。
여러 해 된 병과 고령의 병은 크게 보아 위기를 보전하는 데 달려 있다. 위기를 보전하는 것은 음식에 있지 약에 있지 않다. 결코 약으로만 공격하여 먹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능히 먹을 힘이 있고 먹어야 할 때라면 차라리 음식 때문에 약을 폐할지언정 약 때문에 음식을 폐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병이 나은 뒤 위기가 반드시 허하므로 본래 입맛대로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되지만, 더욱 지나치게 조심하여 고기 맛을 입에 전혀 대지 않아서도 안 된다. 어떤 이가 “본초에서는 돼지고기가 화를 돕고 담을 낳으며 풍을 발하고 기를 움직여 사람에게 손해만 있고 이익은 없다고 하였는데, 그대는 어찌 이런 말을 합니까?”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였다. “사람은 혈기로 몸을 이루므로 허하면 혈기의 맛으로 보조해야 한다. 이것은 본래 자연의 지극한 이치이니 기백이 고기를 위의 약이라 일컫고 맹씨가 고기가 아니면 배부르지 않다고 논한 까닭이다. 아침저녁으로 가까이하여 익숙함이 성질이 되었으므로 화를 돕고 담을 낳으며 풍을 발하고 기를 움직이는 해가 있더라도 또한 함께 화한다. 내가 한 가지 비유하겠다. 약 가운데 대황은 손해만 있고 이익이 없다고 일컫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속에 벌레가 생기면 반드시 대황을 떠나 목숨을 부지할 수 없으며, 가져다가 인삼·백출 속에서 먹여 기르면 벌레는 도리어 제자리를 얻지 못하여 죽는다. 이는 각각 바탕이 생겨난 바와 성질이 익숙해진 바를 따르는 것이니 어찌 물건의 맛이 손해인가 이익인가를 일률적으로 논하겠는가. 또 더러운 진흙과 분토는 누구나 더러운 물건으로 여겨 침 뱉고 멀리하지만 그 속에 벌레가 생기면 또한 반드시 그 진흙과 분토에 의지하여 살아간다. 이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이 맑고 찬 시내 속에 기르려 한다면 그 벌레가 다시 한 시각을 넘길 목숨을 얻겠는가. 이로 미루어 보면 돼지고기는 사람에게 손해만 있고 이익은 없는 것이 아니다.”
鄒潤安亦有此論 。 蓋坎為豕 , 在地支則屬亥 , 不但養胃 , 余謂其補腎水有專能也 。 本草損人之說 , 汪訒庵亦不以為然 。 惟脾虛濕盛之人 , 有釀痰滑瀉之弊 , 時疫流行之際 , 有壅濁召疾之虞耳 。 製為蘭熏 , 俗呼火腿 , 補虛開胃 , 病後最宜 , 以東陽造者為良 。
추윤안도 이런 논의를 하였다. 감은 돼지이고 지지에서는 해에 속하니 위를 기를 뿐 아니라, 나는 신수를 보하는 데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본초에서 사람을 해친다는 말은 왕인암도 옳게 여기지 않았다. 다만 비허·습성한 사람에게는 담을 빚고 활설하는 폐단이 있으며 시역이 유행할 때에는 탁한 것이 막혀 병을 부를 염려가 있을 뿐이다. 만들어 난훈으로 삼은 것을 속칭 화퇴라 하는데, 허를 보하고 위를 열어 병후에 가장 마땅하며 동양에서 만든 것이 좋다.
余每到病勢危篤之家 , 未診視先令急煮水 , 診視竣 , 水即成湯矣 。 取藥煮之 , 差可濟急 。 世俗服藥之弊有六 : 有食已而即藥者 ; 有藥已而即恣飲茶湯者 ; 有藥食雜進而恬之不忌者 ; 有才服此醫之藥而旋以彼醫之藥繼之者 ; 有明受此醫之藥而陰則服彼醫之藥 , 不肯明言以欺人者 ; 更有苦於服藥 , 所授湯丸必潛傾廢 , 中外待人又為互隱而無可稽窮者 。 病或偶減 , 固無論已 , 設或偶增 , 咎將安責 ?
나는 병세가 위독한 집에 갈 때마다 진찰하기 전에 먼저 급히 물을 끓이게 한다. 진찰을 마치면 물이 곧 끓어 있으므로 약을 가져다가 달이면 어느 정도 급한 일을 구제할 수 있다. 세속에서 약을 복용하는 폐단은 여섯 가지이다. 음식을 먹고 곧 약을 먹는 사람이 있고, 약을 먹고 곧 차와 탕을 마음대로 마시는 사람이 있으며, 약과 음식을 뒤섞어 먹으면서 태연히 꺼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 의사의 약을 막 먹고 곧 저 의사의 약을 이어 먹는 사람이 있고, 겉으로는 이 의사의 약을 받으면서 몰래 저 의사의 약을 먹고 분명히 말하려 하지 않아 남을 속이는 사람도 있다. 더 나아가 약 먹기를 괴로워하여 받은 탕과 환을 반드시 몰래 쏟아 버리고, 안팎에서 시중드는 사람들까지 서로 숨겨 조사하여 밝혀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병이 혹 우연히 줄면 본래 말할 것도 없지만 혹 우연히 심해지면 누구에게 허물을 물을 것인가.
煮水侍藥 , 洵救急之一法 , 服藥之弊 , 筆難盡馨 , 豈止六端而已哉 !
물을 끓여 약을 기다리는 것은 참으로 구급의 한 방법이다. 복약의 폐단은 붓으로 다할 수 없으니 어찌 여섯 가지에 그치겠는가.
病中固宜節食 , 尤宜節飲 , 食傷人所易知 , 飲傷人都不覺 , 不惟茶湯漿酒 , 以及冰泉瓜果之傷 , 謂之傷飲 , 即服藥過多 , 亦謂之傷飲 。 其見證也 , 輕則腹滿腸鳴 , 為嘔為吐 ; 重則腹急如鼓 , 為喘為呃 ; 甚則緊閉牙關 , 流涎口角 , 昏聵不醒人事 , 狀類中風 。 患此證者 , 滔滔皆是 , 或未有識 , 不得不為來者言之 。
병중에는 본래 음식을 절제해야 하며 특히 마시는 것을 절제해야 한다. 먹어서 상하는 것은 사람들이 쉽게 알지만 마셔서 상하는 것은 모두 깨닫지 못한다. 차·탕·장·술과 얼음·샘물·오이·과일에 상한 것만 상음이라 하는 것이 아니라 약을 너무 많이 복용한 것도 상음이라 한다. 그 나타나는 증상은 가벼우면 배가 그득하고 장에서 소리가 나며 구역하고 토하고, 무거우면 배가 북처럼 팽팽하여 천증과 딸꾹질이 생긴다. 심하면 아관을 굳게 닫고 입가로 침을 흘리며 혼궤하여 의식을 잃어 모습이 중풍과 비슷하다. 이 증을 앓는 사람이 도처에 있지만 혹 알아보지 못하므로 후세 사람을 위하여 말하지 않을 수 없다.
《 易 》 曰節飲食 , 是飲與食並當節也 。 平人且然 , 況病中乎 ? 飲食且然 , 況藥汁乎 ? 尊生者 , 不可不三複此言也 。
『역』에서 음식을 절제하라고 하였으니 마시는 것과 먹는 것을 모두 절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건강한 사람도 그러한데 하물며 병중에는 어떠하겠는가. 음식도 그러한데 하물며 약즙은 어떠하겠는가. 생명을 존중하는 사람은 이 말을 거듭 음미하지 않을 수 없다.
舉凡胸腹中有痰有飲 , 有積有痞 , 或脹或痛 , 或酸或嘈 , 或吐或瀉 , 一二證時止時作 , 經年不瘥者 , 急須猛意以圖全愈 , 毋俟他日別病相加 , 掣肘莫措 。 然其所治之法 , 則灼艾先而藥石次 。 蓋灼艾治病 , 與藥石不同 , 藥石固能治病 , 久之必動腸胃 , 妨飲食而壞元氣 ; 灼艾則不唯能治病 , 並不動腸胃 , 妨飲食以致壞元氣耳 。 嗟嗟 ! 世人之喜藥石而惡灼艾者多矣 , 而抑知灼艾之為功 , 遠逾草根木皮萬萬也 。
가슴과 배 속에 담·음·적·비가 있어 혹 창만하거나 아프거나 시거나 조잡하거나 토하거나 설사하는 한두 증상이 때로 그쳤다 때로 발하며 해가 지나도 낫지 않으면, 급히 단단히 마음먹고 완전히 나을 것을 도모해야 한다. 훗날 다른 병이 더해져 팔을 잡힌 듯 손쓸 수 없게 되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치료법에서는 쑥을 태워 뜸뜨는 것이 먼저이고 약석이 다음이다. 쑥을 태워 병을 치료하는 것은 약석과 다르다. 약석은 본래 병을 치료할 수 있지만 오래 쓰면 반드시 장위를 동요시키고 음식을 방해하여 원기를 무너뜨린다. 쑥을 태우는 것은 병을 치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장위를 동요시키고 음식을 방해하여 원기를 무너뜨리지도 않는다. 아, 세상에는 약석을 좋아하고 뜸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뜸의 효능이 풀뿌리와 나무껍질보다 만 배나 뛰어남을 아는가.
寒濕凝滯為病 , 藉艾火以溫行 , 的是對證良法 。
한습이 응체하여 병이 된 경우 쑥불에 의지하여 따뜻하게 운행시키는 것은 확실히 증에 맞는 좋은 법이다.
灼艾後惟 「 節飲食 」 三字為首務 , 不可饕餮厚味 , 致傷胃氣 。 今之人一經灼艾 , 便以食不勝人為憂 , 其始也胃氣未傷 , 猶能勉力啖嚼 , 數日後胃氣被傷 , 即脹滿而不能食 , 不瀉則吐 , 不吐則瘧與痢所從出矣 。 且更不思自貽伊戚 , 而猶咎施艾者之無功 , 良可笑也 , 良可悲也 。
뜸을 뜬 뒤에는 오직 ‘음식을 절제한다’는 것을 첫 임무로 삼아야 하며,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탐식하여 위기를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사람들은 한 번 뜸을 뜨면 곧 남보다 많이 먹지 못할까 걱정한다. 처음에는 위기가 아직 상하지 않아 억지로 힘써 먹고 씹을 수 있지만, 며칠 뒤 위기가 상하면 곧 창만하여 먹지 못하고 설사하지 않으면 토하며 토하지 않으면 학질과 이질이 생겨난다. 더욱이 스스로 근심을 끼쳤음을 생각하지 않고 여전히 뜸을 놓은 사람에게 공이 없다고 탓하니 참으로 우습고 참으로 슬프다.
勉力啖嚼 , 最傷脾冒 , 無病者且然 , 況病人乎 ?
억지로 힘써 먹고 씹는 것은 비위를 가장 상하게 한다. 병 없는 사람도 그러한데 하물며 병자는 어떠하겠는가.
虛勞病 , 惟於初起時急急早灸膏肓等穴為上策 , 外此則絕房室 、 息妄想 、 戒惱怒 、 慎起居 、 節飲食以助火攻之不逮 。 一或稍遲 , 脈旋增數 , 雖有良工 , 勿克為已 。 葛可久曰 : 癆證最為難治 , 當治於微病之初 , 莫治於已病之後 , 深有旨也 。 至夫藥餌 , 則貴專而少 , 不貴泛而多 , 萬不可謾聽名流 , 積月窮年不撤潤肺滋陰之藥 , 潤肺滋陰之藥 , 擅名固美 , 釀禍極深 , 不可不知 , 不可不慎 !
허로병에는 오직 처음 생겼을 때 서둘러 고황 등의 혈에 일찍 뜸뜨는 것이 상책이다. 이 밖에는 방실을 끊고 망상을 쉬며 노여움을 경계하고 기거를 삼가고 음식을 절제하여 화공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도와야 한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맥이 곧 더욱 삭해져 양공이 있어도 그치게 할 수 없다. 갈가구는 “노증은 가장 치료하기 어려우니 미세한 병의 처음에 치료해야 하고 이미 병든 뒤에 치료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였으니 깊은 뜻이 있다. 약은 전일하고 적은 것이 귀하며 범박하고 많은 것은 귀하지 않다. 결코 이름난 사람의 말을 함부로 듣고 달이 쌓이고 해가 다하도록 윤폐자음하는 약을 그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윤폐자음약은 차지한 이름이 본래 아름답지만 화를 빚는 것은 지극히 깊으니 알지 않거나 삼가지 않아서는 안 된다.
初起灼艾固為上策 , 然惟瘵證為宜 。 設屬真陰虛損 , 滋陰之藥在所必用 , 汪纘功論之詳矣 , 又未可再以艾火劫其陰也 。《 理虛元鑑 》 一書 , 尤不可不讀 。
처음에 뜸뜨는 것이 본래 상책이지만 오직 채증에 마땅하다. 진음이 허손한 경우라면 자음약을 반드시 써야 하니 왕찬공이 자세히 논하였다. 또다시 쑥불로 그 음을 겁탈해서는 안 된다. 『이허원감』은 더욱 읽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凡瀉病 、 痢病 、 蟲病 、 疳病 、 水病 、 酒病 、 疸病於初愈時 , 斷不可驟服滋補之藥 。 蓋此數病以濕熱為原 , 滋補之藥 , 乃助濕熱之尤者 , 驟爾服之 , 鮮不致害 。
설사병·이질병·충병·감병·수병·주병·달병이 처음 나았을 때에는 결코 자보약을 갑자기 복용해서는 안 된다. 이 몇 병은 습열을 근원으로 삼는데 자보약은 습열을 돕는 것이 특히 심하므로 갑자기 복용하면 해를 끼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瀉痢亦有宜滋補者 , 但須佐以堅陰清熱之品 , 不可甘溫膩補耳 。
설사와 이질에도 자보가 마땅한 경우가 있다. 다만 견음청열하는 약을 보좌해야 하며 달고 따뜻하며 끈끈하게 보해서는 안 될 뿐이다.
凡近產不可祈占問卜 , 聽彼巫覡之徒乘機哄哧 , 以吉為凶 , 當何禱神 , 當何求佛 , 致使孕者憂疑恐懼 , 夢想多成危境 , 真氣反因鬱結而不舒 。 臨產之際 , 不難產亦自難產矣 。 患此弊者 , 急用人參 、 白朮 、 當歸 、 川芎 、 砂仁 、 枳殼 、 蘇梗 、 大腹皮之類 , 日煎服之 , 以舒鬱氣而扶真氣 。
출산이 가까우면 기도하며 점치고 길흉을 물어서는 안 된다. 무격의 무리가 틈을 타 속이고 겁주며 길한 것을 흉하다 하고 어떤 신에게 기도하고 어떤 부처에게 빌어야 한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임신한 사람이 걱정하고 의심하고 두려워하여 꿈과 생각이 흔히 위험한 경지를 이루고 진기는 도리어 울결되어 펴지지 못한다. 출산할 때 난산이 아닐 경우도 저절로 난산이 된다. 이 폐단을 겪는 사람에게는 급히 인삼·백출·당귀·천궁·사인·지각·소경·대복피 등을 날마다 달여 복용하게 하여 울기를 펴고 진기를 도와야 한다.
占卜 、 堪輿 、 星相 、 巫覡 , 皆欺愚人以謀生者 , 士大夫惑之 , 往往致禍 , 不但臨產爾也 。
점복·감여·성상·무격은 모두 어리석은 사람을 속여 생계를 도모하는 자들이다. 사대부가 이에 현혹되면 왕왕 화를 부르니 출산 때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凡用補藥必兼瀉邪 , 邪去則補藥得力 , 譬之滌衣先除垢膩 , 而後粉飾可加耳 。 若專事補而不知邪氣之當瀉 , 補必為害 。
보약을 쓸 때에는 반드시 사기를 사하는 것을 겸해야 한다. 사기가 제거되면 보약이 힘을 얻으니, 옷을 빨 때 먼저 때와 기름을 없앤 뒤에 분으로 꾸밀 수 있는 것과 같다. 보하는 데만 힘쓰고 사기를 사해야 함을 알지 못하면 보하는 것이 반드시 해가 된다.
一味蠻補 , 則病無出路 , 良由醫無理路 , 遂致人無生路 。
한결같이 무턱대고 보하면 병이 나갈 길이 없다. 참으로 의사에게 이치의 길이 없기 때문에 마침내 사람에게 살길이 없게 되는 것이다.
病之加於小愈者 , 因小愈而放其心也 。 天下事處逆者恆多易 , 處順者反多難 , 病當未愈而求愈時 , 欲不得逞 , 志不敢肆 , 凡語言 、 動止 、 飢飽 、 寒溫以及情性喜怒之間 , 無不小心翼翼 , 自然逆可為順 , 不期愈而不愈者鮮矣 。 愈則此心不覺康強自慰 , 保護漸疏 , 恣口吻也 , 爽寒溫也 , 多語言也 , 費營慮也 , 近房室也 。 順情性而煩惱也 , 廣應酬而不自知為勞且傷也 , 有謂病不反加於此者無之矣 。 因憶孟夫子生於憂患 , 死於安樂之說 , 信不可不書紳而銘座右也 。
조금 나은 뒤 병이 더해지는 것은 조금 나았다고 마음을 놓기 때문이다. 천하의 일은 역경에 처하면 늘 쉬운 것이 많고 순경에 처하면 도리어 어려운 것이 많다. 병이 아직 낫지 않아 낫기를 구할 때에는 욕망을 펼치지 못하고 뜻을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하여, 말하고 움직이고 멈추며 주리고 배부르고 춥고 따뜻한 것과 성정의 희로에 이르기까지 조심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면 자연히 역경이 순경으로 바뀌어 낫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낫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낫게 되면 이 마음이 저도 모르게 건강하고 강해졌다고 스스로 위로하여 보호가 점점 소홀해진다. 입맛대로 먹고 한온을 어기며 말을 많이 하고 생각을 소모하며 방실을 가까이한다. 성정을 따라 번뇌하고 응수를 넓히면서 스스로 수고하고 상하는 줄 모르니 이 때문에 병이 도리어 더해지지 않는 경우는 없다. 이에 맹부자의 ‘우환에서 살고 안락에서 죽는다.’라는 말을 떠올리니 참으로 띠에 쓰고 좌우에 새기지 않을 수 없다.
病人犯此而功敗於垂成者多矣 , 不僅加病而已 。
병자가 이를 범하여 거의 이루려던 공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으니 병이 더해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
人咸謂神昏之病原於心 , 心清神乃清 。 愚謂神昏之病原於胃 , 胃清神乃清 。 或疑神藏於心 , 於胃何與 ? 曰藏神者心 , 而攝神者氣 , 氣出於胃 , 胃氣不清則不能攝神歸舍 , 而心神之昏昧也必矣 。 子如不信 , 不觀酒醉之人乎 , 醉酒之人 , 醉胃不醉心也 , 何以神昏而語言錯亂也 ? 不觀飽食之人乎 , 飽食之人 , 飽胃不飽心也 , 何以神昏而頹然欲寐也 ? 不觀痰涎壅塞之病乎 , 痰涎壅塞之病 , 病於胃未嘗病於心 , 何以神昏而瞑眩無知若中狀也 ? 不觀陽明內實之病乎 , 陽明內實之病 , 病於胃未嘗病於心 , 何以神昏而躁妄狂譫如祟憑也 ? 或乃為之撫然 , 曰命之矣 。
사람들은 모두 신혼의 병은 심에서 비롯하므로 심이 맑아야 신이 맑다고 한다. 나는 신혼의 병이 위에서 비롯하므로 위가 맑아야 신이 맑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가 “신은 심에 간직되는데 위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라고 의심하였다. 말하였다. “신을 간직하는 것은 심이고 신을 거두는 것은 기이며 기는 위에서 나온다. 위기가 맑지 않으면 신을 거두어 제집으로 돌아가게 하지 못하므로 심신이 혼미해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대가 믿지 못한다면 술 취한 사람을 보지 못하였는가. 술 취한 사람은 위가 취한 것이지 심이 취한 것이 아닌데 어째서 정신이 혼미하고 말이 착란하는가. 배부르게 먹은 사람을 보지 못하였는가. 배부르게 먹은 사람은 위가 배부른 것이지 심이 배부른 것이 아닌데 어째서 정신이 혼미하여 맥없이 자려고 하는가. 담연이 옹색한 병을 보지 못하였는가. 담연이 옹색한 병은 위에 병든 것이지 심에 병든 것이 아닌데 어째서 정신이 혼미하고 명현하여 의식이 없으며 중풍한 듯한가. 양명이 안으로 실한 병을 보지 못하였는가. 양명이 안으로 실한 병은 위에 병든 것이지 심에 병든 것이 아닌데 어째서 정신이 혼미하고 조망·광섬하여 귀신이 붙은 듯한가.” 그러자 그 사람이 감동하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라고 하였다.
此誠前人未發之論也 。 況肥甘過度 , 每發癰疽 , 酒肉充腸 , 徒滋穢濁 , 熏蒸為火 , 凝聚成痰 , 汩沒性靈 , 神昏氣亂 , 宜其爾也 。 設素甘淡泊 , 藏府清虛 , 雖感客邪 , 易於解散 , 然則病從口入之言 , 可不深長思乎 ?
이는 참으로 앞사람이 밝히지 않았던 논의이다. 더구나 기름지고 단 것을 지나치게 먹으면 흔히 옹저가 생기고, 술과 고기로 장을 채우면 더럽고 탁한 것을 늘릴 뿐이다. 훈증하여 화가 되고 응취하여 담을 이루어 성령을 잠기게 하니 정신이 혼미하고 기가 어지러운 것은 당연하다. 평소 담박함을 달게 여기면 장부가 맑고 비어 객사를 감수해도 쉽게 풀어 흩을 수 있다. 그러니 병은 입으로 들어온다는 말을 깊고 오래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凡有以問疾來者 , 勿得與之相接 , 一人相接 , 勢必人人相接 , 多費語言以耗神氣 , 心所契者 , 又因契而忘倦 , 所憎者 , 又因憎而生嗔 ; 甚或坐盈一室 , 競起談風 , 縱不耐煩 , 又不敢直辭以去 。 嗟嗟 ! 有病之人 , 力克幾何而堪若此 ? 恐不終朝而病已增劇矣 ! 然此猶為害之小者耳 。 更有一等搖唇鼓舌 , 好事生非 , 病者一惑聽 , 必致惱怒填胸 , 不知自愛 , 而其為害 , 又不可言 , 智者於此 , 休將性命做人情 。
문병하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만나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을 만나면 형세상 반드시 모든 사람을 만나야 하여 말을 많이 쓰고 신기를 소모한다. 마음이 맞는 사람은 마음이 맞아 피곤함을 잊고, 미워하는 사람은 미워하여 성이 난다. 심지어 방 안 가득 앉아 서로 다투어 이야기꽃을 피우면 번거로움을 견디지 못해도 감히 곧바로 사양하여 떠나게 하지 못한다. 아, 병든 사람이 힘이 얼마나 있기에 이와 같은 것을 감당하겠는가. 아침이 다하기도 전에 병이 이미 더욱 심해질까 두렵다. 그러나 이것은 그래도 해가 작은 것이다. 더욱이 어떤 사람들은 입술을 흔들고 혀를 놀리며 일을 좋아하여 시비를 낳는데, 병자가 한 번 미혹되어 들으면 반드시 번뇌와 노여움이 가슴에 가득하여 스스로 아낄 줄 모르게 되니 그 해는 또 말할 수 없다. 지혜로운 사람은 여기에서 목숨을 인정 베푸는 데 쓰지 말아야 한다.
病家或不知此 , 醫者必當致戒 。
병가가 혹 이를 알지 못하면 의사가 반드시 경계해 주어야 한다.
病中但可安分調攝 , 不可偏信師巫 , 殺害生命 , 不惟損資造孽 , 更使心志狐疑 , 溺情鬼塞 , 而切身珍愛之圖 , 反置勿問 , 愚孰甚焉 ?
병중에는 다만 분수를 지켜 조섭해야 하며 무당만 치우쳐 믿고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된다. 재물을 손상하고 죄업을 짓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음을 의심에 빠뜨리며 귀신에 정신이 잠기게 하고, 몸소 생명을 소중히 아낄 계책은 도리어 내버려 두고 묻지 않게 하니 이보다 더 어리석을 수 있겠는가.
愚人每犯此 , 且不可以理喻 , 真錮疾也 。
어리석은 사람이 늘 이를 범하고 이치로 깨우쳐 줄 수도 없으니 참으로 고질이다.
病人臥榻 , 不可薄以茵褥 , 致使隱寒犯背 , 寢傷五藏之陽 , 變證增邪 , 莫此為甚 。 仙經曰 : 背以陽為主 , 而五藏之俞穴通焉 。 一被寒侵 , 則寒氣繇俞入藏而藏寒 , 藏寒則陰盛 , 陰盛則陽衰 , 陽衰則轉輸遲滯 , 傳送乖違 , 氣血亦為之損敗 , 輕病必重 , 重病必至於死矣 , 可不慎乎 ? 不特病時不可 , 即平時亦是不可 。
병자가 눕는 침상에는 요를 얇게 깔아서는 안 된다. 숨어 있는 한기가 등을 범하여 점차 오장의 양을 상하게 하면 변증이 생기고 사기가 더해지니 이보다 심한 것이 없다. 선경에 “등은 양을 주로 하며 오장의 수혈이 통한다.”라고 하였다. 한 번 한기가 침범하면 한기가 수혈을 따라 장으로 들어가 장이 차가워지고, 장이 차가우면 음이 성하며 음이 성하면 양이 쇠한다. 양이 쇠하면 전수는 지체하고 전달은 어긋나 기혈도 손패하여 가벼운 병은 반드시 무거워지고 무거운 병은 반드시 죽음에 이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병들었을 때만 안 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안 된다.
亦有茵褥過厚 , 帷幔太密而釀成疾病 , 以致危殆者 , 不可不知也 。 總須隨時隨地因病制宜 。
요가 지나치게 두껍고 휘장이 너무 촘촘하여 질병을 빚고 위태로움에 이르는 경우도 있으니 알지 않아서는 안 된다. 요컨대 때와 장소에 따르고 병에 따라 마땅하게 해야 한다.
有有病素不服藥者 , 不為無見 , 但須知得病從何來 , 當從何去 , 便是藥耳 。 如飢則食 , 食即藥也 ; 不飢則不食 , 不食即藥也 ; 渴則飲 , 飲即藥也 ; 不渴則不飲 , 不飲即藥也 ; 惡風知傷風 , 避風便是藥 ; 惡酒知傷酒 , 戒酒便是藥 。 逸可以治勞 , 靜可以治躁 , 處陰以卻暑 , 就燠以勝寒 , 衰於精者寡以欲 , 耗於氣者守以默 , 怯於神者絕以思 , 無非對病藥也 , 人惟不自知耳 。
병이 있어도 평소 약을 복용하지 않는 사람은 견해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병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없애야 하는지 알아야 하니 이것이 곧 약이다. 배고프면 먹으니 먹는 것이 약이고, 배고프지 않으면 먹지 않으니 먹지 않는 것이 약이다. 목마르면 마시니 마시는 것이 약이고, 목마르지 않으면 마시지 않으니 마시지 않는 것이 약이다. 바람이 싫으면 풍에 상했음을 알아 바람을 피하는 것이 약이고, 술이 싫으면 술에 상했음을 알아 술을 끊는 것이 약이다. 편안함으로 수고로움을 치료하고 고요함으로 조급함을 치료하며, 그늘에 머물러 더위를 물리치고 따뜻한 곳으로 가서 추위를 이긴다. 정이 쇠한 사람은 욕심을 적게 하고 기가 소모된 사람은 침묵을 지키며 신이 약한 사람은 생각을 끊는 것이 모두 병에 맞는 약인데 사람들이 스스로 알지 못할 뿐이다.
以此類推 , 病皆有藥 , 其如人之不悟何 ?
이로 미루어 보면 병마다 모두 약이 있으나 사람이 깨닫지 못함을 어찌하겠는가.
人當臥病 , 務須常存退步心 , 心能退步 , 則方寸之間 , 可使天寬地曠 , 世情俗味 , 必不致過戀於心 , 縱有病焉 , 可計日而起矣 。 不則今日當歸 、 芍藥 , 明日甘草 、 人參 , 是以江河填漏卮 , 雖多無益也 。 先儒有言 : 予臥病時 , 常於胸前多書死字 , 每書數過 , 頓覺此心寂然不動 , 萬念俱灰 , 四大幾非我有 , 又何病之足慮哉 ? 雖然 , 此惟可與達者言也 。 一縉紳子 , 年三十餘 , 囊固饒裕 , 良田又幾二十頃 , 且已有子 , 亦可謂無不如意者矣 ! 後忽心志改常 , 二六時中 , 無刻不咨嗟太息 , 愁怨不勝 , 如此者四五年 , 遂患驚悸 、 怔忡 、 恍惚不得寐等證 。 遠近醫家延之殆遍 , 有安神者 , 有養血者 , 有補氣生精者 , 有消痰與降火者 , 備餌彌劇 , 卒至如迷如昧 , 如顛如狂 , 捶胸齧舌而死 。 究其病所從來 , 則為數年前訟費千餘金耳 。 嗚呼 ! 如此富家 , 但知有身外之微 , 而不知有性命之大 , 縱可憐 , 不足惜也 。 世間類是者頗眾 , 因注之以為後鑑 。
사람이 병들어 누워 있을 때에는 반드시 늘 한걸음 물러서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마음이 물러설 수 있으면 작은 가슴속에서 하늘과 땅을 넓게 할 수 있어 세정과 세속의 재미에 지나치게 마음을 연연하지 않게 되므로, 병이 있어도 날을 헤아려 일어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은 당귀·작약을 쓰고 내일은 감초·인삼을 쓰더라도 강물로 새는 잔을 채우는 것과 같아 많아도 이익이 없다. 선유가 “나는 병들어 누웠을 때 늘 가슴 앞에 죽을 사 자를 많이 쓰며, 몇 차례 쓸 때마다 문득 마음이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고 온갖 생각이 모두 재가 되며 사대가 거의 내 소유가 아닌 듯 느낀다. 또 무슨 병을 걱정하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오직 통달한 사람과 말할 수 있다. 한 진신의 아들은 나이가 서른 남짓이었는데 재산이 본래 넉넉하고 좋은 밭이 거의 20경이며 이미 아들도 있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할 만하였다. 뒤에 갑자기 마음이 평소와 달라져 하루 내내 한순간도 탄식하지 않는 때가 없고 근심과 원망을 견디지 못하였다. 이처럼 너덧 해가 지나 마침내 경계·정충·황홀하여 잠들지 못하는 등의 증상을 앓았다. 원근의 의가를 거의 두루 불렀는데 안신하는 이도 있고 양혈하는 이도 있으며 보기생정하는 이도 있고 소담하거나 강화하는 이도 있었다. 두루 먹일수록 더욱 심해져 끝내 미혹되고 어두운 듯하며 전광한 듯하여 가슴을 치고 혀를 깨물다가 죽었다. 병이 온 까닭을 따지니 수년 전 소송에 천여 금을 썼기 때문이었다. 아, 이처럼 부유한 집안에서 몸 밖의 사소한 것만 알고 목숨의 중대함을 알지 못하니 불쌍하더라도 아까워할 것은 없다. 세상에 이런 부류가 꽤 많으므로 적어 후세의 거울로 삼는다.
名利淡 , 忿欲消 , 是豪傑胸襟 , 賢明學問 , 亦是引年妙藥 , 卻疾奇方 。 碌碌者無此識見 , 焉肯服此藥乎 ?
명리를 담박하게 여기고 분노와 욕망을 없애는 것은 호걸의 흉금이며 현명한 학문이고 또한 수명을 늘리는 묘약이며 병을 물리치는 기방이다. 평범하게 바쁜 사람은 이런 식견이 없으니 어찌 이 약을 기꺼이 먹겠는가.
舉世診脈 , 都用簡篇為墊手之具 , 不思簡篇所載 , 悉聖賢經傳 , 昭垂萬古 , 至尊至貴 , 豈可輕為借用 , 甚且褻之於床第之間 , 汙之以穢惡之手 , 有人心者 , 安乎否也 ? 習以成風 , 竟無覺者 。 惟予友錢商隱一人 , 深以自嚴 , 更欲以是嚴天下 , 因命予筆之以廣其勸 , 是亦與敬惜字紙者同旨也 , 幸勿見迂為望 。
온 세상에서 맥을 진찰할 때 모두 책을 손 받침으로 쓴다. 책에 실린 것은 모두 성현의 경전으로 만고에 밝게 드리워 지극히 높고 귀한데, 어찌 가벼이 빌려 쓰며 심지어 잠자리 사이에서 더럽히고 더러운 손으로 오염시킬 수 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이 있는 자라면 편안하겠는가, 그렇지 않겠는가. 익숙하여 풍조가 되었고 끝내 깨닫는 사람이 없다. 오직 내 벗 전상은 한 사람만은 스스로 매우 엄격히 하고 또 이것으로 천하를 엄격히 하려 하여, 나에게 글로 적어 널리 권하라고 하였다. 이는 글씨 쓴 종이를 공경하고 아끼는 것과 같은 뜻이니 우활하다고 보지 않기를 바란다.
道光間 , 仁和吳醞香大令 , 嘗制小枕分送 , 俾診脈者免汙書籍 , 士大夫家宜仿而行之 。
도광 연간에 인화의 오온향 대령은 일찍이 작은 베개를 만들어 나누어 주어 진맥하는 사람이 책을 더럽히지 않게 하였으니, 사대부 집안은 본받아 행해야 한다.
擇醫療病 , 不在臨時 , 而在平日 , 能於平日知得深 , 信得確 , 則臨病相延 , 不患不濟事也 。 今夫世之擇醫者 , 在平日則恬不經心 , 及有病即手忙腳亂 , 妄聽妄從 , 有謂此良遂延此者 , 有謂彼良更延彼者 , 甚至道途之人 , 絕不曉醫為何事 , 而或狥其舉薦之情 , 無一不可延之者 。 幸而愈 , 以為得人 ; 不愈 , 則曰疾既已劇 , 無可奈何 , 甘下泉而不悔矣 。 愚者不足怪 , 智者亦比比如之 , 可勝悼嘆 。
병을 치료할 의사를 고르는 것은 닥쳤을 때가 아니라 평소에 해야 한다. 평소에 깊이 알고 확실히 믿을 수 있으면 병이 생겨 청할 때 일을 구제하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세상에서 의사를 고르는 사람들은 평소에는 태연히 마음에 두지 않다가 병이 생기면 곧 손발이 어지럽게 바빠져 함부로 듣고 따른다. 누가 이 사람이 좋다고 하면 이 사람을 청하고, 누가 저 사람이 좋다고 하면 또 저 사람을 청한다. 심지어 길 가는 사람이 의술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데도 혹 그 추천하는 인정에 따라 청하지 못할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된다. 다행히 나으면 적임자를 얻었다고 하고, 낫지 않으면 병이 이미 심하여 어쩔 수 없다고 하며 기꺼이 저승으로 가도 후회하지 않는다. 어리석은 사람은 괴이할 것이 없지만 지혜롭다는 사람도 곳곳에서 이와 같으니 슬픔과 탄식을 어찌 다하겠는가.
比比如之 , 皆大愚若智 , 非真智者 。
곳곳에서 이와 같은 사람은 모두 크게 어리석으면서 지혜로운 듯한 자이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다.
醫家之誤人有六 : 有學無識一也 ; 有識無膽二也 ; 知常不知變三也 ; 意有他屬四也 ; 心煩冗沓時五也 , 偶值精神疲倦六也 。 為醫者 , 不可不深加自省也 。 至有一等重惜名譽 , 知有生機而袖手 ; 更有一等中懷勢利 , 因富貴貧賤而岐心 ; 甚有一等未經明理 , 強作知醫 , 而率意妄投湯劑 , 以致誤彼蒼生者 , 又不可與醫類同日而語也 。 昔胡孝轅先生 , 深痛醫道之衰 , 忽不自覺其失聲曰 : 善醫者吾不得而見之矣 , 得見善學者斯可矣 。 予曰 : 善學者吾不得而見之矣 , 得見善問者斯可矣 。 自此三十有年來 , 絕不見一善問者 。
의가가 사람을 그르치는 경우는 여섯 가지이다. 학문은 있으나 식견이 없는 것이 첫째이고, 식견은 있으나 담력이 없는 것이 둘째이며, 상도는 알지만 변화는 모르는 것이 셋째이다. 뜻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넷째이고, 마음이 번거롭고 일이 겹치는 때가 다섯째이며, 마침 정신이 피곤한 때를 만나는 것이 여섯째이다. 의사가 된 사람은 깊이 스스로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더 나아가 명예를 중히 아껴 살릴 기틀이 있음을 알면서도 팔짱을 끼는 부류가 있고, 마음에 세리의 뜻을 품어 부귀·빈천에 따라 마음을 달리하는 부류도 있다. 심지어 이치를 밝히지 못했으면서 억지로 의술을 아는 체하고 제 뜻대로 탕제를 함부로 투여하여 창생을 그르치는 부류는 또 의사의 무리와 같은 날에 논할 수 없다. 옛날 호효원 선생은 의도가 쇠함을 깊이 가슴 아파하여 문득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어 “의술을 잘하는 사람을 내가 만나 볼 수 없으니 잘 배우는 사람만이라도 만나면 좋겠다.”라고 하였다. 나는 “잘 배우는 사람을 내가 만나 볼 수 없으니 잘 묻는 사람만이라도 만나면 좋겠다.”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삼십여 년 동안 잘 묻는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하였다.
世之醫者 , 自問能如是乎 ? 否則必至殃人禍世 。
세상의 의사는 스스로 물어 이와 같이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사람에게 재앙을 주고 세상에 화를 끼치게 된다.
或問富家之養子 , 恆柔脆而多疾 ; 貧家之養子 , 每堅強而寡疴 。 伊何說也 ? 裴子曰 : 貧家有暗合養子之道 , 與富家異耳 。 何以謂貧家有暗合養子之道與富家異 ? 蓋小兒受病有五 : 一曰暖 。 小兒質稟純陽而火偏勝 , 保護無容過暖 。《 禮 》 曰 : 童子不衣裘裳 。 此其義也 。 富家之子 , 一出母胎 , 即矇頭裹足 , 燠室藏之 , 加以覆衾垂幕 , 稍長則未寒先寒 , 疊加絨纊 , 更日置之於火 , 爍其未足之陰 , 積熱之病 , 從此變生 , 而柔脆者多矣 ; 貧家之子 , 則薄被單衣 , 隨地而擲 , 雖不無風冷交侵 , 動人憫念 , 而不知正得抑陽扶陰之至理 , 與富家異 , 其暗合養子之道一 。 二曰飽 。 人身腸胃以清虛為和順 , 在小兒則尤要 , 小兒腸胃柔窄 , 受盛無多 , 且不自知飢飽 , 旋與旋啖 , 而富有之家 , 則又脂味充盈 , 易恣情而多啖 , 脾胃諸病 , 從此變生 , 而柔脆者多矣 ; 貧家之子 , 則無物可食 , 即食亦自有常 , 必不能使之饜飫 , 在口腹固為清簡 , 而不知正得腸胃清虛之至理 , 與富家異 , 其暗合養子之道二 。 三曰怒 。 小兒獨陽無陰 , 恆易躁而多怒 , 惟抑怒可使全陰 。 富家之子 , 種種任性 , 驕恣之習 , 越於恆情 , 本無可怒 , 怒無已時 , 怒動肝木 , 木旺生風 , 風木乘脾 , 驚癇諸病 , 從此變生 , 而柔脆者多矣 。 貧家之子 , 則索居窮蹇 , 不縱其性 , 自能貶損意氣 , 無怒敢發 , 處境似乎拂逆 , 而不知正得抑怒全陰之至理 , 與富家異 , 其暗合養子之道三 。 四曰遏號 。 諺云 : 兒號即兒歌 。 老子云 : 終日號而不啞 , 則知兒之號出於不自知 、 不自識 , 莫或使然 , 猶天籟也 , 豈有遏之之理 ? 況小兒陽氣偏隆 , 最多火病 , 藉此呼號以泄之 , 不為無益 , 而富家之父若母者 , 反生不忍 , 動以食慰 , 而遏其號 , 鬱滯諸病 , 從此變生 , 而柔脆者多矣 ; 貧家之子 , 則聽呼號而勿恤 , 見者聞者 , 以為心忍 , 而不知正得順通天和之至理 , 與富家異 , 其暗合養子之道四 。 五曰傷藥 。 藥乃攻邪物 , 非養生物也 , 多服久服 , 鮮有不致傷生者 。 富家之子 , 則不論有病無病 , 日餌無虛 , 甚至旦暮更醫 , 亂投湯劑而不知忌 , 有謂無傷 , 吾勿信也 。 且藥之傷人 , 甚於傷食 , 食傷醫所易知 , 藥傷醫多不識 , 病外諸病 , 從此變生 , 又不止於柔脆矣 ; 貧家則不暇求醫 , 無資取藥 , 縱兒多疾 , 安意守之 , 在旁人以為失護 , 而不知正得有病不服藥為中醫之至理 , 與富家異 , 其暗合養子之道五 。 噫 ! 是豈富家不善養子乎 ? 非也 , 境也 , 因境以成其不善養子也 。 是豈貧家善養子乎 ? 非也 , 境也 , 因境以成其善養子也 。
어떤 이가 “부잣집에서 기른 아이는 늘 연약하고 병이 많으나 가난한 집에서 기른 아이는 흔히 튼튼하고 병이 적으니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물었다. 배자가 말하였다. “가난한 집에는 알지 못하는 사이 아이를 기르는 도에 들어맞는 점이 있어 부잣집과 다를 뿐이다.” 무엇을 두고 가난한 집이 알지 못하는 사이 아이를 기르는 도에 들어맞아 부잣집과 다르다고 하는가. 소아가 병을 얻는 데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따뜻함이다. 소아의 바탕과 기품은 순양이고 화가 치우쳐 성하므로 보호할 때 지나치게 따뜻하게 해서는 안 된다. 『예』에 “동자는 갖옷과 치마를 입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이 뜻이다. 부잣집 아이는 어머니 태에서 나오자마자 머리를 덮고 발을 싸서 따뜻한 방에 감추고 이불을 덮고 휘장을 드리운다. 조금 자라면 춥지도 않은데 미리 춥다고 하여 융과 솜을 겹쳐 더하고 다시 날마다 불 가까이에 두어 아직 부족한 음을 녹인다. 적열의 병이 여기에서 변하여 생기므로 연약한 아이가 많다. 가난한 집 아이는 얇은 이불과 홑옷으로 아무 곳에나 놓아두므로 풍랭이 번갈아 침범하여 보는 이의 동정을 일으키는 일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바로 양을 억누르고 음을 돕는 지극한 이치를 얻어 부잣집과 다름을 알지 못하니, 이것이 아이 기르는 도에 은연중 부합하는 첫째이다. 둘째는 배부름이다. 사람의 장위는 맑고 비어 있는 것을 화순함으로 삼으며 소아에게는 더욱 중요하다. 소아의 장위는 연하고 좁아 많이 받아 담을 수 없고 스스로 기아와 포만을 알지 못하므로 주는 대로 곧 먹는다. 부유한 집에서는 또 기름진 맛이 가득하여 쉽게 뜻대로 많이 먹으므로 비위의 여러 병이 여기에서 변하여 생겨 연약한 아이가 많다. 가난한 집 아이는 먹을 것이 없으며 먹더라도 본래 일정하여 반드시 실컷 배부르게 할 수 없다. 입과 배에는 본래 담박하고 간소하지만 바로 장위가 맑고 비어 있어야 한다는 지극한 이치를 얻어 부잣집과 다름을 알지 못하니, 이것이 둘째이다. 셋째는 노여움이다. 소아는 양만 있고 음이 없어 늘 쉽게 조급해지고 노여움이 많으니 오직 노여움을 억제해야 음을 온전히 할 수 있다. 부잣집 아이는 갖가지로 제멋대로 하여 교만하고 방자한 습성이 보통의 정을 넘어서며, 본래 성낼 일이 없어도 노여움이 그칠 때가 없다. 노여움은 간목을 움직이고 목이 왕성하면 풍을 낳으며 풍목이 비를 타므로 경간의 여러 병이 여기에서 변하여 생겨 연약한 아이가 많다. 가난한 집 아이는 궁핍하게 살면서 성질을 마음대로 펴지 못하므로 스스로 의기를 낮추고 감히 노여움을 내지 못한다. 처지가 뜻을 거스르는 듯하지만 바로 노여움을 억눌러 음을 온전히 하는 지극한 이치를 얻어 부잣집과 다름을 알지 못하니, 이것이 셋째이다. 넷째는 울음을 막는 것이다. 속담에 “아이 울음은 곧 아이의 노래이다.”라고 하였고 노자는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아이의 울음은 스스로 알거나 인식하지 못한 데에서 나오고 누가 그렇게 시킨 것도 없어 자연의 소리와 같음을 알 수 있으니 어찌 막을 이치가 있겠는가. 더구나 소아는 양기가 치우쳐 높아 화병이 가장 많으므로 이런 울부짖음으로 발설하는 것은 이익이 없지 않다. 부잣집 부모는 도리어 참지 못하여 툭하면 음식으로 달래 울음을 막으므로 울체의 여러 병이 여기에서 변하여 생겨 연약한 아이가 많다. 가난한 집 아이는 울부짖도록 내버려 두고 돌보지 않으므로 보고 듣는 이는 마음이 잔인하다고 여기지만, 바로 자연의 조화를 순조롭게 통하게 하는 지극한 이치를 얻어 부잣집과 다름을 알지 못하니 이것이 넷째이다. 다섯째는 약에 상하는 것이다. 약은 사를 공격하는 물건이지 생명을 기르는 물건이 아니다. 많이 복용하고 오래 복용하면 생명을 상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부잣집 아이는 병이 있는지 없는지를 논하지 않고 날마다 빠짐없이 먹이며, 심지어 아침저녁으로 의사를 바꾸어 탕제를 마구 투여하면서 꺼릴 줄 모르니 상함이 없다고 한다면 나는 믿지 않는다. 더구나 약이 사람을 상하는 것은 음식에 상하는 것보다 심하다. 음식에 상한 것은 의사가 쉽게 알지만 약에 상한 것은 의사가 흔히 알지 못하므로 병 밖의 여러 병이 여기에서 변하여 생겨 또 연약함에 그치지 않는다. 가난한 집에는 의사를 구할 겨를이 없고 약을 구할 재물이 없어 아이에게 병이 많아도 마음을 편히 하고 지킨다. 곁의 사람은 보호를 잃었다고 여기지만, 바로 병이 있어도 약을 먹지 않는 것이 중간 의사 노릇은 한다는 지극한 이치를 얻어 부잣집과 다름을 알지 못하니 이것이 다섯째이다. 아, 이것이 어찌 부잣집이 아이를 잘 기르지 못해서인가. 아니다. 형편 때문이다. 형편으로 인해 잘 기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어찌 가난한 집이 아이를 잘 길러서인가. 아니다. 형편 때문이다. 형편으로 인해 잘 기르게 된 것이다.
飽暖釀疾 , 世人不覺 , 諺云 : 若要小兒安 , 常帶三分飢與寒 。 旨哉言乎 ! 如 《 內經 》 云 : 藏於精者 , 春不病溫 。 小兒之多溫病 , 何耶 ? 良以冬暖而失閉藏耳 。 夫冬豈年年皆暖歟 ? 因父母以姑息為心 , 惟恐其凍 , 往往衣被過厚 , 甚則戕之以裘帛 , 雖天令潛藏 , 而真氣已暗為發泄矣 , 溫病之多 , 不亦宜乎 ? 此理不但幼科不知 , 即昔人亦未道及也 。 更有富貴之家 , 凡兒女新婚 , 其衣褲被褥無不厚諸重綿 , 設非嚴冷之天 , 未有不釀疾者 。 驟則猝發 , 人猶知之 ; 緩則延勞 , 人多不察 , 並及之以為愛子者告 。
배부름과 따뜻함이 병을 빚는 것을 세상 사람은 깨닫지 못한다. 속담에 “소아를 편안하게 하려면 늘 삼 푼의 주림과 추위를 지니게 하라.”라고 하였으니 뜻깊은 말이다. 『내경』에서 “정에 간직하면 봄에 온병을 앓지 않는다.”라고 한 것과 같다. 소아에게 온병이 많은 까닭은 무엇인가. 참으로 겨울에 따뜻하여 폐장을 잃었기 때문이다. 겨울이 어찌 해마다 모두 따뜻하겠는가. 부모가 고식적인 마음으로 오직 얼까 두려워하여 흔히 옷과 이불이 지나치게 두껍고, 심하면 갖옷과 비단으로 해치기 때문에 천령은 잠장을 명해도 진기는 이미 은밀히 발설된 것이다. 온병이 많은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이 이치는 유과에서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옛사람도 말하지 못하였다. 더욱이 부귀한 집에서는 아들딸이 새로 혼인하면 옷·바지·이불·요를 모두 여러 겹의 솜으로 두껍게 한다. 몹시 추운 날이 아니라면 병을 빚지 않는 경우가 없다. 급하면 갑자기 발하므로 사람들이 그래도 알지만, 느리면 오래 끌어 노병이 되므로 사람들이 많이 살피지 못한다. 함께 언급하여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알린다.
嘗見延醫之家 , 陳餚設醴 , 固不啻事神事鬼之誠且敬也 , 要皆出自不得已之苦心 。 醫者於此 , 自當設身處境 , 深用不安 , 適可則止 , 莫謂分所宜然 , 恣情長夜之飲 , 而絕不一回念 , 在暴病家 , 猶不及覺 , 若久病則中外主人 , 俱已晨夕焦勞 , 臥餐且廢 , 復何以堪 ?《 語 》 云 : 一人向隅 , 滿堂為之不樂 。 有病之家 , 則不止一人向隅 , 滿堂亦幾向隅矣 ! 一人豈能獨樂哉 ? 有人心者 , 必不然也 。 更有一等嗜習而成僻者 , 嗜博奕 , 但知有博奕而不知有病人 ; 嗜呼盧 , 但知有呼盧而不知有病人 ; 更有一等趨競公門 、 奔馳世務之輩 , 則又心無二用 , 但知有趨競奔馳 , 而不知有病人 , 願同志者勿類是 。
의사를 청한 집에서 음식을 차리고 술을 마련하는 것을 일찍이 보았는데, 신과 귀신을 섬기는 것 못지않게 정성스럽고 공경하지만 요컨대 모두 부득이한 고심에서 나온 것이다. 의사는 이때 스스로 그 처지에 서서 깊이 미안하게 여기고 알맞으면 그쳐야 한다. 분수상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마음대로 긴 밤의 술자리를 즐기며 한 번도 돌이켜 생각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갑작스러운 병이 난 집에서는 미처 깨닫지 못하더라도 오래된 병이면 안팎의 주인이 모두 아침저녁으로 애태우고 수고하여 잠과 식사도 폐하였으니 또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어』에 “한 사람이 구석을 향해 있으면 온 집안이 그 때문에 즐겁지 못하다.”라고 하였다. 병 있는 집에서는 한 사람만 구석을 향한 것이 아니라 온 집안이 거의 구석을 향하였으니 한 사람이 어찌 홀로 즐길 수 있겠는가. 사람의 마음이 있는 자는 반드시 그러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기호가 습관이 되어 버릇으로 굳어진 부류는 박혁을 좋아하면 박혁만 알고 병자는 모르며, 호로를 좋아하면 호로만 알고 병자는 모른다. 또 공문에서 경쟁하고 세상일로 분주히 달리는 무리는 마음을 두 군데 쓸 수 없어 다투고 달리는 것만 알고 병자는 모른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은 이런 부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存心立品之士 , 首要體貼人情 , 臨證用藥 , 務期切病 , 不可故尚珍貴 , 以糜人財 , 如病家不甚充裕 , 而率用貴藥 , 為人子父者 , 不得不竭蹶而勉從之 , 幸而病瘳 , 其家已窮 , 否則人財兩失 , 欲葬無貲 。 疏方尚須顧惜 , 況供我口腹者 , 忍肆其貪饞乎 ? 至於趨競奔馳 , 尤不足道矣 。
마음을 보존하고 품행을 세우는 선비는 먼저 인정을 헤아려야 한다. 임증하여 약을 쓸 때에는 반드시 병에 절실히 맞기를 기약해야 하며, 일부러 진귀한 것을 숭상하여 남의 재물을 낭비하게 해서는 안 된다. 병가가 그다지 넉넉하지 않은데도 값비싼 약을 경솔히 쓰면 자식이나 부모 된 사람은 부득이 힘을 다하여 억지로 따라야 한다. 다행히 병이 나아도 그 집은 이미 가난해지고, 그렇지 않으면 사람과 재물을 모두 잃어 장사지내려 해도 자금이 없다. 처방을 적을 때도 돌보고 아껴야 하는데 하물며 내 입과 배에 공급하는 것에 차마 탐욕과 식탐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겠는가. 다투고 분주히 달리는 일은 더욱 말할 가치가 없다.
針灸諸病 , 從未有以時令拘也 , 而世俗則專泥於伏暑之月 , 不思病之感也 , 有淺有深 , 其治療也 , 有緩有急 , 豈可概至伏暑之月而後針且灸耶 ? 考諸 《 素問 》、《 靈樞 》 以及 《 月令禁忌 》 等書 , 並不見有伏暑始宜針灸之說 , 不知世俗何所據而云然 ? 但一歲之中 , 最不可犯者 , 獨在冬至左右旬餘日 。 蓋此時正剝極復生 , 陰盛陽微之候 , 君子於此 , 自宜深潛玩密 , 保護微陽 , 而不使有所泄 。《 易 》 謂先王以至日閉關 , 商旅不行 , 後不省方 。《 素問 》 謂蟄蟲周密 , 君子居室 , 去寒就溫 , 無泄皮膚 。 皆此義也 。 當此之際 , 則又不可遽執四時俱宜針灸之說 , 賊及天和也 。
여러 병에 침구를 쓰면서 계절에 얽매인 적은 없는데 세속에서는 오직 복서의 달만 고집한다. 병을 감수한 데에는 얕고 깊음이 있고 치료에는 완급이 있음을 생각하지 않으니, 어찌 모두 복서의 달에 이른 뒤에야 침놓고 뜸뜰 수 있겠는가. 『소문』·『영추』 및 『월령금기』 등의 책을 살펴도 복서에 비로소 침구가 마땅하다는 말은 보이지 않는데 세속에서는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다만 한 해 가운데 가장 범해서는 안 되는 때는 오직 동지 앞뒤 열흘 남짓이다. 이때는 박이 극에 이르러 복이 생기고 음이 성하며 양이 미약한 때이므로, 군자는 스스로 깊이 잠기고 은밀함을 음미하며 미약한 양을 보호하여 발설되지 않게 해야 한다. 『역』에서는 선왕이 동짓날에 관문을 닫아 상려가 다니지 않고 임금이 지방을 순시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소문』에서는 겨울잠 자는 벌레가 치밀히 감추듯 군자는 방에 머물러 추위를 떠나 따뜻한 곳으로 가며 피부를 발설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모두 이 뜻이다. 이때에는 또 사시 모두 침구가 마땅하다는 말을 갑자기 고집하여 천화를 해쳐서는 안 된다.
伏暑之令 , 不宜灼艾 , 汪石山已詳言之 , 而後世偏犯其戒 , 誤人匪淺 。
복서의 계절에는 뜸이 마땅하지 않음을 왕석산이 이미 자세히 말하였는데, 후세에서 유독 그 경계를 범하여 사람을 그르친 것이 얕지 않다.
曷言乎用藥之如用兵也 ? 裴子曰 : 蓋衛國者兵 , 衛生者藥 , 藥不以法而夭折因之 , 兵不以律而敗亡隨之 , 慎所同耳 。 且以信 、 仁 、 義 、 智 、 勇與夫決敵致勝之策 , 一比勘焉 , 則又不爽錙銖者何也 ? 可戰則戰 , 不猶醫之可攻則攻乎 ? 可守則守 , 不猶醫之不可漫汗下乎 ? 可和則和 , 不猶醫之用和解乎 ? 兵有設伏 , 醫有從治 , 均之伏其所惡 , 誘其所好也 ; 兵有哨探 , 醫有消息 , 均之欲窺其虛實也 ; 兵有間諜 , 醫有轉藥 , 均之欲離其勁邪也 。 先補後攻 , 得非足食而後足兵之謂乎 ? 先攻後補 , 得非大兵之後 , 瘡痍荊棘 , 即為撫綏之策乎 ? 攻補交施 , 得非且戰 、 且屯 、 且和之計乎 ? 大積大聚 , 殺其大半而止 , 得非殲厥巨魁脅從罔治之義乎 ? 病去而勿妄加攻補 , 得非窮寇勿追 , 歸師勿揜之說乎 ? 不當補而補 , 齎盜糧養寇兵也 。 不當攻而攻 , 嘉兵者不祥也 。 或以正 , 或以奇 , 或緩兵尾其後 , 或先鋒銳其始 , 與醫之正治 、 奇治 、 先後劑 、 輕重法何異焉 ? 且無恆者不可以作醫 , 兵之貴信也 ; 無活人心者不可以作醫 , 兵之貴仁也 ; 醫不可以執方 , 兵之貴智也 ; 醫不可以貪利 , 兵之貴義也 ; 急攻之 、 急下之 、 急補之 , 兵之貴勇也 ; 器械不精 , 以其卒予敵也 , 藥品可不精製乎 ? 部伍不整 , 以其將予敵也 , 立方可不嚴整乎 ? 君不擇將者敗 , 醫不可不擇也 ; 閫外不專者敗 , 醫不可不任也 ; 忿兵者敗 , 驕兵者敗 , 印刓勿予者敗 , 醫獨可忿 、 可驕 、 可吝 、 可否耶 ? 病在此而治在彼 , 無過之地 , 妄加斬伐也 ; 有是病而用是藥 , 王師所至勿犯秋毫也 ; 執一不通 , 趙括之讀書也 ; 一治有五 , 孫子之用兵也 ; 有一二味成一方者 , 武穆之以寡御眾也 ; 有一二十味成一方者 , 淮陰之多多益善也 ; 有半劑或一劑而愈者 , 武之西伐會朝清明也 ; 有數十劑或百劑而愈者 , 周之東征三年始得也 。 以致於占風象 、 度地勢 、 察人心 , 與醫之審地宜 、 先歲氣 、 望聞問切 , 均不可以歧視者 。 用藥與用兵同有如此 。 雖然 , 兵家虛者則示之以實 , 實者則示之以虛 , 與醫之虛者實之 , 實者虛之 , 其理相似 。 而兵家之虛者示之以虛 , 實者示之以實 , 尤為致勝之妙算 , 而醫家之虛者虛之 , 實者實之 , 則敗不旋踵 。 何也 ? 兵家之所謂虛者 , 兵食不足也 , 在我之元氣虛也 ; 所謂實者 , 兵食足也 , 在我之元氣實也 。 醫家之所謂虛者 , 元氣虛也 , 所謂實者 , 邪氣實也 。 邪氣譬之兵家之敵人 , 非在我者也 , 此其所以異也 。 用藥與用兵之不同又如此 。 今之不知醫者 , 固不知如用兵之說 , 知如用兵之說者 , 亦但曰醫之不可輕用耳 ! 孰知醫之與兵 , 有同異一至於此也 。 故曰 : 善將兵者 , 而後可以語醫 ; 識虛實者 , 而後可以語醫 。
어찌하여 약을 쓰는 것이 군사를 쓰는 것과 같다고 하는가. 배자가 말하였다. “나라를 지키는 것은 군사이고 생명을 지키는 것은 약이다. 약을 법대로 쓰지 않으면 요절이 뒤따르고 군사를 기율대로 쓰지 않으면 패망이 뒤따르니 삼가야 함이 같은 것이다. 또 신·인·의·지·용과 적을 결판내고 승리를 이루는 계책으로 하나씩 견주어 보면 또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싸울 수 있으면 싸우는 것은 의술에서 공할 수 있으면 공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지킬 수 있으면 지키는 것은 의술에서 함부로 발한·공하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지 않은가. 화친할 수 있으면 화친하는 것은 의술에서 화해법을 쓰는 것과 같지 않은가. 군사에는 복병을 두는 일이 있고 의술에는 종치가 있어 모두 싫어하는 것을 숨기고 좋아하는 것으로 유인한다. 군사에는 정탐이 있고 의술에는 소식이 있어 모두 허실을 엿보려 한다. 군사에는 간첩이 있고 의술에는 전약이 있어 모두 강한 사기를 떼어놓으려 한다. 먼저 보한 뒤 공하는 것은 식량을 충분히 한 뒤 군사를 충분히 한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먼저 공한 뒤 보하는 것은 큰 전쟁 뒤 상처와 가시덤불이 있을 때 곧 위무하고 안정시키는 계책을 행한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공과 보를 번갈아 쓰는 것은 싸우고 주둔하고 화친하는 계책이 아니겠는가. 큰 적과 큰 취를 그 대부분을 줄이고 그치는 것은 큰 우두머리를 섬멸하고 억지로 따른 자는 다스리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병이 물러간 뒤 함부로 공보를 더하지 않는 것은 궁한 적을 쫓지 않고 돌아가는 군사를 덮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보해서는 안 되는데 보하는 것은 도둑에게 양식을 주어 적병을 기르는 것이고, 공해서는 안 되는데 공하는 것은 전쟁을 좋아하는 것이 상서롭지 않다는 것이다. 혹 정법을 쓰고 혹 기법을 쓰며, 혹 군사를 늦추어 뒤를 따르고 혹 선봉으로 처음을 날카롭게 하는 것이 의술의 정치·기치·선후의 약제·경중의 법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또 항심 없는 사람은 의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은 군사에서 신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고, 사람을 살릴 마음이 없는 사람은 의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은 군사에서 인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의사는 처방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군사에서 지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고, 의사는 이익을 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군사에서 의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급히 공하고 급히 내리고 급히 보하는 것은 군사에서 용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기계가 정밀하지 않으면 병졸을 적에게 주는 것이니 약품을 정밀히 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오가 정돈되지 않으면 장수를 적에게 주는 것이니 처방을 엄정히 세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임금이 장수를 가리지 않으면 패하니 의사를 가리지 않을 수 없고, 성문 밖의 일을 전적으로 맡기지 않으면 패하니 의사에게 맡기지 않을 수 없다. 분노한 군사는 패하고 교만한 군사는 패하며 인장이 닳도록 주지 않는 자는 패하는데, 의사만은 성내고 교만하며 인색하고 거절해도 되는가. 병은 여기에 있는데 저기를 치료하는 것은 잘못 없는 땅을 함부로 베어 치는 것이고, 이 병에 이 약을 쓰는 것은 왕사가 이르는 곳에서 추호도 범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만 고집하여 통하지 못하는 것은 조괄의 독서이고, 하나의 치료에 다섯 갈래가 있는 것은 손자의 용병이다. 한두 약재로 처방 하나를 이루는 것은 무목이 적은 수로 많은 수를 막은 것이고, 십여 개나 이십여 개의 약재로 처방 하나를 이루는 것은 회음이 많을수록 좋다고 한 것이다. 반 제나 한 제에 낫는 것은 무왕이 서쪽을 정벌하여 아침에 모여 맑고 밝아진 것이고, 수십 제나 백 제에 낫는 것은 주가 동쪽을 정벌하여 삼 년 만에야 이룬 것이다. 풍상을 점치고 지세를 헤아리며 인심을 살피는 일에 이르기까지 의술에서 땅에 마땅함을 살피고 먼저 세기를 살피며 망문문절을 행하는 것과 모두 달리 보아서는 안 된다. 용약과 용병의 같음이 이와 같다. 그러나 병가에서 허한 것을 실하게 보이고 실한 것을 허하게 보이는 것은 의술에서 허한 것을 실하게 하고 실한 것을 허하게 하는 것과 이치가 비슷하다. 병가에서 허한 것을 허하게 보이고 실한 것을 실하게 보이는 것은 더욱 승리를 이루는 묘한 계책이지만, 의가에서 허한 것을 더 허하게 하고 실한 것을 더 실하게 하면 발뒤꿈치도 돌리기 전에 패한다. 어째서인가. 병가에서 이른바 허는 군사와 식량이 부족한 것이니 우리 쪽 원기가 허한 것이고, 이른바 실은 군사와 식량이 충분한 것이니 우리 쪽 원기가 실한 것이다. 의가에서 이른바 허는 원기가 허한 것이고 이른바 실은 사기가 실한 것이다. 사기는 병가의 적에 비유되며 우리 쪽에 있는 것이 아니니 이 때문에 다르다. 용약과 용병의 다름도 이와 같다. 지금 의술을 모르는 사람은 본래 용병과 같다는 말을 모르고, 용병과 같다는 말을 아는 사람도 다만 의술을 가볍게 써서는 안 된다고 말할 뿐이다. 누가 의술과 군사에 같음과 다름이 이렇게까지 있음을 알겠는가. 그러므로 군사를 잘 거느리는 사람이라야 의술을 말할 수 있고 허실을 아는 사람이라야 의술을 말할 수 있다고 한다.”
醫道通治道 , 故良醫良相同功 ; 用藥如用兵 , 故名醫名將同才 。 噫 ! 醫豈易言耶 ?
의도는 치도와 통하므로 양의와 양상은 공이 같고, 용약은 용병과 같으므로 명의와 명장은 재주가 같다. 아, 의술을 어찌 쉽게 말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