諸脈亦統之有宗歟 。 蓋以相為對待者 。 以見曰陰曰陽 。 為表為里 。 不必斷斷然七表八里九道如昔人云云也 。 觀素問仲景書中論脈處 。 尤可見取象之義 。 今之為脈者 。 能以是觀之 。 思過半矣 。 於乎 。 脈之道大矣 。 而欲以是該之 。 不幾於舉一而廢百歟 。 殊不知至微者理也 。 至著者象也 。 體用一源 。 顯微無間 。 得其理 。 則象可得而推矣 。 是脈也 。 求之於陰陽對待統系之間 。 則啟源而達流 。 因此而識彼 。 無遺策矣 。
여러 맥도 통합하는 근본이 있는가? 서로 대립하여 짝을 이루는 것으로 음과 양, 표와 리를 드러내니, 옛사람들의 말처럼 반드시 칠표·팔리·구도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소문》과 중경의 책에서 맥을 논한 곳을 보면 상을 취하는 뜻을 더욱 알 수 있다. 지금 맥을 공부하는 사람이 이와 같이 살피면 절반 이상을 깨달을 것이다. 아, 맥의 도는 크다. 이것으로 모두 포괄하려 한다면 하나를 들어 백 가지를 버리는 데 가깝지 않겠는가? 그러나 지극히 미묘한 것은 이치이고 지극히 드러난 것은 상이며, 체와 용은 근원이 하나이고 드러남과 미묘함에는 틈이 없다는 것을 모르는 말이다. 이치를 얻으면 상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이 맥을 음양이 대립하고 통합되는 체계 사이에서 구하면 근원을 열어 흐름에 통하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저것을 알아 놓치는 방책이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