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無一定之法 , 而有一定之理 。 理無可疑 , 則雖庸工一得 , 斷不以人廢言 ; 理有可疑 , 則雖前代宗匠 , 奕祀之所奉為典型者 , 亦不護其所短 , 必為之摘發其萬一 , 以質諸天下後世 。 蓋醫以寄生死 , 故不得不闡發其精微 , 深探其義蘊 。 此會稽張景岳先生 《 質疑錄 》 一書之所由作也 。 粵稽軒 、 岐二聖 , 化天地身 , 發菩提願 , 著 《 靈樞 》、《 素問 》 諸經 , 創立醫道 , 而斯民已登諸仁壽之域 , 厥德溥已 ; 春秋時秦越人復有 《 難經 》 之作 , 漢文帝與淳于意問答若干條 ; 臟腑之表裡陰陽 , 病證之寒溫虛實 , 言中機宜 , 瞭如指掌 。 此即後代質疑之權輿乎 ! 厥後張仲景 、 劉河間 、 李東垣 、 朱丹溪四先生 , 後先踵起 , 著述最富 , 或精於傷寒 , 或工於雜證 , 各立一家言 , 發前人之未發 , 大暢宗風 , 遂令醫之一道 , 如日月經天 , 江湖麗地 , 昭垂宇宙 , 亙古如新 。 後之工於醫者 , 又何疑之可質乎 ? 雖然 , 愚者千慮 , 豈無一得 ? 智者千慮 , 豈無一失 ? 況醫如用兵然 , 奇正變化 , 運用從心 , 不離乎法 , 而亦不泥乎法 , 豈得為前賢章句所埋 , 遂寄人籬下 , 而不思所以變通之也哉 ! 先生天姿卓絕 , 復殫人工 , 其於岐黃之術 , 不啻三折肱矣 , 浙東西何止活萬人 ! 取先聖之經 , 以辨前賢之誤 。 如傷寒一證 , 必辨虛實 , 攻補兼施 , 而不泥 「 傷寒無補法 」 之一言 ; 中風則必辨十二經之見證 , 而不以治傷寒之法治之 ; 血證必先清外感 , 次理內傷 , 而不泥潔古 「 見血無寒 」 之語 。 可疑者諸如此類 , 先生一一搜剔之 , 真可謂善讀古人之書矣 。 楷生也晚 , 不獲親炙先生之門 , 然至今讀其遺書 , 雖不能至心 , 竊嚮往之 , 篝燈披閱 , 以是質諸軒岐也可 , 質諸四大家也可 , 即以是質諸天地鬼神 , 亦無不可 。 於是知先生之為功 , 於天下萬世也大 , 而工於醫者 , 庶可以無疑矣 。 因先光梨棗 , 以公諸海內 , 若先生全集中 , 更有 《 雜證謨 》、《 傷寒典 》、《 婦人規 》、《 傳忠錄 》、《 本草類考 》 等書 , 嗣當謀諸同志君子 , 次第梓行 , 以共欣賞焉 !
의학에는 일정한 법은 없으나 일정한 이치는 있다. 이치에 의심할 것이 없으면 용렬한 의사가 한 번 얻은 것이라도 결코 사람 때문에 말을 버리지 않는다. 이치에 의심할 것이 있으면 전대의 종장으로 여러 세대가 전형으로 받든 자라도 단점을 감싸지 않고 반드시 만에 하나라도 적발하여 천하 후세에 질정한다. 의학에는 생사가 맡겨져 있으므로 정미함을 밝히고 뜻을 깊이 탐구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회계의 장경악 선생이 《질의록》 한 책을 지은 까닭이다. 상고하건대 헌원과 기백 두 성인은 천지의 몸으로 화하여 보리의 원을 내고 《영추》·《소문》 여러 경을 지어 의도를 창립하여 백성을 인수의 경지에 오르게 하였으니 그 덕이 넓다. 춘추 때 진월인이 다시 《난경》을 지었고 한 문제와 순우의가 몇 조목을 문답하였다. 장부의 표리음양과 병증의 한온허실에 관한 말이 기의에 맞아 손바닥을 가리키듯 분명하였으니 이것이 곧 후대 질의의 시초가 아니겠는가. 그 뒤 장중경·유하간·이동원·주단계 네 선생이 앞뒤로 잇달아 일어나 저술이 가장 풍부하였으며 혹 상한에 정밀하고 혹 잡증에 능하여 각각 일가의 말을 세우고 선인이 밝히지 못한 것을 밝혀 종풍을 크게 펼쳤다. 마침내 의도는 해와 달이 하늘을 지나고 강과 호수가 땅에 붙어 있듯 우주에 밝게 드리워져 오래도록 새로웠으니 뒤에 의학에 능한 자가 또 무슨 의심을 질정하겠는가. 그러나 어리석은 자도 천 번 생각하면 어찌 한 번 얻는 것이 없으며 지혜로운 자도 천 번 생각하면 어찌 한 번 잃는 것이 없겠는가. 하물며 의학은 용병과 같아 기정이 변화하고 마음을 따라 운용하여 법을 떠나지 않으면서 법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어찌 전현의 장구에 묻혀 마침내 남의 울타리 아래 붙어살며 변통할 방법을 생각하지 않겠는가. 선생은 타고난 자질이 탁월한 데다 사람의 노력을 다하였으니 기황의 의술에서 팔을 세 번 부러뜨린 경험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절동과 절서에서 살린 사람이 어찌 만 명뿐이겠는가. 선성의 경을 취하여 전현의 잘못을 변별하였다. 상한 한 증도 반드시 허실을 가려 공과 보를 함께 시행하고 상한에는 보법이 없다는 한마디에 얽매이지 않았다. 중풍은 반드시 십이경의 현증을 가려 상한을 다스리는 법으로 다스리지 않았다. 혈증은 반드시 먼저 외감을 맑히고 다음에 내상을 다스려 결고의 피가 보이면 한이 없다는 말에 얽매이지 않았다. 의심할 만한 이런 종류를 선생이 하나하나 찾아 가려냈으니 참으로 옛사람의 책을 잘 읽었다고 할 만하다. 나는 늦게 태어나 선생의 문하에서 직접 배우지 못하였다. 그러나 지금 유서를 읽으니 비록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하여도 마음으로는 사모한다. 등불을 켜고 펼쳐 읽으며 이것으로 헌원과 기백에게 질정해도 되고 사대가에게 질정해도 되며 천지귀신에게 질정해도 안 될 것이 없다. 이에 선생의 공이 천하 만세에 크고 의학에 능한 자가 거의 의심이 없을 수 있음을 알았다. 먼저 배나무와 대추나무 판목에 빛내어 온 나라에 공개한다. 선생의 전집에는 다시 《잡증모》·《상한전》·《부인규》·《전충록》·《본초류고》 등의 책이 있으니 뒤에 마땅히 뜻을 같이하는 군자들과 의논하여 차례로 간행하고 함께 감상하고자 한다.
時康熙歲在丁卯蒲月東海石楷謹識
때는 강희 정묘년 포월에 동해의 석해가 삼가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