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十年來 , 醫家之書盛行於世者 , 張景岳 《 類經 》, 趙養葵 《 醫貫 》。 然 《 醫貫 》 一知半解耳 !《 類經 》 明岐黃之學 , 有王冰之所未盡者 , 即學士大夫 , 亦必累月而後能通之 。 昔在戊寅 , 曾於張平子座上識景岳 , 蓋交臂而失之 。 己酉寓證人書院 , 有蔣一玖者 , 年八十矣 , 欲為其舅作傳 , 則景岳也 。 景岳名介賓 , 別號通一子 , 越之山陰人也 。 其父為定西侯客 。 介賓年十四 , 即從遊於京師 , 天下承平 , 奇才異士集於侯門 。 介賓幼而狥齊 , 遂遍交其長者 。 是時金夢石工醫術 , 介賓從之學 , 盡得其傳 。 以為凡人陰陽 , 但以血氣 、 臟腑 、 寒熱為言 , 此特後天之有形者 , 非先天之無形者也 。 病者多以後天戕及先天 , 治病者但知有形邪氣 , 不顧無形元氣 。 自劉河間以暑火立論 , 專用寒涼 , 其害已甚 , 賴東垣論脾胃之火 , 必務溫養 , 救正實多 。 丹溪出 , 立陰虛火動之論 , 寒涼之弊又復盛行 , 故其注本草 , 獨詳參 、 附之用 。 又慨世之醫者 , 茫無定見 , 勉為雜應之術 , 假兼備以幸中 , 借和平以藏拙 。 虛而補之 , 又恐補之為害 , 複製之以消 ; 實而消之 , 又恐消之為害 , 複製之以補 。 若此者 , 以藥治藥尚未遑 , 又安望其及於病耶 ? 幸而偶愈 , 亦不知其補之之力 , 攻之之力耶 ? 及其不愈 , 亦不知其補之為害 , 消之為害耶 ? 是以為人治病 , 沉思病原 , 單方重劑 , 莫不應手霍然 。 一時謁病者 , 輻輳其門 , 沿邊大帥 , 皆遣金幣致之 。 其所著 《 類經 》, 綜覈百家 , 剖析微義 , 凡數十萬言 , 歷四十年而後成 。 西安葉秉敬謂之 「 海內奇書 」。 班孟堅贊孝宣之治政事 , 文學法理之士 , 咸精其能 , 至於技巧工匠器械 , 自元成間 , 鮮能及之 ! 介賓此書 , 若非遭遇神宗之盛 , 亦莫能有也 。 又以應病如應敵 , 作 《 新方八陣 》, 為 《 八略 》 以破之 。 惜其書晚出 , 尚藏於家 。 介賓博學 , 於醫之外 , 象數 、 星緯 、 堪輿 、 律呂 , 皆能究其底蘊 。 在遼陽道中 , 聞御馬者歌聲聒耳 , 介賓曰 : 此惡聲也 , 不出五年 , 遼其亡矣 。 已而言驗 。 所親問以近事 , 介賓曰 : 我夜觀乾象 , 宮車殆將晏駕 , 天下從此亦亂矣 。 未幾 , 神宗崩 。 介賓遂返越 , 其年五十八 , 又二十年始卒 。 卒之日自題其像 , 召三子而誨之 。 其門人曰 : 先生乃死耶 ! 吾先生故有不死者 。 介賓莞爾而逝 。 自太史公傳倉公 , 件系其事 , 後之儒者 , 每仿是體 , 以作名醫之傳 。 戴九靈 、 宋景濂其著也 , 而名醫亦復自列其事 , 存為醫案 , 以待後人遇有病之相同者 , 則仿而治之 , 亦盛心也 。 世風不古 , 以醫負販其術 , 無異於里閭俗師也 , 而不肯以里閭俗師自居 , 雖復殺人如草 , 亦點綴醫案以欺人 。 介賓醫案 , 散在 《 景岳全書 》, 予不敘於篇 , 惡夫蹈襲者之眾也 。 趙養葵名獻可 , 寧波人 , 與介賓同時 , 未嘗相見 , 而議論往往有合者 。
이십 년 동안 의가의 책으로 세상에 성행한 것은 장경악의 《유경》과 조양규의 《의관》이다. 그러나 《의관》은 조금 알고 반쯤 풀이한 것일 뿐이다. 《유경》은 기황의 학문을 밝혀 왕빙이 다하지 못한 것이 있으며 학사대부라도 여러 달이 지나야 통할 수 있다. 옛날 무인년에 장평자의 자리에서 경악을 알게 되었으나 팔을 스치고 놓친 셈이었다. 기유년에 증인서원에 머물렀는데 장일구라는 자가 나이 팔십으로 외숙의 전을 지으려 하였으니 곧 경악이었다. 경악은 이름이 개빈이고 별호가 통일자이며 월의 산음 사람이다. 아버지는 정서후의 객이었다. 개빈은 열네 살에 따라 서울에 유학하였는데 천하가 태평하여 기재와 이사가 후의 문하에 모여들었다. 개빈은 어려서부터 영민하여 마침내 연장자들과 두루 사귀었다. 당시 금몽석이 의술에 능하여 개빈이 따라 배워 전수를 모두 얻었다.
사람의 음양을 혈기·장부·한열로만 말하는 것은 후천의 유형일 뿐 선천의 무형이 아니라고 여겼다. 병든 자는 흔히 후천으로 선천까지 해치는데 치료하는 자는 유형의 사기만 알고 무형의 원기를 돌아보지 않는다. 유하간이 서화로 입론하여 한량을 전용한 뒤 그 해가 이미 심하였으나 동원이 비위의 화를 논하며 반드시 온양에 힘쓴 덕분에 바로잡아 구한 것이 참으로 많았다. 단계가 나와 음허화동론을 세우자 한량의 폐단이 다시 성행하였으므로 그가 본초에 주석할 때 유독 인삼·부자의 쓰임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또 세상 의사가 아득히 정견이 없이 억지로 뒤섞여 응하는 술을 하며 두루 갖춘 것을 빌려 요행히 맞기를 바라고 화평함을 빌려 서투름을 숨기는 것을 개탄하였다. 허하여 보하면서도 보하는 것이 해가 될까 두려워 다시 소로 제어하고 실하여 소하면서도 소하는 것이 해가 될까 두려워 다시 보로 제어한다. 이러하면 약으로 약을 다스리기에도 겨를이 없는데 어찌 병에 미치기를 바라겠는가. 다행히 우연히 나아도 보의 힘인지 공의 힘인지 모르고 낫지 않아도 보의 해인지 소의 해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남의 병을 다스릴 때 병원을 깊이 생각하고 단방과 중제를 써서 손에 응하여 홀연히 낫지 않는 경우가 없었다. 한때 진료를 구하는 자가 문 앞에 몰려들었고 변방의 대장수들은 모두 돈과 예물을 보내 초청하였다.
그가 지은 《유경》은 백가를 종합하여 살피고 미묘한 뜻을 분석한 것으로 모두 수십만 자이며 사십 년을 거쳐 완성하였다. 서안의 엽병경은 해내의 기서라 하였다. 반맹견은 효선의 정사를 찬양하여 문학과 법리의 선비들이 모두 능력을 정밀히 하였고 기교·공장·기계에 이르러서도 원제와 성제 때부터는 능히 미치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하였다. 개빈의 이 책도 신종의 융성을 만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병에 응하는 것이 적에 응하는 것과 같다 하여 《신방팔진》을 짓고 《팔략》을 만들어 깨뜨렸으나 아쉽게도 책이 늦게 나와 아직 집에 보관되어 있다. 개빈은 박학하여 의학 외에 상수·성위·감여·율려도 모두 깊은 뜻을 궁구할 수 있었다. 요양으로 가는 길에서 말을 모는 자의 노랫소리가 귀를 시끄럽게 하자 개빈은 이것은 나쁜 소리이니 오 년 안에 요가 망할 것이라고 하였고 뒤에 말이 증험되었다. 가까운 사람이 근래 일을 묻자 개빈은 밤에 하늘의 형상을 보니 궁거가 거의 안가하려 하며 천하도 이로부터 어지러워질 것이라고 하였다. 얼마 뒤 신종이 붕하였다. 개빈은 마침내 월로 돌아갔는데 나이 쉰여덟이었으며 다시 이십 년 뒤에 비로소 죽었다. 죽는 날 자기 초상에 직접 글을 쓰고 세 아들을 불러 가르쳤다. 문인이 선생께서 죽으십니까, 우리 선생에게는 본래 죽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하자 개빈은 빙그레 웃으며 세상을 떠났다.
태사공이 창공의 전을 지으며 일을 조목별로 엮은 뒤 후대 유자들은 매번 이 체재를 본떠 명의의 전을 지었으니 대구령과 송경렴이 두드러진다. 명의도 스스로 일을 나열하여 의안으로 남겨 후인이 같은 병을 만나면 본떠 치료하게 하였으니 또한 성대한 마음이다. 세상 풍속이 옛날 같지 않아 의사로서 의술을 팔고 다니는 것은 마을의 속된 스승과 다를 바 없으나 그렇게 자처하려 하지 않으며 사람을 풀처럼 죽이면서도 의안을 꾸며 남을 속인다. 개빈의 의안은 《경악전서》에 흩어져 있으나 나는 편에 서술하지 않으니 답습하는 자가 많은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조양규는 이름이 헌가이고 영파 사람으로 개빈과 동시대였으며 서로 만난 적은 없지만 논의가 왕왕 맞는 것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