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苦寒補陰之誤

凡物之死生 , 本由乎陽氣 。 顧今人病陰虛者 , 十嘗八九 , 不知此 「 陰 」 字 , 正陽氣之根也 。 陰不可無陽 , 陽不可無陰 。 故物之生也 , 生於陽 ; 而物之成也 , 成於陰 。 則補陰者 , 當先補陽 。 自河間主火之說行 , 而丹溪以苦寒為補陰之神丹 , 舉世宗之 。 盡以熱證明顯 , 人多易見 ; 寒證隱微 , 人或不知 ; 且虛火 、 實火之間 , 尤為難辨 。 孰知實熱為病者 , 十不過三四 ; 而虛火為患者 , 十嘗有六也 。 實熱者 , 邪火也 。 邪火之盛 , 元氣本無所傷 , 故可以苦寒折之 , 亦不可過劑 , 過則必傷元氣 。 虛火者 , 真陰之虧也 。 真陰不足 , 豈苦寒可以填補 ? 人徒知滋陰之可以降火 , 而不知補陽之可以生水 。 吾故曰 : 使劉 、 朱之言不息 , 則軒岐之道不著 。
모든 사물의 생사는 본래 양기에서 말미암는다. 지금 사람 중 음허를 앓는 자가 열에 늘 여덟아홉인데 이 음이라는 글자가 바로 양기의 뿌리임을 알지 못한다. 음은 양이 없을 수 없고 양은 음이 없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사물이 생기는 것은 양에서 생기고 사물이 이루어지는 것은 음에서 이루어지니 보음하려면 먼저 보양해야 한다. 하간이 화를 위주로 하는 설이 행해진 뒤 단계는 고한을 보음의 신단으로 삼았고 온 세상이 따랐다. 열증은 분명하여 사람들이 대부분 쉽게 보지만 한증은 숨고 미묘하여 혹 알지 못하며 더욱이 허화와 실화 사이는 가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열이 병이 되는 것은 열에 서넛을 넘지 않지만 허화가 근심이 되는 것은 열에 늘 여섯이라는 것을 누가 아는가. 실열은 사화이다. 사화가 성한 경우 원기는 본래 손상된 것이 없으므로 고한으로 꺾을 수 있으나 약량을 지나쳐서는 안 되니 지나치면 반드시 원기를 상한다. 허화는 진음이 이지러진 것이다. 진음이 부족한 것을 어찌 고한으로 채워 보하겠는가. 사람들은 자음이 화를 내릴 수 있다는 것만 알며 보양이 수를 낳을 수 있음을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유씨와 주씨의 말이 그치지 않으면 헌원과 기백의 도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