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景岳以醫術著聲於明萬曆 、 天啟間 , 所輯 《 類經 》 暨 《 景岳全書 》 二種 , 流播宇內殆遍 , 惟 《 質疑錄 》 一帙 , 雖已為東海石氏所刊 , 而人間見者甚少 。 其書於古名家 , 若劉 、 李 、 朱 、 張輩 , 所言稍有偏 , 著必加辯正 。 蓋恐後之不善讀者 , 守其一說 , 未得化裁之用 , 而因以夭札生民之命 , 故不憚昌言劇論以明之 。 夫豈好於前人洗垢索瘢哉 ! 考其所列諸論 , 有已見 《 全書 》《 類經 》 中者 ; 亦有與 《 全書 》《 類經 》 之說少異 , 而悔疇昔立言之未當者 。 人以此疑其為晚年未定稿 , 又以此知其所學愈老愈明 , 未嘗自矜已得 , 而孜孜日求正於至當為可則也 。 就中惟 「 論傷寒春變溫病夏變暑病 」 之非 , 此一條殊未是 。 蓋亦智者千慮之一失耶 ! 葉敬問為景岳作 《 類經 》 序 , 稱為會稽傑士 , 幼稟明慧 , 六經諸子 , 無不考鏡 。 魯謙庵作 《 景岳全書 》 序 , 稱其於書無所不窺 。 壯年好談兵 , 思有所用於世 。 筮易得天山遁卦 , 始決意石隱 。 黃梨洲作 《 景岳傳 》, 稱其於象數 、 星緯 、 堪輿 、 律呂 , 皆能究其精蘊 。 至於遼陽之敗亡 , 中原之擾亂 , 皆預決於數年之前 , 是其所學甚博 , 不特醫術一端矣 !
장경악은 명 만력·천계 연간에 의술로 명성을 드러냈다. 엮은 《유경》과 《경악전서》 두 가지는 온 세상에 거의 두루 퍼졌으나 《질의록》 한 질만은 이미 동해 석씨가 간행하였어도 세상에서 본 자가 매우 적다. 그 책은 옛 명가인 유·이·주·장 무리의 말에 조금이라도 치우침이 있으면 반드시 변별하여 바로잡았다. 뒤에 잘 읽지 못하는 자가 한 설만 지키고 화재의 쓰임을 얻지 못하여 백성의 목숨을 요절하게 할까 염려하였으므로 서슴지 않고 크게 말하고 격렬히 논하여 밝혔다. 어찌 앞사람의 때를 씻어 흠집을 찾기를 좋아했겠는가. 열거한 논의를 상고하면 이미 《전서》와 《유경》에 보이는 것이 있고 두 책의 설과 조금 달라 옛날에 세운 말이 합당하지 못했음을 뉘우친 것도 있다. 사람들은 이 때문에 만년의 미정고라고 의심하고 또 이 때문에 학문이 늙을수록 밝아져 이미 얻은 것을 스스로 자랑하지 않고 부지런히 날마다 지당함에 바로잡기를 구한 것이 본받을 만함을 안다. 그 가운데 오직 상한이 봄에 온병으로 변하고 여름에 서병으로 변한다는 것을 그르다고 논한 한 조목은 유달리 옳지 않다. 역시 지혜로운 자의 천 번 생각 중 한 번 실수인가.
엽경문은 경악을 위해 《유경》 서문을 지으며 회계의 걸사로 어려서부터 명혜를 부여받아 육경과 제자서를 상고하여 비추지 않은 것이 없다고 칭하였다. 노겸암은 《경악전서》 서문을 지으며 책에서 엿보지 않은 것이 없고 장년에는 병법 말하기를 좋아하여 세상에 쓰이고자 하였으나 시초로 《역》을 점쳐 천산둔괘를 얻고서야 은거를 결심하였다고 칭하였다. 황이주는 〈경악전〉을 지으며 상수·성위·감여·율려에서 모두 정수를 궁구할 수 있었고 요양의 패망과 중원의 혼란에 이르러서도 모두 수년 전에 미리 결단하였다고 칭하였다. 그러므로 배운 바가 매우 넓어 의술 한 가지뿐이 아니었다.